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민주주의,내일의시민사회]갈등해결 FGI 녹취록

갈등해결 분야 FGI 기록지

진행 이하나(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참석 김지나(의왕아이쿱), 이규숙(안양YWCA), 이정우(안민공동체)

이하나: 먼저, 지금까지 해 온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도 함께 말씀해 주세요.

 

김지나: 생협에서는 각종 캠페인을 많이 해요. 민주시민교육도 다양하게 진행하고요. 올해에는 처음으로 공모사업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봤어요. 적은 예산으로 모실 수 있는 분들에는 한계가 있는데, 정말 뵙고 싶었던 분들을 모셨어요. 강의 후에 생활정치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기획서를 보내 드렸죠. 1강부터 생활정치 그룹 조직이 정답이라는 듯이 결론을 내리고 그대로 5강까지 진행했어요. 강의가 끝나면 모임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시정을 모니터하는 생활정치정당 ‘몽당’이 만들어졌어요. ‘꿈꾸는 정당’이라는 뜻이에요.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우: 1995년에 우리나라를 떠났다가 2009년에 돌아왔으니, 시민운동이 발전하는 시기에는 국내에 없었던 거예요. 부지런히 여러 모임을 쫓아다니면서 배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이도 50이 넘어가는 터라, 늘 만나던 친구들보다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나자는 생각을 해요. 광고를 보고 내용이 괜찮으면 이곳저곳 가 봅니다.

처음에는 따복공동체지원센터에서 교회 건물을 매입해 노인 무료급식을 하기에 그쪽에 관심을 가졌어요. 마을교육 강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교육도 받았죠. 재미있었어요. 사실 마을교육은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뛰어들 수 있는 분야는 아니고, 마을에 오래 살면서 활동하는 게 더 중요하죠. 저는 안양에 오래 있지 못했기 때문에 마을교육을 한다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아직은 관심만 있는 상태예요.

2016년부터 경기도의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민사회에서 대화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민주시민교육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됐어요. 안양의 시민단체들이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힘이 빠진 상태라는 말을 들으니 네트워크를 조직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작년부터는 민주시민교육 공모사업에 참여했어요. 장은주 교수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교육과정을 진행했어요. 유명한 분들을 모시고 하는 강의도 좋지만, 동네 분들의 얘기를 한번 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잘 진행됐다고 생각해요.

안양 지역사회의 추세를 가만 보니 만안구와 동안구의 성격이 조금 달라요. 만안구가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는데 제가 있는 박달동은 특히 그래요. 만안구의 특성을 이해하는 분들의 그룹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올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올해 공모사업에서는 만안 지역에 계신 분들에게 초점을 맞췄어요. 교육과정이 끝나면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운영했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만들자는 의도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와 주신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원래 의도대로 갈 수 있었어요. 곧 창립총회를 열 계획이에요.

작년에는 동네 강사분들이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함으로써 관심을 모았던 것이고요. 올해에는 본격적으로 정치교육에 중점을 뒀어요. 민주시민교육에서 다뤄야 할 핵심은 자치능력 확대라고 봤거든요. 시민들의 정치적 이해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규숙: 제가 하는 활동이 민주시민교육, 시민활동이라는 인식을 처음부터 하지는 못했어요. 단체에 속해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모이다 보니 이것이 시민운동이고 민주시민교육이구나 하고 뒤늦게 이해한 경우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던 시기에는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교육이 아닌 공동체 교육에 대한 막연한 욕구가 있었죠. 활동을 시작한 단체에서 맡은 첫 일이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이었어요. 학생들을 통해 어머니들도 만나게 됐는데, 저는 어머니들의 욕구를 조금 단순하게 생각해 왔거든요. 전업주부는 양육과 가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직장맘들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얘기를 들어 보니 서로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더라고요. 충분한 양육 시간을 확보하고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말씀들도 하셨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아이들이 우리처럼 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에 많이 공감해 주셨어요. 어머니들과 함께 책 읽는 모임을 열어서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후에 맡게 된 업무는 가정폭력 가해자와 행위자,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들과 집단상담을 하는 일이었어요. 학교에서 특별교육 수강 명령을 들은 친구들이나 보호관찰소에 있는 친구들을 만났죠. 만나 보면 자기의 가치관, 철학에 대한 얘기를 굉장히 진솔하게 해요. 이 활동도 일종의 민주시민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2013년 즈음에 지역시민운동 업무를 보게 되면서 시민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활동을 시작했어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인식도 그 즈음부터 생겼고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공동의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 대한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하나: 올해 초와 말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권이 바뀐 데 이어 시대도 변해 간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어요. 두 번째 질문은 올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특별히 깨달은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여쭤 봅니다.

 

김지나: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좋은 의도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도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아요. 저희 조합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참여율이 10% 정도가 돼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면 정말 적은 인원이 모이고요.

‘민주교육 한 상 차림’이라는 제목으로 민주시민교육을 개설하니 전화가 왔어요. “민주시민이 뭐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개념을 잘 모르시겠다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같이 얘기를 들어 보자고 말씀드렸는데 “전 민주시민이 아닌데요.”라고 하셨어요. 더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답변인 거예요. 젊은 여성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강의 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까지로 잡았거든요. 그런데 실제 오신 분들은 50대 이상인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기획 의도대로 진행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인권이 유린되지 않는 사회이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획일화되어 있죠. 틀에서 벗어나는 스타일로 의사표현을 하면 문제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잖아요. 학교 안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독일에서는 쟁의하는 법도 학생 시절에 배운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해요.

성인에게도 민주시민교육은 필요하죠. 시민들이 강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내용,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형식 면에서는 토론이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형태를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거예요. 이런 활동이 시민들이 바라는 민주시민교육이 아닐까 싶어요.

 

이정우: 우리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이 많이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아요. 시민사회에서 그 주제가 나온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 아닌가 해요. 사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주제가 애매하거든요.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문제점을 얘기하기에 앞서 개념에 대한 합의조차도 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모여서 얘기할 때마다 겉도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 문제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에 공감하지 않아요. 우리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탈정치화되어 있잖아요. 학교교육도 그렇고 평생교육도 그렇죠.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교육 현장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고, 지금까지 관행으로 굳어져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에는 정치 혐오가 결합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정치교육을 한다고 당당하게 진행해도 될 텐데,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용어로 벽을 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용어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지 않아 보여서 굳이 이 용어를 고집해야 하나 의문이 들기도 해요.

1987년 이전에는 민주-반민주 대립구도가 있었죠. 지금도 그 구도는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해요. 그동안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는 자한당도 총칼로 정권을 잡지 않아요.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은 너무 낡은 개념이에요. 그 대립구도가 와해되었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평화롭지 못한 이유를 성찰해야죠. 시민사회가 근본 문제를 찾는 데에 너무 게을렀던 거예요. 자기확신을 반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까지의 시민사회교육에 비판적인 입장이에요. 크고 작은 정치적 주체들의 주장이 현실적인지 공허한지를 분석하는 역량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거예요. 그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성숙한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규숙: 제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의 화두는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이에요. 가정교육, 공교육, 사회교육이 서로 엇박자를 치고 있어서 내가 어디까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책임지고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서 충돌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시민들과 소그룹을 조직해 보면 놀랄 때가 많았어요. 제가 워낙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기초가 없었기 때문에 이분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최대한 친절하게 전달하려 했거든요. 대면해서 눈빛이나 태도를 가만히 보면 제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이미 알고 계세요. 그런데도 상대 의견을 수용할 마음이 없는 거예요. 어떤 형태이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의향이 없고,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학생들도 마찬가지예요.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요. 섣불리 교육하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표현은 투박할지 몰라도 자기 생각을 다 가지고 계세요. 북한이탈여성도 만나 뵌 적이 있는데 그때도 깜짝 놀랐어요. 남북한의 경험을 함께 가지고 계시니까 오히려 시야가 넓은 부분이 있고, 많은 가능성과 재능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권리도 책임도 알고 자기 주관도 있으니 충분히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행동하는 분들의 수는 지극히 적잖아요. 어떻게 하면 앎을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다른 분들께 여쭤 보고 싶어요. 가능성을 갖춘 분들이 새로운 시민으로 사회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지나: 저와는 다른 경험을 하신 것 같아요. 저희 강의에 참여하신 분들은 정말 잘 모르고 오셨던 것 같거든요. 강의 시간대에 차이 때문일 수도 있어요. 다섯 번의 강의를 모두 듣고 나서도 ‘우린 뭘 해야 하지?’라는 반응이었어요. 기본적인 지식을 익혔는데도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잡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토론 시간에 제안을 했어요. 안양시에서 하고 있는 시의회 모니터링이라도 해 보자고요. 의왕시 곳곳의 자연이 개발 명목으로 훼손되는데, 그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 보자는 얘기도 나왔어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의견이 다수였어요. 누군가 앞으로 나가자고 방향을 제시해 주면 따를 수 있겠다는 분위기라 토론 끝에 정당을 만들기로 한 거예요.

 

이하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용어를 재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도 웬만큼 나온 것 같고요. 배워도 바로 써먹을 수 없는 공부를 해 왔다 싶기도 해요. 다음 단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교육 형태가 일방적인 강의에서 대화 모임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왔는데, 일방적 강의는 누구에게든 크게 유용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여를 중시하고 스스로 배워 나가는 방법이 현재 시점에서 가능할까요?

 

김지나: 아직은 강의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에 목말라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희가 세 시간짜리 강의를 준비한 이유가, 그보다 짧으면 중간에 끊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충분히 전달하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리고 싶어서 간식까지 준비해 가면서 시간을 길게 잡았어요. 참여하신 분들도 예전에 비해 더 만족하시더라고요.

배움 이후의 행동을 원하는 분들도 아주 많아요.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접목하기를 바라세요. 강의가 진행된 뒤에 브레인스토밍이든 만민공동회든 쌍방향 소통을 할 기회를 만들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간다면 스스로 더 성장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정우: 강의와 워크숍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형태인가 하는 문제의 답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어떤 방법이 더 좋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교육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기획 의도예요. 강의든 100인 토론이든 주최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려 한다면 근본적으로 일방적인 것이라고 봐야 해요. 이 부분을 극복하려면 모인 사람들이 지속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한 목표 설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시민들이 교육 뒤에 애매하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겠죠.

요즘 많이들 자치분권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상 시민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거의 없어요. 내 힘으로 시의 살림을 바꾸는 것은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거든요. 그것이 공허감의 원인이에요. 교육 내용이 문제가 아니에요. 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없는 거예요. 실질적인 변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덜 공허할 것 같아요. 이 문제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탓이 크니까요. 중앙정부가 권력을 이양하면 시민이 참여 가능한 영역이 확대되고 실질적인 참여율도 높아질 거예요. 오히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개인이 사회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닦고 사회적으로 책임질 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현재의 교육은 마음 수양과 사회성 함양 분야를 분리해요. 인문학이나 평생교육 분야에서는 탈정치화되어서 자기계발이나 마음 수양에 기울어져 있고, 사회 의제와 관련한 교육 분야에서는 마음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요. 이 부분이 민주시민교육의 한계를 만든 지점이 있어요.

마음을 다루면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나를 성찰해 보는 과정에서 기쁨이 생기니까요. 계속 사회적 의제만 분석하노라면 피곤해져요. 당위성은 강조되는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쁨을 느껴요. 그 부분을 지금까지 놓쳤던 거예요. 내 삶의 범위 안에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구조적인 접근만 해 왔죠. 조금 더 유연해지면 좋겠어요.

 

이하나: 우리는 평소에 “정치랑 종교 얘기는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우리의 생활을 불구로 만드는 말이죠. 자치력을 상실하게 하고 영적인 부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규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로 살기를 원하는 통치체제가 그런 규범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규숙: 저는 문서나 책보다는 현장에서 살아있는 경험을 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더라고요. 더 재미있고, 지속가능하기도 하고요. 제가 이런 사람이다 보니 저와 비슷한 성향의 분들과 함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시민과 시의원 간의 만남을 주선해 보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돼요. 본인들이 나서지 않더라도 저희가 준비해요. 면담을 신청했으니 꼭 가야 한다고, 가서 궁금했던 것들을 직접 물어보시라고 하죠. 의원들이 점심식사를 한 후 잠깐 시간을 내는 것인데, 시민들이 만나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으면 거부하기 어려워요. 본인 목소리로 시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할 자리를 만드니까 해당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이후에 의회 방청을 하면 주의깊게 보세요. 한 번 만났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니 눈길이 가는 거죠. ‘혹시 내가 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동기부여를 해 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노력해도 행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민들은 스스로의 활동을 체감할 수 없게 돼요. 원하지 않았던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어야 하죠. 실제로 시청 앞에 조명 공사를 하고 조경하는 것을 저희는 원치 않았거든요. 의견서를 작성해서 전달했지만 시 측은 전부 강행했어요.

