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점검하는 것들 중에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집단이 힘을 모아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게으르고, 안주하길 원하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건, 생존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운 일이고, 스트레스고, 도전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게 좋아.” 라는 건 그 바닥에 터져 나오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끝없이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구석에 몰리고, 위기에 봉착하면 힘을 발휘한다. 안전한 상태에서 굳이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무엇일까. 위기라는 건 생계나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서, 자존감,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에도 위기는 찾아오곤 한다.

“에이 썅 내가 본때를 한 번 보여주겠어! ”
이게 바로 자존감의 위기를 맞이할 때 하는 말들일게다.

2.

올 해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든 역동의 이유를 들여다 보기도 했고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날이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는 듯 한데, 이런 건 참 위험한 일이라, 섣불리 나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정으로 발휘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열며
“삶은 치열해야 한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적은 게 20여년이 되었다.

어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살지 말자.
지나치게 치열하게 굴지도 말자.
힘을 차곡차곡 쌓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변함없이 버티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정말 매년 다짐처럼 치열하게 살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삼십대는 그렇게 살면서 바닥을 굴러보는 게 나았을 게다.

인간의 숭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쓰레기장에서 재활용을 줍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만났던 YMCA 꿈프로젝트 친구들에게 마무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한없이 악랄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일 수 있으나, 또 그 똑같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숭고함은 신과 닿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3.

딸아이가 낮에 절친이라 하기 어려운, 아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실종된 지 3주가 됬다는데 소식도 없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인데 두루두루 아이들과 친하지만 딱히 친한 친구는 없으며 가정환경도 복잡한 것 같다 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배타러 갔을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에?? 새우잡이?” 라고 대답하는 아이한테
“뭐 세상만사 귀찮고 정붙일 사람도 없고 배타고 돈 벌고 그런 생각 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냐.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아이는 다른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는데 우리는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 이야기까지 발전했다.
딸아이는 “되게 열심히 살고 훌륭한 아이들이 있는데 식구들 때매 신세 망치는 것 같은 애들이 꼭 있어. 걔들은 그런 가족이 없으면 더 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하길래
“그런 가족이 있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훌륭해 지는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날 봐라. 내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막 존나 우아하고 선량한 집구석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엄마가 지금 이만큼 왔겠냐?”
아이는 피식 웃었다.

4.

원인을 찾는다는 게, 찾다 보니 원망이 쌓이고 그게 분노가 되고 되려 홧병이 되어 덮쳐 오기도 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방법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해결방법을 찾기 전에 너무 쇼킹해서 눈은 멀어버리고 정신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몰랐던 건 약으로 때우면 되지만 알게 되면 개복을 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잘도 갖다 붙이고 있다)

5.

암튼 그랬다.
오늘도, 어제도 나는 매일 매일 사람구경을 한다.
한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서.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왜 엄마가 안 오지. 하고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지어내어 훌쩍이고 있던 세상 모든 늙어버린 아이들에 대하여.

오늘도 내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치덕치덕하게 끈적한 크림을 바르는 동안 “엄마 안아줘.”를 반복해서 옹알거리다 잠든, 서캐낀 대구빡의 내 새끼에 대하여도.

+ 요즘들어 자꾸 의심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내가 믿어온 가치관, 옳다, 아니다. 라고 판단했던 그 당시의 생각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때도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두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봐도 그렇게 볼 만한 사안인가. 하는 것들이다. 흠.

+ 그래서 내가 간혹 탈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치관의 전복,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부정. 그게 가져오는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3. 11. 18.

오늘의 숙제

1.

 

오래 묵은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멀리 여름나라에 살다 와서 아이 겨울 옷을 물려주려고 같이 옷을 정리하고 개고 싸고 하던 중에 작은 놈 같은 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숙제 프린트 했냐고 묻는다.

무슨 숙제?

그거 숙제 있잖아. 사진 붙여 가는거.

어.. 나는 모르는 일인데.

우리 아들이 알림장도 잘 안 가지고 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숙제를 해 가는지 안 해가는 지 잘 모르지만 가끔 점검은 한다. 숙제 점검을 하더라도 대부분 해 지고 난 다음이고 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오후 2시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멀찌감치 팽개쳐두고 티비 리모콘부터 잡는다. 일단 런닝맨이나 정글의 법칙을 한 편 보고 방과후 일과를 시작하는 습관이 들었다. 두 편 세 편 넘어가고 유난히 시끄럽게 들리는 날엔 그만 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래 너도 학교 댕겨왔으면 쉬어야지. 하고 냅두는 편인데 사실은 잔소리 하기 귀찮고 애하고 씨름하기도 귀찮아서 그렇다.

 

2.

