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회 “대표”유감

오늘 오전 트위터를 들여다보다가 며칠 전 명부에 이름을 올린 “시민의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아마 오늘자 한겨레에 시민의회에 대한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리라. 시민의회를 처음 접한 건, “박근혜게이트”사이트를 통해서였다. 박근혜게이트와 박근핵닷컴을 계속 열어보며 의원 청원을 클릭하고 그 직전날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문자를 열나게 돌린 다음이다. 월요일 밤이었거나, 화요일 오전이었다. 구글닥스 형태였고 제목은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라는 제목이었다. 내가 생각한 “시민대표”라는 것은 광장에서 연단에 올라 자유롭게 발언하는 뭇사람들이었다. 어린이도, 청소년부터 그야말로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한 부산 아지매까지, 내가 생각한 “시민대표”는 그런 모든 나의 이웃 길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이었다.

시민대표를 선출하자는 말과 그 아래 글을 읽어본 뒤 나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니 정보력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름을 적어냈다. 시민대표 중 한 사람이 될 생각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도 정신없다.) 그 사이트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는 장기전이 될 이번 싸움에 직접적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이름을 적어내는 과정은 서명운동이나, 국민청원 정도로 여겼다. 말하자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 드는 것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위에 적은 바와 같이, 내가 다른 데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이 취합하는 정보를 받아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전하는 일 정도였다. 다시 광화문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정보공유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안양지역에서 받아간 손피켓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초를 빌리기도 하고, 내가 아는 화장실을 알려주는 것에 다름 없었다. 그래서 여기 저기 공유도 했고, 관리하는 페이지에도 올렸다.

박근혜게이트가 알려져 있는 사이트라 참가자가 많을 거라 생각했고 광화문에 모이는 인파를 생각해 적어도 1차 시민의회 모집에 1만 명 정도 지원할거라 예측했으나 이후 사이트에서 발표한 명단을 보니 1천명 정도였다. YMCA 각 지역 사무총장들이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띄였고 우리 지역 선배도 있었다. 이름 옆엔 괄호치고 직업이 적혀 있었는데 나름 엘리트 계층이 상당히 많아서 역시 인물들이 먼저 모이는 건가 의심했다. 쉽게 말해,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는 거다.

어제 내가 관리하는 페이지에 시민의회 모집 구글닥스를 걸어놓은 게시물에 와글 공식페이지 관리자가 고맙다는 답글을 달아서 와글에서 한다는 걸 알았다. 오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와글과 YMCA 연맹도 함께 기획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지역도, 내가 아는 다른 YMCA 사무총장도 명단에 들어가 있다. YMCA에 대해 한 마디 보태면,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기독청년운동에서 시작했다지만 종교성을 드러내 거북한 단체가 절대 아니고 나의 경우 매우 편하게 소통하고 조력하는 지역운동의 협업단체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 격을 갖추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표자 격은 가장 많이 일을 하고 가장 넓은 분야를 아우른다는 것이다. 조직력도 좋고 활동력도 강하고 기본적 철학도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팀이다. 내가 지역에서 활동가의 구실을 하게 된 것도 안양YMCA와의 인연 때문이다.

자 그리하여 화요일이 지나, 8일 목요일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수신자인 나는 “공동제안자”가 되어 있는데 향후 정국에 관련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메일로 회신해줄 것을 부탁하며 시민공동토론 운영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했다.

하루에도 해결할 일이 한 둘이 아니고 주로 SNS는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유입하는 입장에서 매일 “시민의회” 사이트를 들여다 본 적은 없어서 그날 메일을 받고 일단 의견을 달라고 한 질문에 답장을 썼다. 마감시간은 9시라고 했는데 시간을 지키기 어려워 조금 넘겨 보냈다.  질문에 답을 쓰는 과정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이메일을 보내고 사이트를 들어가봤다. 시민대표 추천란이 개설되어 있었고 오늘 트위터에서 공개된 여러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추천하기 버튼이 붙어 있었다. 의료사협대표도 있고 정말 제대로 일하는 역량이 대단한 활동가도 한 둘 보였다. 기억나는 건 이계삼씨가 있었다는 것과 그 외 유명인들이 있었는데 석연치 않았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 명단에 나처럼 스스로 이름을 올렸을까 싶은 의심이 들었고 할 일이 있어 금방 창을 닫았다.

그리고 오늘자 한겨레에 기사가 실리며 난리가 쏟아진 것이다. 사람들이 캡쳐해서 올린 시민대표 명단을 보니 김제동 같은 유명인사가 있고 더러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한 모양이다. 동의가 없이 진행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저녁나절 내가 공유한 이진순씨의 글은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오후부터 시민대표, 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민단체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나도 타인을 위해 싸우려고 애쓸 때가 있으나 사실 그건 궁극적으로 타인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싸우는 과정이다. 타인을 위해 싸운다기 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전투력이 좋은 사람들이 모일 필요는 있다. 그들을 “대표”라고 부른다면 “대표”라는 명칭을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사회는 흔하게 “대표”라고 칭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참여연대가 계속 소송을 내서 청와대 접근을 점점 가깝게 한 것이나, 이 나라의 노동운동을 위해 앞장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덜 나올까봐.”,“그냥 촛불 하나가 되고 싶어서”나온, 뭇사람들이고, 그들이 연단에 오르고 깃발을 들고 자유롭게 참여했기 때문에 이만큼의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 트위터리안 수유리킴은 이번 혁명의 성공은 지도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반면 각 지역에서 연대한 “비상시국행동”에서는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를 세우고 피켓을 만들고 집회장소를 섭외하고 사전에 지자체에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연대”라 하지 “대표”라고 스스로를 칭하지는 않는다.

이 글을 쓰려고 한글 파일을 열 때 바로 시민의회측에서 “제안자분들에게 드립니다” 라는 이메일이 왔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사과를 실었다. 방금 전 본 이진순씨의 페북 글과는 논조가 상당히 달라졌다. 시행착오라고 보고 싶다. 나는 이 시민의회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다. 플랫폼을 만들고 다양한 만민공동회를 구성하자는 말인데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해본 사람들이 협의체와 네트워킹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해왔던 말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공동의 “플랫폼” 하나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었고 나도 그렇게 느꼈고 그런 플랫폼들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여기 저기 산발해 있다.

그러나, 과연 하나의 플랫폼이,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할까?

올 봄에 사경계의 언론사 설립에 도전하면서 사경분야의 하나의 플랫폼이 가능한가 타진해봤으나 단 하나의 플랫폼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구조는 앞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합집산, 느슨한 네트워크, 산발적인 조직력이 하나의 명징한 주제 아래서만 뭉칠 것이다. 딱 이번의 촛불혁명처럼 말이다.

얼마 전에 적었던 대로 이번의 촛불혁명의 성공요인은 쉽고, 안전하고 (어린이와 노약자의 진입 문턱이 낮다), 주제가 선명하고 요구조건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후의 거대한 연대의 힘은 이럴 때만 발휘될 것이다. 앞으로는 각자의 욕구와 각 단체의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접하고 그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적어도 1년 이상, 민주주의와 시민주권에 대한 온갖 담론과 비판과 응원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여기서 이것을 혼돈이라 보고 등돌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것이 과정이라 인정하며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시민의회에서 지금 저런 논란이 될 법한 구상을 한 것은 분명 내부의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권력을 잡고 있을 것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있을 법하다. 나는 그것을 의심한다.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복지와 취약계층을 말하는 사람들이 지독하게 관료적이며 권위적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관료제를 타파하는 순간, 그들은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고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단체들이 있고, 조직에 속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활동가들이 있다. 시민 후원금을 유지되고, 회원들이 계속 개입하고 감시하는 구조가 아닌 시민사회단체는 조직유지를 위해 공모사업 분야에 뛰어들었고 폭력적인 80년대 운동권의 권위적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번 시민의회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런 “적폐”다. 폭력적 구조와 그 시절의 폭력성을 낭만으로 치환시키는 수많은 선배님들, 눈을 뜨고 자신을 돌볼 수 없으면 이제 그 자리를 내려놓으셔야 한다. 이번 시민의회의 대표선발에 관한 아이디어는 아마 내부의 선배님들에게서 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한 번 더, 그 구조를 의심한다. 시대가 분명히 바뀌었고, 역사의 전환점인 게 맞다. 오늘 불거진 시민의회의 사태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나는, 굳이 탈퇴를 하거나 항의를 하거나 명부에서 삭제해 달라는 말은 안 할거다. 아마 나 따위는 자연스럽게 소거될 거라 보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10일


자료1.

