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늘이 돋는다

1.
엄마,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이 신을 만든 게 아닐까?
– 그거 니가 몇 년전에도 물어봤던 거야.
그때도 엄마가 그런 거 같다고 했었어.
그랬나?
– 어.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이 풍진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왜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지, 왜 계속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신이 있다고, 불가항력이라고,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면 그때부터 모든 삶은 심플해진다.

이것이 내 팔자라고, 사주가 그렇더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면 안간힘을 써도 안되는 일에 관해,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을 믿어버리면,
내 인생이 그닥 쓰레기같지 않게 느껴지니까.
내 삶의 모든 노력이 공허하게 부정당하지 않는 기분이 드니까.

2.
다음 주에 끝나는 종로구 모처의 노인글쓰기 수업의 참여자들은 중산층 이상, 대다수 연금생활자로 보인다.
그 격차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고학력자들이고 글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직접 한글파일에 사진을 붙이고 사진에 캡션을 붙이는 70대가 있다. 반포주공아파트가 천 만원일 때, 아파트를 사지 않고 카메라를 샀다는 노인이 있다. 평생 공직에 있어서 인생이 참 무료했고 오만하게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하며, 개인의 모든 울분을 사회적 문제와 정치이슈로 간단하게 치환해버리는 수구전통의 성향을 가진 분이 거침없이 박근혜는 자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편이 은행원이었고 나중에 회계사가 되었는데도 사는 게 늘 가난했다고 고백한 77세 여성노인이 있었다. 모두들 은행원 월급이 썩 괜찮은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고, 그녀가 혹시 사치를 한 건 아닌지, 욕심이 많았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질문이 오갔다. 77세의 곱상한 이 할매는 성격이 명랑하고 장난기도 많아 뒤에서 보고 있으면 중학교 2학년 응원단장 같다. 사람들의 질문에 토라진 할매에게 다가가, 남편이 자수성가했고 줄줄이 동생들 공납금을 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슨 사정인지 알 거 같다고 말을 걸었다.
저는 그거 이해해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죠. 라고 웃었더니,
육남매의 외아들이고 혼자 공부한 남편이었다며 자기도 육남매의 맏딸이었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개천에서 난 용은, 그 개천의 장력에 의해 이무기로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집집마다 개천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늘로 승천하지도 못한 채, 가시나무 가지에 걸려 억울하게 뜬 눈으로 소멸되는 삶이 있다.

줄줄이 매달리는 동생들의 공납금을 대고, 병든 가족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고, 집집마다 있는 화상들의 사고를 치닥거리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졌던 사람들이, 왜 국가의 의무에 대해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나, 이해하고 싶어졌다.

복지관 뒤에 아파트에 혼자 사는 영감님은 월 300만원 정도 되는 연금을 받아 살고, 막내딸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중이라 했다.

3.

큰 아들이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보증사기를 당하고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1년이 흘러가, 며느리와 교대로 아들을 돌보는 84세의 노인은 월 40만원으로 살고 있다. 쓰러진 아들이 빚을 내어 구해준 전세집의 보증금이 5천만원이 넘고, 연락이 끊긴 둘째 아들도 호적에 올라 있어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복지관에 나오면 시름을 잊는다고 고백했었다.

평생을 비정규 공무원으로 일했던 78세 노인은 부인을 일찍 여의고 딸들은 가난하고 아들은 소식을 모른다. 복지관 청소를 하며 노인사회활동 급여로 월 20만원을 받고, 노령연금 20만원도 받는데, 매달 월세가 22만원이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노인사회활동이 중단되어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어렵다고 주거비 지원을 요청했다고, 복지사가 전했었다.

지난 달에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다.

그 이전에는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을 만났고, 작년 겨울에는 쪽방촌의 작은장례에 갔다.  발이 없는 노인이 문상을 왔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지하 장례식장으로 들어서 슬리퍼를 벗고 고인에게 절을 했다. 고인과 그는 지나가다 몇 번 본, 이웃이다.

나는 수업 중에 노인들이 하는 말을 기록하다가
“왜 노인들의 빈부격차가 이리도 큰가” 라고 적었다.
그리고 10초쯤 쉬었다가 바로 아랫줄에
늙으나, 젊으나 매한가지. 라고 덧붙였다.

4.

파업과 철야농성중에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더라는 전설같은 사내가 환갑을 넘기고도 여전히 뽀얀 얼굴로 매일 TV에 나와 조근조근 말을 한다. 이제 그는 원했던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난세의 영웅을 바란다.

그 방송국에서 하는 예능프로에 “운이 좋아 노래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 빼어난 미모의 여가수가 나와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꿈이 부정당하는 말과 같으니까. 그 사람이 간절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간절히 원했던 게 무엇일까.
그녀의 말과 달리,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살아남는 거였다.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지뢰가 터지는 언덕을 넘어 까닥하면 온 몸이 터져버릴 지도 모르는 순간마다, 그저 살아남기를, 그저 별 일 없기를 바랐는지도.

5.

