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제는 과연 게임을 규제했는가

2004년 10월 몇몇 시민단체들이 ‘청소년 수면권 확보를 위한 대책마련 포럼’을 결성해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게임의 셧다운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2005년 7월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처음으로 셧다운 제도 입법이 시도되었으나 게임 업계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 충돌 문제로 입법은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에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 방지를 목적으로 ‘정보통신 서비스 중독의 예방과 해소에 관한 법률’이 발의(대표발의 한나라당 김희정)되어 장시간 몰입 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의문구와 서비스 이용을 시작한 지 특정 시간이 경과하면 경고문구를 표시하며, 장시간 이용 시 페널티를 부과하며 특히 청소년 이용자에 한해 그 친권자,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의 요청에 따라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법으로 담고자 했으나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무산되었다.

2008년 7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온라인 게임 업체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의 제공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해당 온라인 게임 업체를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2009년 4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통합민주당 최영희)이 발의되었고, 법안의 내용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 금지, 청소년 연령 확인 및 게임 가입시 친권자 동의, 게임에 인터넷 게임 중독 경고 문구 표시 등이며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김재경 의원의 법안과 유사하며 더 상세했다.

2010년 6월 3일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정안와 여성가족부의 개정안을 합의하여, 셧다운제 도입의 중재안을 마련하였고, 이후 2011년 4월 29일에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에 ‘셧다운제’ 도입을 골자로 대상을 만 16세 미만으로 제한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 법률안’을 상정, 통과되었다.

2011년 1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셧다운 제도가 시행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1월까지 계도 기간을 결정하였다.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셧다운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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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셧다운제에 대한 설명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중 유일하게 청소년이라는 특정 계층에게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적 조치를 실행하였다. 중국이 법적으로 게임을 도박등 규제대상으로 규정한 적이 있지만, 특정 연령계층에 대한 법률적 제한이 실시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최초에 이 법안을 제안한 청소년단체, 라는 곳에서는 “수면권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웠다. 이는 청소년들의 잠잘 권리를 보장한다는 말이다.

특정한 계층이, 또 다른 특정계층의 수면권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법적으로 어떠한 계층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연령대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꽤 많은 나라에서 동일하게 연령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이나, 미성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공연관람물에 대한 등급제를 실시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허용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금지하는 일은 이미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계층의 구분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괄목한만한 저항이 없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대부분의 성인들은 청소년 셧다운제가 필요하다고 동의한 편이며, 게다가 이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셧다운제를 대부분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보고 있지만 이를 단순히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볼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핵없는 미래를 물려주자”는 구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 있다. 청소년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요청한 적이 없는데, 청소년을 대상화하며 보호해야 할 계층으로 규정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매우 당연하게, 청소년과 미성년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두고 그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고 펼쳐왔으며 국가제도 아래 모든 기관이 이 기준을 아무 의심 없이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라는 명목은 그들이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을 함의하며,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은 미약하고 부족하다는 뜻을 포함한다. 청소년 셧다운제 제안의견 중에는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정규교육에서 사춘기 시절에 우리 자신을 타자화하며 학습받은 것 중에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명제에는 “사춘기는 사리판단이 부족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시기”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두 미성숙한가?

미성년은 오히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엄격하다. 나는 그중 가장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시기를 초등학교 입학 직전으로 본다. 이후 아이들은 자라나며 세상을 접하게 되고 여러 가지 도덕과 윤리를 어겨도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소년기의 돌출적인 행동은 사리판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과잉과 뇌구조의 재편성으로 인한 완급조절의 실패로 보이지만 사실은 청소년계층에게 가해지는 과다한 폭력과 통제가 그 원인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청소년계층의 사리판단력은 성인과 비교해서 모자람이 없다. 범죄자의 대다수는 성인이다. 법이라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 연령층이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기본 행동 양식인데 이를 가장 많이 어기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에게 “너희들은 사리판단력이 부족하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셧다운제를 포함한 게임에 대한 규제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화하며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그들의 특성을 규정하고 그들의 개성을 통제하려는 습성이다. 온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암묵적 동의에 대한 침묵이 이어졌으며 그간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지 못한 결과물이다.