시민의회측에서 최초 제안한 구글닥스 내용 (삭제될 것을 우려해 복사 붙여넣기)

(공개제안문)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제목 :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부제 : 각계각층 시민들의 공개제안

광장에 서 본 이들은 안다. 직경 50센티의 작은 공간 안에 송곳처럼 곧추서서 직경 2센티의 작은 불꽃 하나로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내는 이들의 간절함을. 눈비 흩뿌리는 차가운 도로 위에 내 아이를 앉히고, 사랑하는 이의 언 손에 나의 체온을 덜어주며,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들의 단호함을. 스스로 한 점 불꽃이 되어 거대한 촛불의 은하수를 이루는 시민들이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을 건져 올릴 유일한 희망이며, 부끄러운 역사를 바꾸어낼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품격이다.

정부와 정당, 기회주의적 언론은 더 이상 국민을 들러리로 삼지 말라. 이제 우리는 일부 특권층의 사유물로 전락한 국민의 주권을 바로 세우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논의하고 설계하려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지혜의 창고이며, 혼돈의 시대를 헤치고 나갈 거대한 사령탑이다.

거대한 촛불의 바다가 주권자의 존엄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모아내는 용광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들이 수렴되는 플랫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의구조’나 ‘대리자’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대변인은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간의 대변인 제도와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창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는, 주권자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고 주권자가 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적시하기 위해, 특권층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시민대표를 선출할 것을 공개 제안한다. 촛불시민대표단은 신망 받는 시민 가운데 온라인 최다추천을 받는 이들로 구성될 것이며, 공개적인 온라인 의사결정구조에 의해 수렴된 민의를 시민들과 순환적 토론을 이어가면서 정부와 정치권, 특검과 언론기관에 전달하고 압력을 가하는 평시민들의 시한부 대표기구가 될 것이다.

시민대표는 주권자의 요구를 대변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이 규정한 유일무이한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국민의 뜻은 국가의 명령이며 그 어떤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나 정치공학적 이해타산과도 무관하게, 투명하게 수렴되고 여과없이 수용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이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과 그 이후의 과제를 논의하는 국가적 의사결정체계 어디에도, 현재 국민의 여론을 가감없이 대변할 정직한 대리자는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 4%의 대통령은, 국민의 뜻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 정치공작과 범죄은닉을 꾀하고 있으며, 국민의 대의기관이 되어야 할 국회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앞세워 민의를 왜곡 대표하고 있다.

박근혜게이트의 공범세력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배를 갈아타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정치권은 광장의 방식과 제도권의 방식이 별개라고 주장하며, 대선후보들은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꾼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박근혜 퇴진과 포괄적인 국가개조를 주장해온 국민의 목소리는, 정치적 협상의 명분으로, 흥정의 대상으로 축소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을, 우왕좌왕하는 제도정치권에 모두 맡길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추천하고 선출한 시민대표단을 구성해서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에 국민의 뜻을 전달하고 관철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대표단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박근혜게이트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고발하고 감시한다. 지난 10월 25일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촛불항쟁에서 확인된 시민들의 목소리는, 박근혜 한 사람의 탄핵이나 측근 몇몇의 처벌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어서는 안 되며 뿌리 깊은 특권층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포괄적인 국가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비리에 가담한 부역자들은 개혁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이들이 꼬리 자르기를 통해 특권연장에 나서지 않도록 법적,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시민대표단은 성역 없는 수사와 엄중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시민의 입장에서 고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시민대표단은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국가개조를 위한 시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수렴한다.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권력집단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 생명과 주권이 존중받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시민대표단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건강한 토론과 합의를 모아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역과 성별, 직업과 세대별로, 각계각층의 총의를 모아 포괄적인 국가개조방안을 정리해서 국가적 의제로 제출하는 것을 과제로 한다.

시민대표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시민대표단은 제한된 임기동안 시민의 의견을 모아내고 대변하는 무보수 자원봉사자이다. 평시민의 일원으로, 어떠한 특권과 독단적 지휘권도 용납되지 않는다. 특정정당이나 이권단체, 대권후보의 입장에 기반한 개인의견을 앞세워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온라인을 통해서 수렴된 국민여론만을 대변한다. 시민이면 누구나, 연령과 학력,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시민대표 후보로 온라인 추천할 수 있으며 이들 후보 가운데 최다 신임을 받은 이들이 시민대표단을 구성한다.

시민대표단 구성을 공개 제안하는 우리들은, 빠른 시일 내에 시민대표의 자격요건과 선출방법, 시민대표단의 구성원칙과 윤리강령에 대한 방침을 세울 것이며, 논의과정은 모두 온라인사이트(http://www.citizenassembly.net)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 앞에 공개하고 의견을 물을 것이다. 공개제안단은 시민대표들이 선출될 때까지 필요한 제반 실무를 담당하고, 대표단이 꾸려지는 즉시 해산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촛불행진만으로는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시민의 위대한 힘을 창의적 공공지대를 통해 수렴하고 제도화 해내야 한다. 정부가, 정당이, 언론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시민적 공공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여덟자 구호만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탁월한 발상과 열정과 힘을 제대로 모아내고 공식, 비공식적으로 확산할 때이다. 직접민주주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토론과 성찰에 기반한 숙의적 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와 정당, 언론이 지금껏 보여주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이제 시민의 손으로 만든다.

공동제안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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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을 입력해주시면, 공동제안자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공동제안자는 대표단의 구성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며 대표단이 구성되는대로 역할을 종료합니다.

공개시점은 12월 7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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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제안자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곧 공동제안자를 공개하고 시민대표 추천단계를 진행합니다.

관련 토론 및 제안은 http://www.citizenassembly.net 에서 진행됩니다.


자료 2.

 

12월 8일 수신한 시민의회측의 이메일

시민공동제안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시민공동제안의 실무를 맡고 있는 와글입니다.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는 제안은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1차로 128명, 2차로 1,013명까지 총 1,141명의 시민들이 공동제안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박근혜게이트.com에서 명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부터 공동제안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두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http://www.citizenassembly.net)에 들어오셔서 “시민의회 운영원칙” 토론방이 있으니 주제별로 여러분들의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11일까지 의견을 모을 예정입니다. 12일부터는 시민대표 선출과정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로는, 공동제안자들의 제안과 관련해 <한겨레21>에서 취재요청이 왔습니다. ‘시민의 시간- 촛불 시민의 꿈’(가제)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실을 예정인데 아래 공통질문 세가지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답변은 한겨레21 기사에 반영될 것이며, 한겨레21 지면에 다 반영되지 못한 의견들은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에 전부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마감 때문에 8일(오늘) 오후 9시까지 회신되는 답변에 한해 한겨레21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바쁘시겠지만 info@citizenassembly.net 로 간단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동제안에 함께 해주신 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온라인 시민의회에서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료 3.

위 메일에 관해 답변한 내용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87년 체제가 가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이전의 이 국가는 누군가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토막, 공화제의 한 토막을 가지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87년의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민주주의과 공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결합시켜 헌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 독재 정권을 종결한 것도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주로 가면을 바꿔 씁니다. 신도시 개발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자본은 거대해서 그 뒤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기 좋습니다. 그저 폭력정권은 시대가 바뀌자 그에 걸맞은 열차로 바꿔 탄 것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폭력정권이 얼굴을 바꾼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는 재빠른 이들이 바꿔 쓴 가면을 이제야 알아챈 것은 아닐까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제의 확립,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입시제도를 어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적폐는 입시제도 중심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뒤집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별로, 모임별로 꾸준한 공부모임과 토론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공적기관, 공공시설물의 사용권을 확대하여 시민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시민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지역별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가, 이를 집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이루어나가는 이중구조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입법기관이 절대적으로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역별, 모임별로 꾸준한 시민모임이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방적인 체계로 급전환해야 합니다. 운동성을 유지한다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쉽고 편안한 말로 마을에서 함께 느리고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는 제2의 건국에 다름아닙니다. 대신 싸워온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2016년 11월,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공의 기억을 가진, 집회와 시위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시민들을 이겨낼 세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억을 더하고, 모이기에 힘쓸 때입니다. 각 지역별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https://allmytown.org/2016/12/09/%EB%B0%95%EA%B7%BC%ED%98%9C-%EC%9D%B4%ED%9B%84-%EC%8B%9C%EB%AF%BC%EC%9D%98%ED%9A%8C-%EB%8B%B5%EB%B3%80%EB%82%B4%EC%9A%A9/

 

 


자료 4.

