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털끝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이따 회의에 오시죠? 라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느릿한 억양으로 말하는 이 남자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이었다. 매우 지적으로 보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지적이라기 보다 의뭉스럽다는 말이 걸맞은 사람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길게 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굳이 길게 보지 않아도 당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소집해 달라고 한 회의였고 그들은 그 책임을 다 했지만 책임이 분산되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이 누락되는 법이다. 누군가 연락을 했겠지. 그 사람이 연락을 했겠지, 저 사람이 통화했겠지.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나. 통화했다면서 무슨 말을 한거야. 사람들의 책임은 핑퐁처럼 오고 간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아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차장에 놓인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선생님은 옆에 탔다. 교실에서 나를 가르치지 않아도 나에게 스승이면 그걸로 선생이 된다.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속도계 앞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내 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어느 날부터 글자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다. 잘 안된다는 것이다. 찍고자 하는 자음의 좌측 상단 30도 방향에서 입력을 해야 하는데 맨 왼쪽에 쏠려 있는 자음은 좌측 상단이 없다. 그게 네비게이션의 끝이니까. 휴대폰을 속도계에 올려놓으면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내가 하루를 사는 일의 절반이다.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읽고 쓴다. 저열하고 가볍고 속된 글이나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즐거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관계의 단절, 내가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앉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을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 관계의 허기는 마치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옥의 병에 걸린 듯 하다. 무엇을 내어주지 않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단절되고 분절되는가. 삶은 뚝뚝 끊긴 채 길에 떨어졌다.

 

한 마리, 두 마리, 어쩌면 반마리, 또 다시 한 마리, 이번에도 반 마리.

목적지까지 왕복으로 70km, 오고가며 길바닥에 죽어서 터져 있던 짐승들이 일곱 마리가 넘는다. 가는 길에 너댓마리를 봤고 오는 글에 두 세 마리를 봤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반마리처럼 보였다. 붉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체를 보고도 나는 달려야 했다. 그 길을 지나치던 최초의 충돌자도 살아 있는 짐승과 눈을 마주쳐도 달려야 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과연 변명이 되는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고. 눈을 번쩍이는 작은 짐승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내 뒤에 오는 사람의 위험을 감수할 의무가 나에겐 없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이며 제한 속도는 시간당 70km 이거나 110km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속도위반 단속구간이 아닌 곳에서 많은 차들이 120km를 넘게 가속페달을 밟곤 한다.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따위는 고려할 바가 아니다. 차들은 빨리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침없고 싶어서 달린다. 앞 서 가는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운전을 할 수 없다. 앞서 가는 차와 내 곁을 치고 들어오는 차는 그저 기계다. 사람이 운전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으면 그만이다. 길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어디 짐승뿐인가. 사람도 바다에 산 채로 수장시키는 마당에, 고양이따위에게 줄 동정심이나 남아있긴 한걸까.

펄덕이며 숨쉬던 생명이 무력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고자 한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낯선 풀도 독을 뿜어내듯 움직이는 동물도 모두 독을 품고 산다. 하악. 하고 이빨을 드러내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하악, 하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짐승만의 일은 아니다.

나와 감정적으로 엮일 일이 없는데 한 남자가 그 오후에 이를 드러냈다.

뭐하는 짓인가.

나는 가만히 서서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그 남자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었으나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의 몸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죽여버릴까.

내가 감히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있나. 할 수 없어도 문장을 뱉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내가 설령 누군가에게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과연 그는 가만히 있기나 했나. 폭력. 죽여버릴까에서 비롯되는 폭력, 나에게 이를 드러내는 자의 이를 몽창 뽑아버리고 싶다는 건 분노의 감정을 나에게 전이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불쾌하다는 이유로. 너의 분노가 나의 감정에, 나의 삶에 개입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이 번잡함.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매우 복잡한 구조.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분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를 존중해 달라고 하는 욕구는 대체 왜 일어나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해주길 바랐다. 존중이라는 것은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말을 하며 때로 두 손을 모으기도 하고 내가 털끝만큼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히 여길 줄 알길 바랐다. 왜 그는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나. 나의 삶의 일정부분을 그에게 소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길 바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소비되는 나의 감정과 시간은 원래 내 것이므로. 내 것을 너에게 딱 고양이 털끝만큼 내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워하라. 당신은 나의 수명을 딱, 고양이 털끝만큼 가져갔으므로.

