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풍경]누가 예산을 끌어올 것인가

나는 90년대 노태우정권때 지어진 신도시에 산다. 신도시의 목적은 서울과 타도시와의 연결이니까, 이 도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고속순환도로를 끼고 있고 고속도로와도 가깝다.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정확하게 나뉜 이 도시는 두 개의 구(區)로 나뉘어 있다. 구도심에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있고, 신도심에도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봤자 80년대쯤의 가옥들이다.

지난주부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을에 관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구에 속해있지만 구도심의 모습을 가진 동네다. 아이들과 첫 수업으로 마을답사를 시작했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하늘도 맑았다. 지도를 보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근 중학교를 돌고 학교 주변 동네로 내려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학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의 길은 험난했다. 인도가 없거나, 있는 인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해 위험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과 민들레, 명자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도시순환고속도로가 아이들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저 도로가 하늘높이 치솟은 이후 그 아래는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의 횡단보도를 지나 중학교에 도착했다. 축구하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이 깔린 자기네 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며 중학교 운동장이 좋다고 한참 떠들었다. 중학교 앞에 건물을 짓고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계속 앞뒤를 살폈다. 근처에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이라며 감탄했고 동행한 교사도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골목길을 살펴보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란히 병렬을 이뤘고 80년대에 지었던 전형적인 양옥주택들이 이제는 다세대주택이 되어 철제계단과 작은 현관등을 덧붙여 변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 이상한 아저씨가 많다며 아침 등굣길에 “한 번만 안아보자.”말을 거는 남자 얘기를 했다.

 

“그럴 때는 안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막 도망 오면 돼요!”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예쁜 얼굴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친 담벼락 아래 좁은 인도가 있고 그 건너편엔 인도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2차선 도로는 근처 대기업 연구소로 들어가는 차들이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를 이룰 만큼 가득하다고 담당교사가 전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 아이들을 학교 방향으로 인도하며 가만히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할 여건이 안되니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반대편에 인도를 설치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통학로를 개선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정리하고 공론화해서 시청 도로교통과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정책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순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용을 누가 가져올 것이냐에서 걸린다. 인근에 붙어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지자체에 내는 세금에 따라 행정과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원, 도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결국 누가 돈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공이 갈린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여 안전한 통학로로 바꾸자고 백날 결의한 들, 예산을 따올 수 있는 정치인과 행정력이 없으면 백 명의 의견도 그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시 예산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행정은 결국 예산이 결정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 일개 시민이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돈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본 없이는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잔디밭이 깔린 중학교와, 3층 집도 생각났다. 아, 모두가 돈이 필요한 일이다.

2016. 4. 13.

코코뉴스 [자본의풍경]에 연속 게재하는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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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기자단 3.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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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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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8.

은서가 그린 그림.
은서는 집에 가는 길에 늘 화물운송 사무실 앞에 들른다.
거기엔 잘 씻기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산다. 지난 번 마을탐사할 때 은서의 소개로 다 같이 가서 봤다.

오늘은 릴레이동화를 지었는데 은서가 새끼 낳은 개를 그렸다.

미술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은서 생각을 했다.150531_iphone6+ 232

2015. 5. 22.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6.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
조별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다.
상상력이 가득 들어간 지도도 있고
정확한 축척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지도도 있고
곱고 예쁘게 그린 지도도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리고 30분동안 발표했다.
중간에 툭탁대기도 했지만 큰 싸움 없이 정리.

은서는 오늘 울지 않았는데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으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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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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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케 수업을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려고 캠코더를 가져가서 돌려놨는데 아이들이 금방 알아차렸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독서클럽 회의라며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안건을 냈다.

나는 학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달라고 했으나 아이들은 “잘 없애면 된다”고 하며 웃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아이는 내내 무기력하던 아이인데 저 날은 펄펄 날았다.

세 번째 수업, 아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한 두 번째 시간, 은서가 울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블럭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선생님 사진 찍어주세요.” 나는 어디가 문이냐고 물었다.

