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 버려지는 것

전복을 먹어봐야 전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소고기를 먹는다고 내가 도축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먹는 먹거리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먹는 콩나물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내가 먹는 시금치가 어디서 왔는지, 비가 잦아서 작년 시금치 농사가 나빴다는데, 수퍼와 마트엔 어떻게 줄줄이 시금치가 나와 있는지.
규격을 맞추기 위해 비닐봉투 안에서 자라는 애호박을 보며 간혹 참담함을 느낀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추운 날 잿빛 교복을 어쩔 수 없이 입고 베개만한 쿠션을 끌어안고 강당으로 줄줄이 걸어가던, 거세된 젊음이 자꾸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세일하는 전복을 샀다가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전복은 나에게 오기 전에 푸른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살았겠지. 어린 아기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빨판으로 뭔가를 먹으며 몸을 키웠을테고 내가 잘라내 버린 빨간 입으로 바다의
파도를 마셨을것이다.
전복의 사이사이에 낀 검정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며 그간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과 죄책감을 함께 씻는다.. 라고 적어도 괜찮겠다.

무언가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등어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 있고, 갈치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엔 그 떠오르는 사람들이 헤어진 옛 애인이거나,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슬픈 사연의 어떤 여인..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기억의 연상의 대상들은 세월이 지나고 내 삶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른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제는 갈치를 보면 생각나던, 파출부 다니며 일수써서 까르띠에 가방을 사던 너무나 무거운 삶을 살던 정아언니가 아니고, 갈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내 아들이다.
샤브샤브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은 육수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시동생이고, 고등어를 더 이상 못 먹게 된 남편이 생각나고, 계란을 보면 계란하나로 대여섯가지의 요리를 만드는 열여덟살 딸아이다.

그리고 이제 전복은 나에게 시어머니를 부른다. 시어머니의 부엌 씽크대엔 전복껍데기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엔 날긋한 초록색수세미가 있다.
“너무 고와서 버리기가 아깝잖니”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전복죽을 끓인다.
그리고 나도 전복껍데기에 붙은, 내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살점들을 뜯어낸다.

묻는다.
무엇이 되겠느냐.
너희들의 살점은 병든 육신에 큰 힘이 되길 기원하니, 너희들의 고운 껍데기는 누군가에게 칠보가 되어, 장롱이 되기도 하고, 미술품이 되기도 하고, 화장대가 되기도 하고, 귀중한 것들이 된다고.

나는 칠보를 만들 줄 모르니, 수세미라도 올려놓고 너희를 기억하려고.
그리고 그 고운 빛 볼 때마다..
지나간 젊은 어느 날, 담양의 대나무숲에서 바람 맞고 앉았을 내 딸래미만한 열여덟의 어느 처녀를 생각하며.
전복껍데기를 보며, 너무 예뻐서 버리기가 아깝다는 시들지 않은 젊음을 꼭 기억하리.

2012. 4. 24.

봄 밤

밤벚꽃 아래 남자고등학생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덩치에 안 어울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고 있다. 공기는 차가운데 아이들의 목소리는 뜨겁다. 별 것 아닌 농담에 깔깔대는 앳된 사내의 목소리에 사춘기와 변성기를 지낸 여물지 않는 수컷의 성성함이 낯설다.
그저 아이들은 웃고 있을 뿐인데, 그 소리들을 제어해 본 적 없는 치기에 아파트 단지가 우렁우렁하다.
줄여입은 교복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작은 아파트 단지를 겅중겅중 달려가는 아이들의 기다란 종아리 뒤에 숨어버리는 이 공간이 이다지도 좁은 줄 처음 알았다.
나의 개는 끊임없이 생명이 움트는 땅의 냄새를 맡고, 하루종일 메말라 있던 나의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순간 저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 스스로 목소리를 제어할 줄 아는 그런 날이 오면, 오늘은 단 몇 걸음에 달려가던 이 아파트단지가 갑자기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봄밤은 미친년 옷고름 씹어먹듯 흥야흥야 간다.

그럴 수도 있지?

1.

며칠전에, 동네 엄마에게 제안을 받았다.

근처에 어린이 전용 수영장이 생겼는데 수영복이랑 수건만 챙겨서 보내면 씻기고 말리고 차에 태워서 보내준단다.
4명 그룹짜며 보내면 할인해 준단다. 아들도 같이 보내지 않겠니. 하고. 그 엄마 아들은 초딩 2학년.
얼만데요? 물어보니 할인해서 주 2회 강습에 3개월 선납하면 52만원이랜다.

딱 짤라 거절하기 곤란했다.
어린이 수영에 대한 나의 생각은
_ 절대 혼자 머리감고 옷 갈아입고 수영장에서 자빠지지 않을 나이에 보낸다. 이기 때문에.

