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끼는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1930년대생 어르신들을 만날 일이 생겼다.

오늘 처음 자리를 가졌고, 내 딴에는 그 분들께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성지게 펼쳐주시지 않으실까 기대도 했으나 기대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단답형으로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고 가장 연세가 많으신 구순의 할머니는 한맺힌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1930년대.

이 분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일본제국은 곤고했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국가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나 개념이 생기기 전에 일본이름이 주어졌다. 학교에 가면 일본어를 배웠으며 일본선생에게 일본노래를 배웠다. 불과 여섯 살, 일곱 살, 많아봐야 열 살인 아이들에게 왜 일본이름을 썼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1930년대생, 그들의 부모들은 190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일제침략을 직접 목도한 세대일 것이다. 그들이 새파랗게 두 눈을 뜨고 국권이 침탈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나라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내부가 얼마나 썩어들어갔는지 이미 다 체감하지 않았을까.

한 국가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는 것은, 강력한 무력과 고도의 심리전이 같이 동반된다 하더라도, 어딘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물샐 틈이 없는 집구석에 도적이 들어오진 않으니. 어쩌면 일제시대의 개막을 환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점령을 환영한 자가 과연 친일이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폭압과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어찌됬건 무엇이 됬건 “새로운 것”이 도래하길 기다리지 않았을까 말이다. 물론 친일의 문제는, 폭력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동조했다는 점이 크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 정치적으로 독립을 주창하고 굳게 맞서 싸웠어야 하는 것은 국가구조를 지켜내는 명목으로 녹을 먹는 자들이지, 논밭에서 뒹굴고 해지면 피곤해 곯아 떨어지는 백성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30년대생.

이 분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학교를 다니고, 국가와 민족의 사전적 정의를 알게 될 때쯤에 해방을 맞이 하게 된다. 그리고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1945년 8월에,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 것인가.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웠던 일본어와 불과 20년이 안되는 세월동안 정겹게 써오던 두 개의 이름들, 그 중의 하나를 처참하게 밟아버리고 정들었던 일본인 선생과 이웃들이 (모든 일본인 개개인이 제국주의인 것은 아니므로) 있었다 한들 모두를 부정해야 하는 역동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매일 보고 다녔던 일장기를 불태우고 저들은 모두가 다 악마와 같은 것들이라고 한 순간에 세상이 뒤집혔을 때, 10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태평성대에도 자기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던 순간,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이들은 문맹이 된다.

배운 것은 일본어요, 썼다가 불이익을 당한 것은 조선어였으니, 그들이 조선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돌아왔을 때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이리저리 흔들렸고, 곧 전쟁이 터져 피란을 가거나 숨어 지내거나 전쟁터에 나가거나 살아 있기 위한 시간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무렵, 피폐해졌거나, 혹은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벌어, 먹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악착같이 조선말을 다시 익히고 갈고 닦고 학교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20세기만 그랬던가, 그 때 동아시아만 그랬는가.

인간은 그저 큰 물결에 휩쓸려 흘러 흘러 떠내려 간다. 그 중에 누가 더 근력이 좋아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끌어안는지, 그 통나무 위에 떠내려가는 누구를 건져 올리는지, 어떤 사람은 떠내려 가는 돼지를 실어 올릴 수도 있고 거센 물살 속에서도 실속 차리는 인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힘에 부쳐 물밑으로 가라앉는 자도 있다.

물길은 끝없이 흐르고 우리는 언제 헤엄을 치고 언제 고개를 들며 언제 숨을 쉴 것인가 결정하며 떠내려 간다.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할 것인가, 같이 죽기를 불사할 것인가 말이다.

소용돌이 치는 물결, 아래는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흙탕물속에서 끝없이 내몰리고 휘몰아치는 일. 그런 자아들이 모여, 타인은 과연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한반도가 3면이 바다인데, 그 모든 바다를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의 모든 인간은 중앙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모두가 사대문안에 모여, 다른 놈은 어떻게 담을 타고 오르는가,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어떤 집단도 정당한 제도를 만들어 번호표를 끊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게 되는 정서의 출발.