오늘 밤 11시경에 들어온 시민의회측의 메일

 

시민의회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전달합니다

제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합니다

온라인시민의회 공동제안자분들과 시민후보로 추천되신 분들께 사죄 드립니다.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와글 대표 이진순입니다. 오늘 하루 온라인시민의회에 대한 많은 분들의 질타와 염려의 말씀을 깊이 가슴에 새기며 들었습니다. 저희 사이트 운영진의 미숙함과 성급함으로 인해서, 촛불시민들의 다양한 국정개혁 요구가 수렴되고 표명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서 마음을 모아주셨던 모든 분들께 본의아니게 깊은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서 뭐라 송구한 말씀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저의 불민함으로 평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할 시민대변인단의 명칭을 시민대표로 개괄함으로써 많은 분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당사자 동의 없이 추대된 후보분들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간 제기된 비판과 질타를 겸허히 수용하면서, 온라인시민의회 플랫폼의 운영 전반에 대해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를 전면 교체하여 시민대표후보 추천란을 폐쇄하고 제안문에 서명해 주셨던 분들의 명단은 삭제하고 제안문 원문만 올립니다. 그간 논의의 배경과 그간 토론방에서 제기된 논의를 중간 요약하여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지 않은 것은, 저희의 뼈아픈 실책으로 인해서 시민공론장에 대한 모든 시도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는 전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견이나 꾸지람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아낌없는 쓴소리 들려주세요.

아래는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에 게재할 운영진의 입장 글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사죄드리며 더 많은 비판과 조언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와글 대표 이진순 드림

안녕하십니까.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자입니다.

10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여러 온라인 공간에 많은 시민들께서 시민의회에 대한 우려와 질타를 남겨주셨습니다.

먼저, 논의의 충분한 공유없이 미숙하게 시민의회의 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시민 여러분들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 드립니다.

저희들에게는 시민들이 주신 질타 하나하나가 깊은 반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르쳐 주신 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촛불 시민의 대변인을 뽑자는 저희의 뜻에 흔쾌히 동의해 공동제안자로 참여해주신 분들께 누를 끼친 점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만큼 송구스럽습니다.

시민들께서 질타해주신 점들을 새겨, 저희는 아래와 같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민의회 대표단 구성에 대한 논의는 원점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민대표는 어떤 권한을 가진 대의기구의 대표자가 아니라 시민의 의견을 모아 제도정치권에 전할 전달자 혹은 대변인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표현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자격요건과 선출방식, 구성, 명칭에 대한 논의도 토론방에서 진행 중이었으며, 시민의회를 제안한 사람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맞다고 보았습니다(시민의회 논의된 원칙 보기).

그런데 이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대표 추천하기 메뉴를 시범운영하여 인기투표처럼 시민대표를 추천받은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다. 추천된 분들의 사전 동의나 본인 확인 과정은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본인이 수락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점에 대하여 대표로 추천받은 분들과 추천하신 분들 모두에게 사과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시민대표 추천은 잠정중단하고 온라인 시민의회의 필요성과 운용방식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수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왜 온라인 시민의회를 구성하려고 했는가.

온라인 시민의회는 제도권 정치를 배제한 채 새로운 법적, 제도적 장치를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탄핵소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시민들은 이제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카톡으로 제보도 하고, 메신저를 통해 탄핵 가결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들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담보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가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의회를 만들고자 한 뜻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 과정에서 광장의 주체로 우뚝 선 시민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을 새로 고침 할 소중한 의견과 대안들을 제기하셨습니다. 저희는 이 소중한 민주주의의 자원들이 촛불 광장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축적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다른 나라의 여러 사례들이 이러한 시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해외 사례 보기).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 이전에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실험들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르익었다는 논의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기 되어 왔습니다.

저희는 시민대표 선출에 대한 논의는 중단하지만 국정개혁과제에 대한 평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제별 논의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표명할 지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거치고자 합니다. 시민의 참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면 좋겠는지, 시민의 의견을 모아낼 공론의 장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희의 시행착오가 더 나은 시민공론장 형성의 발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토론방 가기)

다시 한 번 시민의회에 관심과 질타를 쏟아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2.10.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진 드림

박근혜 이후 – 시민의회 답변내용

citizenassembly.net 에 공동제안자로 참여했는데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변을 요청해와서 적어본 내용입니다.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87년 체제가 가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이전의 이 국가는 누군가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토막, 공화제의 한 토막을 가지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87년의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민주주의과 공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결합시켜 헌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 독재 정권을 종결한 것도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주로 가면을 바꿔 씁니다. 신도시 개발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자본은 거대해서 그 뒤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기 좋습니다. 그저 폭력정권은 시대가 바뀌자 그에 걸맞은 열차로 바꿔 탄 것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폭력정권이 얼굴을 바꾼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는 재빠른 이들이 바꿔 쓴 가면을 이제야 알아챈 것은 아닐까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제의 확립,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입시제도를 어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적폐는 입시제도 중심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뒤집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별로, 모임별로 꾸준한 공부모임과 토론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공적기관, 공공시설물의 사용권을 확대하여 시민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시민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지역별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가, 이를 집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이루어나가는 이중구조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입법기관이 절대적으로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역별, 모임별로 꾸준한 시민모임이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방적인 체계로 급전환해야 합니다. 운동성을 유지한다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쉽고 편안한 말로 마을에서 함께 느리고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는 제2의 건국에 다름아닙니다. 대신 싸워온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201611,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공의 기억을 가진, 집회와 시위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시민들을 이겨낼 세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억을 더하고, 모이기에 힘쓸 때입니다. 각 지역별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불우한 이웃

차 안에선 주로 CBS라디오 93.9를 듣는다. 탤런트 정애리가 애틋한 목소리로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며 모금을 독려하는 월드비전 후원모금광고가 자주 나온다.
오늘은 젊은 부부의 사연, 아빠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중이고 엄마는 미용실 스텝인데 월수입이 600,000원 정도.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방과후 특별활동비를 내지 못해 특별활동 시간에 혼자 교실을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불현듯 화가 솟구쳐 올랐다.

정애리 목소리가 울먹이는 듯 했고 그 톤으로 전화번호 읊는 걸 듣고 있자니 더 성질이 났다.
구호, 긴급구제가 필요한 이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 복지제도의 빈 칸을 국민들이 돈 모아 때우는 구조가 신물난다. 중국 공영방송에서 이런 행태를 자주 보이는데 극악한 상황에 내몰린 가족을 조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섬기고 살림을 도맡아 하는 어린이들을 미담으로 포장해 내보내는 것이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효도”나 “이웃에 대한 배려”로 뒤집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 그 사이에 대상화 되는 가난한 타자들, 테두리를 나눠 그 안에 사람을 넣어두고 여기는 불쌍한 집단이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강요하는 국가의 폭력적이고 지능적인 사기에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가.
언제까지 모금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

이제는 법안을 발의하고 행정소송을 내고 국회와 공조하여 제도를 바꿔낼 때가 되었다.
초대형화된 구호단체가 초등학교까지 진입해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자”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고 구호단체도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러 단체에 기금을 내고 있는데 이번에 좀 정리해서 참여연대로 돌려야겠다.
2016.11.21.

1987년, 민주주의는 더디게 온다 

1987년 나는 6학년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젊은 여선생이었는데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녔다. 입술위에 검은 점이 있었다. 

