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을 부르는 시대

1.
아이가 보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중계 유투브 영상이다. 양띵의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장면.

마인크래프트는 정육면체 블록을 이용해서 기본적으로 집을 짓고 양식을 구하는 등 생존을 시작하고 발전하면 마을과 도시를 만들거나 여러가지 모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최근 초딩들에게 각광받는 게임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컴퓨터수업에도 활용한다. 정육면체를 이용해 공간활용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그 일선엔 아프리카티비에서 게임중계를 한 양띵이라는 게임중계자가 있다.
양띵은 미소와 옴므 등과 함께 양띵크루를 만들어 합동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지난 해 양띵은 유투브 한국인 크레에이터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지금은 CJ E&J와 계약을 체결해 앱을 출시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양띵의 이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이 처자는 1990년생으로 2007년부터 아프리카티비 BJ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뒤져보니 얼마 전 “민주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하는데 그에 대해서도 적극 사과를 했단다.

아이가 유투브로 양띵 방송을 볼 때 나도 옆에서 가끔 지켜보는 편이다. 욕설도 나오고 편안하니 초딩부터 청년층까지 재미있게 볼 만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건 분명하다.

욕설에 대해서는 나는 매우 관대한 편이며, 영어 섞어쓰는 보그병신체보다는 욕설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 또한, 방송에서도 불현듯 욕이 튀어나왔다가 자제합시다~ 같은 말도 이어지기 때문에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제 본 방송에 새마을농사 미션이 있었는데 플레이어 (마인크래프트는 게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화면이 움직인다)가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다 이 장면을 봤고 아이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새마을농사를 짓는거라고 대답했다.

2.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시대에서 큰 비중을 가져온 일이며 그 평가는 여러 갈래다.

나는 (김영미 저 / 푸른역사 펴냄)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고 그 책에 이어 새마을노래를 벨소리로 하고 다니는 골수 새마을키드 한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일어나지만 새마을운동을 단순히 박정희 독재의 상징으로 바라봐도 되는지 궁금하다. 참여한 국민들이 있었고 저항보다 동원에 적극적이었어야 했던 가난이 있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상이라고 본다.
4.19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대체 어디서 뭘 했고 당시 국민들은 뭘 했길래 소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18년동안 독재를 하게 내버려뒀는가. 이미 이건 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복고와 보수주의가 같이 오면서 우경화가 그 바닥에 깔어 있다는 것이다.
공안정국, 조작질은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고 우경화도 전세계적으로 전방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은 현상이다.

인기절정의 개그콘서트에서 일베의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여성비하, 외모비하가 공중파를 타며 일반화 되는 오늘, 일베의 용어를 쓰면 개망나니가 되고 호로자식이 되며 일베는 일베가 아닌 사람들을 비하하고 공격하길 즐긴다. 오유나 다음까페의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스북 유저들을 꺼려하고 페이스북 골수유저들은 오유와 다음까페를 무시하는 이 요상한 현상.

서로간의 교차하는 컨텐츠를 가지고 싸우거나 타 집단의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거침없이 비난을 해도 되는 이 분위기.

70년대를 불러내고 정신승리를 부르짖는 이 분위기. 모 논객이 토 나온다고 했던 바로 그 분위기. 그 현상을 보는 거다.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정신적 세뇌를 받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외롭고 우울하고 처참한 세상에서 현대인을 움직이는 건 “멋져 보이는, 좋아 보이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새마을운동이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보일 수 있다. 그 말은 새마을운동을 대체할 다른 역사적 컨텐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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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 겨울

 

1992년 봄. 낯선 선배가 찾아와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따라 나오라고 했다.

우리 학교에는 독서서클이 있는데 비밀서클이고 학교에서는 알아서 안되는 일이라 했다. 한 학년당 네 명을 뽑는데 선배 중 누가 너를 추천해서 찾아왔으니 내일까지 결정을 해서 답을 달라고 했다. 별 일은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정도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지만 전교조 문제로 교장이 예민할 뿐이라고 했다. 선배는 그 말만 남기고 돌아갔고 나는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좋았다. 의식화라고 말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고 노태우랑 전두환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김대중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수준이었다. 그저 나는 이 사회가 많이 잘못되었고 이 학교도 무척 잘못된 채 굴러가고 있다는 것만 아는 정도의, 막말하는 년에 불과했다.