그건 바로 “저새끼는 어떻게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는거지?” 라는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2013. 5. 20.

일본극우주의자들의 망언 및, 일베충 광주모독 때매 매우 속이 시끄러운 2013년 5월이다.

라면의 중의

트위터에 들어가 봤다.
라면 얘기가 얼마나 있나 좀 보려고.
대한항공 비지니스석 라면 사진도 있다.
내가 이 사건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 건, “청장년층의 배알을 뒤틀을 만한 대기업의 상무이사”가 비행기 비지니스석에서 진상을 부렸다는 게 포인트다.

대중에게 질투와 시샘을 받기 충분한 자리인데 대부분 기업의 이정도 되는 이사들 중에는 일정 비율의 개새끼가 존재한다. (어머 개님들 미안)

1/5 쌍놈새끼 이론에 기반하는데 동서고금 어느 조직에도 1/5는 그러하다… 는 논리다.

평소에 저 쌍놈새끼 계급장 한 번 떼고 덤벼보자 하고 싶던 을분들이 지구최고 미인 승무원일 대한항공 여승무원을 괴롭히고 때리기까지 했다는 게, 남성들의 오빠의식을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다.
(보잉사 여직원이었어봐라 이렇게까지 안 됐다. 해외항공사 여승무원들은 건강함이 우선이지만 국내항공사는 일단 미모가 갑이다. 게다가 노선별로 미모의 등급이 있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몇 가지 댓글을 보다가 눈에 박히는 건 “비행기가 룸싸롱인지 아나” 라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룸싸롱에서 해장으로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하이의 전설적인 어느 마담은 삼겹살도 구워줬다더라. 향수병 달래라고. (룸빵문화의 전세계적 전도사는 당연히 한국) 어떤 새끼는 잔치국수를 달라고도 한다더라 해장국을 사오라는 새끼도 있다더라의 오래전 풍문이 기억났다.

포스코의 모체는 포항에 있고, 포항의 경제구조가 포스코에 있고, 그리하여 의문의 술집 여종업원 연쇄자살사건도 조용히 넘어갔었고, 에지간하면 다 그렇게 됨니더. 했던 르뽀 프로그램의 어느 아지매도 생각났다.

그래 이 왕상무는 룸빵이 생각난 것일게다. 어제 숙취가 안 풀려 죽을 찾은 것일게다. 숙취가 아니라 술이 덜 깼을 수도 있다. 아직도 룸빵인지 비행기인지 잘 구분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호재를 만났다. 국정원 사건과 남북문제 여러가지를 면피할, 애국적 사건이다. 대중의 공분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여승무원에게 라면을 여섯번 끓여오라고 했다고 신상털고 성지순례 하는 만국의 중생들이여.. 오늘 밤도 수많은 여성동지들이 당신의 상무님의 라면을 끓여바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새끼는 멸치국물 낸 잔치국수를 가져오라고 지랄을 하고 있겠지. 그래 오늘은 일요일이라 룸빵도 노는 날이겠지만, 월요일은 또 주말에 집에 있었으니 한 잔 빨아줘야 되지 않겠느냐.

대기업의 주요임원과 아름답고 고매한 스튜어디스와 테러에 히스테리 걸린 비행기라는 공간과, 게다가 밥도 스파게티도 아닌 그 흔해 빠진 라면이라는 게, 게다가 요즘 중요한 전략인 “라면 먹고 갈래요” 를 모욕하였으며, 향수와 성공신화를 동시에 자극하는 비지니스클래스의 라 면. 이라는 게 정말 팔리기 좋은, 매우 핫! 한 이슈가 되었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출근한 임원들이 무슨 결정을 내릴까 참 궁금하다.
왕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최소 1년간 라면 봉사를 해야 마땅한데, 기왕이면 당신이 다닌 룸빵 언니들한테도 좀 끓여주면 참 좋겠다.

2013. 4. 21.

회전목마

1.

사람은 근본적으로 보수성을 띄게 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회귀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흔히 인사불성 상태로 술을 마시고도 집으로 찾아 들어가는 걸 귀소본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예정이면 정신 못차리고 자다가도 희한하게 눈이 떠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시공간을 찾아간다는 얘기로 들린다.

