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제는 과연 게임을 규제했는가

2004년 10월 몇몇 시민단체들이 ‘청소년 수면권 확보를 위한 대책마련 포럼’을 결성해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게임의 셧다운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2005년 7월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처음으로 셧다운 제도 입법이 시도되었으나 게임 업계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 충돌 문제로 입법은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에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 방지를 목적으로 ‘정보통신 서비스 중독의 예방과 해소에 관한 법률’이 발의(대표발의 한나라당 김희정)되어 장시간 몰입 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의문구와 서비스 이용을 시작한 지 특정 시간이 경과하면 경고문구를 표시하며, 장시간 이용 시 페널티를 부과하며 특히 청소년 이용자에 한해 그 친권자,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의 요청에 따라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법으로 담고자 했으나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무산되었다.

2008년 7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온라인 게임 업체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의 제공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해당 온라인 게임 업체를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2009년 4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통합민주당 최영희)이 발의되었고, 법안의 내용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 금지, 청소년 연령 확인 및 게임 가입시 친권자 동의, 게임에 인터넷 게임 중독 경고 문구 표시 등이며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김재경 의원의 법안과 유사하며 더 상세했다.

2010년 6월 3일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정안와 여성가족부의 개정안을 합의하여, 셧다운제 도입의 중재안을 마련하였고, 이후 2011년 4월 29일에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에 ‘셧다운제’ 도입을 골자로 대상을 만 16세 미만으로 제한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 법률안’을 상정, 통과되었다.

2011년 1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셧다운 제도가 시행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1월까지 계도 기간을 결정하였다.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셧다운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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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셧다운제에 대한 설명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중 유일하게 청소년이라는 특정 계층에게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적 조치를 실행하였다. 중국이 법적으로 게임을 도박등 규제대상으로 규정한 적이 있지만, 특정 연령계층에 대한 법률적 제한이 실시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최초에 이 법안을 제안한 청소년단체, 라는 곳에서는 “수면권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웠다. 이는 청소년들의 잠잘 권리를 보장한다는 말이다.

특정한 계층이, 또 다른 특정계층의 수면권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법적으로 어떠한 계층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연령대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꽤 많은 나라에서 동일하게 연령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이나, 미성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공연관람물에 대한 등급제를 실시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허용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금지하는 일은 이미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계층의 구분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괄목한만한 저항이 없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대부분의 성인들은 청소년 셧다운제가 필요하다고 동의한 편이며, 게다가 이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셧다운제를 대부분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보고 있지만 이를 단순히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볼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핵없는 미래를 물려주자”는 구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 있다. 청소년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요청한 적이 없는데, 청소년을 대상화하며 보호해야 할 계층으로 규정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매우 당연하게, 청소년과 미성년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두고 그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고 펼쳐왔으며 국가제도 아래 모든 기관이 이 기준을 아무 의심 없이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라는 명목은 그들이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을 함의하며,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은 미약하고 부족하다는 뜻을 포함한다. 청소년 셧다운제 제안의견 중에는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정규교육에서 사춘기 시절에 우리 자신을 타자화하며 학습받은 것 중에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명제에는 “사춘기는 사리판단이 부족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시기”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두 미성숙한가?

미성년은 오히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엄격하다. 나는 그중 가장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시기를 초등학교 입학 직전으로 본다. 이후 아이들은 자라나며 세상을 접하게 되고 여러 가지 도덕과 윤리를 어겨도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소년기의 돌출적인 행동은 사리판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과잉과 뇌구조의 재편성으로 인한 완급조절의 실패로 보이지만 사실은 청소년계층에게 가해지는 과다한 폭력과 통제가 그 원인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청소년계층의 사리판단력은 성인과 비교해서 모자람이 없다. 범죄자의 대다수는 성인이다. 법이라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 연령층이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기본 행동 양식인데 이를 가장 많이 어기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에게 “너희들은 사리판단력이 부족하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셧다운제를 포함한 게임에 대한 규제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화하며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그들의 특성을 규정하고 그들의 개성을 통제하려는 습성이다. 온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암묵적 동의에 대한 침묵이 이어졌으며 그간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지 못한 결과물이다.

