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어떻게 오는가

점심시간 내내 포켓몬을 잡다가 분식집에 들어가 건빵이와 충무김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나 보광동 살 때 이런 분식점 순두부 자주 시켜먹었어.”

건빵이가 “나도”라고 말했다. 제일 만만하고 표준화된 맛. 냄새가 나거나 비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음식. 반찬이 허술해도 충분히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것. 나는 빈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순두부를 시켜 먹고 그릇을 지하방 알루미늄 새시 문 밖에 내놓곤 했다.

분식집에서 순두부를 나눠 먹고 있는데 동생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며 카톡으로 2001년 이태원 사진을 보내왔다. 건빵이와 나의 밀레니엄은 보광동과 이태원에서 교차한다. 우리는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동네에 살았다. 내가 그 동네에서 떠날 때쯤 건빵이가 그 동네에 들어섰다.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10년이 거의 다 지나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우리는 가끔 보광동의 이야기를 한다.

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가끔 회식을 하러 갔던 일송정을 이야기했고 그 길 건너 시장 입구에 있던 뚝배기 만둣국집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집의 만둣국을 자주 먹으러 갔고 건빵이는 그 옆의 옆에 순대국집이 맛있었다고 얘기했다. 동생은 반도리노라는 구둣가게의 간판을 지목하며 ㅋ을 여러 개 보냈다. 나는 거기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 매일 저녁 9시에는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 공연을 했다. 나를 비롯한 웨이츄리스들은 춤을 출 때 마룻바닥에 구둣발을 내 딛을 때마다 탭댄스처럼 소리가 딱딱 나야 흥이 났기 때문에 소리가 잘 나는 바닥으로 구두를 맞추곤 했다. 라인댄스는 카우보이부츠를 신어야 더 좋지만 우리는 짧은 치마의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카우보이부츠를 신고 서빙을 하다가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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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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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사진. 해밀턴 셔츠 사장은 안면이 있다. 아디다스 옆이 반도리노라는 수제화맞춤전문점이었다.

<동생이 보내준 2001년 이태원>

동생이 “내가 나중에 반도리노에서 언니 구두 사줄게”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구두를 신을 수 없다. 동생은 언제나 “나중”을 말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8차선 도로의 인도쪽에 폐휴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밀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인도쪽 차선으로 갈아타던 중 속도를 냈다면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었다. 운전을 하던 건빵이가 위험하다며 걱정을 했다.

집에 돌아와 내일 업무를 준비하다 야광조끼를 검색했다.
한 벌에 만 원 정도면 일반 야광조끼를 살 수 있고 2만 원 정도면 그물로 된 야광조끼를 살 수 있다. 고휘도 야광 반사테이프는 한 롤에 1400원정도 한다.

작년에 취재차 관악구에 있는 푸드뱅크에 간 적 있다.
푸드뱅크 이용자들은 종이봉투를 들고와 물건을 가져갔다. 집집마다 넘쳐나는 에코백이 처치곤란이라고 이 역시 또 다른 환경오염이라고 성토하던 자리에서 그때 그 장면을 떠올렸었다.

몇 주 전에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드는 데 공임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봤다.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인건비는 개당 3천원이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수막을 세탁해와야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폐현수막을 이용해 재작업을 하는 비용은 개당 5천 원 정도 든다. 새로 찍어내는 시장가방은 5천장 정도 대량으로 주문할 경우 개당 3천원 남짓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친환경과 재활용은 돈이 더 든다.

한 사람에게 야광조끼를 입힐 수 있는 비용은 2만원.
관에서 한다면 예산을 사용해 복지관에 비치해두고 홍보 조금 하고 알아서 찾아가라고 할테지. 폐지를 가져다주는 고물상을 찾아갈 상상을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작년인가 재작년 여름, 덥다는 이유로 차를 끌고 나가 인덕원 골목을 지나다 어느 가게 담벼락에 붙은 수도를 틀어 마구잡이로 세수를 하던 노인을 보았다.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옆에 두고 얼굴이 물을 마구 묻히던 여읜 팔뚝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자들은 마트 앞에서 폐지를 담아가는 노인을 만난다. 때로 그들이 떨어뜨린 박스를 주워서 리어카에 담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이 겹치면 가난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정비하지 못한 하천의 둑이 넘쳐 반지하방에 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처럼.

보광동의 배달 순두부를 기억하는 두 사람은 각자의 기억을 가진 채 평촌에 같이 산다. 우리가 기억하는 보광동은 다른 모습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본다. 모든 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필연적으로 온다고 했던가. 무엇이 필연이고 무엇이 우연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사회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성된다고 누군가 말한 적 있다. 그게 누구인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지금 이것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월요일로 가는 밤, 바람이 분다.

2019년 5월 26일

이화동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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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아름다운 건 20대로 끝났다.
이화동 거주자들도 젊을 때는 그럭저럭 살았는데
나이드니 당췌 아래를 내려갔다가 올라올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80대 노인들이 아래 동대문에서 여기까지 올라간다는 건 거의 하루를 탕진하는 일일 거다.

이화동은 부산의 감천동과 비슷하다.
골목골목 작은 샛길은 고불고불하게 이어진다.

도시재생이니 마을만들기에 헛돈 쏟아붓는 사이에
사는 사람들이 편안한 슬라이드나 계단정비, 브라질이나 홍콩에 있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설치는 왜 못했을까
브라질 예수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는 오티스 엘리베이터에서 설치했고 자사홈페이지에 홍보용으로도 쓰고 있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을 추가하자면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자고 하겠지. 징글징글한 불도저국가.

도시재생이 무엇인가.
사람이 살 수 있어야 우선 아닌가?
이화동의 어떤 계단은 발 잘못 디뎠다가 딱 굴러떨어지기 십상이다.

고달픈 삶과 빈곤은 대상화가 되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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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그림이 있던 그 계단이다.
계단의 꼴을 보면 울퉁불퉁하고 불균형이다.
저기다 화장을 시키는 데 신경쓸 게 아니라 계단을 미끄러지지 않게 다시 만들어야했다.
돌에 페인트를 칠하면 비올 때 더 위험하진 않나?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재생은 무슨 의미가 있나?

저 계단의 그림을 지워버린 주민은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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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의 다른 계단이다.
이 정도만 되도 그럭저럭 안전하게 다닐만 하다. 안전바도 설치되어 있고 계단 높이도 적절하지만 장애접근성은 꽝이다.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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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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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갈로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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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이파네마와 칸타갈로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시설이다.

