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교육유감

  1. ZOOM 유료화 전환 예ZOOM 유료화 전환 예정

그동안 교육기관에 무료로 계정을 제공했던 ZOOM이 유료화로 전환합니다.

이미 1년 반동안 줌에 길들여진 학교현장은 난감합니다. 줌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그만하면 사회적 소명을 다 했다고 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제 줌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저도 줌 유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한달에 17,000원 정도 되는 비용을 씁니다. 학교 수업이면 그 정도 개인계정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어느 학교에서도 이 월납이나 연납결제를 공적으로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해외사이트라 상부 결재받기가 어려울 것이라 예단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제 물품을 공공의 영역에서 사용할 때 “국부유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용을 내야하면 무료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이용하라는 것이 정부기관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EBS의 온라인클래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e학습터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때마침 경기도교육청은 네이버와 협약을 맺고 네이버웨일스페이스 사용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2020년 3월에 모두들 경험했듯이, 국내에서 만든 플랫폼은 신뢰를 이미 잃었고, 이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수업을 준비했는데 아예 온라인플랫폼이 작동하지 않았던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온라인클래스나 이학습터를 믿기 어렵습니다. 또한 기능도 줌이나 구글클래스룸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행정에서 사용자 편의주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산이 들어가면 무료로 된 걸 사용하라.

그래서 수많은 공공기관에서는 Windows나 MS Office의 해적판을 깔아놓고 버젓이 공식회의 석상에서 “인증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대형 화면에 띄웁니다. 공공기관이 대놓고 도둑질을 해도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 나라가 여기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MS Office를 사용하도록 계약을 맺었습니다. 국회의원 이은재의 사퇴하세요로 서울시교육청이 MS Office를 사용한다는 건 전국민에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공식적으로 한글과컴퓨터만 사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안팎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왜 두 가지 프로그램을 병행할 수 없는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상위기관에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지친 현장의 교사들은 벌써 네이버웨일이나 구글클래스룸을 배우고 있습니다. 행정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학교를 둘러싼 사람들이 기술을 한 가지 더 익히면 되는 일이니까요. 이는 넓게 보아, 노동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더 하면 되고, 결정권자들은 정해진 지출만 하면 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더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급여도 나가고 연금도 나가니까, 업무가 과중한 것은 불만삼아선 안되는 것이 됩니다.

2. 백신 접종 스케줄

2학기에는 교사들도 우선접종대상이 됩니다.

학급이 많은 초등학교의 경우는 백신접종 스케줄을 짜고 있습니다. 전체 인원 300명 이하의 작은 학교는 전교생 등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대체자가 없습니다. 백신접종 후 2-3일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게 방역당국의 권고사항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교육종사자들은 빠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금요일 접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접종하고, 토요일 일요일 쉰 다음에 월요일에 출근해서 그대로 업무를 보겠다는 얘기입니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방법인가 의문이 듭니다. 교사들은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1일 병가처리를 할 경우에 본인의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경기도에서는 보결처리가 내부적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학교 안에서 대체인원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기도는 3일 이상의 보결인 경우에만 외부인력을 초빙해 대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1일 보결도 바로 외부인력을 초빙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돌봄교사들도 백신 후 후유증과 안정을 위해 머리를 짜내며 스케줄을 협의하며 접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병설유치원은 학교장이 돌봄교사 대체인력으로 투입되기도 합니다. 쉴 수 있는 권리는 교육 현장에 없습니다.

3. 교실의 가림막

학교 교실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가림막에 관련한 예산은 각 학교의 자체예산으로 충당했습니다. 두꺼운 아크릴도 된 것은 무겁기도 하고 사고위험도 있지만 무엇보다 비용이 비쌉니다. 식당등에서 사용하는 발받침이 있는 것은 26,000원에서 50,000원에 이릅니다. 아이들이 많은 학교일수록 더 단가가 싼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학교 수업에 다녀와 올렸던 것처럼 어떤 학교는 불투명 가림막을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020년에 늦은 개학을 했을 때 전국적으로 아크릴가림막의 물량이 부족해서 일단 급한대로 불투명이라도 사서 썼던 것인데, 새로 예산이 얼마나 확보되느냐에 따라 교체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학교와 지역교육지원청은 현장의 의견을 경기도교육청에 전달할 예정입니다만, 얼마나 잘 반영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노동현장의 권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교 행정을 들여다보면 현장은 열려있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상위기관에서 목을 움켜쥐고 군대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1세기, 뉴노멀, 블렌디드러닝, 온택트, 혁신교육, 미래교육자치, 좋은 말은 다 갖다 쓰는 교육현장은 왜 여전히 30년전의 스타일을 고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 먹기 – 잔반과 간식

오늘자 내 아이의 학교 급식 (수요일은 특식 먹는 날)

최근 이슈가 되는 급식과 잔반문제.

페친 중에 급식전문가가 있으니 이에 대한 더 나은 고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적어본다.

