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시작과 끝

#1.

며칠 전 강의를 듣다가 과천이 지방자치제 자급율 1위의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다. 경마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권수입에 대한 것이 지방세로 잡혀, 말하자면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장소인 경마장의 부지를 내주고 그만큼의 세수를 걷어가는 거래가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풍족한 재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예산낭비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으나 대부분의 예산은 언제나 부족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부족한 예산때문에 쩔쩔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경주에 방폐장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일게다. 시설이 들어서지 않으면 세수가 줄어들고 세금이 걷히지 않는 지역은 기반시설 확충보수설립이 모두 어렵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날 것이고 사람이 없는 도시는 더 황폐화되는 악순환이 예상되는 바, 지자체들은 반대를 무릎쓰고 뭔가를 지어 수입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까.
성장을 그만두고 함께 사는 신나는 마을을 만들려면 나의 편안함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뵈기 싫으니 반대하거나,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돈이 되니 강행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중도들은 입을 다문다. 편을 들지 않으면 비난 받는 것이 나라의 질서인 듯 하다. 화해와 조정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성장에 대한 비난도, 성장반대에 대한 비난도 아직 모두 성급한, 미성숙한 사회일 뿐이다.

#2.

EBS 인문학특강 최진석 교수의 첫 강의는 공감되는 게 많았다. 특히, 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할 때에는 법과 정치가 각광받는 학문이며 그 다음이 우리가 한 때 인기있었던 상경계열이나 사회언론쪽이 자리를 잡은 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나라로 진입하느냐의 문제는 철학과 인류학 등 인문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꽃 핀다는 것이었다.
기업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생존과 연관이 있으며, 월급받는 사람과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의 통찰력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데에 단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있다면 그 한 사람의 결정에 적게는 백여명 많게는 수만명의 명운이 갈라진다.
기업총수의 가족과 직원뿐 아니라 대리점과 하청업체 거래처등 에지간한 중소기업 하나가 자빠져도 수백명이 타격을 받는다. 목숨을 걸고 걷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생명을 걸고 일한다며 위험수당을 주지 않는다.

#3.

감기에 걸리지 않는 지 1년이 되어간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기몸살이 오지 않는다. 식탁위에 줄지어 서 있던 항생제도 사라졌고 염증도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간다.
대신 전 날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자는 날이 더러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런 날은 다 저녁때 일어나 입에서 당기고 기운이 날 것 같은 음식을 사오거나 만들어 푸짐하게 먹고 다시 일찍 잔다. 자기 전엔 매일 챙겨먹지 않는 비타민과 프로폴리스와 오메가3 따위의 각종 의학적 논란이 분분한 영양제를 잔뜩 쑤셔넣는다. 방금도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나름대로 버티는 방법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는 일이 몇 가지 생겼기 때문이며, 하루를 미뤄서는 이틀을 더 투자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수백명의 생계를 걱정하는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기 때문에 잠을 깨었다.
모기는 언제나 나를 물지 않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가니 집을 주로 관리하는 나는 집에 모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모기에 물리더라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참으로 둔한 통점 때문이기도 하다.

#4.

숭고한 일은 그닥 많지 않다. 대단해 보이는 일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결핍이 원동력이 되어 독한 심성을 만들고, 지독한 외로움이 승부사가 되게 하기도 한다.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주는 상을 단 한 번도 못 받은 것에 불만을 토로한 것을 생각해봤다. 나는 상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학교의 모든 상을 휩쓸던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내가 받은 상장은 60개가 넘었다.
그건 내가 월등하거나 성실하거나 뛰어난 아이라서보다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고 상을 받아가야 엄마의 시선 한 번, 엄마의 칭찬 한 번, 엄마의 웃음 한 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아주 간절한 일이었다. 나는 상을 가져가고 성적표를 가져가며 엄마와 거래를 했다. 내가 이만큼 해왔으니 이제 나를 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주는 건 어떤가 하고 말이다. 거래는 내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거래가 그렇듯이 거래는 깨지기 마련이다.
생일떡을 해주고 싶었다며 절편 한 박스를 해오고 그 투자비용의 몇배 되는 등산용품을 사가는 엄마와의 거래는 완벽하게 종료된 듯 보이나, 언제 다시 재개되지 않으리라는 법 없다.

