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세신

일요일 밤인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목욕탕에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낮까지는 그럴만 한데, 원래 월요일 출근 전에는 어디나 썰렁한 법 아닌가. 밤 10시가 다 되어 들어섰는데 꼬맹이들도 엄청 많고 가족단위 입장객이 많았다. 다들 가족단위로 어디 놀러갔다가 비오고 으슬으슬하니 단체로 목욕이나 하고 가기로 맘 먹은 걸까.

들어서자마자 세신을 할 요량으로 오만원짜리 지폐를 카운터에서 만원짜리 다섯 장으로 바꿔 장농열쇠로 돌돌 싸맸다.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세신을 맡기는 규칙이다. 지폐 두 장을 돌돌 말아 장농열쇠로 싸서 세신관리사들이 있는 코너 창가 선반에 줄을 세워두면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불러준다. 이곳의 세신관리사는 평균 다섯 명 정도, 2교대로 일하는데 대부분 자정에는 퇴근하고 조금 일찍 끝나거나 조금 늦게 끝나거나 1시간 정도 변동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날엔 1시까지도 일을 한다. 아주 손님이 적은 날에는 두 명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데 출근을 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다섯 개의 세신베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편이다. 인근에 다른 찜질방+사우나가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두 세개씩 있지만 여기가 제일 깨끗해서 자주 찾는다.

열쇠를 올려놓으려고 김이 서린 안경을 내리면서 살살 걸어가 열쇠 놓는 곳을 보니 열쇠가 10개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40분 정도 넉넉하게 여러 개의 탕을 돌며 쉴 예정이었기에 나는 일요일 저녁이니 40분쯤 있다가 불러달라고 얘기하려고 여유있게 갔는데 낭패다. 이러면 순서대로 해도 40분 넘어서야 내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가면 대부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긴다. 그냥 귀찮아서, 라는 핑계는 너무 구차하니까 내가 왜 세신을 포기하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 있다. 때 미는 게 너무 힘들면 안 밀면 될 거 아닌가. 안 밀어도 안 죽는다. 때 미는 게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도 있다. 애를 낳고 난 다음부터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내 스스로 내 몸을 닦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야무지기 때문이었다. 애가 어릴 때는 녹초가 되어서 머리 감는 것도 기력이 딸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세신관리사는 지치지 않고 구석구석 내 몸을 살펴주니 얼마나 좋은가.

어떤 세신관리사는 나에게 유방에 멍울이 잡히는 것 같다 해서 병원을 갔다가 유선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세신관리사는 하루 종일 남의 몸을 만지게 된다. 세상 수만가지 사람들이 벌거벗고 그 앞에 드러눕는다. 어떤 단서도 없다. 가끔 악세사리를 했거나 문신이 있는 경우를 빼고 대체적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신관리사를 만난다. 그들은 벌거벗은 몸을 만지며 삶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고 앉아 있는 일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여자들만 가득한 날 것의 공간이라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한 사람을 만나면 대략의 역사를 훑어내는 능력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직업이란 게 그렇다. 사람을 대하다보면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몸에 자기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내 다리를 움직이면서 관절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고 어깨를 두들기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는 걸 유추할 것이다. 나는 이들의 전문성을 믿는다. 이들이 병원 가보라는 조언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어서 손해봤다는 사람 없다. 물론, 가끔, 마사지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이 좀 난감할 때도 있다.

수년전, 그날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맨 몸으로 드러누우면 시력이 나빠 사방 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좋은데 문득 누가 날 이렇게 정성스럽게 씻겨줬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기복이 커서 일관성 없는 육아로 가끔 학대하고 가끔 과하게 상냥했던 엄마는 내가 세 살일 때 혼자 머리를 못 감는다고 욕조에 거꾸로 처박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목욕이 공포가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데, 나는 아랑곳없이 물을 좋아했고 여전히 목욕하는 걸 즐긴다. 사주에 물이 적어서 그렇다나. 사주 말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 지독하게 앓았을 때도 극진한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한 달에 두 세번쯤 세신관리사에게 2만원을 내고 때를 미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해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박산호 샘의 책 제목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에겐 그정도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잘 벌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수 년전에 “마흔에 가까울 수록 타인의 돌봄을 사서라도 챙길 필요가 있다.”라고 한 말도 나의 이런 생활습관에 좋은 핑계가 된다.

아무튼 오늘은 대기가 길 것이라 한참을 탕을 오갔는데 1시간이 가까워지자 지루할 뿐 아니라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를 불릴려면 계속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세신을 받기가 쉬운데 이벤트탕이나 약탕에 들어가면 몸이 미끌거려 때가 잘 안나온다고 세신관리사들이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잔소리도 달갑게 받는다. 이제는 나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잔소리가 반가울 때도 있다.

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침대쪽에 가서 기웃거리며 물었더니 순서가 다 되었으니 두 명 정도 내려가면 부르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의 내 번호는 223번. 223번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다다다 빠르게 걸어가서 착지 완료, 자세를 잡고 세신관리사가 딱 폼을 잡았는데 관리사가 부른 번호는 223번이 아니고 213번이었다며, 213번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관리사가 그냥 있으라며 됐다고 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얼핏 듣기로 (안경을 벗으면 눈치를 살피지 못해 귀도 잘 안 들린다) 213번은 5천원을 추가하는 뭔가 다른 코스였던 모양. 그러니 나를 받은 세신관리사는 뚱뚱해서 밀기 힘든데다가 5천원을 잃어버린 심정이었을게다. 때가 안 불었느니, 소리를 잘 듣고 왔어야느니 관리사의 심기불편함이 전해졌다.

바빴다는 얘기다. 이 일은 사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손님이 밀린다고 일할 사람을 더 불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이라는 게 그렇듯이 말이다.

“얼굴 비누칠 해드려?”

이 말은 ‘에지간하면 하지 말고 그냥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이고,

“뒤꿈치 밀어드려?” 라는 말은 ‘이것도 바쁘니까 생략하고 내려가서 니가 알아서 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나는 둘 다 생략해도 좋다고 했지만 관리사는 굳이 발뒤꿈치를 조금만 밀어주었다. 시늉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간지러워서 원. 한마디 한 마디 말투나, 손놀림이 거칠었다. 아주 짜증이 나서 죽겠는 모양이다. 이 관리사는 이미 내가 여러 번 세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차례 7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했고 그때마다 내가 사양했었다. 딱 한 번 5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은 적 있는데 그때는 정말 어깨와 목이 너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던 차였고 이 관리사에게 안마를 받고 나서 하루 정도 시원하게 지내기도 했다. 돈도 돈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매번 사양했었다. 손이 야무지고 매운 편인데 체격이 작고 날렵하다. 나는 이 목욕탕에 1년 넘게 꼬박꼬박 다니며 몇 명의 성향을 파악했는데 이 관리사는 일을 잘 하고 돈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얼굴비누칠이나 간단한 얼굴마사지를 생략하고 세신베드에서 내려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목욕탕을 나가 탈의실에서 내 옷장을 열고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카운터에 가서 5천원짜리 두 개로 바꿨다. 그리고는 5천원짜리를 작게 접어서 다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나를 방금 내려보낸 관리사는 새 손님을 받아 열심히 때를 밀고 있었다. 나는 뿌연 안경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친 다음 그 이의 오일통 아래에 오천원짜리를 넣었다.

나를 빤히 보던 그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이를 어째.”

“덩치값이예요.”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다시 인사를 했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이는 “고마워서 어째. 바빠서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천원에 그이의 미소를 샀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 것이고 그이도 어딘가 억울한 마음을 조금 달랬을지도 모른다. 개뿔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누군가를 화나게 한 것을 수습했다.’는 변명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말하려면 지갑을 열면 되고, 그러기 위해서 또 열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타격이 된다. 사실 세상 이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게 많다. 택배기사가 20kg 짜리 쌀을 나르거나 여섯 개 들이 생수를 배달하면 돈을 더 받는 게 옳은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고, 나처럼 살이 많은 사람은 일 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지니 돈을 더 받아도 되겠지만, ‘뚱뚱하다고 차별하냐’는 논리가 있을테니 그냥 퉁쳐서 간다.

