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의 외로움

2019년 글입니다.

금요일에는 모 지역의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준비모임에 안양사례를 발표하러 갔었다. 안양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표사례가 되었고 나는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지역네트워크 조성의 대표 발언자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착시현상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수십 년전부터 다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그게 제도권 밖에 있어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회원들은 예전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고 학습이 습관인 사람들이라 내내 공부하고 일반 시민대상으로 강좌와 활동들을 펼쳐왔다. 그걸 모아서 어떤 틀에 끼워맞추게 된 게 최근 일이고, 이 지역에서의 시작은 사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발령나온 장학사의 제안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발표를 하러 다니는 게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지만 태생이 뻔뻔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잘난 체를 하러 다닌다. 내가 외부에 나가서 앞에 서면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안양지역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훗날 내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물론 이름이 쉬우니 기억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나 개인보다 안양에서 민주시민교육 한다는 사람, 으로 내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인지라, 개인의 쑥스러움은 제쳐두고 그냥 잘난 체를 한다.

강연을 끝내고 나면 현장감이 있어 좋고,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재미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그감이 있고 중간중간 성대모사를 끼워넣어 연기하며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어서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고 현장감이 있다는 얘기는 내가 현장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럴 깜냥도 안된다. 그건 연구자들의 몫이다. 대부분 이런 강연은 대학 교수들이 꽤 다닌다. 이 분야에서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한 책에 실리는 필자들은 대학교수나 연구자, 이 분야를 오래 연구한 교육자들이지 나같은 현장 활동가는 매우 드물다. 가방 끈도 내가 제일 짧다. 현장전문가가 이 바닥에 몇 명 더 있는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오래되었고 더 넓은 지역을 기반으로 홛동한다. 하지만 나는 안양지역에 국한해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그 네트워크 조성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교육지원청과 학교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온 일보다, 과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나는 바닥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뭘 만들어서 하나씩 탑을 쌓아가는 유형이 못된다. 그 이유는, 요청을 해오는 일만 처리해도 1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떤 욕구를 가지고 나를 찾는다. “뭘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지 감이 안 온다.”는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이걸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계절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구체화시키면서 흘러간다.

강연은 같은 PPT를 가지고 여기 저기 다닌다. 심화과정이 필요하거나 구체적인 요청을 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학교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해왔는가” 라는 주제면 비슷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업데이트만 한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몇 개 지역에서 같은 내용으로 사례 발표를 해왔다.

금요일에 다녀왔던 곳은 질의응답 시간을 따로 빼두어 좋았다. 질문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어딜가나 있다. 이 분들은 손도 가장 먼저 들고 마무리도 자기가 하고 싶어한다. 이런 분들은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말할 수 있게 둬야하는데 그게 사실 참 어렵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면 그때는 이런 습관이 조금 완화되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기력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본다.

이번에는 강연 초반부터 내 이야기에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이 있었다. 어떤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없고 우리는 배워본 바 없어 가르칠 수 없다는 게 내가 말하는 내용의 요점인데 이 분은 강연 내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보였다. 끝날 때쯤 이 분은 자기가 새마을부녀회 회원이라며 내가 “시민단체에 새마을 부녀회는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매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내가 시민단체라 명명하는 것은 NGO와 NPO를 중심으로 말하는데 새마을부녀회나 민주평통,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는 시민들이 모인 단체이지만 국가로부터 고정적인 기금을 지원받도록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이 다르다고 분리해서 호명하는 것일뿐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분은 “우리도 회비를 낸다”고 항변했다. 그 사람의 기준은 자발적 참여가 회비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과 회비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정확히 알아보셔야 한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다. 대신 “새마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주 활동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회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큰 힘을 지니셨다.”고 조금 추켜세웠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운동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아까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자기들만의 용어와 철학이 있어 장벽이 높은 단점이 있고 오히려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은 진보쪽이 더 많다”고 살짝 디스도 했다. 이때쯤에 그 분의 언성이 좀 낮아지며 살짝 미소도 지었다. 그분도 나름 감정처리를 하느라 매우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이런 강연을 여러 차례 다니며 본 강연 시작전에 항상 “이것은 안양의 특수한 상황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의 머리와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셔도 안되고 다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강연자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그 자리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의 외로움을 나를 부른 이 공동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외로움은 공동체의 적이다. 외로운 사람을 보듬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겠지만, 그 외로움에 같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들인지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외롭지 않다.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회의가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외롭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타인의 삶의 무게를 나눠 짊어지는 게 부담스럽더라도, 적당히 눙치고 뭉개기도 하면서 외롭지 말아야겠다. 회의하자.

2019. 2. 24.

[쓰다]민주시민입니까?

2019년 2월 20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이하나

엊그제는 지역의 교사들이 모여 민주시민교육연구회라는 걸 만들었다고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가 뭘 하고 어떤 걸 해왔는지 설명하고, 네트워크 내의 각 단체와 연대회의의 시민단체들도 소개했다. 시민교육을 하고 있는 안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의 각 특성을 얘기하고 교안개발의 중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면서 질문 있냐고 물으니,

교사들은,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무슨 질문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자기들은 저항을 해 본 적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건 알겠지만, 마을교육공동체를 교육청에서 떠들어댄 지 몇 년이지만, 그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교사들에게 생협에서 장을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섯 명정도 모인 자리였는데 절반이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이 총회 시즌인데, 총회 안 가시죠?”
다들 웃었다.
“그런 모임이 있다고 연락은 오는데 오전에 있어요…”
“총회는 오전에 잘 안 합니다. 그런데 모임이 오전에 있어서 그게 불만이면 사무국에 전화해서 저녁모임도 해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아…”하는 탄식이 흘렀다.