다음 주에 있을 수업내용을 결정하는 회의를 했다.
다음 주엔 탐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에겐 실내화를 갈아신고 나가야 하는가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가야 하는가가 가장 치열한 토론문제였다.
적극적인 발표로 탐사준비회의는 매우 기분좋게 마쳤다.

학교는 앉아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왜 앉아야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학교는 흡사 동물쇼의 조련실과 같다.
훈련이 잘 된 아이들이 많을수록, 그 학교에 대한 평가는 좋아진다.

아이들이 떠들고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학교는 정녕 불가능한가.

2015. 4. 19. 기록

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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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정들 거 같음.

오늘은 제니가 명찰을 집어던지고 가버렸다.
허허허.

 

2.

 

선생님 그거 세월호 리본이죠?
1주년이라 달은 거죠?
아이들이 내 가슴에 달고 간 세월호 리본뱃지를 보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한 녀석이 말했다.
그거 왜 달아요? 쓸데없이.
쓸데없는 거 같애?
네.
왜?
귀찮으니까.
기억해야지.
왜요?
그래야 너희들이 나중에 고등학생 되서 수학여행 갈 때 또 그런 일이 없을 거 아냐?
하긴. 그래도 귀찮아요.
뭐가?
수학여행이요. 안 갈거예요.

아이의 귀찮다는 말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말로 들렸다.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수학여행 내내 밀어닥칠 공포와 불안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2015. 4. 17. 기록

어느 중학교

– 1학년은 친구관계를 제일 힘들어해요. 초등학교 6년동안 참다 참다 중학교 가면 달라지겠지 하고 오는 거예요. 근데 여기 초등학교 2개에서 애들이 다 오거든요. 그럼 거기서 거기예요.
– 자아가 깨이면서 들이받는 애들도 있구요.
–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는?
– 가해자 피해자 구분이 없어요. 계속 바뀌어요. 다 섞여 있어요. 소그룹내에서의 문제라 지속적 왕따나 전체적으로 한 명을 몰아세우거나 폭력사건이 일어나거나 그런 건 없고요. 주로 인제 뒷담화, 카톡이나 SNS로 그러는 경우가 많죠.
– 사실 부모님들이 과민반응 하시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도 별 거 아닌 거에 대처하지 못하고 넘어가지 못하기도 해요.
– 그리고.. 친구관계 외에는 이제 부모님과의 문제. 부모님들이 기대치는 높고 이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보니까 죄책감을 갖는거죠. 엄마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기를 막 다그치고요. 저희가 볼 때는 이 아이들은 이미 노력으로는 끝까지 끌어올리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다 잘 하기 때문에 더 잘할 수가 없어요. 근데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 고등학생쯤 되면 부모가 무섭지 않으니까 그런 건 없는데 중학교 1,2학년까지는 그런 게 되게 많아요.
– 저는 요새 중학생들 만나다보면 애들이 되게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던데..
– 그래서 아이들이 매우 예민해져 있고 시험때가 되면 기괴한 짓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 수행평가를 내주면 학원에서 죄다 봐줘서 상향평준화가 되어버려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걸로 수행평가를 하면 2년이상 못하겠더라고요. 학원에서 다 건드려버려가지고.
– 학원에 완전히 점령당한 셈이군요.
– 여기는 그래요. 완전히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 대신에 애들이 대부분 공부는 잘 하고 이해력도 높아서, 어려운 단어 쓰셔도 괜찮을 거예요.
– 아.. 학습에 대한 훈련은 잘 되어 있는 거군요.
– 그렇죠. 맞아요. 독서력이 바탕이 탄탄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힘들어도 애들이 집중력도 좋고요.
– 제가 보기엔 글을 엄청 잘 써요. 그리고 외국 연수 다녀온 애들, 조기유학 다녀온 애들 많고요. 한 반에 10명 정도는 그래요.
– 부모 학력이 높다보니까 애들도 따라가더라구요. 여행 다녀온 곳도 뭐 페루, 칠레, 요르단 이런데고요.
– 환경문제는 사실상 없는 셈이라고 봐야돼요. 엄마 다 집에 계시고, 부자들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애 없구요.
– 부럽네요.
– 그런 면도 있어요.

