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allmytown
이틀
ER
너는 나와 왜 다르냐
오래전에 봤던 영화, 엘리펀트맨. 한국에서는 “코끼리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중증다발신경섬유종. 이라는 병을 앓는 환자인데, 영화의 배경에서는 그저, 기형, 괴물로 치부되던 시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공개되는 주인공 코끼리 사나이의 얼굴은 거대한 신경섬유종으로 마치 코끼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재벌은 살찌고 국민은 자살한다.
그들에게 윤리적인 걸 강요할 수도 없고, 사회복지재단이 되라고 할 수도 없다.
작작 해 처먹으라는 거다.
꼼수도 부릴만큼 부려야지, 아주 영악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리지 않는 이상, 수가 너무 얕아 구린내가 풍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이유
서른이 넘도록 각자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완벽한 이방인이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는, 이 사람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하겠거니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외국인과의 결혼은 이 사람은 나와 완전히 다른 문화의 사람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깔고 시작하는 반면, 같은 국적과 같은 언어, 혹은 게다가 동향의 사람일 경우 나와 같으리라는 엄청난 착각을 대전제로 깔고 시작한다.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부부는,
큰 일로 절대 싸우지 않는다.
말하자면 큰 일이 벌어졌을 경우, 그 어떤 집단과도 동일하게 내부에서 엄청난 단결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위기 상태에 빠지거나, 집안의 어떤 불우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외부의 침략으로 간주하고 전투적으로 뭉치게 되어 있다.
이는 아주 소규모집단인 가족에서도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집단의 규칙이다.
아주 작은 일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와 같으리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 이 역시 법륜스님이 하신 말씀.
쓰레기통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쓰레기통을 화장실에 두지 않는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나의 모친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벗어난 이후 절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지 않았다.
불결하다는 게 그 주된 이유였으며, 수세식 화장실에서는 모든 휴지가 다 녹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녹지 않는 특별한 재질의 물품을 쓰지 않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나는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고 사는 것을 불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독립을 해서 혼자 살 때도 절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지 않았다. 쓰레기통은 외려 화장실의 바깥 좀 가까운 곳에 두고 그 곳에 가지고 나와 물건을 버렸다. 예를 들어 생리대나, 수채구멍에 쌓인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해당된다. 이것은 관습이 된다. 그리고 엄마의 주장은 대부분 자식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고착된다.
반면,
남편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고 사는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하여 독립을 하고서도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꼭 두었다.
그 이유는 수세식 변기라 할지라도 변기의 크기나 형태에 따라 간혹 변기가 막히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뒷처리에 사용된 휴지는 반드시 따로 분리를 해서 버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장실에서는 절대로 변에 관련된 종이만 발생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나, 어떠한 물품을 뜯은 포장들이나 물기가 묻은 것들을 다른 쓰레기통에 버릴 때 오히려 벌레가 생기거나 집안 전체가 불결해질 수 있다. 그리하여 남편의 본가는 여전히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있고 가사일에 늘 부지런하신 시어머니께서 수시로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닦고 말리는 일을 해오셨다.
결혼을 하고 난 뒤 나는 화장실에 휴지통을 두지 않았다.
내가 그런 문화에서 나고 자랐고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쓰레기통이 없는 화장실에서 당황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과연 나의 문화가 합당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가다.
기실, 주부의 자리에 있던 엄마나, 그 자리를 이어받은 나도, 결정적으로, 화장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싶지 않다는 게 합리적 논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 가족이라도, 내 새끼라도 쉽게 말해 “똥닦은 휴지”를 내 손으로 치우는 일이 싫다는 것이다.
희생이라고 생각하거나 쓸데없는 집안일을 더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모두 “하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합리화의 근거들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있거나 없거나 당황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매우 당황하고 불편해한다.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남편은 있어야 한다면, 둘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엔 있는 게 맞다.
여기서 내가 나의 진정한 마음의 욕구 “똥 닦은 휴지를 내가 치우고 그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내가 닦고 씻고 말려야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관철했다면-
우리 부부은 매우 추접스럽고 민망한 소재인
“화장실에서 똥닦은 휴지를 왜 수세식 변기에 버리지 않고 별도의 쓰레기통에 따로 보관하느냐” 에 대해서 24시간 이상을 싸웠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이유는 이러하다.
대부분,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 마음의 근간엔,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상반되는 작업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아주 견고하게 굳어버린 자아의 욕구가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뿌리를 걷어내는 작업은 평생에 걸쳐 지난하게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결혼 이후 내가 곧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비치하는 것으로 별 갈등없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에도 각종 매우 사사로운 것들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는 것이 동거인들 사이의 문제다)
왜 안되는가,
왜 용납하고 싶지 않은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나의 욕구와 상관없이 나의 양심이나 신념에 기반하는 것들도 있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철저히 나의 욕구에 기초하는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분별해 내는 과정은 쉽지 않으나,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들이 된다.
2012. 1. 19.
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기억의 지배
1.
어제 트윗에 쓴 글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4학년때인가 5학년때인가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데 폭력 이런 건 아니고 집단 따돌림. 갑자기 성적이 오른 걸 애들이 내 요점정리 쪽지를 보고 컨닝을 했다며 근 6개월간 나를 괴롭혔다. 결국은 애들의 강요로 담임에게 거짓자백도 했지.
