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분노를 느끼는 건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게 산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폐지나 줍고 산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다.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발적 가난은 정신적 풍요를 기본으로 한다. 있다고 치자. 가난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좋은 조건이다.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사람은 가난하고자 경제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각자 먹고 살 양식쯤은 갖고 살고자 한다.정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경제적으로 곤궁함이 없는 중년을 맞이했다면 그건 백프로 운빨이다. 사회복지로 혜택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건 2000년부터다. 보험공단이 그때 생겼다.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돈을 모을 수 없다. 버는 대로 약값과 병원비로 들어간다. 한 사람이 일을 못하면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100만원에서 마이너스 200만원도 가능하다. 이런 사람이 가족중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구성원들이 그걸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늘 돈이 없다. 건강이라는 건 마음의 건강도 말한다. 경제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에 머무는 가족이 있다면, 그 역시 가족구성원이 부담해야 한다.
건강한데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하다면
그건 학력과 사회적 기반의 문제다.
학력과 사회적 기반은 그 윗대가 결정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부모는 학교를 보낼 수 없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학교를 왜 보낼 수 없었나, 가난했기 때문에 혹은 그 부모도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
전쟁이 있었던 나라다.
전쟁통에도 공부를 하러 다닌 사람은 소수다. 적어도 하루 동냥질을 해서 동생들 입에 풀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거나, 팔 잃은 아버지가 돼지죽이라도 얻어오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전쟁통에도 괜찮게 살았대.
자랑 아니다.
남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돈을 벌었으면 자랑은 하지 말아야지.
우리 집은 예전부터 부자였대.
그럼 일제강점기에도 부자였다는 말인가?
친일을 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부양의 의무가 적었거나, 아주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였거나, 어떤 권력에 부역했거나다.
불과 수년전까지는
그래도 정당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긴 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기본 default로 놓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 여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고찰하지 않는 자가 있다.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말은 개인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없는 자라고 정의내린다.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 고등학교 미디어언론관련 동아리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0차시 강의라 계약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곱게 화장을 한 다른 강사 세 명이 담당교사와 얘기중이었다.
순간, 아 나는 대체 뭔 배짱으로 이렇게 이불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사회를 헤매고 다니는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인가 뜨끔했다.
진로코칭과 코딩, 역사관련 전문강사샘들인 거 같았다. 학교 방과후 강의나 진로교육 강의를 많이 다니는 경력자들 같았다. 코딩샘은 학교 컴퓨터 사양이나 와이파이 상태를 걱정했고 역사샘은 진로코칭 강의도 다니는 모양이었다.
관점이 약간 다르다고 느낀게, 고1때 이 부분을 점검해줘야 2학년때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 는 문장을 들어서였다. 이 분은 교과진도와 아이들의 입시에 나보다 해박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로코칭 강사는 당연히 진로보다 진학에 더 밝은 경우가 많은데 애초 자기가 아이들에게 꿈과희망을 얘기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정작 학교나 학부모가 원하는 진로교육은 진학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름을 바꾸는 게 맞을텐데, 진학 역시 진로의 한 부분이라 그렇게 쉽게들 바꾸지 않는가보다.
담당선생님이 계약서와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챙겨오고 참가하는 아이들의 출석부를 넘겨주느라 몇 분을 앉아 있었고 마침 부장교사가 합석을 해서 강사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 고등학교는 진학지도가 어느 정도로 되고 있다는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서, 지금 내가 앉은 이 학교는, 자사고를 떨어진 아이들이 오게 되는 1순위 학교이기 때문에, 3월 한 달동안 1학년 애들의 절반이 울고 다닌다는 거였다. 위치가 좀 외져서 같은 안양권에서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려면 차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니 다니기도 힘든데,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서러움이 더해져, 3월 내내 침울한 분위기로 학교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면 괜찮은데.” 라고 말했고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ㅅ 고등학교는 자사고니까 내신이 너무 높아서 에지간히 해서는 내신도 안 나오니 수시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애들이 정시지원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정시는 N수생들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지 않느냐, 밥 먹고 앉아서 문제만 푸는 애들과 고3이 어떻게 경쟁을 하느냐, 그렇다면 ㅅ 고등학교의 전략이 잘못된 거 아니냐, 입학사정관제로 돌려서 아이들이 어떻게든 학교를 가게끔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 학교는 교사들이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낄 수 없는 자리에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다음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 앞에는 아름다운 개천이 있고 교정도 널직하고 건물도 좋았다. 1층 현관에는 무대도 있고 급식을 먹을 식당도 따로 있었다.
낙오한 아이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한다니, 1학년 입학 때 수학 두 바퀴 반 돌고 가야 한다는 말이 이거였나. 대체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지. 내가 말하는 민주시민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모두들 끊임없이 좌절하며 늙어가는데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완전히 방치해버린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저항해야 한다고, 권리를 주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라고?
동네에 마트가 하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트는, 슈퍼마켓인데 규모가 약간 큰, 중소유통업체에서 운영하거나 개인이 하는 그런 동네마트다.
1기 신도시 평촌의 구멍가게들은 모두 편의점으로 전환했고 나들가게가 소수 남아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소업체의 마트가 하나 들어올까 기대해봤으나 없었다. 근처에 시장도 있고 이 아파트 하나 생각하고 들어오기에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내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단지 안의 편의점, 4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트, 그 마트 옆의 옆 건물의 마트만큼 커다란 편의점. 시장은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재개발과 철거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항상 동네가 한산하다. 1층은 상가 2층이상은 가정집으로 된 건물이 늘어서 있는 동네인데 문닫는 상가, 여전히 비어 있는 공실도 더러 눈에 띈다.
오늘은 학원가에서 해장국을 한그릇 먹고 올리브영에서 화장솜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내일 아침에 아이 먹일 브로콜리와 새송이를 샀다. 건빵이가 애플망고를 쳐다보고 있길래 먹어보자고 두 개를 샀다. 두 개 포장에 9,500원이나 했지만 저런 거 사주면 되게 신 나하기 때문에, “아이 신 나라!”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샀다.
집에 오자마자 건빵이가 망고를 썰기 시작했는데 맛이 떫다고 했다. 애플망고는 절반이 썩어 있었다. 건빵이는 이런 일에 꽤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환불하러 가서 좋은 소리 안 하고 올 거 같아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건빵이가 따라나섰다.
환불해주셔야겠어요. 나는 망고를 보여주며 간단히 말했다. 사장이 나와 아이고 죄송합니다. 라며 캐셔에게 환불처리를 요청했다. 나는 결제했던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주고 카드승인취소와 재승인을 확인하고 환불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건빵이는 이런 물건을 팔면 어쩌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일에 화가 나지 않는다.
애플망고는 육안으로 안이 썩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그런 과일들이 있다. 동네 수퍼는 순환이 잘 안되는 몇 몇 품종이 있을 것이고 저 망고는 수퍼에서 꽤 오랜시간 짓물렀을 것이다. 두 개의 9,500원 하는 과일을 선뜻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겠나.
야채를 파는 수퍼마켓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야채와 과일은 바로 타격을 입는다. 시들시들한 야채와 과일을 판다고 손님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님은 더 빨리 줄어든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단기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시들어버린 야채와 과일을 빨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 이런 사태가 생긴다.
재개발과 철거로 주민이주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네다.
이제 슈퍼마켓의 경쟁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다. 위메프는 쿠팡보다 싸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 중 한 명은 이런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하다가 손실을 보고 서울로 업장을 옮겼고 지금도 수퍼를 하는데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문정권 들어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자기 경쟁자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정권의 탓만 하다가 자멸하겠구나. 사람들이 수퍼에 굳이 찾아가 물건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하는구나.
애플망고 때문에 신 났던 건빵이가 울적해졌다. 보상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단지 안 작은 편의점에서 개별 포장된 참외 세 개를 샀다. 편의점은 대량으로 수매하고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똑같은 걸 뿌릴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을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한낮에 한가롭게 장을 보는 일이 드물다. 재래시장은 늦게 열고 일찍 닫으면서,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이해가 잘 안간다.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특화가 필요하다. 어느 구역은 새벽을 맡고 어느 구역은 야간을 맡으면 안될까. 세상이 시장의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데, 시장은 고유의 리듬을 깨지 않는다.
오죽하면 새벽배송이 필요하겠나. 그저 사람들이 속도를 즐겨서 새벽배송이라는 게 생겼을까. 일터에서 돌아와 옷도 못 갈아입고 저녁 차려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쁜 사람들이 도시의 대다수를 이룬다.
학교 앞 문방구도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도 필요한 게 있으면 온라인으로 산다. 당장 내일의 준비물을 준비할 곳이 없으면 엄마들은 대형마트로 뛰어간다. 그걸 해결해준 게 새벽배송일거다. 종합장과 연필도 새벽배송 물품에 끼어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되었겠나.
이 나라의 산업구조는 “오죽하면” 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게 다 생겼겠나. 오죽하면.