2020년 중반쯤에 경기도교육청 정책자문위원회에서 잔반처리 문제가 언급되었다. 관련부서에서 잔반처리비용이 점점 늘어나 고민이다. 2019년 음식물처리비용이 1600억 정도 된다는 것에 대해 경기도의회에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2020년 교육청에서 다른 방안을 찾은 것인데, 사실 잔반처리 관련해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를 공식적으로 TF까지 만들어 궁리한 건 2015년부터라고 알고 있다.

당시 내가 받아본 자료에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잔반이 많아지는 추세가 뚜렷했다. 내가 속한 분과회의는 아쉽게도 성비가 맞지 않아 남성들이 80%이상을 차지한다. 식생활교육이나 애들 먹이는 일을 주로 해보지 않는 것이 빤한 50대 후반의 사회각계인사로 구성되었다. 이들 중에 바로 튀어나온 대답은 “급식을 맛있게 하면 될 거 아닙니까.”였다.

급식을 맛있게 하려면 튀기고 볶으면 된다. 그럼 일단 다 먹는다.

라면 줘봐. 싹싹 먹지. 국물까지 서로 뺏어먹으려고 난리일 거다.

애들이 급식이 맛없어 남기는 건 아니다.

초등정도 되는 아이들은 대체로 주는대로 먹고 고르게 먹어야 한다고 학습된 대로 행동하려고 애쓴다. 요즘 애들은 채소 다 싫어하고 고기 없으면 밥 안 먹는다. 특히 생선기피가 심하다. 초등연령대에서 가려먹는 것은 체질과 관련있다. 경미한 알러지가 있거나, 풀냄새를 역하게 느끼는 것이다.

보호자는 대체로 바쁘고 레토르트 식품으로 조립형 식탁을 차리는 일이 대다수다. 생선은 구울 때 냄새가 많이 나고 소형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생선 굽는 일이 곤욕이다. 마트에서 “생선 구워드립니다”가 흥하는 이유다.

집에서 정성스럽게 매끼니를 차려줘도 아이들은 집밥에 물려 밖에 나가 기회가 될 때마다 불닭볶음면 같은 걸 사먹는다. 집에서 아무리 애써봤자 어쨌거나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어 있다. 이게 나이를 먹으면서 강화된다. 그리고 선택권을 강하게 요구한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컵라면이다. 이거만 주면 만사 해결된다.

중학생쯤 되면 취향대로 가려먹기 시작한다. 급식에 야채나 볶음 튀김이 없으면 대충 먹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뭘 사먹는 경우가 더 많다.

배곯는 아이들도 많지만 돌봄조건이 좋거나 나쁘거나를 떠나서 일단 세상에는 볶고 튀겨서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이 지천이다.

고등학생은 기본적으로 피곤하다. 피곤한데 건강한 식단이 맛있을 수 없다. 늘 졸립고 고단한 상태로 지내니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 잔반이 늘어나는 건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와 같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잔반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의 취향대로 밥을 해 줄 순 없다. 학교급식은 건강과 영양균형이 최고다. 집에서는 편식을 일삼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나마 급식이라도 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형편이다.

잔반처리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면 반찬 종류를 한 두 가지 늘리는 게 있겠지만, 그러면 채소류는 다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학교급식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청소년 청년층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잔반문제와 더불어 이슈가 된 어떤 기사에서 다뤘던 간식문제.

학교에서의 간식문제는 상황이 이렇다.

간식때문에 싸움이 난다.

그걸 꼭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간식을 먹는 건 상호간의 교감, 애정을 표현한다. 누가 뭘 사가지고 와서 전체 아이들과 나눌 수 없다. 교사가 자기 할당량인 우유를 특정 아이와 나눌 수 없다. 형평성의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은 “왜 쟤만 주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가위바위보라도 해서 어쨌거나 간식을 쟁취하려고 한다. 학교 교실에서의 간식은 허기를 달래는 용도가 아니라 전리품과 같다.

그렇다고 교실에 과자류를 비치할 수도 없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함부로 먹일 수 없으며 “우리 애는 사탕 안 먹여요, 과자 같은 거 안 먹어요.”라는 보호자가 늘어나고 있다.

교실 안에 간식이 있으면 민원이 빗발칠거다.

그 간식을 어디서 가지고 왔느냐, 누가 공급하느냐, 우리 애는 땅콩 알러지 있는데 왜 과자를 가져다놔서 박탈감을 느끼게 하느냐. 등등.

그리고 외부음식물 반입금지 기준이 생긴 건 오래 전이다.

음식을 먹는 건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라 예전처럼 반장됐다고 피자 몇 판 사서 돌리는 건 엄금이다. 친구와 나눠먹겠다고 뭘 가져왔는데 그 친구가 알레르기가 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교무실은, 교무실 운영비용으로 사서 (그 기고문에서 말한대로 세금써서) 비치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품의서 결의서 쓰고 행정실 통하는 귀찮은 절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그냥 사다 놓는거다. 요즘은 보호자들에게 박카스 한 병 못 받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기 사비로 커피믹스라도 사다놓고, 어떤 교사는 원두도 사다놓고, 커피 갈아 마시기도 하고, 일반 기업 사무실과 비슷하다. 늘 사다나르는 사람 따로 있고 갖다 먹기만 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처럼.