 

친구 엄마의 얘기는 오늘 숙제로 가고 싶은 국내 여행지를 골라 사진을 프린트해서 선없는 종합장에 붙이고 그걸 발표하는 게 있다는데 집 프린터가 안되더란다. 몇 명이랑 통화를 한 끝에 다들 안된다 혹은 잉크가 떨어졌다 하길래 우리 집은 프린터가 웬지 잘 돌아갈 거 같아 도움을 구하려고 전화를 했단다. 안그래도 며칠전에 잉크패드도 갈고 프린터 점검을 마친 상태. 그러면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내가 프린트를 해주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세 명분을 부탁했는데 독도, 제주도, 불국사, 석굴암, 우도의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프린트만 해 주면 되는 일어었다. 친구 엄마는 집에만 있다 보니 컴맹 된 거 같다며 제대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다시 전화를 했길래 메일함을 열어보니 네이버 백과사전 링크가 걸려 있다. 사진은 따로 저장이 안되서 일일이 캡쳐를 떴는데 PNG로 저장했다가 프린터에 안 잡혀 다시 JPG로 다 돌렸다. 여섯장 정도 된다. 캡쳐 떠서 크기 조절해 프린트를 하고 있는데 내가 이게 남의 숙제를 해 주고 있는 꼴인가 싶었다.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내가 아이패드로 즐겨 하는 게임은 SIMS Play 라는 건데, 집 짓고 사람 캐릭터 만들고 마을을 꾸려가는 게임이다. 여러명이 공동으로 사는 집을 짓기도 하고 혼자 사는 집을 만들기도 한다. 공동주택, 즉 Share hous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지 책도 한 권 나온 걸 봤다.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남의 숙제를 해주고 있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찰라.

그래 집집마다 프린터를 다 한 대씩 두고 있을 필요가 있나. 이런 게 나누는 거 아닐까. 어찌 보면 대행해 주는 거 같아 보이는 일과 누군가 물질적/비물질적 재산을 가지고 공유하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다른가 궁금해졌다.

 

오래전엔, 누군가 손으로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남의 옷을 지어주기도 했을 것이고 큰 일은 돈을 받았겠지만 친분이 있다면 단추 하나 달아주는 일 정도는 거저 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에게 프린터가 있고 내가 화면캡쳐를 할 줄 알고 파일명을 변경할 줄 알고 사진크기를 변경할 줄 안다면 (업계에 계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이런 작업도 꽤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 재주와 물적 자산을 공유한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대신, 상부상조, 할 필요는 있을 거다.

 

4.

 

아들의 작아진 옷가지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생명을 연장할 것이다. 보따리가 많아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프린트한 사진을 전해줄 엄마들을 만났다.

나까지 아이 엄마 넷.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얘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숙제 이야기를 한다. 시 외우기, 쓰기 숙제, 수학숙제 얘기를 하다가 종합장은 원래 유선, 무선 두 가지를 챙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나는 할 말이 없는 거다.

멀뚱하니 있다가

“나는 몰라. 홈페이지 보면 숙제가 뭔지 있지만, 뭐 알림장도 안 가져오는 놈 챙겨주면 뭐해. 지 말로는 쉬는 시간이나 아침에 가서 한다고 하던데. 확인은 안되고.” 라고 했더니 옆에 엄마가 우리 아들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니 뭔 걱정이냐며 좋겠다고 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 글쎄 그 자식이 알아서 하는지 뻥을 치는지는 모르는 일이지.” 라고 했지만 아마 알아서 잘 할 거란다.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긴 하냐고 물으니 검사는 다 하시고 스티커 받아오는 거 보면 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노무 스티커판이 알림장에 있는데 이 놈은 알림장을 안 가져온다니까. 그리고 이제 관심없대. ”

“예환이는 알아서 할 거야. 아침에 가서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다른 거야.” 란다.

 

태권도 마칠 시간이랑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먼저 가겠다 하고 도장 앞에서 아이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있는 사범에게 우리 아이가 나왔나 물었다. 2층에 있는 도장까지 젊은 사범이 올라갔다 오더니 어머님 오신다고 얘기 없었으면 아마 혼자 갔을거라고 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차 타고 다니면 빙 돌아서 오래 걸린다며 혼자 뛰거나 퀵보드를 타고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집에 왔더니 아들놈이 도복도 안 갈아입고 게임하고 있다.

 

“야. 니네 뭐 시 외우기 숙제 있다매?” 나는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어. 다 했어. 도토리. 근데 싸인받아야 되는데.”

“오올..다 했어?”

“어. 진작에 다 했지. 근데 싸인 안 받았어.”

“엄마가 알림장에 싸인해주는거?”

“응.”

“얌마 니가 알림장을 가져와야 싸인을 해주든가 말든가.”

“니네 뭐 쓰기 숙제도 있다매.”

이 자식이 말이 없다.

“너 안하고 엄마한테 얘기 안할라 그랬지!!” 했더니 아들놈이 씩 웃는다.

“너 숙제 안하면 선생님한테 안 혼나?”