아래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시승영상

홍콩, 중국여행 (727)홍콩 시내의 엘스컬레이터와 계단.
홍콩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길.
(구글에서 퍼옴)

삶을 말할 때

가끔 내가 분노를 느끼는 건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게 산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폐지나 줍고 산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다.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발적 가난은 정신적 풍요를 기본으로 한다. 있다고 치자. 가난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좋은 조건이다.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사람은 가난하고자 경제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각자 먹고 살 양식쯤은 갖고 살고자 한다.정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경제적으로 곤궁함이 없는 중년을 맞이했다면 그건 백프로 운빨이다. 사회복지로 혜택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건 2000년부터다. 보험공단이 그때 생겼다.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돈을 모을 수 없다. 버는 대로 약값과 병원비로 들어간다. 한 사람이 일을 못하면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100만원에서 마이너스 200만원도 가능하다. 이런 사람이 가족중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구성원들이 그걸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늘 돈이 없다. 건강이라는 건 마음의 건강도 말한다. 경제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태에 머무는 가족이 있다면, 그 역시 가족구성원이 부담해야 한다.

건강한데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하다면
그건 학력과 사회적 기반의 문제다.
학력과 사회적 기반은 그 윗대가 결정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부모는 학교를 보낼 수 없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학교를 왜 보낼 수 없었나, 가난했기 때문에 혹은 그 부모도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

전쟁이 있었던 나라다.
전쟁통에도 공부를 하러 다닌 사람은 소수다. 적어도 하루 동냥질을 해서 동생들 입에 풀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거나, 팔 잃은 아버지가 돼지죽이라도 얻어오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전쟁통에도 괜찮게 살았대.
자랑 아니다.
남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돈을 벌었으면 자랑은 하지 말아야지.

우리 집은 예전부터 부자였대.
그럼 일제강점기에도 부자였다는 말인가?
친일을 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부양의 의무가 적었거나, 아주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였거나, 어떤 권력에 부역했거나다.

불과 수년전까지는
그래도 정당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긴 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기본 default로 놓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 여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고찰하지 않는 자가 있다.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말은 개인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없는 자라고 정의내린다.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작년 글 스크랩

2018년 5월 14일

썩은 애플망고

 

동네에 마트가 하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트는, 슈퍼마켓인데 규모가 약간 큰, 중소유통업체에서 운영하거나 개인이 하는 그런 동네마트다.
1기 신도시 평촌의 구멍가게들은 모두 편의점으로 전환했고 나들가게가 소수 남아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소업체의 마트가 하나 들어올까 기대해봤으나 없었다. 근처에 시장도 있고 이 아파트 하나 생각하고 들어오기에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내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단지 안의 편의점, 4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트, 그 마트 옆의 옆 건물의 마트만큼 커다란 편의점. 시장은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재개발과 철거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항상 동네가 한산하다. 1층은 상가 2층이상은 가정집으로 된 건물이 늘어서 있는 동네인데 문닫는 상가, 여전히 비어 있는 공실도 더러 눈에 띈다.

오늘은 학원가에서 해장국을 한그릇 먹고 올리브영에서 화장솜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내일 아침에 아이 먹일 브로콜리와 새송이를 샀다. 건빵이가 애플망고를 쳐다보고 있길래 먹어보자고 두 개를 샀다. 두 개 포장에 9,500원이나 했지만 저런 거 사주면 되게 신 나하기 때문에, “아이 신 나라!”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샀다.

집에 오자마자 건빵이가 망고를 썰기 시작했는데 맛이 떫다고 했다. 애플망고는 절반이 썩어 있었다. 건빵이는 이런 일에 꽤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환불하러 가서 좋은 소리 안 하고 올 거 같아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건빵이가 따라나섰다.

환불해주셔야겠어요. 나는 망고를 보여주며 간단히 말했다. 사장이 나와 아이고 죄송합니다. 라며 캐셔에게 환불처리를 요청했다. 나는 결제했던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주고 카드승인취소와 재승인을 확인하고 환불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건빵이는 이런 물건을 팔면 어쩌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일에 화가 나지 않는다.
애플망고는 육안으로 안이 썩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그런 과일들이 있다. 동네 수퍼는 순환이 잘 안되는 몇 몇 품종이 있을 것이고 저 망고는 수퍼에서 꽤 오랜시간 짓물렀을 것이다. 두 개의 9,500원 하는 과일을 선뜻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겠나.

야채를 파는 수퍼마켓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야채와 과일은 바로 타격을 입는다. 시들시들한 야채와 과일을 판다고 손님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님은 더 빨리 줄어든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단기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시들어버린 야채와 과일을 빨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 이런 사태가 생긴다.

재개발과 철거로 주민이주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네다.
이제 슈퍼마켓의 경쟁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아니라 쿠팡과 마켓컬리다. 위메프는 쿠팡보다 싸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 중 한 명은 이런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하다가 손실을 보고 서울로 업장을 옮겼고 지금도 수퍼를 하는데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문정권 들어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자기 경쟁자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정권의 탓만 하다가 자멸하겠구나. 사람들이 수퍼에 굳이 찾아가 물건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하는구나.

애플망고 때문에 신 났던 건빵이가 울적해졌다. 보상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단지 안 작은 편의점에서 개별 포장된 참외 세 개를 샀다. 편의점은 대량으로 수매하고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똑같은 걸 뿌릴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신선식품을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한낮에 한가롭게 장을 보는 일이 드물다. 재래시장은 늦게 열고 일찍 닫으면서, 손님이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이해가 잘 안간다.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특화가 필요하다. 어느 구역은 새벽을 맡고 어느 구역은 야간을 맡으면 안될까. 세상이 시장의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데, 시장은 고유의 리듬을 깨지 않는다.

오죽하면 새벽배송이 필요하겠나. 그저 사람들이 속도를 즐겨서 새벽배송이라는 게 생겼을까. 일터에서 돌아와 옷도 못 갈아입고 저녁 차려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쁜 사람들이 도시의 대다수를 이룬다.

학교 앞 문방구도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도 필요한 게 있으면 온라인으로 산다. 당장 내일의 준비물을 준비할 곳이 없으면 엄마들은 대형마트로 뛰어간다. 그걸 해결해준 게 새벽배송일거다. 종합장과 연필도 새벽배송 물품에 끼어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되었겠나.
이 나라의 산업구조는 “오죽하면” 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게 다 생겼겠나. 오죽하면.