#5.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시간과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인간의 모든 분쟁은 돈과 치정(영역과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생각한 적 있다.
지금은 그 생각들을 관철할 의지가 없다. 세상은 알 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나는 매일 매일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 절감하며 지낸다.
오늘도 나는 맛있는 식탁과 시간을 맞바꿨으며 아이의 웃음과 남편의 만족을 기대했고 업무를 잠시 잊는 고결한 노동이라 여겼다. 늘 대부분의 것을 맞바꾸며 산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 것을 내어놓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지껄인 대신 밤에 아이의 손톱을 깍아주는 일이 너무 너무 힘들어진 것처럼.

2013. 10. 3.

어느 하루의 일기

#1.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야. 너 그런 거 알아?
여기가 그냥 낭떠러지라고. 발 한 번 헛디디면 죽는 거란 말야.
#2.
언제 힘들지 않은 적 있었나 잘 생각해보아.
그런 일은 없었지. 그저 다른 것으로 덮으면서 지내왔을 뿐.
힘겨운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드문드문 몰려오기도 했을 뿐.
그 때 그 때 그 일들을 덮을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서 늘 덮으며 걸어왔지.
때로는 폭발을 했고 때로는 영원히 잊혀지는 듯 보였어.
뱃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들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건 잘 익어서 튀어나오기도 했어.
꼭 나쁜 일들만 벌어지진 않았지만, 잘 감추고 있던 걸 거꾸로 토해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3.
언제나 “힘”을 이용했군요.
그렇다.
물리적인 힘, 근력뿐 아니라, 언어가 통하는 세상에서는 언어를,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서는 시선을, 권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권력을, 언제나 장악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기 원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땅따먹기였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화가 났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물건을 배열하고 언제든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두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일련의 통제과정이라고 봤을 때, 내 뜻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뜻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절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세상은 어긋나고 이지러졌다. 계획을 세우라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인생의 계획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비아냥거렸다. 세상일은 절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박탈감을 가져왔고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통제를 해야 했다.
그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끝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남다른” 자가 되어야 했어요. 눈에 띄어야 했고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상이 우스운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도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역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 무엇이 되더라도 바닥의 돌맹이라도 주워 던져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가을이 되었다.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일은 덜하겠지.
문득 문득 영혼이 내 어깨를 친다. 이봐. 알고 있지? 라고.
2013. 10. 2.

설국열차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 곁들여서… 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刑門)부터 한다지 않아요? 종이 종한테 상전 노릇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약한 자들이 형성한 권력, 이들은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할 게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어 있단 말씀입니다.“

(중략)

“그래서?”

“과연, 진정한 평등 사회가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이상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미물 곤충도 강한 놈은 약간 놈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력을 다하여 강적과 싸워 내는 놈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 한 번은 이기겠지만 돌아서면 다른 놈한테 결국 잡혀먹힙니다. 하다못해 잡초, 들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가 억센 놈은 생명력이 약한 풀뿌리를 죽게 합니다. 약한 놈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고 인간 사회고, 약한 놈은 학대받아야 합니다. 학대받고 일찍이 죽어야 한다고요… 곤충, 미물, 잡초의 생리마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에 이르러 무슨 말을 더 합니까?”

“그렇지 않다.”

강태가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어서 일어서자고 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차갑게 말꼬리를 내린다. 그의 말꼬리에 묻은 찬 기운이 시리다.

“너는 혁명의 아름다움을 아느냐?”

강태는 바늘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반대로 강모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그는 지금 알 수 없는 열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모반(謀反)같은 것이 아니지. 지난날의 반란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달성한 것, 말하자면 옛 권력층에 대한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한 것이었어. 허나, 오늘날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대수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과연 거기서 형님의 역할은 무업니까? 지도자를 따르는 민중입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지도자입니까?”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거 보십시오. 벌써 형님은 하나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평등을 목표한다는 형님의 이론에서도 민중과 지도자라는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명칭이고 역할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지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해방하고 전 민중을 해방한다. 그 해방을 통해서만, 인류 사회는 비로소 착취 없는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거다.”