일찍 세상을 떠난 막내삼촌은, 1951년 1월 1일 생이었다. 천하에 불운한 팔자라고들 했다. 남들의 말처럼 삼촌은 자기 능력을 단 한번도 발휘하지 못하고 바다 건너에서 위암으로 일찍 갔다. 문득 삼촌 생각이 났다.

미국의 오바마 케어가 사라질 거라 한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약을 부쳐야 할 것이다.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조금 더 근사한 모습으로 살길, 조금 더 의연한 모습으로 죽길.
올 겨울은 박근혜탄핵을 돕는 우주의 기운 때문인가 뜨듯한 겨울이다. 몸이 많이 피곤한데, 사람들의 상처가 자꾸 혓바늘처럼 입속에 맴돈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야겠다.

2017.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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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서울 중림동

작은 장례 – 2016년 1월 21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사랑의쉼터, 돈의동 첫 작은장례를 치르다.

 

돈의동은 탑골공원의 담벼락을 끼고 돌아 종로 3가에서 5가의 숨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주거지역이다. 주소는 돈의동 103번지. 103번지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한 사람이 산다. 103번지에만 700여명이 산다. 이들은 모두 혼자 산다. 옆 방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삶을 나누며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이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혼자다. 사람들은 이들을 쪽방촌 홀몸노인, 혹은 독거노인이라고 부른다. 700여 명 중, 노년층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노인인 것도 아니다. 103번지의 골목을 오가다 보면 꽤 많은 장년층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청년 장애인도 눈에 띈다.

고독사가 이슈로 부각되며 노인고독사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통계청에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고독사망자 연령비율 1위는 60대 이상 독거노인이 아니라, 50대 남성이었다.

103번지 주민들은 어딘가가 아프다. 젊은 시절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 직업으로 인한 질병을 얻은 사람, 여러 이유로 마음을 다쳐 술로 달래다 몸도 다친 사람, 직업병, 만성질환, 성인병, 신체적 정신적 장애, 이들은 모두 각자 다양한 이유로 아프고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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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도에 붙어 있는 돈의동 지도

가족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공동체다. 이 기초공동체를 기반으로 사회가 이루어지고 지역과 국가와 이익집단이 탄생한다. 기초공동체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돈의동과 다른 쪽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개체가 되어 골목을 떠돈다. 이들은 가난과 굶주림, 추위나 더위 따위의 물리적 환경은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몇 년 전 노숙자 인문학운동을 하던 이가 했던 말을 잊지 않는다. 노숙자의 공통점이 게으르거나, 술문제가 있거나, 아프기 때문인 거 같냐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가족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대화를 할 사람도, 없어요.”

돈의동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세상에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고 사람에 의해 길러진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는 막막한 어둠,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 돈의동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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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103번지. 2015년 가을촬영

이 돈의동의 복지를 담당하는 것은 종로1,2,3,4가 주민센터와 사랑의쉼터라는 복지관이다. 복지관은 구세군재단이 위탁운영을 한다. 작은 골목의 사이로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엔 교육관과 샤워시설이 있고, 1층과 2층엔 휴게공간이 있다. 3층에는 사무실과 상담실이 있다. 이화순소장과, 사무국장과, 복지사 둘이 이 공간에서 업무를 본다. 복지관 쉼터 계단에는 “주폭”에 대한 경고가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술을 먹고 난동을 피우는 주민들이 많다. 5년간 일한 복지사는 주민에게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거기 있다. 주민들이나, 주민복지를 책임지는 행정직들도 술 때문에 괴롭다. 술을 마셔서 괴롭고 못 마셔서 괴롭다. 술에 취해서 괴롭고, 술이 안 취해서 괴롭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맨 정신에 버틸 수 없는 날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가난한 자들의 마취제는 화학작용으로 만든 술뿐이다. 소주 한 병 만큼의 위로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다들 자기 한 몸 누일 쪽방보다 커다란 사연을 품고 산다. 죽이고 달래고 얼러봐도 상처받은 일들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추운 날 시린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길모퉁이에서 툭 치고 튀어나오는 고통이 이들을 들볶는다. 사연을 말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추운 겨울, 쪽방촌에 죽음이 문을 두드린다. 한 달에 한두 명은 시신이 되어 103번지를 떠난다. 이들은 무연고자다. 공고를 내도 가족을 찾아도, 시신양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죽음은 무연고 독거자의 시신처리라는 이름을 쓴다.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죽어 사라질 육신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103번지의 이웃들은 애도를 표할 방법이 없다. 살아서 한 줌 도움이 못되었다면 가는 길이라도 잘 보내주고 싶은 103번지의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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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쪽방촌의 한 건물. 아래에서 위로 3층까지 주거공간이 있다. 2015년 여름 촬영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죽음의 의식을 개선하는 단체다. 상업주의에 휩쓸려 가정의 대소사도 외주를 주게 된 이 시대에 함께 하는 상포계를 통해 의례의 힘을 확인하고자 한다. 자본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고 혈연으로 한정하지 않은 타인의 장례를 준비한다. 그 조합비의 24%중 20%는 조합운영비, 그 중 1%를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하고 4%는 연합회 회비로 사용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을 가진다. 무턱대고 사회공헌만 하는 곳은 협동조합보다 사회복지재단이 걸맞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모인 협동조합이라면 공동체의 회복에 지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 원칙을 지켰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는 상포계를 통해 상장례의식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기 분야를 지키며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MOU를 맺었다.

