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17.

어쩌다 노인복지관 수업을 맡게 되어 5주차의 강의를 끝냈다.
사실 강의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내가 이 어르신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그 분들도 뭘 배울 형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한 시간 가량 그 분들이 하나라도 기억을 살려내고 그 기억을 말로 표현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첫 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이 길어지는 것을 기다리지도 못하시던 분들이 차츰 차츰 순서대로 이야기도 하시고 남의 얘기도 듣기도 하시고 적당한 추임새를 넣게도 되셨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놀랍다고 했고 나 역시 빠르게 적응하시는 어르신들에게 가능성을 보았다.
처음엔 11시부터 40분 남짓 진행되다가 식사하러 가야된다고 자리를 떠버리시는 분들이셨는데 우리 한 시간 일찍 시작합시다 라는 어르신들의 제안에 10시에 시작에 30분은 워밍업으로 간단한 신체놀이를 하고 (이 부분은 다른 분께서 진행) 나머지 1시간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라는 질문에 글쎄요. 하고 어르신들이 말문이 터지던 순간의 몇 가지 사례를 들었더니 듣던 분께서 “자랑할 수 있는 걸 끄집어내셨군요.” 라고 하셨다.

오늘은 내가 맡은 강의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 오후까지도 대체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자랑할 수 있는 걸 말할 기회”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내가 준비한 것들은 사라진 직업에 대한 것이었고 “제가 잘 모르니 얘기해주세요” 라며 하나씩 하나씩 물어나갔다. 사실 정말로 몰랐다. 내가 똥지게가 뭐고 물지게가 뭔지, 신기료 장수가 뭐며, 가마니를 어떻게 짜는지 알게 뭐겠나.

오늘은 11시 40분이 될 때까지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한 아버님은 노래 한 자락 해주겠다며 해방때쯤의 가사로 추정되는 노래를 불러주시고 자리를 뜨셨다.
이가 거의 없어 가사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후반부의 가사는 이런 것이었다.

재주 좋은 제트기랑 (중략)
한시바삐 한국땅에서 주저앉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자유의 평화를 이제 볼까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과의 괴리는 엄청났다.
세월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도 엄청났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의 할머니와 무척이나 다른 분들이셨다.

집에 돌아와 나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걸 말할 기회” 라는 힌트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강사는 앉아서 수업을 듣는 사람을 ‘높이고,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며, 그들의 숨은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강의를 주로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자세로 임하면 실수가 적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듣자하니 거슬리고 거북했던 강의들의 원인이 무엇인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저 칭찬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이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는 것. 그런 자세는 마음에 든다.

혼자 전담했던 첫 강좌의 소회다.

범죄와 민폐

아침을 못 먹고 길을 나섰다.

요즘은 끼니를 거르면 속이 쓰려서 약속장소에 15분 먼저 도착하자마자 먹을 걸 사 먹을만한 곳을 찾았다. 커피집이 문을 열긴 했는데 샌드위치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다시 나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 물품을 가져온 사람이 냉장고 앞에서 진열을 돕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점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냉장고 앞에 서서 주저하자 친절한 말씨로 손님 쇼핑 좀 하시게 잠깐만 비켜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샌드위치가 세 종류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햄에그샌드위치와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차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서서 먹는 스탠드에서 얼른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한 청년이 뭔가 뚜껑을 열고 있었다. 청년이 먹는 건 비빔밥이었다. 각종 채소가 들은 용기가 밥 위에 얹어져 있었다. 아침 9시 45분에 편의점에 서서 비빔밥을 먹는 청년은 하루가 끝난건지 시작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 초등학생쯤 된 통통한 사내아이가 창문에 붙은 포스터를 한참 보다가 갔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선거 입후보자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커피로 입을 가시며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다. 약속시간보다 7분 정도 늦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늦어져 미안하다며 오래 기다렸냐고 물었다. 그는 얇은 선거운동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방이 두 개쯤 들러져 있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시간이 촉박한 줄 알았다면 약속을 조금 여유있게 잡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가 성급히 테이블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치웠다.

“제가 요즘 아침에 선거운동하느라고요. 근데 애들이 어려서요. 아침인사 끝내고 집에 가서 애들 밥을 차려주고 나와야 해서요. 아휴.”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같은 커피 드리퍼까지 가져와서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제대로 된 드립주전자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했고 동료가 새로 가져온 원두인데 맛있다고 했다며 그럴싸하게 대접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그는 컵을 뜨거운 물로 덥혀보려고 했지만 사무실 안에 개수대가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가 내려준 머그잔은 절반은 차갑고 절반은 따뜻했다. 커피는 대단히 맛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국회의원 입후보를 할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있었고, 신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0% 득표율을 넘지 못해 공탁금을 홀라당 날릴지도 모른다. 그의 얇은 잠바를 보고 있자니 다른 후보들이 입는 두꺼운 점퍼도 생각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데 그가 서둘러 책을 두 권 챙겨주었다. 후원자가 수 십권을 사서 보내줬다는 “거래된 정의”와,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운동에 관한 책자였다. 사무실 밖 공간에는 몇 몇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시작했다. 나는 손님이 있으니 멀리 나오지 마시라 했으나 그는 굳이 문 밖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도 아침밥을 차려야 하는 나라에서, 61세의 여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전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떠돌았다. 60년을 산 여자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던 이유와 교통사고로 입원중에도 자기 종교의 예배에 참석했던 이유가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밤늦게 틀었던 한 보도영상에는 재벌가의 아들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여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법적으로 그의 집에 가서 프로포폴 주사를 놓았던 간호조무사는 “엄마는 쓰러지시고, 아빠는 수술해야 하고,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라고 했으며, 그 간호조무사의 상사인 병원 원장은 “우리집도 상황 안 좋아. 감옥가서 좀 쉬다 오지 뭐. 의사하기도 지겹다.”고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은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한 결과가 이거니?”라고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민폐인가.

아침 9시 45분의 편의점 비빔밥은 또 뭐란 말인가.

 

2020.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