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부엌칼을 든 사람들

지금 그 곳은 비에 씻겨내려가 완전히 사라진 마을위에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아무 흔적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 길의 가게에서 성경책과 성화를 팔았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에벤에셀, 우리 집을 돕는 돌. 엄마의 가게는 하나데코, 그림의 집, 에벤에셀, 임마누엘 따위로 바뀌어왔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성경의 단어가 들먹여졌으나 축복 따위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다란 작업대가 있고 엄마는 그 작업대에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중간엔 난로가 있었는데 사시사철 파라핀을 녹여 양초를 만들었다. 베니어판이 벽면에 기대어 서 있었다. 포르말린과 파라핀을 넘어 작은 쪽문을 열면 나와 엄마, 동생과 새아빠가 사는 두 칸짜리 방이 나왔다. 화장실은 이 가게를 만들 때 새아빠가 변기를 사다가 붙여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겐 꽤 넓은 곳이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밝지 않았다. 엄마는 매듭과 양초 액자를 만들어 팔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와 성경책과 성화를 사가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카라얀의 사진이었다.

작은 방은 벽지를 사지 못해 가게에 남아 도는 포장지로 벽을 바르고 늘 준비되어 있는 베니어판으로 방을 나누어 두 칸을 만들었다. 새아빠는 비디오라는 기계를 가져와 무협드라마를 빌려다 봤다. 어떤 것은 28편까지 이어져 있어 한참을 봐야 했는데 나도 옆에 앉아 오랫동안 그 드라마를 신나게 봤다. 가게를 나서면 차 두 대도 지나갈 수 있는 너른 길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길은 꽤 넓어서 골목이라 하기 어려우나 그 길을 중심으로 몇 집들이 이웃하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치면 엄연히 골목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우리 집과 마주보는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었고, 여인숙이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엔 하늘색 대문이 있는 집이 있었다. 하늘색 대문집의 안은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한국아줌마와 미국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미국아저씨는 군인인지 군에 소속된 직업인인지 알 수 없다. 군복을 입었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나이는 엄마보다 많았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엄마와 그 집 여자였다. 아저씨는 내가 소풍을 가기 전 날 프링글러스를 사다주기도 했고 간혹 초콜릿이나 레이션 같은 것도 가져다줬다. 키가 커다란 미국아저씨가 하늘색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같이 살던 여자도 환하게 웃던 모습이 남았다.

 

하늘색 대문 옆 집이 우리집과 마주보던 집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여인숙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던 그 곳은 마당이 넓고 미음자로 방이 이어진 곳이었다. 여인숙의 주인은 혼자 사는 여자였는데 얼굴이 작고 검었으며 말수가 적었다. 여인숙의 문은 앞 문은 늘 열려 있고 뒷문도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그 여인숙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 골목에서 나는 아이들과 주로 딱지치기, 구슬치기 뿐 아니라 담방구나 잡기 놀이도 하고 부자집 딸래미 상미가 타지 않는 자전거를 내 맘대로 끌어다가 보조바퀴가 박살이 날 때까지 타기도 했다.

어느 어스름에 아이들과 마구 뛰어다니며 놀다가 얼떨결에 그 여인숙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줌마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아줌마의 옆에 얼굴이 검고 긴 남자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인숙의 주인여자에게 아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내가 그 곳을 들락거리든 말든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지청구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바보 같다고 여긴 것도 아니다. 주인여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공기가 그 여자의 얼굴에 가득했다. 늘 손에 부엌칼을 들고 있을 것만 같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영매같기도 했다. 검고 작은 얼굴과 눈에 띄지 않는 이목구비, 지독하게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원래는 무당이었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럴만도 했고 그래 보였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 그 골목을 누비던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입이 찢어진 홍콩할매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여인숙의 문턱을 넘은 건 절대 아니다.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몸을 숨길 곳을 찾다가 늘 문이 열려 있는 여인숙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것뿐이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여자는 커다란 칼을 들고 뭔가를 다듬고 있었다. 그게 조막만한 마늘인지, 커다란 생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아주 생생하게 들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내가 무척 가까이에 접근했음에도 그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하게 남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날, 초등학교 3학년이고 학교가 파하면 매일 매일 엄마에게 다른 이유로 밥 먹는 것과 별 다를 일 없는 매타작을 하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와 내내 뛰어다니고 놀던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또렷했던 이야기는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고스란히 들은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시무룩해 진 채 아이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놀이의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시원스럽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봤더라면 기분이 어땠을까.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는 늙은 남자는 아가씨값을 깍아달라 하고 식칼을 들고 먹거리를 다듬던 여자는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을 면치 못해 자기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의 집 일을 다녔다. 동네 다른 집 일을 봐주느라 자기 아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챙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는 여자가 일 봐주는 집 아이가 울어 업고 달래느라 집 밖으로 나왔는데 자기 아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 아이가 아장아장 노는 모습을 보며 울어 제끼는 남의 집 아이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멀리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여자의 아이를 치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뇌가 터져 죽었다. 그게 그 여인숙집 주인여자다.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독한 년, 얼마나 독할까. 그래서 엄마는 모든 일을 포기하고 가게를 하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도 포기하고 학위도 포기하고, 나는 박사도 교수도 화가도 될 수 있었는데 오로지 너희 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지를 먹으며 액자를 짜고 있따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감사했다.

