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요청

 
1.
오늘 오전의 모 코디네이터에게 전화가 왔다.
공동체 사업 담당자인데, 사업으로 만났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다. 올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겠다고 몇 가지 제안을 넘겼고 이 분이 사업이 성사되기 위해 공기관과 조율중이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 주다.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프로필을 다시 달라네요.
– 네 들어가자마자 보내드릴께요.
– 선생님, 근데 자격증 같은 거 없으세요?
– 아하하하하. 이런 저런 글쓰고 떠돌면서 강좌 여는 사람이 무슨 자격증이 있겠어요?
– 그러게요. 자격증이 있냐고 물어서요.
– 누가 글쓰는 자격증을 주나요 ㅋㅋ 강의도 그렇고요.
– 그러게요.
 
코디네이터는 내내 난감해했지만 기관에서 요청하는 강사비 조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단 프로필을 다시 보낼테니 기관에서 판단하게 하고 너무 애쓰지 마시라 전했다.
 
이 코디네이터와 나는 현직 언론종사자가 특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기관에서는 2시간에 30만원을 주려면 박사학위에 경력 10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보다 조건을 낮추면 석사학위에 경력 5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진 현직 종사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얘기했고 안그래도 바쁜 사람들인데 돈보다도 뚜렷한 명분과 가치, 그래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사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지만 결정권이 없는 사람은 한숨만 쉬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분이 한 번 오셔서 마을 아이들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자신있게 확답하지 못했다.
 
나는 코디네이터에게 “너무 애쓰지 말자.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애쓸 영역이 있고 아닌 게 있더라. 공기관 결정권자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 그러니 너무 애써서 지치지 않도록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직종사자가 꼭 필요하겠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 끓이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2.
오후에는 지역 모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병가를 내야 하는데요, 수업을 맡아주실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아휴. 애들 말도 들으니 진행도 안 될거고요. 애들 자습하고 시간 버리게 될까봐요. 제가 예산을 챙겨둔 게 있는데 그날 시간 되시면 특강 좀 해주세요.”
 
자유학기제 시작인데 첫 시간을 불가피하게 비우게 되었단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 ‘아이들 시간 버리게 될까봐.’ 라는 말에 마음이 걸렸다.
주제가 뭐고 교사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은다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수년 간 봐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의욕 없이 모여도 하나라도 해보자고 권했던 사람이고 혼자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새로운 걸 체험하게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생리상,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괜히 쓸데없이 일 벌인다고 상처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동아리를 몇 년째 이끌어왔고 어떻게든 아이들이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판을 펼쳐주는 이런 사람은, 예산이 10만원밖에 없다고 해도,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멀지도 않다.
 
3.
더러 이렇게 혼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합리적인 구조로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있는 집 애들은 부모들이 알아서 다 챙기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 기획 안해도 부모님 친구들만 만나도 더 많이 배우잖아요. 시야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줄 수 있으면 해줘야죠.”
 
이 사람들이 정말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만 하는 존재인가. 비싼 강사를 불러와서 행정실을 번거롭게 하고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사람인가?
시스템이 딱 덮고 있는 뚜껑이 너무 무겁다고 달그락 거리는 게 그렇게 꼴사나운가. 이 두 사람이 오늘은 어떤 저녁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가치를 학벌과 경력으로 재단하고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접촉도 하지 않는 게 편하게 사는 세상일수도 있다.
제도가 불편한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공공기관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고]깃발을 흔드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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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내는 교육정책포럼 통권 304호, 2018년 10월 발행 간행물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안양지역의 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2014년 3월이다. 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트워크 형식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준비한 지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교육네트워크를 표방한 협의체들은 이미 여러 개가 있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이하 이룸)이 출발하는 데는 아픈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의왕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7살 소년이 혼자 있다가 키우던 개에 물려 죽었고, 안양에서는 여자어린이 둘이 납치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역에서 지키자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였고, 그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일선교사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1~2년 이상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공동체는 와해되었으니 사회공동의 책임을 나누자는 의도였다. 공교육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단단한 토양을 만들고 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자는 의도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은 왜 느끼게 된 것일까?

시민들은 학교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대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지역과 학교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학교가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흔히 학교의 구성원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교는 교직원과 공교육기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방식은 모두 전근대적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혁신학교와 진보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학교변화의 욕구는 학교 안에서는 응축되어 밖으로 터지는 형태로, 학교 밖에서도 교문을 밀어제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기폭제가 된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으로 촉발된 이룸이 출범하자마자 전 국가를 비통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교육지원청이 먼저 제안하여 교육지원청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각 기관에 숙련된 강사들이 있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룸에 합류해 있는 회원기관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들을 최소 2명 이상 추천받아 교과연구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10여 개 학급에 불과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교 측의 요청이 늘어났고 교육지원청도 이에 적극 협조하여 2017년에는 72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120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예산은 모두 교육지원청에서 부담한다.

안양지역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청이 재원을 대고 이룸 사무국에서 강사보수교육과 시민대상교육을 맡는다. 강사 보수교육은 매년 2회 이상 실시하며 시민교육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거나 활동가가 될 만한 시민들을 찾아내고 있다. 강사보수교육에 대한 비용은 교육지원청에서 2018년부터 약간의 강사비를 보태고 있으며 그 외 시민대상교육과 내부 강사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각 기관은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실천을 강화할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 등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2018년 안양의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은 2015년도의 1기 강사부터 2017년도 3기에 신규 합류한 강사들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강사진은 매년 조금씩 들고 나는데 겨울방학마다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 변화한 학습환경에 노력하도록 내부협의를 거쳐 새로운 교안을 만든다.

현재, 안양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아마 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형태인 교육 참여인원이 그 기준으로 될 것이다. 2015년에 12개 학급, 2016년에 13개 학급에 수업지원을 한 것까지 더하면, 1개 학급을 30명으로 산출하였을때 안양지역은 이룸과 교육지원청이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혜를 받은 학생 수가 2015년에 360명, 2016년에 390명, 2017년에 2,160명, 2018년에 3,600명이된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지원 누적계는 6,510명이다1).

안양의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이룸에서 매년 겨울, 신규 교안을 마련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통합시스템으로 각 학교에 교안을 제시하고, 그 중 선착순으로 학급별 수업지원 신청을 받아 각 기관에서 강사를 배정해 특강 수업을 나가는 형식으로 추진된다. 수업지원 신청은 교사들이 한다. 2~3년 연속으로 신청하는 교사들도 있는데 수업지원을 나가는 강사입장에서도 작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교사의 신청 여부에 따라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또한 학교별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신청이 현저히 다른데 학교 내부 분위기와 연구모임, 학교 내 민주적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2년 연속 한 학급도 신청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동 학년 전체학급 수업을 신청하는 학교
는 통계를 내지 않아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 사업은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한 해에 수백 시간의 교과수업이 있다. 그중에 지역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은 한 학급에 단 2시간이다. 더러 학교에 프로젝트 수업을 마련해 지역의 강사들을 초빙해 4차시 이상의 연속수업을 기획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성과지만 학생 개개인이나 학급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매년 사업 후 결과를 현장에서 듣거나 설문조사를 실행하면 교사들은 더 많은 민주시민교육 특강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현재의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강사비용만 1년에 1천만 원이다. 교육지원청과 학교 현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교육의 종류를 결정하게 된다. 고쳐야 할 시설물과 학교 내부 사정이 우선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모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연내에 성과가 나지도 않고 2차시짜리 수업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사들은 교육안을 보고 자기 학급에 적합한 것을 신청한다. 일종의 교육쇼핑이다. 교육과정에 대해 강사와 협의하는 과정은 각 강사가 출강 전에 교사와 전화통화로 하는 게 전부다. 민주시민교육 교안 구성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사전 의견을 들어본 적 없으며, 교사들과 학교가 진짜로 민주시민교육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러 어떤 교사들은 외부 강사진의 진입을 꺼리며, 수업을 참관한 관리자들은 강의형이 아닌 참여형 수업의 자유로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4년 차에 접어든 강사들은 매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강사모임을 통해 그룹 스터디를 병행한다. 2018년에 수업을 진행한 강사들은 22명이다. 120개 학급에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면 1인당 5.4개 학급, 10차시 정도에 불과하다. 공부한 시간보다 활용한 시간이 훨씬 더 적다.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 강사진은 올해 들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과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강사진이 더 많이 공부한 해가 될 것이다.