요즘은 언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양시민신문이 있던 시절에 저희의 의견을 정리해서 글을 하나 실었거든요. 공무원들도 시의원들도 그 신문을 봐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힘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시민의 동기부여에 언론이 큰 역할을 하는 거예요.

활동 결과를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봐요. 저희는 활동 결과를 꼭 보내 주십사 부탁을 드려요. 메일을 못 보내시면 손으로 적어서 샤진을 찍어 달라고 말씀드리죠. 설령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없음’이라고 적어서 보내 달라고 해요. 그렇게 하면 책임감을 느끼고 꼭꼭 결과를 보내 주세요. 약간의 의무감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하나: 우리 사회에는 공론화가 필요한데 너무나 대립이 첨예해서 대화하기 어려운 건들이 있어요. 마을공동체 기반으로 활동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문제가 축소판으로 나타날 것 같거든요. 이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획득하신 노하우가 있나요?

 

이규숙: 저희 단체는 기독여성단체잖아요. 그렇다 보니 작년에 성평등 개헌이 있었을 때 의견 충돌이 생겼어요. 양성 간의 차별을 완화하자는 얘기에는 다들 동의하셨는데, ‘성평등’이라고 하니까 동성애-성소수자 문제로 비약하시더라고요. 기독여성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있느냐, 왜 그 개헌에 동의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아서 굉장히 곤란했어요. 한국 Y의 입장, 안양 Y의 입장, 저의 입장이 무엇인지 밝히라고 요구하시는 바람에 난처했죠. 다양한 성정체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인데, 제 얘기를 들으실 생각은 그다지 없어 보였어요. 성평등 문제에 있어서도 아주 보수적인 분들의 경우에는 여자가 남자의 종속적 존재라고 생각하셔서 대화 자체에 진전이 없었어요.

얼마 전에는 민우회와 토론하는 자리에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원로 여성학자들과 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간극이 크잖아요. 원로들이 젊은 분들에게 물었어요. 현재 나타나는 미러링 같은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싶다는 뜻이었죠. 영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당신은 나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해받고 싶지도 않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왜 내가 이 자리에서 내 생각을 털어놓아야 하느냐.’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을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죠.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정우: 제가 속해 있는 교회나 시민 모임에서는 갈등이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요. 동질적인 모임이니까요. 우리 사회가 넘지 못한 주제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동성애 문제도 있고 북한 문제도 있죠. 제 생각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소는 소득격차예요. 양극화 문제가 엄청나거든요. 일상 생활 속에서는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춘 사람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대단히 큰 이슈죠.

 

이하나: 최근에 집에 대한 고민이 생겼는데, 경실련에서 아파트 가격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라고요. 부동산 거래는 정의로운지, 지금의 정책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행동을 해 왔는지를 되짚었는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안양 Y에서는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했죠. 건설 단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아파트 건설에 쓰이는 자재가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잖아요.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언론에서 이기적인 님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통신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주장하면 전화요금을 더 내겠느냐고 응수하죠. 국가 기간산업을 통해 기업이 이득을 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요. 우리가 침묵하고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경제가 점점 정의롭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의왕아이쿱에서 경험하신 갈등이 있을까요?

 

김지나: 저희도 내부적인 갈등은 없어요. 다만 친환경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로 가입하신 분들이 민주시민교육이나 각종 캠페인에 반감을 가지시는 경우는 있어요. 왜 여기서 미투 운동에 대한 이슈토크를 하느냐는 거죠. 저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면 협동조합의 7원칙에 대해 말씀드렸을 거예요. 이런 부분을 매장 단위로도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부족해요.

세대 간 갈등이나 좌우대립도 심각한 문제예요. 촛불집회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욕설을 들어 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면 빨갱이라느니 김정을 좋아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요. 저희 아이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하러 갔다가 한 할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말이에요. 아이는 좋은 일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엄마를 따라왔는데 엄마가 눈앞에서 비난을 받은 거잖아요. 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어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와 저희 사이를 떨어뜨려 줬죠. 자리도 양보해 주고요. 할아버지가 계속 소리지르는 걸 들으면서 아이가 “저 할아버지는 우리한테 왜 그래?” 하고 물었어요. “생각이 달라서 그래.”라고 하니까 “소리지르는 것 그만했으면 좋겠어.”라고 해요. 지금에 와서는 촛불집회에 잘 간 것 같다고, 엄마가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해요.

아이에게는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선입견이 생겼어요. 어르신들은 원래 그렇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 거예요.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요즘 60대 이상인 분들을 조합에서 만나게 돼요. 뜨개모임을 여니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이런 사안에 대한 얘기를 나누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최근 이슈들이 화제에 오르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쭤 봐요. 그러면 우리 세대야 이러저러하게 생각했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겠지, 라고 하세요. 이런 경험을 통해 선입견을 조금씩 허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이슈토크를 해요. 가벼운 주제, 무거운 주제를 자유롭게 다뤄요. 열 분 미만이 오시니까 참여자의 수가 적죠. 미투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남성분들이 와 주시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생각을 꺼내 놓고 얘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 자리라면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서로의 얘기를 듣고 싶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쉽지는 않겠지만요.

 

이하나: 사전에 드린 질문은 아닌데, 내년부터는 민주시민교육을 다른 방향으로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상상하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실현 가능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소망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나: 지금까지는 정치, 민주주의, 인권, 헌법 등에 대한 교육을 했어요. 다음에는 생활 밀착형 문제로 강의 내용을 구성해 보고 싶어요. 내 문제로 시작해서 변화를 위한 행동까지 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해 만들어진 몽당과 관련한 계획이 여러 가지 있어요. 일단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보고 싶어서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몽당 청문회’를 열어서 시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지역 정치인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들여다보는 활동도 예정되어 있어요.

 

이정우: 민주시민교육이 지역에서 확산되려면 결국 지역주민과의 관계 형성이 굉장히 중요할 거라고 봐요.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면 아무리 홍보해도 많은 분들을 모을 수는 없어요. 이미 형성된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만들고 사전에 대화할 기회를 많이 만들면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얘기해 봐야 해요. 그 대화를 통해 어떤 강좌나 워크숍이 필요한지 디자인해 보는 거죠. 현재 존재하는 공동체가 더 튼튼해지려면 어떤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지를 같이 의논하는 거예요. 생각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방법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시도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규숙: 시민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활동을 고민하고 있어요. ‘젠더 미디어 모니터링’이라고 해서 젠더 관점으로 드라마를 보는 활동을 구상 중이에요. 드라마 속에 드러나는 성 역할을 모니터링해 보는 거죠. 대학생 그룹과는 무조건 진행하려고요. 젊은이들은 SNS 활용을 잘하잖아요. 그들이 느낀 바를 바로 SNS에 올리면 사회적인 호소력, 영향력이 상당히 클 것 같아요. 숙련이 더 되면 ‘가짜뉴스 판별법’이라고 해서 종편 채널의 뉴스를 분석해 보고 싶어요. 향후 3년 안에 이뤘으면 하는 목표예요.

 

이정우: 저는 TV를 잘 보지 않아요. 폭력적인 언어가 난무하거든요. 특히 아침드라마가 그렇죠. 그 점을 의식할 수 있는 훈련을 다음번에 진행하기로 했어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는 격주 모임이 있어요.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탐독하고 있죠. 모일 때마다 한 챕터씩 읽어요. 그 책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부터가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일단 상대방의 가치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하거든요. 상대방을 수용하는 것이 비폭력 대화의 첫 단계인데 그 단계부터 실행이 안 되는 거죠. 모일 때마다 30분씩 일상에서 찾은 비폭력 대화의 예에 대한 대화를 나눠요. 폭력적인 대화를 나눴지만 바꿔 볼 수 있겠다는 사례를 공유하는 거예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실천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지속적으로 하기로 했어요. 워크북 형태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실제 대화의 실상을 알게 되면 좋겠어요. 민주시민교육에서 말하는 다양성 존중의 핵심은 비폭력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하나: 마지막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 드려요. 모여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이 금방 나올 수도 있으니 상상해 온 것들을 거침없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나: 학교 교육을 진행하면서 교육지원청에 갈 일이 생겼어요. 군포의왕교육지원청인데, 의왕이 자꾸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가 하는 일의 담당 장학사님이 군포를 담당하시는 분이라 의왕 지역은 열외가 되는 거예요. 불합리한 일이죠. 의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약해서 그런가 싶어서, 네트워크를 빨리 조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네트워크를 조직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단체를 묶을 만한 공동 의제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해요. 안양에 있는 협의회처럼 회비를 내고 소속되는 형식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였으면 해요. 회비도 개인으로서 내는 거예요.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규숙: 소그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들과 단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들은 출발 지점부터 달라요. 그 점이 네트워크 조직에 방해 요인이 되는 것 같아요. 소그룹은 동질성이 강한 조직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합의도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데, 단체 베이스로 움직이는 활동가들은 사정이 달라요. 단체에서 벌이는 다양한 활동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어서 내부적인 갈등이 있거든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하는 일도 생겨요.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지만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바쁘니 참여하지는 못해요. 여러 단체가 연대해 행감에 들어가자고 하는데 단체의 급한 일이 들어오면 행감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리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정우: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말이 우리의 실정을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해요. 단체를 운영해 보면 어느 시점부터 동력이 사라지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만나던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네에서 새 친구를 일상적으로 만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소개팅을 자꾸 하는 거예요. 사실 낯선 사람들을 자꾸 만나려는 태도는 시민단체가 갖춰야 할 기본 자세죠.

모임에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내용이 참 좋더라고요. 기존 정치 담론과 기본적으로 달라요. 마음을 다루면서 근본적인 부분을 추구하더라고요. 이 책에서도 낯선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해요. 자신이 활동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 내는 활동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하나: 만나서 일없이 수다만 떨어도 많은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사업만 하고 있네요.

 

이정우: 맞습니다.

 

김지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벤치마킹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경제, 정치, 사회·환경 부문에 내로라하시는 분들이 지역에 있거든요. 이분들의 얘기를 콘텐츠화하는 거예요. ‘슬기로운 생협생활’이라는 제목으로도 몇 가지 콘텐츠를 잡아 보고 있어요.

 

이하나: 아이디어를 냈는데 실현되지 않거나, 내가 참여하지 못하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봐 걱정돼서 아이디어를 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봐요.

 

이정우: 온라인상에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우리가 하는 일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지만 그렇게 공유해야 확산에 도움이 된다고 봐요.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어요. 모임을 시작할 때 어떤 게임을 하면 좋은가 하는 작은 아이디어부터 큰 틀에 대한 생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포털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런 곳을 관리하는 일은 굉장히 큰 노동이 되겠죠. 누구나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구조라면 좋겠는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가요?

 

이하나: 가능합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게시판만 달면 되거든요.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스팸 게시물이 달리는데, 이 문제를 방지하려면 카톡이나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하도록 세팅할 수 있어요.

 

이정우: 문제는 참여도겠죠. 북미 지역의 사례를 보면, 아이들이 교회에 거의 안 가요. 한 달에 한 번 가면 잘 가는 거예요. 그래서 로테이션 워크숍 모델이라는 커리큘럼을 만들었어요. 채택율이 점점 높아지는 커리큘럼이에요. 요리, 연극, 과학실험을 포함한 4주의 패턴을 만들어 놓고, 그 활동들을 교육적인 스토리 하나로 엮어요. 스토리 하나를 한 달 동안 배우는 거죠. 그 한 번의 교육만이라도 받으면 좋다는 거예요.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북미의 여러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계속 올려요. 굉장히 큰 도움이 돼요. 정보량이 아주 방대하거든요.

우리가 만드는 사이트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들어가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볼 거리가 없는 거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자료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올리면서 내용이 풍성해지는 구조였으면 좋겠어요.

 

이하나: 강사팀과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각 기관의 허락을 얻어서 강사 구인 페이지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강사가 어떤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내년 2월 정도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못다한 얘기들은 워크숍에서 마저 나눠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기록 : 이혜정

기획 배포 : 문화공동체히응

촬영 : 애플캣미디어

[오늘의민주주의,내일의시민사회]평화통일 FGI 녹취록

2018년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 지역공론화 활성화 사업으로 진행한 “오늘의 민주주의, 내일의 시민사회”의 첫번째 과정, 포커스그룹인터뷰의 녹취록을 전문 개재합니다.