푼돈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일하는 것보다 대가가 적을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푼돈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간혹 나는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 푼돈으로 짧은 순간의 마음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 선한 게 있을까. 나이를 먹어버린 자들에게.

아파트 밖의 세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0271522001

오늘 타임라인에서 계속 돌고 있는 기사에 대한 첨언한다.

 

  1. 아파트 아이들만 반으로 편성해달라, 는 요청이 있다.

– 없지 않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를 지으며 새로 짓는 초등학교가 개교하면 아파트 아이들만 입학원을 내주라는 학부모들도 있다.

수년 전 의왕시 내손동에서도 있었던 실화.

 

– 아파트 아이들만 임시반 편성이 되었더라고요.

이건 1학년 입학 때 임시반 편성은 주소에 기준해서 그렇다.

처음엔 주소지 번지수로 묶는다.

당연히 한 개의 아파트 단지는 한 번지수에 묶인다. 임시반에 들어가면 다 옆 동 앞 동 아이들이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아이들로만 반을 묶기는 쉽지 않다.

 

  1. 2008년쯤 관악산 휴먼시아에 살았다.

원래는 관악산 뜨란채로 허가를 받은 모양인데 입주자들이 휴먼시아로 바꿔달라고 했단다. 왜냐면 휴먼시아가 판교브랜드라나.

그래서 바닥 하수도관 뚜껑은 뜨란채라고 새겨져 있는데 벽에는 휴먼시아로 되어 있었고 나중에 공식명칭도 휴먼시아였다.

뜨란채 하수도 뚜껑을 가진 휴먼시아라.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는 가난한 이미지 벗는다고 이름도 다 바꿨다. 주민들이 원해서였다.

동료들과 회식 후에 “신림동이요”하고 택시를 타는데 직장 선배가 “어머 너 신림동 사니?”하고 수돗물 안 나오는 동네 취급했다는 동네 아가씨 얘기를 들으면 그래 뭐 이름이 대수라고, 바꾸는 게 낫다 싶기도 했다. 신림동은 난향동 난곡동 보라매동 대학동 삼성동 등으로 바꿔서 어디가 어딘지 적응하는데 5년 넘게 걸렸다.

 

  1. 아파트 외 지역에서 살면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주차장과 공원, 놀이터의 부족을 절감한다.

당장 이사를 간다면 주차장 확보가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주민우선주차구역이 있어도 매번 헤매는 걸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려면 매일 주차로 인해 한번쯤 인상을 찡그리거나 쌍욕을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차를 없애면 될 거 아니냐고? 남의 인생에 그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하고는 말을 섞지 않을 참이다.

 

빌라 주변 놀이터가 낙후되었으니 밀어버리고 노인들을 위한 게이트볼장을 신설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요즘 애들이 어디 놀이터에서 노나요? 그리고 그 동네는 애들도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은 시의원이 되었고 재선에 성공했다. 페친신청한 지 오래됐는데 페친하기 싫다.

그 동네, 애들 많다.

그리고 그 동네, 경비아저씨가 출입 단속하는 아파트가 있어서 아무데서나 못 논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출입단속하던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가 그 지경이 된 건 사연이 있다.

 

입주 첫 달에 두 집이 통째로 털렸다. 에어컨 설치하러 왔다면서 트럭을 대놓고 살림을 실어갔다. 새로 넓은 평수를 얻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 새 살림을 샀을테고, 당시 평면티비 500만원짜리 정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가죽 소파 같은 거까지 다 털어갔다고.

나도 거기 살면서 내 집 앞 현관에 놔둔 28만 원짜리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절도범이 잡혔는데 인근지역 고등학생 세 명이었다. 애 엄마가 자전거값을 가져와서 백배 사과해서 나는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범죄의 원인을 파고들면 대한제국까지 올라가야 하니 그 얘기는 이 정도까지. 아무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부자라면, 그들은 자기 재산을 지키는데 더욱 철두철미해진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는 게 더 두려운 법이니까.

 

  1. 신규 아파트 단지는 이기심이 극에 이른다.

아파트 조경도 신경 쓰고 관리사무실도 극도로 긴장한다. 화단은 곱게 가꿔지고 비싼 관리비를 받는다. 이 이기심이 극에 치닫는 기간은 입주 1년차에서 5년차 정도인 거 같다. 하자보수기간이 끝나고 2년 정도 지난 후로는 이런 감정들이 조금 낮아진다. 그 사이에 경매 나오는 집도 생기고 이사들도 가고 이런 저런 경제적 상황에 내몰려 집을 팔거나 전세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생긴다. 전세계약이 2년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전세계약이 두 바퀴 정도 돌고 나면 집을 투자목적으로 산 사람들은 사라지고 살려고 들어온 사람들과 세입자들이 남게 된다. 그러니 그때는 재산불리기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좀 줄어드는 결과로 추정한다.

신규단지에 적어도 10년 살 목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이웃 때문에 얼굴 붉어지는 일이 좀 생길 것이다. 그게 지나야 화단도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대충 살게 된다. 그때쯤 되면 출입통제도 좀 느슨해지고 그제서야 집단주택에 대한 본질이 살아난달까. 새집증후군도 사라지고.

 

서울강남권은 잘 모르겠다.

10년 넘은 아파트는 다들 집만큼 사람들도 낡아진다.

 

나도 내년엔 빌라로 이사할까 생각중인데 주차문제가 해결될까 골치다. 아침저녁으로 쌍욕하는 욕쟁이 아짐이 되겠지.

 

  1. 그래서 도시는,

아파트를 제외한 구역의 치안과 복지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아파트단지는 관리비로 여러 가지가 해결된다. 아파트 안에는 정갈한 재활용쓰레기장도 있고 주차장도 청소한다. 시는 세금 걷어 뭐하나. 골목골목 유휴지 확보해서 쓰레기장부터 제대로 만들면 좋겠다. 어느 아파트는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지하수를 끌어올린 작은 수도꼭지도 만든다. 맘이 없어서 안하는 거지 불가능하다고 절대 생각 안한다. 미화원 채용 늘리고 공공근로 늘리면 될 일인데 그렇게 안한다.

공공근로는 사업이 단계별로 종료되어 1단계 이후 2단계로 진입하기 전에 한 달여를 그냥 쉬기도 한다. 그때는 공원청소도 안 되는 곳이 있다. 공공근로 환경미화 하는 사람들도 그 기간을 어찌 견디나 늘 고민하는 걸 접한 적 있다. 행정처리 해야 된다고 서류에 사인만 하면서 그게 한 사람의 생계를 붙잡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가방 들고 출퇴근하면 따박따박 통장에 돈 꽂히는 사람들은 노력해서 이해하려 들어도 잘 안 될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노력해야지. 밥은 왜 먹나. 밥값 좀 하자.

noname014noname015

*사진은 수원의 다세대/주택가 초등학생들이 우리 동네는 너무 더러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구활동을 하다가 수원 다른 동네에 가서 찍어온 사진.

“우리 동네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네가 낡아서 지저분해지는 건 아니었어요.” 라는 후기가 있었다.

 

 

2018년 10월 27일

범죄사회

JTBC 뉴스룸을 보면서 PC방 살인사건을 저렇게 계속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내가 느껴온 (분석이 아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바로는 이쯤되면 이슈몰이에 성공해서 다음 단계로 진입할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은 듯.
나는 뉴스룸에서 최종적으로 야간노동자 안전에 대한 이야기로 몰아갈 걸 기대했고 그 중간에 심신미약기준과, 촉법소년 얘기정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은 심신미약와 심신상실에 대한 이야기 정도 하고 그쳤다.