지역네트워크가 좀 더 큰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연대회의나 지역의 각 네트워크 협의체는 별도의 법인을 갖지 않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각 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주제에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나누어 전담하고 있으나,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이 지금처럼 협약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각 교육지원청은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조성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안양지역도 연구교사와 관리자, 이룸이 참여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있지만, 연내 몇 회 모임으로 서로 간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협의를 이루어낼 시
간이 없는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학교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 역량강화와 지역에 관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판단되어 교육지원청과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담당교사들의 업무는 민주시민교육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마다 전담교사가 있어도 학교는 수없이 많은 일로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안양처럼 교육지원청의 주도로 진행하는 방법은 학교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자기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을 수년에 걸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역협의체가 같이 협력할 경우 지역 내 역량 있는 강사들의 교과연구를 도울 수 있고,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믿고 민주시민교육 강사들을 신임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내용은 아이들이 가정에 전달하고, 각 가정의 보호자들은 결국 모두 지역의 시민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다.

이후에 이를 제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사들만의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지역과 함께 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정부기관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업무를 경감하고 민주시민교육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초단체는 각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 나가야 한다. 교육공무원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내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근무조건이 옥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권력의 영속성을 믿지 않으며 정의에 예민하고 매사의 공정을 추구하며 포용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이룸은 결과적으로 다시 안전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억울한 일로 옥살이를 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거나, 차별과 혐오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위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하나 사무국장은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중문계에서 한어언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하다 2014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집필노동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NGO, NPO의 가치 확산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 히응”의 대표다. 대표저서로 「포기하지 않아, 지구」(2018, 빨간소금)가 있다.

[기고]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본 원고는 2018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지에도 기고한 원고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민주시민교육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 집필노동자)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4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1 :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의 지역과 시민단체의 역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설립취지는 공교육의 회복을 돕고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지만 해결해야 할 장벽은 한둘이 아니었다. 출범 직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이룸의 창립주체였던 안양YMCA 문홍빈 전 사무총장의 사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봉착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가자는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학교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입시로 작동되는 기이한 사회다. 대학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결정된다. 학벌로 계급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던 산업화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학벌은 일종의 종교적 관념마저 갖게 되었다. 대학만 잘 가면 만사형통이라는 이념이 보편화되었고 그 이념 아래 전 국민이 헤쳐 모여를 반복했다. 자녀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주와 직장을 결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대학입시시험의 편의를 위해 공공시설의 제약까지 감행하는 나라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군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이주를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가진 학부모가 다수를 이루면서 공동체는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다. 이익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사회에서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당위성은 없다.

 

지역공동체 활성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신자유주의가 잠식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마을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이동하고 마을공동체 되살리기도 안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마을공동체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을공동체사업이 공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자발적이어야 하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시민사회가 주도했던 수많은 영역들이 공기관 산하로 흡수되었고 공적 자금이 들어오면서 풀뿌리 운동의 자생력이 죽어간다는 소리도 크다. 시민성에 대한 교육 역시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운동은 끊임없이 현장을 돌보며 민간에서 필요한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이는 시민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시민단체들의 숙명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민주시민교육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교육들을 수십 년간 해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 새로운 용어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목적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시민 개개인의 역량으로 확고히 만들어내고 그 어떤 계층이나 세력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장치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확고하게 띈 활동과 교육이 학교라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근대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도권 내 교육과 학교제도 바깥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학교 밖의 시민교육이 참여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학교는 참여를 독려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2014년 이후로 학생들이 직접 학교 정책과 교칙 변경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긴 했으나 이는 매우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일부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 지자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기초단체 의원들이 늘어났으며 시민을 대표하는 후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교 밖 지역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제등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관료적 체계와 상명하복의 근대적 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정책의 결정권자들은 공무원이며 이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도 상부에 보고하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일부 이익집단과 극성 학부모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하며 맞서 싸우기 어려운 학교 구성원들의 태생적 한계를 여러 번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라고 하지만 이 삼위 중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교사들뿐이다. 이 결정권을 놓고 학부모와 학교가 대립하는 양상이 생기면 학생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결정권을 쥐려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내부의 민주주의 지표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양지역의 경우 민주시민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참석한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내 민주주의의 갈 길은 요원하다. 관리자의 횡포는 사라진 추세지만 내면화된 수직적 권력구조는 쉽게 뜯어고치기 어렵다. 개인의 내면화된 권력구조는 집단으로 이입되고 이 집단성이 발휘되는 공간이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를 숨 막힌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원인일 것이다. 교사들은 언제나 안전과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고 국가는 학교에 수많은 책임을 지운다. 학교내부는 언제나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으며 내부결정구조의 비민주성은 수시로 튀어나온다. 혁신의식을 가진 평교사들과 관리자의 불일치, 행정과의 괴리등은 학교 민주화를 저해하고 외부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된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민사회단체를 목적을 띈 이익집단으로 치부하는 경우, 지역주민강사를 교육하청수행자로 여기는 태도, 전문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온한 사상을 주입한다는 편견이 외부 강사의 현실적 강사료, 외부 강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진 집단이 외부에서 학교 내부로 진입하려면 매우 구체적이고 상호간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관료적 시스템에는 실적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욕구, 교사에게는 점진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하여 학교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 학생들에겐 신선한 교육과 자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지역사회에는 학교라는 교육현장을 열고 지역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시민의 양성이라는 각자의 욕구을 충족할 요건을 고르게 분배하고 자극할 때 민주시민교육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이제 어디에서도 발붙일 수 없으며 이제는 각자의 입장을 가진 욕망들을 끌어내어 새로운 제도에 적용해야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 수 있다.

 

  • 전개 2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어려운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앞에 밝혔듯이 경기도교육청의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섯 째, 급변하는 시대와 세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90년대 이후 사이버스페이스라 일컬어지던 가상현실공간은 이제는 삶의 절반을 차지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 세대고 이제 이 세태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역사회,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학교는 미디어 급변에 대한 대처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으로 손꼽아도 무방하다. 특히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불거지는 다양한 소수의견에 대한 의견 정립이 전혀 안된 상태다. 공통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는 화두가 수만가지에 이르는데 아직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공론화 할 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미디어를 기피하려는 기성세대는 사실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청소년보다 한참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촛불 이후 학생들은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화했으며 어떠한 권력도 파괴 가능하다는 것을 내면화했다. 청소년세대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이 민주시민교육을 펼쳐나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의미와 함께 기성세대의 헛발질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 기성세대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민주적 감수성이 낮다는 것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층은 청소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감수성을 예민함으로 이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돌아봐야 한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주장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인권과 불평등에 대한 소리도 높아진다. 혹자는 현재의 이 현상에 대해 혼란스럽고 시끄럽다고 폄하하기도 하나, 그 동안 도덕성과 애도로 합일되고 선악구도로 양분되었던 정치적 입장에서 억눌려 왔던 모든 의견들이 2016년 촛불을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단계라 보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시민사회와 운동권에서도 소수자들의 의견은 대의를 위해 외면되어 왔다. 2016년 촛불 이후 각 교실과 거리에서 혼재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것들도 일관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인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재구성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야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사회변혁 단계에 생략되거나 외면되어 온 과정이며 꼭 한 번 거치고 넘어가야 할 단계이다. 권력구조를 내면화한 기득권층과의 갈등, 또는 각 개인의 내면의 혼란을 동반한다. 인정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의 한계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잘 해내고 있다는 상호간의 믿음이다.

 

학교 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끊임없는 갈등이 촉발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일어나야 하며 토론과 토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의견 조율, 상대방의 입장 이해 등이 필요하다. 학교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지역사회가 가진 한계도 확인해야 한다.

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은 시민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을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학교는 또한 외부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여 보다 선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모든 규율과 지금 당연히 여겨지는 가치들을 의심하고 전복시킬 모험심도 필요하다.

 

안양에서 진행해 온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얻어낸 각 지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교육지원청의 역할

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한다. 이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준비해 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의사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파손된 책걸상을 바꾸거나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등의 시설투자부터 기본적인 교과과정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급급하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결과가 당해 연도에 나타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당연히 민주시민교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지원청은 먼 미래를 보고 학교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우수한 강사진을 학교에 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사비와 강사 양성교육에 관한 재원을 마련한다. 교육지원청에서 마련한 예산으로 강사교육과정을 거치면 강사진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높아지고 학교측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법도 역량껏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할

이미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활동가와 전문강사진 중 학교교육에 임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의 강사진을 발굴한다. 구체적인 활동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마다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 담당실무자의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업무 분담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네트워크는 각 분야별의 개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인정하고 단단하되 느슨한 체계를 지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확보한 강사진을 양성하되 매년 4회기 이상의 워크숍을 진행해 보수교육을 철저히 하되 강사진의 변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각 단체는 학교 교육을 전담할 강사들의 교육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동한다. 강사을 신뢰하게 그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믿음은 일을 그르친다.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 수시로 점검하되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점검은 질책을 목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며 개선의 재료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각 단체의 실무자 활동가 전문강사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도록 지원하는 단계를 수년 동안 실행하면 이들이 자연스러운 민주시민교육의 전파자가 된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실현은 기초단체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기 가장 좋다. 민주시민교육을 접한 아이들이 가정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되고 이에 부모들이 영향을 받거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 학부모들이 지역시민이고 이들로 인해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된다.

