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서점은 백화점 안에 있다.
내일 있을 일 때문에 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꼭 백화점으로 갈 필요는 없었는데 마트와 옷가게와 문구점이 이동거리를 생각했을 때 가장 적게 움직일 동선은 백화점이었다.

걸음을 아껴야 한다. 겨울이니까.
문구 코너에 가서 검은 색 파일을 사야했다. 어디선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피아노 연주가 들리는데 분명히 누군가 연주하는 소리였다. 음원을 틀어놓은 것과 그랜드 피아노의 해머가 두들기는 소리는 명확하게 다르다.
백화점의 가운데는 길게 뚫려 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이 있는 것처럼 뻥 뚫린 공간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여자의 주변엔 아이를 안은 어른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각국에서 온 펜에 둘러싸여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연주는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졌다.
스테들러, 사라사, 시그노, 몰스킨, 이룸, 프랭클린 사이에 서 있었다.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다들 한 권 정도의 책을 들고 있었다.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 <미움받을 용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이들의 학습만화와, 장난감만 손에 쥔 사람도 있었다.
자기 확인을 하기 위해 사는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 사람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없어도 오늘을 넘길 수 있는 물건을 산다. 물건의 필요성은 주관적이다. 물건은 단지 실제로 쓰이기 위해서이기 보다 때로 위안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굳이 오늘 사지 않아도 될, 시그노 펜 한 자루와, 펜텔의 펜 두 자루와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내가 검은 파일 위에 올려 계산을 기다린 것처럼.
돈을 내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서서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되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생명없는 물건이 위로가 되는 공간에서 사람이 규칙대로 맞추어 연주하는 음악은 어떤 지위를 갖는가.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건 생명없는 물건인가 아니면 물건을 사는 행위인가. 물건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정말 그 물건은 무생물인가.
사물을 바라보고 주머니에 넣어 행복해진다면, 그 때부터 그 사물의 삶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얼마나 지독히 외로우면, 말 걸지 않는 사물을 사랑하며 계절을 건너는가.

2016. 1. 16.

당신을 위한 글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당신을 북돋기 위한 글이 아니라,

힘내라고 종용하는 글이 아니라,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조잘거리기 좋은 이야기들,

당신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싶어졌다.

 

굳이 아픈 마음을 꺼내 진열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강을 건너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어졌다.

외로운 겨울에

호빵정도라도 될까.

오뎅국물보다 쓸모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여며입은 옷자락에 비장함을 숨기고

씩씩한 척 걸어가는 주저하는 발걸음이

추적거리는 진눈깨비처럼 자국을 토한다.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어두운 조명,

허름한 주점에 앉아

뜻도 모를 이야기를 지껄이며

시끄러운 음악속에 묻혀버려도

좋을 이야기들.

별 쓸모없는 이야기를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2015. 12. 17.

마늘을 까며 

마늘을 까며 송곳을 본다. 이렇게 많은 마늘을 까본 적 없다.

이렇게 많이 깔 필요가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보냈다.
안하던 짓을 하려니 왼손 검지손가락이 붉어지며 지릿지릿 통증이 왔다.

마늘을 많이 까면. 맨 손으로.

이렇게 되는구나.
매번 사먹던 깐마늘을 생각했다.

장갑 끼고 까야되는구나.

장갑없이 일하던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맨손으로, 인이 배겨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지난 주에 놓친 송곳을 다시 본다.

고문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고구신때문에 운다. 마늘 때문은 아니다.

마트 언니들 때문에 운다.

오늘 이마트를 갔다와서는 아니다.
고양이가 와서 나를 본다.

손을 내밀자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고개를 치켜든다.
고구신도

이수인도

정부장도
모두 열심히 살았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왜 언제부터 우리모두 패배했는가.
2015. 12. 5.

눈이 많이 오던 날 

눈 내리는 해장국집에 여자 둘이 들어섰다. 신발 벗기 귀찮다며 의자에 앉자더니 이내 방으로 올라왔다. 그 집의 의자가 있는 테이블은 알량하기 짝이 없어서 앉으라고 채워둔 거 같지 않다. 안경 쓴 총각이 들여오는 식재료나 다듬던 콩나물이나 무우를 쌓아두거나 때로 주인장이 읽던 신문지를 놓아두는 곳에 더 걸맞다.
해장국 두 그릇을 시킨 여자가 창문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뱉었다. 어머 어머 눈 오는 거 봐.

