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시민교육실천가 아카데미 멘토 활동

2021년 경기도교육청의 시민교육 실천가 아카데미에 문화공동체 히응 대표자가 멘토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정의>분야를 자율연구하는 교사와 교육공무원 4개 팀이 열심히 주제설정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연구하며 더 나은 교육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노력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사회와 학교가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망하긴 좀 아깝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올 12월에 마무리될 연수에서 참여 교사들이 조금이나마 행복한 교육을 추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꿈의학교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 토론회 후기

<스크롤의 압박>

1.
꿈의학교는 2015년부터 시행된 경기도교육청의 주력사업으로, 이제정교육감이 시작한 사업이다. 학교안과 밖을 모두 아울러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학교를 꾸려간다는 컨셉으로 현재 세 종류의 꿈의학교를 운영지원하고 있다.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 학교는 – 공모사업주체(성인으로 구성된 개인이나 단체)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1개 학기 혹은 1년을 운영하며 예산지원은 최대 4천만원까지. 고르고 다양한 배분을 위해 대체적으로 1천만원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확대하는 추세다. 비영리단체를 우선선발하며 개인자격으로도 지원가능하다. 종교단체나 사교육업체, 이익집단의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 교육단체나 기관에서 자체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서류를 꾸미는 경우는 공모금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 심사과정에서 걸러진다.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 학교는 – 역시 공모사업이지만 여기는 기획과 운영 모두 학생 스스로 해나간다는 것. 이를테면 아이들이 기획안과 예산서까지 세워서 제출해야 한다. 역시 대체적으로 1천만원 이내의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선발지원한다. 여기서 “학교”라는 개념은 배우는 단체를 말하는 것으로 기존 “동아리”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마중물 꿈의 학교는 – 위 두 개 꿈의 학교보다 그 숫자가 적으나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거나 운영하고자 하는 단체들을 선발, 운영비를 지원하며 대략 300만원 가량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이 운영지원금은 혁신교육지구의 경우 지자체 지원과 도교육청 지원금이 공동으로 들어가고 비혁신교육지구의 경우 도교육청 지원금이 들어간다. 혁신교육지구인 경우 더 많은 꿈의학교가 개설될 수 있다.
2017년의 경우 이 사업에 총 31억원 정도가 투입되었으며 약 300여곳을 모집하지만 예산규모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다. 안양시의 경우 2017년 약 40여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2. 꿈의학교 사업의 목적은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진로교육,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배워가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 방과후 학교, 동아리, 꿈다락문화학교 등과 차별화되어야 한다. 창의적인 주제를 가지고 열린 커리큘럼을 제시해야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코스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꿈의학교 취지에 어긋난다. 성인들도 학생들도 이 컨셉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대부분 가져오는 프로그램들은 방과후학교나 학원 커리큘럼과 유사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아이들이 진짜로 자기들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 그 부분에 필요한 강사나 지도자를 섭외하고 창의적인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넘나드는 관계를 형성하고 추후 마을이해와 진로교육으로 확장된다는 것. 실제로 이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아이들이나 자기 취미의 전문화를 꾀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등 재능환원으로 교육공동체의 토양을 형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터놓고 말하기 토론회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지난 주 토요일 안양시 율곡연수원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주최 꿈의학교 터놓고 말해요 토론회에서는 온갖 칭찬이 오갔다. 내가 그 자리에서 칭찬을 더 보탤 이유는 없어 그간 운영지원단으로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몇 가지 지적을 한 부분을 정리한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더니 좋은 얘기들만 오가길래.

1) 교육중독과 과잉 진로교육의 사회
무슨 일만 있으면 교육과 수업, 연수로 해결하려는 교육중독 사회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진로교육을 받아 직업과 취미를 이분화 해 미래를 설계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싶은지 묻지 않고 “뭐 해 먹고 살거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초등 저학년부터 현실적인 미래설계를 하고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꿈의학교의 원 취지를 살리자면 초/중등의 꿈의학교와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의 진로교육은 차별화되어야 한다. 초, 중등은 더욱 넓은 분야로 가치관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력하고 반면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는 노동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웨딩플래너와 축제기획을 하는 학교의 경우 잘 운영되고 있으나 이는 수많은 아이들을 비정규직 무한경쟁 사회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획자들은 아이들에게 직업의 특성과 기술을 말할 것이 아니라 노동문제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직업을 시작할 것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2) 마을이 책임지는 교육이 될 수 있는가
원 취지는 방과후 아이들을 마을에서 키우자는 취지였으나 이 목표는 모든 기관과 단체가 거듭 실패하는 주제다. 꿈의학교도 그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스케줄 하나를 더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의 출발도 그랬으나 사교육이 공교육만큼 필수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계속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주말과 방학으로 꿈의학교 스케줄이 집중되었고 아이들은 주말에도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찾아 다녀야하는가. 이것은 과도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가 헛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곤고한 성벽을 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깰 필요 조차 없는 성벽앞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인가