기초단체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기반한 민주시민교육 관련 예산을 배정해 지역내에서 시민대상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 할 임무가 있다. 기초단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지역사회시민들의 역할이다.

 

학교의 역할

학교는 기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시대를 읽는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성공의 기억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저항과 변혁의 욕구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학교 내 민주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 개인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한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무리하지 않되 스스로 변화할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어라, 는 명제가 왜 필요한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교육지원청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나 학부모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철학과 신념도 필요하다. 휘둘리기 시작하면 민원을 처리하는 단순업무로 전락하기 쉽다. 단일 공동체 내에서 추구하는 공통의 철학이 필요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낼 관리자의 자세도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관리자가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교양있는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며 합의하고 쟁취하는 시민성을 목표로 한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실천이 필요하다는 기득권층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복잡하며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완성하지 못할 체제일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의 욕구가 관철되고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내는 일이 인간 본성에 거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공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쉬운 개인의 욕망을 위해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보조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욕망이 진열되는 전시장이다. 이 모든 이슈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극상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의 용어다. 그러나 “하극상은 안된다”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서다. 이 나라는 국가인가 군대인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철학이 탄탄한 사람에겐 가르치려는 어떤 텍스트도 무용하며 동시에 모든 텍스트가 가능하다. 지금 결여되어 있는 것은 공동체의 철학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발언의 기회와 시간을 늘리고 불편한 이야기를 공론화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학생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26일 작성.

 

 

끝.

 

두발규제 완화에 관하여

두발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이야기 하나를 더 해볼까 합니다.
 
시흥에 장곡중학교라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전에 학생자치회의 힘으로 복장과 두발에 대한 규제르 없앴습니다. 물론 다들 경험했다시피, 학생 자치회가 힘을 발휘하려면 (불합리하지만) 어른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 학교는 교사들의 지지가 아이들의 자치권을 획득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를 방문했던 건 2017년입니다.
이미 규제가 모두 풀려서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습니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전혀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학교에 갔던 이유는
지난 5월 빨간소금에서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장곡중학교 탄산수라는 지속가능발전연구동아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친구들의 연구주제는 “여중생의 화장”이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초반엔 약간 보수적인 의견이 있어 자기 친구들 중에 화장을 진하는 아이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 같다, 는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1년동안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거치면서 친구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여중생의 화장은 결코 “누군가에게 잘보이려고”가 아니라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화장품 값으로 용돈을 탕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엇나갔습니다. 화장품값이나 미용에 돈을 많이 쓰는 친구는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염색 파마 악세사리 착용이 모두 가능하고 교복도 치마 블라우스 겉옷 중에 한 가지만 입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교복이 편하다며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생활복과 교복을 번갈아가며 자주 입었습니다. 허리가 쏙 들어가거나 핏을 중요시 해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교복을 덜 입게 되었습니다.
 
복장 규제가 풀리고 1년이 지나자 초반에 화장을 해봤던 친구들도 점점 시들해졌고 입술 틴트 정도만 바른다거나 눈썹만 그린다거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결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대부분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특별히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고 재주가 있는 친구들은 진로를 미용패션쪽으로 잡아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하거나 유투브를 보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각반마다 거의 1명씩 있어서 3학년이 되어 졸업사진을 찍을 때 각 반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탄산수 친구들은 여중생의 화장에 대해 연구하며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고 화장품의 환경문제도 고민하게 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게 되어 여성환경연대에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화장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물론, 이 친구들은 상당히 우수한 역량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사가 믿어줬을 때 그 역량이 더 높게 발휘되었다는 걸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습니다.
 
처음 이 학교에 복장규제가 없어졌을 때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의 항의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느냐는 항의를 교사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습니다.
 
학교 앞에 지나가는 마을 주민이 아이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을 말하며 아이들은 무척 불쾌해했습니다.
 
장곡중학교 외에도
혁신 중학교 중에 복장규정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고 이를 완화한 학교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이 용돈을 탕진하면서 외모를 꾸미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1년 정도면 충분히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이 일어납니다.
 
한 교실 안에 슬리퍼와 트레이닝복차림으로 대충 다니는 친구와 귀걸이를 한 남학생이 함께 공부합니다. 풀메이크업을 한 여학생과 로션만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은 여학생도 친구로 잘 지냅니다.
 
아이들의 복장을 규제하려면 공중파 방송의 예능프로그램과 아이돌 산업의 성상품화를 먼저 규제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정숙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복은 아이들의 몸을 성상품화해왔습니다. 복장과 두발단속 해제라는 건 무엇을 말합니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여학교였는데 두발자유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내내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장이 머리 긴 여자를 좋아한대”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에게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만, 이 문장에는 교사가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있다는 말을 함의하고 있고 이에 대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 도농복합도시의 열악한 환경을 말하며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횡행하는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학생인권과 두발규제 해제가 탁상행정이라는 논지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안양의 1기 신도시에 살고 이 지역에서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여기는 취약계층이 사는 지역도 있고 한 반의 절반 이상이 동아시아 외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폭력적인 학교는 무기력한 학교와 동일한 이름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합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폭력적이 되고 시험이 끝나면 무기력해집니다.
가장 성적이 우수하고, 가장 대학진학율이 높으며, 주변에 학원이 가장 많은 학교일수록 폭력과 자해와 무기력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는 아이들이 밤새 피운 부탄가스가 나뒹굴었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소주병을 깨들고 싸우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중절수술을 하느라 학교를 못나오는 여학생이 있었고 문신을 새기다 실패해 칼로 상처를 잔뜩 낸 팔뚝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들은 모두 염색이나 파마를 하고 손톱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하고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들지 않고 학교에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교장의 주장에 따라 “자퇴는 어쩔 수 없어도 퇴학은 없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학생부실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두들겨맞아도,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고 중학교 졸업장을 건졌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필요했던 건 조금 더 친절한 어른들과 자기 말을 대신 어른들에게 전해 줄 조금 더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길로 나서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이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중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적어도, 스무살이 되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용서했으면 합니다. 울타리를 강하게 쳐서 행동반경을 줄일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집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양질의 기능인 뿐입니다.
 
어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어른은 단 한 사람이면 족한데 말입니다.
 
2018년 9월 30일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여덟번 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여덟 번 째 수업 – 나를 소개해요

 

생애사쓰기는 흐름과 단계가 있다.

혼자 하는 생애사 쓰기는 위험이 더 높다. 여럿이 하는 생애사쓰기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살면서 사람들은 많은 감정들을 억누른다. 그런 것들이 쌓여 돌이 되고 바위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앞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생애사쓰기를 하겠다고 도전하는 건 그 바위 앞에 직면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접근한다.

많은 강좌를 깊숙이 진행할 수 없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놓인 바위를 강사 한 명이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인데,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도움도 적당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떤 바위는 너무 거대해서, 친구나 지인이나 글쓰기 강사의 도움으로 안될 때도 있다. 좀 더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자아와,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이 모인 강좌에서는 섣불리 참가자의 삶을 건드리면 안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생애사쓰기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만약에 타인들이 당신에게 “험난하게 살아왔다”라고 말한다면 절대로 혼자서 자기 삶을 돌아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소금기둥이 되리라는 말처럼. 어쩌면 그 말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이 무너져 버린다는 비유는 아니었을까.

이 생애사쓰기 수업은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그 특수성은 단지 조금 느리다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쉽게 발달장애인은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작은 그룹 안에서도 명확히 확인했다. 수영씨는 아무리 봐도 지능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동선씨도 지능이 낮아보이지 않는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과의 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처세에 밝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사회성이란 대체 뭘 말하는가? 타인의 감정을 바로 읽어내고 혹은 미리 예측해서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하고 상대방이 좋아할 행동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 의견을 내거나 감추거나, 뭐 그런 행위들을 말하는 거 아닌가?

이 그룹에서 일어나는 처세는 좀 다르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려고 고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자기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하고 절제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평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특강수업도 나간다. 초등학교의 경우 많을 때는 1개 학기에 40시간 이상일 때도 있는데, 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의 특색이 있다. 쉽게 말해 눈치가 빤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강사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아이들이 미리 유추해서 준비하고 대답하면서 그 몇 초간에 일어나는 경쟁이 불꽃튀게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는 대부분 성적이 좋거나 부유한 아이들이 많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정제된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그 반면 부유층이 적고 성적 성취도가 대단히 높지 않은 학교는 경쟁하려는 욕구가 조금 떨어진다. 이런 반이 오히려 아이들의 공동작업에서 창의적인 대답들이 많이 나온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고 모르겠는 걸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모르는 걸 감추려고 애쓴다.