눈은 진즉부터 오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눈을 본다는 듯 중년 여자가 흥분했다.

이런 날은 저수지에 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여자가 말해놓고 까르르 웃었다. 앞에 앉은 여자가 아직 낭만이 죽지 않았다고 말을 받았다.

언니 나는 저번에도 비오는 날 저수지 가서 혼자 커피 시켜놓고 두 시간 앉아있다 왔잖아?

여자가 다시 까르르르 웃었다.
해장국을 가져다 주는 앞치마 입은 여자에게 저수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여자가 말을 건넸다. 언니도 땡땡이 치고 저수지 가서 커피나 마시자.

해장국집 의자에 앉은 남자는 계속 혼잣말로 씨팔, 이라 말했다. 막걸리를 한 병 시켜놓고 해장국을 간간이 떠먹으며 또 말했다. 씨팔.
눈발이 흩날리는 사거리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중년 남녀가 우산 하나를 쓰고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택시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와서 서자 여자가 혼자 택시에 올라탔고 창문을 내려 남자에게 살뜰하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신호등이 바뀌지 않은 사이 나는 떠나간 여자의 날씬한 다리를 기억했다.

문득 어제 만난 서른 일곱의 대리기사가 떠올랐다. 프랜차이즈 관리직을 하다 프랜차이즈를 내려고 수제 햄버거집을 열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해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아리송한 얼굴의 사내는 오늘도 부지런히 고기를 굽고 있겠다.

2015. 12. 3.

꼿꼿하게 견디는 삶

구구절절 갈등이 있었다.

어쨌거나 수개월이 지났고, 내가 맡은 일을 마무리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생애사쓰기를 한 게 2013년. 그 원고를 억지로 책으로 내놔보자고 덤빈 게 그 해 가을. 오직 그 책을 위해 출판등록을 했고 그 책을 위해 인디자인을 배웠다.

변화된 장애아엄마들과, 한껏 뿌듯해진 중도장애인과 다섯 군데 사회복지학과를 돌며 북콘서트를 연 게 2014년. 그리고 올 해는 장애아이들과 그 엄마들이 함께 바이올린을 배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사진은 계약에 없었지만 내가 찍고 싶어 찍었다.

 

토요일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수업을 했다.

자폐 아이가 다수였고 소아마비인지 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하나, 다운증후군 아이가 하나.

장애인을 기억할 때, 이름이 아닌, 질병의 이름과 증상으로 지칭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이 이렇게도 저열하다. 부끄럽기 짝이없다.

그래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보자. 형주와 민지와 준영이는 자폐아다. 하영이는 다리가 불편하고, 주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엄마들이 바이올린을 잡으면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로 돌입했다.

키 크고 잘생긴 형주는 책상에 앉아 계속해서 낙서를 했다. 큼직한 글씨로 마구 마구 뭔가를 썼다. 그러다 일어나 저보다 한참 작은 엄마를 내려다 보며 물었다. “엄마 뭐해?”, “엄마 왜 그래애?”

민지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기분이 동하면 계속 교실을 뛰어다녔다. 앉은 자리에서 비타오백을 다섯 개씩 까먹었다. 가끔 손톱을 물어뜯다가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교실바닥에 진동이 울렸다. 간혹 바이올린을 잡고 마구 소리를 내다가 제 엄마의 양볼을 잡고 뽀뽀를 해댔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 민지가 눈을 맞추는 엄마에게 뽀뽀로 말을 했다.

준영이는 구석에 앉아 의자를 돌리고 놀다가 가끔 엄마를 바라봤다. 나와도 눈을 맞췄다.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손으로 반짝빤짝 시늉을 내며 교실을 계속 돌았다. 바이올린 선생님과 눈도 맞추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주희는 혼자 칠판에 뭔가를 쓴다. 1인극을 하듯이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재미난 동화를 듣는 기분이다. 소리를 크게 내고 의성어와 의태어도 잘 쓴다. 마구 이야기를 하다가 칠판에 아는 글자를 한참 적고 혼자 웃는다. 가끔 엄마와 대화도 하고 사람들과 한 두 마디 주고 받는다.