하나의 뉴스가 “한걸음 더 들어가려면” 사건 이면에 숨은 진실을 캐내야 한다고 했다. 그 진실은 사회시스템의 빈틈을 찾아내는 것일게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밝혀내거나 우리가 미처 찾아보지 못한 미흡한 점들을 알려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찰의 대응메뉴얼, 건장한 남성이라 그냥 돌아갔다, 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현장에서 마주쳤던 출동경찰들은 30분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줬다. 돌아가지 않고 멀찌감치서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대기하는 경찰관들도 있었다. 경찰이 다 썩었다, 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집 앞에서 고성방가 하는 중년 여성에게 담뱃불붙여주고 얘기들어주는 경찰관도 봤다.(이 중년 여성 나 아님)

야간노동자는 사실 2인 1조로 일할 필요가 있다. 공사현장도, 경찰도 2인 1조가 기본인데 야간노동도 2인 1조가 좋겠지만 이 얘기가 나오면 “최저시급도 올라서 난리인데 미쳤나” 소리가 나오겠지만.

사춘기를 넘기면서 범죄물과 수사물, 르뽀를 즐겨본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는 최애 프로그램. 더 잔혹한 것을 직설적으로 보면서 위로 받는 게 있다. 견디고 살아남은 자의 흔적이다. 그거 내가 겪은 거, 다 별 일 아니구나 살만 해서 여태 살아 저걸 보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일종의 견디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회이슈와 강력범죄가 언론에 많이 노출될 때는 동일한 사회적 현상이 있다. 언론들이 짠듯이 강력범죄를 계속 노출할 때가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엔 강력범죄와 잔혹한 살인범이 가장 적절하다.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자들이 누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강남 청소년 폭행사건이나 강서구 PC방에, 또 강서구인데 여성피살 사건도 나왔다.

에지간한 살인사건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2017년 검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이런 건 그냥 구글링하면 PDF를 통채로 받을 수 있다) 2016년 살인전체 발생건수는 948건인데, 그 중 기수는 344건 (살인한 것) 살인미수, 예비, 음모, 방조죄는 604건이다. 하루 한 건 꼴이다.
2007년은 살인가수가 466건이었고 살인미수가 658건이다.
요즘들어 많아진 게 아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반면 성폭력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2007년 14,344건인데 2016년은 29,357건이다. 이는 신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성범죄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범죄는 강간과 준강간, 불법촬영등 형사법에 적용되는 것만 말한다. 성희롱은 형법으로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범죄에 준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 무서워. 라는 말을 증명하려면 강력범죄(흉악범 > 살인, 강도 등)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건 언제나 20대가 상위에 위치한다.

20181023_023141

요즘 애들 무서워서 애들 가는 데 안가. 라고 말한다면 폭력범죄 연령별 분포추이를 보면 되는데 지난 10년간 폭력범죄 최상위 연령계층은 40대였다. 그래프를 보면 50대가 40대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조만간 역전될 지도 모르겠다.

20181023_023158

누차 얘기하지만, 페이스북에 자기 글, 자기 일상 사진 정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밑바닥을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나도 간접적으로 들은 거고 깊이 관여한 게 아니고 그냥 스쳐가며 본거다. 중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부탄가스 빈통이 널부러졌다는 정도는 깜도 아닌 경우가 많다. 몰랐던 거다.

노출이 쉬워지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이런 범죄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딱 절반쯤에서 나뉠 거 같은데, 동시대인들이 가고 싶은대로 가겠지.

다들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하는데 결국은 다 내 맘 가는대로 가더라. 내 맘 아닌 거 같아도 그게 내 맘인 경우가 더 많다.
사진은 2017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 캡쳐

#40대는_어디가서_술처먹고_싸우지말자

목격자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할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가.

이는 특정할 수 없다.

기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는 행간에 묻어나게 되어 있고, 글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 개인의 역사를 쓰고 공개하는 순간 나는 그 개인이 익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개인은 익명으로 돌변한다. 개인의 역사와 성품을 알고 그 개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해 본 사람들은 고통 받은 개인을 여전히 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와 관계 맺지 않았던 이들에게 개인은 익명이 된다.

어떤 사람, 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갖지만 동시대인의 의미를 갖는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익명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이 된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동시대인과 분절적으로나마 역사를 공유한다. 그 개인이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동시대에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과 역사를 공유하고, 그 개인이 여성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적 역사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지금의 아이들은 10년이 지나도 모두 슬라임과 액괴를 기억할 것이라든가, 지금의 40대 여성들이 위스퍼라는 생리대는 ‘날개달린 생리대’로 기억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집단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순간 개인은 상징성을 가진 익명이 된다. 한 사람의 역사가 상징이 되려면 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개인은 나름대로의 사건을 갖고 있는데 그 사건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은 코드, 즉 상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상화는 피해갈 수 없는데, 어떤 주체들은 이 대상화과정을 거부하기 위해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한다.

개인의 역사는 그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지만, 그보다도 현대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명화가 완성된 사회인 경우, 사회는 그간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쉽게 파괴되지 않을 만큼 견고해지면서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말하고자 한다.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생활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드러낸다는 것이다. 신체와 인격 안에 영원히 숨겨둘 수 있는 상흔은 없다고 믿는다.

발화할 수 있는 사람과 발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해력의 문제이거나 언어구사력의 문제, 혹은 공개에 대한 용기여부가 관여한다. 공개에 대한 용기역시 발화하고자 하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망자가 되어버린 경우다. 죽은 사람은 발화할 수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발화한다. 죽음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온몸에 상흔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이 개인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망자의 말을 대신 풀어내기도 한다. 무고한 사람이 허망하게 떠날 경우 살아남은 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 무력감은 인간의 존엄이 사회 어디선가는 지켜지길 바라거나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대한 약속하지 않은 연대의식에 기원한다. 무력감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어질 때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 때문에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결심한다.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의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다고 소리칠 때, 누군가 그 손을 잡는다. 거기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다. 적어도 이 나라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작동해왔다. 한 개인의 죽음을 통해, 그 죽음의 상흔을 통해, 애도하고 추모하며, 광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오늘 한 목격자가, 한 개인에 대해 목격한 바를 적었다. 혼자 추모할 수 없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험도 어려운 일이지만, 목격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목격한 자들도 유사한 상처를 입는다.  목격자는 때로 유일한 증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들은 맥락 없는 타인의 사건에서 오기도 한다. 왜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강요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시대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글은 완성하지 않기 위해 부러 서둘러 닫는다.

 

왜 싸우냐고 – first penguin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시민단체나 환경단체는 왜 그렇게 나서서 대놓고 반대만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내가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자리였고, 나는 그런 입장도 잘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설명을 했고 그 분도 잘 받아들여줬는데.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시민단체가 잇권을 챙길 수는 없습니다.
30대초반의 단체 간사가 급여를 얼마 받는지 아시나요?
150만원 안되는 친구들이 허다합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도 200만원 조금 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데 무슨 잇속을 챙기겠어요. 물론 시민단체를 앞장세우거나 그 중간에 끼어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죠.