2015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과의 협력사업으로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분야별로 전문강사를 양성하여 민주시민교육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현재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는 22명 가량의 전문강사진이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교과서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출발이었는데 교과서 내용이 충분히 훌륭해 이를 기반으로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만, 학생들의 참여와 경험을 중시하여 학교 교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활동내용으로 구성해 흥미를 더하고 직접 실습과 체험을 통해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현재 학교에 진행하는 수업 분과는 인권, 평화, 통일, 사회적경제, 공정무역, 청소년노동인권, 주민자치, 성평등, 다양성, 미디어로 나뉩니다. 각 수업은 안양YWCA, 율목아이쿱생협, 비정규직노동센터, 안양여성의전화,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에서 나누어 전담합니다.
오늘은 제가 진행하는 미디어 수업 내용을 공유합니다.
수업의 시작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헌법 1조를 통해 알아봅니다. 강사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민주공화국을 한자로 써서 한글자씩 설명합니다. 대한민국은 民主共和國입니다. 라는 말에서 백성이 주인되어 함께 화합하는 국가,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백성이라는 말의 변천을 살펴봅니다.
백성에서 시민까지 이르는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시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리스 아테네 도시국가에서 시작되었음을 얘기합니다. 이 부분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설명하는데요. 3학년은 민주주의 개념이 어려울 수 있지만 내가 땅이나 건물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려면 책임이 뒤따르고 알아야 하는 게 많다는 예시를 듭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학교에 땅이 생겨서 맘대로 뭘 지을 수 있다, 라고 가정하면 수영장, 워터파크, PC방 등의 놀이시설을 이야기하죠. PC방 주인이 되려면 PC 사양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잘 골라 사야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걸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해 조금 복잡하고 어렵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학생때는 상식적인 면을 공부하면서 민주시민으로써의 역량을 갖춰가자고 이야기하죠.
미디어 수업에서는 일단 미디어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사실 성인들도 이 개념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를 손에 잡히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어떤 특정한 도구에 담아 전달하는 것을 미디어라고 설명합니다. 공기계는 미디어가 아니지만 휴대폰에서 나오는 동영상은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딱히 미디어를 종류별로 국한해서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미디어종류를 일단 적어봅니다.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1인당 3가지의 미디어종류를 적습니다. 이 내용을 칠판에 나와 붙이게 하는데 칠판을 3등분 하여 좌측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때 시작한 미디어, 가운데는 엄마 아빠가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미디어, 맨 오른쪽은 내가 태어나고 난 다음의 미디어의 종류를 붙이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디어의 역사가 정리됩니다. 아이들이 붙인 내용을 같이 살펴봅니다. 컴퓨터를 할아버지 세대에 붙인 아이들은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한 반에 한 명정도씩 있습니다. 그때는 통신의 기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있긴 있었지만 미디어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완전히 틀리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보탭니다. 아이들이 부모세대의 미디어와 통신기기로 휴대폰과 삐삐를 적는 경우가 많은데 통신과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미디어라는 매체가 통신과 완전히 분리되기도 어려운,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각 반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강사가 다양한 이론을 이해하고 무엇이 틀렸다고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려고 합니다.
올해부터는 가짜뉴스 판별하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가짜뉴스 문제에 호되게 당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팩트체크.org에서 가짜뉴스 판별법 7가지를 규칙으로 잡았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인 경우 이 7원칙을 고스란히 이론적으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습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가짜뉴스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2015년에서 2016년에는 기사쓰기와 미디어비평쓰기를 해봤는데 이미 아이들이 매우 숙련된 상태라 딱히 재미도 없고 학원이나 교과시간에 많이 해 본 내용이라 특강형식으로 들어가는 민주시민교육에서 진행할 거리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9년 처음으로 진행한 민주시민교육 미디어 수업이었는데 가짜뉴스 만들기는 기본적으로 뉴스기사 쓰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육하원칙에 입각하고 근거를 들어야 하죠. 가짜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가짜뉴스의 목적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 이득을 보고 누군가 피해를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이미 가짜뉴스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가짜뉴스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가짜 뉴스를 왜 만들까? 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그로 끌려고. 조회수 올려서 돈 벌려고.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정확한 대답입니다. 수업중에 아이들이 “어그로”, “개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이 말을 고스란히 받아 같이 사용합니다. 외부강사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외부강사가 미디어 수업을 하러 왔다고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아.. 미디어 작작 보라는 얘기 하겠구나”, “게임 그만하라 하겠구나” 라는 금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외부강사 교육은 대부분 “금지”에 대해서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은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기”로 합니다.
가짜뉴스를 만들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투영해 표현하고 과장, 비약, 왜곡을 통해 기사를 뒤틀며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아이들의 욕망을 찾아내니 매점, 학교 안 나오기, 슬리퍼 신기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 특정한 동급생을 놀리는 듯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가짜뉴스에 걸맞은 조건이었죠.
모둠별로 머리를 맞대고 만든 가짜뉴스는 모둠사이에 맞교환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둠에서 만든 가짜뉴스를 평가합니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목적이 무엇인가, 출처가 무엇인가 찾아냅니다.
아이들이 만든 가짜 뉴스에는 분명히 이득을 보는 세력과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출처를 확인할 수 없었고요. 단편적인 실험이지만 아이들은 쉽게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믿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신념이 가짜뉴스를 퍼트린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한 학생이 “고정관념”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요소가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만들어본 가짜뉴스는 사실 희망적이었습니다만, 몇 몇 모둠 아이들은 이미 이 나라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기사에서 “충격”, “경악”, “속보”, “단독”이라는 언론사의 제목이 낚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수업시간이 모자랍니다. 2차시 정도를 더 해보면 가짜뉴스를 놓고 직접 걸러볼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이 무척 아쉽습니다.
아이들은 7가지 원칙을 주의깊게 살펴보았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젊고 영리한 너희들이 가짜뉴스를 잘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 어른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가짜뉴스를 판별하도록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지원청의 협력으로 이룸에서 특강으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 2차시를 담당 교사가 이어받아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학교에서 더 많은 미디어교육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4.27 DMZ 평화손잡기’행사에 안양·군포·의왕·과천 시민 3,000여명이 함께 참가할 경기중부본부 발대식 열어
DMZ평화인간띠운동 경기중부본부(이하 ‘본부’)는 15일(금) 안양시의회 1층에서 발대식을 열고, 판문점선언 1주년인 오는 4월27일(토)에 분단의 상처가 깊은 백마고지가 있는 대마리마을 평화누리길에서 시민 3천명이상이 참가하여 ‘인간띠’를 잇는 ‘4.27 DMZ 평화손잡기’ 행사를 펼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DMZ 평화누리길 500km에 걸쳐 전국적으로 50여만명이 평화손잡기에 참여할 예정이며, 안양·군포·의왕·과천 지역에서도 종교계·정당·여성·아동단체 등 34개 단체(3월14일 기준)가 이미 참가를 결정했다.
본 행사 전날인 4월 26일(금) 저녁에는 군포시민체육광장 특설무대에서 ‘자유를 외치며 평화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안치환·크라잉넛 등의 평화 무료 공연이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철저하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본부’는 단체참가를 독려하는 한 편 개인참가자나 5인 이상 가족, 친구단위의 참가자들이 편하게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차량편과 기타 편의를 준비한다. 일체 공기관의 자금 지원 없이 참가자들이 버스대여, 점심식사와 행사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일을 의미하는 4월27일 14시27분에 열리는 이번 ‘DMZ평화손잡기행사’는 민(民)이 주도했던 3.1만세운동과 촛불혁명처럼,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로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의 길을 열어 나가는 또 하나의 역사적 대사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본부측은 이 행사를 통해 평화통일에 대한 지역시민들의 마음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한데 모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DMZ평화인간띠운동 경기중부 본부측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안전 대책을 수립하여 이 행사를 ‘봄날 DMZ의 평화로운 소풍’이 만들기를 결의했다. 가족, 친구들이 함께 자발적이되 봄소풍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다면 한반도 평화통일의 절실함을 함께 느끼고 체험할 수 있으리라고 덧붙였다.
– 행사 참여 문의, 아동센터를 위한 버스후원문의, 행사지원자원봉사 문의 : 신영배 집행위원장, 010-8125-0410
– 붙임1 : 행사 안내 포스트
– 붙임2 : 발대식 사진 (21시 지나 재배포 예정) <끝>
DMZ평화인간띠운동 경기중부본부
※ 4.27 DMZ평화인간띠잇기행사에 참가 예정 단체 (2019.3.14. 현재기준, 10명미만 참가 예정 단체는 미포함)
공동체 사업 담당자인데, 사업으로 만났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다. 올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겠다고 몇 가지 제안을 넘겼고 이 분이 사업이 성사되기 위해 공기관과 조율중이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 주다.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프로필을 다시 달라네요.
– 네 들어가자마자 보내드릴께요.
– 선생님, 근데 자격증 같은 거 없으세요?
– 아하하하하. 이런 저런 글쓰고 떠돌면서 강좌 여는 사람이 무슨 자격증이 있겠어요?
– 그러게요. 자격증이 있냐고 물어서요.
– 누가 글쓰는 자격증을 주나요 ㅋㅋ 강의도 그렇고요.
– 그러게요.
