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

1. 배경

1979년 10월 26일, 1961년부터 18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의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대통령이 죽고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시민들은 독재가 끝났으니 새로 대통령도 뽑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겨울, 대통령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며 군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군인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취소해버렸습니다. 나라가 위험해졌다며 군인들이 시민들을 감시하고 경찰을 대신했습니다. 소장계급이었던 전두환이 대통령처럼 굴었습니다. 최규하 총리는 자리에서 쫓겨났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인들이 정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군인들이 세상을 점령한 것입니다.

2. 왜 시작되었나?

1980년에 만일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면 대통령후보로 나올 만한 정치인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김대중은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박정희 대통령 때 정부에 반대하고 독재를 그만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과 군인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김종필과 시민들에게 존경받았던 김대중을 체포했고, 박정희를 반대했던 김영삼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거나 집안에 가둬버렸습니다.

옳은 소리를 해온 정치인들이 범죄자처럼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민주주의를 바랐던 시민들의 실망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먼저 시위에 나섰습니다. 현수막과 맨주먹으로 나선 학생들을 군인들이 마구 잡아갔습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힘으로 정부를 제압한 전두환은 물러가라, 더 이상의 독재는 싫다고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전두환과 군인들은 인기가 높았던 김대중과 김대중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광주는 특히 김대중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시민들은 감옥에 갇힌 김대중을 석방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3. 광주 민주화운동의 시작

5월 18일, 그동안 작은 시위를 이어가던 광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습니다. 바로 다음 날 5월 19일, 전두환과 군인들은 거칠고 사나운 부대를 만들어 광주에 보냈습니다. 군인들도 이유를 모르고 광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군인들의 대장은 전두환이었습니다. 광주에 가는 군인들에게 광주에 전쟁이 벌어졌고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무리들이 숨어있으니 누구든지 눈에 띄면 잡아서 가두고 죽여도 된다고 지시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군인들은 정말 전쟁터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 때리고 죽였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5월 21일부터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경찰서에서 총을 꺼내고 버스와 트럭으로 길을 막고 군인들을 잠시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더욱 뜨겁게 모이자 더 많은 군인들이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 모여들었습니다. 군인들은 헬기에서 총을 쏘고 거리에서도 총을 쏘고 도망가는 시민들을 잡아 곤봉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광주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혔습니다.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섬이 되어버린 삶의 터전에서 군인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다쳤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나서서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에게 전달했습니다. 모두가 가족이고 하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렇게 한 마음으로 힘을 합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동사상, 대동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아끼고 지켰던 정신이 바로 대동정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죄 지은 것도 없이 계속 죽어나가는 것도 모자라, 탱크까지 앞세워 시민들을 짓밟으려 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도청에 모여 광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헬기까지 동원해 도청을 공격했습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군인들이 광주에 몰려들어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 가뒀습니다. 5월 27일이었습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에서는 수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3천명 넘는 사람이 다쳤습니다. 죽은 사람들 중엔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이 열흘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4. 518민주화운동의 이름이 생기기까지

그때 군인들에 의해 집안에 갇혔던 김영삼은 1993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1998년에 김영삼대통령에 이어서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여태까지도 518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전두환이 자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죽이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사실이 아니라며 계속 발뺌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에 가족을 잃은 시민들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 살아있는데도 말입니다.

5. 우리의 할 일

이 끔찍하고 슬픈 사건은 1980년 전국을 뒤덮은 시민들의 열망, 민주주의를 원하는 움직임이었다는 뜻을 담아 지금은 “518민주화운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비극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기억해주세요.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바로 우리입니다.

 

작년에 써둔 것 보완해서 공유.

안양군포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을 담을 전시물이 필요한데,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걸 찾지 못해,
글쟁이의 쓸모를 발휘해 봄.
사실 왜곡이 있나 계속 검토중.
자극적인 묘사는 하지 않으려고 애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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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시장 근처에 옛날통닭과 생맥주만 파는 집이 있다.
아이가 그 집 통닭이 제일 맛있다고 해서 가끔 가서 포장을 해 온다.

오늘은 통닭 두 개를 튀기고 지역화폐카드를 내밀었더니 통닭집 남자가 이거 어떻게 쓰느냐고 묻는다.
동사무소 가서 받아왔는데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여기 돈 들어오면 문자 오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앱을 까시고 통장을 연결하셔야 한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앱을 깔아드릴까요? 물었더니 휴대폰을 냉큼 가져왔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여는데 연결이 잘 안되어 보니 로그인이 안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아, 구글 계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메일이 있어야 해서요.”
“아휴 나는 그게 뭔지 몰라요.”
“제가 해드릴까요?”
“아휴 그래주면 고맙죠.”

나는 다 튀긴 통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메모지와 펜을 받아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구글아이디를 하나 만들었다. 비밀번호는 쉬운 걸로 만들어 메모지에 적었다. 그제서야 내 앞에 앉아 있는 초로의 남자가, 사장이 아니고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인인지,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남자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구글계정을 일단 만들고 구글플레이스토어가 열려서 경기지역화폐 앱을 다운받았다.
“이거 다운받으면서 통장 연결해서 쓰시는 거예요. 통장 번호 기억하세요?”
“통장 없어요.”
“아.. 월급 들어오는 통장 같은거.. 전혀 안 쓰세요?”
“통장 없어요.” 라고 같은 대답을 하자, 주인여자가
“기초수급 들어오는 통장 있잖아요.”라고 말을 보탰다.
앱 다운로드가 완료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통장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앱이 열려서 이용약관에 동의를 하고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삼촌”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어느 통신사냐고 물으니 삼성폰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바탕화면으로 넘어가 앱을 몇 개 살펴보니 LG U+ 앱이 보여 통신사는 엘지신 거 같다고 하면서 본인인증을 시작했는데, 본인인증이 계속 안됐다.
기초수급이 들어오는 통장이 있다는 얘기가 떠올라,
“이 전화번호 삼촌꺼세요?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여동생이 해줬다”고 대답했다.