오후에 다시 전화가 왔길래 그렇게까지 시킬 필요 없는 거 같은데 아무튼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6개월내에 수영마스터”를 강조하신다.
..

수영은.. 재밌자고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이제 배우는데;;
내 대답은 “수영선수 시킬 것도 아닌데..” 였다.
아무튼 고맙다고는 했다.

2.

그 날 오후에 만난 동네 또 다른 엄마.
낮에 수영 제안 받은 얘기 했더니 아 거기까지 연락이 갔구나 한다.
요즘 우리 아들 뭐 하냐고 물어봐서 유치원에서 방과후를 매일 하니까 애가 좀 피곤한 거 같아서
(내가 시킨 거 아님!!! 지가 한다고 그랬음!!!) 태권도만 보내고
일 있어서 애 좀 맡겨야 할 때는 블록놀이방 보내는데 본인도 좋아하고 수업 하나 하겠다고 하도 졸라서 주 1회만 보내고..
태권도에서 주말 수업 하는데 그것도 보내달라고 해서 토요일 오전에 보낸다. 했다.

미술학원 다니지 않았어요? 하길래
인제 흥미를 잃은 거 같아서 안 보내요, 하면서 “미대 가야 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했더니
그 엄마왈 “그러게.. 체대를 갈 것도, 미대를 갈 것도 아닌데..” 라고 한다.

이 엄마는 최근 남편이, “내가 지금 행복한가” 하는 고민에 빠져 난감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도 교육때문에 자꾸 누군가에게 떠밀리는 느낌이라 괴롭다고 한다.
뒤쳐지지 말라고 시키는 건데 이게 뭔가 싶다는 거다.

나는 얼마전에 초등학교 4학년 수학문제를 봤는데 도저히 공부 하라 소리 할 수 없게 생겼던 얘기를 하며, 이게 변별력을 위해 만든 문제라면,
내 새끼가 수학천재면 풀 것이고, 아니면 마는거지..
굳이 공부 잘해 대학 잘 가 직장 잘 들어가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7-8년 근속하고 나이 마흔에 인생 이모작 해야되는거면, 난 그것보단 장바닥 전투력과 사회성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라고 얘기 했다.

그러게요..라며 그 엄마는 멍한표정을 지었다.
애가 뒤쳐지지 말아야 하니까. 라는 그 엄마에게
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물으니, 아니 그건 아닌데..

내 기준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는 글을 못 읽거나 계산을 못하는 경우, 혹은 본인이 성적이 너무 떨어지거나 학교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말한다.

글쎄 나는 예체능이나 애가 사춘기를 넘길 수 있게 꽂힐만한 뭔가는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는. 글쎄.. 억지로 시키면 올라가서 뛰어내리든가 가출하든가 둘 중 하나 아닐까 싶은데.. 정도로 얘기하고.

그 엄마가 뭔가 더 얘기하고 싶었으나, 저녁이 늦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3.

이웃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학교 – 보습학원- 태권도를 마치고 요일별로,
학습지 선생님, 미술학원,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가 있다.
10시 정도에 받아쓰기 공부를 하다가 자는 모양인데,
이 친구는, 주로.. 한 페이지 푸는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집중력이 아주 떨어지는 아이다. 그렇다고 ADHD는 아니고, 그냥 재미가 없어서 하기가 싫은 아이.
그 엄마는 애 옆에 앉아 있으면 자꾸 소리 지르게 되고 그래서 자리를 뜨면 애는 딴 짓하고 손톱 쳐다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애는 또 숙제를 늦게 하고 그래서 엄마가 또 화를 내고..
반복이라고 한탄한다.

4.

오늘 같은 태권도를 다니는 형아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사범님한테 야단을 맞았다며 울고 들어왔는데 애는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하지 못하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다며 우리 아들한테 좀 물어봐 달란다.

아들이 설명해주는 상황은,
어떤 꼬맹이가 그 형한테 자꾸 까불고 놀리고 그래서 형이 참다가 화가 나서 “나쁜 말”을 했단다. 무슨 나쁜 말? 이냐고 물으니 입에 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그 엄마는, 아들이 울며 들어와 놀랐고,
그 나이때는 다 그런 거 아니냐.
우리 애가 먼저 잘못한 거 아닌데 왜 야단을 맞아야 하나 이런 생각인 거 같았다.