 

내가 내어준 고양이 털끝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가져가고 그는 나에게 이를 드러내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분노를 전이시켰다. 분노를 고스란히 떠안고 삭히고 원인을 찾는 시간을 그가 강요하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나의 수명의 일부를 그가 가져갔다. 아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었나. 그가 나에게 강요한 분노의 용량이 고양이 털끝을 넘어 개똥만한 것이었는데 그 개똥만한 크기의 예측불가로 인해 나는 소똥만한 수명을 단축시켰다.

 

죽어버린 짐승의 사체를 고스란히 목도하며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타인의 분노를 떠안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길에 깔려 죽은 고양이만큼 당신은 숭고하게 살았는가 묻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내내 분노를 전가했다는 이유로 씩씩대고 내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던 나는, 사람들을 피해 냇가로 도망치는 작은 짐승만큼 충실하게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삶을 보존하는 방법에 집중하기에 우리는 너무 헐렁하게 지낸다. 눈 감고 외면하면, 그만인 것들이 많다는 건 내 눈이 그만큼 헛 것이라는 얘기일까.

 

2014. 7. 15.

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점검하는 것들 중에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집단이 힘을 모아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게으르고, 안주하길 원하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건, 생존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운 일이고, 스트레스고, 도전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게 좋아.” 라는 건 그 바닥에 터져 나오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끝없이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구석에 몰리고, 위기에 봉착하면 힘을 발휘한다. 안전한 상태에서 굳이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무엇일까. 위기라는 건 생계나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서, 자존감,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에도 위기는 찾아오곤 한다.

“에이 썅 내가 본때를 한 번 보여주겠어! ”
이게 바로 자존감의 위기를 맞이할 때 하는 말들일게다.

2.

올 해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든 역동의 이유를 들여다 보기도 했고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날이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는 듯 한데, 이런 건 참 위험한 일이라, 섣불리 나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정으로 발휘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열며
“삶은 치열해야 한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적은 게 20여년이 되었다.

어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살지 말자.
지나치게 치열하게 굴지도 말자.
힘을 차곡차곡 쌓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변함없이 버티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정말 매년 다짐처럼 치열하게 살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삼십대는 그렇게 살면서 바닥을 굴러보는 게 나았을 게다.

인간의 숭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쓰레기장에서 재활용을 줍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만났던 YMCA 꿈프로젝트 친구들에게 마무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한없이 악랄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일 수 있으나, 또 그 똑같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숭고함은 신과 닿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3.

딸아이가 낮에 절친이라 하기 어려운, 아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실종된 지 3주가 됬다는데 소식도 없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인데 두루두루 아이들과 친하지만 딱히 친한 친구는 없으며 가정환경도 복잡한 것 같다 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배타러 갔을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에?? 새우잡이?” 라고 대답하는 아이한테
“뭐 세상만사 귀찮고 정붙일 사람도 없고 배타고 돈 벌고 그런 생각 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냐.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아이는 다른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는데 우리는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 이야기까지 발전했다.
딸아이는 “되게 열심히 살고 훌륭한 아이들이 있는데 식구들 때매 신세 망치는 것 같은 애들이 꼭 있어. 걔들은 그런 가족이 없으면 더 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하길래
“그런 가족이 있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훌륭해 지는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날 봐라. 내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막 존나 우아하고 선량한 집구석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엄마가 지금 이만큼 왔겠냐?”
아이는 피식 웃었다.