시민단체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건 아니예요.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돈만 벌고 살기 쪽팔려서요.
돈만 벌고 나만 잘먹고 잘 살자니 이 한 세상이 너무 부끄러워서 대신 싸울 자리가 있으면 나가서 싸우는거예요.
대신 누구를 위해 싸우느냐, 더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싸워요.
양쪽의 입장이 항상 달라요.
싸움이 필요할 때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아스콘공장 앞에 초등학교 학부모들 같은 경우죠. 그러면 나가서 같이 싸우는거예요. 원칙은 하나예요. 더 약한 사람들 편을 드는 게 기본이예요. 그러나, 누가 더 약한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손 잡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요. 그렇지만 너무 앞장서서 외칠 수는 없어요. 그럴 때는, 시민들 사이에 싸움이 더 크게 일어나지 않도록 입장을 조절해야 해요.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과 쓰는 돈은 모두 다 공개해요.
홈페이지마다 다 있고, 요청하면 더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봐요. 그걸 어떻게 다 보겠습니까.
귀찮은데요. 내 먹고 살기도 바쁜데요.
결국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은 내 먹고 사는 일에 영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거예요.
플라스틱컵 이제와서 규제 생겼죠? 그거 자원순환시민연대라는 데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90년대부터 싸워온 결과예요.
휴대폰 원가 공개,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싸워온거예요. 3심까지 가서 대법원에서 원가 공개 하라고 판결냈지만 안 하고 있잖아요. 그거 결국 누구 이익인가요? 우리 이익이예요.
그런 일을 해요. 우리는.

환경단체가 교조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요, 저런 산에, 말씀하신대로 짚라인을 달고, 케이블카를 달면 일단 거기서부터 생태계는 망가져요.
그렇지만 그런 시설을 설치했을 때 교통약자들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죠. 미래를 당겨 쓰는거예요.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가 중요해요. 미래를 좀 희생하자, 그리고 오늘 행복하자, 뭐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사람들이 뭘 원하느냐에 따라 그 운동의 정도가 달라지겠죠.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좋은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가 그거고요. 그런거예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사실 시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와서 하니까요. 억울하다고, 피해를 봤다고, 대신 싸워달라고요.

★얼마 전에 계약을 한 일이 하나 있는데, 그 일이 곧 시작된다.
참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그렇다.
모르는 걸 탓하고 싶지 않다.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도 책임이 있다.