직장으로 처리되는 돈의동 주민들의 장례를 대신해서 치르기로 약속했다. 병원의 영안실이나 상조회사의 식사대접, 화려한 제단과 방문객을 대신해, 이웃들이 죽음의 본질을 생각하며 애도하고 한 번쯤 그를 기억하고, 영정사진을 놓고 잘 가라고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함께 살던 공간에서 그를 기리는 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착안한 “작은 장례”이다.

장례의식은 상업적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알고 있는 장례절차는 전통의식과도 다르고 죽음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도 아니다. 상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계산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남았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작은 장례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사회환원이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이 깊어갈 때 작은 장례를 약속했다.

2016년 1월에 돈의동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약속한대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사랑의쉼터와 첫 작은 장례를 준비했다.

좋은 일을 할 때 외부에 얼마나 알려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갈등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 때문인지 좋은 일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작은 장례를 준비하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이 사람의 죽음을 한 번쯤 기억해 달라는 의도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추도식을 취재하겠다는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무국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슈화되어 이것이 마치 행사처럼 비춰질 때, 가치가 훼손되고 본질이 곡해될까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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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지관 앞 2016년 1월 21일 아침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아침. 며칠 째 혹한이 몰아치고 있었다. 엘니뇨현상으로 겨울이 따뜻할 거라더니 자연현상은 인간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일주일째 영하 10도에서 수은주는 깔짝대기만 했다. 대설이었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겨울철 맑은 하늘은 추위의 상징이다. 하늘이 맑고 햇빛이 쨍쨍했다. 사랑의쉼터 앞에는 카메라와 휴대폰, 수첩을 든 취재진들이 몰려왔다.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가시는 길 평안하길 바란다는 추도사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김상현 이사장이 읽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사랑의쉼터 이화순 소장이 상주가 되었다. 삼베완장을 차고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웃들이 소식을 듣고 와 조문을 했다. 사랑의쉼터 지하 교육장엔 작은 제단이 차려졌다. 고인의 독사진도 없어 주민등록증을 확대해 영정사진을 놓았다. 검소한 꽃바구니 두 개가 제단을 지켰고, 흰 국화와 향, 간소한 제기가 놓였다. 간단한 다과가 한쪽에 차려졌다. 쪽방만한 돗자리에 이웃들이 차례대로 신을 벗고 올라가 고인과 이별했다. 신발을 벗은 맨발을 사진기자가 뒤에서 찍었다. 굳은살만 남은, 한 생명의 삶을 말해주는 발뒤꿈치에 애도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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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아이가 조문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에게 소주 한 병의 위로가 되었을까.

적어도 오늘 돈의동을 떠난 고인의 죽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여기 한 사람이 힘들게 살았고, 그리고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를 기억했고, 2천 원짜리 국수를 지하시장에서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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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지하시장, 조문객들은 2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나눠먹었다.

몇 사람은 말했다. 나도,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데, 나 가는 길도 저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년째 결연장례를 약속했다. 가는 길을 약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집단구술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이 늘어나고 한겨레두레의 공동체기금이 늘어날수록 외로운 죽음이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 같은 하늘 아래 머리를 내리고, 같은 땅 위에 발 딛고 살던 사람들은 먼저 가는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그의 삶을 기억하고 이별을 슬퍼할 권리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길 너머에 사람답게 이별하는 의식이 있다. 장례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차가운 삶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골목에 뒹구는 소주병처럼 깨어지지 말자고, 훈훈하게 덥힌 따뜻한 술이 되어, 고인의 가는 길을 덥히고 싶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에 살던 故김철구씨의 명복을 빕니다.

루의 산책 

성곽이 있어 다행이지 죽은 자들의 숨결도

모두 갈아엎은 천박한 땅위에

발 딛지 못하고 간신히

폴짝

어둔 밤이라 망정이지

존재는 헛되어서

제 이름을 가지니

 

눈물을 흘리지 마

산이 무너질테니

물이 차면 숨이 막히니

메마른 성곽이라 다행이지

발 딛지 못하고 다시

폴짝

2016. 1. 18.