하영이는 입을 꼭 다문 엄마 옆에서 열심히 연습을 한다. 엄마와 똑같이 입을 꾹 다물고. 다리가 불편하다고 앉은 적 없다. 가끔 연습을 쉴 때만 앉았다. 늘 부끄럽고 쑥스러워했다.

 

시린 봄에 수업을 시작했다.

갑자기 온도가 떨어진 11월에 발표회를 열었다.

엄마들은 드레스를 빌려 입었다. 주저하는 엄마들을 선생님이 밀어부쳤다.

한 것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옷만 꾸민다고 욕 먹을 거라는 엄마들에게 바이올린 선생님이 충분히 입을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니 꼭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운 옷을 입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무대에 섰다.

눈물이 나서 뷰파인더가 보이지 않았다.

 

영상을 찍으며 뒤에 서서 혼자 스카프로 눈물을 마구 닦았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어느 한 순간, 남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당신과 많이 다르다고, 나의 아이는 당신이 왜 화를 내는지도 알 수가 없고, 당신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폐를 끼쳤다고 그렇게 늘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내 아이가 얼마나 다른지 설명해야 하고 내 아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 아이가 얼마나 느린지 말해야 하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다른 아이와 같아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단 하루만 있으면 내일 죽어도 좋겠다고 그 엄마가 말했다. 평생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지옥을 누가 알겠냐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아이가 다르다고, 내 아이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늘 말해야 하는 삶인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 삶인가. 이유가 없으면 삶이 아닌가.

고난이 겪는 성숙이 있다고, 좀 덜 성숙한 채 막살면 어떤가, 그러면 인간이 아닌가.

대충 살 수 없는 시간을 꼿꼿하게 견뎌야 산다.

 

커튼 뒤에서 미리 나와 빼꼼 쳐다보는 주희와, 무대에 엄마에게 뭔가를 물어보기 위해 마구 걸어 나오는 형주와 무대에 오르지 않은 준영이와 민지가, 같이 있었다. 기억속에도, 마음속에도.

찬란한 소리가 있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2015. 11. 26. DSC_8555

소나기가 지나간 저녁

 
지난 밤에 공씨디를 사러갔던 대형전자상가에는 내가 찾는 공씨디가 없었다. 지난 금요일쯤 그 곳에 갔을 때 남아있는 19장의 씨디를 모두 챙겨나왔는데, 그 빈자리 그대로였다. 빈자리 그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어젯저녁 심한 돌풍과 비가 내렸던 그 축축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왔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른 전자상가는 흡사 용산전자상가의 축소판 같았다. 공씨디를 여러종류 쌓아놓고 파는 집이 많이 있었다.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 양질의 씨디를 스물 다섯장 사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하늘이 어두웠고, 명확하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는 내 시야안으로 비구름이 분명히 몰려오고 있었는데, 나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단순히 귀찮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비를 맞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 비를 한 참 맞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린다고 했다. 소설이나 영화속의 주인공들은 유난히 나약한 탓에 폐렴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죽는 주인공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적당히 집에 걸어들어가도 그리 많이 젖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자주 가던 국수집에 들어가 만두국을 한 그릇 시켰다. 이 집은 여름에 냉만두국과 더운 만두국을 같이 파는데, 문 앞에 멍한 눈으로 서 있던 종업원은 찬 거? 더운 거? 라고 생뚱하게 들리지도 않는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만사가 귀찮은 그 태도, 내 깊숙한 곳을 보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50원짜리 지폐를 내고 잔돈을 퉁명스럽게 거슬러 받으며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서 비가 쏟아지는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새 오색의 비옷을 챙겨입고 자전거 위에서 페달질을 하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아늑하고 가난한 집으로.
 