동화로 쓰는 생애사 – 9월 4일의 기록

“나 고등학교 때” + 화난 얼굴 행복한 얼굴
수업 10분전, 대부분의 학우들은 그 정도 시간에 들어온다. 담당 복지사도 10분 전에 와서 오늘 결석자를 알려준다. 복지사 선생님과 한 청년이 같이 들어왔다. 건강하고 잘 생긴 청년이다. 자원봉사 선생님이라고 복지사샘이 알려주니 갑자기 교실에 환호성이 터졌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쑥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상민 씨가 일어나서 자기 소개를 하고 싶다고 했다. 편한대로 해도 된댔더니 춤으로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서 승민 씨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줬다. 씨스타의 Ma Boy라는 노래였다. 승민 씨의 춤은 동작이 조밀하지 않다. 전체적인 동작을 크게 확장하여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 미세한 움직임은 잘 표현하지 못해도 충분히 흥이 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오히려 육감적인 동작을 표현하지 않아서 보는 나도 덜 쑥스러웠다. 승민 씨가 춤을 추고 나자 수정 씨도 춤으로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나섰다. 수영 씨가 자기 노래를 부르고, 채영 씨는 어린이 찬양인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혜은 씨는 다들 노래를 한 소절씩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혜은 씨도 노래 하겠냐고 물었더니 가스펠 곡 하나를 골라서 말해주었다. 나는 유투브와 음악 스트리밍 앱을 번갈아 열어가며 노래를 틀었다.
수영 씨가 작곡한 곡중에 “봄바람”이라는 곡이 있는데 나는 이 곡이 참 좋다. 재능 있는 누군가 수영 씨의 곡을 유명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그게 또 좋은 일일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여기 저기 알려보고 있다.
새로 온 자원봉사 청년에게 자기 소개를 하겠다는 의미는 채영 씨 차례에서 무색해졌다. 누군가를 위한 소개가 아니라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 어떤가. 글 쓰기 시간이라고 글만 써야 하는 건 아니다. 노래도 괜찮고 그림도 괜찮다. 울고 웃으며 수다를 떨며 한 시간을 보내도 상관없다. 생애사 쓰기의 의미를 나는 자기 표현하기라고 본다.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넘어가기 위해선 마음의 고갱이를 깊이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여러 명이 같이 한다면 서로를 표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학우들이 춤으로 노래로 자기 표현을 하는 걸 보니 흐뭇했다.
지난 주에 썼던 글은 중학교때 이야기, 오늘은 고등학교때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다른 생애사쓰기는 생애주기별로 하나씩 훑어 나가지만 여기는 이야기의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게 약간 어려워서 단편적으로 끊어서 진행한다. 옛 기억을 꺼내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면이 있다. 비장애인들이나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기 기억을 재구성해 이미 스토리로 만들어 머릿속에 저장해둔다. 수시로 그 에피소드를 꺼내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주목을 끄는데 익숙하다. 인터뷰를 많이 해 본 사람들이 가진 특성이 이런 것인데 자기 서사가 확실해 오히려 그 안에서 한계가 생기는 경우다. 여기서 한 얘기를 다른 데 가서도 하기 때문에 우물처럼 고여버린 서사가 있다. 그 틀을 깨는 질문을 던지면 당황하고 그럴 때 자기 세계의 균열이 일어나는데 어떤 이들은 균열을 두려워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진지하게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자폐와 지적장애의 특성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어렵지만 여기도 분명 자기 서사가 있다. 고정된 서사를 깨는데 비장애보다 어려운 면이 있다. 자폐가 있는 학우들은 자기 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고 내가 그 틀을 깨려고 망치를 들고 덤빌 일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흐름을 타는 정도면 충분하다. 수영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인데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최선규 아나운서나 90살이 되어도 더 멋진 노래를 만들거에요, 최선규 아나운서와 듀엣을 할거예요. 라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은혜 씨는 수현 씨와 다른 서사를 보이는데 은혜 씨의 서사는 다 독립적이다. 본인이 겪었던 불쾌한 정서가 모든 서사를 관통한다. 반짝이는 흰 바지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
학우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혜은 씨도 비슷하다. 각자 일종의 테마를 가진 셈인데 혜은 씨는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어.”, “기분이 안 좋아 아침에 울었어.”가 자신의 테마다. 매번 이 문장이 들어가고 아마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추측할 뿐이다. 혜은 씨에게는 불안이 느껴진다. 세상만물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모든 것들이 쉴 새없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 역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건 아닐까. 작동하기 위해서. 지구가 뱅글뱅글 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인간은 불안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기현 씨는 자원봉사선생님이 딱 붙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나가게 도우니 긴 글을 쓸 수 있었다. 계속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랬냐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사회복지학과 전공학생이거나 자원봉사를 오래 해 본 청년들인데 숙달된 경험이 있어서 나도 많이 배운다. 자원봉사자들도 사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보이긴 하지만, 타인의 마음의 문을 열어 열쇠 하나씩 꺼내는 것 같은 작업은 능숙하게 잘 해낸다. 비장애인 생애사 쓰기에도 이런 역할을 서로 해 보는 게 괜찮을 것 같다.
승민 씨는 요즘 모든 글의 마무리에 “사랑해”를 넣는다. 친구들아 사랑해, 동진아 사랑해, 우리 좋은 친구 되자, 은혜언니 사랑해. 사랑이 넘치는 승민 씨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려고 최선을 다한다.
수정 씨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청년들이 왜 내 시대의 대중문화를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부모님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부모님들은 아마 나보다 10살 정도 많을텐데, 수영 씨만 해도 홍학표, 장철웅, 최선규 아나운서를 말하고 혜은 씨는 자꾸 김병세 이야기를 한다. 지금도 활동하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이지만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들이다. 어디서 봤냐고 물으면 TV에서 봤다고 대답을 하는데 누군가 90년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집안에서 TV를 틀어놨을 것이고 어릴 때부터 그 문화에 익숙하게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시대의 대중문화는 아이돌 음악에 집중되어 있다. 또래의 비장애인에 비해 20년전 대중문화에 모두 익숙해져 있는 게 특이하다. 나는 기억하는 이들이지만 20대 후반의 미술선생님은 잘 모를 이야기들인데 스물 네 살의 수 씨가 탤런트 홍학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웃음이 나올 뿐.
이날은 지난 주에 이어서 얼굴 그리기의 채색을 했다. 얼굴을 그려서 종이에 반절만 붙인다. 떨어져 있는 종이를 넘기면 얼굴이 두 개가 되는데 기분 좋을 때의 내 표정과 기분 나쁠 때의 내 표정을 그리고 색으로 표현했다. 은혜 씨는 기차와 전철을 탈 때 행복했다는 걸 표현하며 행복하면 얼굴이 초록색이 되고 화가 나면 주황색이 된다고 했다. 신종인플루엔자 주사를 맞을 때 기분이 나빴다고 하는데 지난 주에도 신종인플루엔자 주사 얘기를 했다. 무척 아팠던 모양이다. 수영 씨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그렸는데 “컵라면만 먹고 싸우고” 라는 말을 했다. 중고등학교때 음악학원 다닐 때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학원에서 받은 교육이 좀 혹독했던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음악교육을 받다가 고등학교 졸업때쯤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정 씨는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했는데 “미안하구나 얘야.”라는 할머니의 말을 말풍선에 그려 넣었다. 자기 얼굴에는 “할머니 가지마”라는 말을 적었다. 20대 쯤 되면 대부분 아무리 슬펐던 일이라도 자기 검열에 걸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정 씨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감정을 잘 표현한다.
승민 씨는 화가 나면 초록색, 칭찬을 받으면 하늘색이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반장이 뭐라고 했던 걸 기억해서 말했는데 행복한 건 “선”, 불쾌한 건 “악”이라고 말했다. 이분법과 대립은 가장 쉬운 학습법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혜은 씨는 화나면 보라색이 되고 기분이 좋으면 연두색인데, 연두색은 메로나 색깔이다. 혜은 씨는 대부분의 그림에 메로나 색깔인 연두색을 주로 칠한다. 화가 난 얼굴에 보라색을 칠하고 “엄마 혼나” 라고 적었다. 혜은 씨는 조사를 많이 쓰지 않는다.
채영 씨는 기분이 좋으면 살색, 화가 나면 까만색. 기현 씨는 재밌으면 살색, 화가 나면 파란 색이 된다. AOA에 초아가 탈퇴해서 이제 AOA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이 파란 색에 집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 역시도 낭설인 것 같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낭설이 있나.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쉽게 일반론을 찾아내려고 한다. 다양성을 이해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사실을 구겨넣으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을 편협하게 만든다. 자폐는 세상밖으로 나가기 어렵고 자기만의 세상에 산다고들 말한다. 과연 자폐자만 그럴까. 비장애라는 사람들 중에 자폐보다 더 편협하고 더 좁은 자기 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2018년 9월 4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아홉번 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 동화로 쓰는 생애사
9번째 수업 (7월 24일분)
지난 주의 “자기소개하기”에 이어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적어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생애사쓰기에 들어가는 셈인데, 자기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먼저 꺼내고 참가자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아팠던 기억과 그 것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해보고 난 다음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 내가 정말 대단한 주인공이 되었던 경험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세 가지로 나눠놨지만 사실 한 가지 주제다. 가장 잘 하는 것을 했을 때, 그리고 타인의 주목을 받거나 칭찬을 받았을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생애사쓰기는 대부분 연대기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섣부르게 연대기적 기술을 하다 보면 특정한 한 시점에 얽매이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많거나 기억력이 첨예한 사람은 시작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 능력에 따라 이야기를 분할해서 적어보는 게 좋다. 이건 수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몇 회기 내에 끝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획한 수업은 여유있게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자기 기억을 전반적으로 꺼내본 다음엔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이들은 지금 모두 20대니까, 초등학교때,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이야기를 하나씩 나눠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억이 세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폐 성향으로 이미 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조금 단단해지면 내가 가장 화났을 때나 슬펐을 때를 얘기할텐데 이 학우들은 자기가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부분도 같이 적어봐야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 수업이 끝난 뒤 미술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하루에 글쓰기와 그림을 나눠서 하기에 무리일 거 같다며 하루는 글쓰기만 하고 그 다음 주에 미술수업만 집중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미술 선생님은 똑같은 기법으로 그리는 것보다 점점 다양한 방법들을 끌어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물론 나도 다양한 기법의 글쓰기를 해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진행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고, 시점이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처럼 하거나 과거의 이야기 중에 오늘 머릿속에 박힌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릴레이 글쓰기나 이론적인 수업을 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해 이 학우들은 꽂히는 것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해서 그날 그 주간에 무엇에 꽂혀 있느냐가 이야기의 중점이 된다. 주제를 정했을 때 쉽게 받아들이는 것만 어려울 수 있는데 아무래도 글쓰기가 주는 엄숙함과 강박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시간이 여유있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것을 써보자고 했는데 뚜렷한 특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금방 찾아 써냈다. 각자 쓴 내용이 참으로 멋졌다. 수영씨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작곡도 하는데 나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상당히 멋졌다. 내가 유명한 음악프로듀서를 찾아서 곡을 보내보면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유명해지면 악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하죠? 라고 물으니 그렇다면 유명해지는 건 싫다고 완강하게 대답했다. 노래가 정말 좋다. 아깝다. 이 노래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기현 씨는 예의 그렇듯 한 문장씩 물어가며 썼다. 혜은 씨는 설거지를 잘한다고 적었고 채영 씨는 춤을 잘 춘다고 적었다. 감성적인 글을 잘 쓰는 수정 씨가 좋은 글을 썼길래 시를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적어달라고 했더니 귀감이 될 만한 글을 적어주었다. 승민 씨는 며칠 전 복지관을 찾아온 인디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무용도 오래 했는데 연기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은혜 씨는 자기가 만들 줄 아는 빵의 이름을 나열했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다 쓴 뒤에 천천히 일어나 한 명씩 돌아가며 읽었다.
글을 다 읽은 후에는 앞에 앉아 있는 친구를 응원하는 편지를 썼다. 상대방의 칭찬할 점을 적고 응원메세지를 적어보자고 하자 모두들 묻지도 않고 능숙하게 잘 적었다. 평소 글쓰기를 전체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나열하는 형태로 쓰던 혜은 씨가 재대로 된 편지를 적었고, 나에게 일일이 문장을 묻던 기현 씨도 쓱쓱 편지를 적어내려갔다.
그 다음 주에 있었던 그림 수업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고 담당 복지사 선생님이 결과물 사진을 보여줬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 연관된 사물을 그려 붙이고 관절이 움직이는 종이인형을 만든 모양이다. 다들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씩 있으니 참 좋다. 학우들의 오늘은 오랜 교육과 훈련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이들이 받는 교육 중에 비장애인에게도 필요한 교육이 많다. 자기 재능을 살리는 일, 화가 났을 때 대처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자주, 비장애인들이 장애등급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오만하게 자기 삶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게는 과도하게 많은 규칙들을 요구하고 비장애인들은 그 많은 규칙들을 깨버린다.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세상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임금노동이 가능한가에서 왔나? 한 사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인간의 활용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인간을 이용하겠다는 또 다른 인간세력에 의해, 우리는 생산을 강요받고 노동을 유지하는 부품으로 살아가게 된 것일까. 이 생각도 편견일지 모르겠다.
두 주 동안 이 수업은 쉰다. 2주간의 방학이다.
다음 수업은 8월 14일에 있다.
이 뜨거운 여름을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다. 모두들 시원한 곳에서 잘 견디고 있길.
7월 24일의 수업 내용을 밀리고 밀려 8월 5일에 적다.

