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역사는 나의 것이다

이미지

사람은 누구나 바닥을 보는 때가 있다.

자기 내면의 깊은 바닥을 치는 순간이 온다.

바닥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한 개인의 바닥은 더럽고, 추잡스럽고, 미련하고, 이기적이다.

더러운 것이 눈에 띄는 순간 덮어버리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한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한 사람의 내면의 힘은 변화무쌍하여, 언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아버리고 도망을 가기고 하고 언제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도 있다. 그 힘은 저것이 더러운 것은 사실이나, 나의 배설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온다. 말하자면, 내가 싼 똥을 보고, 저건 내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칭찬받는 사람이고 싶었으며, 남들에게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고, 의지가 강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나는 너처럼 하지 못할거야. 라는 찬사를 받고 싶었다.

 

5개월째, 내 자신을 완전히 해체하여 하나씩 뜯어보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싸갈기고 외면한 똥들은 어느 새 산을 이루어 나는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었고,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이 지저분한 바닥을 쓸고 다니는 동안, 하나씩 내가 버려둔 배설물들을 치우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게 가면을 뒤집어 쓰고 사는 동안 내 바닥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꽉 막힌 양재IC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훌륭했던가, 내가 잘 해냈던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과물을 선보이며 받았던 그 찬사들은 다 무엇이던가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모든 감정을 덮어주고 발버둥을 쳤던 거다.

그건 내가 훌륭하거나 놀라운 일을 해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칭찬을 받고, 어떻게 하면 인정을 받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 기술을 꾸준히 스스로 익혀왔기 때문이다. 썩어 문드러지는 내 감정도 나의 것인 것처럼, 그렇게 키워온 가면을 쓴 나의 기술도 나의 것이다.

 

버림받을까 두려운 것은 가장 큰 공포였으며, 역량을 인정받아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7살 무렵, 스탠드가 켜져 있는 어두운 방에 동생은 자고 있고 엄마는 오지 않던 그 밤에, 책상위에 올려놓은 새 신발을 보며 엄마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내내 벌벌 떨며 기다리던 그 기억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그 이전에도, 그 훨씬 더 이전에도, 나는 잘 해내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힘은 결국 나를 길렀고, 나는 지금 모두 잠든 내 집안에서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글을 쓰고 있게까지 만들었다. 공포와 위협도 나를 길러낸 힘이 된다. 그 역시 내 바닥에 숨어 있던 나의 것이므로.

 

나의 썩어버린 바닥에 사람들을 하나씩 끌어왔다. 아빠, 엄마, 남편, 동생, 딸, 아들을 끌어와 이 바닥이 이렇게 더러운 것을 좀 보라고, 나는 이 냄새를 견딜 수 없다고 그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신음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모든 것이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중에 평생을 보고 살아야 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관계를 부정하고 나는 내 바닥을 숨기며 우물 위로 올라가기에 급급했다. 그 간절함 역시, 나의 것이다.

 

내가 치우지 않은 바닥에서 내가 울부짖으며 바라봤던 사람들을 땅위로 하나씩 올려보낸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고, 또 몇 명이 더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씩 바닥을 청소중이다.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모든 문제도 나의 것이다. 모든 성과와 칭찬과 찬사도, 나의 것이다. 이 모든 역사는 나의 것이다.

2013. 5. 30.

을질하지 말자

을질하지 말자
갑질하지 말자는 말은 타인에게 하는 말이다. 강자가 강자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갑질하지 말자는 말은 교묘하게 자기가 갑이라는 착각을 나타내거나 갑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세등등하게 보이려는 요청이다.
스스로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안된다. 누군가의 갑은 누군가의 을이다.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의 사장은 직원에게 갑이지만 고객에게 을이고 백화점에게도 을이다. 백화점이 갑이라도 결국 업체를 상대하는 과장은 상사의 을이다. 사장은 주주들의 을이고 최고주식을 보유한 그룹의 회장만이 갑이다.
삼성전자의 사장도 어딘가에 부품을 보낸다. 그러면 그 사람도 을이 된다.

이 나라에 갑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갑질하지 말자는 그저 공허한 외침이고 부탁이다. 그보다는 주체적으로 을질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예전엔 그런 게 있었다.
장사꾼들도 손님들과 잘 싸웠다.
너같은 새끼한테 물건 안 팔아!
너 같은 손님 필요없으니 나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장님들이 있었고, 자기 직원을 보호하고 수모주는 손님을 내몰았다.