본인이라는 걸 인증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나는 그 사람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삼촌은 내 손에 들려 있던 자기 전화기를 살짝 잡았다.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아이고 됐어요. 닭만 다 식었네. 제가 내일 동사무소 가볼께요.”
나는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삼촌’에게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시고요. 혹시 앱으로 뭐 해야된다 라고 하면 이거까지 했다고 얘기하시고요. 이메일 만드는거요. 본인인증이 안되면 상품권으로 받으실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받으셔도 될거예요. 아무튼 가서 물어보세요.” 나는 닭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인사를 하고 닭봉투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서 자물쇠를 푸는데 주인여자가 나와 문앞에 서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장사하세요?”
“아.. 예.. 저 이런 저런거.. 글도 쓰고.. 시민단체 일도 좀 해요.”
“그래서 그렇게 착하시구나. 고맙네요. 이거 너무 어려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줘도 못 써요. 괜히 시간만 버리고 맛있게 못 드시게 됐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누군가에겐 앉은 자리에서 꿈적앉고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 되어간다. 본인인증을 할 수 없고, 자기 명의로 된 휴대폰이 없고, 자기 통장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 선한 피해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과거를 자꾸 후회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나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말했던, ‘삼촌’은 잠을 잘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집엔 에어프라이어도 있어요. 집에 가서 덥혀 먹으면 돼요. 닭 식은 건 괜찮아요. 모두 해결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자전거를 타고 오며 못 다한 이야기를 혼자 머릿속에서 떠들었다.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이 왜 착한 척 하고 다니냐고 한다.
확 마…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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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와 시민사회단체에 관하여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 이제는 국회의원 당선인에 대한 별의 별 소리들이 돌아다니는 걸 며칠 지켜보며, 부글부글한 마음을 참다가 오늘에서야 적어본다.
(요즘은 부글부글 며칠 푹 고다가 쓰는 게 패턴이 되어가나)
1. 정의기억연대는, 그 초창기부터 정신대와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알리고 비인간적이고 비평화적인 폭력적 행태를 비판하고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에 비전과 미션이 적혀 있다.
비전 :
우리 함께 손잡아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이 땅을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미션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
– 피해자 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조사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교육과 장학사업
– 기림사업과 국제연대 사업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
– 전시성폭력 피해지원

2. 시민사회단체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한다. 시민사회단체는 그 주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당사자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연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운동을 직접 실행하는 경우는 장애인인권운동, 노동운동이 대표적이다. 연대운동의 경우는 조금 더 추상적이고 거대한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교육운동, 환경운동등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
정의기억연대는 당사자와 연대체가 결합한 복합적 형태라 볼 수 있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에서였다. 그 문제를 세상에 알린 것이 한국의 학자와 시민운동가였다. 알리기만 하고 사라지는 이슈들은 수두룩하게 많다. 단체를 설립하는 것은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다. 누군가 이 일을 붙잡고 있어야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싸운다고 해서 개인의 생계가 해결되진 않는다. 대부분 초기에는 자기 사비를 털고 자기 시간을 털고 일상과 영혼을 갈아넣어 시작한다.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시민운동단체라 보기 어렵다. 돈이 모이는 이유는 투자대비 성과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단체는 자본금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으나, 시민운동을 주로 하는 단체들은 초기에 절대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 “훌륭한 일 하십니다.”라는 칭찬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다.

4. 일본군성노예문제는 이제 국제적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은 아직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박근혜정권에서 저지르는 당사자 동의 없는 합의 때문에 일이 더 꼬였다.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자가 행했던 일을 원상복귀하는 일이 어렵다. 한마디로 투표 잘못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십 년간의 노력이 작살난 것이다.
이번 일로 언급되는 문제들 중에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당사자들이 피해자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운동의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중에 김복동 어르신처럼 앞장 서서 나섰던 분도 있고 거부한 분도 있을 것이다. 모두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헤아려야 하는 부분이다. 수십 년 동안 집회에 나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또 말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왜 발생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평생 피해자로 살게 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죽을 때까지 피해를 말하게 만들었는가.
정대협인가, 일본인가?

일본이 사과를 했다면 정대협은 피해자로 말하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다면 일본은 이 모든 증거를 삭제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내 딸이 위안부로 갔어도 나는 일본을 이해한다’는 주옥순의 주장과 다른가? 그렇다면 정대협 외에 누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졸속으로 협상했던 한국정부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믿을 수 있나? 아니. 행정기관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행정기관은 입법기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고, 입법기관은 당대의 요구에 따라 이기적으로 구성된다.

5. “이래서 시민단체에 후원 안 합니다.” 라는 댓글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자 지원을 하는 재단이 아니다. 정대협에서 정의기억연대까지로 이어진 일본군피해자 문제의 보상과 지원은 국가대 국가의 문제로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보상금을 받아 피해자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에 후원하는 것은 조직이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그 조직이 무너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는다. 상근자 급여 조금 더 가져가고, 밥이라도 사먹고, 교통비라도 하라고 후원하고 회비를 내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이전의 정대협이 구호단체이거나 복지단체인가?
국가대 국가의 피해보상 문제를 일개 단체가 집행하는 경우도 없다.

후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지역아동센터에 당신이 후원금을 낸다고 치자. 그 돈으로 쌀을 살 수도 있고, 아이들의 낡은 신발을 사줄 수도 있고 다 같이 읽을 책을 살 수도 있고, 활동가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을 수도 있고 아픈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가느라 택시를 탈 수도 있다. 돈 좀 줬더니 길바닥에서 아이스크림 사먹더라고, 돈 좀 줬더니 돈 아깝게 택시 잡아타더라고, 비난하는 것은 마땅한가?

시민사회단체의 후원금은 대부분 운영비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비용으로 노동하는 활동가들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최소한의 급여가 필요하다. 전국평균 활동가들의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최저시급 이상의 비용을 받을 자격이 있고, 상여금을 받을 자격도 있고, 복리후생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운가?
한겨레에서 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사가 있다.
http://www.hani.co.kr/…/society/society_general/918928.html…
나는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하고 있지만, 2014년부터 지금까지 무급으로 일했다. 교육운동 외 다른 단체의 간사역할을 하면서 2020년부터 월 20만원씩의 활동비를 받고 있다. 그게 내가 받는 급여의 전부다.

각 시민단체는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의 재정상황이 되면 홈페이지에 모든 재무상황을 공개한다. 홈페이지 운영도 어려운 단체는 총회를 거쳐 회계 내역을 공개한다. 내부자들이 자금을 유용하면 운영위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싸인 하나 맘 편하게 못 받는게 시민단체다. 모두가 감시자고 철저하길 원한다.