“안 혼나. 스티커 뺏기면 돼.”

“그럼 스티커 많이 뺏겨라.”

“눼~~”

 

5.

 

잔소리 하기 귀찮고 싸우기도 귀찮다. 방치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내 머릿속엔 아이 숙제보다 다른 것들이 더 많을 뿐이다. 내가 야단치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흠씬 깨지고 올 것이고, 선생님한테 야단맞고 친구들한테 놀림받기도 할거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다쳐보고 넘어져보고 틀려보고 울어보지 않으면 절대 절실하게 느낄 수 없다고 믿는다. 얼마 전 큰 애가 동생의 친구관계 문제를 얘기하며 동네 형들이 제 동생을 이용해 먹는 거 같지 않냐는 말을 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만 놀게 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래서 너는 내가 그만 놀으라 하니까 네 하고 그만 논 적 있드냐? 라고 되물었다.

지가 깨져보고 지가 당해보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 건데 그걸 뭘 지가 좀 당해봐야 아는 거 아냐? 라고 다시 물으니 큰 애는 에휴. 하며 돌아앉았다. 뭔 한숨인지 모르겠다. 복합적인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큰 애가 그 때 나 좀 말려주지, 또는 말리지 말지라는 원망은 아직 한 적 없다.

6.

 

아이는 동네 형들이 놀러와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고 아직 숙제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배는 부른 모양이고 나는 앉아서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내가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 것도 없고 그저 아이들은 모두 각자 역량과 기질이 다르다고 믿을 뿐이다. 집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밖에서 배우는 게 많고, 집에서 굳이 꾸짖지 않아도 밖에서 욕 먹는 일도 많고, 싸돌아다니고 아이들과 패를 지어 불량하게 껄렁거리며 돌아다니더라도 길바닥에서 쓴 맛 보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성적이 좋다고 꼭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며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도 아니며,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그게 철밥통인 것도 아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고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공부는 내내 뒷전이다 이제와서 원서쓰기에 혈안이 된 큰 아이에게도 이번에 못 가도 그만, 대학 안나와도 그만, 니가 필요하면 서른에 가도 되고 마흔에 가도 되는 게 대학, 어딜 가나 너만 잘하면 그만, 그렇지만 네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기질이 있다는 건 인정. 이 정도로 얘기하며 타협중이다.

그저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이는 닦아야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집에 와서는 무조건 손을 씻어야 감기에 덜 걸린다는 확실한 사실 두 가지다.

부담되는 교육비를 투자하는 대신 내 앞가림이나 잘 해 부양의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로 늙는 게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내가 내 앞가림 잘 하고 지내면 아이들도 그럭저럭 보고 배울 거라고도 믿는다. 이건 그저 믿음이다. 제도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대안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그럭저럭 무리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부담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게 목표일 뿐이다.

 

7.

긴 이야기를 적은 것은 매일 매일 부모교육, 부모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기사와 글이 SNS에 차고 넘쳐서이다. 나 역시 외면하기 어렵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의 구성과, 나눔과 공유, 누군가의 몰빵 또는 독박쓰기, 혹은 대리자와 대표자의 역할, 상부상조와 품앗이,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 굳이 첨언하자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지 2시간을 넘기기 전에 꼭 집에 도착하려고 한다. 혹은 대리인이라도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한다. 이유는 숙제 때문이 아니고, 배가 고프다며 울면서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후 2시쯤이 되면 어디에 있던 열심히 달려 집에 도착한다. 아직은 이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는 배가 고플 때이기 때문이다. 

 

 2013. 11. 13.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A양은 작년 P사를 아무 예고 없이 퇴사했다. 
경리일을 보던 A양이 무슨 이유로 왜 퇴사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퇴사였다. 쉽게 말해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여 사직서 한 장을 던져놓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월말이 가까웠고 세금 낼 것도 산같이 쌓여 있었다. 대표이사가 나서서 모든 세금 문제와 결제문제를 해결했다. 전직원은 한달동안 멘붕을 제대로 경험했다. 아무도 사라진 A양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사직서는 내고 갔으니 인수인계를 안 하고 갑자기 그만 둔 것은 괘씸하지만 범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다. 
P사의 사장은 A양의 전화를 받았다. 
어 너 웬일이냐. 
사장은 뻔뻔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속내는 대체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었길래 짐짓 궁금하기도 하였다. 
A양은 그렇게 잠적하듯 퇴사를 한 후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을 따서 마사지샵에서 일년간 고되게 일했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으로 전했다. 그리고 돈을 천만원 이상 모았다는 얘기도 했다. 
어 그래 잘했네. 라는 대표의 말이 끝나자 마자 A양은 
“근데요 사장님” 이라며 어떤 역사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한 접속어를 뱉었다. 근데요.. 라는 것. 