2018년 12월 3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진행한 평화통일 분야 FGI녹취록입니다.

 

reunification

평화통일 분야 FGI 기록지

진행 신영배(6.15경기중부지부)

참석 곽호경(평화아카데미), 정성희 (평화철도), 이승수(안양민주넷), 송재영(자치분권연구소)

일시 :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장소 : 행복한마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신영배: 1번 질문입니다. 귀하가 관여하는 기관·단체에서는 어떤 민주시민교육을 시행했거나 하고 있습니까? 어떤 내용으로 시행했고 어떤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십니까? 통일 관련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성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정성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기본부 주관으로 ‘찾아가는 통일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경기도민이 대상이었고요. 저는 통일기획위원 자격으로 다섯 차례 강의를 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번영과 시민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요. 공장 단위사업장에서도 하고 지역에서도 했는데, 중심 내용은 남북 경협에 기초해 북방 경제를 개척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협 판로가 뚫리지 않고 우리 내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하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할 수가 없어요. 전체 고용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지불 능력이 없으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최저임금 지속 인상 같은 과제를 풀 수가 없죠. 그러니 평화를 위한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단위사업장들이 각자의 임단협에 매몰되어 있어요. 사업장의 움직임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인데도요. 평화를 통한 번영이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교육 프로그램은 제가 소장으로 있는 ‘소통과 혁신 연구소’에서 주관한 것입니다. ‘백두산 평화기행’을 2013년부터 45번 진행해 왔어요. 북·중·러 접경, 백두산 천지, 한일유적지 탐방을 통해 평화 교육을 실시했는데 효과가 좋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올해에는 ‘사단법인 평화철도’ 주관으로 ‘열차평화기행’을 두 차례 하기도 했어요.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열차를 타고 달리면서 철원 일대, 평화전망대, 금강산 철길 등을 탐방했죠. 현지 탐방 교육으로서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신영배: 정성희 소장님은 노동 문제와 평화통일 문제를 가장 좋은 교육 내용으로 전달하는 몇 안 되는 분이지 않나 싶습니다. 백두산 평화기행은 특히 시각적인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천 마디 백 마디 말을 듣기보다 한 번 가서 눈으로 보면 큰 깨달음을 얻고 변화할 수 있죠.

 

송재영: 경기도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도내 각 지역의 네트워크 ‘민넷’을 조직해 경기도 측에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도의원들과 연계해서 요구한 결과 당시 남경필 도지사가 더민주와의 연정 사업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시행했어요. 3년 연속으로 예산을 줄곧 늘려 왔고요. 실제로 교육을 시행해 보니 평화통일 부문을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엊그제 경기도에서 도지사까지 참여하는 500인 포럼이 열렸는데, 민주시민교육의 내용 범위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어요. 환경, 여성, 인권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에 포함되는가를 두고 의견 대립이 있었던 거예요. 통일 교육도 논란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 논란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평화통일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저는 작년에 군포에서 큰 테마를 잡고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어요. 3년 전에 군포시민교육센터를 만들었거든요. 센터 주최로 통일과 관련한 다섯 번의 강의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경기도에서는 통일교육을 생소하게 여겼지만 오히려 군포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 거죠.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협회장 등 걸출한 분들을 모셨어요. 통일교육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뛰어들었는데, 주민이나 시민단체의 반응이 썩 크지는 않았어요. 사실 시민단체 회원들도 낯설다고 느꼈어요. 일반 주민들에게는 얼마나 낯설었겠습니까. 자체 평가를 해 본 결과, 우리나라에서 통일 문제란 상당히 중요한 분야이고 교육의 필요성은 분명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중화해서 민주시민교육과 연결할지가 숙제로 남았습니다.

백두산 평화기행이나 열차평화기행은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을 것 같아요. 기왕 직접 가서 보고 느낄 기회가 있다면 옛날처럼 대충 둘러보고 마는 방법은 지양해야겠죠. 저희가 군포 강의에서 모셨던 이시우 사진작가는 DMZ를 촬영하는 분인데, 연합사 문제를 잘 설명하시더라고요. 남북 분단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분 강의를 들은 주민들이 “어, 그럼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네요?”라고 하셨거든요. 예전에는 미국의 부당한 처사를 감히 얘기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일반 주민들이 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많이 달라진 거예요.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을 통일의 당위성, 민주화와의 연관성으로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전문가를 모시고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해서 남북 분단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하겠습니다.

 

신영배: 감사합니다. 송 대표님의 경험은 우리 지역의 민주시민교육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세현 전 장관 강의에는 몇 분이 오셨나요?

 

송재영: 그분의 스케줄에 맞추느라 휴가가 끝나는 시점에 강의 일정을 잡았어요. 250석 강당에 150명만 오셨죠. 꽉 찰 줄 알았는데요. 최승호 MBC 사장이 PD였던 시절에 강의를 하면 500명이 모였거든요. 영화 <공범자들> 상영할 때요. 저는 정세현 전 장관 정도라면 그 정도 인원은 모일 줄 알았어요. 아쉽죠.

 

곽호경: 저희 평화아카데미는 참여정부 후반기였던 2007년에 안양·군포·의왕의 평화 담론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평화와 번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던 시기여서 정기적으로 활동을 진행해 왔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분위기가 변해 가는 것을 확실히 느꼈어요. 초창기에는 30명이 수강해서 7~8강 듣고 마무리하면 수강생끼리 네트워킹이 되었거든요. 이제는 네트워킹이 굉장히 어려워요. 시민들의 관심도 굉장히 멀어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요. 최근에야 정상회담, 북미회담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죠.

그전까지는 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저희의 교육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 진행한 민주시민교육 워크숍을 통해서 바꾸게 되었는데, 포커스를 시민에 맞추기로 했어요. 민주주의적인 가치로 통일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내용을 재구성했어요. 분단으로 인해 생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자는 내용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부터 연습하자는 접근법을 시도했죠.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민주주의는 알겠지만 통일까지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반응이 적지 않더라고요. 통일이 내 삶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자기성찰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더 활성화해야 할 것 같아요.

평화 강좌는 곧 종강 예정이에요. 실은 4년 동안 규모를 점점 줄였어요. 전체 8강이었던 강좌를 4강으로 반토막 냈고, 1년에 여러 차례 하다가 한 번으로 축소했어요. 이번에도 수강생 15명을 모으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홍보도 더 적극적으로 했고 예전에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다시 관심을 가져 주셔서 참여도가 조금 높아졌어요.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기대가 작용한 것도 같아요. 강의를 연속으로 쭉 듣기보다는 듣고 싶은 강의를 취사선택하는 경향도 보여서 그 부분을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이승수: 아까 송재영 선생님께서 이승환 선배가 군포에서 강의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가서 들었거든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통일을 왜 빨리 하려고 하느냐, 그건 후세대의 몫이다.’라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어요. 우리 세대가 할 일은 남북 평화를 정착시키고, 철도를 연결하고, 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거죠. 무리하게 통일을 밀어붙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은 아닌 거예요. 지자체보다는 민간 통일 교류에 주목하시는 것 같았는데 젊은 세대의 시각과 통하지 않나 싶어요.

곽호경 씨가 말씀해 주신 평화아카데미 활동을 SNS에서 자주 봤어요. 비슷한 교육을 박달동에서도 했고 YMCA에서도 했지만, 각자 파편화되어 있어서 연속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민주시민교육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외로워 보여요. 그분들이 소수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비슷한 일을 해 온 단체들이 연대할 필요가 있어요. 네트워킹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으면 해요.

평화아카데미가 활동을 10년 이상 지속했으니 강의를 들은 사람이 500명 이상이겠죠. 그런데 수강생들이 서로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어요. 지역대학교의 한 학과도 학생들이 기수별 동문회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죠. 그 네트워크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요. 우리 통일운동은 그에 너무 못미치지 않나 싶어요.

저는 민주당 활동을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해 왔어요. 지금까지도 30~40대 당원을 중심으로 한 모임에 나가요. 이분들이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강좌를 거치고 민주시민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통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지역단체가 사진전을 열거나 북한 영화 상영을 할 때면 예전에 비해 쉽게 참여해요. 앞으로는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결성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영배: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 지역에서 평화통일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정성희: 예전의 민주시민교육에서는 반독재, 민주주의 쟁취가 초점이었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 단계에 들어섰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의식, 제도, 이를 뒷받침하는 의결 구조가 요구되는 시점이라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민주화는 되었지만 경제민주화가 안 되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국회의원의 대표성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아직 정치민주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요. 경제민주화도 아직이고, 문화민주화도 그렇고요. 민주주의적 방식을 익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수많은 방식의 참여를 인정하고, 의견을 모아 하나의 공동 의견에 합의한다는 것이 어렵죠.

분단과 대결로 점철된 지난 70년이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봐요. 수구 냉전세력이 대결을 유지시키려 하고 민주정치도 후퇴시키고 있어요. 소통과 공감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하는 거죠. 그러니 이 사회를 평화 번영으로 이끄는 데에 통일교육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남 갈등을 일으키는 세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올바른 남북관계를 견인할 수 없습니다.

 

신영배: 광폭 연대와 차이 인정이 필요하죠. 주옥 같은 말들입니다.

 

송재영: 아들이 물어봐요. 통일은 너무 먼 얘기 아니냐고요. 정치, 경제,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는 거예요. 연방제 방식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해 줬어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나 미국 등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라고요. 지금의 분단 상태는 아이들에게 손해를 끼쳐요. 조그마한 남한에만 갇혀 있지 말고 러시아, 시베리아를 통해 세상을 봐야죠.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요.

민주시민교육을 할 때 북한과의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부딪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대의제 정당정치는 한계에 봉착했어요. 그 체제는 주권자를 온전하게 대변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거예요.

남북 화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민주적 질서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데에 제약이 걸려요. 반공주의가 극심하던 시대에는 안보 위협이 있는데 무슨 민주주의냐는 얘기들을 했거든요.

평화통일교육을 하는 데 있어 많은 난관이 있어요. 저희는 시민단체고, 얘기의 소재가 생소하고, 동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란 말이죠. 극복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민주정권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곽호경: 저는 혐오사회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하지도 못해요. 평화통일교육 영역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차별적인 시각이 문제가 돼요. 그 시각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통일 이후에 서로의 정치체제를 맞춰 나가는 가정을 상상해 보면 거의 대재앙이죠. 이 미래의 사회혼란이 공포로 다가와요. 통일 비용도 그렇고요.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남북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맞춰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기 어려워요. 성찰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이승수: 태극기부대가 우리의 적은 아니잖아요. 서로 싸우기보다는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북한 사진전을 열다 보니까 항의 전화를 받아요. 보수적인 한 선배님이 ‘다 좋은데, 북한 비핵화 문제부터 나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북한이 알아서 하고 있겠지만 요구를 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 ‘너희가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면 사진전 정도는 봐 줄 수 있지.’ 이런 입장을 보이세요.

4~5년 전에 지방자치학교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취지가 다양한 사람들과 평화적으로 함께 논의해 보자는 것이었거든요. 손학규 의원, 원희룡 지사도 오고요. 지역의 합리적인 자한당 분들도 모셨어요. 그런 시도가 한 번으로 그쳐서 좀 아쉬운데, 보수적인 색채를 지닌 분들과도 같이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재영: 광폭 연대네요.

 

신영배: 최근에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통일은 우리 사회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사안이라고요. 지난 70년 동안 남북이 서로 적으로 살았는데 서로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다는 거예요. 그나마 있는 정보도 왜곡되고요. 설명부터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는데,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간다는 것은 눈물겹고 힘겨운 일이죠.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협력구조를 만들지 않고서는 더욱 그럴 거예요. 어떤 사진을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지도자들의 손을 양손에 잡고 있는데 마치 이들을 이끌고 가는 모습 같은 거예요. 양쪽 모두 만만치 않은데도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움직임을 향한 전 국민적인 지지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럼 세 번째 질문입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평화통일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성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민주시민교육의 많은 영역 중 핵심은 평화, 경제,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전 분야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이 분야라고 봅니다. 이 문제가 풀려야 나머지 문제도 풀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더 대중적이고 중층적인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북한 영화 상영회와 사진전을 개최해 봤는데, 이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죠. 현장 탐방성 프로그램도 그렇고요. 그에 비해 평화아카데미 강좌는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오시고 내용에도 깊이가 있어요. 이렇게 다양한 층위의 여러 형태가 있었으면 해요.