• 인근 모 중학교 수업협조 협의중의 대화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2015.4.17. 기록

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1.

초등학교 3학년 <독서클럽 : 우리마을이야기> 첫 수업.

오늘 수업은 학교 도서실을 가서 마을에 관련되는 책을 찾아보는 과정이 있었다.
20분정도 도서실을 돌아보면서 책을 찾아보라 하는 사이 여자아이 한 명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한 아이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는데 상대방 아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멈춰서 있고 화가 난 아이만 혼자 열이 나서 펄펄 뛰고 있는 꼴.

저학년만 이용할 수 있는 미니 2층이 있는데 거기서 내려오다가 상대편 아이가 자기를 계단에서 밀쳤다는 것이다. 아이가 흥분해서 마구 달려들려고 하길래 꼭 안고 잠깐 쉬었다가 얘기하자며 일단 교실로 데리고 올라왔다.

화가 난 아이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내내 울면서 말하기를
계단에서 자기를 밀치는데 그럼 그걸 가만히 두느냐 라고 하더니
계단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말 그대로 갑툭튀) 어쩌냐고 말이 바뀌었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병원을 가야 하고 병원비도 많이 드는데 다 니가 책임질꺼냐, 로 시작되더니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수업주관을 하는 사회복지사선생님이 아이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려는데 화가 난 아이는 밖으로 튀쳐나갔고 뒤쪽에 앉은 다른 아이들은 걔 집에 갔을껄요~ 원래 성격이 소심해요~ 라고 전했다.

다시 들어온 아이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먹거려서 수업이 20분 정도 중단되었고 다른 아이들은 간식을 먹으며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화가 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분위기를 정리했고 다른 친구들이
“많이 놀랬겠구나. 괜찮아.” 라고 이야기 하도록
(아 갑자기 갠찮아여? 많이 놀랬져? 장수원 드립 생각;;) 권유했다.

계단에서 갑툭튀했다는 애는 나름대로 억울해서 자기는 앞을 보고 내려가고 있었고 화가 난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다 부딪힐 뻔 한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어찌저찌 수업을 끝내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커피 한 잔 하고 갈 수 있느냐 물으셔서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오늘 화를 낸 아이는 하루에 한 번씩 그렇게 억울한 일이 생겨서 울며 진을 빼고 화를 내는데 그 이야기는 늘 누군가 일부러 자기를 괴롭힌다는 것이 주테마라는 것이다. 아이가 피해의식이 심한 거 같아서 걱정인데 엄마에게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는 것이다. 전화도 안되고 메세지도 답이 없고 편지도 쪽지도 모두 답이 없단다.
아이가 정말 힘들겠네요 하는 차에 이 사회복지사 선생님왈

“독서클럽이라, 담임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일부러 모았어요… 음.. 아까 걔는 ADHD 약을 먹다가 최근에 중단했고요, ㅇㅇ이는 수업이 불가능한 아이고요.. ㅇㅇ이는 부모님이 퇴근이 늦어서 주로 혼자 지내는데 애가 좀 무기력하죠.. ㅇㅇ이는…..”

믹스 커피 잘 마시고 교실을 나왔다.

……………..왜 때문이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거죠? 왜 때문이죠…………..

2015년 4월 3일 기록

1994년 10월 21일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닌 탓에 한 살 어린 친구들과 동급생이었다. 학교를 4년 다니다 보니 유명해져서, 나름대로 편하게 살았다. 술담배를 하거나 일탈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교사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한 살 많은 나에게 선생님들도 나름대로의 대접을 해 준 셈이다. 고 3 때, 아침 7시 5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학교는 월계동이고 우리집은 경기도 양주라서 새벽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가을이 되어 급기야 담임에게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겠으니 아침 자율학습을 빼달라고 통보했다. 나는 그런 애였다. 사정하는 게 아니고, 못 나오겠으니 처리는 당신이 맘대로 하시라고 선언하고 뒤돌아 나가버리는 애였다.

