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

지나가는 길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모든 게 좋다고
모든 게 순조롭다고
늙어가는 어깨를 보며 혼자 말했다.

도로마다 움푹 패인 곳이 있다.
차가 덜컹거리는 길이 있고
바람이 심해 작은 나의 차가 흔들리는 구간도 있다.
고속도로도 있고. 속도제한 구역도 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길에서 삶을 배운다고 말한 적 있다.
귀밑머리가 희끗해지는
또 한 명의 늙어가는 아비가 서 있다.

지금 나는 천천히 국도를 달리는 중.

모든 것은 지나가고
기억이 되고 풍경이 된다.

이루었다는 마음이 남는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미련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가라앉아 어딘가에 숨어있는 나의 감정들이 언젠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긴 터널을 이미 지나왔으므로.

-1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다시 송별하고 돌아오는 날.

앵그리버드의 진격

동네문방구에서 발견한 앵그리버드의 팬시/문구용품
저작권 문제가 현재까지 없을 것이라 추정.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우리 아들도 앵그리버드를 시작했는데
승부욕 쩌는 이 놈이 이 게임을 하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이 문방구 옆의 동네 옷가게에선 앵그리버드 옷까지 팔고 있었는데. 
이 저작권 문제가 언제 터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모르는 아이들도 일단 캐릭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 
단순한 도형이라 아이들이 따라그리는 일도 잦다. 
이 게임은 승부보다 즐거움이 더 한 듯. 
게임산업에 대해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므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분야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종합예술이 예전엔 연극이었다면
21세기엔 게임에서 종합예술을 구현할 수 있다. 
시나리오, 디자인, 미술, 음악, 영상미, 게다가 IT의 기술까지. 
쉽게 말해 고등학교 문과, 이과, 예체능의 모든 기능이 종합되어야 하는 것이 게임인데 
현재 우리나라처럼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하거나 
셧다운제 따위를 도입해서는
돌도끼들고 토끼나 잡으러 다니자는 거지. 
인터넷은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고 
사람이 모이지 않고 회원이 탈퇴하기 시작하면 
접속수가 줄어들고 그러다보면 광고수입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면
바로 망하는 것이다. 
검색결과 조작 루머가 돌고, 
인터넷에 글 올렸다고 사람을 구속하고
주민번호 등록으로 맘만 먹으면 신상터는게 껌인 이런 시스템으로는
아이폰, 앵그리버드, 구글등의 히트상품은 
나오기 힘들다. 
정부는 중국이 존경스럽나? 
2011. 12. 14. 

용돈

고 1인 딸아이가 용돈이 모자라다고 계속 투덜거린지 몇 달여.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을 주고 있는데
어떤 주에는 괜찮고 어떤 주는 모자라다는 것이다.

정확한 용돈기입장을 만들어서 제출하면 검토하고 같이 상의해서 조정하자고 하였으나
아이는 용돈기입장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다.

결국 지난 주엔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다니고 있는 애견미용학원을 일주일 쉬고
친구들과 빵집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지출액이 더 커져서 돈이 많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두 달여전쯤 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네가 배우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이고 그에 따라서는 상응한 댓가를 받는 것이 옳으니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 목욕을 시키면 1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는 쉬는 날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개 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받아가곤 했다.

용돈에 대해서 갈등을 오래 빚을 필요가 없어서
네가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별도의 방안을 강구한다면 지켜보겠느냐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트윗에 이 내용을 올렸더니 필수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살림살이 예를 들어, 청소나 설거지 빨래 개기 등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과 그보다 개념을 조금 바꿔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상금을 부여하는 게 어떻겠냐는 고견을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때쯤에 아이에게 청소하면 얼마, 쓰레기 버리면 얼마 이런 상금제도를 만들었다가 이후 제 방청소를 하면 얼마를 줄꺼냐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돈으로 환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여 미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이가 토요일 오후에 일주일간 용돈을 사용한 내역을 아주 작은 노트에 적어왔다.