복지관의 이 반에서 감추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 죄책감, 자기의 눈치없는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단지 경쟁하지 않을 뿐이다. 질투나 시기는 있지만 그 강도가 세지 않아 귀여워 보인다.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고 나를 인정받기 위해 손을 높이 드는, 그런 경쟁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이 그룹에서 바로미터로 삼는 것은 모든 참가자들이지만 그 중에 은혜 씨와 기현 씨의 변화를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다. 은혜 씨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고, 기현 씨는 자기 주도적인 문장을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생애사쓰기의 단계는 대체적으로 이러했다. 처음엔 좋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서 쓰고 발표한다. 서로 먼저 좋은 면들을 드러낸다. 그래야 상호간의 신뢰가 생기고 긍정적인 연대의식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 단계가 지나면 1/3 정도 되는 지점에서 조금씩 서로 상처를 노출하기 시작한다. 이건 강사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 꺼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억울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타인과 부딪히며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타인과 나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글을 들으면서 자기 기억을 비교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과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거나, 허언증에 가까운 거짓말로 자기 정체성을 감추는 사람은 끝까지 그 작전을 고수하게 된다. 그런 참가자는 그런대로 내버려 둬도 무관하다. 강사입장에서는, 다 알 수밖에 없다. 글쓰기로 강사를 속일만큼 능수능란한 거짓말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건 글쓰기의 힘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드러나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 마련이다.

서로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 오면 어느 이야기에나 있는 절정부분이 나타난다. 6회기를 넘어가는 수업은 대부분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 드라마틱한 부분을 만나려면 계절을 두 개 정도 같이 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누군가가 써온 걸 읽다가 울고, 그걸 듣고 또 누군가 울고, 그날은 자기 얘기를 숨기고 있다가 집에 가서 혼자 몰래 쓰고는, 강사에게만 가져온다. 발표는 못 하겠다며. 그렇게 하나씩 자기의 비밀을 나에게 고백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가 만일 타인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힘겨워 하는 인간이었다면 이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이입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데, 그저 나는 그런 것들이 다 견딜만 하다.

그래서, 누군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다.

나는 이제 이 교실에서 처음부터 다시 생애사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 회기에 나의 기억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는 일이 가장 앞서야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생애사쓰기 수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쓰기는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나 자신에 대한 소개는 애써 앞서 할 필요는 없다. 만일 조금 더 글쓰기에 능숙한 이들이거나, 자기 성찰을 해 본 경험자들이 모였다면 시작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고 맨 마지막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서 비교해보면 될 것이지만.

그 외 글쓰기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든가, “내가 가장 잘났을 때”등 좋은 기억을 먼저 공유하는 게 쉽다.

7월 10일, 여덟 번째 수업은 그래서 자기 소개하기를 주제로 정했다. 이날 나오는 글의 소재들을 가지고 다음 단계를 하나씩 확장시켜 나가면 된다.

학우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소재들을 나열해보자고 권했다. 나는 어떻게 생겼고, 나의 성격은 어떤 편이고, 나는 뭘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습관은 어떤 게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소원은 무엇인가.

학우들은 이미 음식에 대한 글을 써봤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습관, 싫어하는 타인의 행동, 등에 대해서 적었다. 그리고 대부분 절반이상을 자기의 꿈과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 적었다.

수영 씨는 노래를 만드는데 늙을 때까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역시 최선규아나운서와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수정 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꽃집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으며, 기현 씨는 나에게 확인하지 않고 나중에 바리스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채영 씨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은혜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승민 씨는 보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동선 씨는 바리스타가 되어 해외에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혜은 씨만 자기 꿈을 적지 않았는데, 혜은 씨는 늘 근접한 과거와 현재만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학우들의 글과 그림을 여러 번 다시 봤다. 아무도 “나는 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단 한명도, “나는 자폐인입니다.”라거나, “나는 지적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꿈을 적었을 뿐이다.

2018년 7월 10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일곱 번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일곱 번 째 수업 – 비 오는 날의 추억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맑게 개인 아침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먼 바다의 태풍이 오키나와 근처에 머무르며 전국에 비를 뿌렸다. 폭우가 그친 하늘은 푸르렀고, 오랜만에 공기도 맑았다.

20분 먼저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일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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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교실에 1등으로 도착하면 느꼈던 쾌감이 기억났다. 누가 제일 먼저 오나 지켜봐야겠다는 장난기 서린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담당선생님이 이미 왔다 간 모양이다.

책상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다이어리를 꺼내는데 승민 씨와 동선 씨가 같이 들어왔다. 사무실에 들러 오늘 쓸 재료를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승민 씨는 키위주스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었고 동선 씨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테이프 커팅기를 가져 왔다. 나는 “오.. 둘이 같이 오는 건가요…” 하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둘은 쑥스럽게 웃었다. 승민 씨가 에어컨을 켜뒀으니 문을 닫아야 한다며 문을 닫았다. 승민 씨가 교실 밖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이 동선 씨가 말을 시작했다.

“저한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아서요. 조금 불편할 때가 있어요.”

“아 그런가요? 어떤 친구들이예요? 동선 씨가 인기 짱인가봐요.”

동선 씨가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수정이 누나가 문자를 자꾸 보내는데요. 자기 화난 거 속상한 거 막 저한테 너무 많이 얘기해서 좀 피곤해요. 그리고 자기 얘기 안 들어주고 편 들어주지 않으면 저한테 막 화를 내서요. 부딪힘이 있어요.”

“아, 그렇군요. 수정 씨가 동선 씨를 좋아하나봐요. 승민 씨는 어때요?”

동선 씨가 웃으며 “승민이는 괜찮아요. 저를 잘 챙겨줘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뭔가 장난을 더 치고 싶었지만 웃으며 들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웃음이 절로 났다. 청춘 아닌가. 좋아한다는 건 여러 가지 관계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굳이 더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동선 씨가 나에게 얘기를 술술 해 주는 게 재미났다.

나는 동선 씨와 승민 씨에게 커피 한 잔을 갖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한 번 부탁해보고 싶었다. 학우들이 직접 만든 커피는 아니더라도 일부러 얻어먹어보고 싶었다. 동선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했다. 강사샘 커피라고 하면 그냥 줄거라고 말했다. 동선 씨가 1층 까페로 내려간 사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수정 씨가 들어왔다. 그리고 재민 씨도 들어왔다.

 

학우들이 무슨 얘기를 하다가 또 연애 얘기가 나왔는데 수정 씨가 “연애는 운이야.”라고 했다. 나는 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럼 수정 씨의 운은 누굴까요?” 하고 물었더니 수정 씨가 자지러지듯 웃으며 책상에 털푸덕 엎어졌다.

승민 씨가 “띠로리~”라는 소리를 효과음처럼 내며 장난을 쳤다.

“동선이는 동생이야.” 수정 씨가 항변하듯 말했다. 오늘은 수정 씨 기분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승민 씨는 “수정 언니는 앙탈을 부려요.”라고 말을 보탰다. 그리고는 앙탈부리는 모습을 몸으로 표현해줬다. 내가 다이어리를 뒤적이는 사이에 갑자기 수정 씨와 승민 씨가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 걸그룹 시크릿의 “Love is move”라는 노래라 했다. 승민 씨가 율동까지 곁들여 몸동작을 하며 노래를 불러줬다.

오늘 제일 늦게 온 사람은 수영 씨였다. 늦었어요. 늦었어요. 하며 들어오는 모습이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에 나오는 하얀 토끼 같았다. 수영 씨를 보면 조끼에서 시계를 꺼내 보며 마구 달려가는 흰 토끼가 생각난다. 수영 씨는 귀가 다 나았고 나에게 팔을 보여주며 여기 저기 상처가 나서 최선규 아나운서와 샬롬남매가 못 될 거라고 슬퍼했다. 피부도 예민한 모양인데 감각도 예민하니 많이 긁고 딱지를 뜯어낸 것 같았다. 팔에 얼룩덜룩한 상처가 많았다. 수영 씨가 팔의 상처를 보여주며 속상해하길래 나도 상처가 많다고 했더니 내 팔을 마구 살폈다. 나는 “선생님은 발에 상처가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비가 오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냐고 물으며 칠판에 몇 가지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었다. 부슬부슬, 보슬보슬, 추적추적, 뚝뚝뚝, 주룩주룩, 쏴아, 등등 승민 씨가 태풍이 오는 이야기를 하며 우르르쾅쾅을 말했다. 나는 비오는 날의 기억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권했는데 다들 조금 어려운 모양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이 교실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승민 씨는 비 오는 날 집에서 엄마 아빠와 TV를 보며 쉬었던 기억을 적었고 수정 씨는 감각적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음악소리 같다고 적었다. 은혜 씨는 오늘도 열심히 또박또박 글자를 적어내려갔는데 교회에 갔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로 집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선생님 댁에 머물며 젖은 옷가지를 말렸던 기억을 썼다.

채영 씨는 비가 와서 좋았다. 끈적끈적했다, 라는 표현을 썼다.

재민 씨는 이렇게 썼다. 옆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앉아서 한 가지 한 가지 선택하며 말을 만들었다.