좀 친한 사이라 나는

“언니 남자애들은 현장에서 바로 잡아 주지 않으면 뭘 잘못했는지 전혀 깨우치질 못해요. 기억을 못하니까. 나중엔 별로 감도 안 오나보더라고. 나중에 얼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게 통하는 건 여자애들 스타일이지.
그리고 태권도는 무조건 연장자가 참고, 욕을 하면 욕한 애가 무조건 더 혼나는 거고, 꼬맹이는 야단을 쳐도 잘 모르니까, 형들이 양보하고 참고 가르쳐라 이게 메뉴얼인 거 같더라구요.
큰 애들이 화를 못 참아서 손 한 방만 나가도 작은 애들은 나가 떨어지니까 일이 더 커지잖아요. 그래서 그런거겠지.”라고 얘기했더니
이 엄마는..

많이.

놀랐나보다.

그래 그래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정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5.

엄마들은 아이들이 야단맞고 들어오면 싫은걸까. 모두?
관심이 있으니까 교사로서 야단도 치고 그러는 거 아닐까?

라는 질문을 트윗에 올리니.
트위터에 어떤 분이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 별로 없다며.
자기 자식을 야단칠 권리는 부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물론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고 쉬운 일반화를 시킬 수 없으므로)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야단을 쳤을 것이고,
야단맞을 짓을 했을 것이고,
선생님은 집단을 규율하는데 있어서 어떤 규칙이 있을 것이고,
설령 불공평한 일이 있었거나, 다 똑같이 잘못했는데 혼자만 걸려서 억울하다 하더라도 그 억울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며,
선생님이 정말 너에게 관심이 없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교육업자면 절대 너를 야단치지 않을 것인데. 라는 생각은.
옛날 부모들의 생각이라는 의견도 들었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이상한 사람인건지.

그래서 큰 아이 자격증 학원에서 애 야단쳤다고 죄송하다는 식으로 그렇게 누누히 강조했나.

아니, 근데 보습학원 같은 데서는 막 엎드려뻗쳐도 시키고 매도 때리고 하던데
이건 뭐지.

공부를 안하는 건 야단맞아도 되지만, 다른 사안은 “그럴 수도 있지. 공부하느라 힘든데” 하고 넘어가는 건가?

다 미친건가?

내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나?

그럴 수도 있지, 싸울 수도 있지, 욕할 수도 있지, 때릴 수도 있지, 저 아이가 열받게 했대잖아요. 이게 바로 학교폭력의 가해자의 시발점인데.

6.

그럴 수도 있지, 사대강 팔 수도 있지. 토건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해군기지 건설할 수도 있지. 국가 방위력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성폭행 할 수도 있지. 꼴렸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거야? 다??

2012. 4. 12.

전교조가 생각났다.

89년도였다.

그 때 매우 이상한 계기로 학교 (당시 중딩)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계획하던 백일장및 사생대회 날짜를 자꾸 학교측에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연기하는 건 맞는데 다른 때 같으면 그냥 갈 정도의 비였는데 두 세번정도 연기가 되니 불만이 생긴 것.

근데 이런 일로 소요가 일어나기엔 너무 사소하지 않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3학년들이 갑자기 학교를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3학년들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교사들이 뛰쳐나와 아이들을 말렸지만 1500명의 학생을 교사 몇 명이 제지하기엔 어려웠다.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회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로 인해 학교에서 누군가 파면당하고 해직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3학년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았던 모양이고 교문출근투쟁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어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고 나는 그 선생님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백일장 문제로 아이들이 튀쳐나갈 때 어떤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되었던 장모 선생님이 나중에 TV에 전교조 임원으로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학교를 다녔고 학생회 임원을 지속했다.

당시 89년도 나는 그 학교의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부회장 당선시 교실 환경미화 학습신문을 만들 때 “왜 학생회 임원은 교사회식을 준비해야 하나” 라는 사설을 실어 6개월동안 교사들과 심한 충돌을 빚었다. 결국 담임교사의 지시로 그 학급신문은 교실에서 떼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격하게 반항을 하기도 했다. 일부 교사는 대놓고 수업시간 내내 나를 째려보는 짓거리까지 했는데, 고의적인 왕따를 유발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역력했고 이유없는 체벌과 차별대우도 감내해야 했다.

당시 학교내에서 벌어지던 스승의 날 선물 문제를 없애고자 이럴바에 각 학생들의 푼돈을 모아 공동으로 선물을 드리고 개별 선물을 없애버리자는 안을 내어 이를 학생회에서 통과시켰고, 이 부분을 추진하다가 촌지와 다름없다며 일부 선생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무산되었다.
내가 그 때 추진했던 것은 전교생 500원씩 내기였다.

3학년이 되어 학생회장이 되자마자, 작년 스승의 날 선물문제로 나에게 너는 선생을 뭘로 보냐고 언성을 높였던 가정선생이 당선인사를 하러 교무실을 방문하자 마자
“어머 이하나 회식은 언제 해?” 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 교사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사각형의 턱으로 남았다.
나는 교사회식을 추진하지 않았고, 모친 역시 이에 동의해 자동으로 맡게 되는 육성회장(당시 육성회장은 학생회장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맡게 되어 있었음)이 되어 육성회 자리에서 육성회장이라는 이유로 60만원을 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고 1/n 해서 각자 5만원씩 더 내면 되겠다. 라고 발언했다.