3) 과도기적 부작용
꿈의학교 참여가 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해 논의가 많았다. 애써 시간을 내 특별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평가를 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치맛바람이 만만치 않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일례로 파주의 출판학교에는 고양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경우가 있었고, 안양지역에서는 기획회의에 아이가 학원을 가야 한다며 대리 출석을 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획안을 제출하거나 교육청 예산으로 개인 인건비를 챙기기 위해 지원하는 단체들도 있다. 본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의도를 훼손치 않을 방법은 이 사업이 계속된다면 교육지원청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교육공무원들은 이 사업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정도 물 흐리는 일은 과도기에 거칠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4) 네트워크의 미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모사업이 그렇듯. 초기에 쇼미더스쿨과 같은 워크숍을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도 정기적 모임과 협력은 부족하다. 사업 후반부가 되면 행정서류와 영수증, 통장에 찍힌 이자까지 정산하느라 운영기관마다 정신이 없다. 네트워크를 지속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는 이 나라 대부분의 공모사업자들이 가진 어려움이다. 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5) 장애인, 다문화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없는가
통합교육이 절실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도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다. 부모가, 교사가, 학생 스스로가 정보를 많이 가진 집단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좋은 교육을 무료로 받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아무리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져도 늘 그 열외에 있다. 장애학생들도 같이 운영할 수 있는 발상은 비장애인들이 쉽게 하지 못한다. 다문화를 수혜의 대상으로 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성적이 낮은 청소년들에게 진로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꼴사나운 발상도 숱하다. 정보의 계층화에 대해 지자체와 교육지원청이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한다.

6) 없으면 못하나
시설과 기자재, 정보의 부족으로 선의를 가지고도 꿈의학교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구)안양서여중을 리모델링하는 안양율곡연수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주체들이 꿈의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장에 논을 만들어 생태교육을 실현할 수 있고, 학교 뒷산의 풍부한 산림자원은 교육과 여가, 치유의 터가 될 수 있겠다. 맞벌이 증가, 1인가구 증가로 요리에 대한 교육 수요가 늘어난다. 요리실이 1개로 되어 있는데 아마 필요한 기관은 점차 늘어날 것이니 이를 고려해주기 바란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뭐니뭐니 해도 댄스다.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를 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야다. 이를 학부모나 교사가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필요한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3. 안양율곡연수원 리모델링안

안양 관내 학생수 감소로 안양서여중을 신안중학교와 통합하고 폐교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 위에 적은 대로 대중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연수원까지 들어가는 길은 도대체 예전에 애들이 학교를 어떻게 다녔나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안전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며 지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셔틀버스 운영이 필수겠다. 또한 정문에서 본 토론장까지 오는 길 내내, 그리고 화장실과 지금 이 토론장의 저 무대까지, 여기는 모조리 건강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장애인접근성을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리모델링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접근성을 고려한 설계는 결국 비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되어 있다.
연수원까지 오는 길을 재설계하거나 연수원을 지역에 개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꿈의학교 운영진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 각 기획단을 꾸려진 연수원 리모델링 기획단과 운영, 홍보 기획단을 꾸리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혁신교육지구인 안양시는 지자체의 적절한 지원으로 그럭저럭 별 일없이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눈에 띄는 부작용등은 자체적으로 자정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꿈의학교보다 더 시급한 상담교사, 학교복지사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은 돈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정말 공교육은 돈이 너무 없다. 정부는 공교육에 돈을 쏟아부어달라. Show me the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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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내 역할은 어딜가든, 나눠준 김밥 우적우적 먹으며 지적질만 진탕 하고 재수없는 자가 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걸로.
+ 지금은 여러 할 일이 산적해 있으므로 문장이 너저분한 것은 그냥 좀 넘어가는 걸로. 퉁.