2.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피해자가 되고, 학습된 분노의 방식으로 가해자가 된다고 한다.

폭력의 기억은 가장 큰 트라우마일 것이다. 그게 누구로부터 받은 것이든, 본인이 가한 것이든,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발휘되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가장 아픈 기억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3.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개인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된 부분을 복구하고 싶은 본능은 없을까

혹은,
그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리 어떤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단지 “익숙하기 때문에”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매맞은 어머니 아래서 자란 딸이 다시 그 인생 유전을 겪는 경우 말이다. 버려진 유년기를 보낸 장년의 가장이 다시 스스로 버림받기를 선택하는 경우 말이다.

학습된 무기력, 혹은 학습된 폭력의가해 외에도, 딱히 어떤 폭력의 기억이 없더라도 자기 과거의 어떤 특정한 부분으로 회귀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어찌저찌해서 돌고 돌아 다른 삶을 산다고 고단하고 지리하게 노력했는데 결국은 원점인 느낌 말이다.

4.

오래전에 장서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회전목마 라는 MBC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그 제목의 뜻은 돌고 돌아도 결국 원점이라는 것이었다. 두 자매가 지지리도 고생을 하며 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삶의 불행은 언제나 원점이었다.

그게 딱히 불행이라 하기도 어렵고 행복이라도 하기도 어렵더라도, 인생 전반에 걸친 하나의 주제가 있을 것이고 언제나 그렇게 비슷하게 지내온 한가지의 중심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 같은, 남들에게 평범한 행복이라든가, 남들에게 일반적인 일상 같은 게 너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져서,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 낯선 행복을 아무 생각없이 벗어버리는 일 말이다.

5.

그래서 결국은 외로움이라든가, 방치라든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회전목마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이 돌고 또 돌아 다시 외로운 상태로, 방치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나에게 가장 편한 밥반찬인, 굽지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스팸에 계란후라이 하나. 뭐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13. 4. 12.

내일의 전쟁, 오늘의 일상

내일 세상이 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가.

뭐 영국에서 염려됬는지 연락이 왔었다.
BBC 는 매일 매일 북한 소식 전하느라 정신이 없고, 미국은 CNN도 난리를 치는 모양이다.

나는 일단 전쟁은 나지 않는다. 라고 믿고 있긴 하다. 그 이유는

1. 본국보다 영국과 미국에서 더 수선을 떠는 게 매우 의심스럽고
2. 북한의 결속력이 그렇게 전력투쟁 할 만큼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3. 늘 사고치고 강짜 부리는 건 조직이나 사람이나 비슷한데 그들이 원하는 건 정말 전면불사 자폭이 아니고 뭔가 다른, 매우 유치찬란한 것일 경우가 많으며
4. 북한은 남한은 솔직히 쳐주지도 않고 자기들의 적이 미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고
5. 북/중의 관계상, 디펜스 21에서 논평한대로 한국 수도권에 중국인이 너무 많아 외교분쟁 가능하다. 여기 한 표 주고 싶고
6. 지금 전쟁분위기와 한반도 위기를 극도로 끌어올리면 양쪽 정부가 자리를 잡는데 매우 유리한 것이, 한국도 미국도 북한도 모두 정권 초창기라는 점이고
7. 동아시아내의 우경화는 필연적이고 이로 인해 권력자들은 우경화의 초석을 다지는 게 매우 중요하고
8. 이 국면에 조용하게 팔짱끼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도 무지하게 의심스러우며
9. 나는 음모론을 믿는 편이고
10. 전쟁 따위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내일의 불확실한 전쟁보다 오늘의 나의 하루가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불확실한 전쟁보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 훨씬 중요하고,
내 아이의 알림장이 더 중요하고,
이 새끼가 왜 매일 줄넘기 하기를 안 지키는가도 중요하고
내일 있는 딸래미의 모의수능도 중요하고
가계부에 어디 빵꾸가 나지 않았나 챙기는 게 중요하고
중요한 내용이 들은 내 하얀색 USB를 어따 처박았는지 찾는 게 중요하고
내일 오전에 있을 강좌 진행이 중요하다.