 

듣기로,

1989년 전교조가 시작되어 교사들이 해직되고 파면당할 때 내가 다닌 여고의 선배들은 까만리본을 달고 등교를 하고 도시락을 복도에 내놓는 단식투쟁을 했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지정하는 반장, 부반장이 모두 사퇴하고 각 반마다 대표 두 명을 자율적으로 뽑아 (그럼 그 전에는 학교에서 임원을 지정했다는 게 더 이해가 안 간다) 30인회를 구성하고, 이 선배들이 교장실에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여러 가지 민주화과정을 요구했다고도 들었다. 그 때 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투쟁에도 불구하고 파면, 해직 당했고 우리학교는 사립이라 더욱 쉽게 잘라낼 수 있었다. 이후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여상 교장으로 있던 학원장이 K대 명예박사과정중이라 K대 출신 석사생들이 대거 교사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사실인지 확인하지 못했으나 정말 K대 출신 교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거의 평균출생년도 1960년생. 당시 30대 초반. 아는 건 겁나게 많고 인문과목 선생들은 서로 바꿔서 수업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지적능력과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활기찬 사람들이었다. 그 때 교사들과 함께 선배들도 학교를 짤렸는지는 몰랐다.

 

1992년 학교 담벼락을 공사하는 사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어느 날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던 아이들이 히터를 틀었다. 새마을과장인 50대의 영어선생이 그걸 발견하고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복도에 불러세웠다.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따귀를 맞았다. 저 끝까지 한 대씩 때린 영어선생은 다시 돌아오며 한 대씩 때렸다. 그 며칠 전엔 어느 졸린 수업시간에 누구 노래 좀 듣자는 아이들의 성원이 있었다. 교사가 그걸 허락했고 복도를 지나가던 교장이 그 소리를 들었다. 교장은 벌컥 앞문을 열고 들어와 “수업 중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교사는 그 자리에서 그냥 학생과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

두 가지 일이 있고 난 뒤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책상서랍에 이 유인물이 있었다. 교장실과 교무실에는 뭉치로 뿌려져 있었다고 했다. 나를 불렀던 선배들 네 명이 한 일이었다. 후에 그들에게 그 날 밤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몰래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불쾌했고 반장이었던 나는 전교 반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이 얼마나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낼 수 있는지 정확히 봤다. 그 분노에 숨이 막혀 나는 공황발작 비슷한 걸 일으키며 쓰러졌다. 집안사정으로 자퇴를 했다가 겨우 다시 복학을 한 나에게, 다시 정학이나 퇴학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건 옳은 일이었다. 뭘 선택할 기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쓰러지는 것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질질 끌려 양호실로 돌아갔고 미친 듯이 난리를 치던 교장은 며칠 후 나를 보고는 몸은 괜찮냐고 물어봤다.

 

다음 해 문학과목을 배우게 되면서 지금은 모대학에 문창과에 출강하는 안모씨가 문학선생이 되었다. 그 지엄한 교장 밑에서도 취해서 들어오는 날도 적지 않았던 그 양반이 어느 날은 술 냄새를 달큰하게 풍기며 들어와

“얘들아. 바다를 보고 싶지 않느냐. 바다! 바다! 아 동해바다! 동해바다로 가자!” 하더니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학교 수돗가에 세워져 있던 스쿨버스에 애들을 태웠다.

관광가이드처럼 버스 앞에 선 문학선생은 “자, 이제 이하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이 버스를 타고 동해바다로 가는거야! 이하나. 뭘 부를거냐!”

“고래사냥?”

“그렇지!! 역시!! 그래! 우리는 동해바다로! 고래를 잡으러 간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 뿌우니이네에~ 열여덟 아이들 앞에서 열 아홉 내가 서른 서너살의 술취한 문학가와 함께 덩실덩실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노래가 끝나고 문학선생은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신이 나서 지나가는 요구르트 아줌마에게 100원짜리 요구르트 48개를 사서 아이들에게 돌리고 자기도 하나 마셨다. 광란의 분위기가 멈추기 전에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버스 문을 두들겼다.