4.

원인을 찾는다는 게, 찾다 보니 원망이 쌓이고 그게 분노가 되고 되려 홧병이 되어 덮쳐 오기도 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방법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해결방법을 찾기 전에 너무 쇼킹해서 눈은 멀어버리고 정신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몰랐던 건 약으로 때우면 되지만 알게 되면 개복을 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잘도 갖다 붙이고 있다)

5.

암튼 그랬다.
오늘도, 어제도 나는 매일 매일 사람구경을 한다.
한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서.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왜 엄마가 안 오지. 하고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지어내어 훌쩍이고 있던 세상 모든 늙어버린 아이들에 대하여.

오늘도 내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치덕치덕하게 끈적한 크림을 바르는 동안 “엄마 안아줘.”를 반복해서 옹알거리다 잠든, 서캐낀 대구빡의 내 새끼에 대하여도.

+ 요즘들어 자꾸 의심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내가 믿어온 가치관, 옳다, 아니다. 라고 판단했던 그 당시의 생각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때도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두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봐도 그렇게 볼 만한 사안인가. 하는 것들이다. 흠.

+ 그래서 내가 간혹 탈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치관의 전복,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부정. 그게 가져오는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3. 11. 18.

어느 하루의 일기

#1.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야. 너 그런 거 알아?
여기가 그냥 낭떠러지라고. 발 한 번 헛디디면 죽는 거란 말야.
#2.
언제 힘들지 않은 적 있었나 잘 생각해보아.
그런 일은 없었지. 그저 다른 것으로 덮으면서 지내왔을 뿐.
힘겨운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드문드문 몰려오기도 했을 뿐.
그 때 그 때 그 일들을 덮을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서 늘 덮으며 걸어왔지.
때로는 폭발을 했고 때로는 영원히 잊혀지는 듯 보였어.
뱃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들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건 잘 익어서 튀어나오기도 했어.
꼭 나쁜 일들만 벌어지진 않았지만, 잘 감추고 있던 걸 거꾸로 토해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3.
언제나 “힘”을 이용했군요.
그렇다.
물리적인 힘, 근력뿐 아니라, 언어가 통하는 세상에서는 언어를,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서는 시선을, 권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권력을, 언제나 장악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기 원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땅따먹기였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화가 났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물건을 배열하고 언제든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두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일련의 통제과정이라고 봤을 때, 내 뜻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뜻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절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세상은 어긋나고 이지러졌다. 계획을 세우라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인생의 계획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비아냥거렸다. 세상일은 절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박탈감을 가져왔고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통제를 해야 했다.
그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끝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남다른” 자가 되어야 했어요. 눈에 띄어야 했고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상이 우스운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도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역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 무엇이 되더라도 바닥의 돌맹이라도 주워 던져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가을이 되었다.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일은 덜하겠지.
문득 문득 영혼이 내 어깨를 친다. 이봐. 알고 있지? 라고.
2013. 10. 2.