학교 끝나고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학원을 가거나 바로 친구들과 공부를 하러 가는 일이 잦은 것은 집에 들러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비와 먹거리를 사먹는 돈이 비슷하고 중간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의 이야기였는데
집에 오면 조금 더 양질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의견이고 그 의견을 굳이 관철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여,
아이와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은 기본으로 하되 (주당 교통비가 최소 12,000원정도가 든다)
용돈기입장 일주일치 기록에 1만원 상금.
개목욕에 1만원, 발톱깎는 것에 5천원. – 이건 노동의 댓가
– 아이말로는 발톱 깎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으나 매주 개발톱을 깎을 수는 없으므로 목적은 아이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 이라 매주 해야 하는 목욕에 1만원, 2-3주에 한 번정도 해야 하는 발톱깍는 일엔 5천원으로 조정하기로 합의 –
200쪽이상의 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면 1만원 상금
재활용쓰레기 한 소쿠리 버리는 것에 2천원 상금.

으로 결정하고 합의했다.
모든 절차는 내가 제안하고 아이가 승락하는 방식으로 했고
독후감의 경우 200쪽이상의 책이라는 것에 대해 아이가 기준을 정하기 애매했는지 나보고 권장도서를 정해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럴 경우 엄마가 재밌다고 생각한 책을 너에게 강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엄마의 사고방식을 네가 답습할 수 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너도 옳다고 생각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듯 하니 네가 스스로 판단해서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200쪽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짧은 책이라도 더 감동이 올 수 있으나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글을 읽고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므로 다수의 글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기 위해 200여쪽 이상의 책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아이가 수락했다.

해서 아이는 어제 오늘 이틀 사이에 개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벌고, 일주일치 용돈기입장을 적어 1만원을 받아갔다.
집에 재활용쓰레기가 쌓였는데 그건 하지 않았다.

큰 아이의 성격적 특성상,
무조건 그러모으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딱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구하는 스타일이라 돈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책을 하루에 두 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나같은 인간형이 할만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최근들어 돈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6살 작은 놈인데
내가 저 나이 때에는 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기질인지 환경인지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돈에 대해서 매우 민감히 반응하고
모든 물건의 가격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보면 매우 흥분하며 자기가 가져도 되냐고 좋아할 정도이고,
또한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아이의 목적은 포켓몬카드를 사기 위해서이다.

5장들이 포켓몬카드 한 세트가 500원이므로 아이에겐 500원이 상당히 가치가 큰 돈이다.
얼마 전 할머니가 주신 용돈과 내가 줬던 천원짜리등이 모여 저금통에 들어가지 않은 돈이 1만원이 되었는데 이 돈으로 포켓몬카드를 사겠다고 해서
“가진 돈을 한번에 다 써버리면 안돼지”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1만원 중에 6천원만 쓰고 4천원은 저금통에 넣겠다고 스스로 대답했다.

– 나에겐 매우 감동적인 경제개념이다. 나란 인간은 이게 매우 부족한 인간형 –

아이는 이래 저래 여기 저기서 용돈이 생길 때도 있고 아직 혼자 다니지 않으니 용돈을 줄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포켓몬 카드나 슈팅바쿠간 같은 장난감을 사는 것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는 조금 고민해 볼 문제.
청소를 하면 천원을 달라고 하거나 구두를 닦으면 돈을 줄 것이냐고 묻는데
이걸 이렇게 대체해도 되는가 고민중이다.
(엄마 아빠가 주로 구두를 신지 않아 닦을 구두가 없다는 게 함정)

아무튼 그 외에도 6살짜리 작은 놈은
내가 휴대폰을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앵그리버드를 몰래 깔아놓은 것이 발각되어
앵그리버드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길래
기적의 계산법 한 페이지에 20분으로 거래를 했는데
아직까지는 먹히고 있다.
(자랑같으나 이 아이는 덧셈 뺄셈 하는 걸 매우 즐기는 유형이다. 음..자랑 맞군. 암튼)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늘 경제개념 때문에 곤란한 일을 많이 겪은 엄마로서
아이에게 경제교육을 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큰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나는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계산도 느리고 개념도 부족해
일부러 너희에게 좀 인색하게 굴 지도 모른다. 절대 너희들이 나를 닮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애가 웃었다. 허허허;;

뭐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좋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거침없이 알려주시면
경제개념 무탑재인 에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2011. 12. 11.