 

이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살던 동네는 미아리텍사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길음동 현대아파트였다.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학교를 가면 텍사스는 마지막 손님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빠져나온 손님들은 길음역 전철역 앞에서 자신의 토사물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하루 장사가 끝난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유달리 다리에 상처가 많았다. 멍들었거나 모기에 물렸거나 마른 다리 곳곳이 성한 곳이 없이 텍사스에서 빠져나와 나와 같은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뎅을 사먹었고 나는 트윅스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이어폰을 절대 빼지 않았지만 때로 소리를 죽여 놓고 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으려 했다. 아이들은 그저 편의점에서 이루어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텍사스를 가로질러 왔다. 사실 텍사스의 입구를 지나지 않으면 집으로 갈 다른 길은 너무나 멀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 끝에 여러 사람이 모여 낄낄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쥐를 한 마리 잡아 꼬리를 자르네 머리를 자르네 하며 히히덕대고 있었다. 얼굴이 검고 마른 남자가 담배를 물고 식칼을 들고 있었다. 역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길을 지나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자주 만났다.

호프집에서 일하다가 단란주점으로 옮겨간 어떤 녀석이 자기 주방장이 어떤 사람이냐를 이야기하며 주방에 들어온 쥐를 토막 내어 음식에 넣는 것을 봤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텍사스에서 식칼을 들고 있던 남자와 일면식도 없는 주방장이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왜 그들은 한 팀이었다. 왜 그들은 공통적으로 쥐를 토막내고 싶어하는지 무서우면서도 궁금해졌다. 쥐를 토막내어 거대한 냄비에 넣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돗가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여인숙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도 떠올랐다. 여인숙 여자도 생쥐를 발견하면 꼬리를 잘라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곤 했을까.

 

며칠 전 천호동 사창가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라디오 프로그램 앵커가 물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뜨거운 여름 번쩍 하고 빛나던 텍사스 골목의 식칼과 그들이 모여서 히히덕대던 웃음소리와 활기찬 아침의 굿모닝팝스 오성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한데 엉겨 나에게로 쏟아졌다.

 

2014. 7. 22.

이 글을 쓰게 한 기사

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sval=&anum=56267&vnum=4417&bgrp=6&page=&bcd=007C059C&pgm=1378&mcd=BOARD1

아이들은 죄가 없다.

1.

남편이 틀어놓은 뉴스와이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자막속보 위로 신나는 여름방학이라는 뉴스가 흐른다.
초등학교 1학년들의 첫 방학을 소개하는데 교복을 입은 사립초등학교에.. 방학동안 기대되는 일을 발표하는 아이가 8월에 싸이판 가는데 바다에서 고기 잡을 일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낯설다.
아이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2.

동생학원에 1학년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등록과정부터 부모가 결제는 나중에 할테니 아이 먼저 보내겠다고 하여 동생이 당황했다.
아이가 학원에 와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남자친구가 몇 명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단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왔는데 눈물자국이 있는 상태로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도 엄마가 눈물도 닦아주지 않고 데려다주고 갔단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엄마 아빠는 매일 “야근” 하느라 늦게 오고 언니가 둘 있는데 언니들은 심부름만 시키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저는 혼자예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3.

자율적으로 혼자 알아서 하게 하는 범위가 어디냐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다 부러진 연필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보거나 알림장 한 번 들춰보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거나 아이 혼자 바닥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 그렇다.

4.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 모두 다른 가정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 어느 아이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내 새끼도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새끼 챙기는 것도 우습지만 내 새끼만 챙기겠다고 사는 짓은 더 우스운 일이니.

5.
사무실 건물에 같이 입주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가끔 물품을 전달한다. 지난 달에는 정기후원도 약속했다. 작아진 신발이나 우리 아이의 우산을 사다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더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어릴 때 저런 센터가 있었으면 내 삶의 트라우마도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매일 매일이 번뇌다.

누구와 일할 것인가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듭니다. 악의적으로 만든 제도도 있었지만 현대사회는 대부분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들이 많습니다.
그 제도가 현장으로 갔을 때 많은 것들이 변질됩니다. 제도의 의의를 고민하고 늘 생각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습니다.

제도는 현장에서 누가 실행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사업이 되기도 하고 운동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지속성의 승패가 갈립니다.

단발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밀려나는 게 순리입니다. 새로운 사업들은 사회의 요구에 발맞춰 순식간에 등장하고 사그라집니다.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모든 경쟁에서 이기는 완벽한 제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 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엊그제 모 단체의 25주년사 편집회의를 마치고 난 다음의 소회. 페이스북친구분의 고민을 듣고 답글을 적다가 좀 길게 정리해 봄.