 

“선생님. 헉.헉… 선생님. 교장실.. 헉. 헉. 교장실.. 교장선생님이.. 헉헉. 지금 노래한 거 .. 이하나죠. 헉헉. 둘이 같이 들어오시라는데요. 헉헉.”

 

안선생과 나는 둘이 같이 교장실로 불려들어가 나란히 서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교장은 나와 안선생의 중간지점으로 정확하게 교장명패를 던졌다. 안선생이 술이 취해서 몰랐던 모양인데, 그 스쿨버스는 교장실 창문 바로 아래 주차되어 있었다. 교장실에서 10분 넘게 욕을 먹고 나오는 길에 안선생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안선생의 1미터 넘는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보였다. 그 다음해에도 내 문학선생은 안선생이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동지의식을 가지고 문학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가끔 나에게 단편소설을 낭독시키고 본인은 잠을 자기도 했다. 좋다. 좋아. 잘 읽었어. 내가 읽는 건, 김유정의 동백꽃의 대사 “느 집엔 이거 읎지?” 이런 사투리와 적절한 성대모사였다.

 

<나무가 보내온 편지> 하명희작가의 소설을 전성원편집장의 소개와 양돌규선생의 소개로 읽었다. 나는 그들의 후배가 된다. 내 위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전교조집회에 앞장 서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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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중학교 2학년때 전교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우리 학교에서도 몇 명의 교사가 해직되었으나 너무 조용히 진행되었다. 등교투쟁도 있었으나 나는 학생회 부회장인데도 알 수 없었고 나는 전교조의 문제보다 학생의 자치권에 관심이 있었을 뿐. 간선제였던 학생회 임원들을 직선제로 돌리는 것에 집중하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때 우리 학교에서 해직당한 교사 한 명이 전교조 총무로 인터뷰 하는 화면을 보기도 했다.

1993년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전교조집회가 있었다. 나는 우리 한뜻 친구들 여덟명과 함께 그 집회에 참석해 열심히 팔을 휘두르며 전교조노래를 불렀다.

보라 힘찬 우리의 깃발 / 당당한 우리의 선언 / 학교위에 높이 날리며 / 참세상 횃불 춤춘다. / 우리 흘린 피와 땀으로 / 참교육 곧게 세우고 교실 가득 가슴 한가득 / 폭압을 뚫고 가네 / 살아오는 아이들 손잡고 / 교단에서 거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교육 노동자 / 전교조 우리의 사랑 / 전교조 우리의 생명 / 참교육 승리 그날까지 전진하는 동지여 / 보라 푸른 조국의 하늘 / 솟구쳐 오르는 새 날 / 한라에서 백두까지 / 물결쳐라 전교조 /

 

그 때 누군가, 이게 마지막 전교조 집회라고 했었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찌되었건 나는 다음 해에 고3이었으므로.

한뜻에서 같이 활동하던 친구는 내가 고3이 된 해에 연세대에 입학했다. 1995년 내가 명동호프집에서 시급 2500원을 받으며 300평정도 되는 호프집을 헤집고 다니며 맥주를 나를 때 그 친구가 이른 저녁에 나를 찾아왔었다.

“나 한총련 탈퇴할려고.”

“왜.”

“나는 있잖아………… 이런 건 아닐거라고 생각했어. 왜 여기서도 권력투쟁을 하는 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간다.”

친구는 혼자 앉아 맥주 몇 잔에 담배를 한 갑 몽땅 뽀개고 일어났다. 그리고 곧 한총련을 탈퇴했고 그 다음해에 연세대 사태가 있었다. ㄷ여대 노래패에서 활동한다던 친구는 지금 뭘하는 지도 모른다. 다들 흩어져 그냥 애엄마로 사는 건지 아무도 뉴스에 나오지 않고 페북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이 났다.

