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읽은 토니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자녀를 살해한 흑인노예여성의 이야기가 모티브다. 1856년, 실제 있었던 마가렛 가너의 사건이다. 마가렛은 가족이 있었다. 그들 모두 노예였다. 흑인노예들도 가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었으나 백인주인에 의해 이 가족은 파괴되고 삭제되곤 했다.
가너의 가족 8명은 탈출을 준비한다. 농장이 있던 켄터키주에서 출발해 오하이오강을 건너 북부로 갈 생각이었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얼어붙은 오하이오강을 건너 신시내티에 도착했고 자유흑인의 집에 잠시 머물러 북으로 갈 채비를 했다. 추격자들이 이들을 금세 찾아냈고 가너의 가족은 죽음으로 저항할 지언정 다시는 노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가렛 가너는 당시 스물두살이었고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추격자들의 앞에서 가너는 세 살난 딸을 죽인다. 그도 바로 자살하려 했으나 바로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된다. 배를 타고 감옥으로 가던 중에 물에 뛰어들었다는 증언이 있다. 마가렛이 남은 아이중 9개월된 아이를 안고 뛰어들었다는 증언과, 아이를 먼저 물에 던지고 가너가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에 빠진 아이는 죽었고 마가렛은 사람들이 건져올려 또 살아남았다.
마가렛의 남편은 남북전쟁에 참전한 뒤 자유인이 되었고 마가렛은 다시 뉴올리언즈로 팔려갔다가 미시시피로 팔려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김인선의 2014년 논문 <흑인노예의 자식 살해와 모성: 1856년 마가렛 가너 사건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가너의 아이들은 흑인과 뮬라토(흑인과 백인 혼혈)가 뒤섞여 있었다. 첫 아들은 흑인이었으나 둘째부터는 백인의 피가 섞였다. 마가렛 역시 뮬라토였다고 한다. 한 아이는 백인에 가까울 정도로 밝은 피부색이었다고 한다. 마가렛의 남편 로버트는 흑인이었다.
마가렛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흑인이었고 마가렛은 뮬라토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마가렛이 누구의 자식이며 마가렛의 자녀들은 또 누구의 자식인가를 추정하게 한다.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상세히 다룬다.
요약하면 이렇다.
가너일가는 프리실라와 마가렛, 마가렛의 자녀들까지 한 농장에서 일했다. 마가렛의 어머니인 프리실라는 흑인과 결혼하였으나 백인소유주에게 성폭행을 당해 가너를 낳았을 것이다. 프리실라는 가너가 열 두살쯤 되었을 때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을거라 생각해 이웃에 있는 흑인노예 로버트와 급하게 결혼을 시켰으나 마가렛도 첫 아이 이후로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이 탈주를 결심한 때에 가너 가족의 소유주였던 존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아들들에게 농장을 맡겼다. 존의 아들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사이였다. 프리실라는 마가렛이 사실상 이복형제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의 자녀를 출산할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가렛이 죽인 아이는 누구의 자녀였을까. 마가렛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렛과 남편과 가족들을 잡으러 온 자들중에, 살아서 다시 노예가 된다면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 중에, 딸아이의 아비가 있었을 것이다.
수원의 한 아파트 냉동실에서 두 명의 영아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을 곰곰히 생각했다. 죽은 아이들 위로 자녀가 셋이 있다고 했다. 체포구속된 아이의 엄마인 고씨는 12살, 10살, 8살의 자녀가 있다. 그뒤로 둘을 더 낳은 것이다. 고씨는 서른 다섯살이고, 남편은 마흔 한 살이다. 고씨가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는 스물 셋이었을거다. 아이들이 죽은 것은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로 추정된다고 한다. 5년 전 일이다. 나는 죽은 넷째와 다섯 째 아이가 1년 터울인 것에 놀랐다. 이미 한 아이를 낳아 죽였는데, 또 임신을 했다니. 나는 고씨가 어떤 심리상태였는지 알 수 없으나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된 사람은 아닐까 의심했다.

사진 1 : The Modern Medea – The Story of Margaret Garner ARTIST Noble, Thomas Satterwhite, 1835-1907
160여년 전, 마가렛의 사건 이후 토마스 새터화이트는 The modern Medea 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자신을 배반한 남자와 그 자녀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린 메데이아.
마가렛 사건을 두고 죽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려 했던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흑인노예의 저항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노예의 삶을 대물림해주느니 ‘신에게 보낸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재임의 2022년 논문 <낙태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영아살해 처벌의 의미 변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 2010-2022년*>에 따르면 사회적 처벌은 이데올로기의 전파수단이며 사회적 통제의 기능을 한다. 조선시대의 영아살해는 출산통제의 수단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처벌을 받는 범죄가 되었다. 1951년 만들어진 형법에서는 “여성이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회 현실을 고려하여 영아살해죄, 영아유기죄, 낙태죄의 형을 경하게 규정했다. 미국 심리학자 레스닉(Resnick, 1970)은 신생아살해를 다른 자식살해와 개념적으로 구분짓고 명명했다. 신생아살해(neonaticide) 가해자는 1살 이내의 유아살해(infanticide), 미성년 아동살해(filicide)와 같은 다른 자식살해 가해자와 달리 병원 진료를 받지 않고, 임신 사실을 숨기고 부정한다는 특성을 가지며, 의료 기관의 도움 없이 홀로 출산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다(Alder and Baker, 1997; Malmquist, 2013; Resnick, 1970; Saavedra and Cameira, 2018)고 한다. 한국의 영아살해도 같은 특성을 갖는다.

이재임논문의 표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 촛불같은 인생에 바람 한 점 가려줄 데가 미숙하고 부족해도 부모와 가족뿐인 세상이라고 치면, 그나마도 부족한 삶은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집이 지옥과 다르지 않고 내 일상이 전쟁과 다르지 않다면, 지옥과 전쟁터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 생각은 하기 어렵다. 이 지옥을 다시 물려주고 싶은 않은 어떤 어미들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2013년 재판부는 한 영아살해 사건에 대해 “어린 미혼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양육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 책임도 커 실형은 선고하지 않는다”고 적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이 어미의 손에 의해 죽어가는 세상. 어떻게 생각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아이를 버리고 아이를 죽여야 하는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
참고문헌 : 이재임 (2022) <낙태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영아살해 처벌의 의미 변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 2010-2022년*
김인선 (2014) <흑인노예의 자식 살해와 모성: 1856년 마가렛 가너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일보 남보라 2023. 6. 29. ‘수원 영아살해’ 엄마 “막내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수하려했다”
수원 영아살해 피의자 고 모 씨의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