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과 숙명여대

점심시간이 지난 순대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순대국 한 그릇을 외치고 자리에 앉는 법이다.
부글부글 끓는 순대국이 오기 전엔 늘 반찬을 먼저 차린다.
김치뚝배기에서 김치를 먹을 만큼 꺼내 접시에 담는 중이었다.

자동문이 열리네 안 열리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들어섰다.
계산대 근처 테이블에 앉은 노인에게 서빙하던 여자가 다가간다.
“할머니 뭐 드려? 순대국 하나 포장? 똑같이?”
노인의 목소리는 멀지 않아도 안 들릴 것 같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도 모르겠다.
몸을 숙이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순대국 포장을 묻던 여자가 주방에 대고 외친다.
“순대국 하나 포장. 밥 따로 포장!”

“밥 따로 포장?”
“어. 밥 추가해서.”
국밥집에서 포장을 할 때 밥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딸려간다. 대부분 밥은 집에 있는 걸로 먹는다는 얘기다.
국밥집의 뜨거운 밥을 포장해버리면 그 온기와 끈기 때문에 맛이 떨어져서인지, 나도 포장할 때 밥을 달라고 하지 않지만,
음식을 나르던 사람들은 노인의 순대국 포장 주문을 받으며 밥을 싸가겠냐고 물은 모양이다.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엉거주춤하게 걸어 반대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약간 기울어진 고개는 살짝 좌우로 떨렸다.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저 할머니 불쌍해서 어쩐대.”
“그래도 저 할머니가 숙대 나온 할머니야.”

숙대나온 할머니, 우리 엄마가 올해 일흔 한 살인데, 저 정도 걸음걸이면 여든 다섯은 넘었을라나.
30년대에 태어나 식민지를 거치며 숙명여전을 다녔던 이력이 순대국집에도 알려진,
노인의 학력은 순대국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다른 생명의 창자를 씹으며 내내 생각해도 알 도리가 없었다.

2018. 2. 23.

관변단체의 외로움

2019년 글입니다.

금요일에는 모 지역의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준비모임에 안양사례를 발표하러 갔었다. 안양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표사례가 되었고 나는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지역네트워크 조성의 대표 발언자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착시현상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수십 년전부터 다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그게 제도권 밖에 있어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회원들은 예전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고 학습이 습관인 사람들이라 내내 공부하고 일반 시민대상으로 강좌와 활동들을 펼쳐왔다. 그걸 모아서 어떤 틀에 끼워맞추게 된 게 최근 일이고, 이 지역에서의 시작은 사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발령나온 장학사의 제안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발표를 하러 다니는 게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지만 태생이 뻔뻔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잘난 체를 하러 다닌다. 내가 외부에 나가서 앞에 서면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안양지역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훗날 내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물론 이름이 쉬우니 기억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나 개인보다 안양에서 민주시민교육 한다는 사람, 으로 내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인지라, 개인의 쑥스러움은 제쳐두고 그냥 잘난 체를 한다.

강연을 끝내고 나면 현장감이 있어 좋고,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재미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그감이 있고 중간중간 성대모사를 끼워넣어 연기하며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어서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고 현장감이 있다는 얘기는 내가 현장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럴 깜냥도 안된다. 그건 연구자들의 몫이다. 대부분 이런 강연은 대학 교수들이 꽤 다닌다. 이 분야에서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한 책에 실리는 필자들은 대학교수나 연구자, 이 분야를 오래 연구한 교육자들이지 나같은 현장 활동가는 매우 드물다. 가방 끈도 내가 제일 짧다. 현장전문가가 이 바닥에 몇 명 더 있는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오래되었고 더 넓은 지역을 기반으로 홛동한다. 하지만 나는 안양지역에 국한해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그 네트워크 조성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교육지원청과 학교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온 일보다, 과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나는 바닥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뭘 만들어서 하나씩 탑을 쌓아가는 유형이 못된다. 그 이유는, 요청을 해오는 일만 처리해도 1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떤 욕구를 가지고 나를 찾는다. “뭘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지 감이 안 온다.”는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이걸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계절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구체화시키면서 흘러간다.