한 사람이야기 12. – 미정이

열 손가락 가득
색색의 메니큐어를 바르고
칠판 앞에 서서
교장에게 이르지 말라던
여선생이 있었다

추천도서 목록을 파란종이에 적어
내 주머니에 넣어주고
작은 피크닉 옷장 하나 있는
자취방 구경도 시켜주던
입이 크던 서울대 출신 여선생

어느 날 나를 불러 바들바들 떨면서
자퇴를 해버린 내 짝이던 미정이
얘기를 했다
글쎄 걔가 동자승이 씌인 무당이었댄다
지금은 점집에 가 있대
나는 미정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는 나보다
열 세살은 많은 그 여선생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고 다니던 십자가 하나 주고 싶었지만
연락오면 전해드리겠다 대답만 하고
쪽문 달린 자취방을 나왔다

미정이네 집은 비어 있었고
아무도 미정이를 찾지 않았다
어른들은 미정이를 무서워했고
아이들은 미정이를 천박하다 했다

미정이는 가난한 집
돌봐줄 이 없는 가난한 내 짝
밥차려 주는 사람 하나 없어 소주만 마시던
눈이 길고 가늘던 내 짝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삶의 과거가 모두 보인다던 미정이는
열 다섯 나에게 뭐라 뭐라 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전 학교의 교무실을 털다 쫒겨나 전학온
나보다 한 살 많던 미정이는
이제 마흔 한 살이 되었을텐데
요즘도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과거가 보일런지
만날 수 있다면 술 한 잔 따라주고
이제 내 미래도 말해주면 안될런지

2014. 8. 31.

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한 사람이야기 – 10. 남욱

휘경역에서 탄 지하철은 꿉꿉한 냄새가 났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욱 불쾌하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증거겠다. 마음따위 살필 여력은 없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것이고 이 감정을 폭발시킬 어떤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게 하루를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 저녁은 술을 마실 것이다. 그 후엔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야지. 내일은 어차피 아르바이트 비번이기도 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차려주는 라면을 먹고 나서 도서관에 나와야겠다. 인생은 정해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목적한 대로 온 적 없다. 목적이라도 세우지 않으면 삶은 완벽하게 뒤틀려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을리 사는 날도 있지만 줄곧 게을리 산 것도 아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 아무 것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스쳐가면 남욱은 끝없이 불안해졌다.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강위를 달리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꺼지고 사람들이 죽었듯 남욱의 하루도 그렇게 꺼져버릴 것 같았다.
여름, 이 방학이 지나기 전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남욱은 빈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번 달 월급을 계산하다가 잠이 들었다.
불안하다던 흔들리는 기차는 때론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듯 사람들을 흔들흔들 재웠다. 누구나 그렇듯이 남욱도 갈아타야 할 역에서 눈을 뜨고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붉은 색 라인과 파란색 라인이 만나는 곳이다. 요란스러운 소음이 잠이 덜 깬 남욱을 휘감았다. 혼자만 똑바로 서 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스물 일곱.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은 지 몇 달이 되었다. 누나들은 발길을 끊었고,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한 기업들이 늘어갔다. 토익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보다 뛰어났으나 어차피 그래봤자 서울대가 아니라는 것. 남욱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몰려오는 적군처럼 힘차게 걸었다. 2대 독자 누나 여섯, 장가가기 글렀다는 주변의 비아냥도 호기롭게 웃어넘기던 건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과거같았다. 스물 일곱이 아니라 마흔 일곱쯤 된 건 아닐까. 남욱은 번잡한 플랫폼에서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무릎을 약간 굽히고 두 팔로 허벅지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다시 일어섰다.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 오늘따라 옥스퍼드 사전을 가져온 게 후회되었다. 역은 길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파란색의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다시 플랫폼에 섰다. 해가 지고 있을꺼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여러분은 모두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한 발 물러나라, 한 발도 물러서기 싫었다. 남욱의 얼굴 앞으로 열차가 들이닥쳤다. 지하를 뚫고 달려온 열차의 긴 호흡이 거센 바람이 되어 남욱을 밀어냈다. 눈을 찌푸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니 발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럼 애초에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남욱은 이 나라의 모든 일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열차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남욱이 갑자기 열차의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쳤다.
노트북.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붉은 라인의 열차, 앉아서 자던 그 자리 머리 위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다. 친구에게 일주일 빌린 것이었다. 아 노트북. 남욱은 문 앞의 기둥에 마른 몸을 지탱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역무실로 뛰어갔다. 노트북의 브랜드를 말하고 노트북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 누가 그 노트북을 돌려줄 것인가. 땅속에 놓고 내렸으니 이미 지하의 것이다. 남욱은 역무원이 내어주는 서식에 분실물 상태를 꼼꼼히 적었다. 015로 시작되는 번호를 적었다. 괄호안에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연락이 안될 수 있음’ 이라고 적었다.
역무원은 빙긋 웃으며 찾을 수 있을거라고 남욱을 위로했다. 승강장으로 돌아가 다시 파란 열차를 타고 거대한 빌딩 아래 지하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 버스를 탔다.

저녁내내 지하철공사에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노트북에는 소유자의 연락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남욱이 아르바이트 하는 햄버거집 주방 끝에 서서 멍하니 노트북 생각을 하고 있자 오늘 그 집에서 자려고 했던 여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남욱은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친구의 것이고, 일주일을 빌렸으며, 어느 역에서 내릴 때 머리 위에 두고 내렸으며 분실물 신고를 하고 왔으니 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트북이 얼마나 해?” 여자가 되물었다.
남욱은 여자를 봤다.
“비싸.”