선생님이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 가난뱅이 등치고” 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6월이 지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선포된 이후 담임선생님이 나와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를 불렀다. 

아마 그때 내가 2학기 반장이고, 걔가 부반장이었을거다. 성적은 비슷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노태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화적인 정권이양이 이루어져야 88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8올림픽은 우리 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그래?” 라고 반문한 뒤, 그래,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말하고 내 옆에 섰던 그 녀석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장래희망이 “직장인”이라고 쓰는 매력 터지는 녀석이었는데 대답하기를 

“김대중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녀석에게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자식의 그 대답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거다. 

참고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서울 도봉구에 있었다. 

지금 어떤 6학년은 

다음 대선에서 누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 살짜리도 최순실을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누가 되더라도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을 뽑으면 좋겠지만, 감시할 권리와 의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해야 하겠지. 

죽 쒀서 노태우줬던 87년은 실패였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그렇게 더디게 오니까. 

당당하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내가 부끄럽지도 않다. 내가 봤던 건 이득렬앵커의 뉴스 뿐이었으니까. 

모두가 어른들의 몫이다.
2016.11.29.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 –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교육청 주관으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연구와 활용방안에 대한 교원연수를 진행중이다.

오늘은 관내 모 중학교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중학교는 연수 시작 가능시간이 3시 30분이후인데 퇴근이 4시 40분이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사전에 학교측에서 2시간 꽉 채워 해달라는 경우도 있겠으나 퇴근시간이 중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건 학교 분위기에 따라 판단한다.
학교 분위기는 섭외를 담당한 교사의 태도와 연수장소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선생님들의 태도에서 한 방에 느낄 수 있다.
어떤 학교는 2시간이 넘어도 무관하다는 분위기가 있고 어떤 학교는 어찌 되었든 시간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나는 퇴근시간을 꼭 초과해서라도 진행할 생각은 없다. 그건 받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민주시민교육 교원연수는
협의체가 구성된 과정을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10개에 걸친 전문분야를 현직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적용할까를 먼저 말한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집필했는데 그 분야가 초등의 경우, 자치, 선거, 평화, 인권, 다양성, 노동, 미디어, 연대, 정의, 안전으로 되어 있고
중학교의 경우 시민, 민주주의, 선거, 자유, 평등, 연대, 복지, 노동, 경제, 미디어, 다문화, 평화로 구성되었다. 중학교가 분야 분류어가 조금 더 관념적이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과내용은 학력에 따라 계속 심층적으로 무거워진다.
한 가지 분야를 심층적으로 파고 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명의 교사가 전 분야를 섭렵하는 건 내 판단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야 중 자신있는 것을 선택하고 교내에서 연구모임을 만들어 각 년간 순차적으로 적용해보길 권한다.
교과서 구성과 교과서 집필의도, 교육현장에서의 추구할 목적을 얘기하다가 내가 몰아가는 핵심주제는 “학교는 민주적인가”, 그리고 “나는 민주적인가”이다.
이 교과는 결론을 낼 필요 없고, 내지 않는 것이 좋다.
교사가 가르치려 들지 말 것,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에 충실할 것,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이 모두 고르게 의견을 말할 수 있게 하되 정답이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교사 먼저 틀을 깨서 자유롭고 여유있게 진행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내가 진행하는 연수의 요점이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학교는 중산층 이상의 주민이 모여 사는 곳인데 실제 수업을 적용해 본 한 교사는 노동의 경우 아이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대신 경제 분야에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 더 수월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지역의 아이들은 본인들의 노동 효용성에 대해 아직 절감하지 못하며 소비를 더 가깝게 느낀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우치다 타다루 선생의 “하류지향”에서 말하는 논점과 일치한다.
최근 박근혜게이트와 촛불집회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은 더없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 학교에서 서슴없이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이며, 헌법과 대한민국 존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교사들은 언제나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뒷감당에 자신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학부모의 민원제기, 교육청이 비협조적이거나, 학교가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면 그 학교의 아이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졸업을 해야 한다.
오늘 연수가 끝나고 어려운 점을 들어봤다.
한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친 아이들이 이제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왜 아이들의 미래가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데 어떻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을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두 번째 선생님은, 사회교과담당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을 어디까지 개입해서 전할 수 있느냐가 늘 고민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꾸 자기 검열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은, 촛불집회 참여하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얘기했다가 민원제기를 받았다고 했다. 민원은 학부모로부터 온 게 아니라 아이가 불만스러워한다고 부모의 입을 빌려 들어온 것이며,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가 사는 마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된다고 전했다.
나는 잦은 토론, 싸워보고 화해해보고 대면해서 말로 갈등을 풀어본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적어도 이 교과를 최대한 활용해서 교실내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중학교에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허망한 토론에 그치지 말고 실제로 학교에서 자치회에 적용을 시키거나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학생회에 안건을 상정하고 교사들과 협의를 하여 교칙을 바꿔나가는 성공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 해 해결하지 못한 것은, 다음해에 후배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가이드가 되어주시면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이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 선거와 정당, 정치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검열에 걸려 넘어지는 선생님들에게도 방패가 생겼다. 그게 바로 경기도교육청의 더불어 사는 민주 시민 교과서인 셈이다. 교과서 안에 이미 노동3권에 대한 명시가 분명히 되어 있고 노사교섭에 대한 토론, 모의 정당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교과내용을 진행한 것으로 뒷감당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민원을 받은 교사의 경우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지침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더 힘을 받아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현장에서 진행할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선생님들의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시기에 대한 절망감이 엄청나고,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의견에 선생님들이 당황할 지경이다.
일례로 한 선생님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인성쓰레기” 라는 단어를 뱉으며,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유사이래, 전국민이 지금 이것은 아니라고 외치는 기회, 학교 현장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장을 넓게 펼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뭔지 단 한 번도 성찰해 보지 않은 자가 오천만과 싸우고 있다. 학교 안에서 사회적경제와, 주거복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교육이 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가 그 길을 크게 열어주었다.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할 필요는 보탤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배를 볼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리며, 내가 수학여행을 가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교실에서 대통령을 욕하기 시작했고 엄마 아빠를 따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민주주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일이다. 중년이 넘어서는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듣고 따를 일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2016년 11월 29일

뒤통수

1.
몇 년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암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턱에 뭔가가 날아왔고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날아와 내 턱에 부딪쳐서 떨어진 건 일수대출 찌라시.

일수대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기 저기 종이를 던지는데 그 종이는150~200g 정도 되는 아트지 류다. 코팅된 두꺼운 종이라는 얘기.

기껏해야 책 표지 정도 되는 얄팍하고 작은 종이가 바람을 얹고 날아왔을 때 중력이 얼마나 더 해지는지 실감했다. 꽤 오랜시간 아팠고 자칫했으면 종이에 베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종이를 던진 사람은 스쿠터를 타고 있었으니 온데간데 없고 나는 길거리에 서서 황망해져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어떤 방법도 없었다.

길거리에 찌라시를 뿌리는 행위는 적법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일테고 그는 그렇게 사는 게 방법이라고 배웠을 터이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그 행위로 인해 타인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려줬거나,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다면,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자각한 적 있다면 그날 내가 봉변을 당할 일은 없었겠다. 나 외에 다른 누군가도 그런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2.
올해 겪은 많은 일들이 이런 누군가의 습,으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스스로를 깨지 못하고 질문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 나의 습때문에, 혹은 타인의 습때문에. 때로 나는 피해자가 되고 중간에 끼인 자가 되고, 동조자가 되고 혹은 모르게 가해를 했을 것이다.

행동 하나 하나를 살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이라는 주장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주장에도 모두 동의한다.

길가다 똥을 밟은 이유는 누군가 똥을 싸질렀거나, 누군가 알고도 미리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똥을 밟은 것에 분개하느라 똥을 치우지 못하고 가버린다.