방금 전 내가 돌아온 그 길 어귀엔 대형 극장의 공사가 몇 개월째 계속 되고 있었다. 저 멀리 내가 다니던 헬스장도 보였다. 그 어귀에서 쇠그릇을 앞에 놓고 얼후를 연주하던 남자가 얼후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내가 어젯밤 이 길을 지났을 때 주머니를 뒤져 1원을 건네줬던 그 남자 같았다. 대머리가 살짝 벗겨진 그 남자가 앉아있는 그 자리엔 바로 뒤 극장을 짓는 공사장에서 나오는 독성 가득할 법한 시궁창 냄새가 올라오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남자는 더럽고 낡은 바지를 걷어올렸다. 갈색 슬리퍼를 입은 그 남자의 발은 비를 맞는다 해도 도무지 깨끗해질 것 같지 않았다. 호주머니에서 누렇게 변색된 수건을 꺼내 남자는 벗겨진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 그 남자에게 뛰어가 5원짜리 지폐를 건네주고 싶었다. 5원이면, 밥도 한 그릇 먹을 수 있고, 1원을 보태면 어느 욕실에 들어가 샤워라도 한 차례 할 수 있는 돈이다. 10원이면, 내일 아침도 먹고 내일 점심까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습기 가득찬 통유리창이 달린 그 헬스장을 다녔을 때 그곳까지 가는 곳에 앉아있던 서너명의 얼후를 든 남자들과, 구부러진 다리를 가진 남자 아이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된 남자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를 기억했다. 그 때, 나는 매일 매일 그 길을 지나며, 매일 매일 그들을 외면했다. 이제 나의 가난이 그들의 가난을 동정하게, 그들의 가난을 이해하게 한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쌀 한 톨 건네주지 않는다는 진실도. 그 사람에게 내가 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한 끼와 그의 한 끼가 동일해지도록, 나의 근원없는 억울함과, 그의 이유있을 억울함에 대해서 공감을 형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내가 만두국을 반쯤 먹고 나서 양이 많다고 느꼈을 때쯤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 나에게 살기 싫은 표정을 보여줬던 그 여자 종업원은 내 뒤에 바로 들어온 두 명의 젊은 사내들에게 농지거리를 하며 살살 거리고 있었다. 남자라는 존재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는가. 때로 여자는 남자를 살게 한다. 그리고 때로 남자가 여자를 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무슨 이유로 잣대를 들이미는가. 사람은, 동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인데.
 
자신의 밥줄을 가만히 들고 서서 비를 맞고 있던 그 남자가 사라지고, 나의 만두국 그릇속의 만두도 남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단 한 번도 비오는 하교길에 누군가의 우산속에 뛰어든 적도, 누군가가 마중을 나온 적도 없었다. 비가 조금 더 많이 온다면, 그래서 지금 추레하게 슬리퍼를 끌고 나온 나에게 누군가 우산을 씌워준다면 그 사람이 당황할 만큼 그 우산속에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다행스럽게, 비는 그쳤고, 나는 울 기회를 놓쳤다.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길엔 풀과 물이 만난 냄새가 가득했다. 상해의 그 고단한 여름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길에는 시원한 바람, 비 온 뒤에 산책을 해야겠다는 그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공기만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그래도 혼자 자기엔 조금 넓은 침대가 있고 에어컨까지 달린 작은 집이 있다는 사실이 더 할 수 없는 사치로 느껴졌고, 그 사치를 영유하고 싶었다.
 
요즘은, 해가 너무 늦게 진다.
 
2004. 7. 13.

볶음 국수 한 그릇

 
먼 하늘에서 구름이 밀려오는 게 보였다.
 
구릉구릉 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휩싸더니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나보다 생각하자 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요란해 마치 우박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비는 오래 가지 않았고, 10여분 만에 그쳐버렸다. 비가 그쳤다고 생각하고 슬리퍼를 신고 국수나 한그릇 먹어야겠다 하고 아파트를 나섰을 때 굵은 빗방울은 셀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조금씩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복도 창가에 서서 다시 집으로 올라가 우산을 챙겨나와야 할까를 아주 잠깐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몇 방울의 비라면 맞아보기로 했다.
 
국수집에 도착할 때쯤엔 그 몇 방울의 비도 멈추었고, 오랜만에 찾은 그 국수집의 볶음국수의 가격이 4위안인지, 5위안인지가 잠시 헷갈렸다. 계산대에 서서 종업원 아가씨에게 4원인지 5원인지를 묻고 동전 4개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려고 거의 텅 빈 식당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TV 소리가 났고 맨 가운데 테이블 의자위에 커다란 흰 고양이가 늘어져 있었다.
귀여워하기엔 너무 커다란 고양이, 나는 그 자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벽쪽 테이블에 앉았다.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어슬렁거렸고 반바지를 입은 내 다리 주변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내 의자밑으로 들어가 맨 발을 툭 건드렸다. 흠칫 놀라 다리를 움직였더니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TV 소리는 작은 흑백TV를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직원아저씨의 것이었다. 주방에선 키가 큰 젊은 요리사가 커다란 후라이팬 위로 올라오는 불과 함께 놀이를 하는 듯 했다.
 