어디에서나 물건을 사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하는 습관이 있다. 아이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물건을 팔지 않거나, 여기 가게를 내지 않았거나,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면 내가 이 물건을 살 수 없을 것을 안다. 문을 열어줘서 고맙고 필요한 물건을 내주어서 고맙고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면 고마운 거 아닌가. 고맙다는 말은 10원도 들지 않고 나를 세워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손님은 주인에게 고마워 할 줄 알아야 하기에 주인은 손님에게 을이 아니라 갑일 수도 있다.
어느날부터 사람들이 눈앞에 이익을 쫒아 당장 내일을 생각하면서 내년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 순간에 갑을관계는 탄탄하게 반석을 다졌다.

그 때부터 무한친절이 생겼다.

티비가 고장나서 서비스를 받아야 되는데 기사가 안 온다면 티비를 고칠 수 없다. 어떻게 서비스기사가 마냥 을인가. 물건을 안 팔겠다면 필요한 사람은 살 수 없다. 대리점이 물건을 안 받겠다면 본사는 재고가 쌓인다. 왜 갑자기 을들이 무더기로 탄생했나.

오늘을 살아야 되는데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1년후를 봐야되는데 걱정하느라 아무 것도 못하면서 당장 내일을 걱정한다. 내년에 임대료가 오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내일 사고 싶은 물건을 생각하다 오늘을 보내는 삶. 수많은 을들의 탄생이다.

을로 사는 삶은 자존감의 추락이 필수라서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우울하다. 사람의 안정감은 좋거나 싫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크게 변함이 없어야 한다. 계약이 성사되거나 성과가 좋으면 잠깐 반짝 행복했다가 다시 우울과 자괴감이 온 몸을 휘감는 일이 반복된다.

경쟁자가 많다는 것이 몸에 배어 그렇다. 그건 실제적으로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나와 똑같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꺼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너같은 새끼한테 물건 안 팔아 꺼져 이 개새끼야 라고 외치는 장사꾼은 매력적이다. 사기꾼이라 볼펜을 갖다놓고 수성펜이라고 우기지만 않는다면 묘한 신뢰감이 생긴다. 뭔가 있어보이는 거다. 그게 사람의 “곤조”가 가져오는 힘이다.

판매직에 있을 때 절대 을이 되지 않는 언니가 있었다. 옷을 팔면서도 까다로운 손님에게 나하고 지금 장난하냐 협박도 불사했다. 정확하게 코디해주고 물건을 골라주던 그 여자는 자기 자존심이 있었다. 내가 골라주는 대로 입어봐 내가 말하는 걸로 사가봐. 그 여자는 불친절하다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40명 직원중에 언제나 판매1위였다.
재수없을 만큼 을이면서 갑인척 하던 그 사람에겐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건 약간의 허세가 가져오는 “뭔가 있어보이는” 신뢰감이었다.

세상의 모든 을들이 세상의 수퍼갑은 없다는 걸 명확히 곱씹으면서 세상의 모든 갑을관계는
그저 서류상의 편의를 위해 적은 조항이고 계약의 문제이지 그게 주종관계를 말하는 건 아닌데. 조금만 더 넓게 보고 스스로 을이기를 거부한다면 갑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리라 믿는데.

내가 .. 불가능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냥 을로 사는 게 편한 건 아니고?

2013. 5. 30.

검은 강이 터질 때

간혹 사람들은 악에 받쳐서 열나게 일을 하고 치열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고 그러면 복수가 가능할 것이라 믿기도 한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차 있는 원망과 분노는 절대 긍정적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설령 그가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게 된다 한 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게 되고, 재산을 많이 모았다 한 들 흉금을 터놓을 친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복수는 얄팍한 싸구려 유리 같아서 그 칼끝은 쉽게 부서지고 칼집은 지나치게 길어 제가 뽑은 칼에 제 발이 걸려 넘어지기 마련이다.

원망과 분노, 증오를 담은 가슴은 그 어떤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결정적으로 그 마음은 언제나 슬픔이 가득한 검은 강과 같아서, 쉽게 터져 행복을 완전히 잊은 채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 쓰고나니 참 할매같다…

저녁 설거지를 미뤄둔 9시.
2013.5.28.

피리부는 사나이, 깃발을 내려라.