이 사회는 미성년자를 통제하려는 정책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다. 미성년자들이 펼치는 모든 행동은 새로운 것들이다. 구세대의 문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때마다 성인들은 미성년자들의 “미성숙함”이 기괴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고 비아냥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 학생들의 짧은 교복치마에 대해 성인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들은 볼썽사나운 교복개조라고 폄하하며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 수 없는 걸그룹들을 창조해냈다. 걸그룹들은 일정 구성원이 미성년자이나 철저하게 성을 상품화하는데 앞장서왔고 그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재능을 상업화하고 대중 앞에 내세운 것은 분명히 어른들이었다.

교복치마 논쟁이 정신없을 때 삼선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문화가 비난을 받았다. 그들이 큰돈을 들여 사 입는다는 노스페이스 파카에 대해서도 국가의 미래를 운운하며 걱정들을 토해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던 어른들은 앞장서서 아웃도어 시장을 전세계 어디에도 유래없는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어냈으며, 삼선슬리퍼에 대해서 안전을 문제삼던 어른들은 각종 대형사고를 만들어 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아웃도어 사업을 일으킨 것도, 그 시장을 키운 것도, 인재가 아니라고 우길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만든 것도 모두 성인들인데 그들은 단지 아이들이 먼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때마다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미성년자를 비난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먼저 가는 자의 머리채를 잡아 당겨 주저앉히고 왜 앞장서서 가느냐고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 양아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문화가 이 사회에 깊이 팽배해 있다. 미성년자들이 성인들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빠른 것은 유연하며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성인들은 낯선 것을 일단 터부시하며 두려워한 뒤 공격을 하다가 결국 그 문화를 광적으로 흡수하고 재생산하며 산업화한 다음 부를 축적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런 문화의 패턴이 이 사회에선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생각해보라.

청소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왜 비난을 하는지 “어른”이라는 자들의 솔직한 의견은 대부분 한가지로 모아진다.

“꼴 뵈기 싫어서.”

이는 낯설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경함에 대한 치졸한 반응일 뿐이다.

셧다운제와 청소년에 대한 게임규제 역시 다를 바 없다. 선거권을 가진 성인들이 규제하는 것은 단순히 게임이 아니며, 그들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는 데 진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규제하는 것은 새롭게 밀려들어오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본인들의 경직된 자아로 가득한 구태한 문화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세상의 많은 것들이 왜곡된다. 이는 사회뿐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가정에서 발생한 교육에 대한 강박이 바로 사회로 나아가 합리적이지 않은 법령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게임셧다운제를 비롯한 각종 청소년에 대한 규제인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 소감 (7월 14일분)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를 듣고

첫 강좌의 내용은 중독과 몰입이었다. 게임을 몰입이라 보지 않고 중독이라 폄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게임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경혁 선생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키워드 :

괄시와 굴욕의 역사.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게임은 태초부터 환영받은 적 없다.

Hell 조선이라는 용어도 게임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다양한 종류의 심층적인 게임을 잘 하지 않지만 간간히 기사를 검색하거나 게이머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항상 검색해서 알아내려 했던 덕인지 강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첫 강의는 우리가 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중독과 몰입이라는 단어는 비슷하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과학적으로 두 가지의 뇌 상태는 같을 수 있으나 이 사회의 언어로써는 부정적, 긍정적 효과를 동반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제 1강에서는 게임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는 중독, 혹은 몰입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기로 했다.

게임의 사전적 의미는 놀이다. 중국어에서는 게임을 유희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말하는 놀이의 범주는 상당히 여러 가지다. 게임은 놀이의 한 갈래이지만, 놀이의 한 갈래로 완전히 편입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은 명확히 말해 비디오게임이며, 이 비디오게임이 현재는 컴퓨터게임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은 모바일게임이라 하는데, 스마트폰도 말하자면 작은 컴퓨터와 다름없으므로 모바일게임 역시 컴퓨터게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초의 컴퓨터게임은 1958년 미국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주거니 받거니 공을 치는 화면이 컴퓨터로 만들어졌고 부룩 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이는 비디오게임, 컴퓨터게임의 역사를 찾아봤을 때 나오는 정설이다. 그 이전에 어떤 개인이 어디선가 혼자 만들어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전산시스템의 수준으로 봐서 한 개인이 혼자 만들고 놀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논다, 컴퓨터게임의 출발은 놀기 위한 것이었을 거다. 어쩌면 그 놀이를 위장해 사실상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전략시뮬레이션은 전쟁전략을 짜기에 적당했을 것이고 컴퓨터의 능력을 평가하고자 퍼즐게임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임을 놀이, 여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유사 이래 인간들이 찾아내는 놀이가 환영받거나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인간은 언제나 승부를 가르기 위해, 상징적인 경쟁을 하기 위해, 또는 개인이 즐거움을 찾기 위해 어떤 놀이를 찾아왔다. 이 놀이는 대부분 현재 문화예술의 갈래가 되었다. 오래 전 구텐베르크 활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쉽게 손에 책을 넣게 되었을 때 어떤 나라에서는 마구잡이로 베껴 퍼져나가는 소설이 사람들의 정서를 해친다고도 하였다.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움직이는 그림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 말했다. 사진도 마찬가지, 그림의 영역을 침탈당한 자들은 사진을 비난했다. 만화도 그러했고 세상에 새롭게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과 놀이는 처음엔 비난으로 시작했다. 왜 그랬던 걸까.