검은 숲

 
 
 
탱크 빨리 빨리!
아이가 소리를 치며 달렸다. 성문은 험하게 부서져 있었다. 아이의 손엔 제 몸집의 절반만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숨을 고르며 규칙적으로 뛰었다. 전속력으로 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숨이 거칠지 않았다. 오랫동안 훈련한 것이 한 눈에 드러났다. 아이의 옆에는 다리가 짧은 개 한 마리가 혀를 쭉 빼고 달리고 있었다. 도끼를 쥔 아이의 손에 개의 목줄도 같이 엮여 있었다. 손목에 목줄의 손잡이를 잡고 쇠줄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다리가 짧은 개도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정확하게 한 팀이었다.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을. 시커멓게 색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문이었으나 워낙 튼튼한 나무로 두껍게 몇 겹으로 짜여 어지간한 세월엔 주저앉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거대한 성문을 망가뜨렸다.
 성을 둘러싼 해자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의 뒤쪽에서 우루루루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무엇이 덮치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성 안에서 불타는 용암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견고하고 오래된 성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열 두 가지도 넘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이 해자를 흐르는 용암이었다. 용암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거울을 가지고 있는 그 성주만이 알고 있다고들 했다. 성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사람들은 성주를 그렇게 길게 불렀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단 한 글자도 틀려선 안됬다. 불경스러운 자들은 모조리 끌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때 하나씩 마을로 돌아갔다. 성주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지 못한 자들은 마을로 돌아올 때 엉덩이에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났다. 가까운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아이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문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드디어, 이윽고, 어째서, 왜, 그리하여, 하물며, 드물게, 불구하고, 난데없이, 도대체. 그렇다 했다. 도대체, 라는 말도 있다 했다. 사람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한 가지의 단어들을 엉덩이에 새기고 나타난다 했다. 성주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고 거대한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엉덩이만 벗겨놓고 문신을 새긴다 했다. 그 방을 지키는 자는 턱이 날카롭고 키가 큰 자인데 얼굴은 가렸으나 곱슬거리는 머리칼은 금색으로 반짝인다 했다. 사람들은 해자를 휘감는 용암을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금빛 곱슬머리 남자가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이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용암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성의 꼭대기에 금빛 곱슬머리가 반짝거렸다. 하늘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 머리칼만 빛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등 뒤에 달린 화살통에서 촉을 꺼내 남자를 향해 겨냥했다. 혀를 빼고 서 있던 개는 아이의 발 옆에 적당하게 붙어 있었다. 금빛 곱슬머리를 향해 화살이 날았다. 용암의 부글거리는 소리에 바람을 가르는 활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지만. 팔을 내린 순간 곱슬머리는 사라졌다. 아이는 뒤로 물러나 불타오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성 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아이는 소녀가 매달려 있던 창을 찾았다. 낮에는 창문에 매달려 하루 종일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남은 소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성 안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아이는 등을 돌렸다. 멀리 검은 숲으로 향했다. 성만 아니면 된다. 성만 벗어나면 가시덩굴도 상관없었다. 검은 숲의 앞에 커다란 남자가 웃통을 벗고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남자의 옆엔 수레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수레 위엔 약간의 장작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의 수레 안에서 갑자기 작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다가 수레 안의 여자아이에게 눈을 크게 떴다. 여자아이는 다시 수레 안으로 숨었다. 까만머리. 아이는 창문에 매달리는 소녀가 생각났다. 불타는 강이 잠잠해지고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부수고 나왔는데 성문은 대체 언제 다시 생긴걸까.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깨고 무엇과 싸우고 이 자리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성을 바라보던 아이는 개의 목줄을 굳게 잡았다. 혀를 빼고 앉아 있던 다리가 짧은 개는 아이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장작을 패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 안엔 무엇이 있죠?”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며 대답했다.
“그저 숲일 뿐이야.”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없다고 대답해주지.”
“무엇이 없습니까?”
아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1년동안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알 수 없을 남자였다.
“햇빛이 없다. 그래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 그리고, 저 멀리.” 남자의 도끼가 성을 가리켰다.
“뱀으로 된 백 가닥의 머리카락과 일곱 개의 머리,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저 성의 성주가 없다.”
“그럼 무엇이 있습니까?”
남자는 도끼의 날을 바닥을 보게 하여 자루를 짚고 삐딱하게 섰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도끼를 다시 들어 장작을 팰 준비를 했다.
“이 장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는 흐엇! 소리를 내며 장작을 팼다. 수레 속의 숨은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며 아이를 보았다.
손에 든 도끼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나는 이 도끼가 필요없습니다.”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도끼를 내려놓고 개의 목줄을 굳세게 잡았다.
“가자 탱크.”
검은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햇빛도, 그림자도 정녕 없었다. 아이가 가는 숲길에 쉬고 있던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2014. 7. 16.
이하나 