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 부부관계로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씁쓸하다.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된 사람들이 저리 다정한 경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가 일종의 “경제공동체”의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는 얘기다.

2.

찜질방에서 여탕에서 이어지는 통로에 여성 전용 수면방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자리가 있고 불가마가 있다.
여기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많은 중년여성들이 불가마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가마에서 막바로 나왔는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파는 곳도 더러 있는데 이 공간에도 그런 곳이 있다.
속옷판매대의 윗쪽에 전기공사가 필요한 모양인지
아저씨 하나가 입구에서 뻘쭘거리다 전기공사를 하러 들어간다.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나 옷을 입진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여성성 따위, 이제 모두 개나 줘버린 모습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판단을 하진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성욕을 일으키는 가슴이 아니라 생명을 낳아 기른 어미의 젖이 된 늙어가는 여자들이
쳐진 젖가슴을 내놓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연옥의 어느 한 복도처럼.

3.

목욕탕으로 내려가 작은 노천탕에 앉아 쉼호흡을 한다.
보호자 명목으로 최근 병원을 하도 다녀서인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심장이 계속 벌렁거려 전신을 담그지 않는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몸이 많이 좋아진대..하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3.

벗은 몸의 사람들을 가만히 본다.
사람의 몸을 봐도 저 사람은 어딘가가 아프구나, 혹은 아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다.
잘 발달된 정강이를 가진 여자,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한 여자,
가슴이 납작한 여자
출산후 군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여자
보기에도 싱그러운 어린 여자
그리고

모두가 벌거벗어 똑같이 평등한 가운데서도
멋스럽게 커다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리고
금색의 천을 허리에 두르고 걷고 있는 날렵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
다 벗었어도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설령 본인의 컴플렉스의 발현이거나
삶의 즐거움이거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가치라 하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4.

세신관리사, 혹은 목욕관리사라고 이제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는 그녀들을 때밀이아줌마라고 불렀다.
때밀이아줌마들은 검은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는다.
구분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젖은 몸, 축축한 곳에서, 아무리 레이스로 되었다 하더라도, 속옷을 입고 있는다는 건 에지간히 익숙해지기 전엔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아니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나는 전문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
내 엄마도 이렇게 나를 샅샅이 씻겨주진 않았지.
그렇다고 무슨 모성따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들의 노동이, 매우 숭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돈과 노동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이다지도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늘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삶이 너무 느슨해져 있기 때문인가.
아니, 늘 분주하나, 내 스스로의 성취감을 이룰 일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

문제는 내가 체력을 되찾지 못해서인가
혹은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인가.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가,
벗겨져 나가는 묵은 시커먼 때들처럼.
얼마나 많이 새로워져야 하는가
얼마나 다시 치열해져야 하는가.

과연 나는 오늘 이따위로 살아도 되는건가.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려 항아리에 담기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에 쫒기고 길에 쫒기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가.

생로병사의 한 가운데서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아직은 어렴풋할 뿐이다.

5.

갓 돌지난 어린아기가 탕속을 아장아장 걸으며 좋아한다.
한 손엔 뽀로로를 한 손엔 크롱인형을 들고 제 엄마에게 걸어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그저 그 걸음마 하나 하나가 즐겁다고 까르르 웃는다.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벗는다.

나의 생명력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처연하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많이 걸어왔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고 고달프다.

2011. 11. 28.

황천의 개 – 후지와라 신야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492529

신야의 책은 처음이다.
제목이 맘에 들어 골랐다.
황천의 개라니 이렇게 냉소적일 수 있는가.