내게 거짓말을 했던 시간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심하다는 건 어떤 느낌이죠?
언제나 단순한 표현에 대해서 끝없이 캐묻는게 정신분석이다.
음. 그건 마치 뭐랄까..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같이 이야기하고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이게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구요. 약간 뭐랄까.. 유아틱? 하다는 느낌이죠. 그러니까 심심해~ 라고 하는 건 마치 저희 아들이 집에서 분명히 놀고 있는데도 뭔가 더 재미난 거를 찾고 싶다고 말할 때,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같은 건데요.
아무튼 저는 심심하다는 말을 써보거나 누구에게 말해보거나 문장이 되어서 머릿속에 떠돌아 다녔던 기억도 없거든요. 무척 생소한 느낌인데 그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알긴 아는데 뭔가 제가 꺼렸던 표현이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안 써 본 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심심하다 외롭다 무섭다 세 가지 정도. 그 중에서 외롭다, 라는 말은 글에는 많이 썼을테고 무섭다 라는 건 누가 어떤 게 제일 무섭냐고 물었을 때 글쎄, 난 별로 무서운 건 없는데.. 라고 서슴없이 대답한 편이었죠. 심심하다는 건, 심심해 본 적이 없다는 건데 늘 뭔가.. 하고 있었고 할 게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제 느낀 그 심심하다 라는 감정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것과,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듯한 제 자신에 대한 허가? 같은 건데.. 음.. 그러니까 이건..
투정이죠. 네. 투정같은 거요. 애들 투정.
– 그럼 기억이 있을 때부터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애교를 부려서 뭔가를 더 얻어낸다거나 투정을 부린다거나 하면.. 맞으니까.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맞는거죠.
징징대면 맞고 화내면 맞고 울면 맞고 투정부리면 맞고 울음 참으려고 애쓰고 있으면 그게 더 꼴뵈기 싫다고 맞고 뭔가 되게 경직된 것에 익숙했달까.
모든 관계의 의사소통은 사무적이었다. 용돈을 더 받기 위해서 혹은, 필요한 학용품을 찾기 위해서 다 쓴 학용품의 증거물을 제출하고 16절지 종이에 청구서 라고 적어야 했다. 연필 12자루를 다 사용하였으므로 새로 한 다스가 필요합니다. 이에 용돈 1200원을 청구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1200원을 줬다.
무척 권위적이고 사무적이면서, 약간 군대식 같기도 하네요. 라는 말에 기억을 더 더듬어본다.
경찰대를 가라는 얘기도 하셨고, 여군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셨죠. 단순히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보다는 어떤 힘에 상징에 대한, 로망같은 게 있지 않으셨을까 해요. 군대라는 강한 조직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랄까. 그런 자리에 제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심심해, 무서워, 겁난다, 라는 말을 써보지 않았던 3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무섭다라는 말을 작년부터 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로는 “나 오늘 삐짐” 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나이값 못하고 삐진다 라든가, 무섭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였다는 것을 늘 잊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 때는 감정을 표출하기만 하면 폭력이 들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생존이 더 급했고, 그게 더 절박해서 모든 것을 닫기 시작했고, 닫다 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 완전히 막혀버린,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 그런 정서를 느낀다는 건, 회복이 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보이네요.
우리 자매의 어린시절을 회고할 때 엄마는 늘 너희들은 말을 참 잘 듣는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늘 덧붙였다. 니가 질질 짜는 거 빼고. 물론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동생은 말이 늦었다. 7살이 되어서야 겨우 한 문장을 말할 줄 알았다.
나는 내 동생이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을 지나치게 잘 그려 이상한 천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동생은 감정을 몸과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걸 그림으로 풀어낸 것 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감정이 복잡하여 언어보다 그림이나 노래로 더 먼저 표현하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의 표출이었다.
돌아오며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라고.