하라는 대로, 그렇다는 대로, 원래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라서 살아온 사람들.

시민사회단체는 백명이면 백명의 의견이 있어 통일이나 완전 합의, 만장일치가 잘 안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 각자 자기 불만을 먼저 털어놓고 민원제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모임에 나온 교사들은,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 저항의 경험이 너무 적어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장학사에게 카카오같이가치에 연재했던 퍼스트펭귄 링크를 보내줬고 이 내용을 공유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올거고 이런 일을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민교육을 지난 십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해왔다고 얘기해주면 될 거라고 얘기하며 헤어졌다.

이미 상당히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교양있는 시민들이 사는 배려 넘치는 사회쯤으로 인식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교육공무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정치성이 드러나는가 늘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몇 해전에는 어느 토론회에서 “자기 자신이 민주시민인가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인데, 시민은 덕망과 교양을 갖춘 존재로만 인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 자격을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 않아요. 착한 어린이는 싸우지 않아요. 라는 노랫말처럼 자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저항하고 기득권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면 곧바로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착한사람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프로파간다.

“말 들어야지” .. 말을 왜 들어. 왜, 들을만 해야 듣지.
말을 안 들으면 니 말이 개똥이라 못 들어주겠다는거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런 교육을 잘 이수해야 4대보험을 직장에서 내주는 주류로 편입할 수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 시민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면이 있는데, 몇 년을 해와도 아직도 2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 무슨 자치를 논하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유효하다.

2019년 8월 – 조국과 서울대

1987년 민중운동을 읽어내려가다가 이석규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이 불과 몇 년전이다.
87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저 놀부 두손에 떡 들고” 라는 노래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대통령 선거를 우리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 수준이었다.

1987년은 6월 항쟁뿐 아니라 노동자대투쟁도 있었다. 8월 22일 대우조선에서 투쟁하던 노동자 이석규는 최루탄을 가슴에 맞고 숨졌다.

나는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을 기억지만, 이석규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아무도, 이석규와 노동자대투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 때, 나는 그 대우조선소에 작업복을 버리고 올라온 남자와 막 연애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모두 서울대였다. 서울대학생들이 서울역에서 회군을 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서울역 회군의 주동자 심재철은 그때부터 민주세력의 역적이다.

94년도에 학교를 들어간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며 호프집에서 맥주를 날랐던 나에게 찾아와 “내가 생각한 한총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던 내 친구로부터, 이화여대 앞의 옷가게에서 티셔츠를 개고 있던 나와 마주친 학교 배낭을 멘 동창으로부터, 나는 수 십번 수백번의 박탈감을 느끼고 대학도 가본 놈이 데모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노동법이 뭐고, 산업재해가 뭔지 모르고 불 난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다 쓰러지는 언니들이 내가 읽는 잡지를 보고 “넌 좀 이상한 애 같아.” 라든가, “너 간첩이지?” 라는 우스꽝스러운 의심을 받았던 세월을 지나고 나니 나도 변하고 말았나.

마치 나도 서울대생이었던 것처럼,
서울역회군에 분노했던 선배가 있는 것처럼, 96년 연세대에서 질질 끌려나온 흰 바지 입은 여학생이 나인 것처럼.

조선소가 망해나가는 건, 정규직들이 노조일 하느라 바빠 현장을 돌보지 않아서라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성토를 들으며, 원청 새끼 개새끼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새끼들이라는 3차 하청 현장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뭐라고 생각한 건가.

소나타쯤 타고 다닌다고 내가 강남좌파쯤 된다고 착각한건가.

박탈감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은 착각해버리는 것이다.

나도 맘만 먹으면 3억짜리 벤츠 GT 정도는 살 수 있지. 중고차를 70개월할부로, 걔는 모아둔 용돈으로 새 차를. 이 차이를 모른 채, 내 자식이 누리는 풍요가 마치 80년대 내가 누리는 풍요인 양 착각하고 마는, 이 편리한 정신세계는 귀찮아서 나약해지는 것인가, 편리한 걸 찾는 것인가.

아무리 죽여도 사라지지 않는 모기떼가 들러붙는 것같던 지겨운 여름이 지나간다. 이 여름, 90% 이상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그 중 대다수가 월 소득 700만원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만들어온 세상을 본다.
서울대생들이 만들어온 온 세상에서 부르짖은 민주와 정의가 흔들리는 것을 본다.

서울대의 서울대에 의한 서울대를 위한 2019년 8월의 사건을 기억하자. 32년전 최루탄에 맞아 죽은 노동자의 이름은 지운 채, 그해에 죽은 대학생 둘을 더 또렷이 기억하는 세상에 매듭을 한 번 묶어본다.

2019년  9월  8일

우연은 어떻게 오는가

점심시간 내내 포켓몬을 잡다가 분식집에 들어가 건빵이와 충무김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나 보광동 살 때 이런 분식점 순두부 자주 시켜먹었어.”