“착취, 착취, 도대체 착취가 아닌 관계도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할머니도 착취자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하략)

최명희 – 혼불 제 3권 58쪽 – 60쪽

 

설국열차의 감상편은 이 것으로 대체한다. 영화 내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부음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선선한 하루였다. 찜통에서 나왔더니 다른 계절이 선뜻 와 있었다. 내일은 작은 아이의 개학이라 마음만 분주한 오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3주전쯤 시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다. 7년 넘은 치매의 시이모님을 보필하시다 병을 얻어 먼저 작고하셨는데 오늘은 상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시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오늘 돌아가신 시이모님은 작년에 먼저 가신 시어머님의 언니. 나는 그 분을 알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인사를 갔을 때도 가물가물하시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조용한 목소리로 하셨던 분이다. 이후 명절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대화를 나눌 수도 눈을 맞추기도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러니 시이모님도 나를 모르실테고, 나 역시 시이모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간히 가서 뵈면 치매환자 치고 유난스럽지 않으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니러 온 우리를 방문을 열어 빼꼼히 보시고 다시 방안으로 조용히 사라지곤 하셨다. 치매환자들은 남아있는 욕구를 발산하고 본능만이 남는다 하던데 그 분은 무엇이 남으셨던 건지 1-2년에 한 번 뵙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어차피 가실 것, 말년에 옆에서 보필하시던 분 안 계실제 가시는 게 외려 고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큰 아이도 같이 가신 셈이니 차라리 잘됬다고 뇌까렸다.

작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외숙모, 시이모부, 시이모님까지, 남편의 외가에 이어지는 초상이다. 남겨진 다른 이모님만이 걱정될 뿐이다. 형제들의 줄이은 초상에 얼마나 맥을 놓으실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리 때 되면 사그라지는 것이 생명이라 한 들 죽음은 누구에게도 익숙치 않은 일이다.

아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 것인가. 문득 예전에 보았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도시가 텅 비어버리는 일. 그게 종말을 묘사하는 영화들의 주된 기법이다. 천지간에 사람이 넘쳐난다 한 들 내 아는 이 없는 세상은 마치 비어버린 뉴욕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세상이 망한 것과 별다를 게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에 대한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전쟁에서 지면 남자는 거세를 당하고 여자는 강간을 당한다라는 공포가 만연했었다고. 거세당한 남자와 강간당한 여자라는 것은 그 민족의 씨를 말살하고 다른 유전자가 유입된다는 말일게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내 천지간의 혈족이 사라진다는 말일게다.

작년에 시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난 뒤, 끊임없는 부고가 이어졌다. 내 주변의 지인들의 장모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실은 며칠 전에도 잘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지만 안타까운 죽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7월에도 문상을 다녀왔으며 문상에 적합한 음전한 옷도 한 벌 마련해 둔 터이다. 조사는 들으면 가는 거래. 라는 말을 전했을 때, 나이 마흔 넘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떠오른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한 두 다리 건너의 부고를 전해들으며 내가 이제 부지런히 문상만을 다닐 나이가 되었다는 걸 절감한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남편이 7살 연상이고, 시부모님들은 8남매 9남매의 막내시다 보니 줄줄이 연로하신 분들만 남아계신다. 나이 먹은 배우자와 살면 늙는다는 말은 죽음을 자꾸 접한다는 말이었나보다. 삶의 완성이 죽음이라면 그 삶을 다 살아낸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어서 보며 마음을 자꾸 비우게 되는 것인 모양이다.

부음을 듣고 해가 지고 풀벌레 소리가 밀려들었다. 백내장에 익숙해져 더 이상 눈도 긁지 않는 역시 늙어가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3주전에 무릎 수술을 하여 아직 목발을 짚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 한 가운에 널직한 광장에 인사 나눈 적은 없는 이웃의 아이가 걸음연습을 하고 있다. 그 아이는 다리가 불편한 지 늘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본격적으로 일어나 걸을 요량인 모양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등 뒤에서 잡고 아이의 엄마가 두 살짜리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나는 딸깍거리는 목발소리를 내며 걸었다. 해는 지고 별은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깊고 이 동네 아이들은 내일 개학이다. 늙어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 앉아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다. 마침 청암부인이 죽어 상을 치르는 중이다.

2013. 8. 21.

알 수 없는 사람

명확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건 본인의 신념이 갈 곳을 잃어서가 아닐까. 
자기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그 욕구가 부끄럽기 때문일까. 그래서 자꾸 덧칠하고 가면을 쓰려고 하는 걸까.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들여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사람, 모호한 사람에게 우리는 의심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곤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한 이 모호한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를 주목하라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바짝 세우는데, 거기에 달린 꼬리표에는 “알 수 없으니 조심할 것” 이라 적혀 있곤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3. 8. 20. 