이 사회는 미성년자를 통제하려는 정책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다. 미성년자들이 펼치는 모든 행동은 새로운 것들이다. 구세대의 문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때마다 성인들은 미성년자들의 “미성숙함”이 기괴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고 비아냥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 학생들의 짧은 교복치마에 대해 성인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들은 볼썽사나운 교복개조라고 폄하하며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 수 없는 걸그룹들을 창조해냈다. 걸그룹들은 일정 구성원이 미성년자이나 철저하게 성을 상품화하는데 앞장서왔고 그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재능을 상업화하고 대중 앞에 내세운 것은 분명히 어른들이었다.

교복치마 논쟁이 정신없을 때 삼선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문화가 비난을 받았다. 그들이 큰돈을 들여 사 입는다는 노스페이스 파카에 대해서도 국가의 미래를 운운하며 걱정들을 토해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던 어른들은 앞장서서 아웃도어 시장을 전세계 어디에도 유래없는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어냈으며, 삼선슬리퍼에 대해서 안전을 문제삼던 어른들은 각종 대형사고를 만들어 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아웃도어 사업을 일으킨 것도, 그 시장을 키운 것도, 인재가 아니라고 우길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만든 것도 모두 성인들인데 그들은 단지 아이들이 먼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때마다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미성년자를 비난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먼저 가는 자의 머리채를 잡아 당겨 주저앉히고 왜 앞장서서 가느냐고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 양아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문화가 이 사회에 깊이 팽배해 있다. 미성년자들이 성인들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빠른 것은 유연하며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성인들은 낯선 것을 일단 터부시하며 두려워한 뒤 공격을 하다가 결국 그 문화를 광적으로 흡수하고 재생산하며 산업화한 다음 부를 축적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런 문화의 패턴이 이 사회에선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생각해보라.

청소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왜 비난을 하는지 “어른”이라는 자들의 솔직한 의견은 대부분 한가지로 모아진다.

“꼴 뵈기 싫어서.”

이는 낯설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경함에 대한 치졸한 반응일 뿐이다.

셧다운제와 청소년에 대한 게임규제 역시 다를 바 없다. 선거권을 가진 성인들이 규제하는 것은 단순히 게임이 아니며, 그들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는 데 진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규제하는 것은 새롭게 밀려들어오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본인들의 경직된 자아로 가득한 구태한 문화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세상의 많은 것들이 왜곡된다. 이는 사회뿐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가정에서 발생한 교육에 대한 강박이 바로 사회로 나아가 합리적이지 않은 법령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게임셧다운제를 비롯한 각종 청소년에 대한 규제인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스물 한 살과의 대화 2.

“어머님 저 왔어요.”
안경너머로 활짝 웃는 청년.
사윗감 아니다. ㅋ
딸래미 학교 동기인데 지난 여름에 동기들이 돌아가며 친구네 집을 방문하고 2박 3일씩 보냈다. 우리 집에도 2박 3일 묵었다 간 한 녀석.

오늘 다른 선배와 놀러와 하루를 자고 내일 다시 학교로 내려간다.

딸아이도 그렇지만 이 또래 아이들은 참 이런 저런 것들도 많이 물어보고 조언도 듣고 싶어한다. 나는 저러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에게 뭘 물어본 적도 없고 니깟게 나이만 처먹었지 뭘 알겠냐는 표정으로 기성세대를 바라보던 내가 그래 엑스세대다.

자꾸 느끼는 건,
아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고, 모든 일을 애써 너무 잘 하려고 들며, “즐긴다”는 게 뭔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며 “칭찬을 받으면” 그게 다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내게 말하길,
칭찬받고자 하는 자기 마음과 잘하려고 애쓰는 자기 마음이 스스로를 얽매서 불편하고 분명히 그로 인해 열등감이 증폭되는 걸 느끼기 때문에 이 감정이 매우 거슬리는데 이게
자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거다. 돌아보면 제 친구들도 다 그러고 있고 자기도 남 비난을 너무 쉽게 하면서 남들도 자기를 너무 쉽게 비난하기 때문에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압박감도 같이 온다는 것이다.