건빵이가 “나도”라고 말했다. 제일 만만하고 표준화된 맛. 냄새가 나거나 비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음식. 반찬이 허술해도 충분히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것. 나는 빈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순두부를 시켜 먹고 그릇을 지하방 알루미늄 새시 문 밖에 내놓곤 했다.

분식집에서 순두부를 나눠 먹고 있는데 동생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며 카톡으로 2001년 이태원 사진을 보내왔다. 건빵이와 나의 밀레니엄은 보광동과 이태원에서 교차한다. 우리는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동네에 살았다. 내가 그 동네에서 떠날 때쯤 건빵이가 그 동네에 들어섰다.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10년이 거의 다 지나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우리는 가끔 보광동의 이야기를 한다.

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가끔 회식을 하러 갔던 일송정을 이야기했고 그 길 건너 시장 입구에 있던 뚝배기 만둣국집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집의 만둣국을 자주 먹으러 갔고 건빵이는 그 옆의 옆에 순대국집이 맛있었다고 얘기했다. 동생은 반도리노라는 구둣가게의 간판을 지목하며 ㅋ을 여러 개 보냈다. 나는 거기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 매일 저녁 9시에는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 공연을 했다. 나를 비롯한 웨이츄리스들은 춤을 출 때 마룻바닥에 구둣발을 내 딛을 때마다 탭댄스처럼 소리가 딱딱 나야 흥이 났기 때문에 소리가 잘 나는 바닥으로 구두를 맞추곤 했다. 라인댄스는 카우보이부츠를 신어야 더 좋지만 우리는 짧은 치마의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카우보이부츠를 신고 서빙을 하다가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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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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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사진. 해밀턴 셔츠 사장은 안면이 있다. 아디다스 옆이 반도리노라는 수제화맞춤전문점이었다.

<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동생이 “내가 나중에 반도리노에서 언니 구두 사줄게”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구두를 신을 수 없다. 동생은 언제나 “나중”을 말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8차선 도로의 인도쪽에 폐휴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밀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인도쪽 차선으로 갈아타던 중 속도를 냈다면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었다. 운전을 하던 건빵이가 위험하다며 걱정을 했다.

집에 돌아와 내일 업무를 준비하다 야광조끼를 검색했다.
한 벌에 만 원 정도면 일반 야광조끼를 살 수 있고 2만 원 정도면 그물로 된 야광조끼를 살 수 있다. 고휘도 야광 반사테이프는 한 롤에 1400원정도 한다.

작년에 취재차 관악구에 있는 푸드뱅크에 간 적 있다.
푸드뱅크 이용자들은 종이봉투를 들고와 물건을 가져갔다. 집집마다 넘쳐나는 에코백이 처치곤란이라고 이 역시 또 다른 환경오염이라고 성토하던 자리에서 그때 그 장면을 떠올렸었다.

몇 주 전에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드는 데 공임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봤다.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인건비는 개당 3천원이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수막을 세탁해와야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폐현수막을 이용해 재작업을 하는 비용은 개당 5천 원 정도 든다. 새로 찍어내는 시장가방은 5천장 정도 대량으로 주문할 경우 개당 3천원 남짓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친환경과 재활용은 돈이 더 든다.

한 사람에게 야광조끼를 입힐 수 있는 비용은 2만원.
관에서 한다면 예산을 사용해 복지관에 비치해두고 홍보 조금 하고 알아서 찾아가라고 할테지. 폐지를 가져다주는 고물상을 찾아갈 상상을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작년인가 재작년 여름, 덥다는 이유로 차를 끌고 나가 인덕원 골목을 지나다 어느 가게 담벼락에 붙은 수도를 틀어 마구잡이로 세수를 하던 노인을 보았다.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옆에 두고 얼굴이 물을 마구 묻히던 여읜 팔뚝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자들은 마트 앞에서 폐지를 담아가는 노인을 만난다. 때로 그들이 떨어뜨린 박스를 주워서 리어카에 담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이 겹치면 가난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정비하지 못한 하천의 둑이 넘쳐 반지하방에 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처럼.

보광동의 배달 순두부를 기억하는 두 사람은 각자의 기억을 가진 채 평촌에 같이 산다. 우리가 기억하는 보광동은 다른 모습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본다. 모든 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필연적으로 온다고 했던가. 무엇이 필연이고 무엇이 우연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사회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성된다고 누군가 말한 적 있다. 그게 누구인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지금 이것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월요일로 가는 밤, 바람이 분다.

2019년 5월 26일

중학교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190403

2015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과의 협력사업으로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분야별로 전문강사를 양성하여 민주시민교육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현재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는 22명 가량의 전문강사진이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교과서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출발이었는데 교과서 내용이 충분히 훌륭해 이를 기반으로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만, 학생들의 참여와 경험을 중시하여 학교 교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활동내용으로 구성해 흥미를 더하고 직접 실습과 체험을 통해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현재 학교에 진행하는 수업 분과는 인권, 평화, 통일, 사회적경제, 공정무역, 청소년노동인권, 주민자치, 성평등, 다양성, 미디어로 나뉩니다. 각 수업은 안양YWCA, 율목아이쿱생협, 비정규직노동센터, 안양여성의전화,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에서 나누어 전담합니다.