전쟁이후 국가재건에 열을 올리던 국내사정은 차치하고 이건 단순한 억압의 문제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각 매체마다 다른 이유가 있으니 일일이 여기서 따지긴 어려워도 대부분 새로운 문물의 등장은 기존 문물의 영역을 침범해왔고 파이를 나눠야 했다. 인간이란 종은 애시당초 보수적이라 새로운 물결이 거대하게 몰려올 때 불안과 위기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지라 새로운 매체, 새로운 문물은 거의 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게임은 비디오게임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넘어가고 현재는 모바일게임까지 발전해왔다. 게임이라는 건 상호작용, Digital interactive Contents가 중심이다. 기존의 게임, 놀이도 상호작용이 중심이라면 게임은 digital 이라는 영역이 포함되어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져 더 풍부한 선택지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의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디지털 상호작용이 게임의 기본이라는 얘기를 듣자, 화면으로 넘어오기 전의 게임과 비교를 해봤다. 오래전 모니터없이 실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던 상호작용의 게임은 게임의 룰을 참가자들이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다.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게임은 제작자와 제공자가 있고, 디지털이라는 영역이 개임했기 때문에 게임의 룰도 그 계산 안에서 이루어진다. 비디오게임(모니터와 컴퓨터 게임을 이하 비디오게임이라고 칭하겠다)은 게임의 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각본에 의해 제작해야 하고 수많은 선택지를 만드는 것 하나 하나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게임안에서 개별적으로 최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개발단계에서 이미 완성품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임의 선택은 한계가 있다. 각종 게임들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패치를 만들어도 그 역시 개발자, 즉 생산주체에게 게임의 규칙을 정할 권력이 주어진다.

비디오게임이 사용자의 적극적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게임은 각종 매체와 예술장르를 포괄하여 발전한다. 마치 블랙홀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예술의 영역을 흡수하여 발전한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게임OST가 주목을 받던 때가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던 사람들은 게임의 현란한 미적 기술과 아름다운 음악이 동반된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새로운 매체가 탄생했다고 환영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게임은 최대한 사용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람들을 매혹할 만한 수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은 매혹의 기술이 돋보여야 살아남는 장르이다. 그게 어떤 방향이건 간에 생산자의 취향에 맞는 소비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계층이 넓고 깊게 빠져들수록 문화예술의 생산자는 흥하게 된다. 게임은 복합적인 문화매체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각본이 필요하다. 게임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다. 무모한 퍼즐게임은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못한다. 게임의 기본은 이야기구조의 흥미로움이다. 이야기로 사람을 매혹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게임은 다른 장르를 가져왔다. 중독성이 있는 효과음으로 시작한 단순한 게임들이 유려한 음악으로 스토리에 힘을 북돋는다. 또한 미술역시 사실적 기법을 동원하거나 단순화한 상징적인 것 여러 가지를 보태 가장 아름답게, 가장 눈에 띄기 쉽게, 소비계층이 가장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구현한다. 게다가 사용자의 적극적 상호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연극적 요소를 배치한다.