진보나 보수는 성향과 철학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가치는 아니다.
단지 이 나라에서는 예외인 것이 보수를 자칭하는 것들이 파렴치범인 경우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인데, 진보를 자칭하는 것들 중엔 더 파렴치한데도 불구하고 사회 중심에 있지 않고 비주류로 비껴나 있기 때문에 덜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사회불만이 진보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회불만의 일부는 개인불만에서 출발해 죄책감과 공감능력으로 포장되어 발전할 때 타인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타인의 힘을 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설득이다. 설득은 논리와 감성이 고루 자격을 갖춰야 가능하다.
공감능력과 죄책감이 진보의 무기라면, 자수성가형 노력과 수치심이 보수의 무기다.
죄책감은 수치심보다 더 공감력을 이끌어내기 쉬운 집단의 성격을 띈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일로 전환되기 쉽다. 수치심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지만, 죄책감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보수적이다.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성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이다. 그런 이유로 진보는 늘 보수에 밀리는 바람이 되기 쉽다.

최근 들어 진보입네 하고 여러가지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 느낀다. 물론 나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을 거치기 전에는 그러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있었고 그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말하자면 나는 옳은 가치를 믿는 사람, 즉 나는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 여기서 비약된 논리는 나는 곧 “옳은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자기가 믿는 가치가 너무나 옳아서, 타인들의 의견- 반대파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들은 모두 미쳤고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며 그들은 모두 사리판단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진보는 진보가 아닌 자를 쉽게 욕하고 쉽게 밀쳐낸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진보가 쉽게 욕하는 “수꼴”과 다를 바 없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고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귀를 닫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무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귀를 기울여 듣고 반대진영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조근조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연대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자칫 잘 못하면 패거리를 형성하겠습니다. 가 될 수 있다.
우리 편이 되어주세요. 라는 문화는 김어준의 곽노현 쉴드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김어준은 바로 이런 식의 패러다임을 전복시켜버리는 가공할 능력을 지녔다. 우리끼리 편을 먹고 저들을 싸워 이기자. 라는 논리가 정당하게 들리는 건 그 때부터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를 치르고 대한민국에서 “진보”라 일컬어지는 진영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나라에서의 보수/진보 개념에 대한 논쟁은 일단 미루고 편의성을 위해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고 앉아 세상을 휘젓는 꼴이 보기 싫어 억울함이 하늘꼭대기까지 닿은 비새누리당진영이 외친 구호들은 한마디로 찌질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그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한 패이기 때문에. 라는 논조는 아무 동의도 얻어낼 수 없다. 이 나라의 반이상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평론가가 된 SNS 대한민국에서, 이제 그 자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한 때 나도 한 패거리였던 진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래서는 또 망하는 길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종북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도 외롭고, 우리도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함만 지르고 있다. 여전히 깃발을 높이 세워 북을 치며 전진한다. 그리고 소리 높여 구호만 외친다. 그들은 그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필패다. 그리고 몇 몇 진보의 패거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 부동층으로 옮겨가며 정치에서 멀어질 것이다. 깃발을 내리고 주저 앉아 귀를 열어라. 지금의 반 한나라당 정서는 여전히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떼로 보일 수 있다.
2013. 5. 27.

외로운 곁

“글자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게 아니고, 혼자 뗀 셈인데요. 4살 지나서 엄마가 디즈니 명작만화 전집을 사주셨어요. 처음 읽은 책이 신데렐라. 엄마가 그걸 읽어줬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번이거든요. 아마 몇 번 더 읽어줬겠죠. 하루는 다시 읽어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아, 그 때 4살쯤 맞아요. 엄마가 임신중이었어요. 뱃속에 동생이 있었으니까. 저보고 읽어준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야기를 맞춰보라고 하고 주무셨어요. 그래서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지어서 읽고 하다가 글자를 뗀 거 같아요. 그 때 그 책을 다 읽었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금성출판사 위인전집을 사줬는데, 24권짜리였거든요. 1권에 두 명씩 붙어 있는, 한 300페이지 조금 안되는 책이었어요. 그 책을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읽기 시작해서 다 읽었어요. 그 전에는 큰 집에서 안 본다고 버린다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얻어왔는데, 백과사전이 원래 검색기능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읽는 책인 줄 알고 다 읽은거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학교 들어가서는 교과서를 다 외워서 다녔구요.

“책을 읽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버려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방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가요?”

아 맞아요. 4살이 되기 전엔 소꿉장난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싫어했어요. 제 장난감에 흙이 묻잖아요. 아이들은 풀을 뽑아다 빻고 찧고 하면서 노는데 장난감에 물이 드니까. 그래서 밖에서 안 놀았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20원을 주는데, 그걸 가지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사요. 그리고 하루종일 그걸 오려요. 다 오리고 가지고 놀면 해가 져요. 그 종이인형은 박스로 들어가죠. 그럼 그걸로 유효기간은 끝난거예요.

“혼자 있었네요.”