교육 내용으로는 남북한의 각종 제도, 운영 방식을 서로 비교해 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중국의 사회주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하잖아요. 북한의 제도에도 장단점이 있어요. 가치판단을 하고 논쟁을 하기보다는. 우선 팩트에 기초해서 북한을 바로 아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승수 동지가 아까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북한에 부정적인 분들과 서로 다툴 일이 아니에요. 일방적으로 한쪽 입장을 강조하지 말고 같이 해 보자는 것이죠.

방식에 있어서는 현장 탐방식, 토론식 교육이 최고예요. 탐방이 가장 효과가 높고, 그것이 어렵다면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PPT든 영화 상영이든 주관하는 분들이 일단 강의를 한 다음 질의응답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보통이었죠. 토론식 교육이 좋기는 하지만 진행하기는 어려워요. 전체 토론이 힘들어서 분반 토론을 한다고 하면 각 반에서 잘 이끌어 나가는 역할이 중요하죠.

지난 12월 3일에 ‘남·북·해외 공동사진전’이 열렸어요. 북한의 ‘조선6.15편집사’, 일본의 ‘조선신보사’, 우리나라의 ‘민플러스’가 함께 주관한 것인데 처음에는 서울역사에서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불발이 되어서 종로구에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했죠. 아무래도 서울역사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잖아요. 일반 시민들이 일부러 가 보기는 어렵죠. 서울 전시 이후에는 코레일과 협조를 해서 각 지방 역사에서 전시를 할 수 있었어요. 역사의 협조를 얻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철도역이 갖는 상징성이 있어요.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바로 북경,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갈 수 있잖습니까.

백두산 역사기행 가이드가 칭다오에서 국제여행사를 운영한다고 해요. 저한테 전화해서 얘기하기를, 장가계 인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복원된다는 거예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죠.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갈 텐데, 이 코스를 개발하면 역사기행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승수: 정성희 선배님께서 진행하시는 백두산 기행 같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고 가 보고 싶은데,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있었어요. 저도 몇 번 다녀왔고요. 평화아카데미에서도 초창기에 철원, DMZ 현장 탐방을 진행했어요. 갈수록 남북간 유대감이 떨어져서 그런지 진행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정세가 달라졌으니 재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고 생각하고요. 지자체를 통해 예산을 일부라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장학습을 통해 평화통일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었으면 합니다.

앞서 팩트에 기초한 북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민주평통에서 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니 내용이 어째 반공교육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해야 한다고 봐요.

 

송재영: 사람들의 인식은 외부에서 오는 겁니다. 기존 인식과 다른 정보를 10년 정도 대하면 생각이 또 달라질 수 있죠. 사람들이 북한의 생활상을 쉽게 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지금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잖아요. 상대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정서도 통하게 돼요.

이번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부모와 손 잡고 유치원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잖아요.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일상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그곳에도 나름대로 경쟁이 있죠. 김일성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하고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경쟁에서 낙오되더라도 직장은 보장된다는 점이에요. 아이들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 시스템은 괜찮은데?’라고 느낄 수 있어요. 동영상 같은, 접근하기 쉬운 매체를 이용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죠.

북한의 의사결정구조가 비민주적인 독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대의제도 민주적인 구조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주권을 위임받는 사람들의 대표성이 떨어지잖아요. 마치 북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모두 따르는 것처럼, 의사결정체제가 무너진 것처럼 얘기하지만 집단민주주의 체제가 더 민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와요. 북한의 논의 구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어요. 장단점을 파악해야죠.

북한 사람들이 개인으로서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정보를 공유하고 교육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중요할 것 같아요. 콘텐츠를 더 만들어서 확산시켰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일부 종편TV의 프로그램도 유용해요.

 

곽호경: 워크숍 방식의 참여형 교육이 접근성 면에서 좋아요. 그러한 교육이 차후에 이론 강좌를 찾아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상반기에 통일시민 워크숍을 진행했거든요. 남북의 현 상황, 우리 사회의 문제, 나 자신을 살펴보는 활동을 7회에 걸쳐서 1회에 두 시간씩 해 봤어요.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컸고, 이후에 평화 강좌를 한 번 들어 볼까 하고 용기를 내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 방법을 더 발전시켜 보고 싶더라고요.

서로 둥그렇게 자리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팀 경쟁활동도 해 보고, 진행자가 이간질시키는 가운데 서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협의하기도 했어요. 마지막에는 자기 생각을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바로 말을 꺼내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미지카드, 느낌카드로 소감을 표현해 봤어요. 이런 방법을 이용하니까 주제에 굉장히 쉽게 접근하시더라고요.

 

송재영: 일상생활에서 접근하기 좋은 매체가 동영상이에요. 통일과 관련한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많이 볼 것 같아요. 최진기 씨라는 유명 강사가 통일이 되면 얼마나 경제적인 이익이 큰지 말하는 동영상들이 있거든요. 이렇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고 짧게 동영상을 만들면 효과가 클 거라고 봐요. 지방에서 이런 걸 만들 여력은 없으니까, 중앙에서 재정을 확보한 다음 계획적으로 제작하면 좋겠어요. 동영상 팀 조직을 제안해 봅니다.

 

이승수: 제가 통일교육 관련한 자리에 처음 가 보는 친구 세 명을 교육장에 데려가 본 적이 있어요. 전혀 운동하던 친구들이 아니에요. 나중에 어땠는지 물어보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래요. 좀 더 깊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좀 더 자신있게 교육 내용을 진전시킬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합리적인 분을 찾을 수만 있다면 탈북자와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해 보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통일의 길’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탈북자 강의를 한 번 들어 봤거든요.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북한에 대한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라면 그런 분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죠. 저희와 생각이 조금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신영배: 한홍구 교수님 같은 내공이 깊은 분들을 모셔서 강연회를 하면 어떨까 싶어요. 북한에 반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모시는 거죠. 굉장히 효과적일 것 같아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면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 되는 행사, 스포츠나 문화 행사와 결합하면 좋겠고요. 설민석 같은 유명 강사를 초청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이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같은 곳에 갈 수도 있어요. 무료로 한 두 시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일단 예산 확보를 해야겠죠.

4번과 5번 질문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하죠. 우리 지역에서 진행되는 평화통일교육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은 무엇일까요?

 

정성희: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지난 정권들에서 전반적으로 위축된 탓에 활동을 어렵게 해 왔잖아요. 지금은 한반도의 대 전환기이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와 참여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에요. 잘 홍보해서 모집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고요. 교육 후에는 상품을 건 퀴즈를 낸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교육 효과를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교육의 효과를 지식 단계, 의식 단계, 실천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 지식에서 실천으로 점점 나아가야죠. 많이 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도록 활동을 잘 조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방법 면에서는 현장 탐방과 퀴즈 방식을 강조하고 싶어요.

 

이승수: 예전에 비해 지역 정치인들이 시민사회 활성화나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을 덜 가져요. 과거에는 시민사회와 함께 연구하는 의원들도 있었거든요. 가끔은 우리가 작은 이권단체만도 못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힘이 없어 보인다는 뜻일 텐데 우리가 넘어서야 할 부분이겠고요. 지방정치인을 압박하고 설득해서 시민사회 활성화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영배: 결국은 정치 세력화에 대한 얘기인데, 정치력 강화는 매우 중요하죠. 각종 단체의 협조를 얻으려면 그 문제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곽호경: 시민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항상 고민이에요. 강좌 이후에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후속 활동을 했으면 하는데 잘 되지 않고 있거든요. 늘 방법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피스모모’라는 단체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평화교육을 하는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곳이에요. 여기세어 올해 ‘탈분단 평화교육’을 진행했어요. 몸 활동, 소규모 토론 등의 활동을 이용해서 통일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이렇게 평화감수성 교육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결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이번에 퍼실리테이션 방식을 활용해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이 부분도 더 확산해 보면 좋겠습니다.

 

신영배: 평화아카데미에서 강좌 후 팔로업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6.15 조직이 지역에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소중한 분들과 계속 함께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홍보 면에서는, 지역자치센터에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어요. 포스터에 지자체나 민통련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주시거든요. 홍보 면에서나 예산 확보 면에서나 협력할 필요가 있어요. 민주당, 새마을운동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 같은 조직도 통일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에요. 그쪽 SNS에 가입한다든지 해서 민주시민교육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 같아요. 설령 그분들이 오시지 않더라도 이런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야 우리가 소수로 전락하지 않고 정치력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송재영: 남북이 경제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왜 절실한가를 대중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척 중요하고 시급한 건이에요. 우리나라에서 1년 사이에 자살하는 사람이 1만 2천 명이에요. 매년 대전쟁이 일어나는 셈이죠. 청년 실업, 조기 퇴직, 노인 빈곤 문제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어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비참한 이야기죠.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거든요. 경제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니까요.

한국 사회같은 중진자본주의사회가 생산력을 확대하려면 경제 규모를 늘려야 해요. 인구를 늘림으로써 경제 규모를 확장시키지 않으면 빈곤 문제를 풀 방법이 없어요. 통일이 곧 경제력 상승이라는 점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가들보다는 경제학자들이 이 얘기를 해 줘야 하는데, 다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우리가 할 수밖에 없죠. 사실 정치가들은 이 점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개성공단을 만들고 경협을 확장하려는 거예요. 정치 세력이 이 문제에 관여하니까 일반 시민들도 정치적 논리로만 이 문제를 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사느냐 죽느냐가 여기에 걸려 있어요. 민주시민교육에 참여하시는 30명, 30명의 시민에게부터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영배: 6번으로 넘어가도 되겠죠?

 

정성희: 광폭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부터 각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상의해야 해요. 중도에 보수 진영 사람들까지 모아야죠. 차이는 인정하되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평화통일 행사를 할 때 모시면 좋겠어요.

시 측에 요구하고 싶은 첫 번째 사항은 예산 지원입니다. 두 번째는 홍보나 모집에 협조해 주십사 하는 거예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서 초동 단계부터 같이 기획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협조해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없는 예산으로 어렵게 진행했죠. 그러니 홍보나 조직에 한계가 생긴 거예요. 지금은 평화통일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이 높아요. 민주평통이 후원한다고 하니까 주민자치센터에 포스터를 하나 붙일 때에도 장애가 없잖아요.

중도 보수층에 속하는 시의원들도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경협이 일자리고 밥이라고 조금만 설명하면 시민들은 박수를 쳐요. 평화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도 다질 수 있거든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실 것을, 이 자리를 빌어서 당부 드립니다.

 

신영배: 평화통일과 관련한 시민단체들의 제1 요구는 사회적 대화체예요. 민과 관이 협력해서 만드는 남북평화교류협의체 말이죠. 시, 정당, 관변단체, 시민사회단체, 민주평통의 결합체 개념이에요. 각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TF팀을 만드는 거예요. 일단 만들어지기만 하면, 그 안에서 논의할 내용은 시민사회단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하면 되거든요.

 

송재영: 군포시 사람들을 보면 조직이 많아요. 요리사, 미용사, 다 어딘가에 속해 있거든요. 이 사람들을 각종 행사의 준비위원으로 모시고 각자가 속한 곳의 회원들을 불러 달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당이 확장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시의원,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을 부를 수 있고 예산에 대한 협의도 더 긴밀하게 할 수 있죠.

 

신영배: 이 논의에 꼭 들어가야 할 얘기가 있는데, 안양시에는 평화통일교육과 관련한 조례가 지정되어 있잖아요. 군포와 의왕에도 이러한 조례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곽호경: 저희는 시민성교육 사업에 민주시민교육 분야로 예산 제안을 넣었어요. 한 단체가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최대 600만 원인데 500만 원을 신청했거든요. 이필운 시장 당선 직후에 근거 조례가 없어서 지원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때 서울에서 민주시민교육조례가 만들어졌는데, 그걸 받아서 송현주 의원이 안양시 조례 발의를 했어요. 그 조례를 근거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죠. 7주 강좌를 진행하는 데에 500만 원이 전부 들어가요. 큰 강좌를 기획한다면 남북교류조례나 새로 만들어진 평화통일교육조례를 근거로 들어서 제안해야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신영배: 민주평통은 예산을 집행만 하다 보니까 위탁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한다는 개념이 부족해요. 우리도 위탁사업에 대비하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정성희: 경기도 평화통일교육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하잖아요. 안양에서는 어떻게 진행합니까?