엄마 나는 왜 살아?

아빠 누나와 바다에 갔다와서 아주 늦은 저녁을 먹던 아들이 묻는다. 
“엄마. 나 요즘 꿈을 꾸는 게 있어.”
“뭔데?”
“아니. 궁금한 게 있어. 알고 싶은 거. 고민이야.”
“뭔데 말해봐” (갈치 바르는 중) 
“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고 왜 살아?” 
(젓가락 정지 동작멈춤)
“그러니까 나는 왜 태어나고 나는 왜 살아?”
“•_•;;;;;;;;;”
“나 요즘 꿈이야. 궁금해서 꿈꾼다는 말이야.” 

“예환이한테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
(일어나서 몸을 반으로 나누는 시늉을 하며 여기 엄마 여기 아빠? 하고 묻는다) 
“엄마한테도 엄마의 엄마랑 엄마의 아빠가 있고, 아빠한테도 아빠의 엄마와 아빠의 아빠가 있어. 그리고 할아버지 한테도 할아버지의 아빠와 할아버지의 엄마가 있는 것처럼 다 그런 거거든?”
“그래서??”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을 때 애기를 낳아. 엄마 아빠가 죽고 없어도 예환이 안에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살아있는 거야.”

– 여기서 감동적인 피드백이 온다면 그것은 여덟살이 아니다. 제 아빠가 티비채널을 돌려 정글의 법칙이 왕왕대는 순간 아이는 제 질문을 잊었다. 

이 어미가 그게 궁금해서 지금 근 20년동안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건만.. 날로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봉가 ㅋ 그러니 부모가 공들인 것은 자식은 조금 쉽게 가지진 못해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이런건가.

 

2013. 8. 19. 

독후감 :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 뿌리와 이파리

위험할 수 있는 책이다.

꼼꼼하게 읽고 저자의 의중을 잘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일반화하지 말고 호도하거나 곡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책이다.

제국의 위안부

이 제목은 이 책의 정체성을 아주 잘 표현하는 좋은 제목이다.

“진보측의 이런 대응은 ‘정의’편에 서 있다는 자기확신이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식의 자기확신이 때로는 경직된 자세와 무책임한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318쪽)

이 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위안부문제의 해결과 정확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점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이 전에도 그랬듯이 친일파라는 공격과 최근 불거진 일베(충이라 일컬어지는)의 세력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처럼 타인의 의견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도 많지 않으므로.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이 저자의 의견은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적확한 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이 보편화되기엔 대중과 정치의 기질적인 문제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 점이 이 책을 위험하게 만든다.

저자는 일본과의 화해가 난항을 겪으며 위안부문제가 청산되지 않는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를 집중 추궁한다. 분노는 화해를 불러올 수 없다. 저자는 이 점에서 우리의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일본과의 대화를 더 단절시키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 의심은 직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씩 증언록과 정대협의 활동을 통해 이 나라에서 만들어내는 위안부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의 전시에 동원되었던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신대는 근로노동을 위해 동원되었으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동원한 식민지 노동동원 수탈에 해당한다.

위안부는 일본정부와 군에서 묵인한채로 조선인이나 일본인등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그저 돈벌이에 급급했던 자들이 속이고 꼬드겨 모집한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여성들이다. 강제로 차에 태워 끌어간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의 여성들에게 돈벌이를 할 수 있고 여성이지만 자립할 수 있다는 것으로 꾀어내 각 전장으로 보내는 포주와 업자들이 존재했으며 그 포주와 업자들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다. 물론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묵인한 책임이 있다.

위안부는 성노예의 역할뿐 아니라 부대내에서 함께 전투를 보조하는 역할까지 해내야 했는데 간호사의 역할을 하거나 단지 성매매뿐 아니라 술과 노래와 춤이 있는 행사를 진행해 군대를 위안하는 전투적 조력자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선인 위안부는 이미 공창제가 보편화되어 있는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하는 역할이었으며 조선여성은 일본여성의 대체제이지만 같은 제국의 신민으로서 적국의 여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역할을 위해 위안부들은 일본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으며 위안부 동원당시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점도 있다.