2학기에 들어서는 졸려서 살 수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은 밤 11시에 끝나는데 새아버지가 매번 나를 데리러 운동장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다. 11시에 월계동에서 출발하여 잽싸게 밟으면 집에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씻고 야식먹고 공부를 조금 더 하다 보면 2시가 넘어 잠들었고 아침에는 5시에 일어나야 학교를 갈 수 있으니, 나는 6시에 일어나 아침자율학습을 째기로 한거다.

그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잘 못 일어나는 사람들이 우리집 여자들인지라, 그 날은 모두 다 늦잠을 잤다. 유달리 일찍 일어나는 새아버지도 그 날은 늦잠을 잤다. 새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도 동생도 같이 차에 탔다. 동생의 학교가 더 가까워 동생을 먼저 내려주고 차가 창동으로 들어설 때쯤, 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리가 무너졌다고?”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라디오 소리를 크게 올렸다. 강북에 살아 강건너 가는 일이 드문 나에게 한강다리는 혜은이의 제 3한강교가 끝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리가 있는줄도, 다리마다 이름이 다른 줄도 잘 모르고 지냈다.
8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하니 아침자습이 끝난 시간이었다. 나는 지각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교실로 마구 뛰어 올라가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호들갑 떨며 아이들에게 전했다. 내가 시끄럽게 라디오 뉴스를 전하고 있는데 덩치 큰 국어선생이 들어와 내 뒤통수를 갈겼다.

“야. 이하나. 지각했으면 가만히 있어야지 뭐 이렇게 시끄러워 아침부터.”
“아 그게 아니고 지금 한강다리가 무너졌다니까요오!!” 나에게 그 뉴스는, 희생자를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쑈같았다. 걸프전의 생중계를 고스란히 본 나에게 재난과 사건사고소식에 사람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건 마치 게임 시뮬레이션 화면 같은 것이었으니까. 걸프전을 CNN으로 보면서 느꼈던 것. 폭탄이 떨어질 때 참 아름다웠으니까. 광활한 사막에 떨어지는 불꽃놀이, 나에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나 죽고 어디서나 죽게 마련이니.
“이 새끼가, 지각한 거 무마할라고 수 쓰고 있어.” 국어선생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나를 자리에 앉히려고 다그쳤다.
“아 진짜라니까요.”

고 3쯤 되면, 선생과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경이 되지 않나, 나는 앞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빨리 티비를 틀어보라고 했다. 교실에는 뒤통수가 뚱뚱한 브라운관 티비가 있었다. 티비 아래 서 있던 아이가 손을 뻗어 MBC를 틀었다. 비오는 한강에, 다리 상판이 아래로 뚝, 썰어낸 듯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동안 티비를 틀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무 일 없는 듯 자율학습을 했다. 누군가는, “저 중에 고3이 있었다면,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은 교실에 언제나 가득했다. 우리는 햇빛 한 번 못 보고 매일 매일 도시락을 싸러 집에 다녀오곤 했으니까. 타인의 죽음과 또래가 학교 가던 길에 무참하게 아무 이유없이 생명을 잃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분개할 시간도, 울 정신도 없었다. 우리에겐 수능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고, 이미 중간고사를 끝내고 내신성적을 정리할 때였을 뿐이다. 그 다음 해, 우리중 많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내가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억울하다거나, 누군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하나의 쑈처럼 보였다. 나는 일주일 내내 그 뉴스쇼를 지켜보았고 전혀 슬프지 않았다. 잠을 설치긴 했고, 뉴스를 끄지 못했으나, 같이 울거나 뭐가 문제라거나,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보낸 20년의 세월을 지나, 20년만에, 세월호가, 그 세월을 관통해 다시 침몰했다.

도대체 배 이름은 왜 세월호라 지은 것인가.

묻어두었던 긴 세월동안의 공감하지 못했던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굽이쳐 휘돌아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몰려오는 오늘이다. 성수대교 붕괴 후 20년, 2014년 10월 21일이 방금 지나갔다.

2014.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