3.
뒤통수를 친다는 표현은 그래서 적확하다. 뒤통수를 맞는 일은 대부분 과거에서 발생해 현재의 나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고와 갈등은 언제나 과거에서 온다.
당신의 과거로부터, 나의 과거로부터.
청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과거로부터.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취재기

서촌의 골목을 돌아

광화문을 지나 사직공원쪽으로 올라가면 배화여대로 올라갈 수 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사직공원 옆 사직파출소부터 이어지는 곳은 서촌이라 부른다. 조선의 임진왜란 이후 관청이 모여있던 이 곳에 민간인들이 살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서촌에는 각종 단체들이 모여있다. 환경연합과 참여연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시민단체들이 모여 있다. 세종음식문화의 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에 아담한 건물 2층에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있다.
2009년 4월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가 한국 상조사업의 현황과 대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며 상조사업의 현황을 점검했다. 동년 9월에 한겨레신문사와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가 공제조합 운동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각 지역 주민운동, 협동조합운동, 시민사회운동가들이 모여 한겨레두레공제조합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우리의 고유 관혼상제 문화 중 공동체정신이 있는 두레와 품앗이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형태를 찾다보니 그 중 하나가 장례문화였고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가장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합원 가족들의 상장례를 함께 준비하려고 출발한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조합원을 모집하던 중 장사서비스 제공에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다. 뒷돈거래, 폭리구조를 파악하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다시 공력을 들인다. 2010년 가을,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뒷돈거래와 폭리가 없는 장사서비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시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다. 이후 법인 설립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상포계를 중심으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으로 등록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생협으로 인가신청을 하였는데 생협법상 사업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된다.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그제서야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협동조합”의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죽음의 존엄함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1997년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 곤궁함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했다. 산 자의 삶이 가치를 잃는 순간 죽은 자의 가는 길은 더없이 쓸쓸해졌다. 가족형태가 변형되고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안과 가족의 일도 자본에 넘겼다. 상장례를 도맡아 하는 업체가 등장하면서 죽음은 집 밖으로 몰려났다. 건강보험의 혜택으로 병원문턱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끝까지 죽음과 싸워 이기려는 투쟁을 시작했다. 많은 삶이 병원에서 사라졌다. 살기 위해 가는 곳도 병원이지만 죽기 위해 가는 곳도 병원이 되었다. 병원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을 넘어서 상장례를 치르기 위한 외부기관이 되었다. 집안에서 상장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장례는 사업이 되었고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한 뒷돈거래와 과다한 비용의 청구로 장례식은 계산서와 영수증으로 점철되고 고인에 대한 애도는 온데간데없다. 장례식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밀려드는 문상객과 습관처럼 인사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례식장에 보이지 않는 바가지를 물리치기 위해서이니.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 사무실을 처음 찾은 것은 2015년 여름이었다. 아담한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서울조합과 연합회가 같이 사용하는 공동사무국이다. 연합회 상근직과 서울조합 상근직이 함께 사무실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각 지역별 조합이 있고 각 지역조합들이 결합하여 연합회를 구축한다. 연합회에서는 전체 조합의 사무를 관장하고 각 조합의 총무부문을 정리한다. 각 지역조합은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구축된 조합이 있기도 하고 정관과 규정에 따라 새로 조합이 구성되기도 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지난 3년간 조직의 체계를 갖추는데 집중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총괄상임이사 김경환 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이 한국에서 성공하고 자리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외부의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들과 80년대 민주화세대들이 주축이 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당연히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는 일이 끊임없는 게 당연하다고 평가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을 주목한 것은 24%의 기적이라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제조합의 성격을 갖추기만 해도 되는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념을 관철하고 죽음의 가치를 재고하기 위해 사회공헌의 장치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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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두레 겨울 워크숍

죽음의 가치를 통해 삶을 다시 보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조합원은 초기 출자금과 매달 조합비를 낸다. 이 조합비중의 24%를 별도로 모아 사회공헌에 사용하는데 2013년부터 종로구 마을주민제안사업의 일환으로 무연고노인의 결연장례를 몇 개 단체와 함께 진행했다. 법무법인, 사회단체, 비영리단체들을 규합하고 마을주민들과 협력사업으로 무연고노인이 많이 살고 있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장례 결연을 맺었다. 종로구 돈의동은 일제강점기에 집창촌으로 조성된 지역이다. 이후 1968년 나비작전이라는 집창촌 철거 계획에 따라 집창촌은 모두 사라졌고 대신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공간에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일세방이 생겨났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도 한 평남짓한 공간에 인생을 맡기는 여러 사연들이 모여 산다. 돈의동 103번지 일대는 노인들이 모이는 파고다공원일대부터 헐리우드 극장까지를 말한다. 서울 한 복판에 대규모 쪽방촌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거니와 그들의 삶은 있어도 없는 것으로 치부되다가 결국 마지막 가는 길도 “처리”가 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방법에 고심하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죽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찾게 된다.

2015년에 급부상한 키워드는 고독사다. 그 이전에 고독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고독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예술인보호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회의 사람다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도시의 인간성을 알아보려면 그 도시의 고양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길고양이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인간도 당연히 존중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지는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나 인간 본성의 가치회복, 삶의 목적 따위는 차치하고, 죽음에 대한 예를 어찌 갖추는가도 이 사회의 인간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늘어나는 고독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골목 곳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간간히 뉴스에 등장했다. 심지어 한 건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건물주 노인이 혼자 지내던 방에서 죽은 지 오래되어 발견되었고, 한 가족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경우 등 사회에 이슈가 되는 뉴스거리 외에도 이름은 있으나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죽어간다.
한 때 우리는 죽음의 예를 “축제”에 빗대어 부르기도 했고, 살만큼 살고 여한 없이 떠난다며 호상이라는 단어도 붙였다. 노령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이제 이 사회는 더 이상 “장수”를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치도, 행정도, 장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제 정치와 행정에서의 장수는 골치 아픈 일이 되어간다. 환영받지 못하는 노령인구는 밀려 밀려 혼자 죽어간다. 골목에서 아무도 모른 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사라진다. 이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남은 흔적을 지우는 업체가 있고, 그들의 물건을 수습하는 유품정리업체가 있다. 모든 것은 자본이 대신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그들의 죽음을 정리할 수 없다면 모여 있는 곳부터 파고 들 수 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은 같은 지역에 속한 종로구 돈의동을 찾았다. 돈의동의 복지를 책임지는 사랑의 쉼터 복지관과 종로1·2·3·4가동 담당 공무원과 장례결연을 맺을 대상을 우선 선정했다. 장례결연이란, 혼자 사는 쪽방촌의 무연고 노인이 이 세상과 이별할 때, 그들의 장례를 대신해주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이라고 가족이 전혀 없지 않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겼고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거나 가족과 연락이 닿아도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이들은 무연고자가 된다. 무연고자의 죽음은 기억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돈의동과 같은 빈곤지역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복지관이나 담당공무원을 통해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연고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은 48시간이 된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들의 시신은 직장(直葬)처리된다. 바로 장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상례가 없이, 즉 장례식이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가게 된다. 사망진단서를 끊고 사망자에 대한 행정 처리를 하고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화장장으로 간다. 시신운송 차량은 버스 기사 1인이 운전한다. 동행자는 없다. 이들의 시신이 화장장에 도착하면 바로 화장하고, 유골은 “처리”된다.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어 병원에서 장례를 치른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의사와 의료행위에 대한 합의를 가족들이 하게 된다. 사망이 확인되면 그 때부터 상례 절차가 시작된다. 상조 회사를 부르고 병원 장례식장을 예약한다. 사망한 병원과 장례식장이 상이한 경우 정복을 입은 장례식장 관계자가 나와 시신을 운송한다. 가족들은 상조회사와 각종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계산이 오고간다. 관은 얼마짜리로 할 것인지, 수의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손님접대를 위한 밥상은 얼마짜리를 할 것인지, 가족들은 수도 없이 계속해서 장례지도사와 상례에 대한 비용을 확인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 때부터 문상객이 몰려든다.