“비 왔을 때가 기억나요. 23살 때 비가 많이 왔어요. 비가 많이 와서 기분이 나빴어요. 점심 때 일하러 가고 있었어요. 우산은 파란 우산이에요. 집에 와서 엄마가 만든 밥을 먹었어요.” 담백하게 쓴 재민 씨의 글이 흐뭇했다.

기현 씨는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하려고 일어났을 때 옆에 앉은 재민 씨의 손을 살짝 잡았다.

손을 잡은 채로 읽더니 슬며시 손을 놓았다.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요

시원하기 때문이에요

검정색 우산이 있는데 나가기 싫어요

옷이 젖으니까요

어제는 비가 조금 왔는데 운동하러

가고 싶었어요 우산쓰고 버스타고

갔어요 운동하고 집에 올 때 우산쓰고

걸어왔어요 비오는 길을 걸어오니 좋았어요

사람들도 우산 쓰고 다녔어요“

기현 씨는 옆에 서서 계속 다음 문장을 뭘 써야 하는지 의논해야 한다. 마침표는 안 찍는 버릇이 있는데 마치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뜻 같아서 나는 마침표 없는 문장도 흥미롭게 읽는다.

처음에 수정 씨가 적은 글을 보고 다른 글을 하나 더 써달라고 종이 한 장을 내주었다.

“어제 주말에 내가 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 꼭 음악같다. 우산을 쓴 내가 음악 같은 소리를 듣고 있네. 그녀의 행복은 음악같은 비 내리는 소리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비가 싫지는 않은 거라고 말해주자.”

흰 종이 위에 내가 제목을 적어서 넘겼다. “우산을 쓰고 빗속에 서 있는 내 모습”. 수정 씨는 부끄러워하다가 큼직한 글씨로 다음 글을 적었다.

“빗물 속에 내리는 걸 나는 들었다. 팝콘처럼 툭툭 사탕처럼 촉촉하고 우리들의 미소처럼 톡톡 햇살처럼 나의 마음 따사로운 빗소리 ♡ 꼭 사랑하는 친구들처럼 내렸다가 안 내렸다가 한다.”

수영 씨는 여전히 손을 마구 흔들며 과거의 기억을 얘기했다.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쩐지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교회 유치원에서 비가 많이 오는 게 기억났다. 밖에 빗소리가 와서 그런가 보다. 보슬보슬 비가 왔다. 너무 비가 오면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기억났다. 마치 크리스천이 될 것이다. 꼭 크리스천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최선규 아나운서와 함께 Rhythm of the Rain 노래를 무대에 서고 싶은 느낌이다.” 문장의 조응이 잘 맞지 않지만 보슬보슬, 이라는 의태어를 넣은 게 인상적이었다. 결국 오늘도 수영 씨의 글은 최선규 아나운서로 귀결되었다. 최선규 아나운서를 만날 수 있으면 수영 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좋아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혜은 씨는 길게 먹은 음식을 적었다. “비가 와서 우산 써요.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어 빗소리 연두색 우산 쓰고 집에 가요 시원하게 아이스크림 먹고 부추전 부침개 먹었다 김치전 부침개 먹고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먹었다 팥빙수 먹고 파시통통 먹고 냉면 먹었다 둥지냉면 물냉면 먹고 수박 먹었어 포도먹고 메론 먹었다 메론 아이스크림 먹고 쿠앤크 아이스크림 먹었다 메로나 아이스크림 먹고 비비빅 아이스크림 먹었다 쿠앤크 아이스크림 먹고 삼겹살 먹었다 고기 먹었다 족발하고 냉면 맛있게 먹었다 피스타치오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먹고 달래전 부침개 먹었다 슬러시 먹고 둥지냉면 비빔냉면 먹었더 메론 아이스크림 먹고 메론 슬러시 먹었어 빵먹고 과자 먹었다 요구르트 먹고 앙팡 요구르트 마셨다 음료수 마시고 메론마루 아이스크림 먹었다 앙팡 요구르트 마시고 애플쨈쿠끼 먹었다 딸기쿠기 먹고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 먹었다 서울우유 체다치즈 먹어서 치즈 좋아서 먹고 있어 짜장면 짬뽕 먹고 만두 먹었다 여름에 비오는 날 맛있게 많이 먹고 운동하러 갑니다 뚝방길 걸어요 살찌는데 많이 먹어 운돈해야지 다이어트 해야 돼 빵 조금만 먹고 산에 다니기 커피 조금만 마셔 밀가루 조금만 먹어 집에서 국정홍보처들어가요 아이스크림 조금만 먹고 적당히 먹었다.”

혜은 씨의 글은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운율이 느껴진다. 혜은 씨가 읽을 때 운율을 넣어서 읽는데 항상 3,4조를 맞춰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3,4 운율을 맞춰 읽어보면 리듬이 느껴질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다섯 글자지만 소리가 짧고, 빵, 같은 것은 소리가 길어서 한국어에 살아있는 운율이 매우 생생하다. 이 글은 모두 먹을 거만 적은 것 같지만 혜은 씨가 비오는 날 먹었던 음식을 나열한 것이다.

다들 글을 쓰고 발표하는데 승민 씨가 동선 씨에게 쓴 편지를 읽겠다고 했다. 사랑해, 결혼하자, 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도 없을 때 몰래 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다. 이건 중요한 얘기니까, 친구들이 놀리지 않도록, 몰래 몰래, 단 둘이 있을 때 고백하는 게 좋겠다며 말렸다. 승민씨는 그래도 발표하겠다고 우기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편지는 두 번 접어 가지고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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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에는 빗방울 모양으로 오려낸 종이를 나눠주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일일이 한 명씩 확인하고 지도하며 열심히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혜은 씨는 모든 걸 초록색으로 그렸다. 왜 다 초록색이냐고 물었더니 메로나 색깔이라고 답했다. 혜은 씨는 계속 웃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칠판에 분홍 구름과 파란 구름을 붙이고 물방울들을 연결해서 붙였다. 미술 선생님이 학우들의 그림을 봐주는 동안 분홍구름이 떨어져 내가 칠판앞으로 다가가 다시 구름을 붙였다. 채영 씨와 수정 씨가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나를 쳐다봤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현 씨가 자동차 그림을 그려넣었다. 비오는 날 자동차는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이건 레이 자동차인데 하얀색이라고 했다. 비오는 날 하얀 레이 자동차에 채영이를 태우고 놀러갈 거라고 했다. 채영 씨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양팔을 높게 들어 기뻐했다. 기현 씨는 빨간 자동차는 불자동차 같아서 좋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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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우들이 그림을 그리고 붙이는 걸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마음이 편했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학우들이 악수를 하고 돌아간 다음 담당 복지사와 미술선생님, 나 셋이서 빗방울 그림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얘기했다. 일단 파일에 담긴 할거지만 스캔을 어찌할까 물어서 한 사람이 그림 빗방울 세 개를 한꺼번에 스캔해두면 나중에 자석툴로 따서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 개별로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일주일이 지나면 학우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 사이에 승민 씨가 동선 씨에게 편지를 전해줄까 궁금하다. 기현씨는 운전을 하기 어려울텐데, 하얀색 레이에 채영씨랑 같이 타고 여행을 갈 날이 올까. 그리고 이 수업에 커플이 나타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리고 커플이 안된 학우들은 살짝 삐치기도 할까? 여러 가지가 궁금해졌다. 연애는 고달프고 힘든 일이다. 청춘의 연애는 그래도 반짝이니까. 학우들도 모두 누군가에게는 유달리 반짝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2018년 7월 3일의 기록

“포기하지 않아, 지구” 집필후기

2018년 5월 23일에 출간된 지구나눔연구소 기획의 어린이, 청소년 자율연구프로젝트에 관한 보고 기록 “포기하지 않아, 지구”의 집필후기를 나눕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789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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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나눔연구소 <포기하지 않아, 지구> 집필후기 1편★

 

ESD.

왜 자꾸 영어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서구에서 들어온 분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들 합니다.