6. 활동가의 자녀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유학을 갔다고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해 실소을 참지 못하겠다. 세상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당신들이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인내심과 위기대처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접시 닦으며 유학 생활 하는 사람 있고, 노숙자가 되면서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케이스도 봤다. 2년제 컬리지를 다녔다가 4년제로 점프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중국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해결하고 사업도 했다. 가진 게 없는 집구석에서, 부모는 운동한답시고 내 팽개쳐져 자란 아이들은 상상이상으로 강인하게 자란다.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알아서 크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돌파력은 보호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다. 배경 없고 돈도 없는 자들이 신념을 가졌을 때,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가진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다. 년 소득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유학이라 놀라운가? 그만큼 대단한 의지의 인간들과 그 자녀들이 시민운동계에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서 버티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파들이 수십 년을 괴롭히고,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현실화 시키는 일이 만만해보이나? 그렇게 우스운 사람들 아니다. 운동가들은 돈과 명예를 떠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안다면, 이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7. 김복동 장학금은 한겨레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의 자녀들, 보호받지 못하나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쓰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장학금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44520.html
활동가는 시민단체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만을 말하지 않는다. 급여 없는 활동가가 더 많다. 때로 활동가들은 과로사로 먼저 떠나기도 한다. 투쟁과정중에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미약하나마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적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만드는 장학기금들이 더러 있다. 운동에 빚을 진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기금이다. 김복동 장학금이 나눠먹기로 보였다면, 고인의 유지가 무엇인지, 그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떠드는지 궁금하다.

8. 정의기억연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어쨌거나 물어뜯고 공격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겠다. 본인의 낮은 자존감을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남은 삶에 행복이 있길 간절히 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첨언하자면.

그동안 시민운동은 정치, 행정과 시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계형 정치인이 늘어나고, 정치가 신뢰를 잃고, 언론도 돈을 쫓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뒷심이 부족해졌다. 믿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찾아오는 언론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운동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언론사도 만들고 직접 정치에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판에 속한 자들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다. 모든 것이 운동의 일환이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이후에 변질되는 것은 개인의 운명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개인의 욕망까지 비난할 권리는 없다.

caption
2020. 5. 12.

종교가 필요한 나라

2020년 4월 11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나니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꿈꾸고 자기 공동체에서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경제 시스템까지 구축하길 원하는 정서가 매우 오랫동안 발현되어 왔다고 느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라 부르건간에, 사민주의나 민주주의나, 때로는 어떤 공산주의적 요소도 충분히 함의하고 있는 공동체들이 있었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구원자에 의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길 오랫동안 염원해온 것이다.

정치와 반체제적 혁명 주체들이 이를 소화하지 못했을 때, 사이비종교가 나타나 그들을 구원한다며 나꿔채갔고 그들은 자기들만의 왕국에서 최면에 취한 채 살아갔다.
그 왕국은 부실하게 지어진 것이라 외부와 내부의 균열로 깨어지곤 했고, 세상에서 고립된 사람들의 공동체가 박살나면서, 갑자기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신천지와 그 이전의 종교들이 보여왔던 행태를 보면 분명 공산혁명, 또는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일부의 형식만 빌려 왜곡된 형태로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에 시민운동의 한 갈래가 급진적 환경생태운동으로 분파되었을 때, 교조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기이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들 중 일부가 분명 신흥종교에 들어가 브레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의심한다. 유물론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겠는가 질문한다면, 내가 아는 한 87세대에서 유물론이나 막시즘을 잘 이해한 사람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시대 정서가 그랬기 때문에 합류한 얼치기들도 많았다.

사이비를 비롯한 신흥종교가 대를 이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욕구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마음을 사는 데 정확한 대응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판에서도 한 리더를 신화속 주인공쯤 되는 영웅으로 만들어 한없이 선량하고 깨끗한 그분으로 만드는 정서가 있다. 우리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추종자들이 그렇고 문재인을 지키는 것이 공적 약속이라고 말하는 일부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이전에도 도처에 있었다. 정치인을 하나의 권력지향적인 자연인으로 보지 않고 마치 신탁을 받아 아버지의 칼 반쪽을 가지고 대모험을 떠나는 어린 유리왕으로 보는 것이다. 권력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반인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암투를 견디고 버텨야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순전무결한 우리의 왕을 찾는 사람들은 신흥종교와 정서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시민으로서 가장 적절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더 낫게 만들만한 무기를 찾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캐릭터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승률이 가장 높거나 내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뽑아내고 나는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그 캐릭터를 길러내면 되는 것이지, 그 캐릭터를 숭배하거나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일부 열혈 정치 지지자들은 무단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은 단톡방에 초대해 집단 제사를 지내자며 울며 읍소한다.
그러나 언제나 선거판에서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캐릭터를 쓰고 버릴 각오를 하고 투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정의로워졌는가.
예전보다 부정한 것을 적발하기 쉬운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가. 싫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며 운명공동체다. 거래를 하며 사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거다. 그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끌어당길 것인가는 각 신흥종교의 흥망성쇠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2020년 4월 12일

태안, 이후 12년

1년 정도 걸린 태안환경보건센터 백서의 마지막 파일을 보냈다.
아마 디자인파일이 나오면 한 번 더 검토를 하겠지만,
그 중 맨 마지막에 붙인 에필로그의 일부를 붙인다.

태안환경보건센터 백서는
태안에서 일어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건”에 대한 백서가 아니다. 이 백서는 그 사고 직후 설립된 환경보건센터가 지난 12년간 어떤 사업을 통해 주민의 건강을 지켰는지 정리한 백서이기 때문에, 책의 대부분이 건강검진 결과와 수치, 그래프를 포함한 연구자료로 만들어졌다.

비전공자인 나에게 이 일이 온 건 매우 특별한 일이다.
애초 기획했던 것은 조금 더 부드럽고 읽기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읽기 쉬운 문장을 담으려면 연구결과들을 모두 담기 어려웠다. 수치와 생전 처음 보는 단위와 화학기호들을 적어넣고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연구결과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모르는 것은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태안 주민들에게 “재난에 지역명이 붙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물었을 때, 대부분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마을 리더 몇 사람은, 우리가 그만큼 피해를 입었고 전국민의 성원으로 극복했으며 이제는 자연환경은 거의 다 회복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태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바꿔말하면, 태안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이 없어지면, 자기들이 잊혀질까 두렵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국민들의 자원봉사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진행한 사업들은 민간인이 제대로 된 방호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원유가 가득한 갯벌에 뛰어든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규명해야했다. 당시 방제작업에 장기간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코호트 관리되고 있다.

