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를 만나다

명동예술극장에 연극을 보러 나간 길. 
카메라는 들지 않았고 오는 길에 뭔가 사와야 할 물건이 있어서 부러 차를 가지고 나갔다. 
주차를 하고 동생을 만나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동성폭행법개정에 대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나올 때 해야지 했던 걸 깜빡했다는 걸 집에 오는 길에 깨달았다. 


연극을 보고 나와 
촉박한 시간에 마구 발걸음을 빨리 하는 순간에 빅이슈를 팔고 있는 판매자 분을 마주쳤다. 
내 기억속의 코스모스백화점, 그리고 그 이후에 십수번 이름을 바꾼 눈스퀘어 앞이었다. 


내용이 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빅이슈를 사야했다. 
빅이슈가 발행된 지 1년여는 된 거 같다. 


거의 서울 지하철권에서 판매가 되는데 나는 빅이슈가 창간된 즈음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빅이슈를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빅이슈는 1권에 3000원이다. 
빅이슈 1부는 1400원에 빅판(판매자)에게 공급되고 권당 1600원의 수익을 갖는다. 


나는 3천원 한 권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동안 빚진 느낌을 청산하고 싶어 3부를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같은 내용으로 3권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과월호를 섞어서 드리는 게 어떨까요 하는 빅판의 말씀에, 아, 과월호도 있으면 과월호도 사야겠다 싶어 이번호 3권과 과월호 각기 다른 2권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한꺼번에 5권을 사니 빅판께서 민망하셨는지 음료수를 사겠다고 하시며 음료수를 먼저 내게 건네야 돈을 받을 것 같으셨다. 


빅판의 빨간 조끼 주머니에 다행히 잔돈이 있었던 지라 15000원을 넣어드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모퉁이를 돌면서 트위터에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트윗을 올렸다. 



명동눈스퀘어 앞에서 빅이슈 판매자분을 만나서 이번호 3권 달라하니 똑같은 거 3권 가져가느냐며 과월호로 가져가면 어떠냐 하셔서 이번호 3권에 과월 각 1권씩 달라하니 음료수 사주신다고 하신 판매자분. 감사합니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어떤 분께서 RT를 거쳐 내가 오늘 만난 판매자분께 멘션을 연결해주셨고 
내가 오늘 만난 빅판께서 이런 글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bigissue_h 앗!그 분이시군요.말한마디 때문에 3부에서 5부가 되지 않으셨는지?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빈말이 아니였는데 음료 드셨으면 지금 더 마음이 편했을텐데 아쉽네요 따뜻한 밤 보내세요 ^^


라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트윗을 열기 전에, 
오늘 아침 남편과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으로 
가난하거나 무지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멘션을 읽고 난 다음 지금은, 
누군가가 가난하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편견을 갖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조금 수정을 했다. 일반화는 무섭다. 날이 갈수록 분석을 하고 어떤 규칙을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섣부른 일반화를 너무 많이 범한다. 


나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그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세상에 가난하고 무지하고 혹은 그렇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혹은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려, 어리석지 않은데도 어리석어지고 그저 누군가를 믿었는데도 갑자기 발등이 찍혀버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을 때,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 당당하게 비난하려면 
부채감이라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밟고 일어선 누군가가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의로 밟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받았던 혜택과 내가 누렸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 언제나 누군가의 올바른 정책 덕분이었을게다. 


그저 나 혼자 스쳐지나가는 일화로 간직할 만한 일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뜨거운 일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밤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갑자기 쌀쌀해져 라면이 매우 땡기는 밤이다. 


빅이슈코리아 공식 사이트 bigissuekr.tistory.com
최근들어 빅이슈 측의 문제가 있는 풍문이 들리는데 괘념하지 않겠습니다. 
빅판들께서 공정한 수입을 가져가실 수만 있다면 빅이슈는 꼭 계속되길 바랍니다. 