오늘은 제가 진행하는 미디어 수업 내용을 공유합니다.

수업의 시작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헌법 1조를 통해 알아봅니다. 강사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민주공화국을 한자로 써서 한글자씩 설명합니다. 대한민국은 民主共和國입니다. 라는 말에서 백성이 주인되어 함께 화합하는 국가,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백성이라는 말의 변천을 살펴봅니다.

백성에서 시민까지 이르는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시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리스 아테네 도시국가에서 시작되었음을 얘기합니다. 이 부분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설명하는데요. 3학년은 민주주의 개념이 어려울 수 있지만 내가 땅이나 건물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려면 책임이 뒤따르고 알아야 하는 게 많다는 예시를 듭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학교에 땅이 생겨서 맘대로 뭘 지을 수 있다, 라고 가정하면 수영장, 워터파크, PC방 등의 놀이시설을 이야기하죠. PC방 주인이 되려면 PC 사양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잘 골라 사야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걸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해 조금 복잡하고 어렵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학생때는 상식적인 면을 공부하면서 민주시민으로써의 역량을 갖춰가자고 이야기하죠.

미디어 수업에서는 일단 미디어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사실 성인들도 이 개념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를 손에 잡히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어떤 특정한 도구에 담아 전달하는 것을 미디어라고 설명합니다. 공기계는 미디어가 아니지만 휴대폰에서 나오는 동영상은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딱히 미디어를 종류별로 국한해서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미디어종류를 일단 적어봅니다.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1인당 3가지의 미디어종류를 적습니다. 이 내용을 칠판에 나와 붙이게 하는데 칠판을 3등분 하여 좌측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때 시작한 미디어, 가운데는 엄마 아빠가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미디어, 맨 오른쪽은 내가 태어나고 난 다음의 미디어의 종류를 붙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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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자연스럽게 미디어의 역사가 정리됩니다. 아이들이 붙인 내용을 같이 살펴봅니다. 컴퓨터를 할아버지 세대에 붙인 아이들은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한 반에 한 명정도씩 있습니다. 그때는 통신의 기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있긴 있었지만 미디어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완전히 틀리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보탭니다. 아이들이 부모세대의 미디어와 통신기기로 휴대폰과 삐삐를 적는 경우가 많은데 통신과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미디어라는 매체가 통신과 완전히 분리되기도 어려운,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각 반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강사가 다양한 이론을 이해하고 무엇이 틀렸다고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려고 합니다.

올해부터는 가짜뉴스 판별하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가짜뉴스 문제에 호되게 당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팩트체크.org에서 가짜뉴스 판별법 7가지를 규칙으로 잡았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인 경우 이 7원칙을 고스란히 이론적으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1. 뉴스의 출처를 파악하라.

2. 글을 끝까지 읽어라.

3. 작성자를 확인하라.

4. 근거자료를 확인하라.

5. 작성 날짜를 확인하라.

6. 자신의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라.

7. 전문가에게 물어보라.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10151420151&code=115#csidxf789879f9925ee2a2fca935b05967ca

그래서 이 내용을 습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가짜뉴스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2015년에서 2016년에는 기사쓰기와 미디어비평쓰기를 해봤는데 이미 아이들이 매우 숙련된 상태라 딱히 재미도 없고 학원이나 교과시간에 많이 해 본 내용이라 특강형식으로 들어가는 민주시민교육에서 진행할 거리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9년 처음으로 진행한 민주시민교육 미디어 수업이었는데 가짜뉴스 만들기는 기본적으로 뉴스기사 쓰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육하원칙에 입각하고 근거를 들어야 하죠. 가짜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가짜뉴스의 목적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 이득을 보고 누군가 피해를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이미 가짜뉴스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가짜뉴스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가짜 뉴스를 왜 만들까? 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그로 끌려고. 조회수 올려서 돈 벌려고.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정확한 대답입니다. 수업중에 아이들이 “어그로”, “개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이 말을 고스란히 받아 같이 사용합니다. 외부강사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외부강사가 미디어 수업을 하러 왔다고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아.. 미디어 작작 보라는 얘기 하겠구나”, “게임 그만하라 하겠구나” 라는 금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외부강사 교육은 대부분 “금지”에 대해서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은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기”로 합니다.

가짜뉴스를 만들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투영해 표현하고 과장, 비약, 왜곡을 통해 기사를 뒤틀며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아이들의 욕망을 찾아내니 매점, 학교 안 나오기, 슬리퍼 신기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 특정한 동급생을 놀리는 듯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가짜뉴스에 걸맞은 조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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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별로 머리를 맞대고 만든 가짜뉴스는 모둠사이에 맞교환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둠에서 만든 가짜뉴스를 평가합니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목적이 무엇인가, 출처가 무엇인가 찾아냅니다.