 

곽호경: 이룸을 통해 교육청과 협약을 맺어서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서 민주시민교육을 해요. 초, 중, 고등학교에서 신청을 하면 저희가 들어가서 진행해요. 경기도교육청에서 통일시민교과서를 만들었거든요. 내용이 아주 좋아요. 성인이 봐도 될 정도예요. 그 교과서를 바탕으로 통일시민 영역의 교육만 올해 20차례 했어요.

 

신영배: 7, 8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1.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정치교육뿐 아니라 인권, 여성, 노동, 생태, 미디어, 평화통일 등 다양한 영역의 교육을 망라합니다. 각 영역의 교육은 전체 민주시민교육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2.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 활성화와 교육체계 정착을 위한 민간교육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필요하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성희: 민주주의 교육은 민이 주인 되는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것이고, 각 영역을 심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한 의식 변화로 제도를 개선할 수 있고, 제도를 개선하는 집행부와 대의기관의 구성원을 교체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까지 생각할 수 있겠죠. 이념과 체제 문제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사상이든 이념이든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면 수용할 수 있는 시대예요.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시장경제를 활용하잖아요. 배부른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는데 그것이 잘못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라고 다 좋은 것만도 아니죠. 신자유주의의 극단적인 폐해도 있고, 정부가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기존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통일 문제는 경제 관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문제예요. 사람들은 ‘통일’ 하면 체제통일을 생각하거든요. 민생경제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고, 어르신들과도 손자들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측면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요.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이라 대화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대결 위주로만 생각해서는 우리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죠.

통일 비용은 제로예요. 왜 그런가 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시작되는 수가 있습니다. 항구적인 평화 제체를 공고히 한 다음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평화통일교육의 방법 면에 있어서는 존중과 소통이 있어야 해요. 우리 아들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현장 탐방, 토론 같은 방법론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네트워크가 있어야죠. 중도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 정권을 최대한 활용해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영배: 8번 질문과 관련해서 이하나 국장님이 생각하시는 네트워크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죠.

 

이하나: 여러 가지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교집합들은 있지만 전체적인 큰 틀은 아직인 것 같아요. 모여 본 적도 없고요. 같이 일도 하고 결과물도 볼 수 있을 만한 사업을 해 보면 좋겠어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여러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사업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거예요. 서로가 낯설고 어려울 테고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상상해 보고 있어요. 청년층 중에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있지만 문턱이 높아서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해서 선배들의 구술을 채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고요. 안양1번가나 안양역 광장 같은 곳에서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버스킹, 정책제안 발표대회를 열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간단하게 얘기해 보는 거죠.

아주 강력한 수준의 네트워크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서로 연락처 정도는 공유하면 좋겠어요. 누구를 통하면 어느 진영에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영배: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생각은 없나요?

 

이하나: 비용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죠. 이번에 안양의 시민단체들이 행정감사 모니터링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를 어딘가에 공유하지 못했어요. 웹페이지에 올리기만 해도 시민들에게 유포할 수 있다고 제안을 드려 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으시더라고요.

 

신영배: 범시민 사회대화체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어렵나요?

 

이승수: 어렵게들 생각하시는데 굉장히 간단한 일이에요. 게시판을 만들고, 그 게시판 주소를 담은 QR코드를 만들어서 뿌리면 됩니다. 기존 플랫폼을 이용해도 돼요. 포털, 페이스북, 카카오톡(플러스친구), 인스타그램 등 수십 가지가 있으니까요. 의지와 시간만 있으면 네트워크는 만들 수 있어요. 다만 예산에 따라 홍보력이 달라질 수 있겠죠.

 

신영배: 평화통일 쪽은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 보려고 합니다.

 

송재영: 엊그제 경기도의 민주시민교육 관련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는데 논쟁이 아주 치열했어요. 환경 단체, 노동 단체, 장애인 단체 등 시민단체들이 모인 자리였거든요. 왜 논쟁이 붙었는가 하면, 시민단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이 모두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차명제 교수(한일장신대 NGO정책대학원)는 그게 왜 민주시민교육이냐고 반문하는 거예요. 논란이 과열되기에 제가 중재하면서 얘기했어요. 다양한 영역의 교육이 모두 민주시민교육이라고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야 할 내용을 다루잖아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보입니다. 정보의 독점 때문에 대의제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거예요. 전문가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죠.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고 공유하는 과정이에요.

독일에는 연방 차원에서나 주 차원에서 운영하는 교육원이 있어요. 그곳에서 시민교육, 정치교육을 하거든요. 히틀러는 선거로 당선된 사람이에요. 그런데 파시즘으로 대학살이 일어났잖아요. 더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시작한 거예요. 우리나라도 촛불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국가나 지자체 등 공식적인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일상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을 기르기 위해서예요. 우리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행사하는 방법을 모르잖아요. 대의제 체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거죠. 지역에서부터 자치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거예요. 어두웠던 시절에는 좋은 투표를 하자는 소극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직접 권력을 행사하자고 말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사회에 참여하는 공익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봅니다.

민주시민교육 안에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죠. 민주시민을 육성한다는 큰 틀에서는 공통점이 있어요. 하지만 독자적인 영역은 별도로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작년부터 경기도에서 이 부분을 추진하고 있어요. 열 군데에 지역네트워크를 구성했거든요. 살펴보니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가장 정통성이 있는 곳이란 말이죠. 자연스럽게 그곳이 중심이 되어서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그동안 민주시민교육을 해 오지 않았어요. 더 많은 지역단위와 논의해야 한다고 제가 문제제기를 한 것이 그런 이유예요.

군포시의 다른 시민사회단체, 마을공동체, 자원봉사센터, 문화재단까지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는 자원봉사센터에 가서 강의까지 했어요. 예산을 만들어 내면 우리가 프로그램을 기획해 들어가겠다고요.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런 방식이 필요했어요. 먼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전국 조직을 띄우고 여기로 들어오라고 하는 거죠. 요즘에 이런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나중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대표성을 놓고 논쟁하게 돼요. 시민들 의식이 얼마나 높아졌는데요. 뭉쳐라, 모여라 한들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역별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했어요.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행사를 만들어야 해요. 박람회나 발표회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진행에 있어서 공동으로 해야 할 부분과 개별적으로 해야 할 부분도 논의해서 잘 나누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도권 싸움이 생겨요. 시민운동하던 사람들이 더 양보해야죠.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지, 우리를 따라오라고 하면 안 돼요.

 

곽호경: 저희는 지역네트워크 이룸을 통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안양에서는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을 교육하고 매년 워크숍을 통해 재교육하는 틀이 갖춰져 있어요. 저는 이 틀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강사들은 자기 영역에 자부심이 있지만 그 외 영역에 대해서는 보통 관심이 없거든요. 워크숍을 통해서 다른 접근에 눈을 뜨게 되고, 이 과정을 2~3년 반복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강의안에 녹여 내는 단계까지 다다랐어요. 지역 차원의 느슨한 네트워킹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수: 작년에 안양박물관에서 ‘안양굴뚝전’이라는 전시를 열었어요. 1970~1980년대 안양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도였는데 실제로 몇 번 가 보니까 내용이 너무 빈약하더라고요. 제가 있는 모임에서 문제점을 정리하고 개선 방향을 적은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안양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배웠거든요. 대농단지는 일제 강점기에 비행장이었대요. 전쟁이 끝나면서 공장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1980년대까지는 석수동에 핵우산 부대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는 잘 모르죠. 보존되어 있는 부분이 없고,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노력도 없으니까요. 1980년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에 있어 안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 그 부분에 대한 기록도 드물어요. 이런 역사를 복원하고 보관하는 사업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안양문화원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들었어요. 아카이빙을 하려고 예산 2천만 원을 받았는데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반납했다는 거예요. 올해에도 6백만 원 예산을 받았다가 반납했고요. 예산은 있어요. 우리가 힘이 없고 네트워킹이 부족해서 놓치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이런 부분을 보완해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영배: 마무리하겠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죠. 일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폐가 청산되지 않은 것도 결국 분단 상황 때문입니다. 협치와 시민 참여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겠죠. 소중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기록 : 이혜정

기획 배포 : 문화공동체히응

촬영 : 애플캣미디어

 

 

 

2018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 지역공론화

2018년 안양군포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향후 사업방향을 모색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지역내 물꼬가 트인 각종 민주시민교육 강좌와 활동에 대해 안양군포의왕을 아우르는 민주시민교육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판단하여, 이에 대한 사전 조사를 착수했습니다.

응답한 단체와 기관들의 교육형태는 강좌, 강사양성, 학교 민주시민교육,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민주시민교육 실천과제 전달, 탐방과 답사의 형태들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토대로 2018년 하반기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 지역공론화”공모사업을 통해 지역공론화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역공론화 과정은 2018년 11월 20일부터 12월 20일, 단기간에 걸쳐 지역현황을 공유하고 지역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2018년 12월 3일부터 5일에 걸쳐 4회의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평화통일, 노동, 인권, 갈등해결 분야에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는

12월 15일 지역내 관계자들이 모여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사업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두 가지 내용을 종합하여 이번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이 사이트를 통해 안양군포의왕의 시민사회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길 하나씩 정비해나가겠습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시민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018년 12월 17일

 

민운사_배너

2018년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 지역공론화 사업

<오늘의 민주주의, 내일의 시민사회> 코디네이터 이하나

피해자가 책임지는 사회

하천의 쓰레기가 줄어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쓰레기를 주워요.

니들이 버린 게 아닌데?

– 누군가는 치워야 하잖아요.

오. 착하네. 근데 그건 하천 관리에 들어가는 거 아냐?

– …

하천 관리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

– 사람들하고.. 시청요.

그럼 착한 사람들이 쓰레기 치울 때 시청은 뭐해?

– …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 (다양한 대답)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어. 그럼 어떻데 해야할까?

–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잡아요.

어떻게?

– CCTV요.

CCTV가 있으면 쓰레기가 줄어드나?

*이쯤되면 애들이 피곤해하기 시작한다.

CCTV는 검거가 목적이지 예방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지. 개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는 지나가면서 휙 버리는 것도 있지만 작정하고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동네라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힘들다는 뜻도 되겠지. 그러면 집 앞에 쓰레기를 잘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졌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걸 살펴봐야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 하면,

아까 기름 유출된 거 얘기할 때도, 주민들이 나서서 거둬야 한다고 해서 그래.

예전에 태안에 삼성 배가 허베이스피리트호라는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이랑 부딪쳐서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적이 있어. 그때 사람들이 다 달려가서 그 기름을 걷어냈어. 자원봉사로. 근데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너희같은 착한 사람들이 가서 기름을 다 닦아버렸단 말야. 범죄현장을 다 치워줬다고.

게다가 그 사건의 이름을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붙였어. 전 세계 어디에도 선박사고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대. 나도 찾아봐서 알게 된 거야. 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마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처럼 여겨지거든.

왜 항상 피해자들이 책임을 질까?

나는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따로 있고, 늘 착한 사람들이 뒷수습을 해. 그건 왜 그래?

그걸 생각해보자는 말이야. 착한 사람들도 언젠간 억울해지지 않겠어?

#피해자들이_책임지는_사회

이 나라는 이게 전통이다.

항상 피해자가 증명하고 피해자가 소명하고 피해자가 처리한다.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성폭행도 그렇고 배달하다 알바가 죽었는데 청소년에게 노동교육을 시킨다. 을들에게 너희가 잘 해야 된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갑들은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들에게 교육하려는 사회가 비겁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비겁의 향연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현장에 들어갈 사람만 노동교육을 받는다. 대기업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을들을 교육시키자고 하나. 안전교육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받는다. 건설사 갑들은 거기서 빠진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잘 봐야 한다. 사회가 부패할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부패를 가리는데 사용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부패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벼랑에 몰릴 때 쓰는 방법이다.

교육계에 새로운 것들이 자꾸 등장한다.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덮고 가자는 것이다. 오염된 땅을 낙엽으로 덮고, 짚가래로 덮고, 눈으로 덮고, 시멘트로 덮고, 아스팔트로 덮고, 폐타이어로 트랙을 만들어 덮고,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 지압장을 만들어 덮는다.