세계, 어제와 오늘.

표출되지 못한 언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정확성을 잃은 감정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거리를 헤매이고 
TV에 나오는 누군가를 모방한다
흠모하진 않으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시기심이 있다
내가 저 아이보다 못한 게 무엇이 있느냐는 
바닥을 친 자존감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을 쫓아 
재빠르게 자존감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
딸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닌지 한 달이 된다.
지난 주엔 나와 7년을 산 개의 목욕을 시켰다.
한달만에 능수능란한 관리사가 되었다.
어제의 아이는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시 내 앞에 서 있다. 
케익 하나 사다 주면 헤헤 하고 내내 웃던 보조개와 
스파게티는 이렇게 먹는거라고 가르쳐 주던 나를 보며 부끄럽게 웃던 얼굴로
진작에 좀 .. 이라는 나의 타박에 
눈가가 빨개져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가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어차피 공부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아이는 그저 세상에 뛰어들어 인생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는 비정규직이다.
아이를 낳으면 알바를 많이 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내 아이가 알바를 하겠다고 나서니 선뜻 칭찬이 나오지 않는다.
왜 험한 세상을 일찍 배우려고 하느냐.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만나도 늦지 않는다.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엄마, 한 걸음을 떼니까 두 번째 걸음이 쉬워요. 라고 말하는 아이의 옆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우리 얼마나 힘들었니.
다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참 잘 하고 있구나. 라고 
매우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절대 비난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심하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항상 측은지심을 갖고 왜 저 사람이 저런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하라 했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인지
이 사회의 문제인지 잘 살펴보는 사람이 되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낮추어 너에게 적용시키지 말라고 했다.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다가서지 말아야 할 세계가 있고 
접하지 말아야 할 직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의 기준, 너의 잣대가 되어야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무도 무시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아직도 .. 제가 그래 보여요? 라고 묻는다. 
아니. 네가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청소년기의 네 나이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 
네 동생이 네 나이가 되면 네 동생에게도 똑같이 말할꺼야. 
며칠 전에 할머니 걱정이 되어 
몸에 좋은 음식을 해드리고 싶어 고민하다가 
도곡동의 한 한의원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온 것은 
아주 기특하고 훌륭하고 기쁜 일이다. 
근데 솔직히 엄마는, 
진작에 조금이나마,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조금 덜 아프게 하지 그랬니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날은 좀 화가 났었다.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눈가가 벌개지지만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또 아이에게 못을 하나 박은 셈이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나는 말해야 했다.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뼈아픈 고통도 느껴봐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 
차라리 내가 주는 상처가 낫다고. 
자위하고 싶다. 
아이는 커간다. 
자기의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관찰하고 부딪치고 느끼면서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매우,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만으로 다섯살하고도 6개월이 지난 작은 아이는
요즘 태권도를 다녀오면 뛰어나가 동네 형들이랑 놀기 바쁘다.
엄마 안녕. 
하고 저 혼자 문을 닫고 나가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다 간혹, 
엄마가 태권도에 데리러 와. 
라고 말한다. 
왜 데리러 오라고 했어?
아이와 오솔길을 걸으며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하며 내 팔에 제 얼굴을 문지른다.
어두워질 때까지 아이들과 놀다가 
밥먹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나의 작은 아이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낸 80년대의 아이처럼 저녁을 보낸다.
그렇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일이 성사되어 
이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동생에게 피부가 탄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밤도 새지 못하고
예전처럼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고
가끔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발견한다.
흰머리를 발견해도 뽑지 않는다. 
이미 남편은 염색약을 써야 할 정도가 된 지가 오래다. 
늙어가는 중이다.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고 
아주 조금씩, 늙어가는 중이다. 
스무살 무렵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진절머리 나는 질풍노도의 혼란을 지나 서른이 되면 어딘가 안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30대의 반을 훌쩍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흔이 되고 싶다. 
그럼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간혹 그저 세월을 건너뛰어 쉰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나이. 
언젠가 엄마가 쉰 다섯 쯤 했던 말처럼
“이제 이 나이쯤 되면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나에게 나이는 환상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다.
사람으로서 
가장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기쁜 마음으로 
참 잘 지내었다. 라고 말하며 떠나고 싶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별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해서 조금씩 걷는다. 
때론 울고 웃고 욕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 
얼마전 남편이 몇 년전의 나의 습성에 대해서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말하는 그 습관은 그 때의 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이미 몇 년간 그렇지 않았잖아.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매일 매일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살아. 
라고. 
나는 내일,
오늘 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거다. 
2011. 9. 17. 

