5회차 – 7장 신성한 것 / 메모

죽은 자의 자리

우선 싱어는 윤리적 배려의 대상을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들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사람은 스스로를 시간 속에서 인식할 수 있는 존재,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존재이다. .. 이렇게 해서 그는 영장류는 사람이지만 무뇌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249)

죽음, 장례식을 어떻게 의미있게 만들어갈 것인가

노년의 삶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경우의 토론

장례식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음. VS 남아있는 사람 외, 죽음으로 가는 사람이 자기 죽음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산자만의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돈의동 작은 장례 https://www.yna.co.kr/view/AKR20160121106700004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사회 안에 여전히 그 사람의 자리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과 우리의 관계가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유지된다고 믿는다.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을 만들고 꽃을 갖다놓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뜻’을 확인하려 하고, 그의 ‘명예’를 지키려 하는 것 역시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다. (255)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을 쓰고 꽃을 놓는다는 것, 뜻을 확인하고 명예를 지키려는 것, 장기기증이 사회와의 연대라는 말, 사회안에 사신을 위한 상징적 장소를 남기려는 시도라는 말이 신선하다.

네안데르탈인의 장례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28868.html

넷플릭스 <네안데르탈인의 비밀> 추천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041275

아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야말고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은 우리가 무엇을 준들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맺었던 관계의 본질은 우리가 더 이상 남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게 되는 시점에 받게 될 대접을 통해 확인된다. (256)

고인이 된 유명인 노회찬,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사후에도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것인 아닐까. 가치가 있는 사람들로 해석된다는 건 뭘까. 계속 생각나고 기억나는 사람은 사후에도 환대받는 것일까. 이를테면 신해철처럼.

현대 사회의 도덕의 기초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의 원리이다. 즉 태어나는 모든 인간 생명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신성함이란 바로 이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259)

살아있다면 자리가 허용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쓸모있는 사람은 어떤 것일까.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에 우리는 왜 공감할까. 타인에 도움에 온전히 의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일까?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는 자리란 무엇일까?

서바이벌 로터리

도덕적인 차원에서 전쟁이 제기하는 진짜 문제는 – 적을 죽인다는 데 있다기 보다 – 자기 편을 죽게 내버려둔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예로 ‘후쿠시마 원전 결사대’를 들 수 있다. 사고의 처리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수년 내에 치명적인 암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언론은 이 점에 대해 언급을 회피한다. ‘누군가는’ 원전에 들어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논리에서이다. (다시 한 번,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결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바이벌 로터리보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가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원전 노동자들이 주로 하층계급에서 충원되는 데 비해, 서바이벌 로터리는 적어도 사회 계급과 무관하게 무작위적으로 불운을 배분한다는 미덕이 있다.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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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직관을 (잘못) 대립시키는 이러한 구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논리로 직관을 뒷받침하는 것이리라. (268)

공리주의자들은 사람자격이 하나의 성원권이라는 것, 우리가 사회에 의해 사람으로 임명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271)

‘살게 하고 내버려두는’국가. 이 국가는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ㅡ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지만, 동시에 바로 그것을 구실로, 그들로부터 언제든지 성원권을 박탈할 권한을 갖는다.(276) … 그들의 생명이 재산처럼 관리되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사람이 아니다. (277)

장소/자리의 의미

둥글어지고 작아지는 지구 위에서 자리를 갖는 일, 또는 자리를 지키는 일은 지난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도처에서 장소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며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운 농민들, 구조조정에 저항하며 연좌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 투쟁의 형식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점거, 누워 있기, 앉아 있기, 아니면 장소를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 (계산대 위에서 잠을 자는 홈에버 노동자들)…. 몸 자체가 여기서는 언어가 된다. (285)

심보선, 나의 시를 말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26439.html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285)

…. 엄마의 처지는 가정부보다 더 나쁘다. 가족을 위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만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모순적인 명제가 엄마의 행동을 이중구속으로 몰아넣으며, 엄마의 일생 전체를 하나의 질문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나의 진짜 자리는 어디인가?’ (293)

추천서적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7507138 연결된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