3학년 학생회장을 지내는 동안 남자아이들이 여학생이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지나가는 나에게 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리기도 했고 좀 짖궃고 유치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그 해에 각 학교마다 교복을 입는 게 유행이 되기 시작해 개방적이던 당시 백.. 모모 교장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간의 상의를 거쳐 교복을 디자인을 선택했고 (근데 지금보니 안 예쁘더라. 후배들 미안), 임원 간선제였던 학생회장 선출안을 수정해 전교생 직선제로 돌리는 데 공을 들였다.

중딩인데..
참 거국적인 일 했다. ㅎㅎㅎ

아무튼 그 이후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좀 조용히 지내고 서클활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학교에도 파란많은 전교조 역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89-90년도에 수많은 교사들이 해직되면서 나의 여고에도 해직과 파면의 바람이 불었는데 이에 대해 학교의 학생들이 항거를 표시하는 의미의 행동을 했다는 얘기 몇가지였다.
교복자율화로 사복을 입던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등교했고,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복도에 내놓고 단식투쟁을 했단다.
당시 그 학교에선 반장/부반장을 교사 직권으로 임명하는 제도였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반장/부반장을 무효화시키고 각 반에서 두 명씩 임원을 투표를 통해 재신임해 30인회를 결성(당시 15반) 교장실과 이사장실에 항의방문과 투서를 전달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여,..
나의 자랑스러운 그 선배들의 모교는,
그 엄청난 대지에 여고/여상/여중이 설립된 그 땅에서.. 여고에서 매점까지 왕복 빠른걸음으로 15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주파하든 말든 학교에서 14시간을 보내는 여고생들에게 절대 매점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시 돌던 루머로는, 이사장이, 여고에서 전교조가 가장 먼저 발생했으니 매점따위의 편의시설을 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음…

쓰다가 보니 고등학교의 이야기는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장황하게 썼던 지라.
네이버 블로그 싹 다 막아뒀는데.
다시 열어보겠다.

그리고 링크나 걸어야지..

엊그제, 관악을 이정희 후보의 문자소동으로
여러가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운동권에 입성한 적 없는 내가 귀동냥으로 들은 여러가지 정보들이 뒤죽박죽하다가 이제 겨우 정리가 되어가는데, 그저 생각나는 건, 그 때의 분위기다.

고등학교 때 갔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의 전교조 집회.
전교조 우리의 희망 – 이라고 불렀던 노래.

그 때는, 사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있으면,
학교에서 따귀를 맞거나, 육격포탄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학생회 임원이 되도 빚내서 회식시키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반장이라고 도시락 두 세개 싸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촌지를 내지 못해 얻어맞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조건 외우는 주입식 교육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학생인권조례 당연히 필요한 거 이제서야 생겼다.
근데, 많이 변했다.

당시의 사람들도 권력을 알았고, 진영을 떠나 모두 늙어간다.
세월은 가고 고인 물을 썩고, 욕심들을 늘어가고 곪은 상처는 터진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 2012년이 가고 있고, 나는 그냥 그 옛날의 그 공기가 좀 그리웠을 뿐이다.

http://tankhana.blog.me/120120468921

 – 오래전에 썼던 폭력학교에 대한 포스팅 6개나 됨 ㅋ

2012. 3. 21.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왜 누구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누구는 진보주의자가 되는가? 베블런의 이론에 따르면 생활환경의 변화에 강하게 노출되는 사람이 먼저 새로운 사유습성을 받아들인다.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된다. (중략) 그런데 생활환경의 변화가 몰고 온 충격이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어떤 환경의 변화를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한 사람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신속하게 받아들인다.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의 여집합(餘集合)이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보수주의가 기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히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중략)
베블런은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수적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중략)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서 주로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이 형성되고 표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제도와 사유습성에 노출된 기간이 짧으며 지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하다. 기존의 사유습성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하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유 습성은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지니며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부족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필연이다.

진보주의에 매혹을 느꼈던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운명이다.

(중략)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보수주의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향이다.

보수주의는 현존하는 지배적 사유습성을 지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을 배척하는 인간의 본능에 부합한다. 쉽게 단결하며 잘 무너지지 않는다. 무녀져도 단시간에 수월하게 복원된다. 반면 진보주의는 새로운 사유습성을 창조하여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운동이다.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간다. 그래서 쉽게 단결하지 못하며 작은 오류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진보는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열정과 신념이 무너지면 바람에 날리고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된다.