성격이 좋다. 품이 넓다. 대인배다. 그릇이 넓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고 그런 칭찬은 그런 행동을 강화시켰다.
그런데도 문제는 다 풀리지 않았다.
단순히 어린 시절에 감정표출을 하지 못해 성격 좋은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내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떠올리는 나를 친구가 발견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집에 들어오기 귀찮아 하는거 같은데 피곤하겠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어쭈 어디 외박을 하려고 감히.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그건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거잖아. 자기 감정은 뒤로 제껴놓고.”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사람은 남의 감정을 빨리 읽어내는 능력이 발달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나는, 내 감정은 일단 뒤로 제끼고 남의 감정을 먼저 읽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걸 그 친구의 발견으로 깨달았다. 그게 며칠 전이다.
그 한 마디로 많은 문제가 갑자기 풀렸다.
힘없고 약한 어린 아이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거나 생명의 위협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오는 와중에 책임질 것이 늘 있었다.
그럴 때 내가 택한 방법은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어 벌어지는 감정의 교류를 먼저 수습하는 일이었다.
나의 감정은 뒤로 제쳐 놓아야 화가 나서 나를 위협하는 상대에게서 나를 보호하고, 그리고, 나의 동생을 보호할 수 있었다.
언제나 돌아서서 다시 생각하면 내가 화를 냈어야 하는 정당한 부분에서 화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늘 깨닫곤 했다.
그래서 억울했다. 왜 그 때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이런 것들은 내가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서 조금씩 해결되었지만, 지금도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 습관은 쉽게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살과 감기를 앓았다. 정신분석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의 감기몸살도 앓지 않았다.
이 날 나는 그 간 내가 해마다 앓았던 몸살감기들이 쉬고 싶은데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쉬면 안된다는 것. 쉴 수 없었다. 내 일기장의 첫 머리는 늘 “삶은 늘 치열해야 한다” 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내 마음의 바닥에서 요동만 치다가 겉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감정들은 그 날의 일기가 되었고 그 날의 글이 되었다.
때로는 사진이 되었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면 그게 꿈이 되었다.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 꿈속에는 하루종일 미뤄두었던 내 감정들이 총천연색으로 스펙타클하게 펼쳐지곤 했다.
잠은 언제나 모자랐고 꿈은 언제나 생생했다.
30년이상 묵은 감정들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는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낮에도 끝없이 백일몽을 꾸고 하루 종일 허공을 헤맸다.
꼭 이렇게 불규칙한 잠의 원인들이, 단순히 당시의 환경이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30년만에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도 나처럼 꿈을 잘 꾸는 사람이며, 그 역시 총천연색으로 된 꿈을 주로 꾸며, 꿈을 메모하기 위해 곁에 펜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론은 한 가지 원인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적용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 단 한 가지의 환경적 원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내가, 더 이상 표출되지 못하는 감정들이 내 안에서 좀비처럼 나를 거꾸로 잡아먹는 일을 그만두려면 이제부터라도 꺼내놓아야 하기에, 아마 그래서 작년엔 트위터에서 그렇게 정치인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던  것이다. 대상을 압축시켜 원망을 쏟아내면 어느 정도 급한 소갈은 가능하므로.
분노보다도, 가볍게 웃을 줄 아는 감정부터 연습하기가 쉽다. 그게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좋을 것이다.
웃기면 웃고, 내가 크게 웃는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제는 집에서 크게 웃고 가볍게 깔깔대고 아이를 간지럽히고 하릴없이 누워있는 연습도, 하고 있다.
이야기너머 자기역사쓰기 특강을 하셨던 “김민영”선생님이라는 분이 자기 역사의 글 맨 앞에 이런 소제목을 달았던 게 기억난다.
마흔 – 이제는 솔직해야 할 시간.
내년에 마흔이다. 나 역시,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 지기 위해, 서른 아홉을 걷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2013. 6.30.