병든 사회를 물려주었다.
아이들은 칭찬받기 위해 애쓰는 문화에서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탕진했고 상받고 잘 해내야지만 자기가 가치있는 인간이 된다고 주입받으며 자라버렸다.

매일 매일 애쓰며 사는 게 고단하고 힘든데 그런 불평을 하면 안될 것 같아 그마저도 늘 숨기고 지낸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놀리고 남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공격성으로 자기
자신을 감추고 또 거울을 보며 자기자신에게도 손가락질을 하는 거다.

넌 한심해. 나도 한심해. 근데 가끔 니가 더 한심해.

이건 어쩌면 일베사상의 근간 아니었나.
나도 등신 너도 등신 우리모두 등신. 근데 쟤가 오늘은 최고 등신. 그러니까 놀리자.

2015. 1. 13.

스물 한 살과의 대화 1.

큰 아이와 몇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의 고민은 과를 바꾸는 것인데 그 바닥에는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는 대학 4년간 해야 할 일은 가장 넓게 보고 넓게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해왔고 아이에게도 그러길 바란다고 권해왔다.

직장들어가 승진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어쨌거나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우선이고 전공과 먹고 사는 문제는 연관이 없지도 있지도 않은 개인의 그 때 그 때의 사정에 달려 있으니 취업을 우선시 해서 결정하지 않길 바란다 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지금 20대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매우 나쁘다. 스펙 좋은 아이들은 특정 계층에 몰려 있고 어차피 내 새끼들은 그 계층과 승부를 볼 수 없으며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예측불허인 일들은 산처럼 몰려올테니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 했다.
덧붙여, 이 글로벌한 세상에 이 나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인공재해로 인해 한 나라가 작살나는 경우도 많은 위험시대에서는 어느 나라에 가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네가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떨어져 한 끼 식사를 벌어먹을 수 있는 거리에서 펼칠 수 있는 재주 같은 건 꼭 키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때는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취업도 잘 되고?”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너희보다야 나았지.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다 다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되었다가 모두 취소통보를 받았지. 네 아빠도 ㅎ대기업에 취업이 됐다가 취소당했다 하지 않더냐.
그 전조증상 같은 것도 있었어. 고 3때 한 달에 한 분씩, 친구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거야. 자살은 없었어. 심근경색, 뇌졸중, 간경화 뭐 그런 스트레스성으로 줄초상이 이어지는데… 굿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어.

뭐 취업할라니까 IMF터져서.. 다들 공짜로 일하고 전문 자격증 따고 그랬어. 엄마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하고 살아서, 잘 몰라. 너 같은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취업고민 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있지도 않은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떠돌았고 퇴직금으로 스타킹 한 박스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내가 뛰는 만큼 스물 한 두살에도 잠을 줄이면 몇 백씩 벌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벽이 점점 좁아지는 큐브속에서 두려움에 떨고만 있다.

어차피 옛사람들이 말하는 입신양명 못할 거,
그저 즐겁고 행복하길 바랄 뿐.

2015. 1. 12.

새마을운동을 부르는 시대

1.
아이가 보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중계 유투브 영상이다. 양띵의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장면.

마인크래프트는 정육면체 블록을 이용해서 기본적으로 집을 짓고 양식을 구하는 등 생존을 시작하고 발전하면 마을과 도시를 만들거나 여러가지 모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최근 초딩들에게 각광받는 게임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컴퓨터수업에도 활용한다. 정육면체를 이용해 공간활용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그 일선엔 아프리카티비에서 게임중계를 한 양띵이라는 게임중계자가 있다.
양띵은 미소와 옴므 등과 함께 양띵크루를 만들어 합동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지난 해 양띵은 유투브 한국인 크레에이터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지금은 CJ E&J와 계약을 체결해 앱을 출시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양띵의 이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이 처자는 1990년생으로 2007년부터 아프리카티비 BJ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뒤져보니 얼마 전 “민주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하는데 그에 대해서도 적극 사과를 했단다.