짧은 치마를 입고 소스통을 팔에 끼고 홀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닦고 재떨이를 비우던 여자를 가만히 봤다. 남욱은 여자가 모아둔 돈이 있을까 생각했다. 여자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일까 생각했다. 여자가 혼자 사는 방도 지하에 있었다. 월세가 30만원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친구의 노트북은 여태 이 집에서 고기를 구운 석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갈 판이었다. 여자는 노트북의 가격이 얼마쯤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을 같이 밤새 술을 마시고 여자의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왔다. 남욱은 여자가 노트북을 어디서 파는 지나 알까 궁금해졌다. 가만히 여자를 보고 섰는 남욱의 시선을 알아채고 여자가 남욱앞에 서서 턱을 괴었다. 주방은 조금 높게 돋군 자리에 있어 남욱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남욱은 여자의 머리통을 한 번 쓰다듬었다.
“찾을 수 있겠지?” 놀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남욱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욱은 한숨을 참으며 입꼬리를 길게 늘려 웃어보였다.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욱은 몇 날밤이나 탐닉했던 여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2014. 7. 15.

한 사람이야기 – 9. 마후라아줌마

그 길의 1층은 대부분 옷가게들이었다. 서울시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을 팔았다. 유난히 큰 사이즈의 옷이나 큰 신발, 맞춤 와이셔츠, 용과 태극기가 그려진 하얀 면티부터 요란한 금박무늬의 가운들, 화려하지만 전혀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지 않은 드레스, 브랜드이긴 한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 앉은 자리에서 세월을 울컥울컥 집어삼킨 듯한 소품을 파는 가게, 도장을 파는 가게,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귀금속, 여행용 트렁크, 시장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골목, 수제화를 파는 집, 목적을 가진 손님들이 드나들만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은 가게인데 여기서는 줄줄이 비슷한 가게들이 가득했다. 셔터를 모두 내린 길 역시 범상치 않았다. 4차선 도로는 유독 좁게 느껴졌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 노변에 주차한 차들 사이로 인적도 끊겼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주말을 제외하고는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은색의 셔터만 이어진 길거리는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기차가 서 있는 듯 했다. 은하철도 999가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그 정류장은 바로 여기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고 누군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업을 마무리 하고, 때로 어떤 사람은 몇 시간동안 천국에 있고 싶다며 해피스모크를 찾는 거리,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벌건 대낮에 속옷을 벗어 흔드는 여자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거리였다. 무리지어 걷는 흑인들은 이 곳 먼 타향에서 괜한 눈치를 보고 이 도시는 언제나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며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라는 반도에서 온 사내들과 80년대 달력에서 튀어나온 듯, 아니면 저 먼 미래에서 온 듯, 시대와 역사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이 거리는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다. 철모를 쓰고 긴 언덕으로 올라가는 헌병들과 그들의 군화소리를 들으며 긴장하는 어린 사내들과 몇 십년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늙어버린 영감과 몇 십년간 다른 사람의 목둘레를 재며 늙어가는 초로의 사내도 이 거리의 주인은 아니었다. 모두가 타인이고 모두가 이방인인 이 거리에 단 한 사람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밤 10시 59분에 정확하게 이 길을 훑듯이 당당하고 힘차게 지나가는 한 여자였다.

마후라 아줌마.

사람들은 그니를 마후라 아줌마라고 불렀다. 마후라의 정확한 표준어가 스카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스카프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왠지 한국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외국인들이야 그니를 미스스카프라고 불렀지만, 이 동네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이를 마후라아줌마라고 불렀다. 오래전엔 “빨간 마후라”라는 뻔뻔한 제목의 노래도 있지 않았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적절치 못한 단어라 해도 상관치 않고 너도 나도 애국심에 불타 불러제끼던 노래 아니었나.

마후라 아줌마는 오늘도 정확히 10시 59분에 햄버거집 앞을 지나갔다. 그이가 그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에 올린 것은 그 시간에 하루종일 쏟아진 쓰레기를 치우던 주방보조 알바생들이었다. 또래의 사내 서너명이 같이 쓰레기를 담다보면 바퀴벌레 십 수마리가 한꺼번에 출몰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두운 계단에 서서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커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특징적 장면들을 잡아내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중 서울의 어느 대학에 다니는 안경을 쓴 청년이 도드라졌다. 마후라 아줌마가 그 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 청년은 시계를 확인했다. 일주일쯤 지나 마후라 아줌마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정확히 10시 57분쯤 밖에 나가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마후라 아줌마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냈다. 청년은 흥미진진한 보물지도를 발견한 소년처럼 매니저에게 마후라 아줌마를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매니저는 이미 몇 년 된 사람이라고 뚱하게 대답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청년이 뻘쭘해질까 걱정되었는지 매니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색이더냐고 물었다. 청년은 여태 관찰한 바를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마후라 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언제나 한가지 색깔로 치장을 했다. 빨간 블라우스에 빨간치마, 빨간 마후라와 빨간 스타킹, 그리고 빨간 구두. 어느 날은 보라색 자켓에 보라색치마, 보라색 스타킹에 보라색 구두, 노란색이 전부인 날은 모자를 쓰기도 했고 초록색으로 온통 감싸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옷색깔과 같은 색깔의 마후라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갔다. 머리는 붉은 자주색같아 보였는데 어두침침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붉거나 주홍색계열임은 틀림없었다. 어깨를 넘는 길이에 앞머리를 잔뜩 부풀려 올렸고 머리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몸을 감싸고 있는 색깔만 바뀔 뿐이었다.