..(너무 길어지니 여기까지만)

학교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의 문제다.

사회의 문제가 학교로 들어와 더 크게 보인다. 일종의 착시현상이고 집약적으로 모여 있으니 더 크게 보인다.

유치원 급식에 문제가 있으면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방법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학교 급식에 불만이 있으면 급식모니터링에 참여해서 교사들과 의논하면 된다. 학교도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교사와 얼굴 마주대고 의논해보면 대부분 답이 나온다.

옛날처럼 몽둥이나 출석부로 애들 후려갈기는 교사를 연상하지 않아도 된다.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일 때 학교는 보다 현명해질 수 있다.

뒤에서 뒤통수 치거나 다른 라인을 이용해 민원만 제기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공격받아 화들짝 놀란사람들은 당장의 문제를 가리기 바빠지기 마련이다.

[창비주간논평] 팬데믹, 세 번째 개학

https://magazine.changbi.com/20210303/?cat=2466


팬데믹의 세 번째 개학을 맞아, 창비 주간논평에 칼럼을 싣게 되었습니다.
열 분이 넘는 교사들의 의견을 듣고, 학생당사자, 학부모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사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항상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썼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1년 3월 3일 발행

학교는 왜 어려운가

4월 29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254회 공유가 된 글입니다.

하루종일 부글부글하다가 적는다.

 

1.

몇 년전,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성 교사를 만났을 때였다.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대놓고 아이들을 차별하는 나이 많은 남교사의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경제적 상황,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을 하는데, 그이가 속한 학교는 수도권 대도시의 외곽지역으로, 빈곤층이 적지 않은 곳이었다. 젊은 교사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같은 학교에 선배교사들도 그에 대해 제재를 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만 봤다. 가끔 이렇게 쳐다보기만 해도 많은 이야기들이 더 딸려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교사는,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 선배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이야기를 빨리 끝내려고 했다. 젊은 교사가 말한 남교사는 때로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는데, 학교에서는 비난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교사가 그런 건 교육청에 고발을 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젊은 교사는 더욱 움츠러 들었다. 그가 내부고발자가 되지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교사는 학교내에서도 교육계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있고 경력도 많은 교사였다.

2.

내 아이가 4학년일 때의 담임교사는 교실 안에서 수시로 인권침해하고 아이들을 차별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는 1년의 절반을 우울하게 보냈고, 11월에 들어서는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해서 병가처리를 요청하고 일주일간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차별과 인권침해로 유명한 교사라고 했다. 어떤 엄마는 교사가 거의 아이를 괴롭히는 수준이라 전학 간 아이도 있다고 귀뜸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교실 안에서 “내가 00 이 때문에 못살겠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묻거나, 아이가 엎드려 있거나 반항하는 모습을 수업중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꺼내 학부모에게 전송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11월까지 버티다가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은 지 일주일이 되는 날 학교에 찾아갔다. 교장실을 경유해, 이러저러한 사유로 학교에 왔고 4학년 몇 반 교사를 만나고 내려와 교장선생님께 보고를 할테니 바쁘지 않으시면, 나를 기다려달라고 했다. 교장은 놀란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담임교사를 만나 녹음기를 틀어놓고 한 시간 정도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야기를 했고, 교사는 심드렁한 말투로 “어머니, 그렇다면 제가 여태 잘못살았나보네요.”라고 했다. 나는 “제가 동네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선생님은 교육관과 인생관 모두 잘못되신 분 맞습니다.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눈 똑바로 뜨고 말해주었다. 교사는 내 말을 듣고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덧붙여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강조하는 학생인권에 대해서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셨으면 연수라도 신청해서 받으셨어야 한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둔 학부모인 내가 미리 아이를 단속하지 못한 책임도 적지 않다. 나도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담임교사는 내 아이를 불러 셋이 앉은 자리에서 화해를 시도했다. 이야기를 마친 다음 교장에게 내려와 사안을 전달했고, 그 교사는 인권교육을 더 받도록 지도해주고 개선되기 전에는 담임을 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교장은 내 얘기를 듣는 내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머리가 허연 교장은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 문제를 일으킨 교사에게 직접 찾아와 정면에서 이야기 하는 학부모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교장은 분명히 그 교사가 변할 거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교장은 개인사정으로 다음 해 학교를 떠났고, 그 교사는 또 4학년을 맡았다.

3.