절반의 부모 절반의 아이

부모님의 생애사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강좌신청을 했다. 8주간의 강좌는 생애사쓰기에 대해 소논문을 작성하신 수리장애인복지관 이형진관장님이 특강으로 마무리했다. 엄마를 이야기하며 눈물짓는 선한 사람과, 아버지의 처절했던 삶의 투쟁에 대해 울먹이는 사람이 있다. 나에겐 둘 다 생경스러운 풍경이다. 몇 년전이었다면 배알이 뒤틀리거나 기분이 착찹했을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태초부터 없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몇 개월전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은 그 날 급하게 직원회식을 해야 했고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작은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큰 아이도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수원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 해가 지고 있었다. 비참했다. 가슴에 불이 오르는데 태풍같은 파도가 넘실거렸다. 한 방에 쓸려나갈 듯, 운전대를 쥐고 있는 날이면 어디든 들이받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 저녁 노을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1학년, 자퇴서를 쓰고 돌아오던 날 마을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화창했다. 내 세상은 무너지는데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아이를 낳고 학교에 가고 돈을 벌고 밥을 먹었다. 그 날 나는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태초부터 그 딴 것은 없었다고 말할 것이었으면 바라지도 말아야 옳지 않은가. 세상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듯 내 마음도 부조리했다.

더 유치할 때는 차라리 고아인 채로 보육원에서 자랐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 있다. 더 많은 동정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정은 때로 돈도 되고 후원도 되고 사람이 되어 나를 밀어줬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큰아버지의 손을 잡을 때 세상의 모든 고아들에게 죄스러웠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니다 라는 명제를 머릿속에 깊이 박았다.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서야 세상의 모든 부모가 “부모다워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그저 나는 그런 삶을 받았을 뿐이다. 엄마가 만든 성에 갇혀 아무 것도 저항하지 않으며 산다해도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성문을 깨부수고 나온 것은 나였다. 성문을 모두 망가뜨려놓고 왜 저 성이 저 따위로 생겨먹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염병을 던지는 꼴이었다. 아버지는 성밖 숲으로 도망쳤다. 화가 나서 도망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꼴뵈기 싫어 그림자가 없는 어둠으로 숨었다. 나중엔 해가 중천에 떠서 그림자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짧아지는 매일 매일 화창한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계속 그림자를 보고 살았다. 성 안에서 쪼그려앉아 그림만 그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살았다.

성에서 나왔으니 됐어.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의 생애사를 쓰겠다는 사람들과 앉아 밀면을 먹었다. 부산과 대구의 음식이야기를 하다가 이북음식 이야기로 옮겨갔다. 엄마가 담궜던 동태가 들은 김장김치와 손바닥만한 왕만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엄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하루 종일 마음에 남는다.

 

오후엔 어린아이를 같이 돌보고 키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엄마이고 그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가 있었다. 아이교육에 대해 열을 내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적당히 적응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길 바랐다. 어미가 일일이 개입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내가 원하는 교육과 아이가 원하는 교육이 동일할거라고 자만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기보다 훨씬 강인하고 어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다. 아이들이 겪는 모든 고통을 어른들에게 던져준다면 그 어떤 어른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진 생명력을 모조리 살아가는데 집중하여 쓴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지나치게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않아 어른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닌다.

남들의 교육관을 듣는 동안 내 아이는 집에서 좋게 말해 자유롭게 나쁘게 말해 방치된 채 동네 형들과 게임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 것은 몇 시간전부터이다. 전화가 연속해서 오지 않는 것은 뭔가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뜻이며, 전화를 계속 걸어대는 것은 아무 자극이 없는 정적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는 스스로 저녁까지 해결했고 나가서 뛰어놀았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 바람은 선선하여 기분이 좋았고 우리 앞 동에서는 누군가 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첼로 소리를 들은 지 보름이 넘었는데 매일 비슷한 시간에 첼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순간에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이 도보행진을 하며 안양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으나 내 눈앞에 알짱대는 내 아이를 더 먼저 돌봐야 했다.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죽은 친구의 부모들을 만나러 도시를 가로질러 행군을 한다.

 

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하룻 밤 땀에 삭아질 수 있을까. 평생을 지배할 아이들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어서 두려움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만난다 한 들 내가 안아 줄 수나 있을까. 내가 가진 용기는 먼발치에서 보고 눈물 흘리다 돌아오는 게 전부일거다. 아이들이 걷는 모습을 인터넷 생중계로 본다.

어쩌다 세상은 이렇게 부모와 아이들로만 이루어졌나.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 하는 부모들과 어쩔 수 없었다고 깔깔대며 웃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도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매우 특별한 사람이 나를 낳은 것 뿐이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2014. 7. 16.

고양이 털끝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이따 회의에 오시죠? 라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느릿한 억양으로 말하는 이 남자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이었다. 매우 지적으로 보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지적이라기 보다 의뭉스럽다는 말이 걸맞은 사람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길게 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굳이 길게 보지 않아도 당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소집해 달라고 한 회의였고 그들은 그 책임을 다 했지만 책임이 분산되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이 누락되는 법이다. 누군가 연락을 했겠지. 그 사람이 연락을 했겠지, 저 사람이 통화했겠지.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나. 통화했다면서 무슨 말을 한거야. 사람들의 책임은 핑퐁처럼 오고 간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아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차장에 놓인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선생님은 옆에 탔다. 교실에서 나를 가르치지 않아도 나에게 스승이면 그걸로 선생이 된다.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속도계 앞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내 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어느 날부터 글자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다. 잘 안된다는 것이다. 찍고자 하는 자음의 좌측 상단 30도 방향에서 입력을 해야 하는데 맨 왼쪽에 쏠려 있는 자음은 좌측 상단이 없다. 그게 네비게이션의 끝이니까. 휴대폰을 속도계에 올려놓으면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내가 하루를 사는 일의 절반이다.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읽고 쓴다. 저열하고 가볍고 속된 글이나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즐거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관계의 단절, 내가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앉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을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 관계의 허기는 마치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옥의 병에 걸린 듯 하다. 무엇을 내어주지 않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단절되고 분절되는가. 삶은 뚝뚝 끊긴 채 길에 떨어졌다.