나는 태안의 일을 “국민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칭송하는 게 불편하다. 기름이 가득한 바다에 비전문가나, 민간인이 들어가 맨손으로 기름을 퍼내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10년이 지나 단 며칠 방제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건강은 회복되었겠지만 (대부분의 성분은 소변을 통해 배설되고 사람의 몸은 원형을 찾아가기 위해 애써서 독성물질을 빼내려고 작동한다) 남은 사람들은 다르다.

태안에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만리포와 천리포 사이에 있다. 이 사고에 대한 백서는 ‘극복백서’라는 이름으로 2018년 출간되었다. 아래 링크에서 PDF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chungnam.go.kr/memorial/content.do…

에필로그 중 일부 —————————————————–>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재난은 그렇게 온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도한다. 사람이 쓰러지고 그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달려간다. 어떤 재난은 눈앞에 죽음이 선연히 펼쳐지고 그 상황이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전 세계로 전파되기도 한다. 눈앞에서 죽음이 펼쳐지지 않는 재난은 공포를 전달한다. 사멸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절망한다.

한겨울 차가운 바다에 뜨거운 태양이 떠올라야 할 때에 태양대신 기름이 뿜어져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냄새가 불안을 전달했다. 곧 해결될 거라던 방제작업은 쉽지 않았고 날씨는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서 삽시간에 해안가로 기름이 흘러들어왔다.

시커먼 기름이 바다를 뒤덮으면서 새들은 땅에 내려앉고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올랐다. 평생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 기름을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을 쓸 수 있는 연안가의 주민들은 살림살이를 챙겨들고 바다로 나가 기름을 퍼담았다.
2019년, 한 누리꾼이“국난극복이 취미인 국민”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남의 일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일에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을 닦아냈다.

기름유출사고가 처음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반복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을 보면서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던가.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을 두고 “우리가 너무 무지했다.”라고 말했다. 기름을 치우는 것만큼이나 기름을 치우는 사람들의 건강도 중요하다. 사람이 저지른 일을 사람이 해결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고 다급한 사람들이 더 먼저 기름에 노출되었다.

세상엔 수많은 대형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지만 잊고자 하는 만큼 빨리 잊는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이 사건으로 인한 영향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연구와 환경보건서비스로 증명하고 있다.

환경보건분야는 아직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는 않다. 국가적으로 사고 이후의 치료와 응급지원체계, 공공의료에 대한 담론이 제기되었으나 환경을 미리 점검하고 환경으로 인한 집단질환 발병과 건강영향에 대한 체계적 시스템도 아직 부족하다.
환경보건계의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보건시스템이 분산된 점을 지적했다. 노동환경 보건분야는 노동부에서, 어린이 청소년 등 학령대 인구에 대해서는 교육부에서,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환경부에서, 보건서비스는 보건복지부에서 나누어 맡고 있다. 통합시스템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2000년대 이후 불거지는 환경문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것들이 크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마련되기 전 환경부는 폐광산과 산업단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국민환경보건문제를 제시했고 이전에 없던 환경오염물질로 인한 질환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한 지역에 일자리를 제공하던 시설들이 환경오염물질을 뿜어내기도 하고 시설사용이 중단되면서 다른 환경오염요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대형사고로 인한 환경건강영향평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 생태계 파괴는 많이 거론되었으나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유례없는 대규모사고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주거지를 덮친 사례다. 하루나 반나절 방제작업 자원봉사를 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연인원 120만 명 이상이 유류에 노출된 셈이다. 일시적 증상과 노출피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때 기름을 닦았던 마을주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태안에 살고 있다. 당시 대피조치는 전혀 없었으며 고약한 냄새에 위험을 직감했던 주민들이 자신의 어린자녀들을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 정도가 전부다.

태안환경보건센터의 과업은 사고이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은 일어나버렸고 그렇다면 그 다음엔 사회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름을 닦았던 사람들이 환경성 질환에 시달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미미한 증상들이 만성질환으로 전환되었고 아직도 마음에 남은 충격과 상처는 완전히 씻겨나가지 않았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아직도 기름 닦는 꿈을 꾸다 깬다는 주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설립 초기 급성건강영향평가를 통해 어떤 물질들을 중심으로 연구조사 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해왔다. 주민들은 언제 자신이 질병에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태안환경보건센터의 건강검진에 대한 필요성에 동의한다. 기름은 닦아냈지만 이후의 바다생태계는 변했다. 태안 주변의 산업시설과 산업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유해물질들이 태안을 감싸고 돈다. 주민들은 새로운 환경요인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후략)

사진은 2007년 당시 의항리 밧고개 자원봉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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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2020 제21대총선 선거판 관전평

안양 2020 제21대총선 선거판 관전평

정당원으로, 선거캠프에 밀접하게 접근해 본 2020 총선의 안양 이야기를 해본다.

1.

안양지역은 선거구가 세 개다.
시는 원도심, 구안양이라고도 하는 만안구가 있고, 평촌신도시로 부르는 평촌지역은 동안구이다. 인구 분포에 의해 만안구는 1개 선거구, 평촌지역은 동안갑, 동안을로 나뉜다.
안양시의 전 인구는 56만 정도로 매년 1만 정도 줄어드는 추세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만안구는 이종걸 의원이 5선, 이석현 6선, 심재철이 5선을 했다. 그러니까,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이 세 사람이 20년간 지역구 국회의원이었고, 그 중 이석현 의원은 1996년부터 24년동안 국회의원을 한 것이다. 기초의원 선거추세를 보면 민주당과 미통당 계열이 항상 절반씩 나눠갖는 형태였고 기초의원을 보면 여성이 타 지자체보다는 많은 편이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더민주의 다선의원 두 명이 모두 경선에서 탈락한 것이다. 심재철은 미통당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동안을에 다시 출마했다.

2.

만안구는 경기도연정부지사를 지낸 강득구 전 도의원이 더민주로 출마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성실하고 진솔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별다른 미통당 주자가 없었던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안양시 전 시장인 이필운 씨가 강득구 후보가 등록하면서 바로 후보 등록하고 출마했다. 이필운 전 시장은 강득구 씨가 출마하면 자기가 나서보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여기에 지역을 오래 떠나 있었으나 예전에 안양시장과 국회의원에 도전했던 이종태 씨가 만안구로 돌아와 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여기는 말하자면 지역기반 사람들의 대결.

동안갑은 이석현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했다. 승자는 두 번이나 경선에도 나가보지 못하고 당내에서 탈락했던 민병덕 변호사가 세 번째 국회의원 후보에 도전해 결국 민주당 출마자가 되었다. 미통당은 임호영 후보가 출마했다. 서울대에 판사 출신이었다. 정의당 동안갑 위원장이었던 이성재 노무사가 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서울대 출신 변호사와 판사 사이에 경희대 출신 노무사가 한 명이 출전한 모양새가 되었다. 동안갑은 고정적으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좀 있는 편이다.