나는 내일보다 오늘이 중요하고 오늘 몇 시에 자서 내일 몇 시에 안 피곤하게 일어날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데. 그건 나에게 오늘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남편이 그런 말을 했었다.
젊은 아이들이 비전이 뭐냐고 묻는다고.
그러면 그는 “오늘은 버티는 게 내 비전이다” 라고 한다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전쟁처럼 치뤄야 할 일들이 많은 경우, 내일을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밀려닥치는 전화, 처리해야 할 일, 여기저기서 손내미는 요청, 챙겨야 할 일상들. 그런 것들이 복잡다단하고 회오리가 몰아치는데 언제 내일을 생각하나.

나이를 먹을 수록 걱정이 많아진다고 한다.
오늘 동네 어떤 언니는 애는 학원가서 저녁이나 되야 오는데 심심해 죽겠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심심해 죽겠는 일상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그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나이를 먹을 수록 걱정이 많아진다는 건 오늘이 한가해진다는 얘기일게다.
오늘이 한가하니 내일을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제도 떠오르고 그러는거겠지.

괜시리 쓸쓸해진다.
오늘이 한가해서 내일의 불확실한 전쟁을 걱정하는,
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나는 전쟁위기보다 더 가까이 와닿는다.

2013. 4. 10.

예술인에게 복지란 무엇인가

페이스북에서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쓰는 글.

내가 읽었던 글은 이거.

http://www.kawf.kr/notice/sub01View.do?selIdx=388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조금 더 얘기를 간단히 하자면 내 생각은 그렇다.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에 대해서 원론적인 생각은 피하고 싶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펼치는 예술의 장르가 바로 그의 언어다.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이 그의 언어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말한다.

물론, 그 중에 보편적 언어, 즉 지금 내가 쓰는 글과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익숙한 사람이 있지만, 보편적 언어 대신 다른 수단의 언어를 선택한 사람들이 주로 예술을 하게 된다. 그건 그의 언어가 보편적 인간의 언어의 범주를 넘어서거나, 보편적 언어가 그들에게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글쟁이는 글은 참 잘 쓰는데 눌변도 그런 눌변이 없는, 말씨는 엉망인데 글씨는 참 수려한, 그런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글도 대단히 훌륭하고 말도 대단히 훌륭한, 보편적 언어를 극대화 시켜서 언어의 예술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언어 – 라는 용어를 이 글에서 만들어 사용하기로 한다.

보편적 언어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편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를 먹는다. 어떤 이들은 기획이나 서류를 작성하는데에도 매우 젬병이기도 하고 일종의 공포증을 가질 수도 있다. 대화가 반복해서 어긋나다보면 누구나 그렇기 마련이다.

예술인복지법이라는 게 제정되고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선 행정적인 절차가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누가 예술인인지 구별한다는 거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인이라는 걸 과연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는 데뷔라는 것을 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이루어낸 어떤 성과물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전시회 경력, 공연 경력,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발표 매체가 어디인지 등등의 경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아니고 학교를 졸업해서 당장 뭔가 시작하려고 하는 아직 성과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혜택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부분을 보면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 지자체에서도 일자리창출 사업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 해 내고 있는데 이미 기존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듯 이것은 새로운 “비정규직 창출”에 지나지 않는다.

명확히 할 것은 예술가, 즉 작가와 기획자는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 작가이면서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 개인의 창작의 범주는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생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부분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펼칠 무대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빵도 먹어야 하지만 빵만큼 중요한 것이 개인의 작업이다. 개인의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려면 장소가 필요하고 그 장소를 사용할 비용이 필요하고 작업을 할 재료가 필요하고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린다. 만약 한 작가가 작가가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비용과 시간이 할애되기 마련이다. 작가에겐 비예술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법이다.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 복지재단과 같은, 예술인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자 하는 시도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에 놀고 있는 장소를 그들에게 사용하게 해주고 더 많은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해주고 그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금 갖추어 놓은 시설과 인력을 충분히 분배하기만 해도 큰 예산과 대단한 법제정이 필요없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대관료를 내야 하는 상업갤러리, 갤러리와 작가는 5:5, 운반비는 개인부담, 초대전인 경우 작품이 안 팔리면 작품 하나 기증하셔야 돼요. 뭐 이런 시스템. 공연장도 대관해야 하고 리플렛도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개인레슨이라도 하든가, 학원 강사를 뛰든가 생활고와 작품 생산 비용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홀대받고 천대받아도 내 작품을 세울 장소만 있다면 한 번쯤 손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젊은 작가들, 그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건, 많은 서류와 재능기부 정도가 아닌가.