잊었던 노래가락도 생각나고, 그 노천극장의 깃발들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는데 나는 뭔가 어설픈 시대에 발만 걸쳤다가 어설프게 밀려났거나 내가 뒤돌아 나왔거나 내 밥상에 밥그릇을 챙기느라 멀리 본 적이 없다. 그저 이렇게 책으로 다시 읽고,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추억만 하는 무력한 삶이다.

 

2014. 12. 29.

 

 

믿습니까!

1. 강신주의 글때문에 충격받았다는 글은 어제인가 그제 봤다. 그리고 그게 퍼져서 오늘 오후부터 여기 저기 담벼락에 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어떻게 이리 말할 수 있는가! 라는 반응이었다. 그 글은 2012년 어느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고, 수치심에 대해 거론하며 노숙자를 끌어 들였는데, 그들은 ‘수치심도 모르는 존재’처럼 읽을 만 했다.

그 글에 대한 분노폭발은 강신주 개인에 대한 분노폭발로 이어졌고 인신공격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 분노의 대열에 쉽게 동참하지 않은 것은 일단 운전중이었고, 대부분의 반응이 ‘어떻게 철학자라는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 였기 때문인데 이 반응을 나타낸 사람들의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게도 평소, 닭그네나 귀태의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는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형평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권력을 가진 자, 즉 기득권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비난과 원색적인 욕설까지 할 수 있다. 때로 그런 것들은 정의로운 발언, 속시원한 이야기, 타인이 하지 못할 이야기를 대신 하여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 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러나 그 반대축에 서 있는 약자에 대한 비난은 무식한, 뻔뻔한, 엘리트 지상주의의,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저 딴 게 학자라고, 일컫는다. 매우 쉽게.

나는 아까 그 글을 보고, 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해도 되고, 노숙자에 대한 비난은 하면 안되는가? 라고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약자의 정의는 무엇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내가 그랬다. 약자 앞에 약하고 강자 앞에 강하자는 주장아래, 강자를 씹어내어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대신 약자는 언제나 사회적 피해자라 “나를 투사하여” 맹목적으로 그들의 편을 들었다.

여기에서 내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왜, 약자는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되는 대상이냐는 것이다. 그게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가?

어제 나이지리아의 한 소설가인 치마만다 아다치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한 약자계층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2. 가난하다는 건 벼슬이 아니다. 부자인 것도 벼슬이 아니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그 모든 것도 단편적이지 않다.

권력과 부를 가진 누군가의 삶은 평생 폭력에 노출되어 이미 정신적으로 좀비(오늘 회자된 낱말이므로 활용해보도록 하자)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돈과 명예보다 삶과 행복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쉽게 불행한 부자를 시기하고 비난한다.

적어도,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가난이 몸에 익은 사람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좋게 말해 자유롭다. 쉽게 말해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은 자존감이 바닥에 가닿은 것이 맞다. 그게 항상 그의 의지때문도 아니고 항상 사회적 구조 문제 때문도 아니다. 이야기는 단편적이지 않으므로.

20년전 동자동 뒷골목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변에 피해를 입히며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담배를 피우며 앵벌이를 해서 냉장고를 바꾸고 보일러를 바꿨다. 싸움을 하다 가스통을 열어 불을 질러 버리기도 했다. 아침 10시에 소주병을 들고 돌아다니다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새벽부터 출근하여 하루 종일 그들의 오줌을 닦아야 하는 경비원과 청소노동자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 백원을 달라고 생짜를 쓰기도 했고,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이불이나 옷을 훔쳐 가기도 했다. 그들에게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늘 여러사람들이 비난한 강신주의 표현에 의한 ‘좀비같은 노숙자’이거나 그보다 조금 형편이 나아 쪽방 한 칸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만큼 법의 외부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류들은 또 있는데 바로 고위 권력층이다.