아이들이 만든 가짜 뉴스에는 분명히 이득을 보는 세력과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출처를 확인할 수 없었고요. 단편적인 실험이지만 아이들은 쉽게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믿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신념이 가짜뉴스를 퍼트린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한 학생이 “고정관념”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요소가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만들어본 가짜뉴스는 사실 희망적이었습니다만, 몇 몇 모둠 아이들은 이미 이 나라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기사에서 “충격”, “경악”, “속보”, “단독”이라는 언론사의 제목이 낚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수업시간이 모자랍니다. 2차시 정도를 더 해보면 가짜뉴스를 놓고 직접 걸러볼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이 무척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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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7가지 원칙을 주의깊게 살펴보았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젊고 영리한 너희들이 가짜뉴스를 잘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 어른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가짜뉴스를 판별하도록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지원청의 협력으로 이룸에서 특강으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 2차시를 담당 교사가 이어받아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학교에서 더 많은 미디어교육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간간이 공유하겠습니다.

2019년 4월 3일

 

 

강의요청

 
1.
오늘 오전의 모 코디네이터에게 전화가 왔다.
공동체 사업 담당자인데, 사업으로 만났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다. 올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겠다고 몇 가지 제안을 넘겼고 이 분이 사업이 성사되기 위해 공기관과 조율중이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 주다.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프로필을 다시 달라네요.
– 네 들어가자마자 보내드릴께요.
– 선생님, 근데 자격증 같은 거 없으세요?
– 아하하하하. 이런 저런 글쓰고 떠돌면서 강좌 여는 사람이 무슨 자격증이 있겠어요?
– 그러게요. 자격증이 있냐고 물어서요.
– 누가 글쓰는 자격증을 주나요 ㅋㅋ 강의도 그렇고요.
– 그러게요.
 
코디네이터는 내내 난감해했지만 기관에서 요청하는 강사비 조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단 프로필을 다시 보낼테니 기관에서 판단하게 하고 너무 애쓰지 마시라 전했다.
 
이 코디네이터와 나는 현직 언론종사자가 특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기관에서는 2시간에 30만원을 주려면 박사학위에 경력 10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보다 조건을 낮추면 석사학위에 경력 5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진 현직 종사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얘기했고 안그래도 바쁜 사람들인데 돈보다도 뚜렷한 명분과 가치, 그래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사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지만 결정권이 없는 사람은 한숨만 쉬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분이 한 번 오셔서 마을 아이들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자신있게 확답하지 못했다.
 
나는 코디네이터에게 “너무 애쓰지 말자.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애쓸 영역이 있고 아닌 게 있더라. 공기관 결정권자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 그러니 너무 애써서 지치지 않도록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직종사자가 꼭 필요하겠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 끓이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2.
오후에는 지역 모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병가를 내야 하는데요, 수업을 맡아주실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아휴. 애들 말도 들으니 진행도 안 될거고요. 애들 자습하고 시간 버리게 될까봐요. 제가 예산을 챙겨둔 게 있는데 그날 시간 되시면 특강 좀 해주세요.”
 
자유학기제 시작인데 첫 시간을 불가피하게 비우게 되었단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 ‘아이들 시간 버리게 될까봐.’ 라는 말에 마음이 걸렸다.
주제가 뭐고 교사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은다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수년 간 봐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의욕 없이 모여도 하나라도 해보자고 권했던 사람이고 혼자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새로운 걸 체험하게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생리상,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괜히 쓸데없이 일 벌인다고 상처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동아리를 몇 년째 이끌어왔고 어떻게든 아이들이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판을 펼쳐주는 이런 사람은, 예산이 10만원밖에 없다고 해도,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멀지도 않다.
 
3.
더러 이렇게 혼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합리적인 구조로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있는 집 애들은 부모들이 알아서 다 챙기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 기획 안해도 부모님 친구들만 만나도 더 많이 배우잖아요. 시야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줄 수 있으면 해줘야죠.”
 
이 사람들이 정말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만 하는 존재인가. 비싼 강사를 불러와서 행정실을 번거롭게 하고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사람인가?
시스템이 딱 덮고 있는 뚜껑이 너무 무겁다고 달그락 거리는 게 그렇게 꼴사나운가. 이 두 사람이 오늘은 어떤 저녁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가치를 학벌과 경력으로 재단하고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접촉도 하지 않는 게 편하게 사는 세상일수도 있다.
제도가 불편한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공공기관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해봐야지

사람들을 살면서 때때로 이유없는 불행을 맞닥뜨린다.
자기 실수가 아니고, 원인을 만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어떤 사고가 터져 진퇴양난에 봉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 
그 불행을 마주하는 방법에 따라 나머지 삶의 질이 달라진다.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사건과 사고가 연달아 터질 경우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길을 걷다가 음주자가 운전하는 차에 치이거나, 아무 이해관계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부터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떠안는 경우가 있다. 불행이 터지면, 사고의 인과관계를 찾으려 애를 쓴다. 어떤 연구는 사람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누는데 그 분류는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사건과 사고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이 있고 내부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이건 개인의 기질과 연결되는데 그 어떤 원인도 외부나 내부 일방에서 오지 않으며 인간의 두뇌로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자연계가 작용해서 닥치는 사건이었고, 내가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 시간동안 사건의 당사자는 피해자, 희생자가 되어 긴 우울의 터널에서 헤매인다.