동안을은 현역의원 3명 대결로 시선을 모았는데, 심재철의 텃밭에 이재정 민주당 비례대표국회의원이자, 당 대변인이 2017년 가을쯤 이사해 온 것으로 안다. 이재정 씨가 오면서 당위원회가 정리되었고 출마하겠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정의당은 역시 비례대표이고 정의당 수석대변인이었던 추혜선 의원이 출마했다. 현역의원 세 명이 한 곳에서 대결하게 되었고 세 명 모두 만만치 않은 의원들이었다. 심재철 욕 많이 먹지만 의정활동이나 지역활동이 아주 저열한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미통당 원내대표. 세 명 모두 당내에서 입지도 좋은 편.

만안구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때 박달역 신설이 무산되면서 지역내 갈등이 첨예한 상황. 시의원과 의회를 대상으로 지역주민들이 계속 고소고발을 하고 있다. 사실 여기는 이필운 강득구 대결이 접전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워낙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편이라 강득구 후보가 당선 확실하다.

동안갑도 이석현이 너무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 분의 권력이 어마어마해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임호영 후보가 심히 약체. 고정적으로 진보정당 표가 나오는 지역 정서가 있는데 민병덕 후보가 10년 준비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닌 지라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민병덕 후보는 선거법 위반으로 선거운동기간중에 선관위에서 고발한 상태. 선거운동 전에 경선과정을 설명하는 경선설명회를 30회 가졌고, 당비 대납, 당원 위장전입이 걸려 있다. 당선 이후 법적 다툼이 있을 것.
동안갑에 의외의 이슈는 신천지에서 터졌다.

지역에서 청년단체를 이끌던 청년이 있었는데 (청년이라 봐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79년생이다) 이 단체에 민병덕 변호사가 법률자문을 해 준 적 있다. 임호영 후보측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근데 이 청년단체는 이필운 전 시장이나 심재철도 창단식에 찾아가 사진 찍고 격려한 바도 있어서 임호영 후보의 공격이 자칫 팀킬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부지런히 비방을 했다. 이 청년단체는 신천지로 거의 확실시되어 현재 공중분해 된 상태. 코로나 아니었으면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을 거다. 시민단체에도 많이 기웃거렸는데 아무도 그 정체를 몰랐다.
임호영 후보는 때아닌 색깔론을 들고 나왔는데 정부의 북한이슈 중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공보물에 실어 이로 인해 통일운동시민단체로 항의를 받았고 이 역시 선관위에 고발된 상태다.

동안을은 추혜선의원이 소상공인들과 접촉면을 넓혀 꽤 인지도를 올려놓은 상태였다. 표가 꽤 나올 것으로 예상했고, 10% 이상 무난할 것이라 관망했다. 하지만 심재철이 선거운동기간중에 <통진당 이석기 변호한 종북 이재정 OUT> 이라는 현수막을 내걸면서 표심이 많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심재철만은 떨구겠다는 의지가 막판에 이재정 후보 쪽으로 확 몰린 듯 하다. 추혜선 의원은 3% 정도 득표율로 낙마하게 생겼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번에 바꿔보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재정 측 공약도 현실성 있으면서 괜찮았다. 심재철의 종북프레임에 대해 대응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다.
추혜선 의원은 안양교도소에 애플 R&D 센터 유치 공약을 들고 나왔는데 이게 시민들이 보기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비쳤던 모양이다.

세 개 지역구가 모두 민주당이 될 것을 예측하긴 했는데 민주당 경선때부터 많이 시끄러웠다. 사실 다선의원들이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면 동네 판이 추접스러워진다. 민주당에서 강력한 현역의원 이재정 의원 빼고 여성후보 못 만든 것도 안타깝다.

3.

이번에 안양지역에는 정의당 후보가 모든 지역구에 출마했다는 의의가 컸다. 정당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으면 잊혀진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산 1-2천 손해볼 거 각오하고 출마한 정의당 후보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소수정당 출마도 있었다. 동안을에는 지역에서 인지도는 없지만 민생당과, 중간 사퇴했으나 기독자유통일당 후보도 있었고 다른데와 마찬가지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도 모두 나왔다. 녹색당이나 민중당 후보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정의당은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정의당은 스스로 힘이 적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보수와 중도, 진보가 뒤섞여 있다. 미통당은 수구와 보수가 뒤섞여 있다. 미통당은 향후 20대 남성들을 자기들 세력으로 이끌어낼 물갈이를 시도한다면 생명이 연장될 것이지만, 어차피 나머지 소수정당들은 민주당의 표를 갈라먹기 할 수밖에 없다. 미통당 계열은 선거가 없을 때는 갈갈이 찢어져 있다가 선거 앞두고 모두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버리니 이 세력의 힘을 이기기가 어렵다. 보수 진영이 조금 더 다양하게 세분화되어야 한다. 본질은 보수에 가까운데 박정희 전두환과 싸웠다고, 이후 박근혜때 촛불들었다고, 본인이 진보주의자는 아니라는 걸 아직도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민주 정의 진영에도 꽤 많이 있다. 민주진영에 기대어 있는 속은 핑크색인 분들은 어서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민주진보 진영은 저들의 분열을 장려해야 한다. 20대 총선 이후 수구계열이 뿔뿔이 흩어지니 그나마 성과가 나지 않던가. 유승민이 다시 핑크색으로 돌아간 게 안타깝다. 빨리 분당해서 다시 나와라.

진보정당은 조금 더 구체적인 전략과 공약을 내세울 필요가 있겠다. 지역구에서 심상정 혼자 되면 뭐하나. 비례에 박창진(비례 6번)까지 가길 바랐는데 이게 뭔가. 지도부 각성하라.

4.

국회의원 선거를 가까이서 치러보니, 역시 이건 수년간 공들이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생계가 있는 사람이 몇 년간 국회의원 선거에 공들일 수 있겠나. 참으로 쉽지 않다. 선거를 치르면 8~9천만 원 쉽게 깨진다. 유세차량 한 대에 1천 3백만 원 정도 한다. 정당 지원금 있고 정치후원금 받아도 구색 갖추려면 개인 비용 1-2천은 그냥 날아간다. 없는 사람이 선거나가기 어렵다. 그러니, 시민들은 더 많이 정당에 가입해 후보를 내고 선거에 도전할 필요 있다. 선거 한 번 치르면 그래도 경제가 좀 돌아간다. 어쨌든 선거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도 나쁘지 않다. 더 많은 정당, 더 많은 후보들이, 더 다양한 이유로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안양과 연대하는 경기중부, 안양과천의왕군포지역은 모두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시민사회와 민관정이 더 협력하기 좋은 형태가 되길 기대해본다.