학교를 곁에서 오래 지켜보면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학교 내부자들이 절대 밖에 누설하지 않는 것들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나이와 경력이 많은 사람이 권력자가 된다. 그런 교사들이 선호하는 학년이 있다. 학부모총회에 가서 인사를 하는 각 학년별 교사들의 연령구성비를 보면 된다. 제일 선호하는 학년은 2학년이다. 아이들도 사람다운 꼴을 갖추고 학부모들도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유순하고 다루기 쉽다. 나이든 교사들이 1,2학년을 점령하는 이유는, 학부모 상대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학부모 앞에서 반말을 놓는 교사들도 많이 봤을 것이다. 6학년은 기피학년이다. 초임교사나, 젊은 교사들이 대부분 고학년을 맡는 이유다. N번방 사건으로 드러났듯이, 6학년 중엔 성착취 영상을 보는 아이도 있고, 교사에게 덤비는 아이들도 많다. 6학년 2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인생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교실에 앉아 있다.
나이가 권력인 교사들의 세계에서 젊은 교사는 선배들이 알곡을 빼먹고 남은 쭉정이를 갖는다. 과도한 업무나 골치 아픈 일들도 젊은 교사에게 몰린다.
또는, 그 학교에서 혁신을 주도하거나 상부에 인정을 받는 교사는 일 폭탄을 얻는 경우가 많다. 울면서 퇴근한다. 이런 사례들은 비민주적인 학교에서 심하게 드러난다. 만약에 당신이 초등학교 학부모인데, 학부모총회를 가서 봤을 때, 각 학년별 담임교사의 연령대가 분명하게 구분지어져 있다면, 그 학교는 비민주적인 구조라 봐도 된다. 교무부장이 2학년 1반 담임교사인 경우가 가장 많다. 무엇을 뜻하겠는가?
한 학년에 담임교사들의 나이가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다면, 또는 교무부장이나, 학년부장이 꽤 젊다면, 민주적인 학교로 봐도 된다. 그러나 한 학년에 반이 3개 이하라면, 여기서는 판별법이 없다.

4.

울산의 초등학교 남교사가 내부고발이 없었다는 이유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보았다. 학교는 내부고발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학교는 가장 비민주적인 곳이며, 비민주적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모순 덩어리의 조직이다.

교육자가 되고 싶었던 청춘은 행정사무원으로 전락하고, 교육자가 실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행정실장이 가로막는다. 상부에서는 끊임없이 공문을 내려보내 교사를 길들이고, 교사들은 욕구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 학부모들의 학력이 높거나 경제적 형편이 좋은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똘똘해 학습진도를 빼는데 수월하지만, 학부모들의 민원이 발생하면 연구고 학습권이고 다 사라진다. 내부의 교사는, 행정도 잘 해야하고, 아이들도 잘 가르쳐야 하고, 인권의식도 높아야 하고, 친절하고 상냥하며, 차별도 하지 않고 공정해야 하고, 이제는 인터넷도 잘 다뤄야 한다.
언제는 PPT로 수업을 진행하라더니, 미디어노출이 심하다며 활동수업을 더 많이 하라고 강권하다가, 이제는 온라인수업을 해야 한다. 3-4년 단위로 교사들은 이에 적응해야 한다. 민원을 받아주는 방패는 없다.
게다가, 지금의 2-30대 교사들은 초엘리트로 자라왔다. 이들은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그런 유형의 아이를, 담임이 되어서 처음 만나본다. 교육청에서는 수석교사제를 둬서 교과과정 재구성을 돕고 교안 짜는 일에 대한 상담을 해준다더니 그 인원수도 줄여버렸다. 인권, 안전, 성평등, 이것도 모두 교사의 몫이다. “놀면서 월급 받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교사들도 가정이 있고,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그렇지만 철밥통이니까, 연금도 나오니까, 말 잘듣고 공부 잘 해서 좋은 직장 얻었으니까. 군소리 하면 욕만 먹는다. 정치적으로 의견을 피력해도 안 된다. 학교내에서는 민주화세대인 선배가 찍어 누르고, 전교1등에 임용고시 출신인 후배들이 치고 올라온다. 후배들은 게다가 외모도 출중하다.

교사들이 나약하다거나,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판이 왜 나오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봐온 내가 봤을 때 교사는 이제 완전히 3D업종이다. 급여체계와 복지, 연금제도가 없으면 어렵다. 그래도 좋은 직업 아니냐고 묻는다면, 초등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중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만 머물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학교가 그렇게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런 구조에서 내부고발이라니.
내부고발은 건강한 조직에서 가능하다. 학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울면서 퇴근하고, 자기 아이는 아픈데 병원에 못 데려가고 내 학급의 아이를 방치했다고 쌍욕을 먹는 일, 막상 자기 아이는 공교육에서 이탈했는데 꾸역꾸역 출근 하고, 교육보다 행정에 매진해야 할 때, 우울증에 걸리고도 티 내지 못하는 조직에서, 내부고발이 가능하겠는가.

이제 울산의 그 학교는 온라인 학습과 개학준비를 하는 것과 동시에, 문제를 일으킨 교사가 저질러놓은 일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을 여유도 없게 될 것이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진흙탕을 만든 게 아니다. 학교에 성직자가 근무하는 게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별의 별 인간 다 있듯,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학교도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아이들이 평생 안고 가는 기억을 만들어주는 게 학교라면, 학교는 당연히 조금 더 철저해져야 한다. 그러면 그 철저한 검열, 건강한 내부조직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가? 숨죽이고 입 닥치는 구조에서는 언제든지 이런 일이 터질 수밖에 없다.
조직의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민주적인 조직은 때로 가장 안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가능하겠는가?