3. 경제적 약자를, 노점상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타당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 당신이 며칠 동안 애를 써서 겨우 접속한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소득공제 자료를 찾고 어떻게 10원이라도 더 환원 받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일을 그들은 안 한다 말이다. 그들이 받는 혜택이 없기에 세금도 내지 않으며, 때로는 어느 학교의 담벼락에 무단으로 조립식 건물을 짓고 통행을 방해하며 몇 년씩 재산권리를 주장하다가 관공서에서 철거를 해서 세금 잘 내는 시민들에게 돌려줄 공원을 만들겠다고 하면 드러누워 폭력경찰 물러가라 ㅇㅇ시장 자폭하라. 등등의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이런 예시도 단편적이다. 우리는 항상 이 단편적 이야기의 반대편도 살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긴 걸 여기까지 읽은, 혹은 강신주가 누구인지 아는 바로 우리- 나를 포함하여) 약자를 비난하기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출발선이 달랐거나 혹은 같은 선에서 출발했더라도 여러가지 개인적 사회적 이유 때문에 많은 기회를 박탈당했을 거라고 잠재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들 중의 일부가, 스스로 그 기회를 계속 해서 거절해왔거나, 마음에 맺힌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규정하고 계속 사회에서 겉돌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어떻게든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내부의 인물로 끌어당기기 위함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 암묵적 동의 안에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법 안의 테두리에 존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법과 사회란,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은 보호할지라도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내던지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해보이는” 사회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4. 어쩌면 강신주의 “좀비같고 강시 같은 노숙자들”에 대한 반응이 과한 것은 아닌가 경계해본다. 무릇 학자라면, 더구나 인문학 학자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문학이란 인간의 무늬를 곱게 아로 새기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혜택받은 지식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설령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더라도 어찌됬건 그들은 문자 해독 능력을 부여받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좋은 뇌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므로. 때로는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타고난 혜택 때문에, 혹은 주변의 환경 덕분에 그렇게 될 수도 있으나 절대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의해 지식인이 될 수도 있다. 의지도, 타고난 힘이라, 그 역시 혜택이라 쉽게 말해도 되는 걸까.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사회적 공적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모두 “그러면 안돼” 라고 쉬쉬하며 동의하는 어떤 규칙에 대해서 과감히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나는 강신주의 글을 읽고 한 개인의 의견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가 우려한다. 혹은 잘나가는 대중철학자를 자칭한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전혀 없었는가 확인하고 싶다. 몇 달전 서점에 갔다가 강신주의 책이 비소설, 인문 부분 베스트셀러 대열에 다수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어… 이 양반 심하네. 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게다가 그는 모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으며, 공중파에서 강의도 한다. 적어도 대중들에게 매우 알려진 사람이며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역할은 인문철학계의 공지영쯤이다. 공지영에 대한 문학적 성취나 작품성, 언어조탁성을 떠나 공지영을 인정하게 된 계기는 1년에 책 두 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 공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본 다음부터다. 그래 때로 저런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말하자면 예전에 MBC 방송국에서 했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할 때 있었던 논란과 같은 거다. 그 프로그램은 도서시장을 분명히 부흥시켰다. 신동엽이라는 이름은 개그맨의 이름으로만 알던 사람들에게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사 읽게 했다. 아무리 좋은 글도,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하면 일기와 다름없다. 세상 가장 평등한 전달 수단이 글자이며 책이라 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마당에 대중적 철학자 하나 있으면 좋지 아니한가.

공지영이나, 강신주 같은 대중적인 지식인들은 위험하지만 그들의 순기능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또 한 번의 단편적이지 않은 접근이겠다. 그가 말한 노숙자에 대한 표현도 내가 읽기엔 달을 보랬더니 손가락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가 노숙자를 비난하기 위한 글을 썼던가. 그 글에서 노숙자는 장치였다. 물론 사람의 삶을 놓고 대상화 한다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겠으나 어떤 삶을 대상화하지 않고 글을 이끌어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강신주가 그만큼이나 되는 사람인가는 세월이 더 흘러봐야 알겠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수치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리너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왜, 그가 말한 글의 장치에 대한 비유 하나에 이렇게 화를 내는가.

만일 그가, “대통령이랍시고 눈알은 비어 있고 영혼이 없는 미소를 내뱉으며.” 라고 썼다면 뭐라고 답했을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만일 “대통령이랍시고 영혼이 없는 미소를 내뱉는” 이라는 수식어를 2011년에 썼을 때와 2003년에 썼을 때라면 얼마나 다른 평가가 나타나겠는가. 내가 믿는 진실과 내가 믿는 상식이 절대적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게 지식인의 자세일까? 정말?

