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야 할 것들이 없다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스케줄이 없다면 다음 스케줄이 있는 때까지라도
한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직 나는 여기 저기 매인 게 많고 소속된 게 많고 맘껏 떠나기에 뿌리를 너무 많이 뻗어버려서.
가끔 지나간 사진을 들춰 본다.
여수 돌산의 작은 마을은
정말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관광+낚시를 활성화하고자 전략을 세운 것 같았으나 그날은 토요일인데도 쥐죽은 듯 고요했다. 항구를 지키고 있던 개가 목줄에 묶여서 몇 번 짖어댔을 뿐.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엔 가끔 개집이 하나 놓여있고 거기에 누가 키우는지 모르는 세상 단 한마리의 개가 있곤 하다.
나는 왜 도시에서 태어나 빙빙 돌다 바닷가 남의 동네에 와서 기웃거리고 사나. 어촌에서 태어나 고기를 낚는 아버지와 물질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또 헤매고 있을까.
떠나오면 어디든 그리운 법.
헤세는 고향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 했다.
고향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통영 중앙시장이 활어가 싸다길래 가봤다. 중앙시장은 활어시장과 붙어 있는데 항구의 출입구와 바로 맞닿은 곳은 통영활어시장이고 바로 옆에 중앙시장이 있다.
통영시장 앞 통영항이순신 컨텐츠로 밀어부치는 느낌. 활어시장 입구
통영활어시장은 위치로 봐서는 그야말로 항구에서 막 잡아온 활어를 받아다 팔 수 있을 것이다. 항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고 4차선 도로 앞에 활어시장이 있다.
통영활어시장만큼 싼 곳이 없다길래 회를 먹으러 갔다.
시장 한 가운데 쪼그려 앉은 아지매들이 소쿠리에 각종 바닷고기를 놓고 흥정을 한다. 감성돔, 민어, 점성어, 도다리, 능어, 송어, 제철에 올라오는 온갖 고기들이 있다.
입구쪽과 안쪽 가격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생선을 잘 아는 사람이 흥정을 잘 해야.
생선을 고르고 흥정을 마치면 아지매들이 잽싸게 회를 뜨기 시작한다. 생선을 도마에 놓고 칼로 정확하게 뼈를 발라낸 뒤 껍질과 살점 사이에 칼을 집어넣어 살살 밀다가 손으로 생선 껍데기를 확 벗겨낸다. 비늘을 다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 껍질과 내장, 뼈를 다 발라낸 생선은 소쿠리에 다시 넣어 물에 헹군다. 아지매마다 수도꼭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콸콸 물이 나온다. 모두들 어부바지와 장화를 신고 있다. 목욕탕의자만큼 작은 의자에 앉은 아지매가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앉으며 회써는 도마를 초벌손질 도마 위에 올린다. 포장비닐 안에 들어있는 흰 수건 위에 손질을 마친 생선을 올려 물기를 꽉꽉 짜낸다. 오로지 악력으로 물기를 짠다. 다시 살점을 꺼내 흰 도마위에 얹고 먹기 좋게 회를 썰어준다. 배바지는 배바지대로, 세꼬시는 세꼬시대로. 흰색 스티로폼 도시락에 대나무포장재를 얹은 위에 횟감을 썩썩 얹는다. 매운탕을 먹을거냐고 묻고 먹을 거라 하면 뼈는 다른 흰 비닐봉투에 얹어준다. 흰 비닐에 각각 도시락을 담고 검은 봉투에 한 번 더 담아주면 아지매의 역할은 끝난다.
우리가 감성돔 한 마리에 도다리 세 마리를 삼만원 주고 사서 회를 썰고 있는 사이, 비어 있던 옆자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분명히 통영 사투리인데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니 어데 갔다왔노? 고기를 이래 놓고 몇 시간을 안 나타나면 우짜노? 오다가 뭔 일 났는지 알았다.”우리 회를 써는 아지매가 옆 자리 여자를 보고 말한다. 옆 자리에 나타난 여자는 야구모자를 쓰고 안경을 쓴 젊은 여자다. 시장에서 제일 젊은 여자로 보였다.
“아가 아파가지고예. 캄뽀디아에 전화를 했는데예. 전화가 안되지 뭡니까. 아 그래가지고예. 전화를 계속 하고 머 이래 이래 하다가, 연락이 안 되가꼬.” 여자가 하는 말을 나는 못 알아듣겠는데 부산 출신 동행은 들으며 웃고 있고, 앞자리 옆자리 아지매들은 빠른 사투리로 지청구를 했다. 앞자리에서 해산물을 팔던 아지매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댔다.