코디네이터는 내내 난감해했지만 기관에서 요청하는 강사비 조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단 프로필을 다시 보낼테니 기관에서 판단하게 하고 너무 애쓰지 마시라 전했다.
이 코디네이터와 나는 현직 언론종사자가 특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기관에서는 2시간에 30만원을 주려면 박사학위에 경력 10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보다 조건을 낮추면 석사학위에 경력 5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진 현직 종사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얘기했고 안그래도 바쁜 사람들인데 돈보다도 뚜렷한 명분과 가치, 그래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사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지만 결정권이 없는 사람은 한숨만 쉬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분이 한 번 오셔서 마을 아이들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자신있게 확답하지 못했다.
나는 코디네이터에게 “너무 애쓰지 말자.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애쓸 영역이 있고 아닌 게 있더라. 공기관 결정권자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 그러니 너무 애써서 지치지 않도록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직종사자가 꼭 필요하겠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 끓이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2.
오후에는 지역 모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병가를 내야 하는데요, 수업을 맡아주실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아휴. 애들 말도 들으니 진행도 안 될거고요. 애들 자습하고 시간 버리게 될까봐요. 제가 예산을 챙겨둔 게 있는데 그날 시간 되시면 특강 좀 해주세요.”
자유학기제 시작인데 첫 시간을 불가피하게 비우게 되었단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 ‘아이들 시간 버리게 될까봐.’ 라는 말에 마음이 걸렸다.
주제가 뭐고 교사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은다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수년 간 봐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의욕 없이 모여도 하나라도 해보자고 권했던 사람이고 혼자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새로운 걸 체험하게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생리상,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괜히 쓸데없이 일 벌인다고 상처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동아리를 몇 년째 이끌어왔고 어떻게든 아이들이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판을 펼쳐주는 이런 사람은, 예산이 10만원밖에 없다고 해도,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멀지도 않다.
3.
더러 이렇게 혼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합리적인 구조로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있는 집 애들은 부모들이 알아서 다 챙기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 기획 안해도 부모님 친구들만 만나도 더 많이 배우잖아요. 시야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줄 수 있으면 해줘야죠.”
이 사람들이 정말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만 하는 존재인가. 비싼 강사를 불러와서 행정실을 번거롭게 하고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사람인가?
시스템이 딱 덮고 있는 뚜껑이 너무 무겁다고 달그락 거리는 게 그렇게 꼴사나운가. 이 두 사람이 오늘은 어떤 저녁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가치를 학벌과 경력으로 재단하고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접촉도 하지 않는 게 편하게 사는 세상일수도 있다.
제도가 불편한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공공기관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을 살면서 때때로 이유없는 불행을 맞닥뜨린다.
자기 실수가 아니고, 원인을 만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어떤 사고가 터져 진퇴양난에 봉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
그 불행을 마주하는 방법에 따라 나머지 삶의 질이 달라진다.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사건과 사고가 연달아 터질 경우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길을 걷다가 음주자가 운전하는 차에 치이거나, 아무 이해관계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부터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떠안는 경우가 있다. 불행이 터지면, 사고의 인과관계를 찾으려 애를 쓴다. 어떤 연구는 사람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누는데 그 분류는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사건과 사고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이 있고 내부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이건 개인의 기질과 연결되는데 그 어떤 원인도 외부나 내부 일방에서 오지 않으며 인간의 두뇌로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자연계가 작용해서 닥치는 사건이었고, 내가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 시간동안 사건의 당사자는 피해자, 희생자가 되어 긴 우울의 터널에서 헤매인다.
온 공기를 뒤덮은 뿌연 먼지가 내 삶을 관통한다.
며칠 뿐이겠지만 사람들은 심각하게 이민을 상상해본다. 이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상상을 쉽게 하는 것은 여기에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다. 미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다.
나로부터 초래하지 않은 사건 사고를 자주 당하게 되면 사람의 뇌는 능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피해갈 방법에 골몰하거나 그저 닥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거나, 혹은 생을 마감해버린다. 탐구할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게 나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시작된 일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의 미세먼지는 요 며칠 사이의 결과이지만 최근의 원인은 아니다.
중국이 원인이다, 한국도 책임이 있다는 공방은 쓸모가 없어 보인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인류 모두에게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다. 환경보호를 우선으로 내건 어떤 나라들은 자국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끔 정책을 조정했다. 그들의 생활을 책임질 필수품들은 모두 중국에서 생산되었고 우리는 중국의 저임금, 고노동, 인권침해로 만들어진 싼 물건을 쉽게 소비하고 버리며 비하하고 칭찬하기를 반복했다. 중국으로 공장이 몰려가고 사람들의 소비는 늘어났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었다. 더 이상 개발할 게 없어진 사람들은 비틀고 뒤집고 꺾고 휘어진 물건들을 만들며 연기를 뿜어냈다.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해야 경제가 돌아가고 정권이 유지되었으니, 규제를 완화하고 디젤차를 승인하고 공장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고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자르고 산을 베어 전기를 만들었다. 계속해서 소비해야 유지되는 세상을 위해 중국이나 한국이나,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다.
2014년, 10년만에 찾은 중국 상하이에 자전거는 드물었다. 수천만대의 자전거는 전기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대체되었고 학교에 가득하던 자전거 대신 폭스바겐 자동차가 가득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기 위해 더 많이 놀러다니기 위해 우리도 디젤차를 쓰기 시작했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은 그저 불안해서 전기를 더 만들어 쓰지 못하면 버렸다.
10년 전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느냐가 오늘의 나를 결정하듯이, 10년 전 사람들이 벌인 일의 결과는 오늘의 자연이 말해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라는 말을 하는 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소시민들의 태도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는 월요일, 정부의 강력한 제재조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서울시내 차량 통행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시민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공생하고자 하는 욕구를 텅 빈 서초대로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발전기를 멈추고 공장을 쉬게 하고, 운전을 하지 않고 물이라도 뿌려야 하지 않나.
공기청정기는 전기로 돌아간다. 작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더 큰 공동체의 위험을 계속 부추기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2004년 상하이의 여름이 20일 넘게 39도에 육박할 때, 공장을 닫고 모든 야간조명을 껐다. 2003년 사스로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대학에서는 마스크를 나눠줬다. 지금도 국제회의가 열리는 날 베이징의 모든 공장이 문을 닫으면, 하늘이 파랗게 돌아온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는가.
우겨도 보고 화도 내보고 달래도 봐야 하지 않나.
우리도 이렇게 해볼테니 너희도 이 정도는 해달라가 협상의 기본 아니었던가.
너희가 먼저 하지 않으면 우리도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조건을 걸지 말고 일이 되게 하려는 태도는 내 패를 먼저 보여주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빠르다.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놓고, 차량에도 공기청정기를 달면 경치하나 포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재난은 가장 낮은 곳부터 덮친다. 현장노동자, 야외근무자, 공기청정기가 없는 가정, 호흡기가 약한 사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많이 습격당하는 건 가장 가난한 곳부터다.
기득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재난문자를 보내야 할 상황이라면 재난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염병이었다해도 이렇게 대처할 것인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이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지 않겠나.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는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상선: 지역에서 여러 민주시민교육을 많이 하고 있는데, 관련한 내용들을 길게 보고 논의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의 공모사업에 선정이 됐습니다. 여기서 나눠 주신 얘기들을 녹취하고 정리해서 12월 15일에 종합토론회를 열려고 합니다. 그때 참석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전에 드린 질문지는 다른 분야의 FGI 질문지와도 내용이 비슷합니다. 다만 오늘은 노동 전문가 분들을 특별히 모셨기 때문에 노동 분야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현재 각 단체나 기관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계신가요? 어떤 교육을 시행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다고 보시는지요. 현황도 곁들여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한수: 민주노총에서는 일반 시민 대상 강연을 정례적으로 하지 않고요, 아주 가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조합원 대상 교육을 할 때가 많아요. 최근에 한세대에서 조합이 만들어져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어요. 무엇이 올바른 조합 활동인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다음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6월 말까지는 지역 내에서 역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시민 대상 캠페인이죠. 조그마한 수첩을 나눠 드려요. ‘노동자 권리수첩’이라고 해서 근로기준법, 임금 계산법, 부당노동행위 대처법을 담은 작은 소책자입니다.
최은식: 한국노총에서도 매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합니다. 산별 교육도 진행하고요. 시민 대상으로는 1년에 한두 번 대중 강좌를 엽니다.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는 것인데 사실상 인문강좌예요. 안양과 군포가 만든 협의회에 한국노총이 참여해서 기초고용질서 지키기 캠페인, 감정노동자 존중 캠페인도 분기별로 진행 중이고요. 법이나 조합 활동에 대한 교육은 꾸준히 이루어지는데 더 기본적인 인권, 민주주의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김상봉: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에서도 강의를 많이 하고요. 경기도 청소년 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도 센터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계획한다든지 교재를 개발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한 노동인권 교과서 집필에도 저와 사무국장이 1년간 관여했습니다. 서울에서도 활동 중인데, 강서구 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일하면서 노동인권, 노동조합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려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정치, 경제의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노동자성을 확보할 때 조직력이 강화된다고 봐요.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해 왔습니다.