새로운 시스템을 의심하면

본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8. 11. 22

[기고]깃발을 흔드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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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내는 교육정책포럼 통권 304호, 2018년 10월 발행 간행물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안양지역의 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2014년 3월이다. 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트워크 형식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준비한 지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교육네트워크를 표방한 협의체들은 이미 여러 개가 있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이하 이룸)이 출발하는 데는 아픈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의왕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7살 소년이 혼자 있다가 키우던 개에 물려 죽었고, 안양에서는 여자어린이 둘이 납치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역에서 지키자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였고, 그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일선교사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1~2년 이상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공동체는 와해되었으니 사회공동의 책임을 나누자는 의도였다. 공교육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단단한 토양을 만들고 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자는 의도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은 왜 느끼게 된 것일까?

시민들은 학교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대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지역과 학교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학교가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흔히 학교의 구성원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교는 교직원과 공교육기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방식은 모두 전근대적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혁신학교와 진보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학교변화의 욕구는 학교 안에서는 응축되어 밖으로 터지는 형태로, 학교 밖에서도 교문을 밀어제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기폭제가 된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으로 촉발된 이룸이 출범하자마자 전 국가를 비통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교육지원청이 먼저 제안하여 교육지원청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각 기관에 숙련된 강사들이 있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룸에 합류해 있는 회원기관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들을 최소 2명 이상 추천받아 교과연구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10여 개 학급에 불과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교 측의 요청이 늘어났고 교육지원청도 이에 적극 협조하여 2017년에는 72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120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예산은 모두 교육지원청에서 부담한다.

안양지역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청이 재원을 대고 이룸 사무국에서 강사보수교육과 시민대상교육을 맡는다. 강사 보수교육은 매년 2회 이상 실시하며 시민교육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거나 활동가가 될 만한 시민들을 찾아내고 있다. 강사보수교육에 대한 비용은 교육지원청에서 2018년부터 약간의 강사비를 보태고 있으며 그 외 시민대상교육과 내부 강사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각 기관은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실천을 강화할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 등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2018년 안양의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은 2015년도의 1기 강사부터 2017년도 3기에 신규 합류한 강사들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강사진은 매년 조금씩 들고 나는데 겨울방학마다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 변화한 학습환경에 노력하도록 내부협의를 거쳐 새로운 교안을 만든다.

현재, 안양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아마 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형태인 교육 참여인원이 그 기준으로 될 것이다. 2015년에 12개 학급, 2016년에 13개 학급에 수업지원을 한 것까지 더하면, 1개 학급을 30명으로 산출하였을때 안양지역은 이룸과 교육지원청이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혜를 받은 학생 수가 2015년에 360명, 2016년에 390명, 2017년에 2,160명, 2018년에 3,600명이된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지원 누적계는 6,510명이다1).

안양의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이룸에서 매년 겨울, 신규 교안을 마련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통합시스템으로 각 학교에 교안을 제시하고, 그 중 선착순으로 학급별 수업지원 신청을 받아 각 기관에서 강사를 배정해 특강 수업을 나가는 형식으로 추진된다. 수업지원 신청은 교사들이 한다. 2~3년 연속으로 신청하는 교사들도 있는데 수업지원을 나가는 강사입장에서도 작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교사의 신청 여부에 따라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또한 학교별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신청이 현저히 다른데 학교 내부 분위기와 연구모임, 학교 내 민주적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2년 연속 한 학급도 신청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동 학년 전체학급 수업을 신청하는 학교
는 통계를 내지 않아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 사업은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한 해에 수백 시간의 교과수업이 있다. 그중에 지역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은 한 학급에 단 2시간이다. 더러 학교에 프로젝트 수업을 마련해 지역의 강사들을 초빙해 4차시 이상의 연속수업을 기획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성과지만 학생 개개인이나 학급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매년 사업 후 결과를 현장에서 듣거나 설문조사를 실행하면 교사들은 더 많은 민주시민교육 특강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현재의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강사비용만 1년에 1천만 원이다. 교육지원청과 학교 현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교육의 종류를 결정하게 된다. 고쳐야 할 시설물과 학교 내부 사정이 우선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모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연내에 성과가 나지도 않고 2차시짜리 수업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사들은 교육안을 보고 자기 학급에 적합한 것을 신청한다. 일종의 교육쇼핑이다. 교육과정에 대해 강사와 협의하는 과정은 각 강사가 출강 전에 교사와 전화통화로 하는 게 전부다. 민주시민교육 교안 구성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사전 의견을 들어본 적 없으며, 교사들과 학교가 진짜로 민주시민교육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러 어떤 교사들은 외부 강사진의 진입을 꺼리며, 수업을 참관한 관리자들은 강의형이 아닌 참여형 수업의 자유로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4년 차에 접어든 강사들은 매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강사모임을 통해 그룹 스터디를 병행한다. 2018년에 수업을 진행한 강사들은 22명이다. 120개 학급에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면 1인당 5.4개 학급, 10차시 정도에 불과하다. 공부한 시간보다 활용한 시간이 훨씬 더 적다.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 강사진은 올해 들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과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강사진이 더 많이 공부한 해가 될 것이다.

지역네트워크가 좀 더 큰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연대회의나 지역의 각 네트워크 협의체는 별도의 법인을 갖지 않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각 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주제에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나누어 전담하고 있으나,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이 지금처럼 협약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각 교육지원청은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조성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안양지역도 연구교사와 관리자, 이룸이 참여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있지만, 연내 몇 회 모임으로 서로 간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협의를 이루어낼 시
간이 없는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학교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 역량강화와 지역에 관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판단되어 교육지원청과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담당교사들의 업무는 민주시민교육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마다 전담교사가 있어도 학교는 수없이 많은 일로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안양처럼 교육지원청의 주도로 진행하는 방법은 학교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자기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을 수년에 걸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역협의체가 같이 협력할 경우 지역 내 역량 있는 강사들의 교과연구를 도울 수 있고,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믿고 민주시민교육 강사들을 신임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내용은 아이들이 가정에 전달하고, 각 가정의 보호자들은 결국 모두 지역의 시민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다.

이후에 이를 제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사들만의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지역과 함께 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정부기관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업무를 경감하고 민주시민교육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초단체는 각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 나가야 한다. 교육공무원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내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근무조건이 옥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권력의 영속성을 믿지 않으며 정의에 예민하고 매사의 공정을 추구하며 포용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이룸은 결과적으로 다시 안전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억울한 일로 옥살이를 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거나, 차별과 혐오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위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하나 사무국장은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중문계에서 한어언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하다 2014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집필노동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NGO, NPO의 가치 확산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 히응”의 대표다. 대표저서로 「포기하지 않아, 지구」(2018, 빨간소금)가 있다.

[기고]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본 원고는 2018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지에도 기고한 원고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민주시민교육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 집필노동자)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4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1 :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의 지역과 시민단체의 역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설립취지는 공교육의 회복을 돕고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지만 해결해야 할 장벽은 한둘이 아니었다. 출범 직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이룸의 창립주체였던 안양YMCA 문홍빈 전 사무총장의 사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봉착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가자는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학교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입시로 작동되는 기이한 사회다. 대학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결정된다. 학벌로 계급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던 산업화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학벌은 일종의 종교적 관념마저 갖게 되었다. 대학만 잘 가면 만사형통이라는 이념이 보편화되었고 그 이념 아래 전 국민이 헤쳐 모여를 반복했다. 자녀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주와 직장을 결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대학입시시험의 편의를 위해 공공시설의 제약까지 감행하는 나라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군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이주를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가진 학부모가 다수를 이루면서 공동체는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다. 이익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사회에서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당위성은 없다.

 

지역공동체 활성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신자유주의가 잠식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마을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이동하고 마을공동체 되살리기도 안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마을공동체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을공동체사업이 공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자발적이어야 하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시민사회가 주도했던 수많은 영역들이 공기관 산하로 흡수되었고 공적 자금이 들어오면서 풀뿌리 운동의 자생력이 죽어간다는 소리도 크다. 시민성에 대한 교육 역시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운동은 끊임없이 현장을 돌보며 민간에서 필요한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이는 시민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시민단체들의 숙명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민주시민교육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교육들을 수십 년간 해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 새로운 용어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목적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시민 개개인의 역량으로 확고히 만들어내고 그 어떤 계층이나 세력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장치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확고하게 띈 활동과 교육이 학교라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근대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도권 내 교육과 학교제도 바깥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학교 밖의 시민교육이 참여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학교는 참여를 독려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2014년 이후로 학생들이 직접 학교 정책과 교칙 변경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긴 했으나 이는 매우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일부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 지자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기초단체 의원들이 늘어났으며 시민을 대표하는 후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교 밖 지역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제등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관료적 체계와 상명하복의 근대적 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정책의 결정권자들은 공무원이며 이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도 상부에 보고하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일부 이익집단과 극성 학부모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하며 맞서 싸우기 어려운 학교 구성원들의 태생적 한계를 여러 번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라고 하지만 이 삼위 중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교사들뿐이다. 이 결정권을 놓고 학부모와 학교가 대립하는 양상이 생기면 학생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결정권을 쥐려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내부의 민주주의 지표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양지역의 경우 민주시민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참석한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내 민주주의의 갈 길은 요원하다. 관리자의 횡포는 사라진 추세지만 내면화된 수직적 권력구조는 쉽게 뜯어고치기 어렵다. 개인의 내면화된 권력구조는 집단으로 이입되고 이 집단성이 발휘되는 공간이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를 숨 막힌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원인일 것이다. 교사들은 언제나 안전과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고 국가는 학교에 수많은 책임을 지운다. 학교내부는 언제나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으며 내부결정구조의 비민주성은 수시로 튀어나온다. 혁신의식을 가진 평교사들과 관리자의 불일치, 행정과의 괴리등은 학교 민주화를 저해하고 외부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된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민사회단체를 목적을 띈 이익집단으로 치부하는 경우, 지역주민강사를 교육하청수행자로 여기는 태도, 전문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온한 사상을 주입한다는 편견이 외부 강사의 현실적 강사료, 외부 강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진 집단이 외부에서 학교 내부로 진입하려면 매우 구체적이고 상호간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관료적 시스템에는 실적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욕구, 교사에게는 점진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하여 학교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 학생들에겐 신선한 교육과 자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지역사회에는 학교라는 교육현장을 열고 지역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시민의 양성이라는 각자의 욕구을 충족할 요건을 고르게 분배하고 자극할 때 민주시민교육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이제 어디에서도 발붙일 수 없으며 이제는 각자의 입장을 가진 욕망들을 끌어내어 새로운 제도에 적용해야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 수 있다.

 

  • 전개 2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어려운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앞에 밝혔듯이 경기도교육청의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섯 째, 급변하는 시대와 세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90년대 이후 사이버스페이스라 일컬어지던 가상현실공간은 이제는 삶의 절반을 차지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 세대고 이제 이 세태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역사회,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학교는 미디어 급변에 대한 대처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으로 손꼽아도 무방하다. 특히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불거지는 다양한 소수의견에 대한 의견 정립이 전혀 안된 상태다. 공통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는 화두가 수만가지에 이르는데 아직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공론화 할 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미디어를 기피하려는 기성세대는 사실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청소년보다 한참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촛불 이후 학생들은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화했으며 어떠한 권력도 파괴 가능하다는 것을 내면화했다. 청소년세대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이 민주시민교육을 펼쳐나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의미와 함께 기성세대의 헛발질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 기성세대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민주적 감수성이 낮다는 것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층은 청소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감수성을 예민함으로 이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돌아봐야 한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주장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인권과 불평등에 대한 소리도 높아진다. 혹자는 현재의 이 현상에 대해 혼란스럽고 시끄럽다고 폄하하기도 하나, 그 동안 도덕성과 애도로 합일되고 선악구도로 양분되었던 정치적 입장에서 억눌려 왔던 모든 의견들이 2016년 촛불을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단계라 보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시민사회와 운동권에서도 소수자들의 의견은 대의를 위해 외면되어 왔다. 2016년 촛불 이후 각 교실과 거리에서 혼재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것들도 일관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인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재구성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야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사회변혁 단계에 생략되거나 외면되어 온 과정이며 꼭 한 번 거치고 넘어가야 할 단계이다. 권력구조를 내면화한 기득권층과의 갈등, 또는 각 개인의 내면의 혼란을 동반한다. 인정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의 한계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잘 해내고 있다는 상호간의 믿음이다.

 

학교 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끊임없는 갈등이 촉발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일어나야 하며 토론과 토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의견 조율, 상대방의 입장 이해 등이 필요하다. 학교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지역사회가 가진 한계도 확인해야 한다.