더불어 배우는 민주시민교육 (토론회 발제)

이하나  (안양,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2017년 6월 22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있었던 경기도교육청 주최 “교실 속 시민교육 이야기”에 발제한 원고입니다.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3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서두에 밝혔듯이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아이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 –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교육청 주관으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연구와 활용방안에 대한 교원연수를 진행중이다.

오늘은 관내 모 중학교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중학교는 연수 시작 가능시간이 3시 30분이후인데 퇴근이 4시 40분이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사전에 학교측에서 2시간 꽉 채워 해달라는 경우도 있겠으나 퇴근시간이 중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건 학교 분위기에 따라 판단한다.
학교 분위기는 섭외를 담당한 교사의 태도와 연수장소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선생님들의 태도에서 한 방에 느낄 수 있다.
어떤 학교는 2시간이 넘어도 무관하다는 분위기가 있고 어떤 학교는 어찌 되었든 시간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나는 퇴근시간을 꼭 초과해서라도 진행할 생각은 없다. 그건 받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민주시민교육 교원연수는
협의체가 구성된 과정을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10개에 걸친 전문분야를 현직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적용할까를 먼저 말한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집필했는데 그 분야가 초등의 경우, 자치, 선거, 평화, 인권, 다양성, 노동, 미디어, 연대, 정의, 안전으로 되어 있고
중학교의 경우 시민, 민주주의, 선거, 자유, 평등, 연대, 복지, 노동, 경제, 미디어, 다문화, 평화로 구성되었다. 중학교가 분야 분류어가 조금 더 관념적이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과내용은 학력에 따라 계속 심층적으로 무거워진다.
한 가지 분야를 심층적으로 파고 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명의 교사가 전 분야를 섭렵하는 건 내 판단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야 중 자신있는 것을 선택하고 교내에서 연구모임을 만들어 각 년간 순차적으로 적용해보길 권한다.
교과서 구성과 교과서 집필의도, 교육현장에서의 추구할 목적을 얘기하다가 내가 몰아가는 핵심주제는 “학교는 민주적인가”, 그리고 “나는 민주적인가”이다.
이 교과는 결론을 낼 필요 없고, 내지 않는 것이 좋다.
교사가 가르치려 들지 말 것,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에 충실할 것,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이 모두 고르게 의견을 말할 수 있게 하되 정답이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교사 먼저 틀을 깨서 자유롭고 여유있게 진행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내가 진행하는 연수의 요점이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학교는 중산층 이상의 주민이 모여 사는 곳인데 실제 수업을 적용해 본 한 교사는 노동의 경우 아이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대신 경제 분야에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 더 수월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지역의 아이들은 본인들의 노동 효용성에 대해 아직 절감하지 못하며 소비를 더 가깝게 느낀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우치다 타다루 선생의 “하류지향”에서 말하는 논점과 일치한다.
최근 박근혜게이트와 촛불집회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은 더없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 학교에서 서슴없이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이며, 헌법과 대한민국 존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교사들은 언제나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뒷감당에 자신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학부모의 민원제기, 교육청이 비협조적이거나, 학교가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면 그 학교의 아이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졸업을 해야 한다.
오늘 연수가 끝나고 어려운 점을 들어봤다.
한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친 아이들이 이제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왜 아이들의 미래가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데 어떻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을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두 번째 선생님은, 사회교과담당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을 어디까지 개입해서 전할 수 있느냐가 늘 고민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꾸 자기 검열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은, 촛불집회 참여하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얘기했다가 민원제기를 받았다고 했다. 민원은 학부모로부터 온 게 아니라 아이가 불만스러워한다고 부모의 입을 빌려 들어온 것이며,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가 사는 마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된다고 전했다.
나는 잦은 토론, 싸워보고 화해해보고 대면해서 말로 갈등을 풀어본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적어도 이 교과를 최대한 활용해서 교실내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중학교에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허망한 토론에 그치지 말고 실제로 학교에서 자치회에 적용을 시키거나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학생회에 안건을 상정하고 교사들과 협의를 하여 교칙을 바꿔나가는 성공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 해 해결하지 못한 것은, 다음해에 후배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가이드가 되어주시면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이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 선거와 정당, 정치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검열에 걸려 넘어지는 선생님들에게도 방패가 생겼다. 그게 바로 경기도교육청의 더불어 사는 민주 시민 교과서인 셈이다. 교과서 안에 이미 노동3권에 대한 명시가 분명히 되어 있고 노사교섭에 대한 토론, 모의 정당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교과내용을 진행한 것으로 뒷감당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민원을 받은 교사의 경우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지침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더 힘을 받아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현장에서 진행할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선생님들의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시기에 대한 절망감이 엄청나고,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의견에 선생님들이 당황할 지경이다.
일례로 한 선생님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인성쓰레기” 라는 단어를 뱉으며,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유사이래, 전국민이 지금 이것은 아니라고 외치는 기회, 학교 현장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장을 넓게 펼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뭔지 단 한 번도 성찰해 보지 않은 자가 오천만과 싸우고 있다. 학교 안에서 사회적경제와, 주거복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교육이 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가 그 길을 크게 열어주었다.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할 필요는 보탤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배를 볼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리며, 내가 수학여행을 가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교실에서 대통령을 욕하기 시작했고 엄마 아빠를 따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민주주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일이다. 중년이 넘어서는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듣고 따를 일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2016년 11월 29일