아이가 유투브로 양띵 방송을 볼 때 나도 옆에서 가끔 지켜보는 편이다. 욕설도 나오고 편안하니 초딩부터 청년층까지 재미있게 볼 만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건 분명하다.

욕설에 대해서는 나는 매우 관대한 편이며, 영어 섞어쓰는 보그병신체보다는 욕설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 또한, 방송에서도 불현듯 욕이 튀어나왔다가 자제합시다~ 같은 말도 이어지기 때문에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제 본 방송에 새마을농사 미션이 있었는데 플레이어 (마인크래프트는 게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화면이 움직인다)가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다 이 장면을 봤고 아이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새마을농사를 짓는거라고 대답했다.

2.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시대에서 큰 비중을 가져온 일이며 그 평가는 여러 갈래다.

나는 (김영미 저 / 푸른역사 펴냄)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고 그 책에 이어 새마을노래를 벨소리로 하고 다니는 골수 새마을키드 한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일어나지만 새마을운동을 단순히 박정희 독재의 상징으로 바라봐도 되는지 궁금하다. 참여한 국민들이 있었고 저항보다 동원에 적극적이었어야 했던 가난이 있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상이라고 본다.
4.19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대체 어디서 뭘 했고 당시 국민들은 뭘 했길래 소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18년동안 독재를 하게 내버려뒀는가. 이미 이건 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복고와 보수주의가 같이 오면서 우경화가 그 바닥에 깔어 있다는 것이다.
공안정국, 조작질은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고 우경화도 전세계적으로 전방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은 현상이다.

인기절정의 개그콘서트에서 일베의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여성비하, 외모비하가 공중파를 타며 일반화 되는 오늘, 일베의 용어를 쓰면 개망나니가 되고 호로자식이 되며 일베는 일베가 아닌 사람들을 비하하고 공격하길 즐긴다. 오유나 다음까페의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스북 유저들을 꺼려하고 페이스북 골수유저들은 오유와 다음까페를 무시하는 이 요상한 현상.

서로간의 교차하는 컨텐츠를 가지고 싸우거나 타 집단의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거침없이 비난을 해도 되는 이 분위기.

70년대를 불러내고 정신승리를 부르짖는 이 분위기. 모 논객이 토 나온다고 했던 바로 그 분위기. 그 현상을 보는 거다.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정신적 세뇌를 받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외롭고 우울하고 처참한 세상에서 현대인을 움직이는 건 “멋져 보이는, 좋아 보이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새마을운동이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보일 수 있다. 그 말은 새마을운동을 대체할 다른 역사적 컨텐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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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없는 세상 – 그들의 눈동자

내가 상하이에서 학부를 다닌 화동사범대학은 말 그대로 사범대학인지라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고 졸업한 아이들의 취업이 모두 보장되어 있으며 등록금도 타 학교에 비해서 저렴한 학교였다. 상하이에는 명문이라 불리는 복단(FUDAN)대학교와 각 단과대학이 잘 되는 몇 개 대학이 있었는데, 이과쪽은 교통대(JIATONG), 건축은 동제대(TONGJI) 외에도 상해외대나 상해대학교등이 있었다. (대학이름은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표기함)

화동사대는 캠퍼스가 예쁘기로 유명했다. 애초에는 복단대에서 학부를 하려고 갔으나 복단대에 한국학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양새를 보고 학부를 옮기기로 했다. 내가 처음 갔던 2001년도 2월에 복단대의 한국유학생은 200명이었는데 그 가을학기에 400명이 되더니 2002년도 2월에는 한국학생만 2000명이 등록을 했다. 언어연수생에 국한한 숫자였다. 김정일이 2000년에 상하이를 다녀간 뒤 천지가 개벽했다고 선언한 후 한국에서 상하이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급격하게 한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학부지만 나는 나름대로 한국에서 공부를 좀 하다 온 애들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24세 미만이었다. 나는 당시 스물 일곱이었으니, 내 위로는 주재원으로 왔다가 한 학기 정도 어학연수를 하려고 쉬는 아저씨들 외엔 몇 명 없었다. 학부를 하겠다고 온 내 또래도 당연히 없었다.