성과는 제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네요. 개개인의 삶이 바뀌는 것이 성과일 텐데 제가 일일이 들여다볼 형편이 못 되니까요.
이상선: 평가 결과를 측정하는 지표가 없나요?
김상봉: 강의 뒤에 설문지 작성을 부탁해서 받아 보기는 하지만 질문 수가 많지 않아요. 강의 후에 참여하신 분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열망은 있어요. 그런데 어디에 가서 어떤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꾸준히 공부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지, 누구와 이런 얘기를 해야 할지를 잘 몰라요. 그 점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상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의 경우에 수강생을 어떻게 모집하세요?
김상봉: 강서구에서는 한 번에 3~4시간씩 15강~20강을 진행합니다. 철학, 역사, 자본주의, 경제, 노동조합을 얘기해요. 노동만 들어가면 지자체에서도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구성하니까 깊이 있는 교양 강좌로 봐 주는 것 같습니다. 지원하는 분들은 소속되어 있는 단체나 지역 기관의 홍보를 보고 오시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간다는 고민들은 많이 하시니까요.
이상선: 일반 시민 대상으로 그런 교육을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느끼실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강의 방법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겠죠. 청소년 대상 교육은 학교에 직접 가서 하시나요? 교장선생님이 거부하시는 일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김상봉: 3년 전부터 경기도에서 공식적으로 민주시민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 학교에 직접 가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간혹 불편해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대할 때도 있어요. 아이들한테 의식화교육을 하지 말라는 거죠. 인권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직장에 들어갔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직장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면서 반대하세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아요.
김재근: 저는 청소년 노동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공인노무사회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청소년 권익센터에서도 세 가지 정도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서울, 강원도,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찾아가는 노동권익교육’을 실시하고 있고요. 30세까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권익구제 활동을 합니다. 올해는 서너 명 정도를 권익구제한 상태예요. 마지막으로는 매달 청소년들을 상대로 권익 관련 캠페인을 벌입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요.
일을 하다 보면 권익구제가 본인의 권리를 찾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나요. 단체에서 나에게 해 줘야 할 일이라고 요구만 하는 거죠. 노동교육과 시민교육이 병행되지 못해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봐요.
이상선: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건가요?
김상봉: 경기도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의무교육화되었고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단위로 신청을 합니다. 중학교의 신청이 더 많아요.
김재근: 특성화고교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의 인식 정도를 살펴 보면 주휴수당에 대한 인식 정도는 거의 90%예요. 매년 설정되는 최저임금에 대한 사항도 상당히 잘 알고 있어요.
이상선: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기 어렵죠?
김재근: 교과서가 잘 만들어져 있어요. 인권감수성, 최저임금에 대한 문제를 깊이 다뤘고 인간답게 살려면 어떤 인품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까지 나와요.
김상봉: 이런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장학사가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교과서 사용이 의무는 아니고 권장사항인데, 내용이 좋죠.
이상선: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상봉: 노동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요. 개개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죠. 현실적으로는 개인의 삶이 망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각자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추어야 해요. 노동자들이 인식 변화로 일상을 바꾸고 삶을 바꿔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밖에서는 구호를 외치지만 집에서는 권위적이라면 이율배반이잖아요. 하나하나 바뀌어야죠. 그러니 노동 분야에 있어서 민주시민교육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식: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활동이 노동이잖아요. 그 현장이 아직 민주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예요. 많은 직장의 의사소통이 상명하복이죠. 권위와 경력을 등에 업고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노동조합만 봐도 그래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만든 조직인데, 정작 조합이 민주적으로 돌아가지 않거든요. 왜 만들었는지, 왜 활동하는지 기본을 자꾸 놓치면서 움직여요. 다시 기초부터 단단히 자리잡도록 해야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까지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사실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왔는데요.
김재근: 강의에 나설 때마다 처음 꺼내는 얘기가 노동조합에 속한 사람들이 2천만 명이라는 얘기예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노동법에 얽혀 있는 셈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몰라요. 두 번째로는 질문을 해요. 18~19세 고등학생들에게 앞으로 몇 년이나 일할 수 있을 것 같느냐고 물어 보죠. 40년~50년이라고들 대답해요. 하루에 8시간 일한다지만 실질 노동시간은 10시간쯤 되죠. 어마어마한 시간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노동에 대한 교육을 잘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상담을 받아 보면 임금, 근로시간에 대한 고민이 대다수였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의 비중이 크지만, 이제는 다른 얘기도 많이 나와요. 휴게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 사장이 싫어 회사를 못 다니겠다. 이런 부분까지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곧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이라기보다는 거의 인생의 문제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내니까요.
김한수: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죠. 현재 노동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노동을 하게 될 사람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해결해야 할 일이에요.
이상선: 이번에는 시민들이 원하는 노동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시민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한수: 교육 대상을 설정할 때 일반 시민과 조합원을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모두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조직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강의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생활에 치이니 강좌를 열어도 참석율이 높지 않죠. 고민이 많아요. 가능한 출퇴근 시간 내에 알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에요. 제도화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은 그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이상선: 말씀하신 출퇴근 시에 알리는 방법이란 앞서 말씀하신 노동자 권리수첩을 배부하는 것이죠?
김한수: 예.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려면 노동조합 가입여부에 상관없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도화가 불가능합니다.
이상선: 수업 형태는 대부분 강의식이죠? 토론도 이루어지나요?
최은식: 토론형 수업도 가끔 하지만 흔한 형태는 아니에요.
김상봉: 저는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고 봐요. 선도하는 사람들이 샘플이라도 만들어서 제시를 해 줄 필요가 있어요. 강의식 방법은 구태의연하다, 소그룹 토론이나 놀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데 형식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의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가 중요하죠. 목표를 상실한 강의에 놀이 형식을 도입하면 그저 노는 시간이 되어 버릴 위험이 있어요. 이런 자리를 통해 민주시민교육에 있어 필요한 부분을 도출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은식: 수강생으로서 수많은 강연을 들어 본 결과, 강연은 더 이상 좋은 수업 방법이 못 되는 것 같아요. 발화자의 공통적인 태도가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고요. 저는 강연 자체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강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인에는 ‘포데모스’라는 정당이 있어요. 온라인 기반이고 게시판을 통해 운영돼요. 사람들이 논의에 많이 참여하는 이슈가 상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에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정치 플랫폼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잖아요. 세상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문제에 대해 서로 얘기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전 세계에서 인터넷 망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데도 웹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너무 부족해요.
이상선: 저희가 이번 사업 제안서에 그 부분을 넣었어요. 웹을 통해 시민들에게 논의 내용을 공유해 보자는 거죠. 시민들을 온라인 채널로 유입시키자는 거예요.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도 이 문제를 고민하더라고요. 저희한테 대단히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했어요. 쉽지는 않겠죠. 접속자들에게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정보를 주고, 각 단위의 소식을 취합해서 알리기도 하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최은식: 자료를 올리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어요. 그건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어요.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김재근: 청소년 직장체험캠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부스가 100개쯤 있었어요. 노동 분야가 가장 썰렁할 줄 알았더니 노동 부스에만 300명이 넘게 다녀갔다는 거예요. 프로그램이 다채롭더라고요. 펀치 기계가 있어서 정답을 맞히면 문화상품권을 주는 곳도 있었어요. 웹 플랫폼에 그런 아이디어를 넣을 수도 있을 거예요.
오프라인 교육에서는 강의 형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특히 아예 지식이 부족한 분야에서는요. 강의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강의 시간이 세 시간이라면 한 시간은 강사가 내용을 전달하고 나머지 두 시간은 역할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례를 만들어서 극화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서로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한수: 시내버스 정류장에 버스 도착정보안내 스크린이 있잖아요. 그 스크린에 몇 자씩 띄워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몇 개 시에 실제로 해 보기도 했거든요. 잘 활용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개그맨, 노무사, 변호사, 현장 간부가 출연하는 3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계속 올렸어요. 질문에 답변도 하고, 사례 설명도 했죠. 현장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을 답았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길게는 몇십 분도 기다리잖아요.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강의 들으러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짧게나마 도움 되는 이야기들을 일상적으로 전달해 주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아요.
김재근: 저는 경기도 내 대학교 커리큘럼에도 노동인권 교육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체에는 무리라면 경영학과나 사회학과 쪽에라도요. 그런데 기업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요. 특강 정도로는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은식: 외국 사례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협상’이 들어간다고 해요. 한쪽은 회사 측, 한쪽은 노조 측의 입장이 되어 몇 시간 동안 모의 토론을 해 보는 거죠. 정규 교과과정에 이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그 정도 수준까지 가야 해요. 실제로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첨예한 입장 차이를 직접 겪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영상을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어요. 그런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콘텐츠를 가공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출퇴근 시간에 잠깐 동영상을 보고 팟캐스트를 듣는 정도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김상봉: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었잖습니까. 노동상담소장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죠. 당시의 열풍이 재미있었어요. 비정규 노동자가 종일 힘들게 일하고는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보는 거예요. 저렇게 해야 한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비정규 노동자로서 출근하는 거죠. 노동 분야에서도 원작 웹툰을 자료로 많이 활용하던데, 저는 그런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잠깐의 대리만족만 있을 뿐이고 현실은 똑같잖아요.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1970년대보다도 못해요. 그때엔 강력한 군사독재에 맞서서 몸으로 싸웠지만 이제는 세련된 싸움을 해야 한다고 하죠. 그럴 수가 없어요. 적이 세련된 상태가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보는 시각부터가 문제예요. 프랑스 모델을 도입하기에는 일러요. 정규 수업시간에 왜 인권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까.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노조 탄압부터 막았으면 좋겠어요. 지자체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지원사업을 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거든요.