낡고 불안한 버스 – 석달간의 공교육 소회

1학년 아이의 알림장 앞에 칭찬스티커 붙이기가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붙여주는 스티커이다. 이런 제도는 이미 보편화 된 지 오래되었고 그에 대한 폐해 및 부작용으로 인해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내 아이는 6학년때부터 태권도에 다녔는데 그 때 처음 칭찬스티커의 존재를 알았다. 스티커를 적게 받아온 날은 울고 불고 난리까지 쳐서 내가 이노무 스티커를 다 갖다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6살짜리에게도, 나는 가끔 그런 엄마다.

학교를 들어가고 별 다를 일 없는 것처럼 매일 매일 아침 일찍 혼자 학교를 가게 되고 집에 와서 간혹 엄마랑 시간이 안 맞아 혼자 있게 되도 별 탈 없이 지내는 아이는 숙제를 해야 하는 책이나 공책을 안 가져오고 알림장도 다 적어오지 못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마냥 재미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는 매일 국어 10칸짜리 쓰기 공책에 네 바닥씩 그 날 배운 것을 써가는 숙제를 했다. 나중에는 숙제가 빨라지면서 글씨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른들은 그런 사소한 것으로 걱정하지만 지금 어디서 악필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글씨체가 독특한 편이긴 하지만 그건 초등학교때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숙제를 못하면 학교가서 하라고도 하고 그래 뭐 못할 수도 있지 라고 넘겼다. 알림장쓰는 게 어렵다고 호소할 때도 야 임마 엄마 때는 더 했어. 라는 말을 삼키며 어어 그러니 하고 친절한 척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학습지 선생님이나 다른 예체능 수업을 듣거나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아이는 방과후 수업을 죄다 신청해놓고 태권도를 하나 다니는 것으로도 시간이 빠듯하다. 본인이 고른 방과후 수업이 월/화/수/목으로 꽉 차서 석달을 지내더니 이번에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겠다고 스스로 몇 개를 내려놓았다. 방과후 수업은 유치원때부터 본인이 골라 결정해왔다. 1학년이지만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해주기 때문에 (경기도교육청) 밥을 먹고 나면 12시 40분에서 1시쯤이 되고, 방과후 수업을 하는 날은 2-3시에 끝나는데 일주일에 두 번은 5교시도 있다. 학원을 별도로 안 다녀도 하루 일과가 4시나 5시에 끝나는 생활이 반복된다. 꼴랑 태권도 하나 다니는데 이런 식이라 아이는 늘 하루가 짧다고 투덜댄다.

얼마 전에는 알림장을 4일째 학교에서 가져오지 않으면서 이런 저런 가정통신문이나 종합장에 알림장의 내용을 적어왔다. 알림장의 문구는 맘에 들지 않는다. 한자어가 너무 많이 섞여 있는게 불만인데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말하지 않는다. 알림장을 다 쓴거냐 잃어버린거냐 물으니 잘 모르겠다기에 그럼 새로 하나 만들던가 해야지 이게 뭐냐 하니 알림장 앞에 칭찬스티커가 붙어 있기 때문에 꼭 찾아야 한다는거다. 그럼 니가 요령껏 알아서 찾아오라 하니 그 다음날 바로 찾아왔다.