 

2019년 5월 12일

[기고]깃발을 흔드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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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내는 교육정책포럼 통권 304호, 2018년 10월 발행 간행물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안양지역의 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한 것은 2014년 3월이다. 각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네트워크 형식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준비한 지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교육네트워크를 표방한 협의체들은 이미 여러 개가 있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이하 이룸)이 출발하는 데는 아픈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의왕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7살 소년이 혼자 있다가 키우던 개에 물려 죽었고, 안양에서는 여자어린이 둘이 납치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역에서 지키자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였고, 그 결실을 맺은 게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기 위해 일선교사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1~2년 이상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공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학교가 방과 후까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공동체는 와해되었으니 사회공동의 책임을 나누자는 의도였다. 공교육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단단한 토양을 만들고 학교의 닫힌 교문을 열자는 의도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은 왜 느끼게 된 것일까?

시민들은 학교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대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지역과 학교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학교가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흔히 학교의 구성원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교는 교직원과 공교육기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방식은 모두 전근대적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혁신학교와 진보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학교변화의 욕구는 학교 안에서는 응축되어 밖으로 터지는 형태로, 학교 밖에서도 교문을 밀어제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기폭제가 된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으로 촉발된 이룸이 출범하자마자 전 국가를 비통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교육지원청이 먼저 제안하여 교육지원청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각 기관에 숙련된 강사들이 있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는 학교 현장에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룸에 합류해 있는 회원기관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들을 최소 2명 이상 추천받아 교과연구과정에 들어갔다. 2015년에는 10여 개 학급에 불과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교 측의 요청이 늘어났고 교육지원청도 이에 적극 협조하여 2017년에는 72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120개 학급에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예산은 모두 교육지원청에서 부담한다.

안양지역의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청이 재원을 대고 이룸 사무국에서 강사보수교육과 시민대상교육을 맡는다. 강사 보수교육은 매년 2회 이상 실시하며 시민교육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거나 활동가가 될 만한 시민들을 찾아내고 있다. 강사보수교육에 대한 비용은 교육지원청에서 2018년부터 약간의 강사비를 보태고 있으며 그 외 시민대상교육과 내부 강사역량강화 교육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충당한다. 각 기관은 민주시민교육 전문강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실천을 강화할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 등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2018년 안양의 민주시민교육 강사진은 2015년도의 1기 강사부터 2017년도 3기에 신규 합류한 강사들까지 30여
명에 이른다. 강사진은 매년 조금씩 들고 나는데 겨울방학마다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 변화한 학습환경에 노력하도록 내부협의를 거쳐 새로운 교안을 만든다.

현재, 안양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아마 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형태인 교육 참여인원이 그 기준으로 될 것이다. 2015년에 12개 학급, 2016년에 13개 학급에 수업지원을 한 것까지 더하면, 1개 학급을 30명으로 산출하였을때 안양지역은 이룸과 교육지원청이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혜를 받은 학생 수가 2015년에 360명, 2016년에 390명, 2017년에 2,160명, 2018년에 3,600명이된다. “찾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지원 누적계는 6,510명이다1).

안양의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이룸에서 매년 겨울, 신규 교안을 마련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통합시스템으로 각 학교에 교안을 제시하고, 그 중 선착순으로 학급별 수업지원 신청을 받아 각 기관에서 강사를 배정해 특강 수업을 나가는 형식으로 추진된다. 수업지원 신청은 교사들이 한다. 2~3년 연속으로 신청하는 교사들도 있는데 수업지원을 나가는 강사입장에서도 작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교사의 신청 여부에 따라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또한 학교별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신청이 현저히 다른데 학교 내부 분위기와 연구모임, 학교 내 민주적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2년 연속 한 학급도 신청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동 학년 전체학급 수업을 신청하는 학교
는 통계를 내지 않아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룸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 사업은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한 해에 수백 시간의 교과수업이 있다. 그중에 지역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민주시민교육 수업지원은 한 학급에 단 2시간이다. 더러 학교에 프로젝트 수업을 마련해 지역의 강사들을 초빙해 4차시 이상의 연속수업을 기획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성과지만 학생 개개인이나 학급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매년 사업 후 결과를 현장에서 듣거나 설문조사를 실행하면 교사들은 더 많은 민주시민교육 특강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교육지원청에서 현재의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강사비용만 1년에 1천만 원이다. 교육지원청과 학교 현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교육의 종류를 결정하게 된다. 고쳐야 할 시설물과 학교 내부 사정이 우선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모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연내에 성과가 나지도 않고 2차시짜리 수업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이라고 칭찬받는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수동적인 형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사들은 교육안을 보고 자기 학급에 적합한 것을 신청한다. 일종의 교육쇼핑이다. 교육과정에 대해 강사와 협의하는 과정은 각 강사가 출강 전에 교사와 전화통화로 하는 게 전부다. 민주시민교육 교안 구성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사전 의견을 들어본 적 없으며, 교사들과 학교가 진짜로 민주시민교육을 원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러 어떤 교사들은 외부 강사진의 진입을 꺼리며, 수업을 참관한 관리자들은 강의형이 아닌 참여형 수업의 자유로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4년 차에 접어든 강사들은 매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강사모임을 통해 그룹 스터디를 병행한다. 2018년에 수업을 진행한 강사들은 22명이다. 120개 학급에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면 1인당 5.4개 학급, 10차시 정도에 불과하다. 공부한 시간보다 활용한 시간이 훨씬 더 적다.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 강사진은 올해 들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과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강사진이 더 많이 공부한 해가 될 것이다.

지역네트워크가 좀 더 큰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연대회의나 지역의 각 네트워크 협의체는 별도의 법인을 갖지 않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형태로 진행된다. 각 단체는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지역과 주제에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나누어 전담하고 있으나,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이 지금처럼 협약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각 교육지원청은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조성하도록 권고를 받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안양지역도 연구교사와 관리자, 이룸이 참여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있지만, 연내 몇 회 모임으로 서로 간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협의를 이루어낼 시
간이 없는 것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학교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 역량강화와 지역에 관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판단되어 교육지원청과 교사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담당교사들의 업무는 민주시민교육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마다 전담교사가 있어도 학교는 수없이 많은 일로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안양처럼 교육지원청의 주도로 진행하는 방법은 학교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각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자기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을 수년에 걸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역협의체가 같이 협력할 경우 지역 내 역량 있는 강사들의 교과연구를 도울 수 있고, 학교는 교육지원청을 믿고 민주시민교육 강사들을 신임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내용은 아이들이 가정에 전달하고, 각 가정의 보호자들은 결국 모두 지역의 시민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다.