전쟁초기에는 나름 화기애애한 동지애적 분위기도 있었으며 사연모르고 위안부가 되어버린 조선인 여성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했다는 것. 예를 들어 친절한 일본군이나, 너무 어린 위안부를 탈출시킨 사례나 일본군과 사랑에 빠진 케이스도 있다는 것.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것.

그러니 저자가 택한 제목은 조선인 강제 위안부라는 패러다임을 바꿔 <제국의 위안부>라는 패러다임으로 이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소 강경한 말투로 정대협을 비판하고 있는데, 정대협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약자이다. 이들이 사업초기에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하였던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 의의가 분명해 진 다음에도 왜 정정하지 않는가 묻고 있다. 또한 몇 몇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이 정대협과의 불화를 겪고 위안부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들기도 한다. 또한 구술이나 증언에도 질문자의 의도가 개입된 약탈적 인터뷰로 위안부 피해여성들을 극도의 피해자로만 규정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고 파악한다.

이런 운동의 주인공은 활동가이며, 정작 현장피해자는 그 들러리가 되어버리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묻고 있다. 피해여성 중에는 당시 전쟁이 심각하지 않았던 시절 일본병사들과 들판에서 소풍을 즐기거나 말을 타고 애들처럼 놀던 기억을 얘기하는 증언자도 있는데 이것은 이후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대협에 협조하는 순간 이런 모든 기억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정대협의 주장이 국가의 주장이 되어버렸으며, 대부분의 증언자들의 내용을 종합했을 때 얼마전 만들어진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적대감을 부추키고 끊임없이 일본과의 대화를 단절하여 서로 분노만을 주고 받는 감정선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힘겨웠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안부의 모습도 바로 그 소녀상에 다를 바 없으며 평범하게 살던 집안의 금지옥엽 딸들도 무조건 끌려가 트럭에 실려 위안소에 던져지고 아편을 맞으며 버텨내야 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증언자들의 증언이 번복되는 사례와 전후 희생자들의 삶이 곤궁했던 것을 감안하여 진정 피해자들을 위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면 개별적이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는가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다음 단락으로 축약된다.

“지금 필요한 일은, 그들을 ‘올바른 조선인 투사’로 존재하게 하면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 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 뿐이다.”

읽는 내내 불편했던 점은 일본의 패망이후 버려진 이들은 일부 일본군의 도움으로 전장을 탈출하기도 했으나 밀려드는 소련군과 미군으로 인해 더 극심한 (일부 증언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 해리성 기억장애를 말하는 듯) 2차 피해를 입고 인생을 7-80년 더 살고 나서는 완벽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들의 행적을 보면 90년대 정대협이 출범하고 나서 도처를 다니며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세상 살기 힘든 끔찍한 기억을 자꾸 말하다 보면 아무리 무덤덤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증언을 반복해서 할 자신이 없다.

일본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나는 반일주의자에 가까운데 문제는 사실을 왜곡하고 상징성을 덧칠하여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등은 분명히 필요한 움직임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사실 타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자는 것인데 이건 상당히 성숙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이 목적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는 의심이 든다. 물론 타인의 잘못도 비판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하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자는 것은 식민지지배의 복잡한 구조속에서 위안부를 전장으로 내몰고 현재까지 괴롭히고 있는 그 적확한 주체와 말하자면 그 끝나지 않은 전쟁의 적이 과연 “일본”뿐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반일과 극렬한 반대는 이 나라의 민족주의와 극우세력을 자극하여 전체주의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제국주의의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의식으로 똘똘뭉친 식민지배의 유령은 다시금 파시즘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자들은 “히틀러”를 독일민족의 선구자와 대단한 혁명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 때는 2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잔혹성을 띄기 전이었고 히틀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위인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던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전쟁시에 이루어진 일본인 위안부의 역할이 한국전쟁에도 이어져 유엔군이 한국에 주둔했을 때 유엔군 위안소가 있었으며, 미군들은 한국정부가 만들어 준 위안소를 즐겨 이용했으며, 그에 대해 미국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이 한국의 일본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에 거들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도 묻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0838.html

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니 진보진영의 한겨레에서 보도한 바가 있었다.