A양은 열심히 일하고 돈도 모으던 중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 하여 대형병원을 찾았단다. 검진을 마치고 A양이 들은 얘기는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간의 일부가 괴사하고 담낭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본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한국최고의 병원(?)이라는 H사의 병원이나 S사의 병원으로 가보라 했다는 것이다. 
A양이 전하는 의학적 조치법은 매우 어려웠다. 간의 일부를 절제하고 담낭관을 잘라내고 쓸개즙을 빼기 위해 소장을 연결하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엄청난 대수술이라 에지간한 3차 병원에서도 쉽게 할 수 없다는 거다. 
A양은 결국 눈물을 쏟으며 그 간 모은 돈이 천만원이 넘는데 수술비는 2천만원이 든다 하니 이 일을 어쩌냐 하면서 사장님 주변에 아는 분 많으시잖아요. 하며, 병원예약을 앞으로 당겨달라고 부탁 좀 해달라고 말했다. 

사장은 난감했으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을 때는 그저 “응 그래” 하고 일단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A양의 예전 사장님은 이리 저리 전화를 돌려 각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들을 찾았다. 그리고 통화를 연결하니 아직 접수도 안 한 상태라는 어이없는 대답까지 들었다. 

얘가 병원에 혼자 있으니 심심한 모양이다. 사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소주를 털어넣었다. 
속이 부대끼는 다음 날 아침, A양은 아침 9시 전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부탁한 거 어떻게 되었냐며 맡겨놓은 것 같이 말했다. 대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황당해 하며 어 내가 빨리 알아봐줄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설렁탕에 밥을 푹푹 말아 한 사발을 퍼먹고 있던 마누라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마누라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진다. 
뻔뻔하네. 

그 날 오후 A양의 전사장은 A양으로부터 다른 부탁을 듣게 된다. 
“사장님 근데요, 제가요 이 수술을 마치고 나면요, 그 스포츠마사지 일은 힘들어서 못 하거든요. 저 다시 입사하면 안될까요”
사장은 등줄기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뒷통수가 오싹해지며 혈당수치가 급격히 하강하는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말을 뱉었다. 
“니 몸관리나 잘해 임마” 
“사장니임..”
“다 낫고, 다 낫고 나서 얘기해 임마. 지금 취직이 중요하냐 빨리 낫고 그 담에 얘기하자”

사장은 손님이 찾아왔다며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널찍한 사무실 소파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분명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은게야..사람을 한 삼천명쯤 죽였던가…’ 

Based on True Story…

 

2013. 10. 30. 

거래의 시작과 끝

#1.

며칠 전 강의를 듣다가 과천이 지방자치제 자급율 1위의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다. 경마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권수입에 대한 것이 지방세로 잡혀, 말하자면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장소인 경마장의 부지를 내주고 그만큼의 세수를 걷어가는 거래가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풍족한 재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예산낭비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으나 대부분의 예산은 언제나 부족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부족한 예산때문에 쩔쩔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경주에 방폐장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일게다. 시설이 들어서지 않으면 세수가 줄어들고 세금이 걷히지 않는 지역은 기반시설 확충보수설립이 모두 어렵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날 것이고 사람이 없는 도시는 더 황폐화되는 악순환이 예상되는 바, 지자체들은 반대를 무릎쓰고 뭔가를 지어 수입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까.
성장을 그만두고 함께 사는 신나는 마을을 만들려면 나의 편안함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뵈기 싫으니 반대하거나,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돈이 되니 강행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중도들은 입을 다문다. 편을 들지 않으면 비난 받는 것이 나라의 질서인 듯 하다. 화해와 조정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성장에 대한 비난도, 성장반대에 대한 비난도 아직 모두 성급한, 미성숙한 사회일 뿐이다.

#2.

EBS 인문학특강 최진석 교수의 첫 강의는 공감되는 게 많았다. 특히, 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할 때에는 법과 정치가 각광받는 학문이며 그 다음이 우리가 한 때 인기있었던 상경계열이나 사회언론쪽이 자리를 잡은 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나라로 진입하느냐의 문제는 철학과 인류학 등 인문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꽃 핀다는 것이었다.
기업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생존과 연관이 있으며, 월급받는 사람과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의 통찰력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데에 단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있다면 그 한 사람의 결정에 적게는 백여명 많게는 수만명의 명운이 갈라진다.
기업총수의 가족과 직원뿐 아니라 대리점과 하청업체 거래처등 에지간한 중소기업 하나가 자빠져도 수백명이 타격을 받는다. 목숨을 걸고 걷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생명을 걸고 일한다며 위험수당을 주지 않는다.

#3.