버틸 수 있길

말기 암 환자에게 병원은, 더 이상의 치료법이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자 임상실험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그냥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관망하시겠습니까..가 생략된 말이다.

여름의 한 가운데였다.

그 사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환자는 더욱 악화되고 약해지고 슬퍼졌다.

그리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의연하게.
명대로 살다 가련다. 더욱 초연하게.
욕심부리지 말자. 포기한 채.
고통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 애절하게.

그리하여 더 이상 하루로 늦출 수가 없는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큰 아이의 수련회 가는 길을 위한 도시락을 싸고
작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화장을 하고 청소를 미뤄두고
가스밸브를 잠그고 10시에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건다.

성내동에 위치한 한 병원,
면역요법만을 연구한다는 생경한 의사를 만난다.
너무 늦게 오셨다는 얘기는 여기서도 듣는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모처를 찾아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에 주소지를 찍고
혼잡한 도로에 서 있다.
그 곳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이라 했다.
나는 식사를 하고 오시라 했다.
2시에 만납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남짓 넘은 시간.
근처에 있는 오래전 왕의 무덤에서 아침에 싸온 김밥을 먹으려고 주차장에 들어섰다.
월요일 휴관.
주차장만 운영.

근처 어디 벤치가 있을까 하여 조금 걸어봤으나 모두 상가와 상가에 딸린 야외테이블이다.
게다가 추석을 앞둔 햇빛은 무겁고 뜨거웠다.

나는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가 시동을 켜고, 공회전을 시킨 채로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공회전을 시키면 안좋다던데, 환경오염에 차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 따위는 잊기로 한다.
때로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던져 버릴 필요가 있다.
정치를 비꼬는 남자들의 화창한 웃음소리속에서 김밥을 먹는다.
그리고 차를 몰고 나와 만나기로 한 모처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비싸고 달디 단 커피를 하나 시켜 마시고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간을 보낸다.

집 근처에서 미술학원을 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작은 아이가 태권도를 마치면 그리고 보내라 할테니 애를 부탁한다고.

아이는 9시 20분까지 유치원으로 가서, 3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바로 태권도장의 셔틀버스를 타고 태권도장에 가서 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태권도장의 셔틀버스를 타고 이모학원으로 가서 저녁나절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 건물은 보안이 유지되는 곳이라, 방문할 곳의 호수를 누르고 입주자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 한다. 5분전에 도착해 호수를 눌렀다. 문은 아무 음성없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50대의 인상좋은 여자가 문을 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거형 오피스텔을 개조한 사무실.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기 위해,
의학적 사실만을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것들의 1개월치를 주문하고 설명을 듣고 계산기를 같이 두들기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배설을 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한다.

159만원.
일시불.
한 달치다.

항암제는 300만원정도였고,
모대학병원에서 만들어낸 신약은 320만원이었다. 한 달치에.

쌓아놓은 돈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돈이다.
일하고 벌고 융통하고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돈.

돈은 구할 수 있는데, 약이 없다는 것과
약은 있는데 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
비참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요,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며느리가 오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라는 그녀의 말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삼키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다섯 번 정도 하고 뒤돌아선다.
대체 내가 그녀에게 무엇이 감사한 것인가.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마지막이 아니라고 해줘서.