 

한 마리, 두 마리, 어쩌면 반마리, 또 다시 한 마리, 이번에도 반 마리.

목적지까지 왕복으로 70km, 오고가며 길바닥에 죽어서 터져 있던 짐승들이 일곱 마리가 넘는다. 가는 길에 너댓마리를 봤고 오는 글에 두 세 마리를 봤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반마리처럼 보였다. 붉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체를 보고도 나는 달려야 했다. 그 길을 지나치던 최초의 충돌자도 살아 있는 짐승과 눈을 마주쳐도 달려야 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과연 변명이 되는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고. 눈을 번쩍이는 작은 짐승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내 뒤에 오는 사람의 위험을 감수할 의무가 나에겐 없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이며 제한 속도는 시간당 70km 이거나 110km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속도위반 단속구간이 아닌 곳에서 많은 차들이 120km를 넘게 가속페달을 밟곤 한다.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따위는 고려할 바가 아니다. 차들은 빨리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침없고 싶어서 달린다. 앞 서 가는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운전을 할 수 없다. 앞서 가는 차와 내 곁을 치고 들어오는 차는 그저 기계다. 사람이 운전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으면 그만이다. 길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어디 짐승뿐인가. 사람도 바다에 산 채로 수장시키는 마당에, 고양이따위에게 줄 동정심이나 남아있긴 한걸까.

펄덕이며 숨쉬던 생명이 무력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고자 한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낯선 풀도 독을 뿜어내듯 움직이는 동물도 모두 독을 품고 산다. 하악. 하고 이빨을 드러내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하악, 하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짐승만의 일은 아니다.

나와 감정적으로 엮일 일이 없는데 한 남자가 그 오후에 이를 드러냈다.

뭐하는 짓인가.

나는 가만히 서서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그 남자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었으나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의 몸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죽여버릴까.

내가 감히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있나. 할 수 없어도 문장을 뱉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내가 설령 누군가에게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과연 그는 가만히 있기나 했나. 폭력. 죽여버릴까에서 비롯되는 폭력, 나에게 이를 드러내는 자의 이를 몽창 뽑아버리고 싶다는 건 분노의 감정을 나에게 전이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불쾌하다는 이유로. 너의 분노가 나의 감정에, 나의 삶에 개입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이 번잡함.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매우 복잡한 구조.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분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를 존중해 달라고 하는 욕구는 대체 왜 일어나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해주길 바랐다. 존중이라는 것은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말을 하며 때로 두 손을 모으기도 하고 내가 털끝만큼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히 여길 줄 알길 바랐다. 왜 그는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나. 나의 삶의 일정부분을 그에게 소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길 바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소비되는 나의 감정과 시간은 원래 내 것이므로. 내 것을 너에게 딱 고양이 털끝만큼 내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워하라. 당신은 나의 수명을 딱, 고양이 털끝만큼 가져갔으므로.

 

내가 내어준 고양이 털끝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가져가고 그는 나에게 이를 드러내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분노를 전이시켰다. 분노를 고스란히 떠안고 삭히고 원인을 찾는 시간을 그가 강요하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나의 수명의 일부를 그가 가져갔다. 아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었나. 그가 나에게 강요한 분노의 용량이 고양이 털끝을 넘어 개똥만한 것이었는데 그 개똥만한 크기의 예측불가로 인해 나는 소똥만한 수명을 단축시켰다.

 

죽어버린 짐승의 사체를 고스란히 목도하며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타인의 분노를 떠안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길에 깔려 죽은 고양이만큼 당신은 숭고하게 살았는가 묻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내내 분노를 전가했다는 이유로 씩씩대고 내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던 나는, 사람들을 피해 냇가로 도망치는 작은 짐승만큼 충실하게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삶을 보존하는 방법에 집중하기에 우리는 너무 헐렁하게 지낸다. 눈 감고 외면하면, 그만인 것들이 많다는 건 내 눈이 그만큼 헛 것이라는 얘기일까.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 10. 남욱