2014. 1. 16.

그의 원문글은 다음 링크다.

http://pdf.joins.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2201204080056

2012년 4월의 글이다.

설국열차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 곁들여서… 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刑門)부터 한다지 않아요? 종이 종한테 상전 노릇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약한 자들이 형성한 권력, 이들은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할 게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어 있단 말씀입니다.“

(중략)

“그래서?”

“과연, 진정한 평등 사회가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이상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미물 곤충도 강한 놈은 약간 놈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력을 다하여 강적과 싸워 내는 놈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 한 번은 이기겠지만 돌아서면 다른 놈한테 결국 잡혀먹힙니다. 하다못해 잡초, 들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가 억센 놈은 생명력이 약한 풀뿌리를 죽게 합니다. 약한 놈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고 인간 사회고, 약한 놈은 학대받아야 합니다. 학대받고 일찍이 죽어야 한다고요… 곤충, 미물, 잡초의 생리마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에 이르러 무슨 말을 더 합니까?”

“그렇지 않다.”

강태가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어서 일어서자고 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차갑게 말꼬리를 내린다. 그의 말꼬리에 묻은 찬 기운이 시리다.

“너는 혁명의 아름다움을 아느냐?”

강태는 바늘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반대로 강모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그는 지금 알 수 없는 열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모반(謀反)같은 것이 아니지. 지난날의 반란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달성한 것, 말하자면 옛 권력층에 대한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한 것이었어. 허나, 오늘날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대수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과연 거기서 형님의 역할은 무업니까? 지도자를 따르는 민중입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지도자입니까?”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거 보십시오. 벌써 형님은 하나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평등을 목표한다는 형님의 이론에서도 민중과 지도자라는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명칭이고 역할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지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해방하고 전 민중을 해방한다. 그 해방을 통해서만, 인류 사회는 비로소 착취 없는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거다.”

“착취, 착취, 도대체 착취가 아닌 관계도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할머니도 착취자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하략)

최명희 – 혼불 제 3권 58쪽 – 60쪽

 

설국열차의 감상편은 이 것으로 대체한다. 영화 내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구체적인 시대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태의 콘서트가 유행이라던데 공연장에까지 앉아서 남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그 누구보다 언어를 많이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때로는 그 모든 언어들이 다 부질없어서 굳이 말로 이루어지 않은 것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고 알아들을 문장을 전달하지 않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을 수 있고,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듣고 싶은 만큼만 들어도 되는 그런 형태의 소리로 많은 것을 함축 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들어도 말이 많은 것은 일부러 피했는데 그 반면 나는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내 얘기만 들어달라고 하는 거였는지 아직 잘 알 수 없다.

오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박제동 화백을 모신 토크콘서트 형태의 국악콘서트가 있었다.
80분 공연에 음악 공연은 30-40분 정도로 할애하고 나머지는 정은아의 사회로 이루어졌다.
박제동 화백은 입담이 좋은 사람이었다. 객석에서 간간히 폭소가 터졌고 나 역시 프로그램북으로 입을 가리며 웃곤 했다. 그의 화법은 숨김이 없고 솔직하고 정직했다. 샘이 나고 화가 나고 오기가 나고 질투가 나는 인간의 칠정을 모두 무대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관객들이 웃는 부분은 바로 거기였다. 길들어지지 않는 인간의 건강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때 말이다.

행복했어요. 오기가 났지, 화가 나서, 미치겠는거야. 어쩔 줄을 모르겠지, 부끄럽죠. 대체 어떻게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막 질투가 나지요. 아 나는 어떻게 하지,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질투가 나서 미치겠는거지. 그래서 어디 너 두고보자 하고 오기를 부렸어요.

오늘 그 공연장에서 박화백이 말한 자신의 감정들이다. 인간의 오욕 칠정을 숨김없이, 그렇지만 뻔뻔하지 않게, 솔직하지만 염치있게 말하는 것이 듣기에 즐겁다는 것을 알게 했다.