행정적 절차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창작에 필요한 시간을 할애해서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으라고 할 게 아니고, 그들이 더 많이 작업을 할 수 있고, 그들이 더 많이 발표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인의 복지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하고,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작업실을 허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멀리 나아가리라고 생각한다.

자꾸 새로운 뭔가를 배워서 새로운 직군으로 진출하라고 하지 말고, 예술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것을 조금 버리고 사회로 나오라고 제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말고,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하지 말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가계부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걸쳐서 발휘되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아무리 창조경제를 한다고 해도 있는 거 홀대하고 새롭게 만들어 봤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다.

 

2013. 4. 10.

다 쓰고 나니 북받치네.

견디기 힘든 시간

어찌보면
나라는 사람은 참 여러가지를 못 견디는 거 같다.
학원가의 즐비한 버스와 이중주차가 된 승용차들도 못 견디겠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제 밥그릇만 챙기는 꼴을 보는 것도 못 견디겠고
내 새끼가 나약하게 징징대는 꼴도 못 견디겠고
내 개가 인도에 똥싸는 것도 못 견디겠고 (어차피 치우는 거지만 인도엔 흔적이 남은 경우가 있어서)
오늘같이 황사와 미세먼지 많은 공기도 못 견디겠고
내가 던진 말실수도 못 견디겠고
책 안 읽고 보낸 일주일도 못 견디게 싫다.

남들은 다 괜찮은 모양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고치고 싶고 따지고 싶고 뒤틀고 싶어지는데 남들은 괜찮은 모양이다.
좁아터진 커피집에 사람이 꽉 들어차 공기가 텁텁한데도 문을 꽉꽉 닫고 있길래 문을 열었더니 누군가가 다시 닫았길래 내가 그 곳을 빠져 나왔다. 다들 괜찮은가보다.
나는 안 괜찮은데.

지금 내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서른 한 살에 낳아 나와 서른 한 살 나이차이가 나는 이 자식이 10시까지 학원에서 코박고 있다가 좀비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청춘을 보낼텐데, 난 그게 화가 나서 못 견디겠는데 다들 괜찮은가보다.

부정적인 사고를 표현하는 입시미술은 절대 뽑히지 않는다는 원장의 말이 거슬려서 가슴에 와서 박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가 보다. 나는 머리가 띵한데.

… 상당히 까다롭고 예민한 건데
생긴 게 반전이야..
어쩌면 좋지.;

날씨는 왜 좋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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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깔깔대던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순간이었지. 그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이었어. 순수했고 착했어.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었고, 청천벽력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안정된 성품의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수였어. 모험심이 많거나, 책임감이 적은, 바람같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보다 그 반대편이 사는 데는 훨씬 수월했겠지. 몰아치는 폭풍을 헤치고 나갈 에너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자기를 가꾸는 데 쓸 수 있거든.

바다에 배가 가는데, 자꾸 폭풍이 몰아치면 무슨 기운으로 고기를 잡겠어. 근데, 날씨가 계속 좋으면.. 고기도 잡을 수 있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도 있거든. 폭풍만 만나면서 살면, 그런 여유는 없지.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디는 게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그래서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는거야. 맨날 집에 뭐가 박살나는데 뭔 정신으로 책을 들여다보나. 그런 집구석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숨죽이며 버티는 거거든. 그 와중에 공부를 하는 애들은, 유별난 독종이라고들 하는데, 뭐 꼭 그게 독종이라 그러겠어? 그건 그냥 그 아이가 버티는 방법인데 사회에서 좀 좋아하는 방법을 고른 것 뿐이잖아. 책에다 코 박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났나보지. 그게 뭐 꼭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폭풍이 쉴 새 없이 불던 날이 있었어. 이번엔 정말 큰 건이 터진거야. 그 때 내가 열일곱살이었는데. 와 정말 살다 살다 결국 이런 일도 터지는구나. 싶더라고. 욕이 절로 나와. 씨발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지?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난 하라는대로 다 하고 살았잖아. 내가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집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열일곱의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지각도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게다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 때 욥의 심정이 뭔가 생각했어. 와 정말 좆같겠구나. 씨발.