봄에 봤던 시험을 가지고 가을이 깊어갈 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내 등에 욕쓴 쪽지 붙이고 깔깔대고 뭐 그랬다. 나중엔 애들이 하도 몰아세우니까 나도 내가 컨닝을 했다고 착각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아직도 동갑내기 여자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5학년때가 맞는 거 같다.
4학년때는 담임과 관계가 정말 좋지 않았고, 그 담임선생은, 촌지를 요구하는 김옥자라는 선생이었는데 긴 파마머리에 잠자리 안경을 썼었다.
당시의 일을 떠올렸을 때 내가 허위 자백을 한 것이 김옥자 선생이 아니라 중간에 병가로 자리를 비웠다 다시 복귀한 허재영 선생님이었으니 5학년때가 맞을 것이다.
아무튼 사건은 위와 같이 벌어졌고 몇달이 지나 담임에게 허위자백을 했고 교실 밖에는 아이들이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 주도를 했던 아이가 오윤숙이라는 아이였다. 머리가 유난히 노랗고 매우 날카롭게 생긴, 그런 인상의 아이였다.
대한민국 새판짜기
진보나 보수가 없는 이 나라에서 그러니까 지금 보수들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가카와 기득권을 비판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보진영에 올라탄 꼴이 된다.
여론이나 파벌을 나누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이지만 굳이 규정하자면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이 나라는 군림하고자 하는 놈들과 군림당하지 않으려는 세력으로 나뉘는 것인데. 그나마 웃긴 건 이게 1%와 99%의 대도 아닌 것이 이 1%축에도 못 끼고 자기가 누구 때문에 삥을 뜯기고 사는지 잘 모르면서 마치 자기가 1% 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호위무사라도 된 듯 까부는 형국인데 대표적인 자가 강재천 되겠다.
사실 학문이라는 게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공산주의는 현실적용하는 거에 모두 실패했는데 그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유토피아적 발상 때문 아닌가. 그러다 보니 공부 좀 했다 하는 것들은 니들이 아는 게 이게 정답이 아닌 세상인데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줄테니 잘 들어봐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되니.. 이건 자본으로 군림하려는 새끼들을 깐다는 것들이 지식으로 또 군림을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
그러다 보니 이건 마치 피라미드처럼 군림하려는 자본가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앉아있고 그 밑에서 개뿔 가진 게 지식밖에 없는 지식분자들이 2차 군림을 꿈꾸면서 이들에 의해 선동된 자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꼬라지밖에 안되는 거다.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지식분자들을 죄다 노동으로 교화시켜야 한다며 하방운동을 시켜버린 공산당과 모택동의 심정이 바로 이런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분쟁과 토론이 나쁘니까 서로 연대하고 까지 말고 싸우지 말자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이겠다.
이 엄청난 역동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건 이 나라의 빈곤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니 설령 이게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해도 조금 견디고 참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영화 도가니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멍이 들고 부어오르고 그 멍이 빠지고 깁스를 하고 뼈가 다시 붙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우리의 이 나라도 그 모두 과정중에 서 있는 아주 올바른 현상 아닐까.
건국 60년중에 민주주의 한 게 몇 년인가.
친일과 독재를 청산하지도 못한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자가 대권주자로 나서는 여기는 아직도 군림하려는 자에게 “여지를 주는” 답답하리만큼 선량한 국민들이 있는 나라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있다는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기운은 잘 하면 뭔가 아주 혁신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다.
2012. 1. 4.
휴대폰에서 어썸노트에 끍적거린 건게 너무 길어져서 뭐 블로그에 올려도 돠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그저 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고3이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졸업을 하지 못해서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과 교복을 입고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갑자기 주가를 올리게 된 바로 그 지역) 그 학교로 돌아간다. 담임선생이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나는 때로 그 아이들의 담임보다 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
갑자기 스무살 무렵의 여러가지 공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잠이 들었다.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저 나는 남들이 사는 이십대을 지내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출근을 해야했고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구해야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구치소에 면회를 가야 했다.
그런데 어제 꿈에는 난데없이 내가 살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고시원이 나타났다. 빨래를 들고 세탁실 앞에 순서를 시다리고 있었다.
고시원의 낡아빠진, 혹은 낡아빠질 수밖에 없는 세탁기 앞에서 우리는 빨래를 줄을 세워 다른 사람의 빨래가 끝나길 기다렸고 축축한 빨래들을 창문이 없는 방에 널곤 했다.
냄새나는 냉장고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스레인지가 있는 휴게실도 등장했다.
잠에서 깬 나는 내 마음 어디가 아픈가를 하루종일 생각했다.
시간이 가서 그렇다.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은 자라면 떠난다.
내가 부모를 떠난 것처럼.
큰 아이는 성인식을 할 것이고 더 이상 인생이 버겹지 않은 날 술도 마실 것이다. 작은 놈은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조숙한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남편의 귀밑머리는 더 이상 하얗게 될 자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싱그럽던 스물 셋의 후배들이 서른을 넘겼다. 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시간은 지난하게 흘러간다.
삶이 지리멸렬하다고 불평할 시간따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소원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흙을 밟은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한 밤에 궁색해지는 신체를 탓하면서도 깨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겪어야 할 일이나, 먹어야 할 음식이 정해져 있다는 글을 읽었다.
정말 나는 너무 오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이제는 앉아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
2012.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