202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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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깨닫는것들,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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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민주시민교육 학교 출강 문제로 이번주에 교사들과 이룸 각 팀장들이 전화통화를 했다. 개학이 연기된 마당에, 어제부터는 재 연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서 학교현장은 당황을 넘어서 이제 지친 상태. 언제 개학을 할 지 모르겠는, 또는 개학을 해서도 뭐가 제대로 진행이 될지, 걱정밖에 없다.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곳도 있어서 통화를 하며 수업내용에 대해 의논도 하고 있다.
우리가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은 대부분 모둠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협동과 토론, 활동으로 이어지는 교육안들인데, 코로나로 교실 내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강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교사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있다.

어떤 학교는 모둠활동 최소화, 물건 공유도 줄이겠다고 한다. 짝꿍도 없애고 1인 1책상으로 학생들 간의 거리를 두도록 교실 배치를 다시 하는 곳도 있다. 식당이 있는 학교는 아크릴칸막이를 설치하기도 하고 교실 안에서 밥을 먹는 경우는 아이들이 배식을 할 때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학교 입구에 열감지카메라를 준비하기도 하는데 지자체에서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 사이의 거리를 두려면 교실이 넓어야 하는데, 2000년대 이전에 지은 학교들은 70명씩 들어차던 교실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여유가 있지만 그 이후에 지은 학교들은 교실이 작은 편이다.

안양지역의 K초등학교는 과밀학급으로 유명하다. 한 반에 35명씩 11반이다. 요즘 초등학교 한 반에 30명 정도 되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보통 한 반에 25명 정도인데, 한 학교에 서너 반, 많으면 7개 반인데, 이런 학교는 그런대로 아이들 간의 거리를 둘 수 있겠지만 1개 학급당 인원수가 30명이 넘는 학교는 교실이 꽉 차서 맨 뒷 줄 아이들의 경우 사물함에 붙어서 수업을 받는다.

안양에서 과밀학급인 학교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시경계에 있는 학교, 즉 학부모들이 서울로 출퇴근 하기 좋으면서 유해시설이 없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사교육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위장전입이 많은 경우다. 애들 공부 더 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의 욕심이 위험한 교실을 만들어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교실에 아이들이 꽉 들어찬 것은 각종 호흡기 질환과 감염병에 취약하다. 자리가 좁으니 분쟁도 더 하다. 여름엔 답답하고 에어컨을 틀어도 쾌적하지 않다. 이런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1년 내내 감기에 시달린다. 아이들이 와서 엉기고 안기며 침과 콧물로 선생을 감염시키는 셈이다. 아이들도 서로 인플루엔자를 주고 받으며 산다.

일단 교육안은 죄다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강사들도 묘안을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면서 개학연기가 또 되면 다시 얘기하기로 했고, 하반기로 미뤄봤자 별 이득이 없을 거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끝날 거 같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무리 요즘 애들이 적다고 해도, 한 학교에 보건교사 1명이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상대한다. 이게 감염병 상태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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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에서 진행하는 수업의 일반적인 모둠형태

2.
각 단체들은 집체교육 형태의 공모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올해는 공모사업 모집이 일찍 시작되어 3월부터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육사업이 모여서 듣고 배우고 토론하고 활동하는 것들이라 실내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밀접한 자리에서 신체접촉이 불가피한 형식이다. 이 부분도 교육내용을 모두 변경해야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사업목표를 크게 변경하지 않으면서 교육내용을 변경하려니, 온라인을 이용하거나 콘텐츠 개발 제작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공모사업에서 온라인 콘텐츠 제작, 동영상제작, 책자 제작등은 사업비로 집행할 수 없는 규정이 있는 경우가 꽤 된다. 동영상 제작이 사업주체의 자산취득이라는 것이다. 2019년부터 이런 규정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동영상 제작이 왜 사업주체의 자산취득인지 이해할 수 없으나, 동영상은 사업주체가 나중에 홍보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거다. 이 규정을 올해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민간 사업공개모집으로 실적을 쌓아가는 공기관들은 빠르게 정신 차리고 적응해야 할텐데, 확신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에서 일하고 공기관이 실적 챙겨 먹는 이런 형태의 공모사업은 모두 없어져도 그만인 것이다.

공기관은 교육사업에 대해 평가할 때 1인당 얼마짜리 교육인가로 가성비를 따져 실적을 자랑한다. 의자를 몇 개 깔았느냐로 사업의 양적 평가를 한다. 행사와 교육 모두 마찬가지다. 1인당 1만 원짜리 교육인가, 1인당 10만 원짜리 교육인가로 평가한다. 이게 공무원들이 답답해서 저렇게 평가하느냐. 아니, 1인당 할당되는 교육비가 높으면 의회에서 까인다. 의회의 수준인 것이다. 의원은 누가 뽑으냐? 유권자가 뽑았다. 그러니 이건 의회의 탓도, 공무원의 탓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였던 것이다.

작년에 모 기초단체의 도시재생지역의 마을기자단 용역을 수행했다. 기자단 교육에 대해 담당부서에서 가장 걱정한 것은 1인당 소요되는 교육비가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한 마을의 마을기자가 20명 이상 필요치도 않고 20명을 넘어가면 양질의 교육도 어렵다. 총 용역비용이 1천만원이었는데 기자단 인원 20명에 1천을 모두 소진했다면 1인당 50만 원짜리 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행정감사에서 분명히 지적받을 거라는 게 담당부서의 고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담당팀에서는 50명의 대학생을 불러모으는데 성공해 누적인원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지역의 평생학습원의 질이 그 모양인 것도 이런 이유다. 3만 원짜리 강사 불러 10회 진행하면 교육비용 30만 원인데, 30만 원으로 수강생이 30명이면 1인당 1만원짜리 교육을 2개월 반이나 진행했으니, 훌륭한 사업이라고 평가받는다.
1천만 원 들여 진행한 행사에 의자를 천 개 깔았으면 담당공무원은 어깨 펴고 행정감사에 나갈 수 있다. 모객이 안되어 50명이 모였다. 담당공무원은 좌불안석이다. 기초의회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예산낭비라고 질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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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의자의 갯수가 사업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

나도 이런 평가의 기준을 알게 된 이후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교육대상자의 누적인원을 발표해준다. 다들 엄청 흐뭇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다.
대시민교육과 행사를 평가할 때, 몇천 명, 몇백 명에게 세금으로 수혜를 줬다는 구질구질한 사고방식을 깨지 않는 이상, 감염병 앞에서 대책이 없는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량평가가 꼭 나쁜 것도 아닌데 참 후지게 만드는 시스템에서 살아왔다. 그러니, 지금의 이 거리두기가 얼마나 여러 사람을 성찰하게 하는가.