돈의동 103번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전쟁고아부터 IMF때 사업이 무너져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 사람들 중 장례결연이 필요한 사람들 중 협동조합에서 약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정하여 장례결연을 맺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구술생애사집을 출간하기로 하였다. 서울조합의 사무국장이 이 작업을 맡았고 결연장례 어르신의 집단생애사집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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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동 구술생애사 기록과정

돈의동 103번지 골목

여름이었다. 처음 만날 어르신은 두 분이라고 사무국장이 말했다.
종로 3가 파고다공원 뒤로 들어가면 돈의동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파고다공원의 담벼락엔 대낮부터 만취한 사람들이 등을 기대고 있거나 장기를 두기도 한다. 돈의동에 사는 사람도 돈의동에 살지 않는 사람도 여기서 낮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한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사무국장이 커다란 검은 봉투를 들고 사랑의 쉼터 사무실로 들어왔다. 인터뷰를 할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사무국장이 사는 동네의 마트가 싸다며 10kg짜리 쌀을 두 포대나 짊어지고 왔다. 사무국장은 남다른 미모의 40대 여성이다.

첫 인터뷰는 사랑의 쉼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무국장은 선글라스를 쓴 멋진 차림의 노인에게 원래 고향을 물었다. 전쟁고아인 박노인은 원래 살던 집이 남산동이었으며 폭격을 맞아 집이 날아간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사무국장이 준비한 쌀과 라면, 커피를 전달해드리기 위해 박노인의 쪽방으로 향했다. 멀끔한 춘원당 한의원을 지나면 바로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다. 입구부터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박 노인을 보고 인사했다. 박 노인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는 없이 살수록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평 남짓, 잡다한 물건들이 그득한 방은 나름대로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먼지도 별로 없었다. 박노인의 성품은 방에서 모두 드러났다. 허투루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 깨끗하게 정돈하는 습관, 깨끗하게 걸어둔 옷가지 등, 놀라울 정도였다.
박노인과 일별하고 만난 두 번째 결연장례 대상자도 박 씨였다. 이 분은 무연고자의 장례문제에 대해 복지관에 건의를 한 적도 있다. 옆방에 같이 살던 노인을 아버지처럼 오래 모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니 장례식도 제대로 치를 수 없이 그저 화장장으로 보내야 했던 일이 잊을 수 없이 가슴 아팠다. 기관과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돈의동 노인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다고 전했다. 기초수급자로 공공근로를 다니면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자기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상조회사에 가입도 해두었다. 두 번째 박 노인은 봉사활동으로 받은 표창장도 선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뒤로 나가떨어지기 십상인 계단을 오르내리며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두 분의 태도는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니 땀이 줄줄 흘렀다. 7월이었다. 두 분과 함께 불고기 백반을 먹고 헤어졌다. 한겨레두레의 사무국장은 두 분에게 엔딩노트를 보여드렸다.
“어르신들 돌아가시면 원하시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내용을 여기 적어서 방에 잘 보이는 데에 걸어두시면 저희가 나중에 와서 어르신 필요하신 거, 왔으면 좋겠는 사람, 연락해서 장례를 치러드릴 거예요.”
본인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는 사무국장도, 그 얘기를 듣고도 좋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분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처음 만났다.

IMF때 사업에 실패하고 돈의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황 씨 어르신, 열여섯에 팔려가듯 시집을 갔다가 쫓겨나 식당일을 전전하며 모은 돈을 사기 맞아 돈의동에 들어온 신 씨 어르신, 전쟁 때 가족을 잃고 평생 종로구를 떠돌았다는 강 씨 어르신을 만났다. 가정불화로 평생을 방황하다 노동으로 생계를 잇던 홍 씨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입었는데 병원비를 낼 돈이 없었다. 카드깡으로 급한 치료비를 메꿔보려다가 불법업체에게 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는 쪽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달랬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넘었다. 가장 젊은 안 씨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집을 떠나며 친척집을 전전하다 이런 저런 기술을 배우며 열심히 살았으나 어느 순간 알콜중독자가 되어 중환자실에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미 간경화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결연장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돈의동 103번지를 아우르는 종로1·2·3·4가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은 돈의동 골목을 지날 때 주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사랑의 쉼터 복지사와 사무국장은 이웃처럼 지내는 모습도 보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절망적이지 않다거나, 나름대로 살만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내가 마주친 돈의동 103번지의 주민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매일 매일 애쓰며 살아야 한다. 나는 그저 그 곳을 지나친 이방인에 불과하며, 이방인이 보는 시선은 짧고 얕다. 그들은 때때로 배를 곪는 게 차라리 편리하여 평소에 많이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병원에 실려 가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하며, 작은 일거리라도 끊이지 않기 위해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여러 가지 낡은 버릇들을 버리기 위해 오랜 시간 자기 자신과 싸워왔고, 지나간 날을 들추는 고통을 잊기 위해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다. 통풍이 되는 창문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한들,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쓰러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덤덤해 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돈의동 103번지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품이나 기질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아파도, 슬퍼도, 하물며 죽어도, 연락할 곳이 없다는 것. 무연고이다. 내가 그들을 “우리”라고 칭할 수 없다면 나는 “그들”의 삶의 곤고함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삶이 결국 무연고로 이어지고 영결식이나 장례식도 없이 “처리”되는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면. 우리는 모두 가족을 가져야만 온당한가. 질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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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종로구마을장례지원단의 협업 돈의동 결연장례 증서 전달식

 

한겨레두레가 지향하는 장례

시대가 변하고 가족의 형태는 변형되었다. 가족이 붕괴하였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족이란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지도 모를 일이며, 어떤 가족은 폭력적이고, 어떤 가족은 사람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때로 가족제도는 국가가 복지의무를 방임할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이 꼭 정당한지 가족이 꼭 필요한지 알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단위로 역사를 차지한지 오래된 형태임은 분명하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상포계를 서비스한다. 전통한국사회의 두레와 계의 형식을 계속해서 구현하되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상포계이다. 상업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상조 회사는 “상조”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는 상포계가 전통양식에 맞는 말이라 한다. 상포는 상례에 사용되는 천(직물, 삼베)을 서로 추렴하던 계의 형식에서 가져온 말이다.
한겨레두레조합원은 1구좌 (1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고 매달 3만원의 조합비를 낸다. 이 중 24%가 조합운영비로 사용되는데 조합사무국운영비 외에 사회공헌에 이 비용을 상당 지출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직계가족 만에게 상장례 서비스를 국한하지 않고 친구나 지인의 장례도 주관하도록 돕는다. 장사물품의 목록을 보고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게 되며 상장례에 사용되는 물품은 조합에서 직거래를 통해 제공한다. 여타 장례식과 상이한 비용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두레는 장례서비스의 혜택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장례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집장례가 사라진 세상에서 품앗이 마을장례와 작은 장례를 다음 단계로 추진하고 있다. 품앗이 마을장례는 변화되는 가족형태에 맞춰 마을사람들이 함께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집장례를 하고 싶은 조합원이 있다면 기꺼이 집장례가 가능하도록 함께 준비한다.
실제로 조합원 중 집장례를 치른 조합원이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긴 시간을 머물렀던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오래전 풍경처럼 동네 사람들이 들여다보며 서로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집장례를 추구하기엔 지금 우리의 삶이 모습이 여의치 않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한겨레두레는 품앗이 마을장례를 제안한다. 마을의 공동체 공간을 이용하여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한겨레두레에서 추진하는 “작은 장례”는 품앗이 마을장례와 상포계를 결합한 형태라 볼 수 있다. 마을회관, 공동체 공간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 구조를 행정기관과 협조하여 녹색장례로 추진하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장례식의 형태를 바꾸고 수의를 고집하지 않고 생전 본인이 좋아했던 옷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대규모 장례가 아닌 소규모 장례를 지향하고, 인공장이 아닌 자연장, 산골(散骨: 화장한 유골을 자연에 흩뿌린다는 의미)을 자리 잡고자 한다. 수목장의 형태는 또 다른 상업화를 낳아 현재 전국 도처에 무허가 수목장 난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가 그러하다.
어떤 움직임만 있어도 촘촘히 돈 벌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두뇌를 가진 게 현대인들이다. 틈새시장, 벤치마킹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은 이후 어떤 분야도 물질이 틈타지 못할 곳이 없다. 작은 장례가 자리를 잡게 되고 보편화되면 그 때 또 어떤 산업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이를 지켜나가는 것은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의 가치와 그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조합원들의 굳건한 협동과 신뢰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015년 말, 돈의동 103번지의 결연장례 주민들과 결연장례 전달식을 가졌다. 종로1,2,3,4가 주민센터의 행정공무원들과 돈의동 사랑의 쉼터 실무자들, 종로구 마을장례지원단의 각 단체와 법률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명륜의 변호사, 돈의동 자원봉사센터와 적십자 병원에서도 참여했다. 결연장례를 맺은 10명의 돈의동 주민들 중 어떤 이는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전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연고가 없는 이들의 마지막 길을 약속해준다니 고맙다.”고 명료하게 말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대의와 사회공헌을 위해 구성원의 희생을 마냥 강조할 수 없다. 조합원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이익을 놓치지 않고 조금씩 추렴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협동조합의 형태라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바로 그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1년간 지켜본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행보는 의미심장했다. 이 사람들이 무언가 작은 바람을 일으켜 언젠가 거대한 물결이 된다면, 세상은 분명 더 따듯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축복을 기원한다.