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은 시민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을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학교는 또한 외부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여 보다 선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모든 규율과 지금 당연히 여겨지는 가치들을 의심하고 전복시킬 모험심도 필요하다.

 

안양에서 진행해 온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얻어낸 각 지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교육지원청의 역할

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한다. 이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준비해 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의사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파손된 책걸상을 바꾸거나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등의 시설투자부터 기본적인 교과과정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급급하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결과가 당해 연도에 나타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당연히 민주시민교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지원청은 먼 미래를 보고 학교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우수한 강사진을 학교에 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사비와 강사 양성교육에 관한 재원을 마련한다. 교육지원청에서 마련한 예산으로 강사교육과정을 거치면 강사진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높아지고 학교측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법도 역량껏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할

이미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활동가와 전문강사진 중 학교교육에 임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의 강사진을 발굴한다. 구체적인 활동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마다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 담당실무자의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업무 분담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네트워크는 각 분야별의 개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인정하고 단단하되 느슨한 체계를 지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확보한 강사진을 양성하되 매년 4회기 이상의 워크숍을 진행해 보수교육을 철저히 하되 강사진의 변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각 단체는 학교 교육을 전담할 강사들의 교육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동한다. 강사을 신뢰하게 그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믿음은 일을 그르친다.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 수시로 점검하되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점검은 질책을 목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며 개선의 재료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각 단체의 실무자 활동가 전문강사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도록 지원하는 단계를 수년 동안 실행하면 이들이 자연스러운 민주시민교육의 전파자가 된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실현은 기초단체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기 가장 좋다. 민주시민교육을 접한 아이들이 가정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되고 이에 부모들이 영향을 받거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 학부모들이 지역시민이고 이들로 인해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된다.

기초단체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기반한 민주시민교육 관련 예산을 배정해 지역내에서 시민대상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 할 임무가 있다. 기초단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지역사회시민들의 역할이다.

 

학교의 역할

학교는 기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시대를 읽는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성공의 기억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저항과 변혁의 욕구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학교 내 민주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 개인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한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무리하지 않되 스스로 변화할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어라, 는 명제가 왜 필요한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교육지원청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나 학부모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철학과 신념도 필요하다. 휘둘리기 시작하면 민원을 처리하는 단순업무로 전락하기 쉽다. 단일 공동체 내에서 추구하는 공통의 철학이 필요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낼 관리자의 자세도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관리자가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교양있는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며 합의하고 쟁취하는 시민성을 목표로 한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실천이 필요하다는 기득권층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복잡하며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완성하지 못할 체제일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의 욕구가 관철되고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내는 일이 인간 본성에 거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공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쉬운 개인의 욕망을 위해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보조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욕망이 진열되는 전시장이다. 이 모든 이슈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극상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의 용어다. 그러나 “하극상은 안된다”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서다. 이 나라는 국가인가 군대인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철학이 탄탄한 사람에겐 가르치려는 어떤 텍스트도 무용하며 동시에 모든 텍스트가 가능하다. 지금 결여되어 있는 것은 공동체의 철학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발언의 기회와 시간을 늘리고 불편한 이야기를 공론화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학생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26일 작성.

 

 

끝.

 

일요일 밤, 세신

일요일 밤인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목욕탕에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낮까지는 그럴만 한데, 원래 월요일 출근 전에는 어디나 썰렁한 법 아닌가. 밤 10시가 다 되어 들어섰는데 꼬맹이들도 엄청 많고 가족단위 입장객이 많았다. 다들 가족단위로 어디 놀러갔다가 비오고 으슬으슬하니 단체로 목욕이나 하고 가기로 맘 먹은 걸까.

들어서자마자 세신을 할 요량으로 오만원짜리 지폐를 카운터에서 만원짜리 다섯 장으로 바꿔 장농열쇠로 돌돌 싸맸다.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세신을 맡기는 규칙이다. 지폐 두 장을 돌돌 말아 장농열쇠로 싸서 세신관리사들이 있는 코너 창가 선반에 줄을 세워두면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불러준다. 이곳의 세신관리사는 평균 다섯 명 정도, 2교대로 일하는데 대부분 자정에는 퇴근하고 조금 일찍 끝나거나 조금 늦게 끝나거나 1시간 정도 변동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날엔 1시까지도 일을 한다. 아주 손님이 적은 날에는 두 명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데 출근을 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다섯 개의 세신베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편이다. 인근에 다른 찜질방+사우나가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두 세개씩 있지만 여기가 제일 깨끗해서 자주 찾는다.

열쇠를 올려놓으려고 김이 서린 안경을 내리면서 살살 걸어가 열쇠 놓는 곳을 보니 열쇠가 10개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40분 정도 넉넉하게 여러 개의 탕을 돌며 쉴 예정이었기에 나는 일요일 저녁이니 40분쯤 있다가 불러달라고 얘기하려고 여유있게 갔는데 낭패다. 이러면 순서대로 해도 40분 넘어서야 내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가면 대부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긴다. 그냥 귀찮아서, 라는 핑계는 너무 구차하니까 내가 왜 세신을 포기하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 있다. 때 미는 게 너무 힘들면 안 밀면 될 거 아닌가. 안 밀어도 안 죽는다. 때 미는 게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도 있다. 애를 낳고 난 다음부터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내 스스로 내 몸을 닦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야무지기 때문이었다. 애가 어릴 때는 녹초가 되어서 머리 감는 것도 기력이 딸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세신관리사는 지치지 않고 구석구석 내 몸을 살펴주니 얼마나 좋은가.

어떤 세신관리사는 나에게 유방에 멍울이 잡히는 것 같다 해서 병원을 갔다가 유선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세신관리사는 하루 종일 남의 몸을 만지게 된다. 세상 수만가지 사람들이 벌거벗고 그 앞에 드러눕는다. 어떤 단서도 없다. 가끔 악세사리를 했거나 문신이 있는 경우를 빼고 대체적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신관리사를 만난다. 그들은 벌거벗은 몸을 만지며 삶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고 앉아 있는 일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여자들만 가득한 날 것의 공간이라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한 사람을 만나면 대략의 역사를 훑어내는 능력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직업이란 게 그렇다. 사람을 대하다보면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몸에 자기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내 다리를 움직이면서 관절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고 어깨를 두들기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는 걸 유추할 것이다. 나는 이들의 전문성을 믿는다. 이들이 병원 가보라는 조언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어서 손해봤다는 사람 없다. 물론, 가끔, 마사지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이 좀 난감할 때도 있다.

수년전, 그날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맨 몸으로 드러누우면 시력이 나빠 사방 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좋은데 문득 누가 날 이렇게 정성스럽게 씻겨줬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기복이 커서 일관성 없는 육아로 가끔 학대하고 가끔 과하게 상냥했던 엄마는 내가 세 살일 때 혼자 머리를 못 감는다고 욕조에 거꾸로 처박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목욕이 공포가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데, 나는 아랑곳없이 물을 좋아했고 여전히 목욕하는 걸 즐긴다. 사주에 물이 적어서 그렇다나. 사주 말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 지독하게 앓았을 때도 극진한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한 달에 두 세번쯤 세신관리사에게 2만원을 내고 때를 미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해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박산호 샘의 책 제목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에겐 그정도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잘 벌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수 년전에 “마흔에 가까울 수록 타인의 돌봄을 사서라도 챙길 필요가 있다.”라고 한 말도 나의 이런 생활습관에 좋은 핑계가 된다.

아무튼 오늘은 대기가 길 것이라 한참을 탕을 오갔는데 1시간이 가까워지자 지루할 뿐 아니라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를 불릴려면 계속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세신을 받기가 쉬운데 이벤트탕이나 약탕에 들어가면 몸이 미끌거려 때가 잘 안나온다고 세신관리사들이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잔소리도 달갑게 받는다. 이제는 나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잔소리가 반가울 때도 있다.

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침대쪽에 가서 기웃거리며 물었더니 순서가 다 되었으니 두 명 정도 내려가면 부르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의 내 번호는 223번. 223번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다다다 빠르게 걸어가서 착지 완료, 자세를 잡고 세신관리사가 딱 폼을 잡았는데 관리사가 부른 번호는 223번이 아니고 213번이었다며, 213번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관리사가 그냥 있으라며 됐다고 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얼핏 듣기로 (안경을 벗으면 눈치를 살피지 못해 귀도 잘 안 들린다) 213번은 5천원을 추가하는 뭔가 다른 코스였던 모양. 그러니 나를 받은 세신관리사는 뚱뚱해서 밀기 힘든데다가 5천원을 잃어버린 심정이었을게다. 때가 안 불었느니, 소리를 잘 듣고 왔어야느니 관리사의 심기불편함이 전해졌다.

바빴다는 얘기다. 이 일은 사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손님이 밀린다고 일할 사람을 더 불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이라는 게 그렇듯이 말이다.

“얼굴 비누칠 해드려?”

이 말은 ‘에지간하면 하지 말고 그냥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이고,

“뒤꿈치 밀어드려?” 라는 말은 ‘이것도 바쁘니까 생략하고 내려가서 니가 알아서 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나는 둘 다 생략해도 좋다고 했지만 관리사는 굳이 발뒤꿈치를 조금만 밀어주었다. 시늉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간지러워서 원. 한마디 한 마디 말투나, 손놀림이 거칠었다. 아주 짜증이 나서 죽겠는 모양이다. 이 관리사는 이미 내가 여러 번 세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차례 7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했고 그때마다 내가 사양했었다. 딱 한 번 5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은 적 있는데 그때는 정말 어깨와 목이 너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던 차였고 이 관리사에게 안마를 받고 나서 하루 정도 시원하게 지내기도 했다. 돈도 돈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매번 사양했었다. 손이 야무지고 매운 편인데 체격이 작고 날렵하다. 나는 이 목욕탕에 1년 넘게 꼬박꼬박 다니며 몇 명의 성향을 파악했는데 이 관리사는 일을 잘 하고 돈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얼굴비누칠이나 간단한 얼굴마사지를 생략하고 세신베드에서 내려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목욕탕을 나가 탈의실에서 내 옷장을 열고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카운터에 가서 5천원짜리 두 개로 바꿨다. 그리고는 5천원짜리를 작게 접어서 다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나를 방금 내려보낸 관리사는 새 손님을 받아 열심히 때를 밀고 있었다. 나는 뿌연 안경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친 다음 그 이의 오일통 아래에 오천원짜리를 넣었다.

나를 빤히 보던 그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이를 어째.”

“덩치값이예요.”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다시 인사를 했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이는 “고마워서 어째. 바빠서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천원에 그이의 미소를 샀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 것이고 그이도 어딘가 억울한 마음을 조금 달랬을지도 모른다. 개뿔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누군가를 화나게 한 것을 수습했다.’는 변명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말하려면 지갑을 열면 되고, 그러기 위해서 또 열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타격이 된다. 사실 세상 이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게 많다. 택배기사가 20kg 짜리 쌀을 나르거나 여섯 개 들이 생수를 배달하면 돈을 더 받는 게 옳은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고, 나처럼 살이 많은 사람은 일 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지니 돈을 더 받아도 되겠지만, ‘뚱뚱하다고 차별하냐’는 논리가 있을테니 그냥 퉁쳐서 간다.

푼돈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일하는 것보다 대가가 적을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푼돈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간혹 나는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 푼돈으로 짧은 순간의 마음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 선한 게 있을까. 나이를 먹어버린 자들에게.

아파트 밖의 세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0271522001

오늘 타임라인에서 계속 돌고 있는 기사에 대한 첨언한다.

 

  1. 아파트 아이들만 반으로 편성해달라, 는 요청이 있다.

– 없지 않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를 지으며 새로 짓는 초등학교가 개교하면 아파트 아이들만 입학원을 내주라는 학부모들도 있다.

수년 전 의왕시 내손동에서도 있었던 실화.

 

– 아파트 아이들만 임시반 편성이 되었더라고요.

이건 1학년 입학 때 임시반 편성은 주소에 기준해서 그렇다.

처음엔 주소지 번지수로 묶는다.

당연히 한 개의 아파트 단지는 한 번지수에 묶인다. 임시반에 들어가면 다 옆 동 앞 동 아이들이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아이들로만 반을 묶기는 쉽지 않다.

 

  1. 2008년쯤 관악산 휴먼시아에 살았다.

원래는 관악산 뜨란채로 허가를 받은 모양인데 입주자들이 휴먼시아로 바꿔달라고 했단다. 왜냐면 휴먼시아가 판교브랜드라나.