쪽수 채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인원수 많은 걸로 승패를 걸다니 너무 후진적이지 않은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반성과 교훈은 다 헤아릴 수 없는 정도다.

2020. 3. 27.

정의당원입니다

정의당원입니다.

 

시민이지만 여기저기서 의견을 낼만한 위치에 있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밝힙니다.

 

어려서부터는 민주당을 오래 지지해왔습니다. 민주당도 미통당 만큼이나 이름을 바꾼 적이 많지만 모두 통칭해 민주당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에 대해서 “이의있습니다”를 외쳤을 때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왔습니다. 아주 어릴 때지만, 용기있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라면,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랐습니다.

2012년 총선은 당시 나꼼수의 열풍으로 민주당이 다 이길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 새누리당보다 의석수를 적게 얻었습니다. 다 깔아놓은 판이었는데 민주당도 잘못 판단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을 욕하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내가 민주당에 해준 게 없는데 욕하는 것도 우스워보이더군요. 당원이 아닌 입장에서 정당을 욕할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 정당은 내부결정을 통해 외부에 의견을 개진합니다. 그 당을 바꾸고 싶다면 그 당의 당원이 되어야 하고 내부에서 역할을 해야 정당할 것입니다. 민주당원으로 가입하지 않았지만 항상 민주당을 응원하고 지지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2017년 조기대선으로 민주당이 결국 정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기쁜 일이었죠. 또한, 2017년 이후 우리의 정치지형이 바뀌길 바랐습니다. 자유당계열의 세력들이 정치판에서 완전히 소거되고 민주당이 제자리를 잡아 중도보수의 역할을 해주면서 극우로 쏠려 있던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중심을 잡아가길 바랐습니다. 이제 바라던 대로 조금씩 이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노회찬 의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분과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만드는데 일조하기 위해 정의당에 가입했습니다.

개인적 명분은 언제나 제1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1야당은 명확히 얘기하자면 자유당에 뿌리를 둔 미통당이겠지만, 저는 미통당을 정당조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썩어빠진 봉건영주카르텔이거나 비즈니스를 위한 사이비집단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에 줄서서 신탁을 받기 원하며 개인의 영달과 이득을 위해 어떤 파렴치한 짓도 서슴치 않으며,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제1야당은 정의당입니다. 제1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지형이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장 선 야당을 지지하고 그에 힘을 실어주되, 그 다음 번 판이 펼쳐지면 또 다음 제1야당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여러 실수를 했듯, 정의당도 여러 실수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론이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먹는 욕은 내가 먹는 욕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가 소속된 집단이 욕 먹는게 쪽팔리니 탈당하는 것이 옳겠는가. 내부자로서 어떻게든 잘해보도록 의견도 내고 내부에서 싸우기도 해야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내가 힘 보태는 게 없더라도, 같이 욕받이라도 하려고 들어간 겁니다.

 

노동당이나 민중당, 녹색당의 정책과 철학이 저와 맡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대단히 진보적이지도 않고요. 정의당은 내부에서 보면 경제활동으로 봤을 때 소상공인과 비정규직에게 맞는 정당입니다. 저의 사회적 정체성과도 맞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심재철 미통당 원내대표가 5선째 지역구 의원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왜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계속 심재철을 찍어주느냐, 타 지역에서는 동안을 지역주민들이 똥멍청이라 그렇다고 비난도 합니다. 중앙에서 인정받는 정치인이 지역에서 낙선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구에서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서는 잘 하는데 중앙에서 영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그동안 민주당이 제대로 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한 면도 있지만, 심재철이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티나게 잘 해왔습니다. 과장도 있고 특유의 수단도 있지만, 어쨌든 지역에서 큰 불만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안양에서 민주당의 다선 의원 두 명이 경선에서 떨어졌습니다. 안양시민들의 결정입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는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정말 똥멍청이라 계속 심재철을 찍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중은 정치인을 잘 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써먹을 만 하니 찍어준거고 써먹을 게 없으면 버리는 겁니다. 저는 언제나 시민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기가 막힌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미통당 정치인들은 시민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말없이 투표장에서 그들을 뽑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 그 지역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대구 경북이 촛불이후에도 계속 자유당계열이 승리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일반 시민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비난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의 투쟁과 역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분명히 여당입니다. 의원수도 가장 많고, 대통령도 있습니다. 미통당을 제거하기 위해 여야연합을 한다는 게 과연 민주적인가 생각합니다. 제일 큰 권력을 가졌는데 ‘우리 힘으로 역부족’이라는 말은 부끄럽습니다. 국민 모두가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통당을 반대할 수 있지만 미통당을 지지하는 시민들까지 모두 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진보진영에서 늘 주장하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20년 현재, 정의당원입니다. 회비를 내는 권리당원이고요. 욕 먹는다고 도망갈 생각 없고요. 당원으로 남아 같이 욕을 먹을 겁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게 성향에 맞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더 잘 해주길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시민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에 있습니다. 촛불로 이룬 정권도 잘 감시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한 가지 더,

저는 전 국민이 당원이고 조합원이고 단체 회원이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숨죽여 말도 못 꺼내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기 위해, 모두가 정당인이고 조합원이고 회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페친이 너무 많아요. 먼저 끊어주시면 감사.

관변단체의 외로움

2019년 글입니다.

금요일에는 모 지역의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준비모임에 안양사례를 발표하러 갔었다. 안양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표사례가 되었고 나는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지역네트워크 조성의 대표 발언자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착시현상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수십 년전부터 다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그게 제도권 밖에 있어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회원들은 예전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고 학습이 습관인 사람들이라 내내 공부하고 일반 시민대상으로 강좌와 활동들을 펼쳐왔다. 그걸 모아서 어떤 틀에 끼워맞추게 된 게 최근 일이고, 이 지역에서의 시작은 사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발령나온 장학사의 제안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발표를 하러 다니는 게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지만 태생이 뻔뻔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잘난 체를 하러 다닌다. 내가 외부에 나가서 앞에 서면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안양지역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훗날 내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물론 이름이 쉬우니 기억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나 개인보다 안양에서 민주시민교육 한다는 사람, 으로 내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인지라, 개인의 쑥스러움은 제쳐두고 그냥 잘난 체를 한다.