예. 그러니까 집안이 폭삭 망해서 시골로 내려갔을 때,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들하고 못 어울렸어요. 그러니까, 제가 구경거리였거든요. 일단 제가 어릴 때 피부가 많이 희고, 엄마가 옷을 무척 중요시하니까, 무척 튀는 옷,고급스럽고 예쁜 옷을 입었을 거예요. 그 동네로 이사간 지 얼마 안되서 동네에 공유되는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눈을 들어보니까 동네 아이들이 저를 삥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은 하얗고 옷도 깨끗한 걸 입고, 그 동네 아이들하고 너무 다른 아이였던거예요. 그 때는 피부가 희면 무슨 병자처럼 생각해서, 마치 황순원 소나기의 여주인공같은 취급을 받았어요. 어디 아프냐고 묻고 사람들이. 학교에서도 백혈병 환자라고 소문나고 그랬어요.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는데. 친구가 없었네요.

하루종일 혼자 있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왜 나는 늘 혼자였던 걸까.

기억나는 친구도 없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안수련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학년 2학기때 전학을 갔다. 그 친구가 한국일보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을 내가 대신 받아 간직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모든 짐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기 전까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는 늘 아이들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는 지혜가 살고 있었고, 그 친구와 가끔 놀았지만, 지혜야 종이인형 사러 가자. 라고 그 집 문을 두드리다가 목사님인 지혜 아빠가 “너는 어떻게 매일 종이인형을 사러 가니??”라고 윽박질렀을 때, 그 날로 나는 지혜를 찾아가지 않았다.

특별한 아이로 길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는 너무나 특별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고, 그 아이들은 모두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반장도 줄곧 했지만, 누군가를 기다려 같이 학교를 가거나 하교길에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오는 건 초등학교 5학년때쯤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절친이라고 할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4학년때는 오후반일 때 용태라는 녀석과 매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겨루기 시합을 했다. 언젠가 학교 앞에 빚쟁이가 찾아온 이후로 부리나케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잠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5학년 때 따돌림을 극복하고, 그 아이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때쯤에, 아마 그 때부터 집에 누군가와 같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6학년 남자애와 시비가 붙어 격렬하게 몸싸움을 했고 피 터지게 싸워서 동네가 뒤집히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결국 그 싸움의 끝에 엄마가 야구배트를 들고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중, 다시 한 번 패거리에서 내몰리는 따돌림을 당했고, 나는 교회와 학생회 일에 충실했다. 친구는 없는데, 늘 반장이었고, 따돌림을 당했는데도 학생회 간부를 맡았다. 중학교때 가장 친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내몰린 이후로, 중학교 때 친구들은 고등학교때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따돌림 이후에 나는 언제나 커다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10명이 넘는 모임을 주도했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사람들은 내가 모두 즐겁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화끈하다고 생각했으나 미치도록 떠들고 난 공허함은 술 외에 다른 걸로 채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건 아마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며, 몇 번의 배신을 경험한 것 가지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 사진속에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리고 사진속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걸 깨달은 지 몇 년이 지나서였다. 요즘은, 사진속에 사람이 있거나,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찍기도 한다.

그 시절이 슬펐다거나, 참혹하다거나,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랬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참으로 외로웠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내 곁을 내어줄 줄 아는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신도,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행동도, ‘그래 너는 그 정도의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할테니.

더 나아지고 싶은 생각도,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인지 규정할 수 없기에 바라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지 않다.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 도배될 수 없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다는 것. 그저 이렇게 흘러왔고, 지금 여기 있다는 것 뿐이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해졌던 그 시간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서, 좋다고 느끼는 것 뿐일게다.

문제는 외로운 것에 익숙한 사람의 곁은, 언제나 춥다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의 주변에 맴도는 외롭지 않은 사람들도 금새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3. 5. 22.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다에 대하여.
이해하다.
그려 니 맘 안다.
理解。이치를 따져 파헤치거나, 남의 마음을 알아듣고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인다가 사전적 의미.
영어로는 understand.
아래에. 서다.
Understand를 적어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절대 시작조차 불가능한 일.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늘 알고 싶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했는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때, 혹은 말해 주지 못할 때도 알고 싶었어.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자기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알고 설명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대체 내가 상상하지 않는 일을 왜 저지르는지, 왜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해는 사랑과 존중이 시작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억지로 이해한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당췌 일베를 이해할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디선가 어그러진 분노와 원망을 특정한 이슈에 몰아내고 있을 뿐. 본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그게 스스로의 영혼을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 모를 뿐. 그들이 어디서부터 억울했는지, 어디서부터 화가 났는지, 그 방법을 스스로도 찾지 못하고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 현상.
그래서 극도의 찌질함으로 무장하고 키보드 앞에 노예가 된, 사회적 병리현상.