강연은 같은 PPT를 가지고 여기 저기 다닌다. 심화과정이 필요하거나 구체적인 요청을 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학교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해왔는가” 라는 주제면 비슷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업데이트만 한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몇 개 지역에서 같은 내용으로 사례 발표를 해왔다.

금요일에 다녀왔던 곳은 질의응답 시간을 따로 빼두어 좋았다. 질문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어딜가나 있다. 이 분들은 손도 가장 먼저 들고 마무리도 자기가 하고 싶어한다. 이런 분들은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말할 수 있게 둬야하는데 그게 사실 참 어렵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면 그때는 이런 습관이 조금 완화되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기력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본다.

이번에는 강연 초반부터 내 이야기에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이 있었다. 어떤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없고 우리는 배워본 바 없어 가르칠 수 없다는 게 내가 말하는 내용의 요점인데 이 분은 강연 내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보였다. 끝날 때쯤 이 분은 자기가 새마을부녀회 회원이라며 내가 “시민단체에 새마을 부녀회는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매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내가 시민단체라 명명하는 것은 NGO와 NPO를 중심으로 말하는데 새마을부녀회나 민주평통,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는 시민들이 모인 단체이지만 국가로부터 고정적인 기금을 지원받도록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이 다르다고 분리해서 호명하는 것일뿐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분은 “우리도 회비를 낸다”고 항변했다. 그 사람의 기준은 자발적 참여가 회비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과 회비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정확히 알아보셔야 한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다. 대신 “새마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주 활동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회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큰 힘을 지니셨다.”고 조금 추켜세웠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운동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아까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자기들만의 용어와 철학이 있어 장벽이 높은 단점이 있고 오히려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은 진보쪽이 더 많다”고 살짝 디스도 했다. 이때쯤에 그 분의 언성이 좀 낮아지며 살짝 미소도 지었다. 그분도 나름 감정처리를 하느라 매우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이런 강연을 여러 차례 다니며 본 강연 시작전에 항상 “이것은 안양의 특수한 상황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의 머리와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셔도 안되고 다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강연자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그 자리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의 외로움을 나를 부른 이 공동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외로움은 공동체의 적이다. 외로운 사람을 보듬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겠지만, 그 외로움에 같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들인지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외롭지 않다.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회의가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외롭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타인의 삶의 무게를 나눠 짊어지는 게 부담스럽더라도, 적당히 눙치고 뭉개기도 하면서 외롭지 말아야겠다. 회의하자.

2019. 2. 24.

코로나 혐오

이 상황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개학 후 각 교실에서 펼쳐질 혐오였다.
중국교포나 이민자들의 아이들은 각지에 흩어져있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르듯이 아이들의 경제상황과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도 세밀하게 나눠져있다.

부모 중 누가 중국인이라도, 한국어를 곧잘해서 아이들이 유아교육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쳤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중국친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더러 학부모회도 잘 참석하고 책도 읽어줄 수 있는 중국인 부모도 있다.

하지만,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한국어가 어려운 경우는 뻔한 혐오와 차별이 기본세팅되어 있다. 문제는 교사들이라고 모두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인권의식이 뛰어나고 젠더감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이 나라의 보통시민이다. 이 사회 전반의 타자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수준이고 외부로 나타나는 본인의 공적인 행동을 구분할 줄 알아서 실수가 적은 것뿐이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 교육자가 강경하게 응대하지 못하고 본인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왕따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교사라는 직군이 엘리트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계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말 한 번 안 섞어봤을 법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면 그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도무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낼 지는 경험한 자도 잘 모를 일이고 경험했다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때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2020. 2. 22.

민주시민, 문화다양성으로 다시 보기 – 이룸

안양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팀의 2020년 새로운 행보를 시작합니다. 안양문화예술재단과 청소년수련관이 MOU 맺고 시작하는 안양 문화다양성 민주시민교육에 합류합니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에 적극 동참해 지역 내 문화다양성교육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향후 지역 내 문화다양성 교육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차별과 혐오가 모두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다양성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0. 2. 21.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은 조정할 예정입니다.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0 정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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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정기총회 안내

안녕하세요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입니다.