 

2016년 2월 4일

애도의 시간, 추모의 세월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고 난 다음날부터 애도일기를 썼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애도가 얼마나 필요한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 나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현대저작물 기록 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탈리 레제와 베르나르 코망의 공동작업으로 쪽지는 원고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한국에는 웅진출판사에서 2012년에 책으로 냈다.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무심결에 펼친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 12.9.애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28일 오후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고장난 안전문을 고치던 청년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 토요일 저녁에 혼자 작업했다. 2인 1조를 지키라는 매뉴얼은 애초에 직원이 없어 지킬 수 없었다. 공사시간동안 열차운행은 쉬지 않았다.
5월 30일 SNS에는 사망한 김 씨의 유품사진이 공개되었다.

▲ 사망한 김씨의 가방에서 나온 유품. 그는 19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SNS에는 사람들이 고인의 가방 속 유품 사진을 공유하며 분노하고 한탄했다. 가방 안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컵라면과 편의점에서 주는 나무젓가락, 집에서 가져왔을 숟가락이 나왔다. 지금 사람들이 애도하는 방식이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애도엔 분노와 한탄, 자조가 뒤섞였다. 지하철 구의역에는 추모 쪽지가 붙기도 했고 국화도 놓였으나 이내 메트로 직원들에 의해 수거되었다고 한다.
2015년 8월에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2014년 4월에는 독산역에서, 2013년 1월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같은 사고로 작업자가 죽었다.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서울메트로노조 오선근 안전위원이 인터뷰를 통해 여태까지의 사고는 모두 2호선에서만 일어났고 그 외 스크린도어에 관련된 사고 모두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4호선사이에서만 일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봄, 내가 사는 아파트엔 외벽 도색작업이 있었다. 도색작업이 있을 예정이니 창문을 닫고 커텐을 치라는 방송이 있었다. 외벽 도색작업은 기가 막혔다. 아래는 화단 그대로, 맨 땅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작업자는 줄 두 개에 매달려 12층부터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실에 전화해 안전장치에 대해 물었다. 한참을 기다려 받은 대답은 이런 거였다.
아파트 주민협의체 (대부분 입주자대표회의다)에서 관리사무실에 외벽도색을 진행하도록 하고 관리업체는 건설사에 외벽도색을 의뢰하고 건설사는 하청업체에 도색작업을 의뢰하고 하청업체는 작업자를 찾아 외벽도색이 이루어진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맥 없는 목소리로 민원이 있었다고 말해보겠노라 했다. 입주자에서 관리업체, 건설사, 하청업체를 건너는 사이 도색작업은 끝이 났다.

지하철안전문공사도 비슷한 과정이 있다. 고장이 난 문이 있고, 지하철공사가 있고, 서울시가 있고, 안전문 설치업체가 있고 하청업체가 있고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가 있다. 입찰가격에 10%을 깎아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고, 예산을 줄이기 위해 더 싸고 더 빠른 업체를 찾고 업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안전비용을 삭감하는 사이. 사람이 죽고 다친다.

주목할 것은, 애도의 물결이다. 이제 사람들은 잊지 않고 저 고매한 철학자가 했던 것처럼 쪽지에 애도의 글을 적는다. 사고 현장을 찾고, 기억하기 위한 물품을 만들어 몸에 지닌다. 온라인에는 추모공간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항의한다. 타인의 고통에 더욱 공감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성숙의 결과일까 의심한다. 함께 분노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무고한 죽음이 사람들의 삶 가까이 다가온다. 옆 사람의 숨결처럼, 고인의 슬픔이 내 품안에 들어선다는 건, 모두들 견디고 있다는 얘기다.

견디는 자들이 한데 모여 나의 팔을 엇갈리게 뻗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야, 대오는 단단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이 씨앗이 되어 세상으로 흩어질 때, 영혼이 세포가 되어 공기를 떠돌 때, 우리는 옆 사람의 손을 꽉 잡고 걸어야 한다.

책이 된 《애도일기》의 해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번역이 끝났어도 여전히 번역이 안 된 채로 마음 안에 남아 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슬픔’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시대의 슬픔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 남는 한 이 슬픔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해야 할 추모는 기억하고 따져보는 것이다. 애가 닳도록 쓰리고 아파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가야 할 곳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죽음이 가야 할 곳은 “기억했다”는 기념비 앞이다. 떳떳하게 죽기 위해 오늘을 견디는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이 있길 소망한다.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별표 부분은 책 서문에 적힌 문장을 발췌한 것입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강남역은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걸쳐 있다.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맞닿는 곳에 강남역이 있다. 강남대로 동쪽은 강남구 역삼1동, 강남대로 서쪽은 서초구 서초 4동이 된다. 강남역 1,2,3,4,11,12번 출구는 강남구이고 마주보는 강남역 5,6,7,8,9,10번 출구는 서초구가 된다. 서울시 통계(2012년부터 2015년 통계의 평균치)에 따르면 강남역 9번 출구 주변 일 평균 유동인구는 17,334명, 저녁평균 유동인구는 6,646명이다.

▲ 23일 월요일 정오. 추모메세지는 서울시 여성재단으로 옮긴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잘 알려진대로

2016년 5월 17일 오전 1시 7분쯤, 강남역과 신논현역 중간지점 번화가의 한 프랜차이즈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노래방은 90년대에 여타노래방과 차별화된 “편안한 럭셔리”컨셉의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각광을 받은 곳으로 현재 전국 23곳의 체인점이 있다. 다른 노래방보다 입구와 간판, 외부벽면까지 무척 밝고 깨끗한 느낌이며 조도도 상당히 높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일 피해자는 강남역 인근 1층 주점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이 노래방의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주변 건물 중 조명이 상당히 밝은 편이라 아무도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골목은 밤이 되면 술집과 식당의 불이 켜지지만 근처엔 일반 상점과 대형 옷가게, 사무용 빌딩, 어학원과 취업준비 학원이 강남대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월요일에서 화요일이 되는 밤은 한산하지도 않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점은 서울시 유동인구 조사보고서의 조사지점인데 주중 평균 하루 11,278명, 저녁에만 2,242명이 오가는 것으로 밝혀진 곳이다. 서울시 평균치의 세 배를 훨씬 웃돈다.