한국어로 ESD를 풀어내면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지속가능발전을 말합니다. sustainable이 지속가능한, 지속성을 말하고 development가 발전을 말합니다. sustainable은 sustain과 ability의 합성어라고 하는데 캠브리지 영어사전에는 ①able to continue over a period of time 일정시기동안 계속될 수 있는 ②causing little or no damage to the environment and therefore able to continue for a long time 환경에 영향이 아주 적거나 거의 없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지속가능, 이라는 것은 그 유래가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부터 시작합니다. 1972년 유엔은 스웨덴에서 “인간환경선언”을 제정하고 선포하였으며 이 움직임은 1992년 리우정상회의와 지구환경회의까지 이어집니다. 리우지구정상회의에서는 agenda21(의제21)이라는 주제를 채택했는데 이는 지구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행동계획을 담은 것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의제21을 채택했고 우리나라는 민관협력기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각 지자체마다 의제21기구가 있고 지방자치정부의 청사 안에 사무실을 둔 경우도 있습니다. 의제21이 10년간 어떤 일을 해왔는가를 평가하는 자리가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평가자리가 열립니다. 전세계 정부, 국게기구, NGO등이 모인 지구촌 최대의 국제회의였습니다. 이때부터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2년에는 의제21의 20주년으로 리우+20정상회의에서 우리가 원하는 미래(The Future We Want)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채택합니다. 여기서 밝힌 지속가능발전의 몇 가지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대간의 형평성, 삶의 질 향상, 사회적 통합, 국제적 책임입니다. 쉽게 말해 다 같이 함께 오랫동안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수원에는 기후변화체험관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는 생활방식을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수원시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에서 기후변화뿐 아니라 의제21의 행동원칙들을 공부하던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교사들은 “지구나눔연구소”라는 연구팀을 만들어 연구모임을 하다가 수원시와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두드림, 경기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학생자율연구팀을 모집하게 됩니다.

 

학생자율연구팀이란 지속가능발전의 다양한 주제를 학생들이 스스로 골라 그 주제에 맞는 연구를 학생들 스스로 해내는 동아리를 말합니다.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주제가 지구 전체의 연구과제로 주어진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에서는 교육으로 접근할 방법이 미미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미래를 꿈꿔보고 싶은 교사들의 마음이 모여 첫 번째 지구나눔연구소의 학생자율연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경기도지역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기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한 문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연구가 가능할 팀을 모아 교사들이 멘토 역할을 자청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지구나눔연구소 <포기하지 않아, 지구> 집필후기 2편★

 

지속가능발전, 환경,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들 “북극곰”을 떠올립니다. 작은 빙하 위에 두려운 표정으로 안타깝게 서 있는 엄마 북극곰과 아기 북극곰 두 마리. 이 이미지는 강렬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극까지 가서 북극곰의 생태를 연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구나눔연구소는 주변에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요소를 찾기로 합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엇이 문제인가 둘러보게 됩니다.

함께 오랫동안 어울리며 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찾아낸 주제들은 이런 겁니다.

놀이터의 지속가능성, 과자봉지의 과대포장, 우리 학교의 환경적 요소, 반티를 맞추는 일은 지구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내 필통이 말해주는 지속가능성, 배달문화의 문제점, 폐의약품은 어디로 가나, 까치는 왜 전봇대에 집을 짓나, 가로등이 없는 길목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나의 일상이 평온하게 유지되는 것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어떤 상호작용이 있을까. 2015년 첫 자율연구팀은 과자 과대포장, 폐의약품, GMO문제, 한국의 교육, 지속가능한 학교를 위한 실험, 반티 문화, SNS,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2016년에는 청소년의 화장, 아파트 통학로의 갈등 등의 연구가, 2017년에는 미세먼지, 길고양이, 마을의 가로등, 학교 통학로 등 마을에 대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연구를 지켜본 교사들은 이 이야기를 우리만 알고 끝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 숨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렇습니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이야기들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연구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누구나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을 알려줄 길이 모호해졌습니다. 그래서 결정합니다.

“책으로 만들어 펴내자!”

그러나, 학생들의 연구 과정과 그 결과를 책으로 만들자니 너무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았습니다. 결과자료집도 만들어봤는데 매우 유익하긴 하지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죠. 학생들은 인포그래픽을 배워 그래프도 만들고 시각적 도안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만들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저는 2017년 여름, 빨간소금 임중혁 대표를 통해 이런 프로젝트를 책으로 써 줄 작가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를 추천한 안진희 번역가는 기획자이기도 한데, 평소 제가 지역교육네트워크를 통해 학교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호흡하고, 이런 저런 인터뷰를 했던 것도 눈여겨 본 모양입니다. 집필활동을 간간히 하고 있었습니다만, 제 이름으로 책이 나간 건 아직 없고요, 팀이나 기관의 이름으로 출간되었거나, 기관의 돈을 받았기 때문에 판매할 수 없는 비매품을 주로 쓰는 작가였습니다. 매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마을에 대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곤 합니다. 애초 기획한 것은 아닌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한 학교 교사들이 연락을 해오곤 합니다. 그러면 담당 교사와 그 학교의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들과 함께 찾아낼 것에 대해서 의논합니다. 학교마다 각각 찾아낼 스토리는 달라집니다. 어떤 곳은 적당한 자연환경이 있고 어떤 곳은 통학로가 위태로울 정도입니다. 제가 하는 수업은 주로 마을에서 의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관찰한 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까지 고민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구나눔연구소의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해왔던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율연구팀은 많아야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루어서 더 넓은 주제를 가지고 더 친밀하게,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자료를 먼저 받고 선생님들이 원하는 책의 집필방향도 들었습니다.

“그럼 이건 청소년 소설처럼, 이야기로 가야되겠는데요. 처음에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주제를 찾게 되었고. 대사도 넣고, 아이들 캐릭터도 선명히 만들어가면서요.” 선생님들은 반색했지만 그게 가능하겠냐는 반문을 했습니다.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죠.

얘기를 해놓고도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것이야 이야기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스토리로 간다면 제일 좋겠으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고. 아이들의 연구주제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참신해서 재미난 요소가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일단 제가 얘기한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가장 빠르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장곡중학교 탄산수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약속을 잡았습니다.

 

 

★지구나눔연구소 <포기하지 않아, 지구> 집필후기 3편 ★

 

 

처음 만난 장곡중 학생들은 학교 자치회의 힘으로 외모단속이 없는 학교가 되자 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화장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라는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을 인터뷰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교사들과 출판사 대표, 저, 이렇게 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2015, 2016년 2년 동안의 학생자율연구 결과를 보고 책에 수록할 연구팀을 선정했습니다. 총 연구팀은 열 다섯팀 정도가 되는데 그 중에 책의 의도에 맞는 연구팀을 가려내어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출한 결과자료들은 모두 있습니다만, 아이들의 진행과정에 방점을 찍어 글을 쓰기로 했기 때문에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추려낸 선발 기준은

  • 자율적일 것
  • 생활과 밀접한 소재를 연구주제로 삼았을 것
  •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있을 것
  • 우왕좌왕 좌충우돌의 경과가 있을 것

 

추려내보니 총 일곱팀이더군요.

이 친구들이 진행한 주제는 놀이터, 아파트 통학로 문제, 반티 문화, 폐의약품 수거, 과자봉지 과대포장, 배달문화, 청소년 화장이었습니다. 고등학생 팀들은 거시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들을 많이 다뤄서 책 컨셉에 맞지 않았고요.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에게 맞춰 집필하기로 했기 때문에 또래들의 이야기만 찾았습니다.

 

장곡중 학생들은 제일 먼저 만나 샘플 원고를 만들어봤습니다. 세 친구들은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인데도 기억도 많고 이야기도 잘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첫 인터뷰를 수월하게 끝내고 두 번째 인터뷰 때는 학교 근처에 가서 선생님이 사주시는 음료도 마시고 아이들이 셀카도 찍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과 인터뷰와 무관해보이는 대화도 나눴는데 이건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잡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부터 천천히 한 팀씩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학생들은 연락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학원에 가는 시간을 피해야 하고 학교 끝나고 학원으로 가기 전에 맞춰 전화통화를 해야 하고요. 초등학교 때 연구팀을 했던 친구들은 전화기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어머니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연구를 독려했던 학생들은 약속을 잡기가 쉬웠습니다만, 학생들 스케줄이 제각각이라 한 번에 모두 모이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인터뷰 당시 중3이던 친구들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는데다가 모두 한 아파트에 살고 어머니들끼리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팀이라 한 번에 네 명을 다 같이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거의 진행이 안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뭘 물어봐도 기억이 안난다고 했었는데 첫 인터뷰는 거의 백지상태로 아이들이 배시시 웃다가 끝나버렸는데, 지구나눔연구소 까페에 매일 매일 일지를 올린 기록이 있었어요. 이 기록을 토대로 자료를 정리해 다시 만났더니 ‘아! 기억나요!’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냈습니다.

 

학생팀들을 만나면 신기한 것이 팀마다 구성원의 성격과 역할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만나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룹의 성격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팀마다 역할분담이 모두 다르지만 모둠마다 리더역할을 하는 친구가 있고, 정리왕이 있습니다. 리더역할을 하는 친구들은 고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다기 보다 제각각 다양했는데 사려깊은 친구, 통찰력 있는 친구, 기획과 계획을 잘 하는 친구, 활동적인 친구, 의사표현을 잘 하는 친구,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며 자료를 찾아오거나 사람들을 만나 거침없이 말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정리왕이 있는 모둠도 있고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 연구팀들은 모두 사전에 서로 아는 친구들끼리 모둠을 만들어 연구소에 연구지원을 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의 절친들도 있고 새 학년 들어 알게 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서로 친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친구의 의견이니까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친구들이 있고 먼저 계획을 세우는 친구가 있으면 저 친구가 다 해주니까 편하고 좋다며 별 이견을 갖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갈팡질팡 했더라고요.