말과 음악이 같이 공연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생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은 더 이상 구체적이지 않은 것을 고스란히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지하는 시대다. 개나 소나 스토리텔링- 이라는 비아냥조도 떠돈다. 나 역시 이야기를 발굴하고 쌓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온 이야기들은 구체적이거나 노골적이라기 보다 상징적이며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케 하는 가사없는 노래같은 특성이 있다.
소리를 더한 극을 하고, 그 극을 해설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느끼는 것보다 알고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가 그 출발점이었을 거다. 알지 못해도 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눈썰미” 라는 것인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다.

그리하여 시대는 추상과 이별하고, 극사실과 해석, 해부와 분석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박제동 화백의 그림으로 부족하고 그가 덧붙인 글씨를 읽는 것도 부족하여 그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고 거기에 걸맞는 음악을 연주해 특정한 느낌을 잡아넣고 그 음악에는 구체적 대사와 이야기까지 넣어 확장까지 시키는 시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대는 모든 예술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2013. 6. 26.

3월의 눈- 국립극단

130311_iphone5 030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며 살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보며 웃고,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표현한다.

남들의 입과 손, 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나 그림,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뭐라고 해야 할 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폼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을 대할 때 감정의 찌꺼기를 밀어낼 수도 있고 더불어 나의 이야기가 더 가치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가라 불리는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월의 눈은, 노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 본 이 연극의 이야기는 작년 가을 이별한 나의 시어머님과 빈집에 혼자 살고 계신 나의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 대신, 그분들 대신, 나에게 해주었다.

작은 극장이라 울음을 참았으나 통곡할 수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 앉은 모든 여성동지들의 울음을 참는 소리가 끝이 나지 않았다.

주연은 변희봉선생인데,
화를 내라는 아내의 말에
“누구한테??!!!” 라고 말을 하고 침묵을 지키는 몇 분간, 침묵으로도 관객의 오장육부를 뒤집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연극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2013.3. 10.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용산역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yawang_suae

블랙박스

대형전시회 그 중 현대작을 소개하는 곳에 가면
어둡게 칸막이가 막혀있고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 있다.
완벽한 어둠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어둠에 가까우려고 노력한 그 곳에서

멍하니 몇 분간의 비디오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24시간동안 상영을 하는 24시간짜리 Time 이라는 작품을 다 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어둠과 가까운 이 곳은 집중이 잘 되어,
마음속의 모든 상념을 떨치고
작가가 하는 말만을 들을 수 있다.

오늘 갔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호주 현대작가 전시회 TELL ME TELL ME
에서 이름을 적어오지 않은,
호주 작가의 존재..운운 했던 비디오물이 인상깊었는데
사실 그 미디어의 예술성 보다는
그 아래 흘러가는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자에 익숙한 나는 문자와 그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그림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문자에 쏟곤 하는데
아무튼,
벗어나라 어쩌고..하다가 From YOU 라는 글자가 크게 나와서.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tell me tell me 전시회는 별로였다.
도록은 4만원이 넘고.
뭔가 .. 일관성이 있을라다가 말아서.
차라리 아예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 비디오가 상영되는 그 공간.
거기가 있어서 좋은 것.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과 오래된 미래 2011. 10. 1.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오래된 미래의 오프닝
보현사 스님들의 반주/연주와 지역주민들의 노래자랑
보현사 스님밴드 
석수시장 중앙광장
바닥에 새긴 석수시장

미샬로프(Mishalov)로부터 온 편지 / 박찬응


68-69년 석수동의 모습을 간직한 미군병사의 사진
당시의 사진속 주인공들을 찾습니다.

벽화작업
자전거벽화에 받침대 설치한 것이 아주 굿. 

10월 23일까지 이어지는 석수아트축제페스티벌
레지던스 작가 작업실 앞

스톤앤워터
네온사인 들어오는 삽! 

Anak & Moneperro 의 오프닝 석수신령 퍼포먼스
벽면 작업도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못 찍음

Cafe Lizard 도마뱀까페

김덕영 점진적 확장

2076 안양 / Luiz roque

때 생성소 Creation Studio Of Dead Skin / by 오아영

벽면에 있는 흑연을 지우개로 지우며 창작을 해내가는 참여전시 – 구석엔 쌓인 지우개때가 산처럼 쌓여있다.