온 공기를 뒤덮은 뿌연 먼지가 내 삶을 관통한다.
며칠 뿐이겠지만 사람들은 심각하게 이민을 상상해본다. 이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상상을 쉽게 하는 것은 여기에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다. 미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다.
나로부터 초래하지 않은 사건 사고를 자주 당하게 되면 사람의 뇌는 능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피해갈 방법에 골몰하거나 그저 닥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거나, 혹은 생을 마감해버린다. 탐구할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게 나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시작된 일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의 미세먼지는 요 며칠 사이의 결과이지만 최근의 원인은 아니다.
중국이 원인이다, 한국도 책임이 있다는 공방은 쓸모가 없어 보인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인류 모두에게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다. 환경보호를 우선으로 내건 어떤 나라들은 자국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끔 정책을 조정했다. 그들의 생활을 책임질 필수품들은 모두 중국에서 생산되었고 우리는 중국의 저임금, 고노동, 인권침해로 만들어진 싼 물건을 쉽게 소비하고 버리며 비하하고 칭찬하기를 반복했다. 중국으로 공장이 몰려가고 사람들의 소비는 늘어났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었다. 더 이상 개발할 게 없어진 사람들은 비틀고 뒤집고 꺾고 휘어진 물건들을 만들며 연기를 뿜어냈다.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해야 경제가 돌아가고 정권이 유지되었으니, 규제를 완화하고 디젤차를 승인하고 공장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고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자르고 산을 베어 전기를 만들었다. 계속해서 소비해야 유지되는 세상을 위해 중국이나 한국이나,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다.

2014년, 10년만에 찾은 중국 상하이에 자전거는 드물었다. 수천만대의 자전거는 전기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대체되었고 학교에 가득하던 자전거 대신 폭스바겐 자동차가 가득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기 위해 더 많이 놀러다니기 위해 우리도 디젤차를 쓰기 시작했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은 그저 불안해서 전기를 더 만들어 쓰지 못하면 버렸다.

10년 전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느냐가 오늘의 나를 결정하듯이, 10년 전 사람들이 벌인 일의 결과는 오늘의 자연이 말해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라는 말을 하는 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소시민들의 태도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는 월요일, 정부의 강력한 제재조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서울시내 차량 통행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시민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공생하고자 하는 욕구를 텅 빈 서초대로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발전기를 멈추고 공장을 쉬게 하고, 운전을 하지 않고 물이라도 뿌려야 하지 않나.
공기청정기는 전기로 돌아간다. 작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더 큰 공동체의 위험을 계속 부추기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2004년 상하이의 여름이 20일 넘게 39도에 육박할 때, 공장을 닫고 모든 야간조명을 껐다. 2003년 사스로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대학에서는 마스크를 나눠줬다. 지금도 국제회의가 열리는 날 베이징의 모든 공장이 문을 닫으면, 하늘이 파랗게 돌아온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는가.
우겨도 보고 화도 내보고 달래도 봐야 하지 않나.
우리도 이렇게 해볼테니 너희도 이 정도는 해달라가 협상의 기본 아니었던가.
너희가 먼저 하지 않으면 우리도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조건을 걸지 말고 일이 되게 하려는 태도는 내 패를 먼저 보여주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빠르다.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놓고, 차량에도 공기청정기를 달면 경치하나 포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재난은 가장 낮은 곳부터 덮친다. 현장노동자, 야외근무자, 공기청정기가 없는 가정, 호흡기가 약한 사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많이 습격당하는 건 가장 가난한 곳부터다.

기득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재난문자를 보내야 할 상황이라면 재난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염병이었다해도 이렇게 대처할 것인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이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지 않겠나.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는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다.

 

2019. 3. 5.

피해자가 책임지는 사회

하천의 쓰레기가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쓰레기를 주워요.

니들이 버린 게 아닌데?

– 누군가는 치워야 하잖아요.

오. 착하네. 근데 그건 하천 관리에 들어가는 거 아냐?

– …

하천 관리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 사람들하고.. 시청요.

그럼 착한 사람들이 쓰레기 치울 때 시청은 뭐해?

– …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 (다양한 대답)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어. 그럼 어떻데 해야할까?

–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잡아요.

어떻게?

– CCTV요.

CCTV가 있으면 쓰레기가 줄어드나?

*이쯤되면 애들이 피곤해하기 시작한다.

CCTV는 검거가 목적이지 예방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지. 개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지나가면서 휙 버리는 것도 있지만 작정하고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동네라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힘들다는 뜻도 되겠지. 그러면 집 앞에 쓰레기를 잘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졌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걸 살펴봐야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 하면,

아까 기름 유출된 거 얘기할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거둬야 한다고 해서 그래.

예전에 태안에 삼성 배가 허베이스피리트호라는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이랑 부딪쳐서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적이 있어. 그때 사람들이 다 달려가서 그 기름을 걷어냈어. 자원봉사로. 근데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너희같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기름을 다 닦아버렸단 말야. 범죄현장을 다 치워줬다고.

게다가 그 사건의 이름을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붙였어. 전 세계 어디에도 선박사고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대. 나도 찾아봐서 알게 된 거야. 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마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처럼 여겨지거든.

왜 항상 피해자들이 책임을 질까?

나는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늘 착한 사람들이 뒷수습을 해. 그건 왜 그래?

그걸 생각해보자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도 언젠간 억울해지지 않겠어?

#피해자들이_책임지는_사회

이 나라는 이게 전통이다.