복단대는 중국 본토의 양자강 이남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학구열도 괜찮았으나 유학생이 과하게 몰리다 분리정책을 썼다. 대신 화동사범대학은 그렇게 많은 유학생이 몰리지 않아 분리하고 말 것도 없었다. 중문학부 한어언문학과 (중국어는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통틀어 말하기 때문에 한어언문학부는 漢字로 된 문학만을 말한다)에 전무후무한 한국유학생이 있었으니 그게, 나와 나보다 다섯 살 어리던 박모씨. 우리 둘 뿐이었다.

화동사범대는 국가정책대학이라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타 학교보다 싼 학비와 기숙사 지원금등이 관건이 되었다. 다들 시골마을에서 플랜카드 하나씩 걸고 온 애들이라고 보면 된다. 양자강 이남 사람들은 체격이 작은 편인데 아이들이 어찌나 고만고만한지, 나이도 어렸지만 중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어린애는 열 일곱짜리도 있었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한, 말하자면 그 고장에서는 대단한 수재였던 아이라는 거다. 중국내에서도 가난하기로 소문한 안휘성 아이들이 많았고 소수민족 아이들도 몇 있었으며 1학년 교실엔 그야말로 땟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코흘리개 같은 분위기였다. 상하이 현지에서 우리 과에 들어온 아이는 극소수였다. 혼자 뽀얀 얼굴에 배낭이 아닌 가죽가방을 메고 다니는 나에게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곤 하는 아이가 상하이 아이였다.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일괄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는데 기숙사는 8인실이었다. 2층짜리 침대를 벽에 붙여 두 개씩 놓으면 꽉 차는 방. 겨울엔 난방이 되지 않았고 온수공급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붉은 보온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차가운 욕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11시인가 12시쯤 되면 기숙사에 전기는 차단되어 시험기간을 앞두고 한 달 정도는 강의실을 밤새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나와 밤새 차가운 강의실에서 공부를 했다.

그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나는 언제나 동동 떠 있는 섬같았다. 내가 당시 썼던 생활비는 한 달에 한국돈으로 35만원 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돈이었다. 가끔 스타벅스에 가서 하루종일 진치고 공부를 하다 올 수도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알바생이 시음음료도 잘 갖다줬다. 대신 내 동무들은 내복을 사느냐 휴대폰을 장만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해야 했고 내가 쓰는 돈의 3분의 1정도로 한 달을 생활했다. 가끔 한인들이 중국어 과외선생을 구한다고 알아봐 달라 하여 잘 가르칠만한 친구를 보내놓으면 너무 어리다는 둥, 예쁘지 않다는 둥, 별 씹스러운 소리를 지껄였고 이 개자식들은 시간당 25위안 (당시 한화 4천원 가량)이 비싸다며 그것도 깎으려고 들었다. 나도 노하우가 생겨 2학년 끝날 무렵부터 한국인 중 누가 원어민 과외를 찾으면 이쁜 여자 찾으시려면 KTV(룸싸롱) 가시고 진짜 공부하실 거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가 영어를 알려주고 중국친구가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식의 언어교환을 하던 복단대 친구는 나보다 2학년 위였는데, 안휘성에서 온 아이였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그녀가 얻은 직장에서의 봉급은 택시기사의 반절도 안 되는 금액, 그러니까 내 한 달 생활비가 못 되었고 그 친구가 기숙사에서 나와 사는 주택은 우리식으로 말하는 닭장집 같은 곳이었는데 천장에 백열전구 하나 덜렁 달려 있는 방 하나에 공동주방을 쓰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맘에 든다고 좋다 했다.