–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 진보정치란 무엇인가에 실린 글 中 발췌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조금.

1.

민주주의의 원칙이 다수결이라고 한다면, 다수는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 명제를 전복시켜야 지배가 용이하다. 대중은 우매하며, 함부로 휩쓸린다는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2.

대중의 무지함과 잔혹함을 역설하기 위해선 소수지배계층이 이 의견과 여러 사례들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당신들이 의견을 모아봤자 모두 쓸데없다고. 그리하여 사회적 잔혹뉴스가 유통되면 그들에게 좋다. 신문의 사회면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이 부각될 수록 대중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스스로 차별화 하여 고립된다. 대중의 고립과 상호간의 불신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3.

(1)대중이 우매한 권력자를 선택하거나 잘못된 주권행사 (투표/선거)를 하는 경우는 숱하게 많다. 이 상황의 원인중 하나로는 권력층에게 독점된 정보의 폐쇄성에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은폐, 왜곡, 즉 거짓말이 정의(定意)로, 명제로 유통되고 점령하는 것이다.

4.

국가권력의 지도자가 올바른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기 위해선 지도자를 앙망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이 확고해야 한다. 이 경우 (2)지도자가 절대 善을 추진할 수 없음도 감안해야 한다. 훌륭하고 능력있고 선량한 지도자가 그러한 정책만을 펼친다는 것은 환상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그 어떤 지도자도 독단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음을 말한다.

5.

그리하여 법(헌법)과 중재, 감시기관이 모든 권력을 철저히 나눠갖고 이 시스템이 그 어떤 폭력적 정권이나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체계가 되는 법을 누가 정하느냐와 감시기관이 특정계층에 의해 장악당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1), (2)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에 나온 문장의 차용입니다.
이건 책을 읽으며 한 생각들이고, 앞으로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또 정리해보겠습니다.

2012. 3. 10.

키티를 잡아먹은 호랑이

얼마전에 문득 이런 키티 시리즈가 떠올랐다.
키티가 호랑이옷나 다른 동물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인데,
누군가는 이걸보고 호랑이가 키티를 잡아먹었다.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키티 안에 있던 호랑이가 스물스물 나와서 껍질을 뒤집고
키티를 감싸안은 것은 아닌지.

한 사람의 분노와
한 사람의 슬픔과
한 사람의 우울은
이렇게 속에 껍질을 뒤집고 숨어 있다가
스르르 입을 통해 나와서 그 존재를 모두 감싸 안아 버리는 형국.

그래서 그 존재가, 분노와 슬픔이나 우울에 감싸안겨 버리는 형국.
결국 옷을 벗을 수 있는 건 키티 자신 뿐이다.

2012. 3. 2.

강권하고 싶은 책 – 백년만의 북 리뷰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 교양인 펴냄 / 13,000원

영어 원제는 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학자인데, 미국에선 violence와 preventing violence를 집필하여 출간한 바 있는 정신의학자이다. 

 굳이 이 책들의 표지까지 갖다 붙인 것은 듣보잡이라고 공격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소개 : 1966년부터 2000년까지 34년간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뉴욕대 정신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력 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폭력 예방책을 연구해 온 폭력 문제의 권위자이다. 
하버드대 법정신의학 연구소 책임자로서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매사추세츠 주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폭력 예방을 위한 사회심리학적 프로젝트를 실시해 교도소 안의 살인율과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1년 하버드 대학에서 ‘폭력의 뿌리’라는 주제로 강의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해 <폭력: 국가 전염병에 관한 성찰>로 펴냈다. 이 책은 폭력의 심리적, 사회적 원인을 분석한 문제작으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폭력 연구에서 교과서적 저작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2000년에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으로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를 총괄했으며, 2005년에는 국제연합(UN) 총회에서 발표된 아동 폭력에 관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 알라딘 출처 

이 책은 폭력치사 (자살과 살인)와 각 정당의 집권기에 이상한 수치 변화가 있는 것을 관찰한 정신의학자의 보고서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실과 수치를 토대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집중한다. 


간단하게 말해, 제임스 길리건이 표시한 수치의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공화당이 집권하는 시기, 폭력치사 수치는 상승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시기, 폭력치사 수치는 하강한다. 