세스코가 처리할 수 있을까.

2013.5.22.

저 새끼는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1930년대생 어르신들을 만날 일이 생겼다.

오늘 처음 자리를 가졌고, 내 딴에는 그 분들께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성지게 펼쳐주시지 않으실까 기대도 했으나 기대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단답형으로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고 가장 연세가 많으신 구순의 할머니는 한맺힌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1930년대.

이 분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일본제국은 곤고했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국가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나 개념이 생기기 전에 일본이름이 주어졌다. 학교에 가면 일본어를 배웠으며 일본선생에게 일본노래를 배웠다. 불과 여섯 살, 일곱 살, 많아봐야 열 살인 아이들에게 왜 일본이름을 썼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1930년대생, 그들의 부모들은 190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일제침략을 직접 목도한 세대일 것이다. 그들이 새파랗게 두 눈을 뜨고 국권이 침탈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나라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내부가 얼마나 썩어들어갔는지 이미 다 체감하지 않았을까.

한 국가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는 것은, 강력한 무력과 고도의 심리전이 같이 동반된다 하더라도, 어딘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물샐 틈이 없는 집구석에 도적이 들어오진 않으니. 어쩌면 일제시대의 개막을 환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점령을 환영한 자가 과연 친일이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폭압과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어찌됬건 무엇이 됬건 “새로운 것”이 도래하길 기다리지 않았을까 말이다. 물론 친일의 문제는, 폭력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동조했다는 점이 크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 정치적으로 독립을 주창하고 굳게 맞서 싸웠어야 하는 것은 국가구조를 지켜내는 명목으로 녹을 먹는 자들이지, 논밭에서 뒹굴고 해지면 피곤해 곯아 떨어지는 백성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30년대생.

이 분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학교를 다니고, 국가와 민족의 사전적 정의를 알게 될 때쯤에 해방을 맞이 하게 된다. 그리고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1945년 8월에,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 것인가.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웠던 일본어와 불과 20년이 안되는 세월동안 정겹게 써오던 두 개의 이름들, 그 중의 하나를 처참하게 밟아버리고 정들었던 일본인 선생과 이웃들이 (모든 일본인 개개인이 제국주의인 것은 아니므로) 있었다 한들 모두를 부정해야 하는 역동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매일 보고 다녔던 일장기를 불태우고 저들은 모두가 다 악마와 같은 것들이라고 한 순간에 세상이 뒤집혔을 때, 10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태평성대에도 자기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던 순간,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이들은 문맹이 된다.

배운 것은 일본어요, 썼다가 불이익을 당한 것은 조선어였으니, 그들이 조선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돌아왔을 때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이리저리 흔들렸고, 곧 전쟁이 터져 피란을 가거나 숨어 지내거나 전쟁터에 나가거나 살아 있기 위한 시간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무렵, 피폐해졌거나, 혹은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벌어, 먹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악착같이 조선말을 다시 익히고 갈고 닦고 학교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20세기만 그랬던가, 그 때 동아시아만 그랬는가.

인간은 그저 큰 물결에 휩쓸려 흘러 흘러 떠내려 간다. 그 중에 누가 더 근력이 좋아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끌어안는지, 그 통나무 위에 떠내려가는 누구를 건져 올리는지, 어떤 사람은 떠내려 가는 돼지를 실어 올릴 수도 있고 거센 물살 속에서도 실속 차리는 인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힘에 부쳐 물밑으로 가라앉는 자도 있다.

물길은 끝없이 흐르고 우리는 언제 헤엄을 치고 언제 고개를 들며 언제 숨을 쉴 것인가 결정하며 떠내려 간다.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할 것인가, 같이 죽기를 불사할 것인가 말이다.

소용돌이 치는 물결, 아래는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흙탕물속에서 끝없이 내몰리고 휘몰아치는 일. 그런 자아들이 모여, 타인은 과연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한반도가 3면이 바다인데, 그 모든 바다를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의 모든 인간은 중앙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모두가 사대문안에 모여, 다른 놈은 어떻게 담을 타고 오르는가,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어떤 집단도 정당한 제도를 만들어 번호표를 끊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게 되는 정서의 출발.

그건 바로 “저새끼는 어떻게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는거지?” 라는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2013. 5. 20.

일본극우주의자들의 망언 및, 일베충 광주모독 때매 매우 속이 시끄러운 2013년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