이후에 이를 제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재정지원과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교사들만의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지역과 함께 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정부기관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업무를 경감하고 민주시민교육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초단체는 각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 나가야 한다. 교육공무원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내부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근무조건이 옥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권력의 영속성을 믿지 않으며 정의에 예민하고 매사의 공정을 추구하며 포용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이룸은 결과적으로 다시 안전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억울한 일로 옥살이를 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거나, 차별과 혐오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위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하나 사무국장은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중문계에서 한어언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하다 2014년부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집필노동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NGO, NPO의 가치 확산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 히응”의 대표다. 대표저서로 「포기하지 않아, 지구」(2018, 빨간소금)가 있다.

[기고]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본 원고는 2018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지에도 기고한 원고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민주시민교육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 집필노동자)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4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1 :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의 지역과 시민단체의 역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설립취지는 공교육의 회복을 돕고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지만 해결해야 할 장벽은 한둘이 아니었다. 출범 직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이룸의 창립주체였던 안양YMCA 문홍빈 전 사무총장의 사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봉착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가자는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학교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입시로 작동되는 기이한 사회다. 대학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결정된다. 학벌로 계급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던 산업화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학벌은 일종의 종교적 관념마저 갖게 되었다. 대학만 잘 가면 만사형통이라는 이념이 보편화되었고 그 이념 아래 전 국민이 헤쳐 모여를 반복했다. 자녀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주와 직장을 결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대학입시시험의 편의를 위해 공공시설의 제약까지 감행하는 나라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군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이주를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가진 학부모가 다수를 이루면서 공동체는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다. 이익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사회에서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당위성은 없다.

 

지역공동체 활성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신자유주의가 잠식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마을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이동하고 마을공동체 되살리기도 안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마을공동체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을공동체사업이 공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자발적이어야 하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시민사회가 주도했던 수많은 영역들이 공기관 산하로 흡수되었고 공적 자금이 들어오면서 풀뿌리 운동의 자생력이 죽어간다는 소리도 크다. 시민성에 대한 교육 역시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운동은 끊임없이 현장을 돌보며 민간에서 필요한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이는 시민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시민단체들의 숙명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민주시민교육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교육들을 수십 년간 해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 새로운 용어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목적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시민 개개인의 역량으로 확고히 만들어내고 그 어떤 계층이나 세력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장치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확고하게 띈 활동과 교육이 학교라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근대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도권 내 교육과 학교제도 바깥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학교 밖의 시민교육이 참여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학교는 참여를 독려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2014년 이후로 학생들이 직접 학교 정책과 교칙 변경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긴 했으나 이는 매우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일부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 지자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기초단체 의원들이 늘어났으며 시민을 대표하는 후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교 밖 지역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제등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관료적 체계와 상명하복의 근대적 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정책의 결정권자들은 공무원이며 이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도 상부에 보고하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일부 이익집단과 극성 학부모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하며 맞서 싸우기 어려운 학교 구성원들의 태생적 한계를 여러 번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라고 하지만 이 삼위 중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교사들뿐이다. 이 결정권을 놓고 학부모와 학교가 대립하는 양상이 생기면 학생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결정권을 쥐려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내부의 민주주의 지표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양지역의 경우 민주시민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참석한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내 민주주의의 갈 길은 요원하다. 관리자의 횡포는 사라진 추세지만 내면화된 수직적 권력구조는 쉽게 뜯어고치기 어렵다. 개인의 내면화된 권력구조는 집단으로 이입되고 이 집단성이 발휘되는 공간이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를 숨 막힌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원인일 것이다. 교사들은 언제나 안전과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고 국가는 학교에 수많은 책임을 지운다. 학교내부는 언제나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으며 내부결정구조의 비민주성은 수시로 튀어나온다. 혁신의식을 가진 평교사들과 관리자의 불일치, 행정과의 괴리등은 학교 민주화를 저해하고 외부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된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민사회단체를 목적을 띈 이익집단으로 치부하는 경우, 지역주민강사를 교육하청수행자로 여기는 태도, 전문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온한 사상을 주입한다는 편견이 외부 강사의 현실적 강사료, 외부 강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진 집단이 외부에서 학교 내부로 진입하려면 매우 구체적이고 상호간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관료적 시스템에는 실적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욕구, 교사에게는 점진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하여 학교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 학생들에겐 신선한 교육과 자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지역사회에는 학교라는 교육현장을 열고 지역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시민의 양성이라는 각자의 욕구을 충족할 요건을 고르게 분배하고 자극할 때 민주시민교육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이제 어디에서도 발붙일 수 없으며 이제는 각자의 입장을 가진 욕망들을 끌어내어 새로운 제도에 적용해야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 수 있다.

 

  • 전개 2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어려운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앞에 밝혔듯이 경기도교육청의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섯 째, 급변하는 시대와 세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90년대 이후 사이버스페이스라 일컬어지던 가상현실공간은 이제는 삶의 절반을 차지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 세대고 이제 이 세태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역사회,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학교는 미디어 급변에 대한 대처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으로 손꼽아도 무방하다. 특히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불거지는 다양한 소수의견에 대한 의견 정립이 전혀 안된 상태다. 공통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는 화두가 수만가지에 이르는데 아직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공론화 할 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미디어를 기피하려는 기성세대는 사실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청소년보다 한참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촛불 이후 학생들은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화했으며 어떠한 권력도 파괴 가능하다는 것을 내면화했다. 청소년세대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이 민주시민교육을 펼쳐나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의미와 함께 기성세대의 헛발질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 기성세대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민주적 감수성이 낮다는 것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층은 청소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감수성을 예민함으로 이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돌아봐야 한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주장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인권과 불평등에 대한 소리도 높아진다. 혹자는 현재의 이 현상에 대해 혼란스럽고 시끄럽다고 폄하하기도 하나, 그 동안 도덕성과 애도로 합일되고 선악구도로 양분되었던 정치적 입장에서 억눌려 왔던 모든 의견들이 2016년 촛불을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단계라 보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시민사회와 운동권에서도 소수자들의 의견은 대의를 위해 외면되어 왔다. 2016년 촛불 이후 각 교실과 거리에서 혼재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것들도 일관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인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재구성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야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사회변혁 단계에 생략되거나 외면되어 온 과정이며 꼭 한 번 거치고 넘어가야 할 단계이다. 권력구조를 내면화한 기득권층과의 갈등, 또는 각 개인의 내면의 혼란을 동반한다. 인정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의 한계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잘 해내고 있다는 상호간의 믿음이다.