이러한 공통된 통계가 나오는 이유는 두 정당의 정책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인을 보고 투표하는 경우가 있으나 명백하게 정치인은 정당에 속해 있으며, 이 두 정당의 정책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폭력성을 증대시키기고 감소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길리건이 대전제로 깔고 가는 것은 살인과 자살은 같은 종류의 폭력행위라는 것이다. 
사실 살인이라는 대범위안에 나는 타살과 자살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공격성이 내면으로 향하는 자는 자살을 하는 것이고, 외부로 나가는 사람은 타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신의학자는 아니자만)
폭력성과 공격성을 띈 심리상태에서 타해(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있고 자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것은 폭력과 공격성의 분출 방향이 다를 뿐이지 그 기저는 같다고 생각하는 바이므로, 나는 제임스 길리건의 대전제에 동의한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이러한 여러가지 통계수치들을 이야기하고 책의 중반부에서 그 차이점이 벌어지는 이유를 말한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과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의 차이점은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로 정리한다. 언뜻 보면 이 두가지 심리는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심리상태이다. 


수치심의 윤리는 수치와 굴욕이, 다시 말해서 불명예와 치욕이 가장 큰 악덕이고 수치의 반대, 곧 자부심과 명예(존경)가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도덕 체계다. 죄의식의 윤리는 죄가 가장 큰 악덕이고 죄의 반대, 곧 순결이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자부심 (교만)이다.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누르고 겸손을 품는 길의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하고, 반대로 수치심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누그러뜨리는 길의 하나로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고 수치심의 윤리에 젖은 사람은 강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132-133쪽) 


그러니, 이러한 성향이 정당 지지에 대해 확연한 차이점을 가져오는데다가 극 정당을 구성하는 인력들의 기본 정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은 경쟁을 부추키고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며,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 시켜 상류층을 역으로 보호하는 정책 “이중정복(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로마의 대표적 정책)”을 사용한다. 


정치경제학자 더글러스 힙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민주당 정부는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팽창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높은 물가 상승률을 무릅쓸 가능성이 공화당 정부보다 높다.(중략) 1951년 이후 일어난 여섯번의 불황 중에서 다섯 번이 .. 공화당 정부때 일어났다. 이 경기 위축은 하나 같이 .. 인플레이션과 싸우느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기업가집단이 상당히 폭력적이고 경쟁위주에 익숙해, 진보집단과의 윤리 도덕적 결정에 대해 상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보수집단은 기업가 집단과 유사함을 예로 든다. 다시 말해 이러한 보수집단은 폭력치사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반면 진보집단은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공론화 시키는 경향이 크다는 주장이다. 

공화당 집권기에 폭력치사 사건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실업률과 빈부격차의 차이에 크게 주목하는데, 보수집단을 지지하는 지도를 그려봤을 때 옛남부(Old South)와 거친 서부(wild West)로 집중된다. 이것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이라는 역사적 유산과 상징과 결부된 주들이 여기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보수집단 – 권위주의적 인격 – 수치심에 젖은 사람 – 경계선 성격장애, 나르시시즘, 편집증, 반사회적, 우파권위주의의 인격구조 – 노예제도가 있던 11개 주(옛남부), 켄터키, 오클라호마 같은 2개 접경주, 서부 산악 주와 사막 주, 대부분의 중서부 대평원 

진보집단 – 평등주의적 인격 – 죄의식에 젖은 사람 – 우울증, 강박관념, 도덕적 마조히즘 유형 – 두 해안지역, 태평양 연안주와 북대서양 연안 주, 뉴잉글랜드와 위스콘신, 미네소타 (스칸디나비아 유산이 강한 북중부), 일리노이, 미시건 등. 

공화당은 경제에 강하고, 민주당은 경제에 약하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실업률과 실업지속도가 단 한 번의 예외없이 모든 공화당 정부때 올라갔고 모든 민주당 행정부 때 내려갔다는 것을 말한다. 
불황의 경우, 민주당의 불황은 86개월, 공화당은 246개월의 수치가 나타났으며 공화당은 정권을 잡은 동안 민주당보다 매년 2.3배나 더 긴 불황을 가져왔다는 통계수치를 이용한다. 
“공화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물려받은 단 한 번의 불황은 111년동안 1921년 단 한 번 일어났는데 겨우 4개월만에 끝난 반면, 민주당이 네 명의 공화당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4번의 불황은 끝나는 데 모두 27개월이 걸렸다. “