청년은 처음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달넘게 마후라아줌마를 보고 있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그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는 듯 했다. 마후라아줌마를 다른 곳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 길가에서 그 시간에만 발견되었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긴 사람도, 20년을 넘긴 사람도 그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청년이 이런 저런 사람에게 그이에 대해 물으면 모두들
“아 마후라아줌마?” 라고 반문할 뿐 아무도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곧 청년도 그리 되었다. 아르바이트 석달차, 오늘도 마후라아줌마가 10시 59분에 지나갔다. 마후라아줌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버스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사람. 이 정류장에 매일 지나가는 버스보다도 사람들은 그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버스가 오는 것처럼, 청년에게 마후라 아줌마의 행진은 그저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2014년 7월 11일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한 사람이야기 – 8. 옥희

홀이 시끄러웠다. 웨이츄리스들은 군데 군데 흩어져서 인상을 구기고 한 테이블을 쏘아보고 있었다. 손님들도 더러 그 테이블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의자에 깊이 앉아 그 테이블의 남자들을 빤히 보는 손님도 있었다. 시선이 집중된 테이블을 제외한 곳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이었다. 웨이츄리스들이 그들이 즐겨먹는 메뉴가 뭔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는 팁이 얼마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 치킨버거에 콜라를 먹는 아저씨은 언제나 2000원, 스테이크에 레드와인을 시키는 남자 언제나 3000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이 가게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외국인들이었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 동네에는 미국의 그 어느 식당보다도 인종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옥희는 가게에 들어오면서부터 직원들의 불쾌한 표정을 보았다. 동시에 소란스러운 취객의 소리가 들렸다. 옥희의 긴 치마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주방에 서서 냅킨을 뽑아 코를 닦으면서 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옥희의 시선도 그 테이블에 가서 멈췄다.

네 남자가 앉아 있었고 가운데는 잘 나가지 않는 3000cc짜리 맥주피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흥건히 취해 있었고 이미 맥주도 바닥에 꽤 쏟은 상태였다. 옥희가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행주 두 개를 들고 맥주잔의 자리를 옮겨가며 테이블을 닦았다.

“저 바닥에 맥주 흘리셨는데요. 좀 닦아도 될까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키가 큰 아이는 짝다리로 서서 남자 넷을 내려다보았다.
“어 그래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술 취한 남자 하나는 안경이 코끝까지 내려온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키가 큰 웨이츄리스가 테이블을 싹 닦아내는데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웨이츄리스의 엉덩이를 만졌다. 툭툭.
“뭐하시는 겁니까?” 웨이츄리스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뭐. 나는 딸 같아서 고맙다고..” 남자가 헤벌쭉, 더럽게 웃었다.
“손님은 딸한테 그러십니까?” 억센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웨이츄리스는 설거지를 하는 뒷주방에 가서 대걸레를 가지고 나와 바닥을 닦았다. 대걸레를 미는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아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까칠하게!”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님, 여기는 식당입니다. 밥 먹는 데예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웨이츄리스는 딱딱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 씨발.. 양놈들만 좋다 이거지? 조선놈은 싫으냐? 줘도 싫으냐?” 남자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웨이츄리스가 대걸레를 바닥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섰다. 남자를 노려봤다.

“니가 뭔데? 이..양공주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남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무실 문앞에 남편과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옥희가 나왔다. 남편도 나와 옥희의 뒤에 섰다.

“여보세요. 손님.” 남자들이 작은 옥희를 쳐다봤다.
“나가세요.” 남자들은 미동도 없이 옥희의 작은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나가시라고요. 여기는 이렇게 술 취해서 소리지르고 우리 아가씨 만지고 시비걸고 그러는데 아니예요. 나가시라고요.”
남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 다리가 부딪치면서 맥주잔이 엎어졌고 맥주가 질질 흘러 남자의 바지에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 니가 뭔데? 너도 양색시야?”

옥희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안경이 코끝까지 걸린 남자가 일어난 순간 옥희가 더 작아졌다.
“나가 이 개새끼야. 어디서 양색시 운운하고 지랄이야? 나가 이새끼야! 양색시? 뭐? 양공주? 왜 양갈보라고 하지? 니들은 어디서 뭐하다 온 새끼들이야? 이러니까 엽전소리를 듣는거야! 나가 이 새끼들아! 이 더러운 새끼들 나가!”
옥희가 우렁차지 않되 명징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뒤에 서 있던 남편이 옥희 앞으로 나서서 한 남자를 끌어냈다. 한 남자가 커다란 남편의 손에 허리춤을 잡혀 거의 들리듯이 문쪽으로 끌려나가자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들도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밝은 홀과 구분된 앞쪽 홀로 남자들이 어어어 하며 끌려 나갔다.

