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거리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구로 콜센터는 신도림동이라는데, 예식장과 스타벅스도 있는 건물인 모양이다. 지도를 열어보면, 신도림동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수도권은 모두 인구밀집지역이다. 신도시는 구역이 나눠진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구도심은 들쭉날쭉 물길처럼 이리 저리 휘어져 있는 채로. 한때 지하철에는 푸시맨이라는 특정직군이 있었다. 미어터지는 출근길에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플랫폼에서 사람을 객차 안으로 밀어 넣는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다.

88년 올림픽 이후, 한국사회는 스스로 서구권에 비해 미개한 문화를 가졌다고 자폭하는 일에 열중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사회는 개인과 개인간의 물리적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팔꿈치가 닿고 몸이 밀착되는 상황은 수십 년간 이어졌고 내 얼굴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의 침이 튀는 상황에 익숙했다.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을 계속해서 좁히며 도시를 확장시키면서 인구가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댔다. 도시에는 빈 틈이 없고 그저 존재만 하는 땅이 없다. 나이든 사람들은 공터를 보면 안달을 한다. “땅이 아깝다.”

버스에서 타인의 엉덩이와 성기가 밀착되지 않고 지하철에 사람을 구겨넣지 않을 수 있을까? 다닥다닥 붙어 앉아 남의 손을 팝콘인 줄 알고 잡게 되는 영화관이나 건물 용적을 높이려고 딱 네 명만 탈 수 있게 만든 좁은 엘리베이터도 바뀔 수 있을까?

우리에 비해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고 개인공간을 보장받는다던 말했던 서유럽과 미국도 이제 창궐하기 시작했다. WHO는 판데믹을 선언했다. 신종인플루엔자도 판데믹이었다고 한다. 이제 코로나19의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상황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3월 23일 개학도 연기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같이 쓰는 공간조건이 열악하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겠다.

오늘까지 남한에서 실시한 검사는 22만 건을 넘겼다. 확진자 통계를 보면 여성이 조금 더 많다.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하거나 신체접촉을 해야 하는 직군에 여성들이 대부분 밀집해있기 때문이겠지. 콜센터 몇 개를 더 털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의 거리는 얼마쯤이 적당할까. 당신의 침이 내 얼굴에 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군과 남이 버린 마스크를 맨손으로 집어야 하는 직군으로 나눌 수 있을까.

지난 주말 갔던 대형마트에서는 여전히 무빙워크에서 카트를 잡아당기는 일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코로나생각하면 중단하는 게 맞지 않나. 게다가 그 직원은 장갑을 안 낀 맨손으로 마스크만 끼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을 만나는 사람에게 왜 장갑을 안 주나. 장갑줘라.

#오늘의결론 #서비스직에는_마스크만주지말고_장갑도줘라

 

2020. 3. 11.

코로나 혐오

이 상황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개학 후 각 교실에서 펼쳐질 혐오였다.
중국교포나 이민자들의 아이들은 각지에 흩어져있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르듯이 아이들의 경제상황과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도 세밀하게 나눠져있다.

부모 중 누가 중국인이라도, 한국어를 곧잘해서 아이들이 유아교육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쳤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중국친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더러 학부모회도 잘 참석하고 책도 읽어줄 수 있는 중국인 부모도 있다.

하지만,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한국어가 어려운 경우는 뻔한 혐오와 차별이 기본세팅되어 있다. 문제는 교사들이라고 모두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인권의식이 뛰어나고 젠더감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이 나라의 보통시민이다. 이 사회 전반의 타자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수준이고 외부로 나타나는 본인의 공적인 행동을 구분할 줄 알아서 실수가 적은 것뿐이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 교육자가 강경하게 응대하지 못하고 본인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왕따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교사라는 직군이 엘리트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계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말 한 번 안 섞어봤을 법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면 그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도무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낼 지는 경험한 자도 잘 모를 일이고 경험했다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때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2020. 2. 22.

범죄와 민폐

아침을 못 먹고 길을 나섰다.

요즘은 끼니를 거르면 속이 쓰려서 약속장소에 15분 먼저 도착하자마자 먹을 걸 사 먹을만한 곳을 찾았다. 커피집이 문을 열긴 했는데 샌드위치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다시 나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 물품을 가져온 사람이 냉장고 앞에서 진열을 돕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점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냉장고 앞에 서서 주저하자 친절한 말씨로 손님 쇼핑 좀 하시게 잠깐만 비켜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샌드위치가 세 종류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햄에그샌드위치와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차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서서 먹는 스탠드에서 얼른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한 청년이 뭔가 뚜껑을 열고 있었다. 청년이 먹는 건 비빔밥이었다. 각종 채소가 들은 용기가 밥 위에 얹어져 있었다. 아침 9시 45분에 편의점에 서서 비빔밥을 먹는 청년은 하루가 끝난건지 시작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 초등학생쯤 된 통통한 사내아이가 창문에 붙은 포스터를 한참 보다가 갔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선거 입후보자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커피로 입을 가시며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다. 약속시간보다 7분 정도 늦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늦어져 미안하다며 오래 기다렸냐고 물었다. 그는 얇은 선거운동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방이 두 개쯤 들러져 있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시간이 촉박한 줄 알았다면 약속을 조금 여유있게 잡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가 성급히 테이블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치웠다.

“제가 요즘 아침에 선거운동하느라고요. 근데 애들이 어려서요. 아침인사 끝내고 집에 가서 애들 밥을 차려주고 나와야 해서요. 아휴.”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같은 커피 드리퍼까지 가져와서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제대로 된 드립주전자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했고 동료가 새로 가져온 원두인데 맛있다고 했다며 그럴싸하게 대접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그는 컵을 뜨거운 물로 덥혀보려고 했지만 사무실 안에 개수대가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가 내려준 머그잔은 절반은 차갑고 절반은 따뜻했다. 커피는 대단히 맛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국회의원 입후보를 할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있었고, 신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0% 득표율을 넘지 못해 공탁금을 홀라당 날릴지도 모른다. 그의 얇은 잠바를 보고 있자니 다른 후보들이 입는 두꺼운 점퍼도 생각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데 그가 서둘러 책을 두 권 챙겨주었다. 후원자가 수 십권을 사서 보내줬다는 “거래된 정의”와,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운동에 관한 책자였다. 사무실 밖 공간에는 몇 몇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시작했다. 나는 손님이 있으니 멀리 나오지 마시라 했으나 그는 굳이 문 밖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도 아침밥을 차려야 하는 나라에서, 61세의 여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전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떠돌았다. 60년을 산 여자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던 이유와 교통사고로 입원중에도 자기 종교의 예배에 참석했던 이유가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밤늦게 틀었던 한 보도영상에는 재벌가의 아들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여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법적으로 그의 집에 가서 프로포폴 주사를 놓았던 간호조무사는 “엄마는 쓰러지시고, 아빠는 수술해야 하고,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라고 했으며, 그 간호조무사의 상사인 병원 원장은 “우리집도 상황 안 좋아. 감옥가서 좀 쉬다 오지 뭐. 의사하기도 지겹다.”고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은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한 결과가 이거니?”라고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민폐인가.

아침 9시 45분의 편의점 비빔밥은 또 뭐란 말인가.

 

2020.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