말하자면 저자가 인용한 내용 그대로 “공화당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소득세, 높은 자본 이득세, 높은 법인세, 높은 사망(상속)세와 과도한 규제로 경제 성장을 질식시키는 경쟁자 민주당과는 달리 자기네 정당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정당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은 모두 개 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차이가 실업과 불황을 가져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개인의 수치심과 죄책감을 증폭시켜 자살과 살인같은 폭력치사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저자는 상당한 진보주의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이 사람은 정신의학자로서 폐쇄된 교도소에 대한 긴 연구기간, 그리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니 인간은 폭력에 노출될 수록 폭력적이 되고 (비폭력적인 범죄자를 가장 폭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교도소 수감이다. 라는 주장) 그 폭력은 인간의 취약한 심리,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연구가 민주당이나 미국내 진보세력들에게 상당히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은 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라고 생각해봤으나, 
기껏해서 50년 남짓 된 공화제 정부(민주주의라고 보긴 어렵다) 체제하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은 말하자면 김영삼 정부때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고작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어떤 특정한 통계를 갖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 중에 과연 진보정당이라고 할 것이, 김대중, 노무현..정부도 과연 진보정당집권기였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박정희 시대에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이 나라가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일일이 수치와 통계와 그 후의 벌어진 후폭풍 (지금까지도 이어지는)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2-3일 가둬놓고 가르쳐도 모자랄 판이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이제서야 갑론을박 하고 있는 진보타령에 대해서도, 사실 진보.. 라기 보다는 중도진보..라든가 대부분이 보수우파인 나라에서, 과연 좌파..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이건 물론 상대적인 기준을 갖다 대면, 우리나라에서 그만하면 좌빨진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좌파의 원류인 유럽에 갖다 대면 당신은 국수주의자요.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적용하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들어, 불거지는 여러가지 이익집단(이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개개의 분열된 사회문제들)들의 갈등에 대하여,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띈다.이 현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진보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게 발달한 사람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제임스 길리건은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고 정리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경쟁을 선호하고 강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본인은 전혀 상류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수치심을 더 강하게 느끼는 성향을 타고 났거나, 살면서 발달된 것일 뿐.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것이지만, 
사회가 적어도 살만하게 돌아가려면 보수집단의 집권이 그닥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2010년에 발표된 이 나라의 통계 하나를 적어보겠다. 

한국인 2010년 한 해동안 1만 5,566명 자살, 
인구 10만명당 31.2명 자살 OECD 1위, 
세계 2위(1위가 궁금한가. 1위는 리투아니아였다. 평균 남성 70명, 여성 14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10-3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출산율 222개 나라중 217위

이 책을 번역한 이희재씨의 글이 읽을 만 하여 뒤에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분할 정복 전략이 주효하려면 범죄율이 높게 유지되어야 한다. 범죄는 주로 못 사는 사람이 저지르고 그 피해도 주로 못 사는 사람이 입는다. 잘사는 사람은 사설 방범업체가 철통같이 지켜주므로 범죄율이 올라가도 피해를 별로 보지 않는다. 절대 다수의 못사는 사람들은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므로 범죄를 저지르는  똑같이 못사는 사람에 반감을 품고, 말로만 범죄 엄단을 내세우는 공화당을 찍게 마련이다. 

길리건 박사는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 99퍼센트가 좀 더 사람답게 살려면 1퍼센트의 분할 정복 전략에 휘둘리지 말고 어떤 당이 99퍼센트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지를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이지 인물이 아니다. 

[2010년 통계 인용] 한국은 잘 사는 사람에게는 천국이고 못 사는 사람에게는 지옥임을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이 말해준다.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를 지금은 자살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자진(自盡) 이라는 말을 썼다. 진이 빠져서 당하는 죽음, 어쩌면 한국인의 자살은 배경없고 힘없는 개인에게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기면서 극단적 경쟁을 강요하고 소수의 상층부에게는 권력과 금력의 무경쟁 세습을 무한정 허용하는 불공평한 경쟁 지상주의 사회에서 버틸대로 버티다가 탈진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2012.2.28.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민주통합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아 물론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도 절대 진보정당이 아니다. 
여기까지. 

엄마는 실직중

실업과 실직사회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한 생각인데,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애엄마들의 황망함에 대해서 누가 고려를 해보았는가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의 경우, 이게 아무리 자발적이라도 하더라도 임금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는 박탈감으로 인해 실직과 유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이걸 지워주는 건 실직이 아닌 이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만, 이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엄마라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지만 그것을 절대 프로의식 가득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아준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임금노동시장에서 일하다가 급작스러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물론 그건 내가 선택한 몫이라고 누가 트집을 잡아도 할 수 없다만.

임신을 하게 되고 급하게 일을 정리하면서 임신중에 무슨 태교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내내 출산예정 일주일전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폭풍업무를 봤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육아휴직을 출산이후로 잡아놓는 것을 가정했을 때, 마음으로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할 만큼 업무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 게 바로 코 앞에 닥친 일이기 때문에 미친 듯이 일을 해대지 어디 뱃속에 있는 애 생각할 여유나 몇 번 있었겠느냐 말이다.

이 사회에서 바라는 엄마는,
성녀이길 바라면서 초능력자이길 바라고, 감정정리도 깔끔하길 바란다.