내가 만나본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 때문에 힘든 건 없다, 힘들어도 그 정도는 괜찮다. 아이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뭐가 문제겠는가?

2020년 4월 29일

 

 

공부 잘하면

아들이 물었다.
공부 잘 하면 뭐해? 공부 잘 하면 좋은 대학 가겠지? 좋은 대학 가면 뭐해? 좋은 직장 가겠지? 그러다 짤리겠지? 그리고 치킨집 하겠지? 그게 다 아냐?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공부를 잘 하면
편히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니가 어느 사회에서 살던
그 소속된 집단에서 상층부로 간다는 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는 걸 말해.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내가 오늘은 삼각김밥을 먹고 싶어서 삼각김밥을 먹는 것과
정말 오늘의 식비가 3천원이라 삼각김밥밖에 못 먹는 건 다른 거잖아.

니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실력을 갖추고 능력도 있으면
니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해도 되고
직장을 다니기 싫어서 안 다녀도 되지만

갈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자격조건조차 안되는 것과 다르단 말이야.

그건 공부를 잘 한다고 되는 건 아닐 수도 있어. 공부를 잘 하면 매사에 유리한 어른이 돼.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니가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면
니가 생전 보도듣도 못한 개쓰레기같은 인간들이 네 앞길을 막고, 니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니가 계산하지 못한 위기가 나타나.

그런데 학교에서 낯선 수학문제, 과학문제 풀면서 머리 싸매는 그게, 훈련이야. 세상에 나가서 생전 처음 보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미리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는 거라고.
영어도 마찬가지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잖아.
니가 어른이 되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개소리를 한국말로 떠드는 인간들이 니 앞에 나타나. 그런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물리치느냐.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면서 훈련하는거야. 그 훈련에 익숙해지면, 세상을 돌파할 능력을 자꾸 연습하는거지

그래서 점수만 잘 받는 건 중요하지 않아.
니가 머리 싸매면서, 아 미치겠다 하고 풀어가는 그때, 니 능력이 레벨 업 되는거야.

그러니까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짜증난다고 때려치지 않는거야.
물고 늘어져야 아이템을 얻어.

 

2020. 4. 13.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전반적으로 죄책감이 뿌리깊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4학년 미디어수업에서 새로 바뀐 유튜브 스트리밍 정책을 말하며, 왜 14세 미만 어린이들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을까? 물었다.

아이들은

“애들이라 뭘 모르니까요.”

“쓸데없는 거 하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작년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했을 때도 느낀 거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차단당하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남의 아파트를 더럽혀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쓰레기 버리지 말기’ 캠페인을 벌였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이런 식이었다.

매년 500명에서 1천명의 어린이들을 수업을 통해 만난다. 올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하면 1천 5백명 정도를 수업을 통해 만날 것 같다. 세어 놓고 보니 엄청난 숫자다. 지난 2013년동안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몇 명일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천명은 될 거 같다. 3천 여명의 죄책감은 나를 짓누른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우리는 잘 못하니까.

우리는 떠드니까.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우리는 말을 안 들으니까.

14세 미만 아동이 방송규정이 생긴 건 소아성애범죄 탓이 크다. 아이들이 통학로를 돌아가게 된 것은 어른들의 쓸데없는 이기주의 때문이었다. 술 먹고 담배꽁초 버리고 오줌싸는 어른들이 더 많지, 아이들이 버리는 과자 껍질 몇 개는 비할 게 아니다.

오늘 아이들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건 신문에 날 정도의 빈도다. 고의적으로 세입자의 전세금을 떼어먹는 부동산 사기꾼은 방송을 타고 그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건 어른들의 대부분이다. 자기 감정을 실어 아이들을 억압하고 윽박지르고 ‘다 너희가 잘못하니까.’라고 덮어 씌우는 것도 어른들이 잘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고민할 때, 되물은 것은 어떻게 말을 안 듣느냐는 거다. 누굴 때렸나? 사람을 찔렀나? 동물을 괴롭히나?

기껏해야 이 안 닦고, 벗어놓은 옷 정리를 안 하고, 숙제를 안 하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팔려 과자를 흘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억압할 때 “우리가 잘못하니까.”라고 구속과 억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너희는 미숙하니까,

너희는 뭘 모르니까,

너희는 잘못하니까,

너희는 떠들고 지저분하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미숙하고, 뭘 몰라야 하고, 잘 못하는 게 많고, 떠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청결하지 않아야 한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야 언어가 발달하고 잘 못하는 게 많아야 배운다. 뭘 몰라야 궁금해지고 더러 코딱지도 먹어야 사회적 매너를 배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어른이라는 것들은 그저 나이만 처먹은 게 전부이고, 나이가 벼슬일 뿐인데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못된 짓을 머리 굵어졌다고 더 지능적으로 하고,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더러운 짓을 숨어서 한다.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걸 알아버려서,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을까 골몰하고, 들키지 않게 타인을 괴롭히는 일에 익숙해진 어른이란 존재들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라는 게 “너희가 잘못해서.”인가.