큰 아이가 먹어야 하는 약의 하루분이 모자라다.
테헤란로를 지나는 사이에 병원에서 네 번 전화를 걸어 겨우 통화를 한다.
1시간 이후 도착하기로 약속을 한다.
1분 뒤를 예측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1시간 후를 약속한다.

선글라스마저 무거운 시간.

전화를 건다.
근처 야산에 바람쐬러 가셨단다.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춰 드릴 물건이 있으니 찾아뵙겠다고 한다.
분명히 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릴까봐 부랴부랴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거동을 하시고 식사도 하시니 희망이 있습니다.
라는 문장 하나만을 믿는다.

지하철역 근처 병원에 들러 딸랑 약 한 봉지를 받고
근처 문구점에 내려가 15분을 기다려 문서복사를 하고
약 복용법을 적기 위해 유성펜과 접착메모지를 산다.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병을 사려는데
지갑엔 오만원짜리 뿐이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만 구천 오백원을 거슬러 받고 그 자리에서 박카스를 들이킨다.

주차된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작은 구멍가게에서 2000원짜리 깡통커피와 생수를 산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건다.
익숙한 길은 운전이 수월하다.
그 주택가 골목은 언제나 주차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오늘은,
전봇대를 박을 우려가 가장 높은 자리가 비어있다.

가방이 하나 봉투가 하나 쇼핑백이 하나
3층계단을 올라가 고장난 초인종을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
문 열어주세요.

나를 보고 웃는 얼굴이 둘.

그리고 나는 쇼핑백을 부려놓고 하나씩 꺼내 검정 유성펜으로
아침, 점심, 저녁, 취침전이라 쓰지 않고 주무시기 전. 이라 적는다.
공복 섭취 요망. 이라 적지 않고 공복에 드시면 좋아요. 라고 적는다.

아이가 도착했다는 메세지가 온다.
5시가 넘었다.

얼굴 하나, 나에게 박카스를 내민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던 것처럼 박카스를 마신다.

때마침 들어선 다른 형제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나는 내 짐을 챙겨 다시 출발한다.

비록 나의 모든 노력이 헛되더라도,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나만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억지를 써서라도 무엇이든 하려는 나를 보고
나를 보고 웃는 얼굴, 그 하나가,
사는 날까지, 기운차게 살아보자고 다짐해주시길.
그래도 좋은 기억이었다고 생각주시길.

그러나 그렇지 않으실 것을 안다.
너희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고, 돈을 많이 쓰고, 배려를 너무 많이 하고,
그런 모든 것이 늘 미안한 분.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단 한 번 이기적인 모습을 보았더라면,
나는 이렇게까지 서럽지 않을 것이다.

명대로 살다 죽겠노라,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간디. 라고 하지 마시고
그래 조금 더 노력해보자 좋은 날이 오겠지. 라고 말씀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때문에 그 한마디 듣고자
내 억지가 조금이나마 의지가 되길,
내 정성이 조금이나마 버틸 힘이 되길.
통증으로 진통제만 삼키는 날이 오더라도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차라리 이럴꺼면 그만 죽여달라고 울부짖지 않으시길.

육신의 고통은 경감할 수 없다 한 들
마음의 고통만이라도 줄일 수 있길.

내가 좀 더 현명하지 못했던 것과
내가 좀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과
내가 좀 더 건강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회한으로 남는 시간.

당신의 몸을 점령하고 있는 그 날랜 것들이
당신을 모두 집어삼키는 날이 오더라도
그 날이 되더라도
마음만은 미쁘시길.

단지 그거 하나.
웃으면서 가시는 그 날까지.

당신이,
내가,
내 자식이 나의 부재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버틸 수 있길.

2011. 9. 5.

+ 투병중이신 시어머님의 회복도 완치도 아닌,
그저 마음의 평안을 빌며 적음.