항상 피해자가 증명하고 피해자가 소명하고 피해자가 처리한다.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성폭행도 그렇고 배달하다 알바가 죽었는데 청소년에게 노동교육을 시킨다. 을들에게 너희가 잘 해야 된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갑들은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들에게 교육하려는 사회가 비겁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비겁의 향연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현장에 들어갈 사람만 노동교육을 받는다. 대기업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을들을 교육시키자고 하나. 안전교육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받는다. 건설사 갑들은 거기서 빠진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잘 봐야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부패를 가리는데 사용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부패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벼랑에 몰릴 때 쓰는 방법이다.

교육계에 새로운 것들이 자꾸 등장한다.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덮고 가자는 것이다. 오염된 땅을 낙엽으로 덮고, 짚가래로 덮고, 눈으로 덮고, 시멘트로 덮고, 아스팔트로 덮고, 폐타이어로 트랙을 만들어 덮고,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 지압장을 만들어 덮는다.

새로운 시스템을 의심하면

본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8. 11. 22

[기고]깃발을 흔드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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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내는 교육정책포럼 통권 304호, 2018년 10월 발행 간행물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안양지역의 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2014년 3월이다. 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트워크 형식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준비한 지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교육네트워크를 표방한 협의체들은 이미 여러 개가 있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이하 이룸)이 출발하는 데는 아픈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의왕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7살 소년이 혼자 있다가 키우던 개에 물려 죽었고, 안양에서는 여자어린이 둘이 납치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역에서 지키자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였고, 그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일선교사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1~2년 이상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공동체는 와해되었으니 사회공동의 책임을 나누자는 의도였다. 공교육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단단한 토양을 만들고 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자는 의도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은 왜 느끼게 된 것일까?

시민들은 학교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대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지역과 학교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학교가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흔히 학교의 구성원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교는 교직원과 공교육기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방식은 모두 전근대적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혁신학교와 진보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학교변화의 욕구는 학교 안에서는 응축되어 밖으로 터지는 형태로, 학교 밖에서도 교문을 밀어제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기폭제가 된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으로 촉발된 이룸이 출범하자마자 전 국가를 비통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교육지원청이 먼저 제안하여 교육지원청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각 기관에 숙련된 강사들이 있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룸에 합류해 있는 회원기관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들을 최소 2명 이상 추천받아 교과연구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10여 개 학급에 불과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교 측의 요청이 늘어났고 교육지원청도 이에 적극 협조하여 2017년에는 72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120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예산은 모두 교육지원청에서 부담한다.

안양지역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청이 재원을 대고 이룸 사무국에서 강사보수교육과 시민대상교육을 맡는다. 강사 보수교육은 매년 2회 이상 실시하며 시민교육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거나 활동가가 될 만한 시민들을 찾아내고 있다. 강사보수교육에 대한 비용은 교육지원청에서 2018년부터 약간의 강사비를 보태고 있으며 그 외 시민대상교육과 내부 강사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각 기관은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실천을 강화할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 등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2018년 안양의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은 2015년도의 1기 강사부터 2017년도 3기에 신규 합류한 강사들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강사진은 매년 조금씩 들고 나는데 겨울방학마다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 변화한 학습환경에 노력하도록 내부협의를 거쳐 새로운 교안을 만든다.

현재, 안양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아마 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형태인 교육 참여인원이 그 기준으로 될 것이다. 2015년에 12개 학급, 2016년에 13개 학급에 수업지원을 한 것까지 더하면, 1개 학급을 30명으로 산출하였을때 안양지역은 이룸과 교육지원청이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혜를 받은 학생 수가 2015년에 360명, 2016년에 390명, 2017년에 2,160명, 2018년에 3,600명이된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지원 누적계는 6,510명이다1).

안양의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이룸에서 매년 겨울, 신규 교안을 마련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통합시스템으로 각 학교에 교안을 제시하고, 그 중 선착순으로 학급별 수업지원 신청을 받아 각 기관에서 강사를 배정해 특강 수업을 나가는 형식으로 추진된다. 수업지원 신청은 교사들이 한다. 2~3년 연속으로 신청하는 교사들도 있는데 수업지원을 나가는 강사입장에서도 작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교사의 신청 여부에 따라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또한 학교별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신청이 현저히 다른데 학교 내부 분위기와 연구모임, 학교 내 민주적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2년 연속 한 학급도 신청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동 학년 전체학급 수업을 신청하는 학교
는 통계를 내지 않아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 사업은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한 해에 수백 시간의 교과수업이 있다. 그중에 지역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은 한 학급에 단 2시간이다. 더러 학교에 프로젝트 수업을 마련해 지역의 강사들을 초빙해 4차시 이상의 연속수업을 기획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성과지만 학생 개개인이나 학급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매년 사업 후 결과를 현장에서 듣거나 설문조사를 실행하면 교사들은 더 많은 민주시민교육 특강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현재의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강사비용만 1년에 1천만 원이다. 교육지원청과 학교 현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교육의 종류를 결정하게 된다. 고쳐야 할 시설물과 학교 내부 사정이 우선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모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연내에 성과가 나지도 않고 2차시짜리 수업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사들은 교육안을 보고 자기 학급에 적합한 것을 신청한다. 일종의 교육쇼핑이다. 교육과정에 대해 강사와 협의하는 과정은 각 강사가 출강 전에 교사와 전화통화로 하는 게 전부다. 민주시민교육 교안 구성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사전 의견을 들어본 적 없으며, 교사들과 학교가 진짜로 민주시민교육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러 어떤 교사들은 외부 강사진의 진입을 꺼리며, 수업을 참관한 관리자들은 강의형이 아닌 참여형 수업의 자유로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4년 차에 접어든 강사들은 매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강사모임을 통해 그룹 스터디를 병행한다. 2018년에 수업을 진행한 강사들은 22명이다. 120개 학급에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면 1인당 5.4개 학급, 10차시 정도에 불과하다. 공부한 시간보다 활용한 시간이 훨씬 더 적다.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 강사진은 올해 들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과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강사진이 더 많이 공부한 해가 될 것이다.