<짤방이 너무 귀엽군>

남자들은 부인이 애엄마가 되는 그 순간 자기 엄마와 동일시 하며 성모마리아적인 자기 자식의 어미를 기대한다. (물론 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젊은 엄마들에게 에미가 되서 할 짓이냐 에미가 그게 뭐냐 라고 강요하는 반면,

배우자들은 대체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우리 마누라 너무 수고하지..라고 하면서 귓전에는 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듯이 하던 말 “집구석에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라는 말이 맴돌 것이다.

설령 그 중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내내 잘 버티고 있는 엄마들도 직장내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야근, 회식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에서 반실직과 다름없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사회에서 그깟 돈 몇 푼 버는 것보다 정말 대단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해줘도 모자랄판에, 나도 밖에서 돈 버느라 힘들다고 징징대는 어린 신랑들이 천지 삐까리다.
게다가 많은 초보아빠들은 애 안았다가 내가 떨어뜨려 죽이면 어떻게 하나, 라는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다. 같이 자다가 깔아뭉개면 어쩌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만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혹시 어린 아이가 수단이 되거나 목적이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지만, 이건 이미 시간이 오래 흐른 다음에 깨닫는 개인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라도, 어미의 노릇을 하는 것과 아비의 노릇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하고 심각하고 고귀한 일인가 제도적으로 혹은 분위기라도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실직당하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빈 가방 들고 헤매는 늙은 아버지의 심정과 우는 애 업고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동네를 거니는 젊은 엄마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면서 사실상 실직상태에 몰린 엄마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의 숭고함과 자아발견과 자아계발에 지대한 가치를 학습받으며 자란 세대다. 동생 한 번 업어보지 않고 자란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쉽게 말해 언제는 유능한 여자가 되어 불평등에 반대하여 투사가 되라더니 이제와서 숭고한 마리아가 되라는 말이냐고 따져 물을 수 있다.

실직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은 사회적 평등과 가족의 이해겠지만, 지금 이 따위 나라에서 두 가지를 다 거머쥐는 것은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하되 돈 있으면 되도록 전문상담사를 만나라고, 우울증을 조심하라고  쉽게 말해도 되는 일인가?

2012. 2. 27.

새롭게 태어나는 소중한 생명은 
임금노동시장에서 열나게 업무만 처리하다 온 사람에게 
매우 낯설고 어색하고 이해할 수 없으나 
절대 미워해서는 안되는 성역과도 같은 존재다. 
낯설고 낯설고 또 낯설다
– 짤방은 올해 7살이 되어 느물거리는 내 새끼임-

주말 마트 휴업이 필요한 이유

1. 마트에 가야한다 하니 남편이 다녀와서 치킨을 시켜 달라 함.  (개 사료및 간식이 딱 떨어졌다. 집 앞과 근처 동물병원 역시 문을 닫았다) – 혼자 시켜먹을 줄 모름 – 나는 마음이 조급함

2. 주차장 만차, 게다가 몇몇 차주들의 야릇한 주차 – 스트레스 상승

3. 사람 많음. 혼잡 복잡 판매원들이 적극적 마케팅 – 피로도 상승
인구밀집도가 높아져 공기도 불쾌
매장이 크고 카트를 밀며 다니는 일에 육체적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허기짐까지 발생

4. 타인과의 장바구니 비교
– 내 카트가 꽉 차 있으면 돈 많이 나가는 일에 스트레스,
내 카트가 비어 있으면 상대적 빈곤감에 스트레스

5. 타인의 배우자에 대한 비교

박스자율포장대에서 혼자 포장을 하다가
포장하고 애 보고 하는 아빠들을 보며 급 분노 상승.
– 나는 왜 명절에도 “혼자” 5-60만원어치의 장을 봐야 하는가. 에 대한 뒷끝작렬 서러움 쓰나미
집에 다쳐서 누워있는 남편에 대한 분노 폭발
여기서 빨리 안 오냐고 전화오면 끝장나기 직전의 임계점 도달

6. 계산하며 남편카드로 결제 집에 있는 남편에게 SMS가 도착해
나의 현재 행동반경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사생활침해에 대한 불쾌감이 갑자기 급분노 상승
(분노에 분노가 덮혀 가속도를 밣기 시작)

7.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김종배의 이털남을 들으며 주의를 분산시키려 하는데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내용이 나와 사회적 분노로 승화

8. 마트 주차장 앞 “소비자는 대형마트 휴업을 반대합니다.” 라는 문구에 사회적 분노 추가

– 결국 집에 오는 길에 혼자 교동짬뽕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혼자 왔기 때문에 짬뽕과 짜장을 동시에 맛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 추가

9. 집 지하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박스 하나 장바구니 하나 혼자 들고 올라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탈진과 인생무상에 대한 개엿같은 기분까지 추가.

결론.

주말마트는 국민건강에 매우 해로우므로
절대적으로 휴업하는 것이 옳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