감기에 걸리지 않는 지 1년이 되어간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기몸살이 오지 않는다. 식탁위에 줄지어 서 있던 항생제도 사라졌고 염증도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간다.
대신 전 날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자는 날이 더러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런 날은 다 저녁때 일어나 입에서 당기고 기운이 날 것 같은 음식을 사오거나 만들어 푸짐하게 먹고 다시 일찍 잔다. 자기 전엔 매일 챙겨먹지 않는 비타민과 프로폴리스와 오메가3 따위의 각종 의학적 논란이 분분한 영양제를 잔뜩 쑤셔넣는다. 방금도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나름대로 버티는 방법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는 일이 몇 가지 생겼기 때문이며, 하루를 미뤄서는 이틀을 더 투자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수백명의 생계를 걱정하는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기 때문에 잠을 깨었다.
모기는 언제나 나를 물지 않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가니 집을 주로 관리하는 나는 집에 모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모기에 물리더라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참으로 둔한 통점 때문이기도 하다.

#4.

숭고한 일은 그닥 많지 않다. 대단해 보이는 일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결핍이 원동력이 되어 독한 심성을 만들고, 지독한 외로움이 승부사가 되게 하기도 한다.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주는 상을 단 한 번도 못 받은 것에 불만을 토로한 것을 생각해봤다. 나는 상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학교의 모든 상을 휩쓸던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내가 받은 상장은 60개가 넘었다.
그건 내가 월등하거나 성실하거나 뛰어난 아이라서보다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고 상을 받아가야 엄마의 시선 한 번, 엄마의 칭찬 한 번, 엄마의 웃음 한 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아주 간절한 일이었다. 나는 상을 가져가고 성적표를 가져가며 엄마와 거래를 했다. 내가 이만큼 해왔으니 이제 나를 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주는 건 어떤가 하고 말이다. 거래는 내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거래가 그렇듯이 거래는 깨지기 마련이다.
생일떡을 해주고 싶었다며 절편 한 박스를 해오고 그 투자비용의 몇배 되는 등산용품을 사가는 엄마와의 거래는 완벽하게 종료된 듯 보이나, 언제 다시 재개되지 않으리라는 법 없다.

#5.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시간과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인간의 모든 분쟁은 돈과 치정(영역과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생각한 적 있다.
지금은 그 생각들을 관철할 의지가 없다. 세상은 알 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나는 매일 매일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 절감하며 지낸다.
오늘도 나는 맛있는 식탁과 시간을 맞바꿨으며 아이의 웃음과 남편의 만족을 기대했고 업무를 잠시 잊는 고결한 노동이라 여겼다. 늘 대부분의 것을 맞바꾸며 산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 것을 내어놓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지껄인 대신 밤에 아이의 손톱을 깍아주는 일이 너무 너무 힘들어진 것처럼.

2013. 10. 3.

어느 하루의 일기

#1.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야. 너 그런 거 알아?
여기가 그냥 낭떠러지라고. 발 한 번 헛디디면 죽는 거란 말야.
#2.
언제 힘들지 않은 적 있었나 잘 생각해보아.
그런 일은 없었지. 그저 다른 것으로 덮으면서 지내왔을 뿐.
힘겨운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드문드문 몰려오기도 했을 뿐.
그 때 그 때 그 일들을 덮을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서 늘 덮으며 걸어왔지.
때로는 폭발을 했고 때로는 영원히 잊혀지는 듯 보였어.
뱃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들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건 잘 익어서 튀어나오기도 했어.
꼭 나쁜 일들만 벌어지진 않았지만, 잘 감추고 있던 걸 거꾸로 토해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3.
언제나 “힘”을 이용했군요.
그렇다.
물리적인 힘, 근력뿐 아니라, 언어가 통하는 세상에서는 언어를,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서는 시선을, 권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권력을, 언제나 장악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기 원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땅따먹기였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화가 났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물건을 배열하고 언제든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두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일련의 통제과정이라고 봤을 때, 내 뜻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뜻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절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세상은 어긋나고 이지러졌다. 계획을 세우라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인생의 계획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비아냥거렸다. 세상일은 절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박탈감을 가져왔고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통제를 해야 했다.
그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끝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남다른” 자가 되어야 했어요. 눈에 띄어야 했고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상이 우스운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도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역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 무엇이 되더라도 바닥의 돌맹이라도 주워 던져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가을이 되었다.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일은 덜하겠지.
문득 문득 영혼이 내 어깨를 친다. 이봐. 알고 있지? 라고.
2013. 10. 2.

설국열차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 곁들여서… 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刑門)부터 한다지 않아요? 종이 종한테 상전 노릇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약한 자들이 형성한 권력, 이들은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할 게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어 있단 말씀입니다.“

(중략)

“그래서?”

“과연, 진정한 평등 사회가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이상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미물 곤충도 강한 놈은 약간 놈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력을 다하여 강적과 싸워 내는 놈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 한 번은 이기겠지만 돌아서면 다른 놈한테 결국 잡혀먹힙니다. 하다못해 잡초, 들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가 억센 놈은 생명력이 약한 풀뿌리를 죽게 합니다. 약한 놈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고 인간 사회고, 약한 놈은 학대받아야 합니다. 학대받고 일찍이 죽어야 한다고요… 곤충, 미물, 잡초의 생리마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에 이르러 무슨 말을 더 합니까?”