지역네트워크가 좀 더 큰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연대회의나 지역의 각 네트워크 협의체는 별도의 법인을 갖지 않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각 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주제에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나누어 전담하고 있으나,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이 지금처럼 협약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각 교육지원청은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조성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안양지역도 연구교사와 관리자, 이룸이 참여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있지만, 연내 몇 회 모임으로 서로 간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협의를 이루어낼 시
간이 없는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학교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 역량강화와 지역에 관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판단되어 교육지원청과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담당교사들의 업무는 민주시민교육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마다 전담교사가 있어도 학교는 수없이 많은 일로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안양처럼 교육지원청의 주도로 진행하는 방법은 학교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자기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을 수년에 걸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역협의체가 같이 협력할 경우 지역 내 역량 있는 강사들의 교과연구를 도울 수 있고,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믿고 민주시민교육 강사들을 신임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내용은 아이들이 가정에 전달하고, 각 가정의 보호자들은 결국 모두 지역의 시민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다.

이후에 이를 제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사들만의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지역과 함께 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정부기관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업무를 경감하고 민주시민교육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초단체는 각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 나가야 한다. 교육공무원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내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근무조건이 옥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권력의 영속성을 믿지 않으며 정의에 예민하고 매사의 공정을 추구하며 포용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이룸은 결과적으로 다시 안전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억울한 일로 옥살이를 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거나, 차별과 혐오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위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하나 사무국장은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중문계에서 한어언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하다 2014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집필노동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NGO, NPO의 가치 확산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 히응”의 대표다. 대표저서로 「포기하지 않아, 지구」(2018, 빨간소금)가 있다.

왜 싸우냐고 – first penguin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시민단체나 환경단체는 왜 그렇게 나서서 대놓고 반대만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내가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자리였고, 나는 그런 입장도 잘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설명을 했고 그 분도 잘 받아들여줬는데.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시민단체가 잇권을 챙길 수는 없습니다.
30대초반의 단체 간사가 급여를 얼마 받는지 아시나요?
150만원 안되는 친구들이 허다합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도 200만원 조금 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데 무슨 잇속을 챙기겠어요. 물론 시민단체를 앞장세우거나 그 중간에 끼어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죠.

시민단체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건 아니예요.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돈만 벌고 살기 쪽팔려서요.
돈만 벌고 나만 잘먹고 잘 살자니 이 한 세상이 너무 부끄러워서 대신 싸울 자리가 있으면 나가서 싸우는거예요.
대신 누구를 위해 싸우느냐, 더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싸워요.
양쪽의 입장이 항상 달라요.
싸움이 필요할 때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아스콘공장 앞에 초등학교 학부모들 같은 경우죠. 그러면 나가서 같이 싸우는거예요. 원칙은 하나예요. 더 약한 사람들 편을 드는 게 기본이예요. 그러나, 누가 더 약한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손 잡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요. 그렇지만 너무 앞장서서 외칠 수는 없어요. 그럴 때는, 시민들 사이에 싸움이 더 크게 일어나지 않도록 입장을 조절해야 해요.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과 쓰는 돈은 모두 다 공개해요.
홈페이지마다 다 있고, 요청하면 더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봐요. 그걸 어떻게 다 보겠습니까.
귀찮은데요. 내 먹고 살기도 바쁜데요.
결국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은 내 먹고 사는 일에 영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거예요.
플라스틱컵 이제와서 규제 생겼죠? 그거 자원순환시민연대라는 데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90년대부터 싸워온 결과예요.
휴대폰 원가 공개,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싸워온거예요. 3심까지 가서 대법원에서 원가 공개 하라고 판결냈지만 안 하고 있잖아요. 그거 결국 누구 이익인가요? 우리 이익이예요.
그런 일을 해요. 우리는.

환경단체가 교조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요, 저런 산에, 말씀하신대로 짚라인을 달고, 케이블카를 달면 일단 거기서부터 생태계는 망가져요.
그렇지만 그런 시설을 설치했을 때 교통약자들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죠. 미래를 당겨 쓰는거예요.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가 중요해요. 미래를 좀 희생하자, 그리고 오늘 행복하자, 뭐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사람들이 뭘 원하느냐에 따라 그 운동의 정도가 달라지겠죠.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좋은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가 그거고요. 그런거예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사실 시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와서 하니까요. 억울하다고, 피해를 봤다고, 대신 싸워달라고요.

★얼마 전에 계약을 한 일이 하나 있는데, 그 일이 곧 시작된다.
참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그렇다.
모르는 걸 탓하고 싶지 않다.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도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