내 생일이 8월 말인데.

그 날 학교에 자퇴서를 쓰러 갔지.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년에 만나자고 힘내라고 다 격려를 해줬어.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 마을버스를 탔어. 나는 사복을 입고 있었지. 나는 학교에 소속된 아이가 아니니까. 사복을 입고 싶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외치고 싶었던 거 같애. 내가 이만저만한 그지같은 일이 생겨서 학교에 못 다니게 됬다구요!! 라고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원망을 퍼붓고 싶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난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자퇴서를 써야 되냐고!!

그건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억울할 만한 일이거든.

그래 그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거야. 자리가 비었더라고. 애들은 다 학교에 있었거든. 게다가 내 생일인데 말야. 날씨가 겁나게 좋은거야. 진짜 허벌나게 좋더라고. 햇빛이 막 미치게 내려쬐고 말야. 8월 말, 내 생일 즈음엔 주로 태풍이 오지. 그게 참 이 엿같은 팔자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던 나이였는데. 와 .. 날씨는 왜 좋고 지랄. 약올려?

날씨 좋으면 놀러가고 싶잖아. 사람들의 표정도 좋잖아. 길에 웃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는 미치겠는데 말야.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햇빛이 짱짱해. 태양이 비웃는 거 같은거지.

그건 니 문제야. 나는 멀쩡하단다.

슬펐지. 그래서 그 날 어디 쪼그리고 앉아서 뭘 적었을 거야.

내 세상이 무너지는 날,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세탁소에 옷을 맡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기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회사에 가고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겠지. 수박을 사오는 누군가의 엄마도 있을 것이고 아이스크림을 베어먹으며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건 내 세상만 무너진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비록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거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

비참하지. 나 없이도 조직이나, 세상이나, 내가 속했던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진짜 짜증나잖아. 그게 얼마나 슬퍼. 나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먼지같은 존재야. 근데 그걸 깨달았는데도, 그 때 한 생각은. 아 나는 정말 무용지물. 여기서 끝났거든.

근데..나는 무용지물이다 – 에서 모든 인간은 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용지물은 아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발전하는데.. 20년이 걸린 거 같애. 뭘 억지로 해서 티비에 나오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그 경박한 욕심을 버리는데 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 한심한가? 근데 또 그것도 아니거든. 뭐가 한심해. 인간은 원래 다 한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더 한심한 인간도 다 잘 살아. 밥 잘 먹고 잘 자고 똥만 잘 싸고 잘 살아.

날씨를 뭐 어떻게 할꺼야.

날씨 좋다고 하늘에 돌 던지면 나빠지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내 기분이 맞는 날씨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가나? 갔는데 거기 날씨가 바뀌면? 그럼 말짱 꽝이잖아.

기분이 나빠. 날씨 좋아서 더 나빠.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어. 비가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어. 그럼 뭐..기다려야지. 비 오는 날까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적는거야.

와..오늘은 정말 좆같은 날이었습니다. 씨발. 오늘을 최악의 개같은 날로 정하면, 내일은 덜 개같겠지요. 하하하. 잠이 오나. 잠이 안 오겠지. 안 오면 뭐 못 자는거지 뭘 어떻게 하나. 꼭 자야되나. 하루 안 잔다고 죽지 않아. 그냥 내일 좀 피곤할 뿐이야. 세상에 .. 그렇게 큰 일은 없어. 다 어떻게 보면 그냥 먼지같은 일이야. 할매들한테 어떻게 사셨나요? 물어봐봐. 그 새털같이 많은, 개털보다 많은 날들이 한 줄이 되거든. 그 해에는 애를 낳았지. 2년이 넘어가고 그 해에는 둘째를 낳았지. 아마 큰 애가 아팠던가.. 안 죽었으면 다 별 일 아닌거가 되는 거 같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잖아. 안 죽으면 됐지. 뭐. 살아있으면 언젠가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혹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살려두는 게 나을 거 같애. 언젠가 붙잡고 말해줘야지. 너 때매 뒈져버리는 줄 알았어. 알고는 있냐? 라고.