부자동네로 소문난 절강성의 항주나, 복건성의 온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아이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자꾸 떠오른다. 커피숍에서 아이패드를 놓고, 노트북을 놓고 영어책에 미친 듯이 줄을 치며 이어폰을 끼고 있는 이 나라의 20대들을 볼 때마다 2002년도쯤 내가 함께 밥을 먹던 땟구정물 흐르던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눈빛이 닮아서다.

10년도 훨씬 전에 하나언니 하나언니하며 노트를 빌려주는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거대한 도시에 와서 돈의 위력에 주눅들어 하루 하루 조심스럽고 위태롭게 살아갔다. 중국어 과외를 하러 갔는데 이상한 몸짓을 보내는 한국남자도 만났고 눈 뜨면 코 베어간다는 한국속담같이 상하이라는 도시는 학교만 벗어나면 줄줄이 돈 달라는 곳만 있었는데 아이들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꿈은 월급 꼬박꼬박 받는 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거나, 고전문학의 당나라 詞도 잘 짓던 아이들의 재능에 비해, 아이들의 눈빛은 늘 흔들리고 불안했다. 물론 그 눈빛엔 맑고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고 3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은 살아남는다는 것이 뭔지, 도시가 뭔지, 돈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에게 결여되어 있던 것은 정확한 방향과 철학, 꿈이었다. 막스 레닌 시간에 모두 엎어져 자던 아이들에게 철학은 돈 버는 일이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이 도시에서 옆 도시에서 만나는 청년들에게 자꾸 그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대신 이 나라 오늘의 눈빛은 원한과 불만이 조금 더 강하게 엿보인다는 것이다.

꿈을 위해 달린다고 얘기하는 청년들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 도대체 쟤가 말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꿈을 위해 살아왔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 역시도 그 사람이 말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온갖 부조리에 침묵하고 타협하며 결국 이 시대가 말하는 꿈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생각해야 하는 것인 모양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꿈꾸는지 명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주 소수지만. 그들을 응원하며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졌다. 그간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눈동자엔, 맑고 순수함 따위는 없었겠지만, 원망이나 불만이 조금이라도 가셔지는 날을 죽기 전엔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꿈 없는 세상, 꿈꾸기 힘든 세상에서, 제대로 된 꿈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 둥둥 떠다니는 불안한 눈동자가 거대한 황포강의 야경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자꾸 그립게 한다.

2014. 9. 24.

아이들은 죄가 없다.

1.

남편이 틀어놓은 뉴스와이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자막속보 위로 신나는 여름방학이라는 뉴스가 흐른다.
초등학교 1학년들의 첫 방학을 소개하는데 교복을 입은 사립초등학교에.. 방학동안 기대되는 일을 발표하는 아이가 8월에 싸이판 가는데 바다에서 고기 잡을 일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낯설다.
아이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2.

동생학원에 1학년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등록과정부터 부모가 결제는 나중에 할테니 아이 먼저 보내겠다고 하여 동생이 당황했다.
아이가 학원에 와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남자친구가 몇 명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단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왔는데 눈물자국이 있는 상태로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도 엄마가 눈물도 닦아주지 않고 데려다주고 갔단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엄마 아빠는 매일 “야근” 하느라 늦게 오고 언니가 둘 있는데 언니들은 심부름만 시키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저는 혼자예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3.

자율적으로 혼자 알아서 하게 하는 범위가 어디냐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다 부러진 연필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보거나 알림장 한 번 들춰보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거나 아이 혼자 바닥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 그렇다.

4.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 모두 다른 가정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 어느 아이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내 새끼도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새끼 챙기는 것도 우습지만 내 새끼만 챙기겠다고 사는 짓은 더 우스운 일이니.

5.
사무실 건물에 같이 입주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가끔 물품을 전달한다. 지난 달에는 정기후원도 약속했다. 작아진 신발이나 우리 아이의 우산을 사다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더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어릴 때 저런 센터가 있었으면 내 삶의 트라우마도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매일 매일이 번뇌다.