그 때쯤 바로 옆에 안경을 쓰고 키가 작은 여자가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비닐봉지를 탁자위에 소리나게 올려놓으며 앉았는데 맞은 편에 동행한 열 일고여덟 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에게 계속해서 목소리를 억누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상해방언은 스즈츠 발음이 많아 듣기에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탁한 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언어를 짓눌러가며 그녀는 계속해서 소년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소년은 탁자위에 배낭을 확 집어던지기까지 했으나 물론 싸움이 될 상대도 되지 않아보였다. 그녀와 소년은 모자간처럼 보였는데다가, 여자의 목소리는 짓누르는 깽깽거리는 목소리였고 남자아이는 계속해서 징징거리며 웅얼거리는 말투로 말꼬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볶음국수가 다 되었다는 말을 주방에서 했을 때 이 집에서 아침을 먹을 때처럼 나는 습관적으로 일어나 주방에서 작은 탕 그릇과 국수그릇에 젓가락까지 챙겨 내 자리로 돌아왔고, 나보다 한 걸음 늘 늦을법한 종업원 아가씨가 뻘쭘하게 옆으로 다가왔으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급기야 옆자리의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고 주방사람들도 힐끔힐끔 그 모자를 쳐다봤으나 여자의 깽깽거리는 꾸중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내 국수를 가져다 줄 기회를 빼앗긴 종업원 아가씨가 소년의 식사를 가져다주자 아이는 울면서 징징거리면서 음식을 밀어넣고 그 앞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여자는 계속해서 짓누르는 목소리로 앵앵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반쯤 식사를 하고 벌떡 일어나 냅킨을 가지러 갔다와서는 자리에 앉았다가 밖으로 휙 나가버렸고 여자는 여전히 변함없이 끈질기게 쫑알거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손님수보다 많던 종업원들이 모두 빤히 밖을 쳐다보았고 야채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신나게 칼질을 하고 있던 남자는 휘파람을 불면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킥킥 댔다. 나는 상해방언을 모르므로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장난스럽게도 내가 그 순간 한 생각은, 상해방언을 할 줄 안다면, 이 땅에서 사람들이 왜 저렇게 싸우는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수를 다 먹고 일어나는 길엔 잘 먹었다고 말할 필요도, 잘 가라는 인사도 필요없는 순간이었고, 국수집을 나오자마자 그 앞의 한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맨손으로 코를 팽팽 풀어대고 있었다.
뚱뚱한 시츄가 뚱뚱한 아줌마와 함께 궁둥이를 들썩거리며 지나갔고 아파트 단지에는 면식이 있는 사람들끼리 이제 들어오냐는 안부를 묻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터덜걸음을 걸으면서 핸드폰으로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담배를 사야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다시 아파트 단지앞에 있는 편의점엘 갔다.
 
비는 여전히 오지 않는데 하늘은 구룽구룽하는 소리를 내고 친구에게선 한국드라마 “엄마야 누나야” 가 너무나 재미있다는 문자가 왔다.
 
2004. 5. 21.

NOT THAT BADLY

 
# 1.
 
“근데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식당이고 술집이고, 잡상인들이 이렇게 드나들게 내버려두죠? 여기도 그래. 복권까지는 괜찮다 쳐. 뻥튀기까지도 넘어가. 근데 왜 술집에 들어와서 한치 안주 사라고 그러는데도 왜 주인이 가만히 내버려두죠? 설마 이런 술집까지 국영인 건 아니겠죠?”
“외국인들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베트남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지만 남의 고된 생계수단을 빼앗으면서까지 부자가 되려고 하진 않아요.”
 