2013. 3. 15.

 

근데 그 때 그렇게 억울했는데 말야.

그 때 내가 꼭 그렇게 억울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 자퇴서를 안 쓰는거야. 버티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거든. 근데 나는 내가 더 비참해지는 방법을 택한거지. 누가 알아줄까봐. 그냥 훈장 하나 달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훈장을 달았지. 트라우마. 내 트라우마. 내가 골라서 내 가슴속에 새긴거야. 그냥 학교 버티고 다녔으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혹시 알아. 학교에서 장학금을 줬을 수도 있어. 그 일은 생각보다 무척 금방 해결됬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 때 왜 자퇴서를 썼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그냥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깨달은 걸로 만족이야. 어쨌거나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서 성적을 올리고 다음 해에 당당히 재입학을 했고 학교도 잘 다녔으니까. 그게 막 가슴아파할 일은 아닌거 같애. 내가 그냥.. 모르는 길이 있으면 일단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랄같은 성격때문이겠지 뭐. 내 트라우마, 내 상처ㅡ 그런 거 말야. 뭐든지, 일단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결국 어느 방의 문을 여는가는. 내가 선택하는 거더라고. 등 떠밀려 들어갔어도, 나올라면 나오는거지 뭐.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아닌 이상.

비오는 밤

기억이 잊혀지는 게 구슬프다.
내가 잊어가는 것도 구슬프다.
빗소리는 더 이상 양철지붕을 때리지 않는다.
곱게 화단에 내려 앉아 값비싼 향나무를 적시고 비싼 개밥을 먹고 사는 개들의 똥무덤을 적실 것이다.

하나씩 잊혀져 가는 게 구슬프다.
온 몸을 감싸던 외투를 벗는 계절이라 슬프다.
태양이 빛나고 꽃이 피더라도 답답하던 옷에 배어 있던 체취가 그리운 날이 있더라.
갑자기 눈이 왔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날이 흩어진다.

올 겨울은 너무 길었지. 올 겨울은 너무 힘들었지, 그래서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꽃은 기다릴 수가 없네.

그 겨울의 시작부터 믿기지 않았으니까. 결국은 그래도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 건데, 이렇게 쉽게 가고 이렇게 쉽게 와도 되는 건가..
이렇게 쉽게 가고, 이렇게 쉽게 올꺼면 왜 그렇게 잔혹했나.. 싶은게지.

곧 저 멀리 남쪽 마을엔 산수유가 핀다는데, 삼중창 유리밖에 잘 들리지도 않는 빗소리가 들린다고 우기면서, 갈 봄 여름없이 꽃피네 꽃피네. 라고 중얼중얼.
개 한마리 애기 하나 드르렁 거리는 애매한 계절의 비오는 밤이다.

2013. 3. 13.

3월의 눈- 국립극단

130311_iphone5 030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며 살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보며 웃고,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표현한다.

남들의 입과 손, 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나 그림,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뭐라고 해야 할 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폼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을 대할 때 감정의 찌꺼기를 밀어낼 수도 있고 더불어 나의 이야기가 더 가치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가라 불리는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월의 눈은, 노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 본 이 연극의 이야기는 작년 가을 이별한 나의 시어머님과 빈집에 혼자 살고 계신 나의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 대신, 그분들 대신, 나에게 해주었다.

작은 극장이라 울음을 참았으나 통곡할 수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 앉은 모든 여성동지들의 울음을 참는 소리가 끝이 나지 않았다.

주연은 변희봉선생인데,
화를 내라는 아내의 말에
“누구한테??!!!” 라고 말을 하고 침묵을 지키는 몇 분간, 침묵으로도 관객의 오장육부를 뒤집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연극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2013.3. 10.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용산역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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