계절을 두 배로 견디는 일

최악의 무더위라지만, 나는 올 여름을 정말 편케 보냈다.
땀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교실의 특강은 7월 20일로 끝났는데 그 주의 월요일부터 폭염이 시작되었으니, 그나마 나는 여름 노동을 아주 짧게 하고 마친 셈. 이후로는 대부분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만 남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름 넘게 잘 지내고 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더위를 견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가지고 나갔다. 창문을 잠깐 열때마다 도로의 열기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사실 나같이 편케 지내는 사람이 덥다고 불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몫으로 돌아가지만 적어도 과거의 나를 생각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20년전의 나에게도 너무 미안한 일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못하던 시절에 르몽드 디플라마티크에 실린 글 하나가 내 명치끝을 후벼봤는데, 더위와 추위는 빈부격차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때 나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2010년도에 지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집안의 붙박이 장과 집안 곳곳에 배관이 설치되어 있어 집안의 미세먼지를 외부로 내보내는 닥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등록된 차량이 아파트 단지안으로 진입하면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라는 안내음이 울렸고 입주할 때 준 작은 기기를 주머니나 가방에 가지고 있으면 공동현관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호출되었다. 500여세대가 사는 작은 단지에 지하주차장은 2층까지 되어 있어서 주차난이 없었다. 그런 시설에서 내가 7년을 살면서 갖게 된 새로운 습관은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아주 얇은 옷을 입지 않고, 우산을 잘 챙기지 않게 된 것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게 되면, 추위도 더위도 모두 피한 채, 인간이 설정해 놓은 온도, 18도에서 25도 사이의 삶을 계속 영유할 수 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나 더위와 추위를 실감했다. 만일 내가 그 집에 살면서 골프연습장과 백화점만으로 외출을 한정지었다면 일부러 산책 할 때 외엔 외부 공기에 노출될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청난 전력을 써대며 하이브리드 차를 사서, 양심을 달랜다. 3중 유리창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서 액자 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그 아파트는 지역 열병합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끌어오는데다가 태양열에너지가 수시로 저장되어 있어 전력난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섯 살부터 그 집을 떠난 적 없는 내 아이는 정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며칠 전 우리집에 왔을 때 정전이 되었는데, 전자렌지에 햇반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겐 무엇이 전기고 무엇이 전기가 아닌지, 그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 집을 나와 나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하주차장 한 켠에 관리사무실을 만든 사람들이 골프동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보스턴백과 골프가방을 들고 나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쏟아져 나온 폐기물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주워오고 싶어도 그 부피가 상당해 내가 가져올 수도 없는 그런 물자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사는 지금의 이 아파트는 93년에 지어진 신도시1기의 아파트. 제일 넓은 평수가 전용면적 12평. 에어컨이 없는 주민들은 평상에 나와 밤바람을 기다리고 겨울엔 눈이 얼어붙어 주차장이 위험하고 늘 주차공간이 부족해 보도블록위에 차를 걸쳐야 해서 보도블록은 죄다 깨져 있다. 나무 아래 차를 대면 새똥이 매일 매일 새롭게 떨어져 있고 나무 수액도 떨어져 차문이 끈적한 이곳은, 사시사철 계절을 감각할 수밖에 없다.

94년의 더위는 열람실에서 보내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늘 더웠다.
고시원의 강력한 에어컨 바람은 방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휴게실과 외부로 떠돌았고, 옥탑방의 열기는 동생을 탈진하게 해서 응급실까지 가게 했다. 반지하에 살 때는 더위보다 곰팡이, 바퀴벌레, 쥐가 수시로 들락거렸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 안전문이 없던 시절 지하철에서는 들어오는 열차도 열기를 뿜었다. 어쨌거나 늘 더웠다. 그 노동이 끝나는 순간 나는 더위를 견디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었다. 피할 수 없어서 견뎌야 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으니까,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어지간하면 피하겠다고 결심한 셈이다.

폭염은 갈수록 더할 것이고, 홑겹의 베란다 유리문만 있는 지금 내 집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올 겨울에도 세탁기가 얼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겠지.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온난화의 책임이 더 크다면, 그 책임의 부채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하게 겪게 된다. 에너지 빈곤은 계절을 두 배로 힘겹게 만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 정책에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질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힘들게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다.

2018년 8월 4일
(며칠 만에 밤 온도가 29도로 내려간 날)
사진은 2004년. 60년만의 최악폭염을 기록한 상하이, 내가 살던 동네.

IMG_0976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여덟번 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여덟 번 째 수업 – 나를 소개해요

 

생애사쓰기는 흐름과 단계가 있다.

혼자 하는 생애사 쓰기는 위험이 더 높다. 여럿이 하는 생애사쓰기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살면서 사람들은 많은 감정들을 억누른다. 그런 것들이 쌓여 돌이 되고 바위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앞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생애사쓰기를 하겠다고 도전하는 건 그 바위 앞에 직면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접근한다.

많은 강좌를 깊숙이 진행할 수 없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놓인 바위를 강사 한 명이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인데,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도움도 적당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떤 바위는 너무 거대해서, 친구나 지인이나 글쓰기 강사의 도움으로 안될 때도 있다. 좀 더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자아와,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이 모인 강좌에서는 섣불리 참가자의 삶을 건드리면 안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생애사쓰기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만약에 타인들이 당신에게 “험난하게 살아왔다”라고 말한다면 절대로 혼자서 자기 삶을 돌아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소금기둥이 되리라는 말처럼. 어쩌면 그 말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이 무너져 버린다는 비유는 아니었을까.

이 생애사쓰기 수업은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그 특수성은 단지 조금 느리다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쉽게 발달장애인은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작은 그룹 안에서도 명확히 확인했다. 수영씨는 아무리 봐도 지능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동선씨도 지능이 낮아보이지 않는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과의 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처세에 밝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사회성이란 대체 뭘 말하는가? 타인의 감정을 바로 읽어내고 혹은 미리 예측해서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하고 상대방이 좋아할 행동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 의견을 내거나 감추거나, 뭐 그런 행위들을 말하는 거 아닌가?

이 그룹에서 일어나는 처세는 좀 다르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려고 고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자기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하고 절제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평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특강수업도 나간다. 초등학교의 경우 많을 때는 1개 학기에 40시간 이상일 때도 있는데, 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의 특색이 있다. 쉽게 말해 눈치가 빤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강사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아이들이 미리 유추해서 준비하고 대답하면서 그 몇 초간에 일어나는 경쟁이 불꽃튀게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는 대부분 성적이 좋거나 부유한 아이들이 많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정제된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그 반면 부유층이 적고 성적 성취도가 대단히 높지 않은 학교는 경쟁하려는 욕구가 조금 떨어진다. 이런 반이 오히려 아이들의 공동작업에서 창의적인 대답들이 많이 나온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고 모르겠는 걸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모르는 걸 감추려고 애쓴다.

복지관의 이 반에서 감추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 죄책감, 자기의 눈치없는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단지 경쟁하지 않을 뿐이다. 질투나 시기는 있지만 그 강도가 세지 않아 귀여워 보인다.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고 나를 인정받기 위해 손을 높이 드는, 그런 경쟁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이 그룹에서 바로미터로 삼는 것은 모든 참가자들이지만 그 중에 은혜 씨와 기현 씨의 변화를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다. 은혜 씨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고, 기현 씨는 자기 주도적인 문장을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생애사쓰기의 단계는 대체적으로 이러했다. 처음엔 좋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서 쓰고 발표한다. 서로 먼저 좋은 면들을 드러낸다. 그래야 상호간의 신뢰가 생기고 긍정적인 연대의식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 단계가 지나면 1/3 정도 되는 지점에서 조금씩 서로 상처를 노출하기 시작한다. 이건 강사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 꺼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억울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타인과 부딪히며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타인과 나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글을 들으면서 자기 기억을 비교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과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거나, 허언증에 가까운 거짓말로 자기 정체성을 감추는 사람은 끝까지 그 작전을 고수하게 된다. 그런 참가자는 그런대로 내버려 둬도 무관하다. 강사입장에서는, 다 알 수밖에 없다. 글쓰기로 강사를 속일만큼 능수능란한 거짓말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건 글쓰기의 힘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드러나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 마련이다.