아이가 자유의지로 성관계를 동의했다 하고, 아이의 몸이 커서 성인인 줄 알았다고 하고, 아이가, 아이가, 아이가 따라갔으니 피해자라 말할 수 없다는 그 더러운 어른들이, 결국 너희는 괴롭힐 노리개가 필요한건가.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소아성애자의 타겟이 되는 어린이들에게, 그래도 “너희가 잘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세상에 더러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이 나라에 아이들이 숨 쉴 곳은 없으니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맞다.

고등학교의 봄

모 고등학교 미디어언론관련 동아리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0차시 강의라 계약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곱게 화장을 한 다른 강사 세 명이 담당교사와 얘기중이었다.
순간, 아 나는 대체 뭔 배짱으로 이렇게 이불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사회를 헤매고 다니는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인가 뜨끔했다.

진로코칭과 코딩, 역사관련 전문강사샘들인 거 같았다. 학교 방과후 강의나 진로교육 강의를 많이 다니는 경력자들 같았다. 코딩샘은 학교 컴퓨터 사양이나 와이파이 상태를 걱정했고 역사샘은 진로코칭 강의도 다니는 모양이었다.
관점이 약간 다르다고 느낀게, 고1때 이 부분을 점검해줘야 2학년때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 는 문장을 들어서였다. 이 분은 교과진도와 아이들의 입시에 나보다 해박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로코칭 강사는 당연히 진로보다 진학에 더 밝은 경우가 많은데 애초 자기가 아이들에게 꿈과희망을 얘기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정작 학교나 학부모가 원하는 진로교육은 진학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름을 바꾸는 게 맞을텐데, 진학 역시 진로의 한 부분이라 그렇게 쉽게들 바꾸지 않는가보다.

담당선생님이 계약서와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챙겨오고 참가하는 아이들의 출석부를 넘겨주느라 몇 분을 앉아 있었고 마침 부장교사가 합석을 해서 강사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 고등학교는 진학지도가 어느 정도로 되고 있다는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서, 지금 내가 앉은 이 학교는, 자사고를 떨어진 아이들이 오게 되는 1순위 학교이기 때문에, 3월 한 달동안 1학년 애들의 절반이 울고 다닌다는 거였다. 위치가 좀 외져서 같은 안양권에서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려면 차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니 다니기도 힘든데,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서러움이 더해져, 3월 내내 침울한 분위기로 학교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면 괜찮은데.” 라고 말했고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ㅅ 고등학교는 자사고니까 내신이 너무 높아서 에지간히 해서는 내신도 안 나오니 수시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애들이 정시지원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정시는 N수생들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지 않느냐, 밥 먹고 앉아서 문제만 푸는 애들과 고3이 어떻게 경쟁을 하느냐, 그렇다면 ㅅ 고등학교의 전략이 잘못된 거 아니냐, 입학사정관제로 돌려서 아이들이 어떻게든 학교를 가게끔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 학교는 교사들이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낄 수 없는 자리에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다음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 앞에는 아름다운 개천이 있고 교정도 널직하고 건물도 좋았다. 1층 현관에는 무대도 있고 급식을 먹을 식당도 따로 있었다.

낙오한 아이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한다니, 1학년 입학 때 수학 두 바퀴 반 돌고 가야 한다는 말이 이거였나. 대체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지. 내가 말하는 민주시민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모두들 끊임없이 좌절하며 늙어가는데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완전히 방치해버린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저항해야 한다고, 권리를 주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라고?

무력하다.
학교는 복도 곳곳이 좌절이다.

강사료 얘기는. 하나마나다. 맨날 반복되는 얘기 해봤자 뭐하나.

 

2019년 5월 13일

강의요청

 
1.
오늘 오전의 모 코디네이터에게 전화가 왔다.
공동체 사업 담당자인데, 사업으로 만났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다. 올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겠다고 몇 가지 제안을 넘겼고 이 분이 사업이 성사되기 위해 공기관과 조율중이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이 주다.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프로필을 다시 달라네요.
– 네 들어가자마자 보내드릴께요.
– 선생님, 근데 자격증 같은 거 없으세요?
– 아하하하하. 이런 저런 글쓰고 떠돌면서 강좌 여는 사람이 무슨 자격증이 있겠어요?
– 그러게요. 자격증이 있냐고 물어서요.
– 누가 글쓰는 자격증을 주나요 ㅋㅋ 강의도 그렇고요.
– 그러게요.
 
코디네이터는 내내 난감해했지만 기관에서 요청하는 강사비 조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단 프로필을 다시 보낼테니 기관에서 판단하게 하고 너무 애쓰지 마시라 전했다.
 