물에 빠진 사람들은 일단 건져야 해요. 무식해 보이더라도 확실한 교육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단 대상화하지 않고, 같이 고민하는 동지로서 활동해야겠죠. 결론은 일단 공부부터 하자는 것입니다.
김한수: 강의식 교육을 실제로 해 보면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김재근: 한 교수님과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노동조합의 수를 늘려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20%가 조합에 가입되는 수준까지 가야 노사정 대타협 같은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거예요. 대선 공약으로 내 주면 좋겠지만 그런 문구를 걸면 위험하겠죠.
이상선: 강의식 수업에 대한 피로감이 있어요. 시민사회에서 여는 강의 계획표를 보면 엄청 훌륭한 강사분들을 모셔 오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까 매번 전화를 돌려요. 나온 사람들은 억지로 두세 시간 앉아 있는 거죠. 저희만 해도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상봉: 우리가 너무 결말을 빨리 보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데도요. 길게 보면 우리는 계주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거죠. 골인을 하려니 마음이 급해져서 10년 전에 했던 고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 구간에서 어떤 징검다리를 놓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김재근: 주민자치센터 같은 곳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접근이 쉬우니까요.
최은식: 주민자치센터 혁신이 대통령 공약이었어요. 예산도 260억 신청했는데 자한당이 다 깎아 버려서 없어졌죠. 저는 민방위에서 노동 강의를 하면 좋겠어요. 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넣었으면 해요. 설령 듣는 사람들이 졸더라도요.
주민자치위원을 한 번 해 봤는데, 이런 단체들에 민주시민교육이 정말 필요해요. 주민자치위원회는 사실상 지역 유지들의 모임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20년 이상 위원으로 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도 자연히 일방적이에요. 이런 교육을 싫어하실 텐데,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을 조금 바꿨으면 좋겠어요. 거주자, 활동가, 자영업자를 1/3씩 넣는 거죠. 이미 계시는 분들더러 나가 주십사 할 수는 없으니, 활동가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어요.
김재근: 대학생들에게 비정규직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거든요. 경영학과 학생의 요청이었어요. 숙제를 해야 한다면서요.
최은식: 저희 사무실에도 경영학과 학생이 찾아와서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김재근: 그럴 바에야 아예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좋을 텐데요.
이상선: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또, 어떤 식으로 요구해야 할까요? 지자체에 평생교육센터가 있으니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기도에서 예산을 많이 투자하고 있거든요. 민주시민조례가 만들어진 곳에서는 그에 기초해서 요청할 수도 있겠죠. 사업장 대표에게 노동교육을 의무화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최은식: 성평등교육은 의무예요. 1년에 한 번은 꼭 받아야 해요. 법으로 규정하면 간단할 텐데 강력하게 반대하겠죠.
김상봉: 광명시는 시청과 시 산하기관 전 임직원이 인권교육을 의무로 받아요. 그 안에 노동 분야도 포함되어 있어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실효성이 있죠.
최은식: 맞아요. 정책을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김재근: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강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어요. 법적 의무교육이 몇 가지 있거든요. 개인정보보호, 장애인 인식, 안전. 그에 노동교육을 더하는 거죠. 추가적으로 하나 정도는 더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교육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기업에는 시에서 가점을 줄 수도 있죠.
최은식: 주민센터에서부터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공기관이고, 일종의 공공재잖아요. 주민센터마다 교육 공간이 다 있어요. 라인댄스, 에어로빅, 노래교실 같은 강좌가 운영되고 있죠. 예전부터 이곳을 이용해 온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터주대감들의 사유지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체육관도 배드민턴 협회가 점유하다시피 쓰고 있잖아요. 이런 공간부터 시민들 몫으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 안에 민주시민교육을 넣을 수 있다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번져 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선: 민간조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요. 네트워크가 없지는 않지만 여러 분야를 포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활성화를 위한 제언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재근: 느슨한 연대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비슷한 활동들을 보면 같이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외부에서 강사를 힘들여 모시는 것도 좋지만 내부에서 육성한 강사를 통해 역량을 키워 나가는 활동도 필요하잖아요. 지원비를 가지고 경쟁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데,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이상선: 일단 이번 FGI에서 나온 제안을 정리해 각 단체에 공유할 생각이에요. 내년도 사업에 참고해 주십사 하고요. 강제를 할 수는 없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수준 높은 정책토론회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고, 플랫폼을 구축했으면 한다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각 단위에서 교육 활동을 원활히 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되 단위들을 모두 모아 주기를 바라는 의견들이 있더라고요.
최은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앞으로 단위들을 묶는 역할을 하실 계획인가요?
이상선: 쉽지 않을 텐데, 일단은 일련의 프로그램이나 강의 계획안을 서로 교환하면서 조정하는 회의 정도를 주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김상봉: 민주시민교육의 어떤 분야의 강사분이든 결국 다른 분야의 공부도 하셔야 해요. 서로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정말 열심히 스터디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선: 교육 프로그램을 조율하는 일은 시민사회 전체의 연대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이번 계기로 한 번 얘기를 묶어 보고 정리해 보는 일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김재근: 최근에 서울에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독서토론회를 꾸준히 열고 있더라고요. 워낙 작은 조직이라 큰 지원은 받지 못하고, 30만 원을 받았어요. 간식비인 거죠. 그 지원금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거예요. 예술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가 선진 사회일 텐데, 보고 있자니 안타까웠어요. 안양에도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발굴해서 시민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도 해 주고요.
최은식: 저는 요즘 기초단위 지자체가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려면 그분들과 마주보고 얘기할 일이 적지 않은데, 그분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는 정말 많은 공공재가 있지만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해요. 공간도 있고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운영하자면 공간과 사람이 모두 부족한 거예요. 지자체의 담당자들이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한수: 노동 문제를 열어 놓고 처음 토론해 보네요. 새로운 내용도 있고, 고무적인 얘기들도 들었습니다. 공론화 자체가 큰 성과라고 보고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더 바란다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작은 성과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같이 진행하고 그 성과를 공유했으면 해요.
김상봉: 논의의 시발점이 되는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 번씩이라도 더 만나서 지역사회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힘차게 사업 진행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박은호: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설치했죠. 민주시민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 운영위원회로 참여하고 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관련 예산이 잡혔기 때문에 올해 주변에서 민주시민교육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센터에서 올해 예정했던 사업 중에는 교육 사업도 있고 공론화 사업도 있었어요. 공론화 사업은 앞으로 경기도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자는 의도로 진행한 거예요. 10월 말에 갑자기 공모사업으로 나왔는데, 내용을 잘 몰라서 교육공모사업인 줄 알고 지원한 경우가 태반이라고 하더라고요.
안양군포의왕 지역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작년에 출범했다는 건 알고 계시죠? 기념사업회에서는 공모사업과 상관없이 지역에서 어떻게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왔는지, 어떤 관점으로 그 교육을 바라봐야 할지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올 하반기에 교육 결과를 모으는 작업을 하다가 공모사업을 알게 됐고, 선정이 된 거예요.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의 내용을 보니 생태, 환경 교육이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그 분야의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제외했고요. 그 외의 교육 내용은 1.인권 2.노동 3.평화통일 4.갈등해결 분야였어요.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을 네다섯 분 모시고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 해서 오늘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시작해서 네 그룹의 FGI를 이번주에 진행하고요. 다음 주 토요일, 12월 15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FGI에 참여하신 분들이 모여서 각 분야의 내용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하는 주제를 놓고 워크숍을 할 예정이에요.
본격적으로 FGI를 시작해 볼 텐데, 사전에 보내 드린 질문지에 가급적 맞추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활동가 분들을 모셨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1번 질문입니다. 소속된 기관이나 단체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셨는지, 교육을 진행했다면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직, 내용, 정책 어떤 면의 성과든 좋습니다. 지역협력사업을 하셨다면 그 부분을 포함해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승영: 저희는 노숙인 쉼터를 제공하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데, 사회복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할 여지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다만 1년에 두 차례 정도의 인권교육은 의무이고요. 저희 프로그램 중에서는 인문학 강좌가 민주시민교육에 가까운 활동이 되겠습니다. 이용자 분들의 자존감, 사회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성과가 있습니다.
김지수: 저희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이 주 업무고요. 2014년부터 민주시민교육을 매년 지속적으로 해 왔는데, 중학교 같은 경우에는 사회 교과와 연계해서 진행해요. 저희가 5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5회 정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10월에 마을잔치로 마무리하거든요. 마을잔치는 실질적으로 민주시민이 되어 보는 실천 활동에 해당하고, 친구들이 계획한 대로 실행해요. 이후 활동은 담임선생님과 진행하게 되죠.