서로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 오면 어느 이야기에나 있는 절정부분이 나타난다. 6회기를 넘어가는 수업은 대부분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 드라마틱한 부분을 만나려면 계절을 두 개 정도 같이 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누군가가 써온 걸 읽다가 울고, 그걸 듣고 또 누군가 울고, 그날은 자기 얘기를 숨기고 있다가 집에 가서 혼자 몰래 쓰고는, 강사에게만 가져온다. 발표는 못 하겠다며. 그렇게 하나씩 자기의 비밀을 나에게 고백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가 만일 타인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힘겨워 하는 인간이었다면 이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이입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데, 그저 나는 그런 것들이 다 견딜만 하다.

그래서, 누군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다.

나는 이제 이 교실에서 처음부터 다시 생애사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 회기에 나의 기억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는 일이 가장 앞서야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생애사쓰기 수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쓰기는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나 자신에 대한 소개는 애써 앞서 할 필요는 없다. 만일 조금 더 글쓰기에 능숙한 이들이거나, 자기 성찰을 해 본 경험자들이 모였다면 시작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고 맨 마지막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서 비교해보면 될 것이지만.

그 외 글쓰기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든가, “내가 가장 잘났을 때”등 좋은 기억을 먼저 공유하는 게 쉽다.

7월 10일, 여덟 번째 수업은 그래서 자기 소개하기를 주제로 정했다. 이날 나오는 글의 소재들을 가지고 다음 단계를 하나씩 확장시켜 나가면 된다.

학우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소재들을 나열해보자고 권했다. 나는 어떻게 생겼고, 나의 성격은 어떤 편이고, 나는 뭘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습관은 어떤 게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소원은 무엇인가.

학우들은 이미 음식에 대한 글을 써봤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습관, 싫어하는 타인의 행동, 등에 대해서 적었다. 그리고 대부분 절반이상을 자기의 꿈과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 적었다.

수영 씨는 노래를 만드는데 늙을 때까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역시 최선규아나운서와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수정 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꽃집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으며, 기현 씨는 나에게 확인하지 않고 나중에 바리스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채영 씨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은혜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승민 씨는 보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동선 씨는 바리스타가 되어 해외에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혜은 씨만 자기 꿈을 적지 않았는데, 혜은 씨는 늘 근접한 과거와 현재만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학우들의 글과 그림을 여러 번 다시 봤다. 아무도 “나는 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단 한명도, “나는 자폐인입니다.”라거나, “나는 지적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꿈을 적었을 뿐이다.

2018년 7월 10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일곱 번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일곱 번 째 수업 – 비 오는 날의 추억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맑게 개인 아침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먼 바다의 태풍이 오키나와 근처에 머무르며 전국에 비를 뿌렸다. 폭우가 그친 하늘은 푸르렀고, 오랜만에 공기도 맑았다.

20분 먼저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일등이다!

IMG_9236

학교 다닐 때 교실에 1등으로 도착하면 느꼈던 쾌감이 기억났다. 누가 제일 먼저 오나 지켜봐야겠다는 장난기 서린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담당선생님이 이미 왔다 간 모양이다.

책상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다이어리를 꺼내는데 승민 씨와 동선 씨가 같이 들어왔다. 사무실에 들러 오늘 쓸 재료를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승민 씨는 키위주스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었고 동선 씨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테이프 커팅기를 가져 왔다. 나는 “오.. 둘이 같이 오는 건가요…” 하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둘은 쑥스럽게 웃었다. 승민 씨가 에어컨을 켜뒀으니 문을 닫아야 한다며 문을 닫았다. 승민 씨가 교실 밖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이 동선 씨가 말을 시작했다.

“저한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아서요. 조금 불편할 때가 있어요.”

“아 그런가요? 어떤 친구들이예요? 동선 씨가 인기 짱인가봐요.”

동선 씨가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수정이 누나가 문자를 자꾸 보내는데요. 자기 화난 거 속상한 거 막 저한테 너무 많이 얘기해서 좀 피곤해요. 그리고 자기 얘기 안 들어주고 편 들어주지 않으면 저한테 막 화를 내서요. 부딪힘이 있어요.”

“아, 그렇군요. 수정 씨가 동선 씨를 좋아하나봐요. 승민 씨는 어때요?”

동선 씨가 웃으며 “승민이는 괜찮아요. 저를 잘 챙겨줘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뭔가 장난을 더 치고 싶었지만 웃으며 들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웃음이 절로 났다. 청춘 아닌가. 좋아한다는 건 여러 가지 관계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굳이 더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동선 씨가 나에게 얘기를 술술 해 주는 게 재미났다.

나는 동선 씨와 승민 씨에게 커피 한 잔을 갖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한 번 부탁해보고 싶었다. 학우들이 직접 만든 커피는 아니더라도 일부러 얻어먹어보고 싶었다. 동선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했다. 강사샘 커피라고 하면 그냥 줄거라고 말했다. 동선 씨가 1층 까페로 내려간 사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수정 씨가 들어왔다. 그리고 재민 씨도 들어왔다.

 

학우들이 무슨 얘기를 하다가 또 연애 얘기가 나왔는데 수정 씨가 “연애는 운이야.”라고 했다. 나는 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럼 수정 씨의 운은 누굴까요?” 하고 물었더니 수정 씨가 자지러지듯 웃으며 책상에 털푸덕 엎어졌다.

승민 씨가 “띠로리~”라는 소리를 효과음처럼 내며 장난을 쳤다.

“동선이는 동생이야.” 수정 씨가 항변하듯 말했다. 오늘은 수정 씨 기분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승민 씨는 “수정 언니는 앙탈을 부려요.”라고 말을 보탰다. 그리고는 앙탈부리는 모습을 몸으로 표현해줬다. 내가 다이어리를 뒤적이는 사이에 갑자기 수정 씨와 승민 씨가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 걸그룹 시크릿의 “Love is move”라는 노래라 했다. 승민 씨가 율동까지 곁들여 몸동작을 하며 노래를 불러줬다.

오늘 제일 늦게 온 사람은 수영 씨였다. 늦었어요. 늦었어요. 하며 들어오는 모습이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에 나오는 하얀 토끼 같았다. 수영 씨를 보면 조끼에서 시계를 꺼내 보며 마구 달려가는 흰 토끼가 생각난다. 수영 씨는 귀가 다 나았고 나에게 팔을 보여주며 여기 저기 상처가 나서 최선규 아나운서와 샬롬남매가 못 될 거라고 슬퍼했다. 피부도 예민한 모양인데 감각도 예민하니 많이 긁고 딱지를 뜯어낸 것 같았다. 팔에 얼룩덜룩한 상처가 많았다. 수영 씨가 팔의 상처를 보여주며 속상해하길래 나도 상처가 많다고 했더니 내 팔을 마구 살폈다. 나는 “선생님은 발에 상처가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비가 오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냐고 물으며 칠판에 몇 가지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었다. 부슬부슬, 보슬보슬, 추적추적, 뚝뚝뚝, 주룩주룩, 쏴아, 등등 승민 씨가 태풍이 오는 이야기를 하며 우르르쾅쾅을 말했다. 나는 비오는 날의 기억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권했는데 다들 조금 어려운 모양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이 교실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승민 씨는 비 오는 날 집에서 엄마 아빠와 TV를 보며 쉬었던 기억을 적었고 수정 씨는 감각적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음악소리 같다고 적었다. 은혜 씨는 오늘도 열심히 또박또박 글자를 적어내려갔는데 교회에 갔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로 집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선생님 댁에 머물며 젖은 옷가지를 말렸던 기억을 썼다.

채영 씨는 비가 와서 좋았다. 끈적끈적했다, 라는 표현을 썼다.