방현석 소설 《존재의 형식》中…
 
 
# 2.
 
10원짜리 시들어빠진 장미꽃을 들고 와 사달라고 졸라대던 계집아이는 그 골목에서 상주하고 있었다. 그 계집아이에게 장미꽃을 다섯 송이 사고 난 다음에, 그 아이에게 학교를 가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는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렸다. 그 다음번 술취한 나를 본 그 아이는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 꽃을 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흥청거리는 거리를 잰걸음으로 걸어가던 나에게 달려들던 빡빡머리 사내아이에게 학교에 가겠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었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손만 내밀었었다. 그리고 나는 지갑을 뒤져 10원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다. 저만치에 서 있던 애 업은 여자가 득달같이 뛰어왔었다. 애업은 여자. 그녀와 나의 나이차이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시간이 지나고, 이번 달에 만났던 아이들과 애업은 여자는 깨끗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아가씨 예쁘네요 라는 말까지 건네기를 서슴치 않았다. 아이들은 땟국물에 쩔어있지 않았으며 느물거리며 웃어대기까지 했다. 그 아이들이 작년 이맘때 혼자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인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巨鹿路에 있는 Good Fellas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예쁜 여자애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12시간 근무이지만, 대학생이 1000위안짜리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그 빠에는, 늘 담배상자를 목에 건 젊은 여자가 들어와 술취한 손님들에게 밀수담배를 공급해주었다. 가끔은 DVD를 든 남자가 들어와 혼자 와 앉아있는 외로운 노란머리의 남자들에게 DVD를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빠 밖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양꼬치 장사에게 숫자를 말하면 그녀가 빠 안에까지 가져다 주었다. Good Fellas의 2시가 넘으면, 시내의 모든 빠가 문을 닫고, 거기에 몰려 있던 인구들이 그 좁아터지고 환기 안되는 자리에 앉거나 서서, 담배를 사고 양꼬치를 뜯어먹으며, DVD를 고르기도 했다.
 
과연, 그들의 마음도, “남의 고된 생계수단을 빼앗으면서까지 부자가 되려고 하진 않아서” 인것인가.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땅에서의 윤리는, 귀찮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나의 모든 판단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모종의 관계, 음모이론에 충실한 나의 기준은 왜 이다지도 선량하지 못한 것이었을까.
 
2001년 밥 빌리러 양푼을 들고 옆집 식당으로 들어가던 내가 밥을 먹던 식당의 어린 종업원을 이해하지 못하던 서양아이들을 나무라던 저녁이 있었다. 남의 생계. 남의 고된 생계. 나는 또 오늘 누구의 고된 생계를 훼방놓고, 누구의 고된 생계를 용서했는가.
 
2004. 4. 28.
아주 오래된 어느 날의 기억을 발견해서 옮긴다.

푸닥거리

1.

행동과 실천이 잘 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변한다고 누가 말했다.
계속해서 인지하게 되면 언젠가는 행동도 변하는 걸 스스로 체험했다는 사람이 한 말이다. 공부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텍스트 놓고 답을 도출하는 주입식, 암기식 기술적 공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학교에서의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내내 가짜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버렸다.

2.

가치를 가지고 해나가는 모든 일이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쇠귀에 경읽기도 하루 이틀이지 어떤 날은 너무 지친다고도 했다.
과연 세상이 좋아질까요? 그가 물었다.

세상은 결코 지금보다 대단히 좋아지진 않을 것이고 평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인간이 부지런히 가치를 위해 숭고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이유는 그저 도전하는 바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하겠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없고
백사람이 모여 백마디를 백년동안 외쳐,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말했다.
인간은 그만큼 미약한 것이니,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산을 폭파시키지 않고 돌을 지어 나르던 시지프를 이해할 수 있겠지.

3.

대부분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일.
외면해도 무관한 일.
내가 가진 것이 적지 않기에 대충 살아도 괜찮은 일.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시작하는 일은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일이다.

금요일날 본 연극 중 대사 몇 가지가 남았다.
습관대로 사는 인생 습관대로 살다가 아무 생각없이 죽는다고.
잡귀 들린 인생, 남을 원망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물질에 의존하는 이 모든 것이 잡귀라던 대사. 우리가 아는 정서적 문제를 예전엔 잡귀가 들려서 그랬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잡귀를 쫒으며 사는 일.
푸닥거리는 언제나 필요하다.

2015. 7. 12.

[전시]즐거운 나의 집 – 2015.2. 서울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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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지어진 김수근의 작품.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내 아르코미술관.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한 김수근의 건축물 안에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중첩시켜 보는 것일 지도 모르겠으나 어찌됬건 한국건축에 앞장선 사람이 지은, 둔탁하고 육중한 건물에서 홈 스윗홈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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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나의 집>전시 프로그램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집 속에서 동시에 거주한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

이 세 가지가 하나 된 산에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 말은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가 처한 현실 – 역설적으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주거조건에 처해있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많이 묻는 질문 “아직도 거기 살아?” 라는 것들.