청소년을 지도하시는 분들에 대한 교육도 진행해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해야 하거든요. 센터에 직접 가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청소년 쉼터 지도자들과 쉼터에 상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공무원, 교사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김인순: 안양여성의전화는 여성 인권 단체이기 때문에 인권에 대해 전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관련한 교육을 해 왔어요. 2015년부터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고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드는 데에도 참여했습니다.
저희는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해서 교육을 해요. 참여식 교육이다 보니 처음에는 강사도 아이들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색했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말을 더 잘하게 되고 즐거워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모둠별 경쟁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그런 방법이 의견을 끌어내는 데 효과가 있는 강사분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김유철: YMCA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시민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민주시민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조직 내에 내면화하는 작업입니다.
인프라 구축 사업이라고 하면 저희가 초창기에 강사 양성을 많이 진행했어요. Y 회원들이 다양한 학습공동체를 만들었고, 그 활동이 자연스럽게 교육 활동으로 이어지더라고요. 평화, 행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 양성 교육을 진행했어요. 교육을 받은 분들이 실제로 학생들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에 나서고 있어요. Y 밖에서도 주도적으로 관련 분야의 활동을 해 나가고 계시니 이 점을 성과로 들 수 있겠고요.
가치 내면화 측면에서는 저희가 진행하는 교육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 나가는 것을 중요시하고요. Y 자체도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가치를 내면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죠. 대표적인 예로 벼리학교를 들 수 있겠는데, 이곳의 의사결정구조는 직접민주제예요. 매달 총회를 통해 모든 의사결정을 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꾸준히 이 방식을 이어 가고 있고요. Y의 의사결정구조도 직접민주제에 해당하는 전체 회의로 전환 중입니다. 이사회라는 대의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에요.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장을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미애: 군포여성민우회는 여성단체이기 때문에, 여성 인권 부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해 왔어요.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꾸거나 성폭력 문화를 근절하고자 했고요. 민주시민교육에 가까운 것이라면 여성주의 강좌를 단계별로 진행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폭력 전문상담원 양성 교육도 실시 중인데, 100시간 정도로 이루어진 교육이에요. 학교 등 관내의 다양한 곳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의할 수 있는 분들을 양성해요. 강사분들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학부모 등 성인을 교육하시게 됩니다.
아동과 여성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사업도 하고 있어요. 지역마다 아동안전지킴이집이 있죠. 학교 앞 상가나 아파트 관리소 등이 해당되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여성폭력 예방 교육을 해요. 학교에서 안전한 마을지도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여성평화걷기’라고 해서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미군기지촌 문제를 논의하는 활동도 진행 중이에요.
교육의 성과라면 시민들이 인권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회 이슈와 관련한 캠페인을 벌인 결과라고 봐요. 올해에는 낙태죄 폐지 문제에 집중했거든요.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 생존권, 건강권에 관련한 문제죠. 60~70대 할머니들을 뵙고 말씀을 들으면 예전에는 낙태죄 때문에 아이를 숨어서 낳았다고 하세요. 국가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토로하시거든요.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미투 정국을 거치면서 확대되었다고 봅니다.
박은호: ‘인권 분야 민주시민교육’, ‘노동 분야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 방식이 인권 교육에 녹아들어가는 게 맞다고 보는 견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자리를 만든 건 인권 분야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지만, 이 전제에 부정적이시라면 나머지 논의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간략하게 말씀을 듣고 싶고요.
두 번째 질문은 인권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이 우리 사회에, 현장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것입니다.
김인순: 분야별로 나누어 교육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토대를 잡아 줘야 하는데, 토대를 잡기 위해 주제를 선정하려면 결국 분야별 논의를 해야 하거든요.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인권 분야만 놓고 보면 인권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을 듣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의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거예요. 분야별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의식 변화라는 목표를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민주주의는 누구나 바라는 사회 체제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강압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도 민주주의와 연결된다고 보고요. 그런 맥락에서 교육의 방식도 주입식 강의보다는 민주적인 토론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김지수: 저는 조금 관점이 다른데요. 분야를 나누기보다는 통합적인 교육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인권 교육을 한 지 10~20년 정도가 되었는데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잖아요. 의식만 높아지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우리의 교육 방식을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실질적으로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변화되어야 하는지, 어떤 실천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시민’이라는 표현에도 조금 의문이 들어요. ‘시민’과 ‘민주시민’은 다른 존재일까요? 사회적으로 의식 있고 집회에 나가는 등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만 민주시민일까요? 불필요한 구분이 아닐까 싶어요.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도록 지원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봐요.
4년 전부터 매년 청소년들과 토론회를 열어요. 50명, 100명의 청소년들과 테이블 토론회를 하거든요. 이번에 아이들에게 어떤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지 물어봤어요.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아이들은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활동을 어떻게 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각 분야를 실질적으로 통합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교육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인공지능이 점점 발달한다는데, 이런 시대에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결국 자기를 믿는 힘인 것 같아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시민교육에서 배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미애: 질문의 의미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죠?
박은호: 분야별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개념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요. 독일에서는 나치 같은 극우적 정치 행태가 다시 나타나는 걸 방지하자는 목적으로 연령대를 막론하고 민주시민교육을 해요. 국가에서 재원과 시간을 들이죠. 정당에서 재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요. 이 재단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의사소통과 갈등해결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따로 나누지 않거든요. 1990년대 후반에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려 한 사람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건 평생교육에 해당한다는 거죠. 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이었고요.
본 질문은 인권 교육,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박미애: 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시민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승리했을 때처럼,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제도를 이용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면 주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은 없었을 것 같아요.
전범국가인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 보면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잘 알 수 있어요. 일본에는 그런 교육이 부재하고, 국제적으로 철면피 같은 태도를 취하는 중이죠. 독일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민주시민교육을 받으니 국민 의식이 변화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도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사과를 하고 있고 국민들이 세계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군포여성민우회에 있기 때문에 여성 인권 측면을 살펴보면, 여성들이 아직도 본인의 인권과 주권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잘 몰라요.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문화 안에서 비주체적으로 살았기 때문이죠. 제도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비롯해 차별받고 있는 계층이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하고. 이들이 주권을 찾는 것은 중요한 문제예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에요.
국민들이 촛불항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헌법 1조에 대한 신뢰라고 봐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잖아요. 참여에 따른 변화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거죠. 그동안은 주어진 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스스로 체제를 만들고 제안하고 참여한다는 주권자적 사고를 갖춘 시민들이 활동하는 시대예요. 그러한 사고를 함양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안승영: 민주시민교육의 세부 항목들도 의미가 있죠. 하지만 기초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 될 거예요. 또 다른 권력화가 이루어질 위험도 있고요. 기본적인 인권 문제가 총론 역할을 하고, 그 이후에 세부적인 인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개인의 행복과 지역공동체의 행복이 우리 사회의 공동 목표이기 때문이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권지향적인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고시원 실태조사를 해 보니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안양에만 2천 명이 넘는다고 해요. 여기서 사는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보다 높대요. 유명 일간지 기자가 종로 고시원에서 보름인지 한 달인지 살아 보고 기사를 썼는데, 며칠 지나니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 문제가 주변에 팽배해요.
노숙인과 관련한 예산을 요구하면 시청이든 종교단체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숙인 자활사업의 평가 기준은 ‘노숙인들의 수입이 얼마인가.’, ‘집을 얻어 독립을 했는가.’ 같은 것들이에요. 정량적인 얘기들이죠. 경제성을 우선하는 가치관이 문제예요.
노숙인의 행복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분들이 행복한 사회여야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가치관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해야 몸에 녹아들 수 있겠죠. 내면적인 부분을 읽어 내고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인권을 소중히하는 토대가 마련되고 문화가 확립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권을 떠드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생활 속에서 인권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교육을 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김유철: 민주시민교육은 삶의 전반적인 작동 원리를 다루는 것이라서 사실 분야를 나눌 수는 없을 거예요. 오늘만 해도 특정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하려니 할 수 있는 얘기가 적죠. 하지만 우리가 현재 위치한 수준이나 단계를 생각하면 분야별 접근도 필요해 보여요. 현실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고요.
인권 교육이 왜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답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요즘 뉴스를 보면 일상의 폭력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층간소음 문제만으로도 폭력이 일어나고, 소수자에 대한 폭력도 자주 일어나요. 굉장히 신경질적인 사회라는 얘기도 나오죠. 약간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문화가 팽배해지는 상황이에요. 걱정이 많이 돼요.
나의 권리뿐 아니라 상대의 존엄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죠.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아요. 굳이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관계 회복을 위해 인권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은호: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에 함께 대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을 평가해 보고요. 시민들이 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교육이 계속 이루어지는데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발현되지 않는 문제도 함께 짚어 봐야 할 것 같아요.
김지수: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대상화된 교육이 많아요. 이 나이대에는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는 식이죠. 직접 현장에 가 보면 연령에 따라 교육 내용이 대단히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교육을 하면 의식이 개혁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어요.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지식만 전달되는 것이 문제인 거죠.