1강에서 이경혁씨는 게임은 시간과 공간을 현실과 다르게 유리되어 있다고 했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고, 장소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과 그 안에 주어지는 모든 미장센은 역할이 있는 소품들로 채워진다. 현실세계에서는 당장의 어떤 사건을 이루어내기 위해 모든 사물이 그 역할을 하지 않지만, 게임에서 보이는 공간의 사물들은 대부분 어떤 임무를 띠고 있다. 목적성이 강한 장소가 주어지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몰입도를 최적화하기 위한 계산된 시간일 테고 장소 역시 몰입도를 이끌기 위한 장치로 꾸며져 있다. 말하자면 게임속의 모든 사물과 세계는 필요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 그저 무용의 물체는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유저들은 게임공간속에 무의미한 사물을 발견했을 때 황당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각종 도구들을 생산자가 이미 적절하게 배치했을 거라고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게임의 세계관은 유용한 사물과 유용한 시간, 유용한 공간의 연속이다. 일상생활에서처럼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되는 것은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과 사용자간에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인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몰입이 탄생한다는 것이 이경혁씨의 주장이다.

생산자의 능력에 따라서겠지만 사실상 게임은 그 규칙과 세계가 정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영역이다. 무한히 확장하느냐는 개발자, 즉 생산주체가 정할 수 있다. 어쩌면 사용자중에 무한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애쓰는 주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그런 양상을 보이는데, 기초적으로 개발사에서 제공한 영역을 넘어서 사용자들이 끊임없이 변형판을 만들어 게이머들 사이에 상호 제공한다. 이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개발과 비판, 사용의 영역을 마구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비디오게임은 앞서 말한 “생산자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게임의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체되고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 흔해지면 그 때는 비디오게임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지 지금 내 수준으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본 강좌에서 짚은 부분은 생산과 소비 주체의 혼재가 아니라 사행성 게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게임이 모바일형태로 더욱 개인과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모바일게임은 돈과 더 가까워졌다. 지문인식이 가능한 경우 신용정보를 등록해두면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지출이 가능해졌다. 결제가 간편해진다는 것은 소비가 더욱 쉬워진다는 말이다. 소비가 쉬워진 게임시장이 이런 기회를 간과할 리 없다.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은 어느 수준에 오르면 현금을 동원하지 않고는 레벨업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나, 현금이 있으면 더욱 쉬운 게임을 펼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평등의 수치가 가속화될수록 게임시장은 발전한다. IMF 시절 우리나라 e-sports가 가장 크게 성장했듯이, 그 때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탄생했고 PC방 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인간의 비겁함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적 원인이 매우 명백하다. 현실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를 얻기 어려워질 때 사람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수단을 택한다. 적어도 몇 백 시간 내에 한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그 쾌감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게임은 공들이고 시간 들인 만큼 댓가가 돌아오는 매우 평등한 매체였다.

모바일시장이 나타나면서 이 평등함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현질,이라고 하는 금융결제, 즉 돈을 가진 자가 더 앞서 나가는 게임의 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암담한 시대에 유일한 구원이었던 게임마저 더 이상 평등하지 않은 형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와 유리된 듯 보였던 게임은 현실과 매우 가까워졌고 이제는 개인의 손바닥 위로, 화장실 안으로 침대 머리맡으로 아주 은밀하게 진입해 들어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생산자들이 머리를 짜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다. 더욱 개인화된 게임은 밀실과 광장의 경계를 허물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현실과의 경계를 점점 낮추고 있다.

게임은 마치 자생적으로 점점 커져가는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유동체가 되었다.

단순히 화면 안에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던 게임은 이제 현실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며 그 영역을 계속해서 파괴해나가고 있다. 마치, 애니팡의 동물들이 줄을 지으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가듯이, 언젠가는 애니팡의 화면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처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게임의 확장력은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할 것이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노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던 시절을 지나, 남녀노소 막론하고 지하철에 앉아서도 뭔가를 터뜨리며 쉽게 웃고 쉽게 돈을 지불하는 때가 도래했다. 이제 여기서 게임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이 피시방으로 옮겨가고 피시방이 손바닥으로 들어온 시기처럼, 모바일게임의 급속한 성장으로 게임은 이제 또 다른 영역을 찾아 나설 것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어, 어떤 차원의 공간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고 할지, 그것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직 미지의 차원 – 우리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시공간 – 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제 1강 중독과 몰임 / 이경혁씨의 강의를 듣고

본 강의는 7월 14일부터 총 5강, 서울 종로구의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인문학협동조합의 기획강의입니다.

한심한 독서

1.
글자를 읽기 시작한 건 너댓살 무렵이다. 당시엔 그 나이에 글자를 읽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신동소리를 들었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동일하리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읽는 책이 국민서관의 <신데렐라>였다. 참으로 한심한 동화다.