아이의 알림장에 스티커 개수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엄마들을 만나 얘기를 할 때마다 이 스티커 이야기가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스티커 부여기준이 모호하고 붙여서 개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압수를 당하기도 한다는거다. 하루에 2개, 5개를 떼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 뭐 경쟁하는 사회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웃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엄마들은 꽤나 심각했다. 아이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전하는 엄마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다.

오늘에서야 알림장 앞에 붙어 있는 스티커판을 자세히 보니 100개의 스티커까지 붙을 수 있고 우리 아들의 스티커는 스물 여섯 개다. 가장 개수가 많은 아이가 누구인지도 엄마들을 통해 들었는데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내가 아역탤런트 제의 받은 적 없냐고 물을 정도) 여자아이인데 그 아이는 이미 70개를 넘었다는거다. 그래서 그 아이의 엄마는 또 주변의 질투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하단다. 엄마들의 불만은 적게 붙여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 떼어가는 박탈감에 초점이 맞춰진 듯 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예민해지고 경쟁에 몰입되는 것에 우려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다.

엄마들과 참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스티커를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도 이거 스티커 신경쓰여?”

“어!”

“신경쓰지 마.”

“신경쓸 거야.”

“그거 중요해?”

“어. 나만 적어.”

“아까 ㅇㅇㅇ 엄마가 걔는 너보다 더 적다던데?”

“ㅎㅅㅈ 하고 ㅇㅊㅎ 하고 나하고 제일 적은데, ㅎㅅㅈ은 스무개는 넘고 ㅇㅊㅎ은 스무개도 안돼. 나는 스무개는 넘었어.”

“그래? 니네 셋이 제일 스티커 적게 받았구나?” 하고 나는 웃었다.

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고 금방 씰쭉씰쭉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는 아이에게 다시 가서 말했다.

“너 이거 스티커 신경쓸 거야?”

“어. 신경쓸 거야. 나도 스티커 많이 받고 싶어.”

“그래? 그럼 너는 신경써. 그치만 엄마는 신경 안 쓸 거야. 엄마는 너 스티커 하나도 못 받아와도 상관없어. 알겠지?”

“알았어!” 아이는 다시 그림에 몰두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 숙제가 뭔지도 안 물어봤다.

그래 오늘 나왔던 또 다른 한 가지 학부형들의 불만은 숙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알림장 내용이 너무 길다. 라는 것이었다. 반마다 담임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운영하는 학습내용이 다른데, 우리 반 선생님은 받아쓰기도 시키고 수학수행평가도 했다. 쪽지 시험 같은 걸 본 모양이다. 나는 그 내용을 본 적이 없는데 아이가 받아쓰기 공책을 학교에서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안 가져오냐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물론 숙제에 “받아쓰기 틀린 거 다섯 번씩 써 오기” 라는 항목이 있어 이거 숙제 했느냐고 물으면 한 개 틀려서 학교에서 해왔다 라거나 하나도 안 틀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이 아이는 띄어쓰기가 문제가 되지 교과서의 맞춤법은 그럭저럭 해결이 되고 있는 편이다.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는 국어책의 내용을 3번 써오기 정도인데 이런 숙제는 다 해도 두 바닥을 넘지 않는다. 수학의 경우 덧셈식 뺄셈식을 만들어 오기 정도인데 이런 경우는 옆에서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엄마들이 이 정도 숙제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어차피 사교육으로 다 돌리고 있지 않느냐는거다. 사교육 숙제도 치이는데 공교육 숙제까지 해야 하니 골치가 아프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들어봐야 할 문제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쯤 되는데 아이들은 9시나 10시에 자는 게 맞다. 8시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아이 숙제를 봐주다 보면 글씨가 느려 시간이 오래 걸리니 아이가 숙제를 마치고 나면 11시에 자는 경우가 많다는거다. 때로는 국어 세 번쓰기, 두 번읽고 싸인받기, 수학숙제 몇 페이지 해오기까지 겹치면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엄마가 없더라도 일단 너 혼자 할 수 있는 쓰기 숙제 같은 경우는 해야한다고 길을 들이고 있고, 여전히 대책 없이 불만을 갖는 엄마들도 있다. 알림장도 다 쓰지 못하면 학급홈페이지를 보고 다 보충을 해가야 하는데 알림장이 5번 6번까지 항목이 있는 경우 아이들이 시간 내에 쓰기가 어렵기도 하고 낱말도 어려운 게 많아서 숙제에 알림장까지 체크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잘 따져보면 아이들이 혼자서 숙제를 해내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집에서 조부모가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직장엄마들이나 전업주부들도 애 하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닌 경우가 많아 앉혀놓고 아이의 스케줄을 따라 숙제를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렇다면 모두 사교육을 끊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난 번 학교 상담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교직생활 20년을 넘어가면서 최근들어서는 학부형들의 힘이 너무 세지고 여러가지 감시를 받는 기분이 들어, 열정을 다 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고백아닌 고백을 하셨다. 나도 내 딴에는 위축되어 있는거지. 라고 혼자 읖조리듯 한 그 말이, 20년 넘게 한 직업에서 선생이라는 사명감으로 평교사로 살아온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적어도 큰 폭력사건이 아닌 이상 최대한 교권은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나 이런 저런 반발들과 개인들의 의견을 접할 때에는 내 개인의 의견은 되도록 뒤로 미뤄놓는 편이 낫다고 깨닫는 중이다.