 

학교 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끊임없는 갈등이 촉발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일어나야 하며 토론과 토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의견 조율, 상대방의 입장 이해 등이 필요하다. 학교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지역사회가 가진 한계도 확인해야 한다.

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은 시민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을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학교는 또한 외부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여 보다 선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모든 규율과 지금 당연히 여겨지는 가치들을 의심하고 전복시킬 모험심도 필요하다.

 

안양에서 진행해 온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얻어낸 각 지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교육지원청의 역할

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한다. 이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준비해 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의사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파손된 책걸상을 바꾸거나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등의 시설투자부터 기본적인 교과과정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급급하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결과가 당해 연도에 나타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당연히 민주시민교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지원청은 먼 미래를 보고 학교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우수한 강사진을 학교에 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사비와 강사 양성교육에 관한 재원을 마련한다. 교육지원청에서 마련한 예산으로 강사교육과정을 거치면 강사진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높아지고 학교측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법도 역량껏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할

이미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활동가와 전문강사진 중 학교교육에 임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의 강사진을 발굴한다. 구체적인 활동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마다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 담당실무자의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업무 분담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네트워크는 각 분야별의 개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인정하고 단단하되 느슨한 체계를 지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확보한 강사진을 양성하되 매년 4회기 이상의 워크숍을 진행해 보수교육을 철저히 하되 강사진의 변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각 단체는 학교 교육을 전담할 강사들의 교육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동한다. 강사을 신뢰하게 그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믿음은 일을 그르친다.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 수시로 점검하되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점검은 질책을 목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며 개선의 재료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각 단체의 실무자 활동가 전문강사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도록 지원하는 단계를 수년 동안 실행하면 이들이 자연스러운 민주시민교육의 전파자가 된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실현은 기초단체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기 가장 좋다. 민주시민교육을 접한 아이들이 가정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되고 이에 부모들이 영향을 받거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 학부모들이 지역시민이고 이들로 인해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된다.

기초단체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기반한 민주시민교육 관련 예산을 배정해 지역내에서 시민대상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 할 임무가 있다. 기초단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지역사회시민들의 역할이다.

 

학교의 역할

학교는 기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시대를 읽는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성공의 기억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저항과 변혁의 욕구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학교 내 민주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 개인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한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무리하지 않되 스스로 변화할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어라, 는 명제가 왜 필요한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교육지원청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나 학부모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철학과 신념도 필요하다. 휘둘리기 시작하면 민원을 처리하는 단순업무로 전락하기 쉽다. 단일 공동체 내에서 추구하는 공통의 철학이 필요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낼 관리자의 자세도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관리자가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교양있는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며 합의하고 쟁취하는 시민성을 목표로 한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실천이 필요하다는 기득권층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복잡하며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완성하지 못할 체제일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의 욕구가 관철되고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내는 일이 인간 본성에 거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공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쉬운 개인의 욕망을 위해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보조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욕망이 진열되는 전시장이다. 이 모든 이슈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극상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의 용어다. 그러나 “하극상은 안된다”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서다. 이 나라는 국가인가 군대인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철학이 탄탄한 사람에겐 가르치려는 어떤 텍스트도 무용하며 동시에 모든 텍스트가 가능하다. 지금 결여되어 있는 것은 공동체의 철학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발언의 기회와 시간을 늘리고 불편한 이야기를 공론화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학생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26일 작성.

 

 

끝.

 

일요일 밤, 세신

일요일 밤인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목욕탕에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낮까지는 그럴만 한데, 원래 월요일 출근 전에는 어디나 썰렁한 법 아닌가. 밤 10시가 다 되어 들어섰는데 꼬맹이들도 엄청 많고 가족단위 입장객이 많았다. 다들 가족단위로 어디 놀러갔다가 비오고 으슬으슬하니 단체로 목욕이나 하고 가기로 맘 먹은 걸까.

들어서자마자 세신을 할 요량으로 오만원짜리 지폐를 카운터에서 만원짜리 다섯 장으로 바꿔 장농열쇠로 돌돌 싸맸다.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세신을 맡기는 규칙이다. 지폐 두 장을 돌돌 말아 장농열쇠로 싸서 세신관리사들이 있는 코너 창가 선반에 줄을 세워두면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불러준다. 이곳의 세신관리사는 평균 다섯 명 정도, 2교대로 일하는데 대부분 자정에는 퇴근하고 조금 일찍 끝나거나 조금 늦게 끝나거나 1시간 정도 변동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날엔 1시까지도 일을 한다. 아주 손님이 적은 날에는 두 명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데 출근을 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다섯 개의 세신베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편이다. 인근에 다른 찜질방+사우나가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두 세개씩 있지만 여기가 제일 깨끗해서 자주 찾는다.

열쇠를 올려놓으려고 김이 서린 안경을 내리면서 살살 걸어가 열쇠 놓는 곳을 보니 열쇠가 10개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40분 정도 넉넉하게 여러 개의 탕을 돌며 쉴 예정이었기에 나는 일요일 저녁이니 40분쯤 있다가 불러달라고 얘기하려고 여유있게 갔는데 낭패다. 이러면 순서대로 해도 40분 넘어서야 내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가면 대부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긴다. 그냥 귀찮아서, 라는 핑계는 너무 구차하니까 내가 왜 세신을 포기하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 있다. 때 미는 게 너무 힘들면 안 밀면 될 거 아닌가. 안 밀어도 안 죽는다. 때 미는 게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도 있다. 애를 낳고 난 다음부터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내 스스로 내 몸을 닦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야무지기 때문이었다. 애가 어릴 때는 녹초가 되어서 머리 감는 것도 기력이 딸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세신관리사는 지치지 않고 구석구석 내 몸을 살펴주니 얼마나 좋은가.