누구와 일할 것인가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듭니다. 악의적으로 만든 제도도 있었지만 현대사회는 대부분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들이 많습니다.
그 제도가 현장으로 갔을 때 많은 것들이 변질됩니다. 제도의 의의를 고민하고 늘 생각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습니다.

제도는 현장에서 누가 실행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사업이 되기도 하고 운동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지속성의 승패가 갈립니다.

단발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밀려나는 게 순리입니다. 새로운 사업들은 사회의 요구에 발맞춰 순식간에 등장하고 사그라집니다.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모든 경쟁에서 이기는 완벽한 제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 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엊그제 모 단체의 25주년사 편집회의를 마치고 난 다음의 소회. 페이스북친구분의 고민을 듣고 답글을 적다가 좀 길게 정리해 봄.

고양이는 대물이므로.

http://m.huffpost.com/kr/entry/5556985홈플러스 PB냄비 폭발사건

배상책임 담당자가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대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의 신념이 그닥 굳건하지 않았다고 치자.
신념보다 언제나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고 치자.

대물배상을 적용할 것인지 고객님의 소중한 반려동물은 법상으로 동산에 해당하나 저희 홈플에서는 이 법제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하여 모든 치료비를 배상해드릴 예정이오니 부디 고양이가 완쾌되길 기원합니다. 라고 했다고 치면.

이렇게 일을 처리한 직원이 칭찬받고 언론에도 알려지고 고양이 동호회에서 고양이 사료는 홈플에서! 라는 움직임이 일어나서 승진도 하고 포상도 받고 자긍심도 느낄 보장은 매우 미미한 반면

법적처리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배상책임보험이 안될 것이 뻔하고 회사내 손실로 처리를 해야 하고 상사에게 불려가 손실처리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하는데 담당상관이 고양이를 매우 싫어하거나 고양이는 동산이 아닌 생명이라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

이 배상책임 담당자와 그 외 관련자가 이 문제로 회의를 했는지도 궁금하다.

중요한 건 신념이 확고하지 않은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당장 짤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일의 여파로 인한 퇴사까지 각오하고 “당신의 신념대로 행동하세요” 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잔인하다. 가장이 가족의 밥줄을 걸고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여기는.

시스템이 문제다.
법은 언제나 가장 늦게 움직인다. 고양이연대는 고양이 구조보다 고양이를 법상 동산이 아닌 생물로 인정하게 하는 법령을 마련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는 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014. 7. 4.

세월호 사건일지

노후한 배가 있었다. 
정부정책이 바뀌어 사용기한을 늘려주었다. 
불법 증축과 개조를 했다. 
화물을 3배나 더 실었다. 
그 화물을 결박하지도 않았다.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다. 
그러나 출항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탑승했다. 
탑승자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침몰했다.
선장와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다.
구명정이 펴지지 않았다.
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안내 방송은 없었다.
해경은 40분이 지나 도착했다.
신고한 아이에게 GPS 위치를 물었다. 아이는 GPS를 몰랐다. 

해경의 구명정은 선장과 선원을 구출하고 더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구한 것은 민간인과 어업지도선이었다.
중대본부가 꾸려지지 않았다.
기자들이 몰려왔다.
친구가 죽은 걸 알고 있냐고 살아남은 아이에게 물었다.
안행부 장관이 와서 참모들과 치킨을 시켜먹었다.
밤이 되었다.
구출된 선장과 선원들은 해경의 개인소유 아파트에서 첫 날밤을 보냈다.