7살엔 사촌오빠네서 얻어온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읽었다. 읽는 책인 줄 알았다.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48권짜리 위인전집을 읽었고 그 다음에 전래동화집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 읽었다 싶은 건 전래동화전집이었다. 나머지는 차라리 읽지 않고 나가 노는 게 나았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읽을 게 부족해 세로로 된 책이나 어른들 책도 읽었다. 선데이서울도 읽었고 뺑끼통도 조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세계걸작 다이제스트를 읽은 건 누군가 읽지 말라고 뺏었어야 했다.

초등학교 때 독서대회를 한 달간 했다. 상 받으려고 얇은 책만 골라 읽고 독후감을 날림으로 썼다. 한 달동안 53권을 읽고 전교 1등을 했다. 목적은 상장이었지 책 읽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때는 성경을 두 번쯤 읽고 휴거를 주장하던 다미선교회의 책과 두란노서원과 말씀사에서 나온 종교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성경을 읽은 것 외에, 쓰레기를 읽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차라리 연애나 하든가 연예인 팬질이 나았다.

진심으로 책을 읽은 건 중•고등학교 때였다. 한국근대문학을 많이 읽었고 정신세계사의 책을 읽고 몇 달을 앓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매일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운 주제에도 책은 읽었다. 무언가를 읽고 쓰는 일은 매우 당연한 일상이라 무시로 읽고 썼다. 쓰는 건 대부분 체계없는 일기였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건너간 다음에도 교보에 해외 책배송이 생기자마자 생활비를 탕진해가며 책을 샀고 한국에 들를 때마다 40kg를 채워 배낭에 넣어 지고 비행기를 탔다.

2.
문제는 이때쯤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싶었던 게 아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읽으며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는데 독후감을 위해 책을 읽게 되었다.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쉽고 흔하게 말하는 트라우마나 컴플렉스 따위였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과 책을 골랐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책 사는 일이 더 쉬워졌다. 돈을 벌지 않아도 책 살 돈이 생긴 건 노다지 금광을 발굴한 셈이었다. 책을 읽으며 엑셀에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가까이 있었으나 ‘구멍난 가슴’을 메우기 위해 책을 사제꼈다. 결혼 후 2년차부터 읽는 책보다 사는 책이 많아졌고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책 집착은 도를 넘어섰다.

엑셀에 칸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쉽고 얇은 책을 읽어야했다. 1년 목표를 100권으로 잡고 2006년부터 꾸준히 목표를 달성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년 2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리스트를 정리했다. 심할 때는 하루에 여러 권을 읽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 시기에 읽은 책은 대부분 글자만 읽었다. 책을 더 보관할 수 없어서 박스채 팔거나 여기저기에 기증을 했다.

책 읽는 속도는 당연히 빨라졌고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어졌다. 책을 사들이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실 알라딘에서 책을 산 게 몇 년 안된다. 이 시대의 지식분자들은 다 거기서 책을 사는 거 같아서 거기서 산 것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책을 읽고 싶어서 읽은 게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에게 나는 이만큼 읽었다고, 이런 것도 읽는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내면에 곯아가는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앉아서 활자만 읽었다.
오래전에 그만둔 방송통신대에 복학을 했다가 1학기만에 그만두었다. 책 읽을 시간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런닝머신 위에서도 책을 읽었다. 실내 사이클 위에서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수영장을 다니지 않았고 언제나 가방엔 한 권 이상의 책이 있었다.

집안은 책으로 점점 좁아져갔고 알라딘에 지불하는 돈은 점점 많아졌다. 그럴수록, 머릿속에 남은 건 없어졌다.

집주인과의 갈등도 본격화되었다. 두 번 읽지 않은 책을 사들이는 이유에 대해 추궁했다. 매달 몇 십만원 어치의 책을 사서 쌓아두었다가 다시 어디론가 처박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책을 사들이는 일에도 집중했다.
그저 다 돈지랄이었다.

3.
2013년부터 엑셀에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그만두었다. 제일 소중하게 여기던 파일인데 지금은 어디다 처박아뒀는지도 모른다.
읽는 책의 권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책을 사는 수량은 여전했다. 어설프지만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필요한 책은 더 늘어났다.

여전히 책을 사고 있었지만 책에 집착하느라 일상을 무너뜨리는 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대해 몇 명의 정신과 전문의와 진지하게 상담도 했다. 술을 못 마시면 활자를 읽었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의 위기가 오면 급격하게 책 구매액이 늘어났다. 택배가 올 때가 되면 뭘 샀는지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모조리 다 책값으로 탕진했다. 그 책들이 지금 다 우리집과 퇴직한 회사의 작은 도서관 일부에 있다.