식민지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구조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솔직히 책을 읽어나가며 일본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과연 광복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광복 68주년. 우리의 전체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추천한다. 대신 이 책을 읽기 전에 모든 편견을 내려놓을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맹신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의견이 있다. 일베도 있고 51.6%의 투표율을 만들어준 사람들도 있다. 그 모든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며, 개인의 자유다. 이 심리적으로 무거운 책을 내가 선택하고 꼼꼼히 읽은 것은, 솔직히 이 책을 펴낸 출판사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3. 8. 16.

삼겹살 연상

엊저녁에 느닷없이 백만년만에 집에서 저녁을 드시겠다는 바쁜 따님께서 삼겹살을 먹고 싶다 하더니 애들 아범까지 가세해서 8시가 넘은 시간에 삼겹살 한 근에 갈매기살까지 굽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불판을 안 꺼내고 후라이팬에 구운게 화근이었다. 부엌 가스렌지 싱크대를 넘어서 기름이 방울방울 온 집안에 튀기 시작했다. 대체 튀겨지는 돼지의 기름은 어디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침에 일어나니 온 바닥이 미끈거린다.
구워먹는 고기 중에 제일 탐탁치 않아 하는게 삼겹살인데 단 한 번도 내색한 적 없다. 상추와 깻잎을 씻고 기름장과 쌈장을 만드는 것도 지 새끼 차려 먹이는데 공 들이는 애들 아범이 알아서 했지만 연기와 냄새 때문에 에어컨도 못 틀고 서서 고기 굽는 나만 짜증이 잔뜩이었다. 삼겹살의 절차는 먹는 것은 일부분이고 준비하고 마무리하고 청소하는 절차까지 복잡하고 번거롭기 그지없어서 식당에서 돈 주고 사먹는 것이 얼마나 싼 지 다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언제고 기회가 오면 나는 애시당초 삼겹살을 좋아하지도 않고 집에서 구워먹는 건 정말 끔찍하다 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만, 떠오르는 건 가족들이 모르는 엄마의 식성이라는 거다.
얼마 전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시는 50대의 강사가 시어머니의 입맛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시며 아들들이 얼마나 자기 엄마 식성을 모르는지 깨달았다 하신 적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평생 그런 내색을 안 하셨다. 한 번은 입맛이 안 좋으셨던 투병 말기에 시댁에 늘 있던 반찬인 명태코다리찜을 좀 해볼까요 하고 물으니 나 원래 그거 안 먹는다 하셨다. 저는 늘 그 반찬이 있길래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하니 느이 아버님이 좋아하시지. 라고 대답하셨다.

결혼 후 내가 포기하지 않은 것이 물것보다 육지것을 좋아하는 내 식성인데, 김치찌게를 끓여도 꽁치김치찌게와 돼지고기넣은 것으로 두 가지를 끓여내거나 돼지고기비지찌게를 잔뜩 끓여 아무도 안 먹어도 혼자 다 처먹는 건 마지막까지 포기해선 안된다는 이상한 고집이었다. 평생을 먹어왔고 길들여진 내 식성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그건 어쩌면 나의 엄마 아빠, 그 위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싫어하는 일을 하는 동안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해서 이어진다. 설거지를 쌓아놓고 인류의 가사노동을 생각하는 것처럼 바닥에 잔뜩 흔적을 남긴 돼지의 사체에 대해서 오늘은 조너선 사프런 모어의 와 그 책과 표지디자인이 비스무레한 과 제레미 러프킨의 을 식탁위에 깔아놓고 싶은데 그 책들이 식탁에 올려지는 순간 이 집에서는 냄비받침으로 전락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육식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건 단지 삼겹살은 밖에서 먹으면 안되겠냐!! 하는 감정적인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어내려는 아주 치졸한 먹물근성일 뿐이다.

2013. 7. 19.