그래서 바닥 하수도관 뚜껑은 뜨란채라고 새겨져 있는데 벽에는 휴먼시아로 되어 있었고 나중에 공식명칭도 휴먼시아였다.

뜨란채 하수도 뚜껑을 가진 휴먼시아라.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는 가난한 이미지 벗는다고 이름도 다 바꿨다. 주민들이 원해서였다.

동료들과 회식 후에 “신림동이요”하고 택시를 타는데 직장 선배가 “어머 너 신림동 사니?”하고 수돗물 안 나오는 동네 취급했다는 동네 아가씨 얘기를 들으면 그래 뭐 이름이 대수라고, 바꾸는 게 낫다 싶기도 했다. 신림동은 난향동 난곡동 보라매동 대학동 삼성동 등으로 바꿔서 어디가 어딘지 적응하는데 5년 넘게 걸렸다.

 

  1. 아파트 외 지역에서 살면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주차장과 공원, 놀이터의 부족을 절감한다.

당장 이사를 간다면 주차장 확보가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주민우선주차구역이 있어도 매번 헤매는 걸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려면 매일 주차로 인해 한번쯤 인상을 찡그리거나 쌍욕을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차를 없애면 될 거 아니냐고? 남의 인생에 그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하고는 말을 섞지 않을 참이다.

 

빌라 주변 놀이터가 낙후되었으니 밀어버리고 노인들을 위한 게이트볼장을 신설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요즘 애들이 어디 놀이터에서 노나요? 그리고 그 동네는 애들도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은 시의원이 되었고 재선에 성공했다. 페친신청한 지 오래됐는데 페친하기 싫다.

그 동네, 애들 많다.

그리고 그 동네, 경비아저씨가 출입 단속하는 아파트가 있어서 아무데서나 못 논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출입단속하던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가 그 지경이 된 건 사연이 있다.

 

입주 첫 달에 두 집이 통째로 털렸다. 에어컨 설치하러 왔다면서 트럭을 대놓고 살림을 실어갔다. 새로 넓은 평수를 얻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 새 살림을 샀을테고, 당시 평면티비 500만원짜리 정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가죽 소파 같은 거까지 다 털어갔다고.

나도 거기 살면서 내 집 앞 현관에 놔둔 28만 원짜리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절도범이 잡혔는데 인근지역 고등학생 세 명이었다. 애 엄마가 자전거값을 가져와서 백배 사과해서 나는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범죄의 원인을 파고들면 대한제국까지 올라가야 하니 그 얘기는 이 정도까지. 아무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부자라면, 그들은 자기 재산을 지키는데 더욱 철두철미해진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는 게 더 두려운 법이니까.

 

  1. 신규 아파트 단지는 이기심이 극에 이른다.

아파트 조경도 신경 쓰고 관리사무실도 극도로 긴장한다. 화단은 곱게 가꿔지고 비싼 관리비를 받는다. 이 이기심이 극에 치닫는 기간은 입주 1년차에서 5년차 정도인 거 같다. 하자보수기간이 끝나고 2년 정도 지난 후로는 이런 감정들이 조금 낮아진다. 그 사이에 경매 나오는 집도 생기고 이사들도 가고 이런 저런 경제적 상황에 내몰려 집을 팔거나 전세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생긴다. 전세계약이 2년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전세계약이 두 바퀴 정도 돌고 나면 집을 투자목적으로 산 사람들은 사라지고 살려고 들어온 사람들과 세입자들이 남게 된다. 그러니 그때는 재산불리기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좀 줄어드는 결과로 추정한다.

신규단지에 적어도 10년 살 목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이웃 때문에 얼굴 붉어지는 일이 좀 생길 것이다. 그게 지나야 화단도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대충 살게 된다. 그때쯤 되면 출입통제도 좀 느슨해지고 그제서야 집단주택에 대한 본질이 살아난달까. 새집증후군도 사라지고.

 

서울강남권은 잘 모르겠다.

10년 넘은 아파트는 다들 집만큼 사람들도 낡아진다.

 

나도 내년엔 빌라로 이사할까 생각중인데 주차문제가 해결될까 골치다. 아침저녁으로 쌍욕하는 욕쟁이 아짐이 되겠지.

 

  1. 그래서 도시는,

아파트를 제외한 구역의 치안과 복지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아파트단지는 관리비로 여러 가지가 해결된다. 아파트 안에는 정갈한 재활용쓰레기장도 있고 주차장도 청소한다. 시는 세금 걷어 뭐하나. 골목골목 유휴지 확보해서 쓰레기장부터 제대로 만들면 좋겠다. 어느 아파트는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지하수를 끌어올린 작은 수도꼭지도 만든다. 맘이 없어서 안하는 거지 불가능하다고 절대 생각 안한다. 미화원 채용 늘리고 공공근로 늘리면 될 일인데 그렇게 안한다.

공공근로는 사업이 단계별로 종료되어 1단계 이후 2단계로 진입하기 전에 한 달여를 그냥 쉬기도 한다. 그때는 공원청소도 안 되는 곳이 있다. 공공근로 환경미화 하는 사람들도 그 기간을 어찌 견디나 늘 고민하는 걸 접한 적 있다. 행정처리 해야 된다고 서류에 사인만 하면서 그게 한 사람의 생계를 붙잡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가방 들고 출퇴근하면 따박따박 통장에 돈 꽂히는 사람들은 노력해서 이해하려 들어도 잘 안 될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노력해야지. 밥은 왜 먹나. 밥값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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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수원의 다세대/주택가 초등학생들이 우리 동네는 너무 더러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구활동을 하다가 수원 다른 동네에 가서 찍어온 사진.

“우리 동네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네가 낡아서 지저분해지는 건 아니었어요.” 라는 후기가 있었다.

 

 

2018년 10월 27일

범죄사회

JTBC 뉴스룸을 보면서 PC방 살인사건을 저렇게 계속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내가 느껴온 (분석이 아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바로는 이쯤되면 이슈몰이에 성공해서 다음 단계로 진입할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은 듯.
나는 뉴스룸에서 최종적으로 야간노동자 안전에 대한 이야기로 몰아갈 걸 기대했고 그 중간에 심신미약기준과, 촉법소년 얘기정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은 심신미약와 심신상실에 대한 이야기 정도 하고 그쳤다.

하나의 뉴스가 “한걸음 더 들어가려면” 사건 이면에 숨은 진실을 캐내야 한다고 했다. 그 진실은 사회시스템의 빈틈을 찾아내는 것일게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밝혀내거나 우리가 미처 찾아보지 못한 미흡한 점들을 알려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찰의 대응메뉴얼, 건장한 남성이라 그냥 돌아갔다, 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현장에서 마주쳤던 출동경찰들은 30분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줬다. 돌아가지 않고 멀찌감치서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대기하는 경찰관들도 있었다. 경찰이 다 썩었다, 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집 앞에서 고성방가 하는 중년 여성에게 담뱃불붙여주고 얘기들어주는 경찰관도 봤다.(이 중년 여성 나 아님)

야간노동자는 사실 2인 1조로 일할 필요가 있다. 공사현장도, 경찰도 2인 1조가 기본인데 야간노동도 2인 1조가 좋겠지만 이 얘기가 나오면 “최저시급도 올라서 난리인데 미쳤나” 소리가 나오겠지만.

사춘기를 넘기면서 범죄물과 수사물, 르뽀를 즐겨본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는 최애 프로그램. 더 잔혹한 것을 직설적으로 보면서 위로 받는 게 있다. 견디고 살아남은 자의 흔적이다. 그거 내가 겪은 거, 다 별 일 아니구나 살만 해서 여태 살아 저걸 보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일종의 견디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회이슈와 강력범죄가 언론에 많이 노출될 때는 동일한 사회적 현상이 있다. 언론들이 짠듯이 강력범죄를 계속 노출할 때가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엔 강력범죄와 잔혹한 살인범이 가장 적절하다.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자들이 누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강남 청소년 폭행사건이나 강서구 PC방에, 또 강서구인데 여성피살 사건도 나왔다.

에지간한 살인사건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2017년 검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이런 건 그냥 구글링하면 PDF를 통채로 받을 수 있다) 2016년 살인전체 발생건수는 948건인데, 그 중 기수는 344건 (살인한 것) 살인미수, 예비, 음모, 방조죄는 604건이다. 하루 한 건 꼴이다.
2007년은 살인가수가 466건이었고 살인미수가 658건이다.
요즘들어 많아진 게 아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반면 성폭력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2007년 14,344건인데 2016년은 29,357건이다. 이는 신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성범죄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범죄는 강간과 준강간, 불법촬영등 형사법에 적용되는 것만 말한다. 성희롱은 형법으로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범죄에 준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 무서워. 라는 말을 증명하려면 강력범죄(흉악범 > 살인, 강도 등)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건 언제나 20대가 상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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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무서워서 애들 가는 데 안가. 라고 말한다면 폭력범죄 연령별 분포추이를 보면 되는데 지난 10년간 폭력범죄 최상위 연령계층은 40대였다. 그래프를 보면 50대가 40대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조만간 역전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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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얘기하지만, 페이스북에 자기 글, 자기 일상 사진 정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밑바닥을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나도 간접적으로 들은 거고 깊이 관여한 게 아니고 그냥 스쳐가며 본거다. 중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부탄가스 빈통이 널부러졌다는 정도는 깜도 아닌 경우가 많다. 몰랐던 거다.

노출이 쉬워지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이런 범죄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딱 절반쯤에서 나뉠 거 같은데, 동시대인들이 가고 싶은대로 가겠지.

다들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하는데 결국은 다 내 맘 가는대로 가더라. 내 맘 아닌 거 같아도 그게 내 맘인 경우가 더 많다.
사진은 2017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 캡쳐

#40대는_어디가서_술처먹고_싸우지말자

목격자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할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가.

이는 특정할 수 없다.

기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는 행간에 묻어나게 되어 있고, 글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 개인의 역사를 쓰고 공개하는 순간 나는 그 개인이 익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개인은 익명으로 돌변한다. 개인의 역사와 성품을 알고 그 개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해 본 사람들은 고통 받은 개인을 여전히 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와 관계 맺지 않았던 이들에게 개인은 익명이 된다.

어떤 사람, 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갖지만 동시대인의 의미를 갖는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익명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이 된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동시대인과 분절적으로나마 역사를 공유한다. 그 개인이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동시대에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과 역사를 공유하고, 그 개인이 여성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적 역사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지금의 아이들은 10년이 지나도 모두 슬라임과 액괴를 기억할 것이라든가, 지금의 40대 여성들이 위스퍼라는 생리대는 ‘날개달린 생리대’로 기억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집단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순간 개인은 상징성을 가진 익명이 된다. 한 사람의 역사가 상징이 되려면 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개인은 나름대로의 사건을 갖고 있는데 그 사건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은 코드, 즉 상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상화는 피해갈 수 없는데, 어떤 주체들은 이 대상화과정을 거부하기 위해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한다.

개인의 역사는 그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지만, 그보다도 현대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명화가 완성된 사회인 경우, 사회는 그간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쉽게 파괴되지 않을 만큼 견고해지면서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말하고자 한다.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생활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드러낸다는 것이다. 신체와 인격 안에 영원히 숨겨둘 수 있는 상흔은 없다고 믿는다.

발화할 수 있는 사람과 발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해력의 문제이거나 언어구사력의 문제, 혹은 공개에 대한 용기여부가 관여한다. 공개에 대한 용기역시 발화하고자 하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망자가 되어버린 경우다. 죽은 사람은 발화할 수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발화한다. 죽음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온몸에 상흔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이 개인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망자의 말을 대신 풀어내기도 한다. 무고한 사람이 허망하게 떠날 경우 살아남은 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 무력감은 인간의 존엄이 사회 어디선가는 지켜지길 바라거나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대한 약속하지 않은 연대의식에 기원한다. 무력감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어질 때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 때문에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결심한다.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의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다고 소리칠 때, 누군가 그 손을 잡는다. 거기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다. 적어도 이 나라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작동해왔다. 한 개인의 죽음을 통해, 그 죽음의 상흔을 통해, 애도하고 추모하며, 광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오늘 한 목격자가, 한 개인에 대해 목격한 바를 적었다. 혼자 추모할 수 없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험도 어려운 일이지만, 목격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목격한 자들도 유사한 상처를 입는다.  목격자는 때로 유일한 증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들은 맥락 없는 타인의 사건에서 오기도 한다. 왜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강요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시대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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