2020년 정기총회를 안내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소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참석이 어려운 회원께서는 2월 19일까지 위임을 해주시면 됩니다.
– 보내드린 위임장을 작성하여 보내주시거나, 또는 문자 위임(위임합니다)하여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 일시 : 2020. 02. 21(금), 늦은 7시
* 장소 : 군포시청 별관 회의실(군포시 군포시청 백리길 6)
* 안건 : 19년도 사업 및 결산보고/ 임원선임/ 20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승인

☞ 회원 자격은 2019년 본인이 약정한 회비의 50%이상 납부한 회원으로 합니다.
개별적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회비납부계좌 : 국민은행 003101-04-127730 안양군포의왕민주화기념사업회

☞ 아직 회원가입을 못하신분은 CMS나 자동이체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CMS 자동이체 별도 양식 요청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등으로 건강을 헤칠까 염려됩니다.
총회 장소에 손소독제와 마스크는 준비하겠으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 분은 참석을
권장하지 않겠습니다.

늘 건강한 생활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범죄와 민폐

아침을 못 먹고 길을 나섰다.

요즘은 끼니를 거르면 속이 쓰려서 약속장소에 15분 먼저 도착하자마자 먹을 걸 사 먹을만한 곳을 찾았다. 커피집이 문을 열긴 했는데 샌드위치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다시 나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 물품을 가져온 사람이 냉장고 앞에서 진열을 돕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점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냉장고 앞에 서서 주저하자 친절한 말씨로 손님 쇼핑 좀 하시게 잠깐만 비켜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샌드위치가 세 종류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햄에그샌드위치와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차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서서 먹는 스탠드에서 얼른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한 청년이 뭔가 뚜껑을 열고 있었다. 청년이 먹는 건 비빔밥이었다. 각종 채소가 들은 용기가 밥 위에 얹어져 있었다. 아침 9시 45분에 편의점에 서서 비빔밥을 먹는 청년은 하루가 끝난건지 시작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 초등학생쯤 된 통통한 사내아이가 창문에 붙은 포스터를 한참 보다가 갔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선거 입후보자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커피로 입을 가시며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다. 약속시간보다 7분 정도 늦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늦어져 미안하다며 오래 기다렸냐고 물었다. 그는 얇은 선거운동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방이 두 개쯤 들러져 있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시간이 촉박한 줄 알았다면 약속을 조금 여유있게 잡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가 성급히 테이블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치웠다.

“제가 요즘 아침에 선거운동하느라고요. 근데 애들이 어려서요. 아침인사 끝내고 집에 가서 애들 밥을 차려주고 나와야 해서요. 아휴.”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같은 커피 드리퍼까지 가져와서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제대로 된 드립주전자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했고 동료가 새로 가져온 원두인데 맛있다고 했다며 그럴싸하게 대접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그는 컵을 뜨거운 물로 덥혀보려고 했지만 사무실 안에 개수대가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가 내려준 머그잔은 절반은 차갑고 절반은 따뜻했다. 커피는 대단히 맛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국회의원 입후보를 할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있었고, 신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0% 득표율을 넘지 못해 공탁금을 홀라당 날릴지도 모른다. 그의 얇은 잠바를 보고 있자니 다른 후보들이 입는 두꺼운 점퍼도 생각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데 그가 서둘러 책을 두 권 챙겨주었다. 후원자가 수 십권을 사서 보내줬다는 “거래된 정의”와,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운동에 관한 책자였다. 사무실 밖 공간에는 몇 몇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시작했다. 나는 손님이 있으니 멀리 나오지 마시라 했으나 그는 굳이 문 밖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도 아침밥을 차려야 하는 나라에서, 61세의 여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전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떠돌았다. 60년을 산 여자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던 이유와 교통사고로 입원중에도 자기 종교의 예배에 참석했던 이유가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밤늦게 틀었던 한 보도영상에는 재벌가의 아들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여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법적으로 그의 집에 가서 프로포폴 주사를 놓았던 간호조무사는 “엄마는 쓰러지시고, 아빠는 수술해야 하고,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라고 했으며, 그 간호조무사의 상사인 병원 원장은 “우리집도 상황 안 좋아. 감옥가서 좀 쉬다 오지 뭐. 의사하기도 지겹다.”고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은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한 결과가 이거니?”라고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민폐인가.