지난 9월, 10월에 청소년들과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어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정치 교육을 꼽는 아이들이 많았고요. 더 많은 아이들이 얘기한 건 토론식 수업이었어요. 공론화 기회를 달라는 거예요. 다양한 생각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다 보면 본인들이 문제를 찾을 수 있고, 나아가서 더 나은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토론식 수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론회에서 말을 잘 하는 아이들은 미리 연습해온 듯이 달달 외운 것처럼 얘기해요. 학교에서는 토론대회도 아주 많이 하거든요. 토론으로 경쟁을 붙이는데 사실 토론은 경쟁을 하기 위해서 여는 것이 아니잖아요. 서로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고 내가 아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기회죠. 토론식 수업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진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해요. 알고 있는 가치를 직접 실천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고 싶은 활동이 있어도 지원하는 기관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아이들이 배운 바를 실천할 수 있는 지역 기관을 만드는 것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 의식을 키우려면 실천보다 나은 방법은 없죠.
교육보다는 문화가 문제예요. 폭력적인 문화 안에 있으면 내가 폭력적이어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지금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론을 통해 본인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박미애: 민주시민교육의 기초는 존중과 배려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유치원에 가서 양성평등 교육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용어를 배제하자는 얘기를 해요.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장난감 만져 봐도 돼?”라고 했을 때 “안 돼!”라고 하면 “어, 치사하게?”라는 반응이 돌아오거든요. 안 된다고 하면 기다렸다가 다시 물어보고, 그때 허락을 받는다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하자고 얘기해요. 일단 존중하자는 거죠. 서로를 배려하고요. 내가 중요하면 남도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방식에 있어서는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봐요. 민우회 활동 중에도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회원 참여율이 썩 높지 않아요.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대상화된 교육이 문제가 아닐까 싶거든요. 교육 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원하는지 논의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교육을 토론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스로 아젠다를 만들고 지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향이 되겠죠.
김유철: 학교에서 토론회를 많이 여는데, 가 보면 말 잘하는 선수들만 나와요. 나머지 아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거죠. 잘한다는 아이들도 머리만 커지는 셈이고, 그 외의 아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작년에 전국 Y 차원에서 대통령을 뽑는 청소년 모의 투표를 실시했거든요. 스스로 대통령을 뽑는 활동을 통해서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걸 목격했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건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생활과 연결된 부분에서 직접 참여 가능한 장이 필요한 거죠.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의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민자치박람회장에 가 보니 안양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에서는 주민자치회를 열어서 총회를 하더라고요. 온라인을 통해서 다수가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있었어요. 형식만 흉내내는 곳들도 있지만, 동네의 작은 사안도 총회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1년에 한 번 동 단위 주민총회축제도 열던데, 이것이 시민이 바라는 민주시민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공간에 갇히지 말고 틀을 깰 필요가 있어요. 이런 활동을 하고 나면 결과를 적극적으로 피드백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안승영: 일반 시민들은 인권이 뭔지 잘 모르잖아요. 실제적인 민주사회,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려면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가 되어야겠죠. 교육 내용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고, 중요한 건 방식인 것 같아요. 갇힌 공간이 아닌 광장에서 지역주민들이 널리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해요. 교육 내용이 실천되어야 하니까요.
김인순: 강사에게 의존하는 교육 형태는 지양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강사들은 학교에 들어가서 강의를 진행하는데, 매번 학생들과 교사의 피드백을 받고 그 내용을 반영해서 교육 내용을 만들지만 결국은 일회성 교육이 이루어져요. 학교 교육과 잘 연계되지 않거든요. 교사들이 저희가 진행하는 교육의 맥락을 알고 있는지, 교사에 대한 시민교육도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면 교사들도 시민교육 분야에서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할 것 같아요.
토론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요. 일부 말 잘하는 아이만 부각되고 지나가 버리기 쉽거든요. 다양한 방식을 학교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 측에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김지수: 학교의 시스템이 민주적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학생들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학생회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고 학운위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겠죠.
어떤 교육 방식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해 보면,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이 정의한 인권에 대해 외우기보다는 자기 언어로 말해야 체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죠.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방식은 지양해야 할 거예요. 토론을 할수록 자기 언어가 살아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이 부분을 장려하는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봐요.
박은호: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공모사업이 다 미달이었어요. 지원자가 넘쳐서 자른 적이 없어요. 사업이 알려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사업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추정돼요. 서울의 공모사업도 규모가 크지 않고, 요즘은 세 명 이상이 모인 학습모임을 지원하는 시스템 등으로 전환 중이에요. 달리 말하자면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호응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개선책이 있을까요?
안승영: 지금까지의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중심적이었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성인 대상으로 저변을 확대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어른이 변해야 아이들도 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옛날에는 반상회가 있었잖아요. 지금도 마을 단위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이걸 더 활성화해서 실질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박미애: 군포시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운영하잖아요. 주민이 예산을 직접 살펴보고 시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건데, 민우회에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몇 년째 맡아서 진행하고 있거든요. 제도 운영이 너무나 형식적이라는 점이 문제예요. 주민들이 시에 제안서를 내 봤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걸 학습해 버려요.
주민이 행동하면 관에서 피드백을 해 줘야죠. 현실화된 성공 사례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실제로는 주민이 제외되잖아요. 구체적인 성과를 주민이 직접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김지수: 왜 매번 공모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까요? 이건 시민들을 행정가로 만드는 처사예요. 사람들이 페이퍼 작성에만 매달려요. 공무를 대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특정한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에 부합하고 결격사유가 없다면 어떤 일이든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어요.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실질 예산을 확정하고, 그 예산을 주민참여 예산으로 배정하는 형태도 가능하겠죠.
‘민주시민’이라는 용어에도 문제가 있어요. ‘난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느낌을 주니까요. 따로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죠. ‘교육’이라는 표현에도 한계가 있는데, 청소년까지만 해당하는 표현이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교육을 벗어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봐요.
민주시민교육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국가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당 교육을 진행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기업 연수 프로그램 안에 의무적으로 집어넣는 거죠. 한두 시간 정도를 확보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외에는 어른들을 참여시킬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김유철: ‘교육’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기존 교육의 틀에 갇혀요.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렵고, 기존 방식에 맞추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죠. 이념지향성이 있는 편향적인 용어가 아닌가 싶어요. ‘교육’ 대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대안적인 용어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고요. 교육이라는 용어의 근본에 접근해 봤으면 좋겠어요.
방식에 있어서는 내용을 분야별로 나누더라도 가정, 동네 등 대상별로 중요한 분야를 별도로 강조했으면 하고요. 인권 분야에는 나의 해방을 통해 타인을 해방한다는 철학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이 철학이 왜곡되어 있어요. 청소년들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예로 들 수 있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수: 인권 교육이 차별과 권리 중심 교육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인권 침해는 실정법 관련 문제이고, 인권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담론이잖아요. 그 담론에 접근하지 못하고 인권이 실정법적 권리라고밖에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슴 아파요. 시급한 문제 때문에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거예요.
김인순: 우리가 촛불시위를 할 때 아이들을 데려간 건 단순히 구경하라는 의도가 아니었잖아요. 이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죠. 민주주의를 체험해 보라는 뜻이었어요. 현안에 눈뜨고, 비판도 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장에 데려간 것이거든요. 민주주의에 접근하려면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경험이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있어서는 정당의 역할도 중요한데,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공무원인 교사는 아이들에게 정당에 대해 가르치죠. 모순 아닌가요? 수영장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수영을 가르치는 꼴이에요. 이런 사회에서 과연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수혜자고 우리는 가르친다.’라는 관계 설정도 이상해요. 교육 내용은 인권과 민주시민에 대한 것인데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못하잖아요.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박은호: 독일 북부에 하노버라는 주가 있어요. 이 주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년에 1주일 유급휴가를 쓸 수 있어요. 여럿이 함께 휴가를 내서 우리 동네든 나라든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주 정부에서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요. 주 정부가 지역 기업들과 MOU를 맺었거든요. 요즘 정부에서 기업을 많이 지원해 주잖아요. 하노버 주 식의 연계도 가능할 것 같아요.
시흥시의 김윤식 전 시장은 청년정책참여단을 운영했어요. 시에서 청년정책연구원을 뽑아서, 이들 제안을 청년 사업에 반영한 사례가 있죠. 민선 협치위원회도 거버넌스를 만드는 참여 방식이고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왔는데 함께 논의하거나 협의하는 자리가 없었죠. 다음 질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5번 질문은 각 영역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들이 다른 교육들이나 지역사회와 어떠한 협력 관계를 가졌으면 하는지에 대한 것이고요. 6번 질문은 기초 지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어떠한 지원과 협력을 해 줬으면 하는지를 여쭙는 것입니다. 7번 질문은 민간조직 간 협력의 틀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김유철: 5번 질문의 내용이 조금 애매한 것 같네요.
박은호: 이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고민이에요.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서로가 대화나 관계 없이 분절적으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어떤 강사의 강의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 2주 후에 같은 강사를 다른 곳에서 또 불러요. 올해도 그런 일이 있었죠. 교육을 준비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몇 가지 주제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협력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작업이 필요한지 여쭤 보는 것입니다.