휘경역에서 탄 지하철은 꿉꿉한 냄새가 났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욱 불쾌하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겠다. 마음따위 살필 여력은 없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것이고 이 감정을 폭발시킬 어떤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게 하루를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 저녁은 술을 마실 것이다. 그 후엔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야지. 내일은 어차피 아르바이트 비번이기도 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차려주는 라면을 먹고 나서 도서관에 나와야겠다. 인생은 정해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목적한 대로 온 적 없다. 목적이라도 세우지 않으면 삶은 완벽하게 뒤틀려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을리 사는 날도 있지만 줄곧 게을리 산 것도 아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 아무 것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스쳐가면 남욱은 끝없이 불안해졌다.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강위를 달리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꺼지고 사람들이 죽었듯 남욱의 하루도 그렇게 꺼져버릴 것 같았다.
여름, 이 방학이 지나기 전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남욱은 빈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번 달 월급을 계산하다가 잠이 들었다.
불안하다던 흔들리는 기차는 때론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듯 사람들을 흔들흔들 재웠다. 누구나 그렇듯이 남욱도 갈아타야 할 역에서 눈을 뜨고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붉은 색 라인과 파란색 라인이 만나는 곳이다. 요란스러운 소음이 잠이 덜 깬 남욱을 휘감았다. 혼자만 똑바로 서 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스물 일곱.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은 지 몇 달이 되었다. 누나들은 발길을 끊었고,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한 기업들이 늘어갔다. 토익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보다 뛰어났으나 어차피 그래봤자 서울대가 아니라는 것. 남욱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몰려오는 적군처럼 힘차게 걸었다. 2대 독자 누나 여섯, 장가가기 글렀다는 주변의 비아냥도 호기롭게 웃어넘기던 건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과거같았다. 스물 일곱이 아니라 마흔 일곱쯤 된 건 아닐까. 남욱은 번잡한 플랫폼에서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무릎을 약간 굽히고 두 팔로 허벅지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다시 일어섰다.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 오늘따라 옥스퍼드 사전을 가져온 게 후회되었다. 역은 길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파란색의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다시 플랫폼에 섰다. 해가 지고 있을꺼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여러분은 모두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한 발 물러나라, 한 발도 물러서기 싫었다. 남욱의 얼굴 앞으로 열차가 들이닥쳤다. 지하를 뚫고 달려온 열차의 긴 호흡이 거센 바람이 되어 남욱을 밀어냈다. 눈을 찌푸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니 발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럼 애초에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남욱은 이 나라의 모든 일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열차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남욱이 갑자기 열차의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쳤다.
노트북.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붉은 라인의 열차, 앉아서 자던 그 자리 머리 위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다. 친구에게 일주일 빌린 것이었다. 아 노트북. 남욱은 문 앞의 기둥에 마른 몸을 지탱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역무실로 뛰어갔다. 노트북의 브랜드를 말하고 노트북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 누가 그 노트북을 돌려줄 것인가. 땅속에 놓고 내렸으니 이미 지하의 것이다. 남욱은 역무원이 내어주는 서식에 분실물 상태를 꼼꼼히 적었다. 015로 시작되는 번호를 적었다. 괄호안에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연락이 안될 수 있음’ 이라고 적었다.
역무원은 빙긋 웃으며 찾을 수 있을거라고 남욱을 위로했다. 승강장으로 돌아가 다시 파란 열차를 타고 거대한 빌딩 아래 지하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 버스를 탔다.

저녁내내 지하철공사에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노트북에는 소유자의 연락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남욱이 아르바이트 하는 햄버거집 주방 끝에 서서 멍하니 노트북 생각을 하고 있자 오늘 그 집에서 자려고 했던 여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남욱은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친구의 것이고, 일주일을 빌렸으며, 어느 역에서 내릴 때 머리 위에 두고 내렸으며 분실물 신고를 하고 왔으니 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트북이 얼마나 해?” 여자가 되물었다.
남욱은 여자를 봤다.
“비싸.”

짧은 치마를 입고 소스통을 팔에 끼고 홀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닦고 재떨이를 비우던 여자를 가만히 봤다. 남욱은 여자가 모아둔 돈이 있을까 생각했다. 여자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일까 생각했다. 여자가 혼자 사는 방도 지하에 있었다. 월세가 30만원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친구의 노트북은 여태 이 집에서 고기를 구운 석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갈 판이었다. 여자는 노트북의 가격이 얼마쯤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을 같이 밤새 술을 마시고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왔다. 남욱은 여자가 노트북을 어디서 파는 지나 알까 궁금해졌다. 가만히 여자를 보고 섰는 남욱의 시선을 알아채고 여자가 남욱앞에 서서 턱을 괴었다. 주방은 조금 높게 돋군 자리에 있어 남욱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남욱은 여자의 머리통을 한 번 쓰다듬었다.
“찾을 수 있겠지?” 놀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남욱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욱은 한숨을 참으며 입꼬리를 길게 늘려 웃어보였다.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욱은 몇 날밤이나 탐닉했던 여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 9. 마후라아줌마