The Way We Were







1973년 시드니 폴락 감독의 The way we were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이다. 
멜로영화로 알고 있었던 게 잘못이다.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라 정치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 흔들던 1950년대.
그들이 다시 만난 시점이다. 
그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는 스페인 내전이 한참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에 시작되어 39년에 종결되었다. 
조지오웰이 작가로 활동하며 내전에 참가해 “카달로니아 찬가”를 쓴 시대다.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쉽게 말해 운동권이다. 
진보정치의식을 가진 그녀는 늘 바쁘게 살며 생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허블 가드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찌보면 도련님,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다. 인생을 즐겨. 라는 모토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는 Americanism의 상징. 글재주가 좋아 교수에게 인정받고 결국 훗날 작가가 되는 인물이다. 
집회를 이끄는 대학생때의 케이티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했던가. 
인생관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결혼까지 골인한다. 
두 사람은 30대가 되어 케이티는 내조를 하는 주부가 되고 허블은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 케이티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 누그러지는 듯한 시대가 왔을 때 매카시 열풍이 불어닥치고 헐리우드의 10인 사건에 케이티가 결국 개입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사람의 정치관은 두 사람의 세계관이다. 
케이티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허블은 그래봤자 똑같은 인간들이고 누군가 희생타가 되어 감옥에 가고 삶을 잃고 그러다 설령 그들이 다시 복귀해 삶을 살아가더라도 추잡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로 부활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허블은 세상은 변치 않아 인간은 원래 그런거니까 – 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고 케이티는 우리는 늘 싸워야 하고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 
이 둘은 삶의 영역보다 사상의 영역이 훨씬 더 컸던 조합이다.

케이티는 허블을 만나기 전 생활인이 되기 위해 곱슬머리를 펴고 허블의 요구에 맞춰 정치적 행동도 줄이지만 정치는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다시 케이티가 나서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보수와 아메리카니즘의 아이콘인 허블은 케이티와 헤어지고 좋은 승용차를 타고 TV쇼의 작가가 된다. 케이티는 그 앞에서 반핵운동을 전개중이다. 머리는 펴지 않고 다시 곱슬머리인 채. 그들은 헤어진 대신 그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떠올렸다.
김주원은 허블과 유사한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에,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정치나 생활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백화점의 매출, 잘 나가는 인생에 관심이 있을 뿐.
뭐 길라임이 케이티를 반영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너무 가난해서 정치색채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매일 매일 먹고 사느라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시크릿 가든에 대조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갈 길을 인정하고 같이 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허블이 바로 미국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반영한 아이콘적인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90년대 최진실, 이후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심은하 등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의 아이콘 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고심했다.

트윗을 올려 의견을 받아본 바, 현빈, 이외수, 이효리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이번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딱 현빈이 분한 김주원 같은 아이들이 투표율 높은 지역에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는 매우 난감하다.

80년대의 대표주자는 반항아의 상징, 이덕화(지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최재성, 최민수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반항의 정서가 있었다. 연예인과 당대 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7080을 지배한 정서는 반항이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내리누르는 게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금은 풍족한 자들은 풍족하고 가난한 자들은 내몰리고 풍족한 것이 상징이 되고 뭇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줄줄이 쏟아지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패륜과 불륜이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와 곱상한 이미지의 이승기나 현빈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쌓아올린 부를 지키기 위한 보수층으로 포위되어 부유층이 아닌데도 거기에 멍청하게 끌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삼신할미 랜덤에 걸려 곱게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진보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좀 암담하다.
경쟁하고 떨어뜨리고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게 트렌드가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The way we were는, 묘연하게 행방을 감춘 것은 아닐까.

2011.8. 31.

그 바닥에 대해서

1.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보수언론에서 미친듯이 쏟아내고 있다.
9시 메인뉴스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역겹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 중요한 정권이다.