마을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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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많은 도시민들은 도시의 시스템에 기생하여 살아가지 않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밀려오는 시스템에 거부감만 느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엉겨붙어 기생하고 있지 않나.
기생하여 사는 것은 그만큼의 불편함과 수치심을 동반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불평하지 않았던가. 도시가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고.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주인이라 느낀 적 없다.
나는 언제나 도시의 세입자였으며, 내 땅 한 칸 주장한 적 없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정책은 파도처럼 늘 도시를 에워싸고 돌았으며 나는 그 안에서 늘 밀려났다.
내 집이 무너진 적 없다. 내 집을 가져본 적 없으므로.
언제나 나는 어디에서부턴가 떠나온 사람이며, 떠나갈 사람이었다.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해야 할 이유를 느낀 적 없으며, 고향은 언제나 이동 가능했다.
내 의지가 아닌 이유로 이동해야 한다면 나는 이동하는 호모노마드가 되려 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어느 곳도 깊이 사랑한 적 없다.
끊임없이 나의 오늘을 부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지우기 바빴다.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는 타인에게도 같았다. 구태여 내 것만 아름다운 적 없다.
이제 기억속에 남은 그 거리들이, 나에게 과연 콩알만큼의 안정이라도 가져다주었는가 알 수 없다.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가던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새로운 적응과 질서를 요구한다. 뜯어내고 고쳐내고 바꿔가는 것은 인간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된다 한다.
늘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온 자에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은 익숙하다. 집의 유통기한은 2년이며, 언제든지 보따리를 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외롭다고 말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처럼, 낯설어서 어렵다고 말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내가 나 자신에게.
삶의 일부분을 지우는 것, 끊임없이 나는 뒤돌아서서 내 그림자를 흙으로 덮었다. 삶의 공간을 잊고 끊임없이 떠도는 것, 천막 치고 사는 유목민의 고향은 땅이요 자연이지만, 1.5톤 트럭에 의지하는 도시민의 고향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질 눈부시게 발전하는 조국의 빌딩숲이다. 모험과 도전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만 즐겁다. 부유하는 불안정함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지운다.
새롭게 쓰기를 반복한다는 건 끊임없이 지워야 한다는 거다.
어느 날 문득 내 목덜미가 스산해 지는 것은 “나 자신”이 낯설어서이다. 나를 모두 잊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2013. 7. 7.

7시 42분

# 1.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글쎄요. 라고 운을 떼기 시작할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았지요. 라고 시작할 것이다.
누구 때문이라고, 어떤 환경때문이었다고, 이제는 그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모든 일들은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나에게 다가왔고 그 과정속에서 내가 한 생각, 내가 내뱉은 말들과 엉켜 사건이 되었다.
그런 하루 하루가 뒤섞여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의 때와 땀이 섞여 내가 되었다. 지금 여기, 세상 그 어떤 고통도 신음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평화로운 순간의 나.

#2.

미뤄둔 것들이 있다.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와 내가 반찬을 꺼내 뚜껑을 열어주어야만 하는 늙어가는 남자가 있다.
내 한 마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돌아와 산책을 나가길 간절히 기다릴 늙어가는 개도 한마리 있다.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을 미루고 싶다.
왜냐하고 물으면, 글쎄요. 라고 시작할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요.
나는 때로 도망치고 싶으니까요.
나도 때로는 모든 책임을 던지고 싶으니까요.
나도 때로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3.

유모차에서 내려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그 아이를 터질 것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혈육이 저녁을 즐기고 있다.
인조잔디와 기계적으로 서양음악에 맞춰 압력을 달리하는 사람이 만든 분수 앞에서도 사람들은 쉴 줄 안다.
내 어린 아이도 저 앞에서 춤추며 흠뻑 젖기를 좋아했었다. 이 곳은 그래서 늘 비현실적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분쟁, 오늘도 더위에 땀흘리며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피부가 하얀 젊은 엄마들이 침을 질질 흘리는 아가들을 따라다닌다. 그 아이들은 때로 내 곁으로 와 낯선 존재를 빤히 바라보다 떠난다.
태초의 인간을 생각한다. 그 어떤 수치심도 책임감도 모르는 작은 인간들.

#4.
코오롱등산장갑을 낀 나이 먹은 여자 옆에 젊은 애기 엄마와 뽀얀 남자아이가 있다. 늘씬하게 키가 큰 애기엄마와 그니의 친정엄마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지만 나 역시 이 인조잔디에 앉아있다. 이건 사실이며 바로 지금이다.
다른 사람은 어찌 그 세월들을 견뎠는가 생각하기 전에, 나는 왜 여기 앉아 있는가 누가 묻는다면, 쉼없이 실패하고 끊임없이 좌절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도 될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쩔은 내가 나는 허름하고 더러운 바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이 사치스럽지 않으나 과도하게 평화로워 낯선 숲속으로 퍼진다.
이렇게 나는 오늘 여기서, 금요일의 저녁 7시 42분을 흘리는 중이다.

2013.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