엄마들에게 사교육의 불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강조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엄마들은 늘 아이들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실제로도 아이들이 못 해내기 때문에 다른 방편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쳐지기 때문이라고 하는 엄마들 앞에서 –  집에 와서 더 놀기 위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숙제를 반절이상 해 오거나 공책을 안 가져가면 학교에서 냅다 아침에 급하게 하기도 하고 받아쓰기도 잘 틀리지 않아 추가되는 숙제가 없고 쓰기 숙제는 하라고 시켜놓으면 알아서 하고 있는 아이를 둔 내가,  다른 엄마들에게 사교육을 끊으라고 말하는 건 당신 자식은 알아서 하니 걱정이 없겠지 라는 퉁박을 듣는 것밖에 안된다.

게다가 엄마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의 또 다른 것은 다른 반 알림장과의 비교인데, 다른 반 알림장은 1, 2번에서 끝이 나고 숙제는 거의 없으며 알림장의 내용이 “감기 조심하기” 정도라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냐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기본적인 학습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집에 와서 그 날 배운 것을 돌아보는 의미가 숙제이고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것인데 모두가 사교육을 의지하는 상황에서 나혼자 잘났다고 숙제가 많긴 뭐가 많냐고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거다.

한 때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성향들을 비난한 적도 있으나 그런 비난과 비판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사교육이 공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소 하는 데 사회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즉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교는 점점 더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데 학교와 교육청간의 어떤 시스템이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 학교끼리 경쟁이 붙어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아이들은 실적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는 것을 본다. 실업계학교는 취업률을 높여 실적을 만들어야 무슨 무슨 학교로 지정이 되어 예산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문계는 당연히 대학진학률을 높여야 한다. 학교와 교사가 경쟁력이 있어야 사교육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취업률을 만들어야 하는 학교들은 아이들에게 자퇴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어 인근의 정보산업고에서 1학년 자퇴율이 급증하고 그 아이들은 모두 탈학교청소년이 되어 이런 저런 알바를 하며 견딘다. 자퇴를 했다가 다시 복학을 하라는 권유를 받은 아이들은 복학을 했다가 다시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20년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학생의 숫자는 대학진학율을 증대시키기 위한 자료의 하나가 되어 아이들의 적성따위 고민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대학에 쑤셔 넣는 게 학교의 기능이었다. 이미 공교육이 자빠지기 시작한 건 20년전, 어쩌면 전교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89년 그 때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전엔 사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했기 때문에 그마나 공교육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지 공교육이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학교는 시에서 지원하는 특정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돈폭탄과 다름없는 예산을 지원받게 되고 어떤 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이 된다. 그 외 다른 공기관의 지정학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여러 가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프로그램에 지정이 되어 학교에 각종 프로그램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인력 확충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교사들로 받아낸 예산을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하니 교사는 아이들의 교실보다 잡무와 프로그램 처리에 대한 서류를 쳐내기에 바쁘다. 프로그램 지정 학교가 되면 가정통신문이 하루에 무려 열장이 나가는 경우도 있고 그 중에 한 두장 회신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교사들의 책상위에 마감날까지 회신이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것을 기다리는 통신문들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다.