민간잠수사들이 몰려 왔으나 지휘체계가 잡히지 않아 내려갈 수 없었다.
선주와 해경이 계약한 업체가 독점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독점계약”에 가로 막혀 수중진입에 실패한다.
업체와 자원봉사, 그 사이의 해경은 타협하지 못한다.
한 쪽은 사람의 목숨을 우선시 하는데 한 쪽은 실적과 계약, 윗선의 눈치를 중시하니 타협점은 없다.
교육부 장관이 내려와서 사발면을 먹었다.
총리가 내려와서 물병을 맞았다.
대통령이 내려왔다. 어떤 부모들이 무릎꿇고 빌었다. 책임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천명하고 돌아갔다.
해경 대변인이 발표를 하던 중에 예비역 중령이 나타나 왜 입수를 방해했느냐고 따진다.
구조가 지지부진하자 부모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경찰 수백명이 나타나 잽싸게 가로막는다.

분향소가 차려진다.
정부주도 분향소의 이전 사실을 죽은 아이들의 단체카톡방에 통지한다.
대통령이 조문을 했다.
신원미상의 조문객이 대통령의 등뒤에서 접근했으나 안전사고는 없었다.

알바생의 장례비는 지원할 수 없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조작업중이던 잠수사의 바지선에 해경선박이 충돌했다.

한 번도 실종된 적 없이 갇혀 있던 아이들이 시신이 되어 4km 밖에서 발견되었다.
사고가 난 지, 17일이 지났다.

– 가만히 있으라, 기다리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17일째 되는 날, 지하철이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승객들은 안내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침착하게 빠져나와 스스로를 구했다.
이제 그 어떤 재난이 닥쳐도 그 누구도 안내방송을 믿지 않을 터이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이게 국가를 바꿀 것이다.

믿음의 메뉴얼

이 나라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인간 없다는 옛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그 말은 인간은 모두 거기서 거기다, 완벽할 수는 없다. 라고 받아들여도 되지만, 약간 꼬아서 보면 –
아무리 잘난 척 해봤자 너도 분명히 꼬투리 잡힐 게 있다라는 협박이기도 하고 더 깊고 넓게 보면 이 나라의 구조는 예로부터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게 살 수 없는 체제가 몇 백년간 곤고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대참사가 일어나면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하는 메뉴얼이 있다.
피해 규모가 엄청나도 그 구조가 단순하면 타겟을 하나 잡는다. 모든 화살과 책임을 한 개인에게 몰아간다. 물론 그 개인은 사건의 주범이기도 하고 극악무도한 짓도 저질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까지 인간이하의 짓거리를 할 때까지 국가와 정부, 사회안전망이 여태 아무 기능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국가는 최선을 다해 악마를 만들어 낸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도록 사회안전망은 무얼했으며, 재범 가능한 성범죄자의 관리는 어찌 되었으며, 초동수사가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며,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 치안은 어디에 있었는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은 개인의 악마성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다. 얼굴도 공개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며 9시 뉴스의 절반을 이 인간이 얼마나 악마인지!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심지어 인육을 먹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거면 모든 책임소재 추궁의 게임 끝난다. 악마라도 인간인데 개인 하나 감당하지 못할 부실한 정책과 정부는 범죄자가 “너무 악마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복잡한 사안의 경우, 혹은 언론통제에 실패할 경우, 고구마 줄기를 캐서 적당한 선에서 조직을 작살낸다. 정당도 없애고, 간첩도 만들고, 기업도 날리고, 기업주를 단두대에 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기업주는 죄수복을 입고 플래시세례를 받는다. 그렇게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나면, 권력은 고요히 제자리로 돌아간다.

예상컨대, 언론통제에 실패한, 나쁜 짓도 똑바로 하지 못한 멍청하디 멍청한 이번에는 아마 한 종교집단을 날리고, 몇 개의 기업을 날리고, 몇 몇 관공서 책임자가 옷을 벗고.

오늘도 하늘색 화사한 자켓을 입은 그 사람이, 회전의자를 돌려 창밖을 보며 슬며시 웃을 거 같다.

소름끼치네.

• 덧붙여 나는, 이 모든 타겟화와 언론플레이가 누군가 지능적으로 계획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이다. 부실한 국가 시스템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국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충성만 강요 받으며 환갑을 넘긴 사람들은, 정말 한 마리의 악마가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고 굳게 믿는다.

2014.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