이 모든 역사는 나의 것이다

이미지

사람은 누구나 바닥을 보는 때가 있다.

자기 내면의 깊은 바닥을 치는 순간이 온다.

바닥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한 개인의 바닥은 더럽고, 추잡스럽고, 미련하고, 이기적이다.

더러운 것이 눈에 띄는 순간 덮어버리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한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한 사람의 내면의 힘은 변화무쌍하여, 언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아버리고 도망을 가기고 하고 언제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도 있다. 그 힘은 저것이 더러운 것은 사실이나, 나의 배설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온다. 말하자면, 내가 싼 똥을 보고, 저건 내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칭찬받는 사람이고 싶었으며, 남들에게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고, 의지가 강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나는 너처럼 하지 못할거야. 라는 찬사를 받고 싶었다.

 

5개월째, 내 자신을 완전히 해체하여 하나씩 뜯어보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싸갈기고 외면한 똥들은 어느 새 산을 이루어 나는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었고,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이 지저분한 바닥을 쓸고 다니는 동안, 하나씩 내가 버려둔 배설물들을 치우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게 가면을 뒤집어 쓰고 사는 동안 내 바닥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꽉 막힌 양재IC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훌륭했던가, 내가 잘 해냈던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과물을 선보이며 받았던 그 찬사들은 다 무엇이던가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모든 감정을 덮어주고 발버둥을 쳤던 거다.

그건 내가 훌륭하거나 놀라운 일을 해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칭찬을 받고, 어떻게 하면 인정을 받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 기술을 꾸준히 스스로 익혀왔기 때문이다. 썩어 문드러지는 내 감정도 나의 것인 것처럼, 그렇게 키워온 가면을 쓴 나의 기술도 나의 것이다.

 

버림받을까 두려운 것은 가장 큰 공포였으며, 역량을 인정받아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7살 무렵, 스탠드가 켜져 있는 어두운 방에 동생은 자고 있고 엄마는 오지 않던 그 밤에, 책상위에 올려놓은 새 신발을 보며 엄마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내내 벌벌 떨며 기다리던 그 기억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그 이전에도, 그 훨씬 더 이전에도, 나는 잘 해내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힘은 결국 나를 길렀고, 나는 지금 모두 잠든 내 집안에서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글을 쓰고 있게까지 만들었다. 공포와 위협도 나를 길러낸 힘이 된다. 그 역시 내 바닥에 숨어 있던 나의 것이므로.

 

나의 썩어버린 바닥에 사람들을 하나씩 끌어왔다. 아빠, 엄마, 남편, 동생, 딸, 아들을 끌어와 이 바닥이 이렇게 더러운 것을 좀 보라고, 나는 이 냄새를 견딜 수 없다고 그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신음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모든 것이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중에 평생을 보고 살아야 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관계를 부정하고 나는 내 바닥을 숨기며 우물 위로 올라가기에 급급했다. 그 간절함 역시, 나의 것이다.

 

내가 치우지 않은 바닥에서 내가 울부짖으며 바라봤던 사람들을 땅위로 하나씩 올려보낸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고, 또 몇 명이 더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씩 바닥을 청소중이다.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모든 문제도 나의 것이다. 모든 성과와 칭찬과 찬사도, 나의 것이다. 이 모든 역사는 나의 것이다.

2013. 5. 30.

외로운 곁

“글자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게 아니고, 혼자 뗀 셈인데요. 4살 지나서 엄마가 디즈니 명작만화 전집을 사주셨어요. 처음 읽은 책이 신데렐라. 엄마가 그걸 읽어줬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번이거든요. 아마 몇 번 더 읽어줬겠죠. 하루는 다시 읽어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아, 그 때 4살쯤 맞아요. 엄마가 임신중이었어요. 뱃속에 동생이 있었으니까. 저보고 읽어준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야기를 맞춰보라고 하고 주무셨어요. 그래서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지어서 읽고 하다가 글자를 뗀 거 같아요. 그 때 그 책을 다 읽었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금성출판사 위인전집을 사줬는데, 24권짜리였거든요. 1권에 두 명씩 붙어 있는, 한 300페이지 조금 안되는 책이었어요. 그 책을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읽기 시작해서 다 읽었어요. 그 전에는 큰 집에서 안 본다고 버린다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얻어왔는데, 백과사전이 원래 검색기능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읽는 책인 줄 알고 다 읽은거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학교 들어가서는 교과서를 다 외워서 다녔구요.

“책을 읽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버려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방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가요?”

아 맞아요. 4살이 되기 전엔 소꿉장난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싫어했어요. 제 장난감에 흙이 묻잖아요. 아이들은 풀을 뽑아다 빻고 찧고 하면서 노는데 장난감에 물이 드니까. 그래서 밖에서 안 놀았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20원을 주는데, 그걸 가지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사요. 그리고 하루종일 그걸 오려요. 다 오리고 가지고 놀면 해가 져요. 그 종이인형은 박스로 들어가죠. 그럼 그걸로 유효기간은 끝난거예요.