교사들이 미처 해소하지 못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이제 학부형들이 무급으로 동원된다. 학교의 예산과 결제 심의를 맡은 학교운영위원회부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녹색어머니회까지 초등학교 학부형들이 동원되는 경우다. 때로는 학교시험의 공정성을 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감독관을 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행되는 여러 가지 무급 학부형 동원에는 교통정리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학교내 보안과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마미캅, 보람교사, 준비물 정리, 급식모니터링, 도서사서, 각 반의 장을 맡은 연락책의 엄마들, 지역 예절관에 가서 연수까지 받아야 하는 지역사회어머니회, 컵스카우트 걸스카우트 대표, 아람단 대표, 전교어린이회의 엄마들 조직이 있고, 2013년도부터는 경기도의회 조례에 의거한 학부모회의가 별도로 구성되었다. 그 외 자원봉사로 진로코칭교육등에 독특한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 동원되거나 일주일에 한번씩 학부모가 참여하여 각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은 특별히 운영된다. 각 반의 아이들은 이제 30명이 넘지 않는데 20명에서 27명에 이르는 엄마들이 이 역할을 모두 분담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대부분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니 전업주부이거나 출퇴근이 자유로운 엄마들이 하나씩 맡아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그러나 보면 3-4개까지 겹치기 마련이다. 학교일을 많이 맡은 엄마들은 매일 출퇴근도장을 찍는 만큼 들락거리게 되기도 한다. 자기가 잘나서 나서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보다, 선생님이 부탁하니 하는 경우도 있고 넓은 마음으로 돕고자 하는 봉사심에서 우러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에 안양과천교육지원청 내에서 새로 법적효력을 가진 기구가 된 각 학교 학부모회의의 대표들이 모였는데 하나로 모여진 의견은 학부모회의 예산을 확충하는 문제였다. 학교에서 별도의 기부금을 받지 않으며 그런 절차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 배정된 예산을 가지고 학부모회를 운영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할라치면 예산은 확보되지 않았고 받아낼 절차는 복잡하고 하다못해 의결할 일이 있어 모여도 다과값도 준비되지 않아 누군가 자꾸 사비를 털어내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왜 자꾸 예산얘기들을 하나 의문이 생겼으나 학부모회의는 학교의 교육사업을 지원하거나 새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최소한의 경비는 필요한 것이 맞는 듯도 했다.

내 옆에 앉았던 안양의 모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은 이미 다년간의 운영위원회와 회장경력으로 학교의 학부모참여도를 높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은 일절 학교에서 비용을 걷어서는 안되고 (운영위원회는 통상적으로 학교를 위해 쓰든 자기네 식사를 위해 쓰든 아무튼 걷는 게 일반적이다) 학부모를 통원한 과다한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라 조언해주었다. 그 쪽은 적당히 엄마들이 부담없이 참여하는 선에서 모든 사업을 잡기 때문에 참여도가 상당히 높고 학교측의 협조도 잘 이루어진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학부모회가 학교에 어떤 행사를 제안했을 경우, 결국 처리해야 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이번 학년도에 학부모회의 임원직을 자원해서 맡았는데 내 목적은 학교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동향을 살피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내가 뭔가 제안을 던지는 순간 누군가에게 업무가 되어버린다는 일이 많은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주 소소하게, 1학년 아이의 알림장 앞에 붙은 칭찬스티커의 문제부터, 그로 인해 불거져 나오는 불만들을 처리할 기구가 없다. 학부형들과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대체적으로 하나로 일치하는데 학교는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교는 학교대로 나아가고 학부형과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학교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학교라는 곳에 다시 발을 들이고 깊은 면을 보기 시작한 지 이제 몇 달.

얼마 되지 않는 이 시점에 느끼는 것은 학교가 계속해서 위를 보고 걸어가면 이대로 공교육은 절대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협감마저 들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는 혁명과 혁신자체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망가진 채로 망가진 시스템에서 모두가 허덕거리며 굴러가겠지.

고장나고 기름 떨어진 오래된 버스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산을 넘어가는 느낌. 그게 지금의 학교다. 그 버스에는 불안한 학부형들과, 지친 교사들과, 매일 울고 싶은 아이들이 미어터지게 타고 있다.

2013.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