후지와라 신야가 <청년플레이보이>지에 실었던 에세이를 묶었다.
그는 아사하라쇼코라는 옴진리교 교주에 대한 탐색으로 시작하는데
그가 미나마타병의 희생자였다는 친형의 증언을 진즉에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친형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약자가 되었다는 입장을 고려해, 만코(쇼코의 형)가 죽은 다음에 글을 완성해 책을 묶어냈다.

뭔가 연결이 되지 않는 듯한 몇 편의 글이지만 그 중심은 같다.
후기산업사회에 아주 일찍 돌입한 일본의 오늘을 지배하는 철학(?)과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그의 존재 자체가 말해준다.

젊을 때 떠났던 인도의 여행에서 얻어온 것들과 삶과 죽음, 진실과 허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마치 비슷한 시절 인도를 다녀온 후지와라 신야의 삶과 아사하라 쇼코의 삶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읽고 나서 퉁 –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2011. 11. 27.

동주 – 구효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5895

구효서 장편소설
동주 
구효서 (지은이) | 자음과모음(이룸) | 2011-10-17

오랜만에 읽는 구효서의 책.
윤동주를 중심으로 하는 스펙타클 역사소설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잃어버린 언어와 잊혀져 가는 언어 사이의 간극,
시인으로 말을 지킬 것인가 백성으로 땅을 지킬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그를 지켜보았던 한 사람의 매우 무미건조한 상황.

문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여겨지는
참 오랜만에 만나는 구효서의 소설.

내 기억속의 구효서는 참 재미난 이야기꾼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구효서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겪은 듯 하다.



사모하지 않고는 같아질 수 없어요. 같아진다는 건 사모한다는 뜻  190


동주를 동주라 부르는 너는, 누구더냐 – 293


들판의 모든 꽃이 사쿠라가 돼버리면 세상에서는 꽃이란 것 자체가 없어지는 거란다 _ 298


사람을 죽여 땅을 차지한 지배는 인류 역사에 없어. 그것은 지배가 아니니까. 지배란 복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아. 복종하지 않는다면 총을 들지 않고도 시와 조국을 지킬 수 있어_ 340


다만 너와 나는 시를 지켜야 한다는 거지. 너는 시인이니까.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었어_ 340 


시가 꽃이라면 각각의 언어가 그대로 꽃이요, 시인은 꽃잎을 받치고 선 꽃대일진대 언어를 앗아 시를 유린함에 어찌 꽃대인들 저 홀로 생명이라며 하늘을 우러를 수 있을까. 꽃나무는 그렇게 하늘 아래 홀연히 꽃 피우고 서 있는 것으로 존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일 터, 그걸 일컬어 감히 누가 미미하고 유약하다 할 것인가. 말을 앗기고 잃는 순간 저절로 생명이 소멸해버리는 시인의 운명이 어찌 가엽고 안타깝기만 할까.. _ 397

_ 그간 책에 대한 독후감을 잘 쓰지 않았는데
딱 이정도로 간단하게 매일 매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머릿속에서도 쉽게 사라진다.

2011. 11. 26.

시골 큰집 – 신경림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
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나가면
나는 안다 형은 또 마작으로
밤을 새우려는 게다. 닭장에는
지난봄에 팔아 없앤 닭 그 털만이 널려
을씨년스러운데 큰엄마는
또 큰형이 그리워지는 걸까. 그의
공부방이던 건넌방을 치우다가
벽에 박힌 그의 좌우명을 보고 운다.
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나 약하지 않다는 그
좌우명의 뜻을 나는 모른다. 지금 혹
그는 어느 딴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조합빚이 되어 없어진 돼지 울 앞에는
국화꽃이 피어 싱그럽다 그것은
큰형이 심은 꽃. 새아줌마는
그것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화사한
코스모스라도 심고 싶다지만
남의 땅이 돼버린 논둑을 바라보며
짓무른 눈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
인자하던 할머니도 싫고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 신경림 農舞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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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반대 시위가 한창인데 시나 지껄이고 있다고 시비걸꺼면 제발 언팔해주시기 바랍니다.

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시전집 1권 농무 / 16쪽 –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