이 코디네이터와 나는 현직 언론종사자가 특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기관에서는 2시간에 30만원을 주려면 박사학위에 경력 10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보다 조건을 낮추면 석사학위에 경력 5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진 현직 종사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얘기했고 안그래도 바쁜 사람들인데 돈보다도 뚜렷한 명분과 가치, 그래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사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지만 결정권이 없는 사람은 한숨만 쉬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분이 한 번 오셔서 마을 아이들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자신있게 확답하지 못했다.
 
나는 코디네이터에게 “너무 애쓰지 말자.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애쓸 영역이 있고 아닌 게 있더라. 공기관 결정권자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 그러니 너무 애써서 지치지 않도록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직종사자가 꼭 필요하겠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 끓이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2.
오후에는 지역 모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병가를 내야 하는데요, 수업을 맡아주실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아휴. 애들 말도 들으니 진행도 안 될거고요. 애들 자습하고 시간 버리게 될까봐요. 제가 예산을 챙겨둔 게 있는데 그날 시간 되시면 특강 좀 해주세요.”
 
자유학기제 시작인데 첫 시간을 불가피하게 비우게 되었단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 ‘아이들 시간 버리게 될까봐.’ 라는 말에 마음이 걸렸다.
주제가 뭐고 교사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은다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수년 간 봐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의욕 없이 모여도 하나라도 해보자고 권했던 사람이고 혼자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새로운 걸 체험하게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생리상,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괜히 쓸데없이 일 벌인다고 상처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동아리를 몇 년째 이끌어왔고 어떻게든 아이들이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판을 펼쳐주는 이런 사람은, 예산이 10만원밖에 없다고 해도,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멀지도 않다.
 
3.
더러 이렇게 혼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합리적인 구조로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있는 집 애들은 부모들이 알아서 다 챙기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 기획 안해도 부모님 친구들만 만나도 더 많이 배우잖아요. 시야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줄 수 있으면 해줘야죠.”
 
이 사람들이 정말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만 하는 존재인가. 비싼 강사를 불러와서 행정실을 번거롭게 하고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사람인가?
시스템이 딱 덮고 있는 뚜껑이 너무 무겁다고 달그락 거리는 게 그렇게 꼴사나운가. 이 두 사람이 오늘은 어떤 저녁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가치를 학벌과 경력으로 재단하고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접촉도 하지 않는 게 편하게 사는 세상일수도 있다.
제도가 불편한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공공기관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두발규제 완화에 관하여

두발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이야기 하나를 더 해볼까 합니다.
 
시흥에 장곡중학교라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전에 학생자치회의 힘으로 복장과 두발에 대한 규제르 없앴습니다. 물론 다들 경험했다시피, 학생 자치회가 힘을 발휘하려면 (불합리하지만) 어른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 학교는 교사들의 지지가 아이들의 자치권을 획득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를 방문했던 건 2017년입니다.
이미 규제가 모두 풀려서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습니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전혀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학교에 갔던 이유는
지난 5월 빨간소금에서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장곡중학교 탄산수라는 지속가능발전연구동아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친구들의 연구주제는 “여중생의 화장”이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초반엔 약간 보수적인 의견이 있어 자기 친구들 중에 화장을 진하는 아이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 같다, 는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1년동안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거치면서 친구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여중생의 화장은 결코 “누군가에게 잘보이려고”가 아니라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화장품 값으로 용돈을 탕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엇나갔습니다. 화장품값이나 미용에 돈을 많이 쓰는 친구는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염색 파마 악세사리 착용이 모두 가능하고 교복도 치마 블라우스 겉옷 중에 한 가지만 입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교복이 편하다며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생활복과 교복을 번갈아가며 자주 입었습니다. 허리가 쏙 들어가거나 핏을 중요시 해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교복을 덜 입게 되었습니다.
 
복장 규제가 풀리고 1년이 지나자 초반에 화장을 해봤던 친구들도 점점 시들해졌고 입술 틴트 정도만 바른다거나 눈썹만 그린다거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결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대부분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특별히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고 재주가 있는 친구들은 진로를 미용패션쪽으로 잡아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하거나 유투브를 보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각반마다 거의 1명씩 있어서 3학년이 되어 졸업사진을 찍을 때 각 반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탄산수 친구들은 여중생의 화장에 대해 연구하며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고 화장품의 환경문제도 고민하게 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게 되어 여성환경연대에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화장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물론, 이 친구들은 상당히 우수한 역량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사가 믿어줬을 때 그 역량이 더 높게 발휘되었다는 걸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습니다.
 
처음 이 학교에 복장규제가 없어졌을 때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의 항의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느냐는 항의를 교사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습니다.
 
학교 앞에 지나가는 마을 주민이 아이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을 말하며 아이들은 무척 불쾌해했습니다.
 
장곡중학교 외에도
혁신 중학교 중에 복장규정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고 이를 완화한 학교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이 용돈을 탕진하면서 외모를 꾸미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1년 정도면 충분히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이 일어납니다.
 