어떤 세신관리사는 나에게 유방에 멍울이 잡히는 것 같다 해서 병원을 갔다가 유선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세신관리사는 하루 종일 남의 몸을 만지게 된다. 세상 수만가지 사람들이 벌거벗고 그 앞에 드러눕는다. 어떤 단서도 없다. 가끔 악세사리를 했거나 문신이 있는 경우를 빼고 대체적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신관리사를 만난다. 그들은 벌거벗은 몸을 만지며 삶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고 앉아 있는 일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여자들만 가득한 날 것의 공간이라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한 사람을 만나면 대략의 역사를 훑어내는 능력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직업이란 게 그렇다. 사람을 대하다보면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몸에 자기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내 다리를 움직이면서 관절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고 어깨를 두들기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는 걸 유추할 것이다. 나는 이들의 전문성을 믿는다. 이들이 병원 가보라는 조언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어서 손해봤다는 사람 없다. 물론, 가끔, 마사지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이 좀 난감할 때도 있다.

수년전, 그날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맨 몸으로 드러누우면 시력이 나빠 사방 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좋은데 문득 누가 날 이렇게 정성스럽게 씻겨줬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기복이 커서 일관성 없는 육아로 가끔 학대하고 가끔 과하게 상냥했던 엄마는 내가 세 살일 때 혼자 머리를 못 감는다고 욕조에 거꾸로 처박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목욕이 공포가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데, 나는 아랑곳없이 물을 좋아했고 여전히 목욕하는 걸 즐긴다. 사주에 물이 적어서 그렇다나. 사주 말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 지독하게 앓았을 때도 극진한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한 달에 두 세번쯤 세신관리사에게 2만원을 내고 때를 미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해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박산호 샘의 책 제목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에겐 그정도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잘 벌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수 년전에 “마흔에 가까울 수록 타인의 돌봄을 사서라도 챙길 필요가 있다.”라고 한 말도 나의 이런 생활습관에 좋은 핑계가 된다.

아무튼 오늘은 대기가 길 것이라 한참을 탕을 오갔는데 1시간이 가까워지자 지루할 뿐 아니라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를 불릴려면 계속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세신을 받기가 쉬운데 이벤트탕이나 약탕에 들어가면 몸이 미끌거려 때가 잘 안나온다고 세신관리사들이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잔소리도 달갑게 받는다. 이제는 나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잔소리가 반가울 때도 있다.

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침대쪽에 가서 기웃거리며 물었더니 순서가 다 되었으니 두 명 정도 내려가면 부르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의 내 번호는 223번. 223번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다다다 빠르게 걸어가서 착지 완료, 자세를 잡고 세신관리사가 딱 폼을 잡았는데 관리사가 부른 번호는 223번이 아니고 213번이었다며, 213번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관리사가 그냥 있으라며 됐다고 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얼핏 듣기로 (안경을 벗으면 눈치를 살피지 못해 귀도 잘 안 들린다) 213번은 5천원을 추가하는 뭔가 다른 코스였던 모양. 그러니 나를 받은 세신관리사는 뚱뚱해서 밀기 힘든데다가 5천원을 잃어버린 심정이었을게다. 때가 안 불었느니, 소리를 잘 듣고 왔어야느니 관리사의 심기불편함이 전해졌다.

바빴다는 얘기다. 이 일은 사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손님이 밀린다고 일할 사람을 더 불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이라는 게 그렇듯이 말이다.

“얼굴 비누칠 해드려?”

이 말은 ‘에지간하면 하지 말고 그냥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이고,

“뒤꿈치 밀어드려?” 라는 말은 ‘이것도 바쁘니까 생략하고 내려가서 니가 알아서 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나는 둘 다 생략해도 좋다고 했지만 관리사는 굳이 발뒤꿈치를 조금만 밀어주었다. 시늉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간지러워서 원. 한마디 한 마디 말투나, 손놀림이 거칠었다. 아주 짜증이 나서 죽겠는 모양이다. 이 관리사는 이미 내가 여러 번 세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차례 7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했고 그때마다 내가 사양했었다. 딱 한 번 5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은 적 있는데 그때는 정말 어깨와 목이 너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던 차였고 이 관리사에게 안마를 받고 나서 하루 정도 시원하게 지내기도 했다. 돈도 돈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매번 사양했었다. 손이 야무지고 매운 편인데 체격이 작고 날렵하다. 나는 이 목욕탕에 1년 넘게 꼬박꼬박 다니며 몇 명의 성향을 파악했는데 이 관리사는 일을 잘 하고 돈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얼굴비누칠이나 간단한 얼굴마사지를 생략하고 세신베드에서 내려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목욕탕을 나가 탈의실에서 내 옷장을 열고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카운터에 가서 5천원짜리 두 개로 바꿨다. 그리고는 5천원짜리를 작게 접어서 다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나를 방금 내려보낸 관리사는 새 손님을 받아 열심히 때를 밀고 있었다. 나는 뿌연 안경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친 다음 그 이의 오일통 아래에 오천원짜리를 넣었다.

나를 빤히 보던 그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이를 어째.”

“덩치값이예요.”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다시 인사를 했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이는 “고마워서 어째. 바빠서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천원에 그이의 미소를 샀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 것이고 그이도 어딘가 억울한 마음을 조금 달랬을지도 모른다. 개뿔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누군가를 화나게 한 것을 수습했다.’는 변명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말하려면 지갑을 열면 되고, 그러기 위해서 또 열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타격이 된다. 사실 세상 이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게 많다. 택배기사가 20kg 짜리 쌀을 나르거나 여섯 개 들이 생수를 배달하면 돈을 더 받는 게 옳은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고, 나처럼 살이 많은 사람은 일 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지니 돈을 더 받아도 되겠지만, ‘뚱뚱하다고 차별하냐’는 논리가 있을테니 그냥 퉁쳐서 간다.

푼돈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일하는 것보다 대가가 적을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푼돈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간혹 나는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 푼돈으로 짧은 순간의 마음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 선한 게 있을까. 나이를 먹어버린 자들에게.

아파트 밖의 세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0271522001

오늘 타임라인에서 계속 돌고 있는 기사에 대한 첨언한다.

 

  1. 아파트 아이들만 반으로 편성해달라, 는 요청이 있다.

– 없지 않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를 지으며 새로 짓는 초등학교가 개교하면 아파트 아이들만 입학원을 내주라는 학부모들도 있다.

수년 전 의왕시 내손동에서도 있었던 실화.

 

– 아파트 아이들만 임시반 편성이 되었더라고요.

이건 1학년 입학 때 임시반 편성은 주소에 기준해서 그렇다.

처음엔 주소지 번지수로 묶는다.

당연히 한 개의 아파트 단지는 한 번지수에 묶인다. 임시반에 들어가면 다 옆 동 앞 동 아이들이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아이들로만 반을 묶기는 쉽지 않다.