옥희는 남편이 옥죄고 있는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니들은 뭐 했는데? 우리가 여기서 술 팔고 밥 파는 사이 니들은 뭐 했는데? 내가 여기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담배꽁초 주으면서 딸라 번 년이야. 그러는 사이 니들은 뭐했는데? 흥청망청 다 처먹고 니들 때매 IMF 온 거 아냐? 니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술주정을 하고 개지랄들이야 지랄들이! 야! 여기는 원래 니들같은 애들 안 받아! 여기가 술집이야? 니들 조선놈들 떼로 모여서 기집질이나 하는 그런데나 가! 어디 남의 점잖은 밥집에 와서 생지랄들을 하고 술처먹고 염병을 떨어! 어디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이! 니들 때매 국가가 암담해 이 개새끼들아!”

남편이 한 남자를 질질 끌고 지하계단을 올라 1층으로 끌어올려 밖으로 던졌다. 나머지 남자 아르바이트생들도 다른 남자들을 하나씩 붙잡고 위로 올렸다.
옥희는 남편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돌아오자 허리에 손을 얹고 분을 삭이며 서 있었다.

“언니 물 좀 줘라.”옥희는 캐셔박스 앞에 서 있던 지원에게 말했다.
지원이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옥희는 얌전한 유리컵에 담긴 생수를 마시다 말고 다시 말했다.

“지들이 언제 딸라 벌어봤어? IMF나 만든 새끼들이. 하여튼 조선것들은 안돼. 저래서 안돼. 얘, 앞으로 한국손님 가려 받아.”
지원이 흥겹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옥희가 다시 주방쪽으로 걸아갔다. 치마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났다.

#한사람이야기

한 사람이야기 7 – 지원

웃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갈색머리의 남자도 호기롭게 웃었다. 지원의 큰 입은 웃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 넓게 퍼져 광대근육 바로 아래로 올라붙는 입꼬리가 시원했다.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왜 안경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나쁠 뿐이라고 했다. 콘택트렌즈는 불편하고 무섭다고 대답했다. 이물감도 거추장스러웠고 눈 건강에도 해로울 듯 했고, 더군다나, 안경은 지원이 가리고 싶은 긴 얼굴을 감춰주었다. 지원이 바에서 나와 맥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향해 가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덩이는 봉긋 솟아올랐고 허리는 잘록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고, 맥주잔을 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캣워크를 하는 모델처럼 걸었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가리랬다고, 지원은 긴 바지나 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하나같이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고 다소 짧은 종아리는 9cm가 넘는 힐로 감췄다. 하의가 신발 등위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지, 다리가 짧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원이 그렇게 걸을 때는 모델을 하다 은퇴한 20대 후반의 여자로 보였다.

생맥주를 따라온 지원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컵받침을 새 것으로 바꿔주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지원도 “땡큐”라고 입술을 오므리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오늘 노란바탕의 딱 달라붙는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남자는 연신 지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지원은 귀기울여 들었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돈을 넣고 닫을 때도, 웨이츄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술을 만들 때도, 병맥주를 딸 때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지원이 보였다. 지원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만사가 귀찮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면 웃지 않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지원은 거의 모든 순간 웃으며 헬로, 라고 인사했다.

지원의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팁통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었을 때 지원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문을 여는 남자에게 지원은 손을 흔들며 바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보조일을 맡고 있는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원 앞에선 청년은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누나, 함춘임이 누구예요?”

“왜?”

“이거 아까 낮에 대타 뛰다가 받은 건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하고..”

지원은 청년의 손에 든 봉투를 나꿔챘다.

“누구예요?”

“나야.”

“아, 누나 이름이 함춘임이예요?”

“옛날 이름.” 봉투는 등기우편이었다.

지원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청년은 웃으면 안되겠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물러나서 잠깐 멈칫했다. 지원이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지원이야. 알았지?”

청년은 마음이 가벼워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누나 오늘 정말 예뻐요.”

“땡큐” 지원은 다시 입술을 오므리며 발음한 뒤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미소지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지원은 등기우편을 열어보았다.

 

지원의 주민등록지는 이 가게로 되어 있었다. 지원은 7년전 일로 다시 법원을 가고, 그 남자를 만나거나 마주보아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짐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도 몇 대 부러진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옛 인연을 찾아 이 가게로 왔다. 춘임이었던 때, 찾아온 인연은 그녀를 내치지 않고 집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방을 구하기 위해 우사단 길을 걸었고 칵테일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주민등록을 가게로 옮기게 했고 금전출납기와 장부를 맡겼다. 지원에게 장부를 맡긴 여자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주방장에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가 주방을 돌아나와 지원에게 왔다.

“나 와인 한 잔만 줘.”

지원은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길쭉한 와인잔에 따라 건넸다.

“아 예쁘네 이거. 이거 뭐야?”

“로제와인, 어제 장사장님이 신제품이라고 가져왔어.”

와인을 든 여자가 지원을 빤히 봤다.

“그거,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뭐?”