“안 오니까는 걱정을 했지. 뭐 사고라도 났는가 싶어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행을 바라보자 캄보디아 사람인데 애가 아파서 고향에 전화한다고 자리를 비웠다고 해준다. 다시 여자를 보니 이목구비가 좀 달라보인다. 사투리는 제대로였다.
횟감을 들고 시장을 둘러치고 있는 초장집으로 들어간다. 초장집은 1인당 4천원 정도의 상차림비용을 받는다. 음료수와 술값은 별도고, 매운탕은 10,000원을 받는다.
시원시원한 사장님이 있는 초장집
누가 갖다줬다고 그냥 먹으라고 주신 생미역
초장집 메뉴판
만원에 매운탕 추가
해산물 이렇게 만원
꾹꾹 눌러담은 삼만원어치 회
초장집 아지매의 말씨가 구성지고 맛깔난다. 원래 장어구이도 하는 집인데 노인네들이 와서 장어값이 비싸네 어쩌네 한다고 짜증이 잔뜩 올랐다.
“할배요. 그거 그리 돈 생각하고 먹으면 다 맛이 없는깁니다. 그냥 먹을 때는 맛있게 자셔야지. 그렇게 비싸네 어쩌네 돈 생각할 거 같으면 딴 데 가이소 마.”
전채음식이 하나도 없어서 해산물이 좀 먹고 싶다 했더니 동행이 1만원을 들고 나가 해삼멍게개불을 사왔다. 해삼은 주로 딱딱해서 잘 못 먹었는데 여기만큼은 오독오독 잘 씹히고 고소했다. 굴은 소량으로 안 판다 해서 맛을 못 봤다.
저쪽 끝에 수도권에서 온 듯한 커플이 앉아 초장집 아지매에게 이런 저런 걸 물었다.
“고등어회가 어디 어디가 맛있다던데, 거기 아세요?”
“어데?”
“ㅇㅇ이라고..”
“거기가 맛나다하요?”
“블로그 봤는데요. 인터넷에 올라온거요.”
아지매가 걸레로 바닥을 훔치며 낮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집이 맛나다해요? 대체 누가 그런 걸 올린대요? 난 그것이 참말로 궁금하네.”
“어머 아주머니 표정이 안 좋으셔요. 맛 없는집이예요?” 여자가 웃었다.
“마, 가보이소. 가봐야 알제. 뭐든지 다 자기가 묵어봐야 이게 맛나나 안 맛나나 확인이 되제. 가보이쏘. 가보고 댓글 달아보소.”
커플이 가면 안되겠다고 속닥거린다.
여자가 계속 아지매에게 맛집을 물었다.
“시락국은 거가 아이고, 거 말고, 그 대로변에 큰 집이 있어. 거 말고 그 안에 들어가면 쪼만한 데가 있어요. 거가 제대로지. 그 아지매가 서울아지맨가 그래. 그 집 간판? 그 집 간판 없을걸. 간판 못 봤는데? 여보, 당신 그 집 간판 봐쓰요? 못 봤제? 응. 그 집 간판 없다. 없을기다. 낸 본 기억이 없어. 원조는 무슨, 여기 뭐 죄다 원조지 그래 따지면. 60년이고 50년이고, 우리도 여기 24년 됬쓰요. 그럼 뭐 우리도 원조지. 방송 나온 집? 방송 다 나왔쓰. 돈 내고 방송 나오라케. 우리도 아니 초장집도 돈 내고 방송 나오라카대. 안 나간다캤어. 뭔 초장집에서 돈 내고 방송엘 나가. 그 시락국은 일찍 닫아. 새벽 4시에 열고 9시에 닫아. 거가 원래 뱃사람들 먹는 데지. 외지 사람들 먹는 데가 아니예요.
충무김밥은, 명가가 좋다. 거가 재료를 좋은 거 써. 밥이나 김은 다 똑같애. 그 무침 있자나. 반찬. 오징어 이런 걸 존 거 쓴다. 거가 좋고. 꿀빵은 원래 꿀봉이가 원조다. 갸가 그거 하고 나서 돈 좀 번다카니 여기 저기서 따라해가 톳빵이고 뭐고 난리다. 아주.