춤추는 요리사 작가 작업실

맥아더 동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소철 입주작가
경기 영아티스트 기획수상작가
회화작업인데 매우 내 취향 ㅎ 

http://cafe.naver.com/2010gyaprojec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41&
작품소개 

오프닝풍경
스톤앤워터 주최
http://www.stonenwater.org/bbs/view.php?id=notice&no=256

The Way We Were







1973년 시드니 폴락 감독의 The way we were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이다. 
멜로영화로 알고 있었던 게 잘못이다.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라 정치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 흔들던 1950년대.
그들이 다시 만난 시점이다. 
그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는 스페인 내전이 한참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에 시작되어 39년에 종결되었다. 
조지오웰이 작가로 활동하며 내전에 참가해 “카달로니아 찬가”를 쓴 시대다.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쉽게 말해 운동권이다. 
진보정치의식을 가진 그녀는 늘 바쁘게 살며 생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허블 가드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찌보면 도련님,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다. 인생을 즐겨. 라는 모토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는 Americanism의 상징. 글재주가 좋아 교수에게 인정받고 결국 훗날 작가가 되는 인물이다. 
집회를 이끄는 대학생때의 케이티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했던가. 
인생관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결혼까지 골인한다. 
두 사람은 30대가 되어 케이티는 내조를 하는 주부가 되고 허블은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 케이티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 누그러지는 듯한 시대가 왔을 때 매카시 열풍이 불어닥치고 헐리우드의 10인 사건에 케이티가 결국 개입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사람의 정치관은 두 사람의 세계관이다. 
케이티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허블은 그래봤자 똑같은 인간들이고 누군가 희생타가 되어 감옥에 가고 삶을 잃고 그러다 설령 그들이 다시 복귀해 삶을 살아가더라도 추잡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로 부활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허블은 세상은 변치 않아 인간은 원래 그런거니까 – 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고 케이티는 우리는 늘 싸워야 하고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 
이 둘은 삶의 영역보다 사상의 영역이 훨씬 더 컸던 조합이다.

케이티는 허블을 만나기 전 생활인이 되기 위해 곱슬머리를 펴고 허블의 요구에 맞춰 정치적 행동도 줄이지만 정치는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다시 케이티가 나서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보수와 아메리카니즘의 아이콘인 허블은 케이티와 헤어지고 좋은 승용차를 타고 TV쇼의 작가가 된다. 케이티는 그 앞에서 반핵운동을 전개중이다. 머리는 펴지 않고 다시 곱슬머리인 채. 그들은 헤어진 대신 그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떠올렸다.
김주원은 허블과 유사한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에,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정치나 생활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백화점의 매출, 잘 나가는 인생에 관심이 있을 뿐.
뭐 길라임이 케이티를 반영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너무 가난해서 정치색채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매일 매일 먹고 사느라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시크릿 가든에 대조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갈 길을 인정하고 같이 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허블이 바로 미국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반영한 아이콘적인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90년대 최진실, 이후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심은하 등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의 아이콘 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고심했다.

트윗을 올려 의견을 받아본 바, 현빈, 이외수, 이효리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이번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딱 현빈이 분한 김주원 같은 아이들이 투표율 높은 지역에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는 매우 난감하다.

80년대의 대표주자는 반항아의 상징, 이덕화(지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최재성, 최민수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반항의 정서가 있었다. 연예인과 당대 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7080을 지배한 정서는 반항이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내리누르는 게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금은 풍족한 자들은 풍족하고 가난한 자들은 내몰리고 풍족한 것이 상징이 되고 뭇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줄줄이 쏟아지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패륜과 불륜이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와 곱상한 이미지의 이승기나 현빈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쌓아올린 부를 지키기 위한 보수층으로 포위되어 부유층이 아닌데도 거기에 멍청하게 끌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삼신할미 랜덤에 걸려 곱게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진보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좀 암담하다.
경쟁하고 떨어뜨리고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게 트렌드가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The way we were는, 묘연하게 행방을 감춘 것은 아닐까.

2011.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