부산저축은행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물론 그들은 못된 교육감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니 들 생각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대가성으로 금품을 건넨 게 사실이라면 응분의 처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수사가 끝난 뒤 밝혀질 내용이다.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 했으니 기다리겠다.

법적인 함정에 빠져서 설령 구속이 되고 처벌을 받고 사퇴를 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당일날 2억원을 선의로 주었다고 밝힌 그 자세를 믿겠다.

오세훈으로 인한 후폭풍을 곽노현으로 덮겠다는 꼼수가 참으로 노골적이다.
박명기 후보자가 7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과 그의 법무법인이 바른이라는 것도 너무 빤해보인다.

처음 사건이 발표되었을 때,
애초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투표에 관련된 그 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바라서 곽노현을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관행일 수도 있고 그게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으므로.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곽노현의 편을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나는 곽노현을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자세를 잡기로 한다.

2.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에 반대했다.
그를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사돈이자, 순복음교회 집사인 강용석에게 그들은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초지일관 한나라당의 색깔을 명확히 표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3.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곽노현 사퇴를 부르짖거나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프레시안에서 조차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진중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군가는 교육감 직선제까지 손 보려 할 것이니 꼬투리가 잡힌 이상 어서 사퇴시키고 명확한 진보성향의 대타를 내세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과 함께 같이 승리하자. 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어준의 지적대로 먼저 쫄아서,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둘다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퇴는 본인이 직접 하거나 수사결과 자격이 박탈당했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용하고 싶지 않다. 법이 밝혀주거나 본인이 밝힐 것이다.

4.

일단 오늘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용석 의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고군분투 해주시기 바란다.
두달이 미처 못 남았다.

야권에서는 빨리 제대로 된 후보를 내서 선거전에 돌입했으면 좋겠다.
지금 곽노현을 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5.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은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깊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정권이다.
그래서 많이 배웠고 많이 읽었다.

가카의 꼼꼼한 배려와 국민교육에 대한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2011. 8. 31.

눈물에 대하여

술취해 들어온 남편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곧 잠들 그의 안경을 벗겨준다.

그가 말한다.
나는,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지금부터 굳게 맹세할꺼야.
나는 절대로,
눈물.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그의 말을 들으며
입을 열지 않고 말한다.

나는 울꺼야.
눈물이 강이 되도록 울꺼야.
내 몸안에 모든 물기를 다 짜내도록 울꺼야.

내 눈물로 강을 만들어 황천가는 배를 띄울꺼야.
슬렁슬렁 노 저어 훠이 훠이 웃으며 가시도록.
나는 내 눈물로 강을 이뤄 배를 띄울꺼야.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다지 참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가 헤아린다.
한낮의 정원에서 급작스레 슬픔이 탑이 무너지듯 내 몸위로 쏟아진다.
부디 고통이 적길,
부디 신음하지 않길.

나는 지금 연옥에 있다.
당신의 손을 꼬옥 잡고.

2011. 8. 30.

귀족주의와 트라우마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재기에 성공하고 그만이 가진 카리스마로 호랑이처럼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을 볼 때, 
임재범이라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인기를 얻고 원한다면 영웅도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걸 발견했다.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을 나는 세 가지로 보는데 

1. 재능이 출중하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변명이 가능한 치명적인 인격적 결함이 있을 것
2. 출생의 비밀을 비롯한 각종 파란만장의 인생 굴곡사가 있을 것
3.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임재범은 위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한 때 파란을 일으켜 요즘은 조연급으로 하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그러나 여전히 존재감이 대단하고 골수팬(나는 그를 믿어)이 있는 최민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은 3번.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있는 집 자식이라는 이미지, 부모가 뭐뭐 출신이다더라. 하는 이미지는 이 사회의 뿌리깊은 귀족주의를 반영한다. 