 

겨울의 초입, 원고를 마감할 때가 되었는데 일곱 팀 중에 세 팀을 놓고 다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팀은 어머님들의 지나친 개입으로 자율연구가 안 된 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인터뷰 중에도 너무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고요.

다른 두 팀은 영재반 수업 등으로 매우 바빠서 이 자율연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영재반이나 한생연 수업을 많이 들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두팀은, 본인들의 생활과 밀접하지 않은 주제를 잡았더군요. 배달문화를 고른 친구들은 실질적으로 배달음식을 자주 먹지 않는 친구들이었고, 과자과대포장을 고른 친구들도 친환경 유기농 식습관에 길들여진 아이들이었습니다. 다른 팀과의 균형을 맞춰봤을 때, 자기 생활과 밀접하지 않는 주제로 연구를 한 것은 결국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본 연구였기 때문에, 자율연구로서는 손색이 없지만 책의 구성상 어쩔 수 없이 빼기로 했습니다. 이 부분은 당사자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서 솔직하게 책에서 빠지게 된 사유를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은, 실제 사건에 기대었을 때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나올 것인가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예상한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때의 쾌감이 있지만, 전체 맥락과 많이 어긋나게 되면 몇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을 때는 조화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획한 이 책은 “내 멋대로 연구하는 자율프로젝트”가 중심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연구결과는 전문학자들의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의 기이한 점들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고 어른들이 ‘그런 것도 연구주제가 되나?’라고 물어볼 만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 팀을 덜어내고 나니, 네 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자인 저는 2017년 프로젝트 팀중에 가장 어린이답고 재미났던 연구팀을 떠올렸습니다. 출판사측과 상의하고 기획단 선생님들의 동의를 구해 급하게 마지막 팀을 섭외했습니다.

 

★지구나눔연구소 <포기하지 않아, 지구> 집필후기 4편★

 

길고양이를 연구한 수원파장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어 연락하는데도 꽤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이들의 이야기는 좌충우돌 정말 즐거웠습니다.

학생들을 만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1,2년전의 연구 성과를 다시 돌아보는 아이들은 그 사이 많이 성숙해져 있었고요.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방법과 함께 팀을 이루어 해 나가는 작업에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하던 중3 남학생들에게는 모둠활동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대학생 조별과제의 고충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초등학교때부터 모둠활동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디에나 안하려고 게으름을 피우는 친구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걸 어떻게 극복하느냐 물었습니다.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와 제일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가 발표를 맡으면 된다고 쉽게 대답하더군요.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도 앞에 세우면 꼭 역할을 하기 마련이라고 인생 15년의 노하우를 얘기해주는데 어른들이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모둠활동은 작은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줍니다. 서너명이 모여 어떻게 합의를 이루어나가는지 몸으로 체득한 아이들이 자라서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됩니다. 사회의 변화는 필수적일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미래에 기대를 가져도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인사말이 없습니다. 넣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기획한 선생님들입니다. 아이들의 방황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기다린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의 자율연구가 빛을 발할 수 있었고요.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했을 때 더 나은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스토리는 모두 실화입니다. 중간중간 상황에 따른 대사도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여 조금씩 확장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역할만 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시작으로 이제 교육은 자율적으로 탐색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후기 앞쪽에 밝혔듯이 뛰어나게 정석대로 진행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뺀 것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도 학생들 스스로 자기만의 생각으로 헤매고 떠돌면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의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흐지부지 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낸 자율연구의 매력입니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너희들도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아, 지구! 라는 제목은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지은 소제목 “포기하지 않아, 고양이!”에서 따왔습니다.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어른들이 힘을 보태주고 차분히 기다려주길 바랍니다. 마치 지구처럼요.

 

_순수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지구나눔연구소 선생님,

세심하게 원고를 살펴 준 편집자,

글에 걸맞은 그림으로 효과를 살려준 일러스트, 디자이너와

믿고 맡겨준 빨간소금 임중혁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지구나눔연구소 자율연구팀 친구들에게도요.

 

2018년 5월 25일

꿈의학교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 토론회 후기

<스크롤의 압박>

1.
꿈의학교는 2015년부터 시행된 경기도교육청의 주력사업으로, 이제정교육감이 시작한 사업이다. 학교안과 밖을 모두 아울러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학교를 꾸려간다는 컨셉으로 현재 세 종류의 꿈의학교를 운영지원하고 있다.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 학교는 – 공모사업주체(성인으로 구성된 개인이나 단체)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1개 학기 혹은 1년을 운영하며 예산지원은 최대 4천만원까지. 고르고 다양한 배분을 위해 대체적으로 1천만원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확대하는 추세다. 비영리단체를 우선선발하며 개인자격으로도 지원가능하다. 종교단체나 사교육업체, 이익집단의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 교육단체나 기관에서 자체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서류를 꾸미는 경우는 공모금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 심사과정에서 걸러진다.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 학교는 – 역시 공모사업이지만 여기는 기획과 운영 모두 학생 스스로 해나간다는 것. 이를테면 아이들이 기획안과 예산서까지 세워서 제출해야 한다. 역시 대체적으로 1천만원 이내의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선발지원한다. 여기서 “학교”라는 개념은 배우는 단체를 말하는 것으로 기존 “동아리”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마중물 꿈의 학교는 – 위 두 개 꿈의 학교보다 그 숫자가 적으나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거나 운영하고자 하는 단체들을 선발, 운영비를 지원하며 대략 300만원 가량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이 운영지원금은 혁신교육지구의 경우 지자체 지원과 도교육청 지원금이 공동으로 들어가고 비혁신교육지구의 경우 도교육청 지원금이 들어간다. 혁신교육지구인 경우 더 많은 꿈의학교가 개설될 수 있다.
2017년의 경우 이 사업에 총 31억원 정도가 투입되었으며 약 300여곳을 모집하지만 예산규모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다. 안양시의 경우 2017년 약 40여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2. 꿈의학교 사업의 목적은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진로교육,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배워가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 방과후 학교, 동아리, 꿈다락문화학교 등과 차별화되어야 한다. 창의적인 주제를 가지고 열린 커리큘럼을 제시해야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코스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꿈의학교 취지에 어긋난다. 성인들도 학생들도 이 컨셉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대부분 가져오는 프로그램들은 방과후학교나 학원 커리큘럼과 유사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아이들이 진짜로 자기들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 그 부분에 필요한 강사나 지도자를 섭외하고 창의적인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넘나드는 관계를 형성하고 추후 마을이해와 진로교육으로 확장된다는 것. 실제로 이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아이들이나 자기 취미의 전문화를 꾀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등 재능환원으로 교육공동체의 토양을 형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터놓고 말하기 토론회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지난 주 토요일 안양시 율곡연수원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주최 꿈의학교 터놓고 말해요 토론회에서는 온갖 칭찬이 오갔다. 내가 그 자리에서 칭찬을 더 보탤 이유는 없어 그간 운영지원단으로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몇 가지 지적을 한 부분을 정리한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더니 좋은 얘기들만 오가길래.

1) 교육중독과 과잉 진로교육의 사회
무슨 일만 있으면 교육과 수업, 연수로 해결하려는 교육중독 사회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진로교육을 받아 직업과 취미를 이분화 해 미래를 설계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싶은지 묻지 않고 “뭐 해 먹고 살거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초등 저학년부터 현실적인 미래설계를 하고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꿈의학교의 원 취지를 살리자면 초/중등의 꿈의학교와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의 진로교육은 차별화되어야 한다. 초, 중등은 더욱 넓은 분야로 가치관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력하고 반면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는 노동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웨딩플래너와 축제기획을 하는 학교의 경우 잘 운영되고 있으나 이는 수많은 아이들을 비정규직 무한경쟁 사회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획자들은 아이들에게 직업의 특성과 기술을 말할 것이 아니라 노동문제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직업을 시작할 것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2) 마을이 책임지는 교육이 될 수 있는가
원 취지는 방과후 아이들을 마을에서 키우자는 취지였으나 이 목표는 모든 기관과 단체가 거듭 실패하는 주제다. 꿈의학교도 그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스케줄 하나를 더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의 출발도 그랬으나 사교육이 공교육만큼 필수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계속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주말과 방학으로 꿈의학교 스케줄이 집중되었고 아이들은 주말에도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찾아 다녀야하는가. 이것은 과도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가 헛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곤고한 성벽을 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깰 필요 조차 없는 성벽앞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인가