한 교실 안에 슬리퍼와 트레이닝복차림으로 대충 다니는 친구와 귀걸이를 한 남학생이 함께 공부합니다. 풀메이크업을 한 여학생과 로션만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은 여학생도 친구로 잘 지냅니다.
 
아이들의 복장을 규제하려면 공중파 방송의 예능프로그램과 아이돌 산업의 성상품화를 먼저 규제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정숙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복은 아이들의 몸을 성상품화해왔습니다. 복장과 두발단속 해제라는 건 무엇을 말합니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여학교였는데 두발자유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내내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장이 머리 긴 여자를 좋아한대”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에게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만, 이 문장에는 교사가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있다는 말을 함의하고 있고 이에 대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 도농복합도시의 열악한 환경을 말하며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횡행하는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학생인권과 두발규제 해제가 탁상행정이라는 논지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안양의 1기 신도시에 살고 이 지역에서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여기는 취약계층이 사는 지역도 있고 한 반의 절반 이상이 동아시아 외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폭력적인 학교는 무기력한 학교와 동일한 이름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합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폭력적이 되고 시험이 끝나면 무기력해집니다.
가장 성적이 우수하고, 가장 대학진학율이 높으며, 주변에 학원이 가장 많은 학교일수록 폭력과 자해와 무기력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는 아이들이 밤새 피운 부탄가스가 나뒹굴었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소주병을 깨들고 싸우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중절수술을 하느라 학교를 못나오는 여학생이 있었고 문신을 새기다 실패해 칼로 상처를 잔뜩 낸 팔뚝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들은 모두 염색이나 파마를 하고 손톱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하고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들지 않고 학교에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교장의 주장에 따라 “자퇴는 어쩔 수 없어도 퇴학은 없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학생부실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두들겨맞아도,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고 중학교 졸업장을 건졌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필요했던 건 조금 더 친절한 어른들과 자기 말을 대신 어른들에게 전해 줄 조금 더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길로 나서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이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중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적어도, 스무살이 되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용서했으면 합니다. 울타리를 강하게 쳐서 행동반경을 줄일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집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양질의 기능인 뿐입니다.
 
어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어른은 단 한 사람이면 족한데 말입니다.
 
2018년 9월 30일

[자본의 풍경]누가 예산을 끌어올 것인가

나는 90년대 노태우정권때 지어진 신도시에 산다. 신도시의 목적은 서울과 타도시와의 연결이니까, 이 도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고속순환도로를 끼고 있고 고속도로와도 가깝다.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정확하게 나뉜 이 도시는 두 개의 구(區)로 나뉘어 있다. 구도심에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있고, 신도심에도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봤자 80년대쯤의 가옥들이다.

지난주부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을에 관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구에 속해있지만 구도심의 모습을 가진 동네다. 아이들과 첫 수업으로 마을답사를 시작했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하늘도 맑았다. 지도를 보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근 중학교를 돌고 학교 주변 동네로 내려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학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의 길은 험난했다. 인도가 없거나, 있는 인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해 위험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과 민들레, 명자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도시순환고속도로가 아이들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저 도로가 하늘높이 치솟은 이후 그 아래는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의 횡단보도를 지나 중학교에 도착했다. 축구하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이 깔린 자기네 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며 중학교 운동장이 좋다고 한참 떠들었다. 중학교 앞에 건물을 짓고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계속 앞뒤를 살폈다. 근처에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이라며 감탄했고 동행한 교사도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골목길을 살펴보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란히 병렬을 이뤘고 80년대에 지었던 전형적인 양옥주택들이 이제는 다세대주택이 되어 철제계단과 작은 현관등을 덧붙여 변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 이상한 아저씨가 많다며 아침 등굣길에 “한 번만 안아보자.”말을 거는 남자 얘기를 했다.

 

“그럴 때는 안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막 도망 오면 돼요!”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예쁜 얼굴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친 담벼락 아래 좁은 인도가 있고 그 건너편엔 인도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2차선 도로는 근처 대기업 연구소로 들어가는 차들이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를 이룰 만큼 가득하다고 담당교사가 전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 아이들을 학교 방향으로 인도하며 가만히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할 여건이 안되니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반대편에 인도를 설치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통학로를 개선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정리하고 공론화해서 시청 도로교통과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정책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순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용을 누가 가져올 것이냐에서 걸린다. 인근에 붙어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지자체에 내는 세금에 따라 행정과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원, 도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결국 누가 돈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공이 갈린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여 안전한 통학로로 바꾸자고 백날 결의한 들, 예산을 따올 수 있는 정치인과 행정력이 없으면 백 명의 의견도 그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시 예산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행정은 결국 예산이 결정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 일개 시민이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돈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본 없이는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잔디밭이 깔린 중학교와, 3층 집도 생각났다. 아, 모두가 돈이 필요한 일이다.

2016. 4. 13.

코코뉴스 [자본의풍경]에 연속 게재하는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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