최근 복지 문제가 대두되면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보수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복지를 화두로 내세운 진보세력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듯 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민란을 거쳤고 가까운 과거에 동학혁명이나, 이차대전 이후 공산주의가 유입되면서 625 전쟁을 거쳐 빨간 완장을 찬 청년들이 지주새끼들을 모조리 몰살하자. 했다는 얘기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의 보수세력들은 가난한 자들이 일어났을 시에 자신의 생명과 가족 (삼족을 멸하리라에 상등한), 재산 모두를 위협받거나 박탈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개뿔도 없는 고졸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극심한 알레르기는 
내 윗사람은 당연히 나보다 “우수하고”가 아니라 나보다 “잘 사는 집안 출신이며”, 나보다 “많이 배웠으며”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의 우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찌보면 심하게 긍정적이고 자기 극복적이라서 (파란많은 역사의 항쟁과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거친 세대들이 갖는 “근거없는 자신감”의 일부겠지만)너의 능력따위는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있지만 너의 집안이나 너의 혈통이나 너의 20대 초반에 완성된 학벌따위, (물론 우월한 유전자로 인한 미려한 외모도 가끔 포함된다)는 내가 도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지배세력이 되려면 일반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특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너랑 똑같은 태생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라는 결과에 대해 
니가 뭔데 나랑 똑같은 주제에 내 위에 앉아있는거야!!? 라는 반응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타블로가 타진요에 의해서 겁나게 까일 적에 
타블로가 조금만 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면 저렇게 까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갈 기럭지와 전신성형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우월한 유전자 조합에 대해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연예인을 대하는 자세인 듯. 
(김현희도 그래서 용서한거냐? )

노무현의 최대 치적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됬다는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능력있었고 감성적으로 대중의 인기에 부합했으나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자가 아니다. 

그는 죽고 사라졌지만 그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저 사람 저렇게 우리가 변호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저 사람도 노무현처럼 삶을 마감하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하는 걱정. 
그래서 그 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봉화마을의 그를 떠올리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곽노현을 감싸려고 하고 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며 통곡을 한 들 무엇하겠는가. 

진보세력들의 큰 문제는 “유도리”라고 하는 지나친 관용인데,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 수꼴들은 그렇다 쳐도 (걔들은 재산을 위해 뭐든지 한다 : 보수와 수꼴은 다릅니다) 진보까지 그래버리면 안그래도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잔존하는 이 나라에서 힘을 얻기 힘들다. 

선거나 투표때마다 노란풍선 좀 그만 들고 나오고 (상징적으로) 노무현 밟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마라. 
진보가 보수층을 끌어안을 방법은 지못미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너희들에게 이만큼 몫이 떨어지도록 하겠다는 그들을 파악한 전략과, 이성적인 정책, 그리고 교활하고 영악한 작전이 필요하다. 

보수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소를 아파트단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진보들은 뭐하고 있나?

(진보가 진보인 거 같지도 않고 그저 야권이라고 하고 싶기도 하다만 일단 불편하니 진보라 쓰고)
진보니, 온건이니, 그저 야당이니, 노동이니 등등의 규합되지 않은 세력다툼과 맨날 단일화 후보 결정하다가 결국 피박 뒤집어쓰고 줄줄이 달려 들어가는 게 무슨 레파토리인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라. 

잘난아비 둔 덕에 좋은 혜택받고 자라 좋은 교육을 받은 자식은 결코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디딤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민앞에서 분노하고 읍소하는 거 걷어치우고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란 말이다. 
노무현을 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도 암담하다. 

지못미라는 이유로, 김대중보다 노무현을 더 살뜰히 챙기는(?) 행태도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그가 저승에서나마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만 징징대고 그만 매달리란 말이다.
2011. 8. 30. 

+곽노현 교육감 건에 대해선 상당히 유감이고 검찰수사발표의 시기적절성에 대해선 항간에 떠도는 얘기에 모두 동의. 
그러나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하고 싶진 않음. 
단지 이성을 잃고 비합리적인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