“그렇지 않다.”

강태가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어서 일어서자고 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차갑게 말꼬리를 내린다. 그의 말꼬리에 묻은 찬 기운이 시리다.

“너는 혁명의 아름다움을 아느냐?”

강태는 바늘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반대로 강모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그는 지금 알 수 없는 열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모반(謀反)같은 것이 아니지. 지난날의 반란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달성한 것, 말하자면 옛 권력층에 대한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한 것이었어. 허나, 오늘날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대수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과연 거기서 형님의 역할은 무업니까? 지도자를 따르는 민중입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지도자입니까?”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거 보십시오. 벌써 형님은 하나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평등을 목표한다는 형님의 이론에서도 민중과 지도자라는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명칭이고 역할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지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해방하고 전 민중을 해방한다. 그 해방을 통해서만, 인류 사회는 비로소 착취 없는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거다.”

“착취, 착취, 도대체 착취가 아닌 관계도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할머니도 착취자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하략)

최명희 – 혼불 제 3권 58쪽 – 60쪽

 

설국열차의 감상편은 이 것으로 대체한다. 영화 내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부음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선선한 하루였다. 찜통에서 나왔더니 다른 계절이 선뜻 와 있었다. 내일은 작은 아이의 개학이라 마음만 분주한 오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3주전쯤 시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다. 7년 넘은 치매의 시이모님을 보필하시다 병을 얻어 먼저 작고하셨는데 오늘은 상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시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오늘 돌아가신 시이모님은 작년에 먼저 가신 시어머님의 언니. 나는 그 분을 알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인사를 갔을 때도 가물가물하시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조용한 목소리로 하셨던 분이다. 이후 명절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대화를 나눌 수도 눈을 맞추기도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러니 시이모님도 나를 모르실테고, 나 역시 시이모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간히 가서 뵈면 치매환자 치고 유난스럽지 않으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니러 온 우리를 방문을 열어 빼꼼히 보시고 다시 방안으로 조용히 사라지곤 하셨다. 치매환자들은 남아있는 욕구를 발산하고 본능만이 남는다 하던데 그 분은 무엇이 남으셨던 건지 1-2년에 한 번 뵙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어차피 가실 것, 말년에 옆에서 보필하시던 분 안 계실제 가시는 게 외려 고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큰 아이도 같이 가신 셈이니 차라리 잘됬다고 뇌까렸다.

작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외숙모, 시이모부, 시이모님까지, 남편의 외가에 이어지는 초상이다. 남겨진 다른 이모님만이 걱정될 뿐이다. 형제들의 줄이은 초상에 얼마나 맥을 놓으실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리 때 되면 사그라지는 것이 생명이라 한 들 죽음은 누구에게도 익숙치 않은 일이다.

아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 것인가. 문득 예전에 보았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도시가 텅 비어버리는 일. 그게 종말을 묘사하는 영화들의 주된 기법이다. 천지간에 사람이 넘쳐난다 한 들 내 아는 이 없는 세상은 마치 비어버린 뉴욕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세상이 망한 것과 별다를 게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에 대한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전쟁에서 지면 남자는 거세를 당하고 여자는 강간을 당한다라는 공포가 만연했었다고. 거세당한 남자와 강간당한 여자라는 것은 그 민족의 씨를 말살하고 다른 유전자가 유입된다는 말일게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내 천지간의 혈족이 사라진다는 말일게다.

작년에 시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난 뒤, 끊임없는 부고가 이어졌다. 내 주변의 지인들의 장모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실은 며칠 전에도 잘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지만 안타까운 죽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7월에도 문상을 다녀왔으며 문상에 적합한 음전한 옷도 한 벌 마련해 둔 터이다. 조사는 들으면 가는 거래. 라는 말을 전했을 때, 나이 마흔 넘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떠오른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한 두 다리 건너의 부고를 전해들으며 내가 이제 부지런히 문상만을 다닐 나이가 되었다는 걸 절감한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남편이 7살 연상이고, 시부모님들은 8남매 9남매의 막내시다 보니 줄줄이 연로하신 분들만 남아계신다. 나이 먹은 배우자와 살면 늙는다는 말은 죽음을 자꾸 접한다는 말이었나보다. 삶의 완성이 죽음이라면 그 삶을 다 살아낸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어서 보며 마음을 자꾸 비우게 되는 것인 모양이다.