견딜 수 없어서 대형 붙박이 책장을 짰다. 도서대여점같은 슬라이딩으로 했어야 했는데 만드는 분이 벽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 했다. 도서대여점의 책은 얇고 가볍지만 내 책들은 그러하지 않으므로.

도서정가제 시행 한달전, 물욕이 폭발했다. 알라딘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무이자 할부가 잘 되는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폭풍처럼 택배가 밀려들었다. 알라딘 배송 아저씨는 급기야 짜증을 내기도 했다. 책 좀 나눠서 시키라고 박스를 던져놓고 가기도 했고 도서정가제가 언제 끝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 때 긁은 카드값을 나는 아직도 갚고 있다.

지금도 내 서재와 마루와 아이의 방은 당연하고, 거실의 테이블 위, 소파위, 안방의 침대 옆, 화장대 위, 식탁 위에도 책이 있다. 읽다 던져버린 책, 읽으려고 꺼내 둔 책, 읽고 안 치운 책.

올 해초, 1월달에 갈급증이 다시 생겨 한 달동안 빨리 읽을 수 있는 만화책과 동화책을 포함해 40여권의 책을 읽고 리스트만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3월부터 거의 책을 읽지 않고 근 10여년만에 최소수량을 매달 갱신하며 7월을 맞았다. 보름째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한 편 읽고 던져놓고 애니팡이나 하다가 이해가 안된 구절을 다시 들춰 읽고 단편 하나를 두 번 세 번씩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4.
누군가는 무슨 개소리냐고 했지만, 나는 학력컴플렉스와 지적컴플렉스가 심했다. 이게 과거형인 건 이제는 그 컴플렉스가 극복되어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갈고 닦는다. 우연히도 나는 그게 책이 되었다. 라면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읽듯이 수많은 활자를 읽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이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라 하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기억나는 스토리가 없고 핵심도 다 날렸다.

최근들어 글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나눌 사람이 생겼는데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천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사실은 한 권도 안 읽은 것 같다. 녹아내린 책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나 그거 읽었어.
나는 이것도 읽었어.
나 좀 봐줘.
나는 이걸 읽어.
나는 이만큼 읽었어.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허세를 부리고 지적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었지 주로 숫자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내면의 들키고 싶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직면하지 못해서 내내 활자속으로 도망다니기만 했다.

한심한 독서를 중단했다.
이제서야 책을 읽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놓친 부분이 없나 다시 읽고 문장을 곱씹어 보면서 가만히 여운을 느끼게 된 지금이, 이제서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게 된 셈이다.

어릴 때의 독서편력을 들은 정신과 전문의는 그랬다. 외로웠을 거라고. 방임이 있을 때 활자에 천착할 수 있다고. 아이들은 친구와 노는 게 재미있고 가족과 교감을 나누는 많은 활동이 더 즐거운 것이지 책만 쳐다보는 것은 결코 친구와 노는 만큼 재미있는 일은 아니라고. 동생은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렸고 나는 동생 옆에서 책을 읽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마흔이 인생의 중반이라면 여러 방면으로 판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달간 도서구입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제 활자에 대한 집착은 내 정서상태의 척도가 된다. 기억도 나지 않을 글을 과자봉지의 성분분석표를 보듯 읽는 짓을 그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기 전까지 못 읽고 가는 책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끝.

2015. 7. 8.

푸닥거리

1.

행동과 실천이 잘 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변한다고 누가 말했다.
계속해서 인지하게 되면 언젠가는 행동도 변하는 걸 스스로 체험했다는 사람이 한 말이다. 공부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텍스트 놓고 답을 도출하는 주입식, 암기식 기술적 공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학교에서의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내내 가짜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버렸다.

2.

가치를 가지고 해나가는 모든 일이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쇠귀에 경읽기도 하루 이틀이지 어떤 날은 너무 지친다고도 했다.
과연 세상이 좋아질까요? 그가 물었다.

세상은 결코 지금보다 대단히 좋아지진 않을 것이고 평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인간이 부지런히 가치를 위해 숭고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이유는 그저 도전하는 바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하겠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없고
백사람이 모여 백마디를 백년동안 외쳐,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말했다.
인간은 그만큼 미약한 것이니,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산을 폭파시키지 않고 돌을 지어 나르던 시지프를 이해할 수 있겠지.