다찌집? 다찌집은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외지사람들이 둘이 가면 사실 다찌집에서 별로 안 좋아해. 그게 왜그냐하믄, 통영 사람들이 술을 엄청 마셔요. 서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만큼 못 마셔. 한 상에 4만원 이래 하면, 술을 추가해야 돈이 된다고. 술에다가 안주가 기본으로 나가자나. 술 한 병에 만원 받는데 안주가 새로 나간다고. 근데 둘이 가서 술하고 안주를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노. 그 집은 술이 계속 나가야 돈이 된다 말이다. 근데 둘이 가서 두 병 마시고 한 상 받으면 그 다 먹지도 몬한다. 여러 명 가서 여러 병 먹어야 좋아하지.
아 택시? 멀다캤는데 가깝드라꼬? 통영사람들이 승질이 급해가 다 그러고 다녀요. 걸어가도 되는데 그걸 못 기다리는기라. 버스도 다른 도시보다 정거장 사이가 짧아. 근데도 그걸 못 참아. 택시 탄다꼬. 버스 정거장 하나 거리가 문 열고 닫는 시간인기라. 승질이 엄청 급해.”
아지매의 말을 들으며 낄낄대느라 불편했던 마음이 모두 사그라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아지매가 말하는 식당의 간판을 적었다.
동피랑 올라가는 길. 다음을 기약하며 패스.
통영에서 그렇게 회를 먹고 동피랑 마을 아래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가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회를 써는 아지매들을 보며 눈물이 나더라고 내가 말했다. 동행은 생선이 불쌍해서 울었냐 할매가 불쌍해서 울었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 삶에 대해서, 내가 너무 비겁하게 사는 거 같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수십년을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채, 여름엔 더워서 물것이 상할까봐. 겨울엔 추워서 손에 감각을 잃은 채로. 하루종을 물에서 생선을 건지고 또 썰어대던 손목. 그 앞에서 문학이니 예술이니, 모두가 나발이다.
부끄러웠다. 내 삶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선 채로 나불대며 입으로나 떠들고, 앉아서는 모니터 앞에 앉아 헛된 주장들만 쏟아내는 이 따위 삶은 얼마나 비겁한가.
그는 조선소에서 배의 가장 밑바닥에서 뚜껑을 덮은 채 일을 했고, 쉬는 날이면 낚싯대를 메고 아무데나 가서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고 서 있다 돌아오곤 했다. 바다만 보면 그저 마음이 좋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낚시는 거대한 배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위로해주는 성취감이 있었을거다. 운칠기삼. 낚시꾼들은 어복(漁福)이라고 말한다. 물고기가 와서 물어주거나 안 물어주거나. 그건 모두 운에 달렸다고. 낚시꾼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자신을 놓아두고 약간의 노력을 가할 뿐이다. 행운이 오거나 오지 않거나에 대해 낙담하지 않는다. 매일 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거제 장승포에는 작은 어판장이 있고 트럭이 오갔다. 대규모의 경매는 없는 것 같았으나 냉동창고에서 네모낳게 각이 잡힌 채 얼어버린 생선이 목조파레트 위에 올라가 냉장차에 실렸다. 새벽 운전을 한 탓에 장승포항에 차를 대고 잠시 졸았다.
동행은 너댓시간을 기다린 끝에 봄도다리 한 마리를 건졌다.
봄에는 작은 도다리가 올라온다. 바다에서 잡은 도다리에, 들에서 캔 쑥을 넣고 국을 끓인다. 제주부터 거제, 통영에 이르기까지, “봄도다리쑥국 개시”라는 글자가 여기 저기 박혀 있었다.
아침 7시 경의 장승포앞바다
오가는 사람들이 낚시 포인트를 알려주었지만 관절염환자인 나를 동행으로 둔 그는 갯바위에 오르는 일이 자유롭지 않다. 멀리 동행을 앉혀두고 낚시를 가지 않는다. 개의치 말라고 해도 낚시의 목적은 자연산 물고기를 낚아올려 나를 먹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승포항 앞바다 (배가 드나들지만 생활낚시꾼이 많다) 오후가 되자 바닷색이 바뀌었다.