부음을 듣고 해가 지고 풀벌레 소리가 밀려들었다. 백내장에 익숙해져 더 이상 눈도 긁지 않는 역시 늙어가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3주전에 무릎 수술을 하여 아직 목발을 짚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 한 가운에 널직한 광장에 인사 나눈 적은 없는 이웃의 아이가 걸음연습을 하고 있다. 그 아이는 다리가 불편한 지 늘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본격적으로 일어나 걸을 요량인 모양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등 뒤에서 잡고 아이의 엄마가 두 살짜리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나는 딸깍거리는 목발소리를 내며 걸었다. 해는 지고 별은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깊고 이 동네 아이들은 내일 개학이다. 늙어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 앉아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다. 마침 청암부인이 죽어 상을 치르는 중이다.

2013. 8. 21.

알 수 없는 사람

명확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건 본인의 신념이 갈 곳을 잃어서가 아닐까. 
자기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그 욕구가 부끄럽기 때문일까. 그래서 자꾸 덧칠하고 가면을 쓰려고 하는 걸까.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들여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사람, 모호한 사람에게 우리는 의심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곤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한 이 모호한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를 주목하라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바짝 세우는데, 거기에 달린 꼬리표에는 “알 수 없으니 조심할 것” 이라 적혀 있곤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3. 8. 20. 

엄마 나는 왜 살아?

아빠 누나와 바다에 갔다와서 아주 늦은 저녁을 먹던 아들이 묻는다. 
“엄마. 나 요즘 꿈을 꾸는 게 있어.”
“뭔데?”
“아니. 궁금한 게 있어. 알고 싶은 거. 고민이야.”
“뭔데 말해봐” (갈치 바르는 중) 
“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고 왜 살아?” 
(젓가락 정지 동작멈춤)
“그러니까 나는 왜 태어나고 나는 왜 살아?”
“•_•;;;;;;;;;”
“나 요즘 꿈이야. 궁금해서 꿈꾼다는 말이야.” 

“예환이한테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
(일어나서 몸을 반으로 나누는 시늉을 하며 여기 엄마 여기 아빠? 하고 묻는다) 
“엄마한테도 엄마의 엄마랑 엄마의 아빠가 있고, 아빠한테도 아빠의 엄마와 아빠의 아빠가 있어. 그리고 할아버지 한테도 할아버지의 아빠와 할아버지의 엄마가 있는 것처럼 다 그런 거거든?”
“그래서??”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을 때 애기를 낳아. 엄마 아빠가 죽고 없어도 예환이 안에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살아있는 거야.”

– 여기서 감동적인 피드백이 온다면 그것은 여덟살이 아니다. 제 아빠가 티비채널을 돌려 정글의 법칙이 왕왕대는 순간 아이는 제 질문을 잊었다. 

이 어미가 그게 궁금해서 지금 근 20년동안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건만.. 날로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봉가 ㅋ 그러니 부모가 공들인 것은 자식은 조금 쉽게 가지진 못해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이런건가.

 

2013. 8. 19. 

독후감 :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 뿌리와 이파리

위험할 수 있는 책이다.

꼼꼼하게 읽고 저자의 의중을 잘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일반화하지 말고 호도하거나 곡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책이다.

제국의 위안부

이 제목은 이 책의 정체성을 아주 잘 표현하는 좋은 제목이다.

“진보측의 이런 대응은 ‘정의’편에 서 있다는 자기확신이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식의 자기확신이 때로는 경직된 자세와 무책임한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318쪽)

이 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위안부문제의 해결과 정확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점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이 전에도 그랬듯이 친일파라는 공격과 최근 불거진 일베(충이라 일컬어지는)의 세력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처럼 타인의 의견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도 많지 않으므로.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이 저자의 의견은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적확한 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이 보편화되기엔 대중과 정치의 기질적인 문제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 점이 이 책을 위험하게 만든다.

저자는 일본과의 화해가 난항을 겪으며 위안부문제가 청산되지 않는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를 집중 추궁한다. 분노는 화해를 불러올 수 없다. 저자는 이 점에서 우리의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일본과의 대화를 더 단절시키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 의심은 직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씩 증언록과 정대협의 활동을 통해 이 나라에서 만들어내는 위안부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의 전시에 동원되었던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신대는 근로노동을 위해 동원되었으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동원한 식민지 노동동원 수탈에 해당한다.

위안부는 일본정부와 군에서 묵인한채로 조선인이나 일본인등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그저 돈벌이에 급급했던 자들이 속이고 꼬드겨 모집한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여성들이다. 강제로 차에 태워 끌어간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의 여성들에게 돈벌이를 할 수 있고 여성이지만 자립할 수 있다는 것으로 꾀어내 각 전장으로 보내는 포주와 업자들이 존재했으며 그 포주와 업자들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다. 물론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묵인한 책임이 있다.

위안부는 성노예의 역할뿐 아니라 부대내에서 함께 전투를 보조하는 역할까지 해내야 했는데 간호사의 역할을 하거나 단지 성매매뿐 아니라 술과 노래와 춤이 있는 행사를 진행해 군대를 위안하는 전투적 조력자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선인 위안부는 이미 공창제가 보편화되어 있는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하는 역할이었으며 조선여성은 일본여성의 대체제이지만 같은 제국의 신민으로서 적국의 여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역할을 위해 위안부들은 일본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으며 위안부 동원당시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점도 있다.