김유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개념과 목표를 단체마다 서로 다르게 정리하고 있어요. 크게 보면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힘을 키우는 것, 다름에 대한 공감 능력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니 분절될 수밖에 없겠죠.
결국 로드맵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아요. 각 영역을 포괄하는 교육 내용이 필요해요. 생태 교육을 예로 들면, 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하는 교육을 하지만 반생태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태도를 거르고 목표로 수렴할 수 있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승영: 지역사회 강좌 홍수예요. 제목만 보기도 바빠요. 일원화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한 곳에 정보가 체계적으로 모여 있어서 그곳을 보면 필요한 강좌를 찾아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박미애: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로 민주시민교육의 분화가 이루어졌어요. 민우회도 그때 만들어졌고요. 독재 타도를 이룬 뒤에는 각 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운동체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이제는 그 운동체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사회가 달라진 거죠.
최근에 군포시민단체협의회에서 논의를 했어요. 내년에 행사를 열면,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일들은 같이하자고요. 시민 협의의 날을 만들어도 좋겠죠. 비슷한 행사들의 장소를 묶거나 특정 행사를 함께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말이 나온 김에 지난 11월에 열린 평화통일 강좌를 시민협 전체가 참여하는 강좌로 만들어 보자고 해서 열었거든요. 결국은 각 단체 대표님들만 오셨어요.
피로감이 쌓인 것 같아요. 대상화된 강좌라는 점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고요. 젊은 층은 오프라인 모임을 선호하지 않는 듯하기도 해요.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함께하겠다는 흐름이 있잖아요. 앞으로 운동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네트워크는 필요할 것 같은데 각자 소속된 단체의 일을 하기에도 바빠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잘 되지 않아요. 이 부분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인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 만들어 보자는 의지는 다들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유기적인 상호 보완의 의미에서 유용하죠. 그런데 실제로 네트워크에 참여해 보면 필요해 의해 엮여 있다는 느낌이 강해요. 공동 추진이나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유철: 네트워크는 필요해요. 지금까지 여러 번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공통의 목표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았죠. 여러 단체가 모이면 대표성 문제가 불거져요. 각 단체의 자기우선주의가 팽배하고요. 복합적인 문제가 생겨서 잘 운영된 곳이 거의 없어요. 몇몇 개인이 별도의 단체를 새로 조직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는 있겠죠.
안양에서는 교육을 기반으로 해서 ‘이룸’이라는 네트워크를 조직했어요. 다양한 마을교육공동체들이 모여서 준비해 봤는데, 돈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이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고, 공모사업이 많아지니 묻지마식 네트워크도 많았거든요. 바람직한 형태라고 볼 수는 없죠.
목표가 너무 거창해도 운영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이고 작은 사안을 놓고 자기 역할을 명확히 가져간 상태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소기의 성과를 내고 해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조직한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된 상태에서 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박미애: 안양에 네트워크가 있었나요?
김유철: 지역교육 분야에 특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목표는 지역교육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었고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가 존재하지만, 그 교육을 해야 할 시간에 정작 선생님들은 자습을 시켜요. 교육청과 연계해서 지역 강사가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이룸은 해체해도 될 것 같은데 어렵더라고요. 각 단체나 개인의 이익이 상충되는 지점이 생겨요. 네트워크에는 실무단이 존재하잖아요. 예산도 필요하고 이 부분을 맡아서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 사람과 단체의 의견이 충돌하는 거예요. 어디에나 있는 문제죠. 이 부분이 잘 해결되지 않아요. 그 과정에서 개인 활동가가 네트워크를 나와 다른 단체를 만들고 기존 단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일이 꽤 있거든요. 아픈 과정이겠지만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미애: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봤어요. 책 내용이 좋던데, 왜 학교 교육에서 정식 교과로 채택하지 않나요?
김인순: 교과서를 구입한 학교도 있고 PDF로 내용만 공유하는 학교도 있어요. 의무적으로 시간을 배정해 달라고 요구 중인데 현재는 선택사항이에요.
박은호: 활동가들이 모여서 새 단체를 조직하자는 논의를 하셨나요?
김유철: 발전적 해체를 하자는 얘기는 했어요. 강사들을 중심으로 독립하면 어떨까 했는데 진척은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단체 입장에서는 애써 육성한 인력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니까요. 손해라고 보는 거예요.
김인순: 아이러니예요. 강사와 담당자가 이렇게 분리된다는 것이.
김유철: 어차피 강사분들은 손에 잡히지 않거든요. 어디서든 활동하시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될 거라면 건강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시는 편이 낫다고 봐요.
박은호: 예전 시민사회에서는 1년에 1~2회 정책협의회를 열었어요. 보통 연말연초에 모여서 활동한 내용과 계획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을 함께 잡아 보자는 모임이었거든요. 활동은 각자 하되 공동 과제를 설정하는 거죠. 그런 협의체는 어떨까요?
안승영: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분산되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활동을 공유하고, 일정 조율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박미애: 성공사례든 실패사례든 기존의 사례가 있다면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요. 제가 보기에는 현재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는 없거든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염려되는 점은 피로감이 쌓이는 문제예요. 확산 가능성도 미지수고요.
안승영: 단체 대표들만 참석하는 네트워크에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저변 확대를 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해요. 시민단체뿐 아니라 지역단체들과도 연계해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부분을 찾아 봐야 해요.
박은호: 시의 행정과 정책에 대한 의견도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미애: 시의 각종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행정기관과 시민 사이의 가교가 위원회인데 지금으로써는 형식적인 수준이에요. 조례도 그렇고요. 위원회가 꾸려졌다는 것은 민관협치를 하겠다는 의도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원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정기관도 자신을 주체로 두어야 하는데, 현재는 관성적인 지원자 역할에 그치는 면이 있거든요. 현재의 정책을 형식적으로 진행하지만 않아도 민주시민교육의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어요.
김인순: 경기도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교육들이 있어요. 양성평등, 가정폭력·성폭력 예방교육 같은 것들이에요. 기금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하는데, 최소 교육 대상자의 수는 정해져 있지만 최대 명수에는 제한이 없어요. 그리고 교육을 잘 했는지 여부를 교육 대상자의 숫자로 따지거든요. 심한 경우에는 전교생 700명을 대상으로 한 사람이 강의하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최대 명수 제한이 필요해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구매할 비용이 없는지 PDF 파일로 교과서 내용을 보는 곳에서도 수업하기가 어려워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교육청의 의지가 어떤 수준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에요.
김유철: 기본적으로는 행정 혁신이 이루어져야겠죠. 획기적으로 권한을 이양해서 지역사회가 민주주의의 장으로 꽃피도록 설계해야 해요. 위원회는 많지만 얼마나 가동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주민 참여가 가능한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조례가 추상적이고 애매하다는 점도 문제예요. 중복된 것들도 있거든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정립하면 좋겠어요.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을 시 차원에서 그려야겠죠. 새로운 지원 조직을 만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싶지만 총괄 조직 정도는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학교 지원교육은 강사를 파견하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학교도 시민단체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시민단체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강사들은 학교가 폐쇄적이고 자신들을 파트너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인식하거든요. 교육이 교실에 갇혀 있어서 그렇다고 봐요. 학교는 안전 딜레마에 빠져서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시민교육은 다양한 공간과 사람을 만나야만 제대로 진행될 수 있어요. 교육청이 책임을 지고 학교 교육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미애: 지금 이 FGI는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 문제를 고민한 끝에 열게 된 건가요? 아니면 현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목적인가요?
박은호: 후자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봅니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민주시민교육 전문 단체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거든요. 지역에서 수 년 동안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는데 그동한 평가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니 이 참에 한 번 이야기를 모아 보자는 거죠.
안승영: 경기도 평생교육원에는 민주시민교육 관련 부서가 없나요?
김유철: 없습니다.
안승영: 그곳에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 주면 좋을 텐데요.
김인순: 의무교육 안으로 들어가야 평생교육원에서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요?
안승영: 아직 의무교육이 아니라도,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관련 업무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박은호: 민주시민교육 관련 조례는 구식이어서, 앞으로 개정이 될 거예요. 올해 기초조사를 마치고 내년에 기본교육계획을 수립할 예정이에요.
민주시민교육이 의무교육화된다면 민주시민교육원이나 지원센터가 별도로 생겨야 할 거예요. ‘원’은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긴 하지만요. 도 차원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겠지만 각 지자체 단위로 계획을 받아서 시행하는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크죠. 그대로 두면 평생학습센터 같은 곳에 통으로 넘어가서 실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이 있어요.
지원센터는 기초단위에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주민자치운동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시민활동 지원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의 MPO센터와 광주의 MGO센터가 이 형태에 가장 가까운 곳들이죠. 시민들의 비경제적 활동을 지원하는 종합센터예요. 시가 직접 개입하거나 하위 조직으로 다루지 않도록 처음부터 세팅을 잘 해 둬야겠죠. 아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15일에 열릴 워크숍에서 더 자세한 얘기 나누시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