재민 씨는 이렇게 썼다. 옆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앉아서 한 가지 한 가지 선택하며 말을 만들었다.

“비 왔을 때가 기억나요. 23살 때 비가 많이 왔어요. 비가 많이 와서 기분이 나빴어요. 점심 때 일하러 가고 있었어요. 우산은 파란 우산이에요. 집에 와서 엄마가 만든 밥을 먹었어요.” 담백하게 쓴 재민 씨의 글이 흐뭇했다.

기현 씨는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하려고 일어났을 때 옆에 앉은 재민 씨의 손을 살짝 잡았다.

손을 잡은 채로 읽더니 슬며시 손을 놓았다.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요

시원하기 때문이에요

검정색 우산이 있는데 나가기 싫어요

옷이 젖으니까요

어제는 비가 조금 왔는데 운동하러

가고 싶었어요 우산쓰고 버스타고

갔어요 운동하고 집에 올 때 우산쓰고

걸어왔어요 비오는 길을 걸어오니 좋았어요

사람들도 우산 쓰고 다녔어요“

기현 씨는 옆에 서서 계속 다음 문장을 뭘 써야 하는지 의논해야 한다. 마침표는 안 찍는 버릇이 있는데 마치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뜻 같아서 나는 마침표 없는 문장도 흥미롭게 읽는다.

처음에 수정 씨가 적은 글을 보고 다른 글을 하나 더 써달라고 종이 한 장을 내주었다.

“어제 주말에 내가 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 꼭 음악같다. 우산을 쓴 내가 음악 같은 소리를 듣고 있네. 그녀의 행복은 음악같은 비 내리는 소리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비가 싫지는 않은 거라고 말해주자.”

흰 종이 위에 내가 제목을 적어서 넘겼다. “우산을 쓰고 빗속에 서 있는 내 모습”. 수정 씨는 부끄러워하다가 큼직한 글씨로 다음 글을 적었다.

“빗물 속에 내리는 걸 나는 들었다. 팝콘처럼 툭툭 사탕처럼 촉촉하고 우리들의 미소처럼 톡톡 햇살처럼 나의 마음 따사로운 빗소리 ♡ 꼭 사랑하는 친구들처럼 내렸다가 안 내렸다가 한다.”

수영 씨는 여전히 손을 마구 흔들며 과거의 기억을 얘기했다.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쩐지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교회 유치원에서 비가 많이 오는 게 기억났다. 밖에 빗소리가 와서 그런가 보다. 보슬보슬 비가 왔다. 너무 비가 오면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기억났다. 마치 크리스천이 될 것이다. 꼭 크리스천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최선규 아나운서와 함께 Rhythm of the Rain 노래를 무대에 서고 싶은 느낌이다.” 문장의 조응이 잘 맞지 않지만 보슬보슬, 이라는 의태어를 넣은 게 인상적이었다. 결국 오늘도 수영 씨의 글은 최선규 아나운서로 귀결되었다. 최선규 아나운서를 만날 수 있으면 수영 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좋아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혜은 씨는 길게 먹은 음식을 적었다. “비가 와서 우산 써요.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어 빗소리 연두색 우산 쓰고 집에 가요 시원하게 아이스크림 먹고 부추전 부침개 먹었다 김치전 부침개 먹고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먹었다 팥빙수 먹고 파시통통 먹고 냉면 먹었다 둥지냉면 물냉면 먹고 수박 먹었어 포도먹고 메론 먹었다 메론 아이스크림 먹고 쿠앤크 아이스크림 먹었다 메로나 아이스크림 먹고 비비빅 아이스크림 먹었다 쿠앤크 아이스크림 먹고 삼겹살 먹었다 고기 먹었다 족발하고 냉면 맛있게 먹었다 피스타치오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먹고 달래전 부침개 먹었다 슬러시 먹고 둥지냉면 비빔냉면 먹었더 메론 아이스크림 먹고 메론 슬러시 먹었어 빵먹고 과자 먹었다 요구르트 먹고 앙팡 요구르트 마셨다 음료수 마시고 메론마루 아이스크림 먹었다 앙팡 요구르트 마시고 애플쨈쿠끼 먹었다 딸기쿠기 먹고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 먹었다 서울우유 체다치즈 먹어서 치즈 좋아서 먹고 있어 짜장면 짬뽕 먹고 만두 먹었다 여름에 비오는 날 맛있게 많이 먹고 운동하러 갑니다 뚝방길 걸어요 살찌는데 많이 먹어 운돈해야지 다이어트 해야 돼 빵 조금만 먹고 산에 다니기 커피 조금만 마셔 밀가루 조금만 먹어 집에서 국정홍보처들어가요 아이스크림 조금만 먹고 적당히 먹었다.”

혜은 씨의 글은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운율이 느껴진다. 혜은 씨가 읽을 때 운율을 넣어서 읽는데 항상 3,4조를 맞춰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3,4 운율을 맞춰 읽어보면 리듬이 느껴질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다섯 글자지만 소리가 짧고, 빵, 같은 것은 소리가 길어서 한국어에 살아있는 운율이 매우 생생하다. 이 글은 모두 먹을 거만 적은 것 같지만 혜은 씨가 비오는 날 먹었던 음식을 나열한 것이다.

다들 글을 쓰고 발표하는데 승민 씨가 동선 씨에게 쓴 편지를 읽겠다고 했다. 사랑해, 결혼하자, 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도 없을 때 몰래 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다. 이건 중요한 얘기니까, 친구들이 놀리지 않도록, 몰래 몰래, 단 둘이 있을 때 고백하는 게 좋겠다며 말렸다. 승민씨는 그래도 발표하겠다고 우기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편지는 두 번 접어 가지고 있기로 했다.

IMG_9256

미술시간에는 빗방울 모양으로 오려낸 종이를 나눠주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일일이 한 명씩 확인하고 지도하며 열심히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혜은 씨는 모든 걸 초록색으로 그렸다. 왜 다 초록색이냐고 물었더니 메로나 색깔이라고 답했다. 혜은 씨는 계속 웃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칠판에 분홍 구름과 파란 구름을 붙이고 물방울들을 연결해서 붙였다. 미술 선생님이 학우들의 그림을 봐주는 동안 분홍구름이 떨어져 내가 칠판앞으로 다가가 다시 구름을 붙였다. 채영 씨와 수정 씨가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나를 쳐다봤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현 씨가 자동차 그림을 그려넣었다. 비오는 날 자동차는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이건 레이 자동차인데 하얀색이라고 했다. 비오는 날 하얀 레이 자동차에 채영이를 태우고 놀러갈 거라고 했다. 채영 씨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양팔을 높게 들어 기뻐했다. 기현 씨는 빨간 자동차는 불자동차 같아서 좋지 않다고 했다.

IMG_9259_픽셀화_사진

나는 학우들이 그림을 그리고 붙이는 걸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마음이 편했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학우들이 악수를 하고 돌아간 다음 담당 복지사와 미술선생님, 나 셋이서 빗방울 그림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얘기했다. 일단 파일에 담긴 할거지만 스캔을 어찌할까 물어서 한 사람이 그림 빗방울 세 개를 한꺼번에 스캔해두면 나중에 자석툴로 따서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 개별로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일주일이 지나면 학우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 사이에 승민 씨가 동선 씨에게 편지를 전해줄까 궁금하다. 기현씨는 운전을 하기 어려울텐데, 하얀색 레이에 채영씨랑 같이 타고 여행을 갈 날이 올까. 그리고 이 수업에 커플이 나타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리고 커플이 안된 학우들은 살짝 삐치기도 할까? 여러 가지가 궁금해졌다. 연애는 고달프고 힘든 일이다. 청춘의 연애는 그래도 반짝이니까. 학우들도 모두 누군가에게는 유달리 반짝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2018년 7월 3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