5월 17일 오전 서초경찰서 강력3팀은 사건발생 9시간 만에 피의자를 긴급체포했고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을 발표했다. 피의자는 화장실 안에 숨어 6명의 남자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1시간 30분을 기다려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 여성을 흉기로 공격해 숨지게 했다. 17일 오후 온라인에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까페가 개설되었고 시민자발적인 추모행사가 제안되었다. 국화꽃 한 송이와 추모메시지든 추모객들이 17일 밤부터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들었다. 주말 21일엔 사건장소를 한 바퀴 돌고 오는 추모행사가 있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에 추모메세지를 적고 헌화를 하는 추모의식을 가졌다. 24일 화요일에 비 예보가 있어 추모현장을 지키던 자원봉사자들이 23일 새벽부터 이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추모메세지를 담은 쪽지들은 서초구청과 서울시로 옮겨졌다. 일단 서울시민청에서 24일 화요일부터 피해자를 위한 추모공간을 운영한다.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여성플라자 1층엔 추모공간에 있던 메시지를 영구 보관하는 추모공간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23일 오후 여성가족재단에 확인한 결과 공간을 마련해놓고 추모쪽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 여혐을 혐오하는 여성들이 여중생을 폭행했다는 피켓을 든 남성이 서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고요히 피켓과 1인 시위자를 번갈아 보며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살인의 소비

“강남역 묻지마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이 이 소식을 쏟아냈다. 종편방송은 사건현장이 수습되는 모습까지 내보냈다. 오열하는 피해자의 남자친구의 모습도 전파를 탔다. 이 화면은 유투브에도 게시되었다. 일부 언론은 피의자가 신학대학생이었으며 불우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제목을 달아 뭇매를 맞았다.
서울의 최고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밝은 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여론은 여성혐오냐 정신질환자의 범죄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진보 페미니즘 커뮤니티로 알려진 메갈리아와 메르스갤러리엔 여성혐오에 대한 고백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뒤이어 어느 커뮤니티에도 속하지 않은 여성들이 자기가 겪었던 여성혐오, 여성이라 위험했던 순간을 고백했다. 일베 사이트는 여성혐오 뿐 아니라 강남역 추모를 혐오하는 게시글이 넘쳐났다. 일부 일베 회원은 추모현장 포스트잇 제거나 1인 시위 계획을 게시했고 회원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18일부터 시작된 추모열기는 주말에 정점을 찍었다. 대로변 전철역 앞은 숙연했으나 그 사이 좋게 보면 열띤 토론이, 나쁘게 보면 분란이 일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낯선 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에 대한 반대의견을 전개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휴대전화로 촬영되어 SNS에 올랐다. 때로 경미한 폭행이 일어나거나 야유와 항의도 있었다. 자극적인 모습은 SNS에 게시되어 소비되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여성용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가스총이나 스프레이, 호신용경보기나 호신봉부터 주먹에 끼고 상대방을 가격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너클이라는 용품은 반지형태와 펜던트형태로도 출시되고 있다.

언론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초점에서 벗어나 추모공간과 추모행위로 이동했다. 일베와 매갈리아의 대격돌이라는 이분법적 논쟁과 여혐과 남혐의 충돌이라는 논리도 퍼져나갔다. SNS에는 매일 여혐과 남혐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흰색과 분홍색이 섞인 리본. 2016년 5월 23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간이란 무엇인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더 이상 소개되지 않았다. 경찰은 본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보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청 발표 통계자료 (2014)

항목

남성

여성

전체 범죄자수

1,515,159

336,748

전체 피해자수

869,618

443,507

살인 범죄자

866

170

살인 피해자

511

404

성폭력 범죄자

24,710

428

성폭력 피해자

1,375

27,129

정신장애 살인 범죄자

초범 26

재범 38

묻지마 살인 건수

201314

201410

 

통계자료는 신고 접수된 사안에 국한되는 맹점이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후 SNS에는 수없이 많은 여성들의 공포가 나열되었다. 성평등을 저해하는 행위나 사소한 성희롱과 성추행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들이 “이것이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치는 행위부터, 속옷을 입었냐고 검사하는 중고등학교의 남성교사가 있었다. 여성들의 고백은 이 나라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성희롱과 성추행에 무덤덤해진 상태로 살아왔다는 걸 드러냈다. 우리의 깊은 치부가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이번 일은 하나의 비극적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되는 단계를 순차적으로 보여줬다. 사건이 발생했고 순수한 추모가 있었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해자를 옹호하는 자들까지 등장했다. 그 이면에는 그들 역시 “죽을 만큼 살기가 힘들다”고 외치지도 못하는 마음이 보였다. 그러나 어떤 환경적 문제와 개인적 결함도 범죄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는 도덕과 윤리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강남역에서 한 여자가 무고하고 억울하게 죽었다. 범인은 고의적으로 여성을 기다렸고 그는 정신질환이 폭력적으로 발현된 인간이다. 이것이 그저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거나,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방기로 일어난 사건이라거나, 복합적인 성별 불평등에 기인한 사회적 현상이 집약된 사건이라는 의견이 모두 각자의 이해가 될 것이다. 모두의 다양한 의견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였다.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만나고, 강남구와 서초구가 만나는 자리에 반목하고 화합하는 사람들이 교차되었고, 혐오와 공감이 한 자리에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메갈과 일베가 만났다. 2016년 봄, 지금 이 나라를 지배하는 모든 상반된 정서가 강남역 10번 출구에 응축되어 폭발했다.

한 여성이 무고하게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반성을 불러냈다. 추모의 기억이 오래 지속되어야 할 까닭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길에서 만나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전부일 수도 있다.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죽였는지를 넘어 비극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이냐고 끊임없이 질문했던 프리모 레비처럼, 이 비극적인 역사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묻고 되묻는 일 뿐이다.

공감하는 인간은 추모와 애도를 통해 자기치유를 시도하고 상처받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자 한다. 누군가 이를 조롱하거나 평가하고 규정지을 때, 눌러왔던 분노가 터지곤 한다.
애도가 조롱을 만날 때, 추모가 평가를 받을 때, 투사가 태어나고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폭풍을 바라보는 사람의 등을 때릴 필요는 없다. 누군가 억울하다고 말할 때는 제발 좀 닥치고 듣자. 타인의 공감과 애도를 평가하지 말자. 나의 사연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 타인의 역사를 내가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우리의 삶이 달라졌듯이, 강남역 10번 출구가 성평등의 새로운 출구가 되길 바란다. 한 사람의 죽음이 오래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떤 죽음도 오롯이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 무엇보다 숭고하게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본 글은 코코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500

[자본의 풍경]누가 예산을 끌어올 것인가

나는 90년대 노태우정권때 지어진 신도시에 산다. 신도시의 목적은 서울과 타도시와의 연결이니까, 이 도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고속순환도로를 끼고 있고 고속도로와도 가깝다.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정확하게 나뉜 이 도시는 두 개의 구(區)로 나뉘어 있다. 구도심에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있고, 신도심에도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봤자 80년대쯤의 가옥들이다.

지난주부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을에 관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구에 속해있지만 구도심의 모습을 가진 동네다. 아이들과 첫 수업으로 마을답사를 시작했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하늘도 맑았다. 지도를 보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근 중학교를 돌고 학교 주변 동네로 내려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학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의 길은 험난했다. 인도가 없거나, 있는 인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해 위험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과 민들레, 명자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도시순환고속도로가 아이들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저 도로가 하늘높이 치솟은 이후 그 아래는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의 횡단보도를 지나 중학교에 도착했다. 축구하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이 깔린 자기네 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며 중학교 운동장이 좋다고 한참 떠들었다. 중학교 앞에 건물을 짓고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계속 앞뒤를 살폈다. 근처에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이라며 감탄했고 동행한 교사도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골목길을 살펴보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란히 병렬을 이뤘고 80년대에 지었던 전형적인 양옥주택들이 이제는 다세대주택이 되어 철제계단과 작은 현관등을 덧붙여 변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 이상한 아저씨가 많다며 아침 등굣길에 “한 번만 안아보자.”말을 거는 남자 얘기를 했다.

 

“그럴 때는 안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막 도망 오면 돼요!”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예쁜 얼굴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친 담벼락 아래 좁은 인도가 있고 그 건너편엔 인도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2차선 도로는 근처 대기업 연구소로 들어가는 차들이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를 이룰 만큼 가득하다고 담당교사가 전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 아이들을 학교 방향으로 인도하며 가만히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할 여건이 안되니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반대편에 인도를 설치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통학로를 개선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정리하고 공론화해서 시청 도로교통과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정책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순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용을 누가 가져올 것이냐에서 걸린다. 인근에 붙어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지자체에 내는 세금에 따라 행정과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원, 도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결국 누가 돈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공이 갈린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여 안전한 통학로로 바꾸자고 백날 결의한 들, 예산을 따올 수 있는 정치인과 행정력이 없으면 백 명의 의견도 그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시 예산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행정은 결국 예산이 결정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 일개 시민이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돈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본 없이는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잔디밭이 깔린 중학교와, 3층 집도 생각났다. 아, 모두가 돈이 필요한 일이다.

2016. 4. 13.

코코뉴스 [자본의풍경]에 연속 게재하는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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