별다른 소득이 없자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지새포라는 항구로 이동했더니 시에서 만든 공영주차장과 긴 방파제가 있다. 낚시꾼들을 위해 만든 자리 같았다. 완만한 테트라포트나 다리 위에서 낚시를 던지는 이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빨간 양동이를 들고 나와 고도리를 계속 낚아 올렸다. 낚시를 하려면 물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어느 물고기가 어떤 높이에 사는지 짐작하는 것이다. 기계식 장비를 사용하면 정확한 수심을 파악할 수도 있지만 싼 게 아니고 그렇게 전투적으로 고기를 낚을 것도 아니라 취미로 하는 이들은 수심을 재는 측정기까지 쓰지 않는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고기를 잡겠다고 어림짐작으로 낚시의 길이를 조정하는 일. 마치 사람의 마음을 가늠하는 일 같다.
지새포 공영주차장
미세먼지는 남쪽 끝 거제까지 가득했다.
그래도 바다는 파랬다. 바다가 편한 이유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겠지.
주차장 앞에 방파제를 끼고 이런 다리가 있다. 낚시꾼들이 많았다.마을 사람들이 잡던 고도리 (고등어 새끼)
거제의 물가는 놀라웠다. 거제에 몇 번 다녀왔지만 매번 숙소에서 끼니를 때웠는데 이번엔 외식을 두 번 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장승포의 대구탕은 13,000원이었고, 양이 푸짐한 것도 아닌 묵은지 고등어찜은 1인분에 15,000원이나 했다.
13,000원짜리 대구고니탕15,000원짜리 고등어묵은지조림
비수기라 숙소는 할인이 많았다. 데일리호텔 앱에서 보기만 하고 전화를 해서 따로 계산을 했다. 숙소를 오가는 고양이들이 삼겹살을 얻어먹으러 나타났다. 서열대로 고기를 나눠먹은 아이들은 배를 채우고 이내 사라졌다. 숙소는 여태 여행 중에 묵은 것 중 제일 만족스러웠다. 비수기라 50% 할인이었는데 성수기엔 작은 방이 12만원쯤 할거다.
외도여행펜션의 고양이 삼대장. 앞부터 서열이 높다. 맨 앞놈이 먹고 남은 것을 두번째 놈이 먹고 두번째 놈이 먹다 남은 것을 마지막 놈이 먹었다.
노동자들이 채운 도시에 서울의 두배쯤 되는 외식물가라. 거제에서 싼 것은 휘발유값 뿐이라더니. 아름다운 섬이었던 이 도시를 망친 건 오직 자본인가 자본에 기댄 인간인가.
날씨 앱을 꺼내 보며 생각했다. 숫자가 말해주는 온도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 숫자를 기록했던 어떤 날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숫자는 언제나 막연하다.
두 번째 남도로 가는 길. 남도에 얽힌 이야기는 숱하게 많다. 스물 한 살부터 스물 세 살까지 살았던 고시원에는 모두 남도 사람들이었다. 전라도 순천, 벌교, 목포, 장흥, 고흥, 보성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왁자지껄 했는데 전주 사람은 북도는 껴주지 않는다고 찬밥이었다. 남도에 대한 환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을 다녀온 지난 가을, 그 풍요로운 땅에 홀딱 반했다.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바다와 산이 가깝고 그 사이에 들이 펼쳐졌다는 것은, 불편함을 담보로 하되 이런 풍광은 댓가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먼 곳의 여행을 할 때마다 기가 막힌 경치가 늘 신기했다. 그 풍경들은 그만큼 먼 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게 자연이 가까이 오겠느냐 묻는 것에 대한 댓가라 생각했다. 운전을 해서 가는 남도는 대여섯시간이 걸렸다. 피로따위, 참을 수 있는 길. 고흥에 간다는데, 운전 따위 못하겠느냐고 실실 웃었다.
상위에 차려진 음식은 언제나 싱싱했다. 냉동창고에 들어가 본 적 없는 풀과 물고기가 그대로 상 위에 음식이 되어 올라오는 곳, 파도가 거세 양식도 어렵다 했다. 험난한 자연환경이 외려 득이 되는 곳. 고흥에 다녀오면 바다와 들을 멀리 하고 사는 것이 이렇게 비루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햇살이 좋은 오전, 그 집에 갔다. 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에 노란 것이 달렸다. 제주도 귤나무를 심으셨다는데 열매가 열렸고, 그냥 따서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귤을 집에서 따 먹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동네에 유자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딸 사람이 없어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땅에 떨어지면 고양이나 들쥐의 먹이가 될 것이고, 나무에 달린 감은 까치의 밥이 되겠지. 문득 까치 같은 날짐승도 유자를 먹을까 궁금해졌다. 시큼할텐데.