그 길의 1층은 대부분 옷가게들이었다. 서울시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을 팔았다. 유난히 큰 사이즈의 옷이나 큰 신발, 맞춤 와이셔츠, 용과 태극기가 그려진 하얀 면티부터 요란한 금박무늬의 가운들, 화려하지만 전혀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지 않은 드레스, 브랜드이긴 한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 앉은 자리에서 세월을 울컥울컥 집어삼킨 듯한 소품을 파는 가게, 도장을 파는 가게,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귀금속, 여행용 트렁크, 시장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골목, 수제화를 파는 집, 목적을 가진 손님들이 드나들만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은 가게인데 여기서는 줄줄이 비슷한 가게들이 가득했다. 셔터를 모두 내린 길 역시 범상치 않았다. 4차선 도로는 유독 좁게 느껴졌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 노변에 주차한 차들 사이로 인적도 끊겼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주말을 제외하고는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은색의 셔터만 이어진 길거리는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기차가 서 있는 듯 했다. 은하철도 999가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그 정류장은 바로 여기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고 누군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업을 마무리 하고, 때로 어떤 사람은 몇 시간동안 천국에 있고 싶다며 해피스모크를 찾는 거리,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벌건 대낮에 속옷을 벗어 흔드는 여자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거리였다. 무리지어 걷는 흑인들은 이 곳 먼 타향에서 괜한 눈치를 보고 이 도시는 언제나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며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라는 반도에서 온 사내들과 80년대 달력에서 튀어나온 듯, 아니면 저 먼 미래에서 온 듯, 시대와 역사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이 거리는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다. 철모를 쓰고 긴 언덕으로 올라가는 헌병들과 그들의 군화소리를 들으며 긴장하는 어린 사내들과 몇 십년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늙어버린 영감과 몇 십년간 다른 사람의 목둘레를 재며 늙어가는 초로의 사내도 이 거리의 주인은 아니었다. 모두가 타인이고 모두가 이방인인 이 거리에 단 한 사람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밤 10시 59분에 정확하게 이 길을 훑듯이 당당하고 힘차게 지나가는 한 여자였다.

마후라 아줌마.

사람들은 그니를 마후라 아줌마라고 불렀다. 마후라의 정확한 표준어가 스카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스카프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왠지 한국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외국인들이야 그니를 미스스카프라고 불렀지만, 이 동네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이를 마후라아줌마라고 불렀다. 오래전엔 “빨간 마후라”라는 뻔뻔한 제목의 노래도 있지 않았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적절치 못한 단어라 해도 상관치 않고 너도 나도 애국심에 불타 불러제끼던 노래 아니었나.

마후라 아줌마는 오늘도 정확히 10시 59분에 햄버거집 앞을 지나갔다. 그이가 그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에 올린 것은 그 시간에 하루종일 쏟아진 쓰레기를 치우던 주방보조 알바생들이었다. 또래의 사내 서너명이 같이 쓰레기를 담다보면 바퀴벌레 십 수마리가 한꺼번에 출몰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두운 계단에 서서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커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특징적 장면들을 잡아내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중 서울의 어느 대학에 다니는 안경을 쓴 청년이 도드라졌다. 마후라 아줌마가 그 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 청년은 시계를 확인했다. 일주일쯤 지나 마후라 아줌마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정확히 10시 57분쯤 밖에 나가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청년은 흥미진진한 보물지도를 발견한 소년처럼 매니저에게 마후라 아줌마를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매니저는 이미 몇 년 된 사람이라고 뚱하게 대답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청년이 뻘쭘해질까 걱정되었는지 매니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색이더냐고 물었다. 청년은 여태 관찰한 바를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마후라 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언제나 한가지 색깔로 치장을 했다. 빨간 블라우스에 빨간치마, 빨간 마후라와 빨간 스타킹, 그리고 빨간 구두. 어느 날은 보라색 자켓에 보라색치마, 보라색 스타킹에 보라색 구두, 노란색이 전부인 날은 모자를 쓰기도 했고 초록색으로 온통 감싸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옷색깔과 같은 색깔의 마후라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갔다. 머리는 붉은 자주색같아 보였는데 어두침침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붉거나 주홍색계열임은 틀림없었다. 어깨를 넘는 길이에 앞머리를 잔뜩 부풀려 올렸고 머리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몸을 감싸고 있는 색깔만 바뀔 뿐이었다.

청년은 처음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달넘게 마후라아줌마를 보고 있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그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는 듯 했다. 마후라아줌마를 다른 곳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 길가에서 그 시간에만 발견되었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긴 사람도, 20년을 넘긴 사람도 그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청년이 이런 저런 사람에게 그이에 대해 물으면 모두들
“아 마후라아줌마?” 라고 반문할 뿐 아무도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곧 청년도 그리 되었다. 아르바이트 석달차, 오늘도 마후라아줌마가 10시 59분에 지나갔다. 마후라아줌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버스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사람. 이 정류장에 매일 지나가는 버스보다도 사람들은 그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버스가 오는 것처럼, 청년에게 마후라 아줌마의 행진은 그저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2014년 7월 11일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홀이 시끄러웠다. 웨이츄리스들은 군데 군데 흩어져서 인상을 구기고 한 테이블을 쏘아보고 있었다. 손님들도 더러 그 테이블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의자에 깊이 앉아 그 테이블의 남자들을 빤히 보는 손님도 있었다. 시선이 집중된 테이블을 제외한 곳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이었다. 웨이츄리스들이 그들이 즐겨먹는 메뉴가 뭔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는 팁이 얼마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 치킨버거에 콜라를 먹는 아저씨은 언제나 2000원, 스테이크에 레드와인을 시키는 남자 언제나 3000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이 가게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외국인들이었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 동네에는 미국의 그 어느 식당보다도 인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옥희는 가게에 들어오면서부터 직원들의 불쾌한 표정을 보았다. 동시에 소란스러운 취객의 소리가 들렸다. 옥희의 긴 치마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주방에 서서 냅킨을 뽑아 코를 닦으면서 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옥희의 시선도 그 테이블에 가서 멈췄다.