 

  1. 2008년쯤 관악산 휴먼시아에 살았다.

원래는 관악산 뜨란채로 허가를 받은 모양인데 입주자들이 휴먼시아로 바꿔달라고 했단다. 왜냐면 휴먼시아가 판교브랜드라나.

그래서 바닥 하수도관 뚜껑은 뜨란채라고 새겨져 있는데 벽에는 휴먼시아로 되어 있었고 나중에 공식명칭도 휴먼시아였다.

뜨란채 하수도 뚜껑을 가진 휴먼시아라.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는 가난한 이미지 벗는다고 이름도 다 바꿨다. 주민들이 원해서였다.

동료들과 회식 후에 “신림동이요”하고 택시를 타는데 직장 선배가 “어머 너 신림동 사니?”하고 수돗물 안 나오는 동네 취급했다는 동네 아가씨 얘기를 들으면 그래 뭐 이름이 대수라고, 바꾸는 게 낫다 싶기도 했다. 신림동은 난향동 난곡동 보라매동 대학동 삼성동 등으로 바꿔서 어디가 어딘지 적응하는데 5년 넘게 걸렸다.

 

  1. 아파트 외 지역에서 살면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주차장과 공원, 놀이터의 부족을 절감한다.

당장 이사를 간다면 주차장 확보가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주민우선주차구역이 있어도 매번 헤매는 걸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려면 매일 주차로 인해 한번쯤 인상을 찡그리거나 쌍욕을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차를 없애면 될 거 아니냐고? 남의 인생에 그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하고는 말을 섞지 않을 참이다.

 

빌라 주변 놀이터가 낙후되었으니 밀어버리고 노인들을 위한 게이트볼장을 신설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요즘 애들이 어디 놀이터에서 노나요? 그리고 그 동네는 애들도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은 시의원이 되었고 재선에 성공했다. 페친신청한 지 오래됐는데 페친하기 싫다.

그 동네, 애들 많다.

그리고 그 동네, 경비아저씨가 출입 단속하는 아파트가 있어서 아무데서나 못 논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출입단속하던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가 그 지경이 된 건 사연이 있다.

 

입주 첫 달에 두 집이 통째로 털렸다. 에어컨 설치하러 왔다면서 트럭을 대놓고 살림을 실어갔다. 새로 넓은 평수를 얻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 새 살림을 샀을테고, 당시 평면티비 500만원짜리 정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가죽 소파 같은 거까지 다 털어갔다고.

나도 거기 살면서 내 집 앞 현관에 놔둔 28만 원짜리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절도범이 잡혔는데 인근지역 고등학생 세 명이었다. 애 엄마가 자전거값을 가져와서 백배 사과해서 나는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범죄의 원인을 파고들면 대한제국까지 올라가야 하니 그 얘기는 이 정도까지. 아무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부자라면, 그들은 자기 재산을 지키는데 더욱 철두철미해진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는 게 더 두려운 법이니까.

 

  1. 신규 아파트 단지는 이기심이 극에 이른다.

아파트 조경도 신경 쓰고 관리사무실도 극도로 긴장한다. 화단은 곱게 가꿔지고 비싼 관리비를 받는다. 이 이기심이 극에 치닫는 기간은 입주 1년차에서 5년차 정도인 거 같다. 하자보수기간이 끝나고 2년 정도 지난 후로는 이런 감정들이 조금 낮아진다. 그 사이에 경매 나오는 집도 생기고 이사들도 가고 이런 저런 경제적 상황에 내몰려 집을 팔거나 전세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생긴다. 전세계약이 2년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전세계약이 두 바퀴 정도 돌고 나면 집을 투자목적으로 산 사람들은 사라지고 살려고 들어온 사람들과 세입자들이 남게 된다. 그러니 그때는 재산불리기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좀 줄어드는 결과로 추정한다.

신규단지에 적어도 10년 살 목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이웃 때문에 얼굴 붉어지는 일이 좀 생길 것이다. 그게 지나야 화단도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대충 살게 된다. 그때쯤 되면 출입통제도 좀 느슨해지고 그제서야 집단주택에 대한 본질이 살아난달까. 새집증후군도 사라지고.

 

서울강남권은 잘 모르겠다.

10년 넘은 아파트는 다들 집만큼 사람들도 낡아진다.

 

나도 내년엔 빌라로 이사할까 생각중인데 주차문제가 해결될까 골치다. 아침저녁으로 쌍욕하는 욕쟁이 아짐이 되겠지.

 

  1. 그래서 도시는,

아파트를 제외한 구역의 치안과 복지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아파트단지는 관리비로 여러 가지가 해결된다. 아파트 안에는 정갈한 재활용쓰레기장도 있고 주차장도 청소한다. 시는 세금 걷어 뭐하나. 골목골목 유휴지 확보해서 쓰레기장부터 제대로 만들면 좋겠다. 어느 아파트는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지하수를 끌어올린 작은 수도꼭지도 만든다. 맘이 없어서 안하는 거지 불가능하다고 절대 생각 안한다. 미화원 채용 늘리고 공공근로 늘리면 될 일인데 그렇게 안한다.

공공근로는 사업이 단계별로 종료되어 1단계 이후 2단계로 진입하기 전에 한 달여를 그냥 쉬기도 한다. 그때는 공원청소도 안 되는 곳이 있다. 공공근로 환경미화 하는 사람들도 그 기간을 어찌 견디나 늘 고민하는 걸 접한 적 있다. 행정처리 해야 된다고 서류에 사인만 하면서 그게 한 사람의 생계를 붙잡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가방 들고 출퇴근하면 따박따박 통장에 돈 꽂히는 사람들은 노력해서 이해하려 들어도 잘 안 될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노력해야지. 밥은 왜 먹나. 밥값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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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수원의 다세대/주택가 초등학생들이 우리 동네는 너무 더러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구활동을 하다가 수원 다른 동네에 가서 찍어온 사진.

“우리 동네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네가 낡아서 지저분해지는 건 아니었어요.” 라는 후기가 있었다.

 

 

2018년 10월 27일

범죄사회

JTBC 뉴스룸을 보면서 PC방 살인사건을 저렇게 계속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내가 느껴온 (분석이 아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바로는 이쯤되면 이슈몰이에 성공해서 다음 단계로 진입할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은 듯.
나는 뉴스룸에서 최종적으로 야간노동자 안전에 대한 이야기로 몰아갈 걸 기대했고 그 중간에 심신미약기준과, 촉법소년 얘기정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은 심신미약와 심신상실에 대한 이야기 정도 하고 그쳤다.