아침 9시 45분의 편의점 비빔밥은 또 뭐란 말인가.

 

2020. 2. 19.

싸움의 규칙

눈 내리는 오후, 늦게 일어난 탓에 끼니를 거르고 약속장소로 갔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60번쯤 겨울을 겪은 사람.
그가 대부분 잊었을 17년전 기억을 끄집어내어 상기시켜주어야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의 2층에 있는 무인까페.
미리 보내준 서류를 읽지 못했다기에 출력해 간 같은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가 집중해서 서류를 읽는 사이, 나는 1500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큰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뽑아왔다. 내가 커피를 가져온 후에도 그는 진지하게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공간의 정중앙에 놓인 TV가 보이는 자리였다. TV는 켜져 있었고, 몽골로 보이는 화면이 흘러갔다. 어린아이가 초원을 뛰어놀았고, 여자와 남자들, 염소인지 산양인지 모를 짐승들이 지나갔다.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들었더니 화면 속의 사람들이 흰털의 그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벌겋게 드러낸 짐승의 속살, 화면이 바뀌어 내장을 꺼내고 그 안에 고인 피를 사람들이 쓰는 양동이에 옮겨 담았다.

내가 그를 만난 이유는, 17년 전 시작된 일이 왜 이제야 완성이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욕망들이 오갔는지, 찬성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또렷하고 단순한데, 반대하는 이들의 명분은 왜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는 반대자들의 이유를 알지 못해도 그만이지만, 알고 싶었다. 욕망의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간 자리에서 살아있던 생명이 고기가 되어가는 압도적인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흰 눈을 맞으며 멀리 달아나고 싶어졌다.

약속장소 바로 앞엔 샤니 빵공장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여태 경험한 중에 가장 최악의 근무지였다고, 샤니에서 보름을 견디면 어디든 견딜 수 있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는 택배상하차가 생기기 전의 글이었던 거 같다. 보름을 견디면 어디든 견딜 수 있는 곳의 어디는, 어디일까?
집에 오는 길, 운전을 하던 박부장이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을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갔던 곳 중, 눈이 와야 더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나, 도담삼봉같은 곳 말이다.

한 지역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몇 가지 승자와 패자의 규칙을 찾았다.

첫 번째는 며칠전에 적은대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던 사건들은 결국 10년이나 20년을 두고서라도 그 물증들이 나타나는거다. 스스로의 행동이 물증이 된다. 대부분 올바르지 않은 행동들이라, 결국은 잘 드러난다. “의심스럽던 자들”은 욕망을 감춰서 이슈를 이슈로 덮는 데는 능숙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덮을 이슈가 없어지거나 궁극적으로 욕망을 실현해야만 하니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두 번째는, 내부총질을 하는 자는 필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내부고발과 내부총질은 다르다. 공익을 위한 고발이나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 앞서 가는 자를 추월하고 싶어서, 등 뒤에서 “저 자에게 구린내가 난다”고 떠들어대던 자는 부활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단순하고 정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유로 싸우는 사람들이 이긴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것은 공익과 꼭 연결되지 않는다.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고, 어쩐지 의심스러운 이유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지키려 했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소멸하고 만다.

내가 찾은 이 싸움의 논리들이 완전히 틀려먹었을수도 있을테니, 앞으로도 잘 지켜봐야겠다. 어떤 싸움들이 결국 승리하는지, 알고 싶다.
갑자기 징기스 칸이 생각나네.

202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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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때는 말이야

“그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단 말야.”

두 테이블을 건넌 자리에 앉은 남자가 하는 말이 들렸다.

“우리 아버지가 20년 넘게 한 은행에 있었어. 근데 IMF가 터진 거지. 아버지가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났단 말야.
사실 나는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우리 엄마가 나를 부르더라?
우리집 형편이 이러저러하다. 그러니까 나보고 “대학을 안 가면 안되겠니?”라고 물어.
가지 말라, 한 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직장이 없어졌으니까, 엄마는 나를 대학을 못 보내주는거지. 그렇게 되더라고.