네 남자가 앉아 있었고 가운데는 잘 나가지 않는 3000cc짜리 맥주피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흥건히 취해 있었고 이미 맥주도 바닥에 꽤 쏟은 상태였다. 옥희가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행주 두 개를 들고 맥주잔의 자리를 옮겨가며 테이블을 닦았다.

“저 바닥에 맥주 흘리셨는데요. 좀 닦아도 될까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키가 큰 아이는 짝다리로 서서 남자 넷을 내려다보았다.
“어 그래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술 취한 남자 하나는 안경이 코끝까지 내려온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테이블을 싹 닦아내는데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웨이츄리스의 엉덩이를 만졌다. 툭툭.
“뭐하시는 겁니까?” 웨이츄리스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뭐. 나는 딸 같아서 고맙다고..” 남자가 헤벌쭉, 더럽게 웃었다.
“손님은 딸한테 그러십니까?” 억센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웨이츄리스는 설거지를 하는 뒷주방에 가서 대걸레를 가지고 나와 바닥을 닦았다. 대걸레를 미는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아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까칠하게!”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님, 여기는 식당입니다. 밥 먹는 데예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웨이츄리스는 딱딱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 씨발.. 양놈들만 좋다 이거지? 조선놈은 싫으냐? 줘도 싫으냐?” 남자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웨이츄리스가 대걸레를 바닥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섰다. 남자를 노려봤다.

“니가 뭔데? 이..양공주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남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무실 문앞에 남편과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옥희가 나왔다. 남편도 나와 옥희의 뒤에 섰다.

“여보세요. 손님.” 남자들이 작은 옥희를 쳐다봤다.
“나가세요.” 남자들은 미동도 없이 옥희의 작은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나가시라고요. 여기는 이렇게 술 취해서 소리지르고 우리 아가씨 만지고 시비걸고 그러는데 아니예요. 나가시라고요.”
남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 다리가 부딪치면서 맥주잔이 엎어졌고 맥주가 질질 흘러 남자의 바지에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 니가 뭔데? 너도 양색시야?”

옥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안경이 코끝까지 걸린 남자가 일어난 순간 옥희가 더 작아졌다.
“나가 이 개새끼야. 어디서 양색시 운운하고 지랄이야? 나가 이새끼야! 양색시? 뭐? 양공주? 왜 양갈보라고 하지? 니들은 어디서 뭐하다 온 새끼들이야? 이러니까 엽전소리를 듣는거야! 나가 이 새끼들아! 이 더러운 새끼들 나가!”
옥희가 우렁차지 않되 명징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뒤에 서 있던 남편이 옥희 앞으로 나서서 한 남자를 끌어냈다. 한 남자가 커다란 남편의 손에 허리춤을 잡혀 거의 들리듯이 문쪽으로 끌려나가자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들도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밝은 홀과 구분된 앞쪽 홀로 남자들이 어어어 하며 끌려 나갔다.

옥희는 남편이 옥죄고 있는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니들은 뭐 했는데? 우리가 여기서 술 팔고 밥 파는 사이 니들은 뭐 했는데? 내가 여기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담배꽁초 주으면서 딸라 번 년이야. 그러는 사이 니들은 뭐했는데? 흥청망청 다 처먹고 니들 때매 IMF 온 거 아냐? 니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술주정을 하고 개지랄들이야 지랄들이! 야! 여기는 원래 니들같은 애들 안 받아! 여기가 술집이야? 니들 조선놈들 떼로 모여서 기집질이나 하는 그런데나 가! 어디 남의 점잖은 밥집에 와서 생지랄들을 하고 술처먹고 염병을 떨어! 어디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이! 니들 때매 국가가 암담해 이 개새끼들아!”

남편이 한 남자를 질질 끌고 지하계단을 올라 1층으로 끌어올려 밖으로 던졌다. 나머지 남자 아르바이트생들도 다른 남자들을 하나씩 붙잡고 위로 올렸다.
옥희는 남편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돌아오자 허리에 손을 얹고 분을 삭이며 서 있었다.

“언니 물 좀 줘라.”옥희는 캐셔박스 앞에 서 있던 지원에게 말했다.
지원이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옥희는 얌전한 유리컵에 담긴 생수를 마시다 말고 다시 말했다.

“지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IMF나 만든 새끼들이. 하여튼 조선것들은 안돼. 저래서 안돼. 얘, 앞으로 한국손님 가려 받아.”
지원이 흥겹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옥희가 다시 주방쪽으로 걸아갔다. 치마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났다.

#한사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