3.

대부분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일.
외면해도 무관한 일.
내가 가진 것이 적지 않기에 대충 살아도 괜찮은 일.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시작하는 일은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일이다.

금요일날 본 연극 중 대사 몇 가지가 남았다.
습관대로 사는 인생 습관대로 살다가 아무 생각없이 죽는다고.
잡귀 들린 인생, 남을 원망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물질에 의존하는 이 모든 것이 잡귀라던 대사. 우리가 아는 정서적 문제를 예전엔 잡귀가 들려서 그랬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잡귀를 쫒으며 사는 일.
푸닥거리는 언제나 필요하다.

2015. 7. 12.

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9. 버터링 쿠키

금요일 독서클럽
오늘은 상담샘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찍 도착.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야기동화책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기대한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9장에 맞춰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맘을 비웠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나눠준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마을교육 방과후 활동엔 간식비가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버터링 쿠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다른 활동시간에 아이들이 먹은 것 같은 빈 박스가 쌓여있다. 오뜨, 마가레트같은 과자박스이다. 왜 아이들에겐 늘 달디단 과자와 설탕이 가득한 음료수를 간식으로 줘야 하나.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붙잡아매는 유혹거리를 보며 속이 불편했다. 내 새끼에게는 먹이려 하지 않는 과자를 숫자대로 나눠주려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았다.
이것부터 바꿔야겠다, 내년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아이들에게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가 나눠줄께요 라고 하며 손을 벌렸다.

은서가 울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은서의 섬세한 그림이 자꾸 맘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에 간 제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니랑 우격다짐을 하며 싸우던 하윤이의 그림책은 제니와 하윤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제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아이들은 꽤 많이 진도를 나가 많이 완성했다. 아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뒷문에 야구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민영이가 있었다.

몇 주전, 엄마가 방과후를 그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라 했다며 독서클럽을 그만두었다. 늘 무기력하던 민영이는 첫 날 독서실 구석에 앉아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민영이에게 선생님도 이 책 되게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었다. 캠코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신이 나서 방방 뜨던 민영이가 평소에 늘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도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어우 어쩐 일이야. 들어올래? 민영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빠?
민영이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학원 가야 되니?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들 만나러 왔어?
아녀. 민영이가 대답했다.
그냥 들렀어요.
지쳐서 금새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
집에 들었다가 영어학원 바로 가야 돼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민영이가 큐브블록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선생님꺼라며 따로 챙겨둔 버터링 7개를 크리넥스에 싸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민영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물을 먼저 주었더니 민영이가 물을 조금 마셨다.

버터링 쿠키를 받아든 민영이의 손이 너무 번잡했다.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들고 나와 버터링쿠키를 담아 주었다.

지금 가야 되니?
민영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인 듯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민영이를 뒤에서 살짝 안아들고 다섯걸음을 걸었다. 내 새끼는 40키로에 육박하는데 그보다 한 살 많은 민영이는 30kg남짓인 거 같았다.

우리, 다음 다음주까지 할꺼야.
시간 나면 또 놀러와.
민영이가 배꼽에 한 손을 대고 무겁게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는데 민영이가 뜨거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부모님이 늘 늦게 오세요. 무기력한 편이죠.’ 상담 선생님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눈물이 고여 선생님 책상에 있는 휴지를 얼른 뜯어 눈가에 대는데 아이들이 제가 그린 것들을 들고 와 떠들었다.
아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민영이가 모래위를 터덜거리며 지나갔다.

201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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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자단 3.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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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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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자단 2.

부산역에 도착해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커다란 엘리베이터에 나와 내 일행뿐인가 했는데 한 소년과 허리가 살짝 굽고 관절염이 오래된 듯한 할머니가 같이 탔다.

소년의 옆모습이 낯익다.
가만히 고개를 움직여서 소년의 얼굴을 살펴보다 내가 말을 걸었다.

“너, ㅇㅇ 중학교 찬수 아니니?”
소년이 나를 빤히 보며 침묵하더니
40초쯤 지난 후에야
아.. 마을기자단 선생님이다. 라고 했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 야외로 나가는데 실내화를 안 신고 양말채로 신발만 들고 나가길래 지저분해지면 엄마에게 혼날텐데, 라고 했더니 “엄마 없어요. 이혼했어요.” 라고 말하던 그 아이.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대전인가 대구를 가려다가 뭐가 잘못되어 부산까지 왔다 하셨고 아이가 방과후 수업에 잘 나오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 아이를 한 번밖에 본 적 없지만, 아주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소년은 머쓱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했다.