그래서 내 힘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어.
우리때 대학 등록금이 250만원이었어. 입학금만 어떻게 하면 다닐 수는 있겠더라고. 요즘은 600만원이라며? 요새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예술전문대학을 갔어. 그리고 거기서 내내 공연을 다녔지. 학교 다니면서. 돈을 벌려고 갖은 것을 다…”

저 남자는 98학번에서 01학번 사이겠구나. 이제 40대 중반일테고. 우리 세대가 겪어온 세월도 만만치 않아서. 대부분 사회초년생일 때 가족도 스무살 남짓이었던 우리도, 모두 길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씹으면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귀가 닫혔다. 나도 어디가서 저런 말을 하고 다니겠구나.
나이 먹어가며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결심도 모두 허튼 거겠다.
나이를 먹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언젠가는 완전히 불가능해지겠지.

 

2020. 2. 16.

학원가 비둘기

#지난글 #과거의오늘

52008503_2470986542913054_8519775755758993408_o엄마 비둘기 머리에 뭐가 많이 붙어있어?
– 다친 거겠지.
저거 봐봐. 머리가 막 삐쭉삐쭉해.
– 뜯긴 거 같기도 하다.

아이가 가르키는 비둘기들은 살이 쪘지만, 그 모양새가 엉망이었다. 머리깃털은 길이가 다르고 일부는 뜯겨나간 듯 삐쭉삐쭉했다. 그 옆의 비둘기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비둘기 서너 마리에 모여 맨홀에 고인 물을 마신다.
아이가 비둘기를 보며 말했다.
“쟤네 저기서 물 마신다.”

아이는 요즘 퇴행중이다. 중학교 1학년은 갑자기 아기가 되어 혀짧은 소리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가끔 길에서 손을 잡았다가 또래 아이들이 있으면 손을 쑥 빼곤 하지만, 혀 짧은 소리로 “엄마 미워!”하고 토라질 때처럼, 엄마 저기 봐봐, 엄마 이거 봐봐, 엄마 내 얘기 들어봐. 라고 종알댄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 유해조류, 혐오동물이 된 비둘기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알량한 멘홀 위의 물방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우리는 이제 정당하게 비둘기를 혐오할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비둘기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가 안 좋을 거라고 말해줬다. 나는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아이는 얼마 전에 들은 88올림픽 때 비둘기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고 그 이후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 사람들이 미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러 묻지 않았다.

몇 해전 인덕원역 커피숍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회의를 하다가 다가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바퀴에 깔려 납작해져버린 비둘기를 보고 아무 말도 못 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계절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겨울이 더디 왔다.
오리와 닭이, 돼지가 병들지 않아서 그 노동을 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벌어서, 생명을 죽이고 받던 꽤 괜찮은 수입이 없어서, 겨울 내내 다른 일거리가 없어서, 오늘 밤 병들어갈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모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나아졌으면 좋겠다.

 

2019. 2. 17. #지난글

[2020] 문화다양성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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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지역교육네트워크이룸은 안양문화예술재단과 동안청소년수련관과 함께 문화다양성사업활성화에 같이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문화다양성사업은 국책사업 중 하나로 [무지개다리사업]이라고도 불립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협력하여 각 지역 문화예술공공기관이 사업을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무지개다리 사업」은 지역 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다문화, 소수문화, 세대문화, 하위문화, 지역문화 등 다양한 문화 및 문화주체들 간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공공문화기관을 중심으로 지역 내 이주민 단체, 문화단체 등과 지역사회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화다양성을 확산하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2020년, 2월부터 안양문화예술재단이 강사양성과 교육프로그램개발의 운영을 맡고, 동안청소년수련관이 학교협력분야를 맡습니다. 지역교육네트워크이룸은 강사진훈련과 교안개발을 통해 지역내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문화다양성수업을 준비합니다.

향후 본 사업을 토대로 문화다양성사업이 더 넓고 깊게 뿌리내릴 수 있길 기대합니다.

2020. 2. 17.

협력사업주체

안양문화예술재단, 동안청소년수련관,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참고사이트 : https://www.cda.or.kr/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