“아까 그 등기우편. 내가 성욱이한테 난 모르니까 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아 언니!”

여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새끼니?”

“어.”

“미친 새끼.”

키 작은 여자는 와인잔을 들고 총총히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펴 놓은 매출장부로 쓰는 다이어리에 글자를 적었다.

‘쇼리언니 로제와인 1병 카를로로시– 장사장 증’

 

 

2014. 7. 6.

한 사람이야기 6 – 쑈리

쑈리는 어두운 방안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제쳤다. 창을 열자 비루한 햇빛이 쏟아졌다. 햇살이 좋은 모양이다. 눈 앞에 흰 먼지들이 날아다녔다. 쑈리에게 모든 창문은 너무 높았다. 담뱃재가 길어져 떨어지려 하자 쑈리는 바닥에 놓인 검은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방안에 불을 켰다. 궁상은 질색이다. 질색하는 궁상을 몇 시간을 떨고 있었던건가.

 

‘어디 못 배워 먹은 그지같은 년 데려다가 사람 만들어놨더니 니가 내 뒤통수를 쳐? 썅년같으니라고.’

 

17년이다.

한 가족처럼 지냈다. 언니가 아니어도 언니라고 불렀고, 형부가 아닌데도 형부라고 불렀다. 그 여자의 아이들은 쑈리를 이모라고 불렀고 낯선 이들은 자매간으로 알기도 했다.

17년이다. 자그마치 17년.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때였긴 하다. 그렇다고 빌어먹고 살진 않았다. 부모나 형제, 가족이 뭔지 알 필요 없이 지냈다. 하나뿐인 오빠는 고향근처 소도시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었다. 내놓을 것도 없는데 괜히 나타나 번잡스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에 상처받았던가, 젊은 나이에 사랑에 상처 안 받는 인간도 있나. 20대였다. 처음 그 동네에 발을 들인 것은. 재치있었고 배짱이 좋았다. 체구와 다르게 손님들과 싸움도 잘 붙었다. 셈이 빨라서 거쳐 가는 곳마다 사장들이 좋아했다. 그런 쑈리를 발탁해서 자기 가게로 데려온 게 그 여자다. 짐을 싸는 뒷통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늙지도 않는다. 환갑이 되어가는데 어쩜 저래 기세가 등등할까.

쑈리는 담배를 물고 여자를 꼬나보았다.

“씨발 진짜 고만해 좀.” 여자는 지치지도 않은 지 쑈리가 트렁크 두 개에 옷 몇 가지 챙겨 나와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떠들어댔다.

쑈리는 계단 아래에 무거운 트렁크를 내려놓고 담배를 발로 비벼껐다.

“어따가 담배를 끄고 지랄이야 저 미친년이! 야!!!”

“잘 먹고 잘 사쇼. 염병 진짜. 니미 뽕이다 이 씨발년아.” 쑈리는 오래전 남자들이 했던 것처럼 주먹을 쥐고 왼손으로 팔목을 감쌌다. 손등을 아래로 한 작은 주먹, 검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워서.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17년을 한결같이 언니라고 부르며 살아온 여자였다. 자기는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남자 바꿔치워 아들 둘도 잘 키우지 않았나. 그럼 나에게 뭐 하나라도 넘겨줘야 옳은 거 아닌가. 가게 매상 하나만 내달라는 게 그렇게 부아가 나는 일이었나. 그럼 저년은 여태 나를 뭘로 본 건가. 내가 지 메이드(maid)야? 미친년. 호랑말코같은 썅년. 좆같은 년, 개보지같은 년. 쑈리는 길바닥에 서서 혼자 욕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가 쑈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쑈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마침 지나던 택시가 있어 얼른 올라탔다.

 

이 호텔에선 그 동네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저 땅에서 몇 십년을 부쳐먹고 살았나. 마치 소작농처럼. 죽어라 노동을 해도 퇴직금은커녕 빤스 한 장 못 받고 쫓겨나다니 주방에서 스테이크 고기를 쌓아놓던 낡아빠진 양은 쟁반으로 그년의 머리통을 깨지도록 갈겨주고 싶었다.

 

146cm의 키, 몸무게 38키로, 나이는 마흔 넷, 쑈리의 이름은 영어 shorty에서 왔다. 키가 큰 남자들이 쑈리라고 불렀다. 영국애들이었다면 쑛티가 되었을텐데 이름을 부르는 놈들이 모두 입움직이는 것도 게으른 미국놈들이라 이름이 쑈리가 되었다.

 

쑈리는 1층 로비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이 호텔은 아직 로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커피를 시키고 룸 계산에 달아달라 하자 웨이터가 영수증을 가져와 쑈리에게 방호수를 확인하고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쑈리는 담배를 물고 웨이터에게 펜을 달라고 손바닥을 펼쳤다. 웨이터가 건네주는 볼펜은 모나미였다.

“격 떨어지게 모나미가 뭐야?” 어린 웨이터의 얼굴이 벌개졌다. 쑈리는 영수증 밑에 싸인을 했다.

가 순 희. 그녀의 이름이다.

 

2014.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