세상에 미운 것이 많은 아이,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 야구배트를 들고 어른들과 맞짱 뜬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던,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 이번엔 내가 분명히 너를 주목해서 보게 될 것이라 예감했던 아이를.

부산 가는 길에서 마주치다니, 이 세상은 어쩌면 마법으로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찬수는 가명입니다.)

2015. 6. 7.

마을기자단 1.

A중학교 마을기자단 수업
학기초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다른 스케줄을 잡아버렸고, 다른 강사분을 추천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하차.

이어 받기로 하고 빈 시간은 다른 분께서 2회 마을탐사로 진행.

사회복지사 선생님 안내로 교실에 들어가니 남자 아이 셋이 있었다. 교실 시설은 기가 막힌데, 한 놈은 휴대폰으로 노래 듣고 있고 (게다가 듣는 노래가 징기스칸이었다), 한 놈은 뭐가 문제인지 칠판 뒤에 숨어 있고 (이건 또 뭔가..), 한 놈은 컴터 좀 다룬다며 내가 준비해 간 동영상을 제가 틀어주겠다고 프로젝터와 노트북 세팅을 했다.

아이들이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고 참여도가 떨어진다 들었다.
수업시간 5분이 지나도 아이들이 더 오지 않아 수업을 시작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음악을 듣던 아이에게 뭐가 맘에 안 들었냐 물으니 학교도 싫고 급식도 맛이 없고 오늘 아침엔 가족들과 싸우고 나왔단다.

아이들에게 마을기자단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각자 이 동네의 맘에 안드는 점을 적어서 이야기 해보자 했다.

여자 아이 셋이 땡땡이를 쳤다가 복지사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은 공원과 같은 휴게, 여가공간에 대한 바람과 불만을 먼저 이야기했다.

지저분한 거리, 알 수 없는 이유의 너저분함, 공원에서 술 마시는 아저씨들, 뒹구는 막걸리병쓰레기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수업 중 버스정류장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버스정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정류장 보도블록이 깨져 있어서 발을 다쳤다고 했다. 해당 정류장에 도착해 뭐가 문제인지 따져보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인도를 늘리거나 주차단속을 강화하거나 보도블록이나 싱크홀 정비를 하거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길에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가 자기네 집은 이혼을 해서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30분 먼저 봤다고 남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음 주부터는 마을 지도를 그리고 안전문제를 점검하기로 했다. 6주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다.

2015. 6.3.

어떤 고민

주업무가 아닌데 주업무처럼 5월을 보낸 학교 수업 몇 가지.
도망다니고 싶지만 도망다닐 수 없는 입장, 그렇다면 여기가 가장 낮은 현장이라 생각하고 놀다 오는 마음으로 나간다.

같은 안양 내에 있는 몇 개 중학교, 몇 개 초등학교, 몇 개 고등학교, 기관의 프로그램을 신청한 아이들, 다양한 안양의 아이들을 만난다.

같은 학년이라도 학교에 따라 다르고, 같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마음에 걸리는 건 아프고, 약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잘 훈련되어 자기검열에 완전히 적응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프다.

몇 군데 학교를 돌아보며, 경제적 조건이 아이들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안양의 초등학교 3학년,

어떤 아이는 엄마의 승용차로 학원가에 있는 학원에 가서 비이커와 플라스크를 놓고 라면의 나트륨 함량을 구하고, 비싼 교구를 들고 로봇만들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학원가 센터를 드나든다.

어떤 3학년은 원어민 선생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거나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어떤 3학년은 아직 한글을 다 떼지 못했다.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으로 살이 찌고 벌써 가슴이 나온다. 빨지 않은 실내화가 꼬질꼬질하고, 자주 화를 낸다. 친구들이 자꾸 자기를 쳐다보며 수근거려서 매일 매일이 속상하다.

어떤 3학년은 하루종일 학원을 돌다가 형과 라면을 끓여먹고 엄마가 오기 전에 잠이 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조건과,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욕심과,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은 불안과,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은 허영이 만나 도시를 만든다.
술렁거리는 공기가 아이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것 같다. 두렵고 무섭다.

외로운 아이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늘 화가 나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2015.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