태어나서 여태까지 서른 번을 넘게 이사를 다닌 나에게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은 열군데가 넘어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기억해 낼 때 마다 꼭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다.

전시는 인트로에 해당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우리가 살았던 공간에 대한 스냅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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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들어서는 것처럼, “다녀왔습니다” 라는 발판의 인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이 나온다. 익숙한 물건들, 누군가의 집에 꼭 있던 물건들. 양주, 상패, 애매모호한 성질의 물체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낡은 브라운관 티비엔 사물에 대한 텍스트가 흘러나온다. 오래전 어떤 접대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색깔의 소파에 앉으니 갑자기 장식장이 있던 어느 거실로 돌아가는 듯 하다. “홍은동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던 앞치마를 맨 여자가 나타날 것만 같은 물성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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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들어가면 지지고 볶는 소리가 난다. 하얀 테이블에 미색 자기들이 놓여있고 식탁에서 나눌 법한 대화들이 소설과 문학작품에서 튀어나와 테이블과 그릇에 붙여져 있다. 문득, 그 공간에서 나는 눈물이 올라왔다. 따뜻하고 독립된 부엌 한 번 가져본 적 없던 유년이었으나 부엌과 밥상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아련한 원형이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와 밥을 차려낸다는 것과 함께 먹는다는 것.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중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밥을 먹는 일이 아닐까.

이어지는 침실에서는 함께 잠을 잔다 하더라도 잠이 뒤엉켜 섞이거나 서로 잠을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관계와 잠을 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잠에 빠져들면 인간은 모두 개인이 된다. 꿈과 꿈이 엉키는 일도 없고 잠이 합쳐지는 경우도 없다. 가장 독립적 공간인 화장실도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다. 근대 중국에서는 배변의 문제를 함게 해결하는 공동체중심의 개방형 화장실도 있었으나 아무리 공간을 나눠쓴다 하더라도 배설의 문제는 개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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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부엌은, 함께 해야만 그 가치가 상승되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겠나.

우리가 살던 집에서 느끼는 푸근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에는 오늘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해 말한다. 충격이 시작된다. 현대의 집은 돈으로 귀결되고 부모의 재산과 나의 수입에 비례하여 주택 DTI를 설치미술로 구현했다. 놀랍고도 비참한 결과에 불쾌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뭔가 기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댓가를 가늠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선대에 이루어놓은 자산이 없으면 미래가 불확실한 빚더미에서 시작하고 빚더미로 끝나는데 과연 이 게임에서 돈을 버는 자는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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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마감 마지막 기회. 라는 말이 도시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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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협력전시기관의 철학과 홍보가 같이 담겨있다.

본 전시는 ㈜글린트와 아르코미술관이 협력한 전시라는 게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가 하는 질문에 <즐거운 나의 집>전시는 글린트의 주장에 따른다. 공유주택, 쉐어하우스, 함께 사는 집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건국이래 주택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다. 집이 좁고 낡았다며 시멘트를 들이붓고 발라대더니 땅값은 정신없이 오르고 다닥다닥 붙은 층간소음 작렬하는 공동주택에, 붙박이 장롱 문짝 하나에 300만원이 되는 평당 1400, 2000이 예사로운 나라, 땅과 집을 가진 권력자들은 절대 이 기득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이 말했듯이 “땅이 곧 생명”이라고 믿고 있는 이 수많은 땅주인과 건물주들은 땅이 마지막 생명이며 자손만대 길이 남을 영생의 복권이므로. 과연 대안은 가능한가? 인심좋은 지주들의 선량한 기부에 힘입어서? 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일까?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다음 전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으로 이어진다는데 창밖으로 정말 살고 싶은 집의 풍경이 보였다. 남의 사생활, 누군가의 고즈넉한 집이지만 저런 집 한 채 꿈꾸며 살아도 죽기 전에 한 번 이뤄보기 힘든 나라. 참으로 착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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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같은 고시원을 나와 벌집같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달라진 것 같지만 달라진 건 하나 없다. 집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언제까지나 집의 물성을 무시하고 추억만 곱씹으며 살아야 할까.

2015.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