강연을 끝내고 나면 현장감이 있어 좋고,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재미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그감이 있고 중간중간 성대모사를 끼워넣어 연기하며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어서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고 현장감이 있다는 얘기는 내가 현장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럴 깜냥도 안된다. 그건 연구자들의 몫이다. 대부분 이런 강연은 대학 교수들이 꽤 다닌다. 이 분야에서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한 책에 실리는 필자들은 대학교수나 연구자, 이 분야를 오래 연구한 교육자들이지 나같은 현장 활동가는 매우 드물다. 가방 끈도 내가 제일 짧다. 현장전문가가 이 바닥에 몇 명 더 있는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오래되었고 더 넓은 지역을 기반으로 홛동한다. 하지만 나는 안양지역에 국한해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그 네트워크 조성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교육지원청과 학교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온 일보다, 과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나는 바닥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뭘 만들어서 하나씩 탑을 쌓아가는 유형이 못된다. 그 이유는, 요청을 해오는 일만 처리해도 1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떤 욕구를 가지고 나를 찾는다. “뭘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지 감이 안 온다.”는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이걸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계절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구체화시키면서 흘러간다.

강연은 같은 PPT를 가지고 여기 저기 다닌다. 심화과정이 필요하거나 구체적인 요청을 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학교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해왔는가” 라는 주제면 비슷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업데이트만 한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몇 개 지역에서 같은 내용으로 사례 발표를 해왔다.

금요일에 다녀왔던 곳은 질의응답 시간을 따로 빼두어 좋았다. 질문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어딜가나 있다. 이 분들은 손도 가장 먼저 들고 마무리도 자기가 하고 싶어한다. 이런 분들은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말할 수 있게 둬야하는데 그게 사실 참 어렵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면 그때는 이런 습관이 조금 완화되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기력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본다.

이번에는 강연 초반부터 내 이야기에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이 있었다. 어떤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없고 우리는 배워본 바 없어 가르칠 수 없다는 게 내가 말하는 내용의 요점인데 이 분은 강연 내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보였다. 끝날 때쯤 이 분은 자기가 새마을부녀회 회원이라며 내가 “시민단체에 새마을 부녀회는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매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내가 시민단체라 명명하는 것은 NGO와 NPO를 중심으로 말하는데 새마을부녀회나 민주평통,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는 시민들이 모인 단체이지만 국가로부터 고정적인 기금을 지원받도록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이 다르다고 분리해서 호명하는 것일뿐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분은 “우리도 회비를 낸다”고 항변했다. 그 사람의 기준은 자발적 참여가 회비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과 회비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정확히 알아보셔야 한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다. 대신 “새마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주 활동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회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큰 힘을 지니셨다.”고 조금 추켜세웠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운동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아까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자기들만의 용어와 철학이 있어 장벽이 높은 단점이 있고 오히려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은 진보쪽이 더 많다”고 살짝 디스도 했다. 이때쯤에 그 분의 언성이 좀 낮아지며 살짝 미소도 지었다. 그분도 나름 감정처리를 하느라 매우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이런 강연을 여러 차례 다니며 본 강연 시작전에 항상 “이것은 안양의 특수한 상황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의 머리와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셔도 안되고 다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강연자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그 자리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의 외로움을 나를 부른 이 공동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외로움은 공동체의 적이다. 외로운 사람을 보듬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겠지만, 그 외로움에 같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들인지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외롭지 않다.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회의가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외롭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타인의 삶의 무게를 나눠 짊어지는 게 부담스럽더라도, 적당히 눙치고 뭉개기도 하면서 외롭지 말아야겠다. 회의하자.

2019. 2. 24.

[쓰다]민주시민입니까?

2019년 2월 20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이하나

엊그제는 지역의 교사들이 모여 민주시민교육연구회라는 걸 만들었다고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가 뭘 하고 어떤 걸 해왔는지 설명하고, 네트워크 내의 각 단체와 연대회의의 시민단체들도 소개했다. 시민교육을 하고 있는 안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의 각 특성을 얘기하고 교안개발의 중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면서 질문 있냐고 물으니,

교사들은,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무슨 질문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자기들은 저항을 해 본 적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건 알겠지만, 마을교육공동체를 교육청에서 떠들어댄 지 몇 년이지만, 그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교사들에게 생협에서 장을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섯 명정도 모인 자리였는데 절반이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이 총회 시즌인데, 총회 안 가시죠?”
다들 웃었다.
“그런 모임이 있다고 연락은 오는데 오전에 있어요…”
“총회는 오전에 잘 안 합니다. 그런데 모임이 오전에 있어서 그게 불만이면 사무국에 전화해서 저녁모임도 해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아…”하는 탄식이 흘렀다.

하라는 대로, 그렇다는 대로, 원래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라서 살아온 사람들.

시민사회단체는 백명이면 백명의 의견이 있어 통일이나 완전 합의, 만장일치가 잘 안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 각자 자기 불만을 먼저 털어놓고 민원제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모임에 나온 교사들은,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 저항의 경험이 너무 적어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장학사에게 카카오같이가치에 연재했던 퍼스트펭귄 링크를 보내줬고 이 내용을 공유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올거고 이런 일을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민교육을 지난 십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해왔다고 얘기해주면 될 거라고 얘기하며 헤어졌다.

이미 상당히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교양있는 시민들이 사는 배려 넘치는 사회쯤으로 인식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교육공무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정치성이 드러나는가 늘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몇 해전에는 어느 토론회에서 “자기 자신이 민주시민인가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인데, 시민은 덕망과 교양을 갖춘 존재로만 인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 자격을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 않아요. 착한 어린이는 싸우지 않아요. 라는 노랫말처럼 자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저항하고 기득권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면 곧바로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착한사람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프로파간다.

“말 들어야지” .. 말을 왜 들어. 왜, 들을만 해야 듣지.
말을 안 들으면 니 말이 개똥이라 못 들어주겠다는거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런 교육을 잘 이수해야 4대보험을 직장에서 내주는 주류로 편입할 수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 시민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면이 있는데, 몇 년을 해와도 아직도 2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 무슨 자치를 논하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