3) 과도기적 부작용
꿈의학교 참여가 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해 논의가 많았다. 애써 시간을 내 특별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평가를 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치맛바람이 만만치 않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일례로 파주의 출판학교에는 고양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경우가 있었고, 안양지역에서는 기획회의에 아이가 학원을 가야 한다며 대리 출석을 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획안을 제출하거나 교육청 예산으로 개인 인건비를 챙기기 위해 지원하는 단체들도 있다. 본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의도를 훼손치 않을 방법은 이 사업이 계속된다면 교육지원청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교육공무원들은 이 사업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정도 물 흐리는 일은 과도기에 거칠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4) 네트워크의 미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모사업이 그렇듯. 초기에 쇼미더스쿨과 같은 워크숍을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도 정기적 모임과 협력은 부족하다. 사업 후반부가 되면 행정서류와 영수증, 통장에 찍힌 이자까지 정산하느라 운영기관마다 정신이 없다. 네트워크를 지속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는 이 나라 대부분의 공모사업자들이 가진 어려움이다. 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5) 장애인, 다문화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없는가
통합교육이 절실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도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다. 부모가, 교사가, 학생 스스로가 정보를 많이 가진 집단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좋은 교육을 무료로 받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아무리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져도 늘 그 열외에 있다. 장애학생들도 같이 운영할 수 있는 발상은 비장애인들이 쉽게 하지 못한다. 다문화를 수혜의 대상으로 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성적이 낮은 청소년들에게 진로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꼴사나운 발상도 숱하다. 정보의 계층화에 대해 지자체와 교육지원청이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한다.

6) 없으면 못하나
시설과 기자재, 정보의 부족으로 선의를 가지고도 꿈의학교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구)안양서여중을 리모델링하는 안양율곡연수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주체들이 꿈의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장에 논을 만들어 생태교육을 실현할 수 있고, 학교 뒷산의 풍부한 산림자원은 교육과 여가, 치유의 터가 될 수 있겠다. 맞벌이 증가, 1인가구 증가로 요리에 대한 교육 수요가 늘어난다. 요리실이 1개로 되어 있는데 아마 필요한 기관은 점차 늘어날 것이니 이를 고려해주기 바란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뭐니뭐니 해도 댄스다.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를 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야다. 이를 학부모나 교사가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필요한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3. 안양율곡연수원 리모델링안

안양 관내 학생수 감소로 안양서여중을 신안중학교와 통합하고 폐교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 위에 적은 대로 대중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연수원까지 들어가는 길은 도대체 예전에 애들이 학교를 어떻게 다녔나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안전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며 지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셔틀버스 운영이 필수겠다. 또한 정문에서 본 토론장까지 오는 길 내내, 그리고 화장실과 지금 이 토론장의 저 무대까지, 여기는 모조리 건강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장애인접근성을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리모델링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접근성을 고려한 설계는 결국 비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되어 있다.
연수원까지 오는 길을 재설계하거나 연수원을 지역에 개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꿈의학교 운영진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 각 기획단을 꾸려진 연수원 리모델링 기획단과 운영, 홍보 기획단을 꾸리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혁신교육지구인 안양시는 지자체의 적절한 지원으로 그럭저럭 별 일없이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눈에 띄는 부작용등은 자체적으로 자정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꿈의학교보다 더 시급한 상담교사, 학교복지사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은 돈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정말 공교육은 돈이 너무 없다. 정부는 공교육에 돈을 쏟아부어달라. Show me the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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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내 역할은 어딜가든, 나눠준 김밥 우적우적 먹으며 지적질만 진탕 하고 재수없는 자가 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걸로.
+ 지금은 여러 할 일이 산적해 있으므로 문장이 너저분한 것은 그냥 좀 넘어가는 걸로. 퉁.

더불어 배우는 민주시민교육 (토론회 발제)

이하나  (안양,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2017년 6월 22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있었던 경기도교육청 주최 “교실 속 시민교육 이야기”에 발제한 원고입니다.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3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서두에 밝혔듯이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아이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 –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교육청 주관으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연구와 활용방안에 대한 교원연수를 진행중이다.

오늘은 관내 모 중학교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중학교는 연수 시작 가능시간이 3시 30분이후인데 퇴근이 4시 40분이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사전에 학교측에서 2시간 꽉 채워 해달라는 경우도 있겠으나 퇴근시간이 중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건 학교 분위기에 따라 판단한다.
학교 분위기는 섭외를 담당한 교사의 태도와 연수장소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선생님들의 태도에서 한 방에 느낄 수 있다.
어떤 학교는 2시간이 넘어도 무관하다는 분위기가 있고 어떤 학교는 어찌 되었든 시간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나는 퇴근시간을 꼭 초과해서라도 진행할 생각은 없다. 그건 받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민주시민교육 교원연수는
협의체가 구성된 과정을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10개에 걸친 전문분야를 현직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적용할까를 먼저 말한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집필했는데 그 분야가 초등의 경우, 자치, 선거, 평화, 인권, 다양성, 노동, 미디어, 연대, 정의, 안전으로 되어 있고
중학교의 경우 시민, 민주주의, 선거, 자유, 평등, 연대, 복지, 노동, 경제, 미디어, 다문화, 평화로 구성되었다. 중학교가 분야 분류어가 조금 더 관념적이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과내용은 학력에 따라 계속 심층적으로 무거워진다.
한 가지 분야를 심층적으로 파고 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명의 교사가 전 분야를 섭렵하는 건 내 판단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야 중 자신있는 것을 선택하고 교내에서 연구모임을 만들어 각 년간 순차적으로 적용해보길 권한다.
교과서 구성과 교과서 집필의도, 교육현장에서의 추구할 목적을 얘기하다가 내가 몰아가는 핵심주제는 “학교는 민주적인가”, 그리고 “나는 민주적인가”이다.
이 교과는 결론을 낼 필요 없고, 내지 않는 것이 좋다.
교사가 가르치려 들지 말 것,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에 충실할 것,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이 모두 고르게 의견을 말할 수 있게 하되 정답이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교사 먼저 틀을 깨서 자유롭고 여유있게 진행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내가 진행하는 연수의 요점이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학교는 중산층 이상의 주민이 모여 사는 곳인데 실제 수업을 적용해 본 한 교사는 노동의 경우 아이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대신 경제 분야에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 더 수월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지역의 아이들은 본인들의 노동 효용성에 대해 아직 절감하지 못하며 소비를 더 가깝게 느낀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우치다 타다루 선생의 “하류지향”에서 말하는 논점과 일치한다.
최근 박근혜게이트와 촛불집회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은 더없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 학교에서 서슴없이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이며, 헌법과 대한민국 존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교사들은 언제나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뒷감당에 자신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학부모의 민원제기, 교육청이 비협조적이거나, 학교가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면 그 학교의 아이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졸업을 해야 한다.
오늘 연수가 끝나고 어려운 점을 들어봤다.
한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친 아이들이 이제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왜 아이들의 미래가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데 어떻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을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두 번째 선생님은, 사회교과담당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을 어디까지 개입해서 전할 수 있느냐가 늘 고민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꾸 자기 검열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은, 촛불집회 참여하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얘기했다가 민원제기를 받았다고 했다. 민원은 학부모로부터 온 게 아니라 아이가 불만스러워한다고 부모의 입을 빌려 들어온 것이며,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가 사는 마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된다고 전했다.
나는 잦은 토론, 싸워보고 화해해보고 대면해서 말로 갈등을 풀어본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적어도 이 교과를 최대한 활용해서 교실내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중학교에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허망한 토론에 그치지 말고 실제로 학교에서 자치회에 적용을 시키거나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학생회에 안건을 상정하고 교사들과 협의를 하여 교칙을 바꿔나가는 성공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 해 해결하지 못한 것은, 다음해에 후배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가이드가 되어주시면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이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 선거와 정당, 정치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검열에 걸려 넘어지는 선생님들에게도 방패가 생겼다. 그게 바로 경기도교육청의 더불어 사는 민주 시민 교과서인 셈이다. 교과서 안에 이미 노동3권에 대한 명시가 분명히 되어 있고 노사교섭에 대한 토론, 모의 정당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교과내용을 진행한 것으로 뒷감당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민원을 받은 교사의 경우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지침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더 힘을 받아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현장에서 진행할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선생님들의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시기에 대한 절망감이 엄청나고,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의견에 선생님들이 당황할 지경이다.
일례로 한 선생님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인성쓰레기” 라는 단어를 뱉으며,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유사이래, 전국민이 지금 이것은 아니라고 외치는 기회, 학교 현장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장을 넓게 펼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뭔지 단 한 번도 성찰해 보지 않은 자가 오천만과 싸우고 있다. 학교 안에서 사회적경제와, 주거복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교육이 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가 그 길을 크게 열어주었다.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할 필요는 보탤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배를 볼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리며, 내가 수학여행을 가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교실에서 대통령을 욕하기 시작했고 엄마 아빠를 따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민주주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일이다. 중년이 넘어서는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듣고 따를 일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2016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