하나의 뉴스가 “한걸음 더 들어가려면” 사건 이면에 숨은 진실을 캐내야 한다고 했다. 그 진실은 사회시스템의 빈틈을 찾아내는 것일게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밝혀내거나 우리가 미처 찾아보지 못한 미흡한 점들을 알려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찰의 대응메뉴얼, 건장한 남성이라 그냥 돌아갔다, 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현장에서 마주쳤던 출동경찰들은 30분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줬다. 돌아가지 않고 멀찌감치서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대기하는 경찰관들도 있었다. 경찰이 다 썩었다, 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집 앞에서 고성방가 하는 중년 여성에게 담뱃불붙여주고 얘기들어주는 경찰관도 봤다.(이 중년 여성 나 아님)

야간노동자는 사실 2인 1조로 일할 필요가 있다. 공사현장도, 경찰도 2인 1조가 기본인데 야간노동도 2인 1조가 좋겠지만 이 얘기가 나오면 “최저시급도 올라서 난리인데 미쳤나” 소리가 나오겠지만.

사춘기를 넘기면서 범죄물과 수사물, 르뽀를 즐겨본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는 최애 프로그램. 더 잔혹한 것을 직설적으로 보면서 위로 받는 게 있다. 견디고 살아남은 자의 흔적이다. 그거 내가 겪은 거, 다 별 일 아니구나 살만 해서 여태 살아 저걸 보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일종의 견디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회이슈와 강력범죄가 언론에 많이 노출될 때는 동일한 사회적 현상이 있다. 언론들이 짠듯이 강력범죄를 계속 노출할 때가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엔 강력범죄와 잔혹한 살인범이 가장 적절하다.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자들이 누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강남 청소년 폭행사건이나 강서구 PC방에, 또 강서구인데 여성피살 사건도 나왔다.

에지간한 살인사건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2017년 검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이런 건 그냥 구글링하면 PDF를 통채로 받을 수 있다) 2016년 살인전체 발생건수는 948건인데, 그 중 기수는 344건 (살인한 것) 살인미수, 예비, 음모, 방조죄는 604건이다. 하루 한 건 꼴이다.
2007년은 살인가수가 466건이었고 살인미수가 658건이다.
요즘들어 많아진 게 아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반면 성폭력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2007년 14,344건인데 2016년은 29,357건이다. 이는 신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성범죄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범죄는 강간과 준강간, 불법촬영등 형사법에 적용되는 것만 말한다. 성희롱은 형법으로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범죄에 준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 무서워. 라는 말을 증명하려면 강력범죄(흉악범 > 살인, 강도 등)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건 언제나 20대가 상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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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무서워서 애들 가는 데 안가. 라고 말한다면 폭력범죄 연령별 분포추이를 보면 되는데 지난 10년간 폭력범죄 최상위 연령계층은 40대였다. 그래프를 보면 50대가 40대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조만간 역전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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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얘기하지만, 페이스북에 자기 글, 자기 일상 사진 정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밑바닥을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나도 간접적으로 들은 거고 깊이 관여한 게 아니고 그냥 스쳐가며 본거다. 중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부탄가스 빈통이 널부러졌다는 정도는 깜도 아닌 경우가 많다. 몰랐던 거다.

노출이 쉬워지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이런 범죄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딱 절반쯤에서 나뉠 거 같은데, 동시대인들이 가고 싶은대로 가겠지.

다들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하는데 결국은 다 내 맘 가는대로 가더라. 내 맘 아닌 거 같아도 그게 내 맘인 경우가 더 많다.
사진은 2017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 캡쳐

#40대는_어디가서_술처먹고_싸우지말자

목격자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할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가.

이는 특정할 수 없다.

기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는 행간에 묻어나게 되어 있고, 글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 개인의 역사를 쓰고 공개하는 순간 나는 그 개인이 익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개인은 익명으로 돌변한다. 개인의 역사와 성품을 알고 그 개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해 본 사람들은 고통 받은 개인을 여전히 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와 관계 맺지 않았던 이들에게 개인은 익명이 된다.

어떤 사람, 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갖지만 동시대인의 의미를 갖는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익명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이 된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동시대인과 분절적으로나마 역사를 공유한다. 그 개인이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동시대에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과 역사를 공유하고, 그 개인이 여성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적 역사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지금의 아이들은 10년이 지나도 모두 슬라임과 액괴를 기억할 것이라든가, 지금의 40대 여성들이 위스퍼라는 생리대는 ‘날개달린 생리대’로 기억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집단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순간 개인은 상징성을 가진 익명이 된다. 한 사람의 역사가 상징이 되려면 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개인은 나름대로의 사건을 갖고 있는데 그 사건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은 코드, 즉 상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상화는 피해갈 수 없는데, 어떤 주체들은 이 대상화과정을 거부하기 위해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한다.

개인의 역사는 그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지만, 그보다도 현대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명화가 완성된 사회인 경우, 사회는 그간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쉽게 파괴되지 않을 만큼 견고해지면서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말하고자 한다.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생활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드러낸다는 것이다. 신체와 인격 안에 영원히 숨겨둘 수 있는 상흔은 없다고 믿는다.

발화할 수 있는 사람과 발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해력의 문제이거나 언어구사력의 문제, 혹은 공개에 대한 용기여부가 관여한다. 공개에 대한 용기역시 발화하고자 하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망자가 되어버린 경우다. 죽은 사람은 발화할 수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발화한다. 죽음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온몸에 상흔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이 개인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망자의 말을 대신 풀어내기도 한다. 무고한 사람이 허망하게 떠날 경우 살아남은 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 무력감은 인간의 존엄이 사회 어디선가는 지켜지길 바라거나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대한 약속하지 않은 연대의식에 기원한다. 무력감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어질 때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 때문에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결심한다.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의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다고 소리칠 때, 누군가 그 손을 잡는다. 거기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다. 적어도 이 나라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작동해왔다. 한 개인의 죽음을 통해, 그 죽음의 상흔을 통해, 애도하고 추모하며, 광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오늘 한 목격자가, 한 개인에 대해 목격한 바를 적었다. 혼자 추모할 수 없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험도 어려운 일이지만, 목격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목격한 자들도 유사한 상처를 입는다.  목격자는 때로 유일한 증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들은 맥락 없는 타인의 사건에서 오기도 한다. 왜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강요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시대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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