전쟁초기에는 나름 화기애애한 동지애적 분위기도 있었으며 사연모르고 위안부가 되어버린 조선인 여성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했다는 것. 예를 들어 친절한 일본군이나, 너무 어린 위안부를 탈출시킨 사례나 일본군과 사랑에 빠진 케이스도 있다는 것.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것.

그러니 저자가 택한 제목은 조선인 강제 위안부라는 패러다임을 바꿔 <제국의 위안부>라는 패러다임으로 이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소 강경한 말투로 정대협을 비판하고 있는데, 정대협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약자이다. 이들이 사업초기에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하였던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 의의가 분명해 진 다음에도 왜 정정하지 않는가 묻고 있다. 또한 몇 몇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이 정대협과의 불화를 겪고 위안부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들기도 한다. 또한 구술이나 증언에도 질문자의 의도가 개입된 약탈적 인터뷰로 위안부 피해여성들을 극도의 피해자로만 규정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고 파악한다.

이런 운동의 주인공은 활동가이며, 정작 현장피해자는 그 들러리가 되어버리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묻고 있다. 피해여성 중에는 당시 전쟁이 심각하지 않았던 시절 일본병사들과 들판에서 소풍을 즐기거나 말을 타고 애들처럼 놀던 기억을 얘기하는 증언자도 있는데 이것은 이후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대협에 협조하는 순간 이런 모든 기억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정대협의 주장이 국가의 주장이 되어버렸으며, 대부분의 증언자들의 내용을 종합했을 때 얼마전 만들어진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적대감을 부추키고 끊임없이 일본과의 대화를 단절하여 서로 분노만을 주고 받는 감정선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힘겨웠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안부의 모습도 바로 그 소녀상에 다를 바 없으며 평범하게 살던 집안의 금지옥엽 딸들도 무조건 끌려가 트럭에 실려 위안소에 던져지고 아편을 맞으며 버텨내야 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증언자들의 증언이 번복되는 사례와 전후 희생자들의 삶이 곤궁했던 것을 감안하여 진정 피해자들을 위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면 개별적이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는가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다음 단락으로 축약된다.

“지금 필요한 일은, 그들을 ‘올바른 조선인 투사’로 존재하게 하면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 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 뿐이다.”

읽는 내내 불편했던 점은 일본의 패망이후 버려진 이들은 일부 일본군의 도움으로 전장을 탈출하기도 했으나 밀려드는 소련군과 미군으로 인해 더 극심한 (일부 증언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 해리성 기억장애를 말하는 듯) 2차 피해를 입고 인생을 7-80년 더 살고 나서는 완벽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들의 행적을 보면 90년대 정대협이 출범하고 나서 도처를 다니며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세상 살기 힘든 끔찍한 기억을 자꾸 말하다 보면 아무리 무덤덤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증언을 반복해서 할 자신이 없다.

일본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나는 반일주의자에 가까운데 문제는 사실을 왜곡하고 상징성을 덧칠하여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등은 분명히 필요한 움직임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사실 타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자는 것인데 이건 상당히 성숙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이 목적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는 의심이 든다. 물론 타인의 잘못도 비판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하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자는 것은 식민지지배의 복잡한 구조속에서 위안부를 전장으로 내몰고 현재까지 괴롭히고 있는 그 적확한 주체와 말하자면 그 끝나지 않은 전쟁의 적이 과연 “일본”뿐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반일과 극렬한 반대는 이 나라의 민족주의와 극우세력을 자극하여 전체주의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제국주의의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의식으로 똘똘뭉친 식민지배의 유령은 다시금 파시즘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자들은 “히틀러”를 독일민족의 선구자와 대단한 혁명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 때는 2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잔혹성을 띄기 전이었고 히틀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위인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던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전쟁시에 이루어진 일본인 위안부의 역할이 한국전쟁에도 이어져 유엔군이 한국에 주둔했을 때 유엔군 위안소가 있었으며, 미군들은 한국정부가 만들어 준 위안소를 즐겨 이용했으며, 그에 대해 미국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이 한국의 일본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에 거들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도 묻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0838.html

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니 진보진영의 한겨레에서 보도한 바가 있었다.

식민지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구조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솔직히 책을 읽어나가며 일본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과연 광복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광복 68주년. 우리의 전체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추천한다. 대신 이 책을 읽기 전에 모든 편견을 내려놓을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맹신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의견이 있다. 일베도 있고 51.6%의 투표율을 만들어준 사람들도 있다. 그 모든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며, 개인의 자유다. 이 심리적으로 무거운 책을 내가 선택하고 꼼꼼히 읽은 것은, 솔직히 이 책을 펴낸 출판사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