한 식구가 먹을 만큼만 심은 작은 밭에 무와 배추가 커다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누구 먹으라고 나란히 놓았을까. 누군가 먹으라고. 와서 달라고 말하지 못할 누군가를 위해일까.
고추도 매달린 채 말라비틀어지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서 이 모든 작물을 거둬들이는 일은 작정해야 할 일이다. 고향집에 간 아들은 아무도 따지 않은 유자나무위에 올라가 유자를 따기 시작했다. 유자나무에는 가시가 있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 일일이 거둬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 만든 것을 만나보지 못한 유자는 작고 쪼글쪼글했다. 겉껍질은 시꺼멓고 울퉁불퉁했다. 검게 변한 귤도 마찬가지였다. 내다 팔기에 애매한 과일이다.
충청도의 힘이라는 책을 쓴 저자는 자이랑 식품에서 일하는 남덕현이라는 사람이다. 작은 책이라는 잡지에 젓갈 담그는 얘기를 쓴 걸 읽었다. 보기에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가라앉는 새우 단백질 때문에 팔리지 않는 젓갈이 속상한 이야기다. 유자를 생각했다. 보기에 좋지 않아 아무도 돈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의 작은 마루엔 유자냄새가 가득했다. 70년을 해로한 두 노인은 유자 껍질을 잘게 잘라 마당에 내놓고 말리고 있었다. 한약방에서 약으로 쓰기에 내다 판다 하셨다. 그게 뭐 얼마나 큰돈이 되겠는가. 그냥 버리기에 아까워 햇빛에 맡겼을 터.
냉난방이 완벽하고 햇빛도 걸러 받아들이는 아파트에 사는 나는 버리기에 아까운 모든 것들을 노란 비닐봉투에 담아서 내다 버려야 한다. 햇빛에도, 바람에도 맡길 수 있는 게 없다. 모두 다 입으로 들어가 똥이 되지 않으면, 씨앗 하나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도시.
남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수산시장에서 갓잡은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을 사온 그날 밤, 우리집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스티로폼 박스는 네 개가 넘었고, 그 안의 물건들을 포장한 퍼런 비닐과 녹아가는 얼음을 씽크대에 버리고 생선 뼈다귀, 내 옷에 붙은 들풀의 씨앗 하나 모두 다 떼어내 쓰레기통에 곱게 넣어야 한다. 먹고 남은 게껍질은 가위로 잘게 잘라 노란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더 많이 들어간다. 생선을 나누어 담는다고 나는 지퍼백을 다섯 개나 꺼냈고 냉동실 칸칸마다 각종 비닐로 쌓인 먹을 것들이 가득한 걸 알아챘다. 냉동실은 블랙홀, 이제 하루가 지나, 돌바지락이라 부르는 살조개는 다 먹어버렸으니 남은 꽃게를 차곡차곡 냉동실에 잘 넣거나 쪄먹어 치워야 할 일이 되었다.
순천을 지나오면서부터 추웠다. 집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란다엔 유자냄새가 가득한데 그 집에서처럼 향긋하지 않다. 신바람이 나서 꽃게를 4kg 정도 사왔는데 언제 먹나 싶다. 잎새주를 사왔는데 남편은 웬지 당기지 않는다며 냉장고에 그대로 두었다. 식탁 위엔 며칠 전에 사온 식빵이 굴러다니고 냉장고엔 일주일된 스타벅스 케잌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그 사이 식구들은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사다 찬장에 쟁여놓았다.
남도의 것을 사온다고 내 집이 남도가 되지 않는다. 장소가 바뀐 먹거리들은 짐짝처럼 물러가겠지. 아쉬울 뿐인가. 슬프기까지 하다.
그 동네의 편의점에서도 원두커피를 찾아 캡슐원액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에 거 참 커피 맛대가리 없다고 마실 때, 옆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전화통화 하던 걸 들었다.
“돗돔을 하나 잡았는디. 먹을 사람이 있는가?” 하던 얘기.
어쩌다 생기는 것에 대한 반가움, 우리 집엔 그런 게 있던가.
어쩌다 생기는 게 뭔가, 생각나면 주문하면 될 일이다.
동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지, 물건은 언제나 움직일 수 있다. 돈만 내면,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고,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할 것은 오로지 돈. 그러니 무엇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도시에선 아무도, 아무 것도, 그 어떤 음식도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걸려 올라온 돗돔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온다. 나는 남은 꽃게를 냉장고에 넣을 것인가, 냉동실에 넣을 것인가, 얼음팩에 넣어 딤채에 넣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