“혼자 있었네요.”

예. 그러니까 집안이 폭삭 망해서 시골로 내려갔을 때,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들하고 못 어울렸어요. 그러니까, 제가 구경거리였거든요. 일단 제가 어릴 때 피부가 많이 희고, 엄마가 옷을 무척 중요시하니까, 무척 튀는 옷,고급스럽고 예쁜 옷을 입었을 거예요. 그 동네로 이사간 지 얼마 안되서 동네에 공유되는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눈을 들어보니까 동네 아이들이 저를 삥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은 하얗고 옷도 깨끗한 걸 입고, 그 동네 아이들하고 너무 다른 아이였던거예요. 그 때는 피부가 희면 무슨 병자처럼 생각해서, 마치 황순원 소나기의 여주인공같은 취급을 받았어요. 어디 아프냐고 묻고 사람들이. 학교에서도 백혈병 환자라고 소문나고 그랬어요.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는데. 친구가 없었네요.

하루종일 혼자 있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왜 나는 늘 혼자였던 걸까.

기억나는 친구도 없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안수련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학년 2학기때 전학을 갔다. 그 친구가 한국일보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을 내가 대신 받아 간직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모든 짐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기 전까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는 늘 아이들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는 지혜가 살고 있었고, 그 친구와 가끔 놀았지만, 지혜야 종이인형 사러 가자. 라고 그 집 문을 두드리다가 목사님인 지혜 아빠가 “너는 어떻게 매일 종이인형을 사러 가니??”라고 윽박질렀을 때, 그 날로 나는 지혜를 찾아가지 않았다.

특별한 아이로 길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는 너무나 특별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고, 그 아이들은 모두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반장도 줄곧 했지만, 누군가를 기다려 같이 학교를 가거나 하교길에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오는 건 초등학교 5학년때쯤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절친이라고 할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4학년때는 오후반일 때 용태라는 녀석과 매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겨루기 시합을 했다. 언젠가 학교 앞에 빚쟁이가 찾아온 이후로 부리나케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잠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5학년 때 따돌림을 극복하고, 그 아이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때쯤에, 아마 그 때부터 집에 누군가와 같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6학년 남자애와 시비가 붙어 격렬하게 몸싸움을 했고 피 터지게 싸워서 동네가 뒤집히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결국 그 싸움의 끝에 엄마가 야구배트를 들고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중, 다시 한 번 패거리에서 내몰리는 따돌림을 당했고, 나는 교회와 학생회 일에 충실했다. 친구는 없는데, 늘 반장이었고, 따돌림을 당했는데도 학생회 간부를 맡았다. 중학교때 가장 친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내몰린 이후로, 중학교 때 친구들은 고등학교때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따돌림 이후에 나는 언제나 커다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10명이 넘는 모임을 주도했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사람들은 내가 모두 즐겁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화끈하다고 생각했으나 미치도록 떠들고 난 공허함은 술 외에 다른 걸로 채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건 아마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며, 몇 번의 배신을 경험한 것 가지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 사진속에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리고 사진속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걸 깨달은 지 몇 년이 지나서였다. 요즘은, 사진속에 사람이 있거나,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찍기도 한다.

그 시절이 슬펐다거나, 참혹하다거나,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랬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참으로 외로웠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내 곁을 내어줄 줄 아는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신도,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행동도, ‘그래 너는 그 정도의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할테니.

더 나아지고 싶은 생각도,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인지 규정할 수 없기에 바라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지 않다.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 도배될 수 없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다는 것. 그저 이렇게 흘러왔고, 지금 여기 있다는 것 뿐이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해졌던 그 시간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서, 좋다고 느끼는 것 뿐일게다.

문제는 외로운 것에 익숙한 사람의 곁은, 언제나 춥다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의 주변에 맴도는 외롭지 않은 사람들도 금새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3.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