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상장례에 관하여 – 강의록

전통 상장례에 관하여

 

강의 윤여빈(경기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전통의례 고증 전문가, 前 성균관 의례부장

정리 이하나

  • 들어가는 말

하늘의 도(道)는 옳으냐 그르냐 天道是非也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10권, 「서(書)」8권, 「세가(世家)」30권, 「열전(列傳)」7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이다. 이 중, 일반적으로 본기와 열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본기(本紀)는 천자(天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평민이 두 사람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공자이다. 포의(布衣)입은 평민이지만 모든 왕의 스승이 되었다 하여 본기에 수록되었고, 초패왕 항우(項羽)는 전쟁을 할 때 기습전을 하지 않고 정공법을 사용했다 하여 천자의 반열에 올랐다. 본기의 기본정신은 포폄(褒貶)이다. 포폄은 춘추전국시대의 정신으로 볼 수 있다.

열전(列傳)은 총 70편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백이(伯夷)숙제(叔弟)의 이야기이고, 마지막은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의 자서전이다. 맨 마지막 태사공 사마천에는 자신이 왜 대대로 역사를 공부하고 궁형을 당해 비루한 처지가 되었는지 나타나있고 사실상 마지막 편과 다름없는 제 69편에는 화식(貨殖)열전(列傳), 화(貨)는 돈을 말하고 식(殖)은 불어난다는 뜻으로 재산을 불리는 법,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 69편의 주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뭐냐고 묻는다. 강남의 상인이 사막을 뚫고 가서 물건을 사 나르고, 강북의 물건이 남쪽까지 가 닿고 바다를 건너고 험한 길을 넘어 물건이 유통되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이익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현시대에도 와 닿는 이야기다.

열전의 첫 이야기인 백이숙제(伯夷叔弟)편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언제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다. (중략)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행동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의 이 질문은 전통상장례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화두가 된다.

  • 의례의 기본

프랑스의 배우 알랑 드롱은 전세계 최고의 미남자로 손꼽혔다. 그의 전성기때 프랑스정부에서는 프랑스의 음식문화를 해외에 홍보하고자 그를 모델로 영상을 촬영했다. 완성된 영상은 수차례의 정부관료들의 회의를 거쳐 세상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1935년생인 알랑 드롱은 17세에 알제리에 군인으로 파병되었고 세계 각지를 방랑하다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첫 영화는 1957년이었고,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것은 1960년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였다.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얼굴을 가진 그의 개인사에는 품위가 깃들 겨를이 없없다. 그가 프랑스 음식을 먹는 장면에는 외형의 조형미로 가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품위는 이렇듯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그 사람의 품위를 결정지을 수 있다. 전통의례의 기본은 바로 이 품위에 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예비를 할 수 있으나, 인간이 죽는 것은 예비를 할 수 없다. 선한 인간이나 악한 인간이다, 부귀영화를 막론하고 모두 다 죽는다. 인간의 끝은 동일하다. 그러나 죽음의 품격은 인간마다 다르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며,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죽을 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인간이 단 한 번, 처음으로 겪는 것이 바로 이 죽음이다.

노련한 장의사들은 주검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추정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일생을 의식보다 더 많이 기억한다. 삶의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는다. 이 사람의 마지막 살아있는 모습이 평화로웠는지 아닌지도 주검이 말해준다.

전통장례에 관해서는 유교에 입각하여 기술한다.

기본적으로 유교에서는 영혼을 믿지 않고 사자의 의식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유교에서는 신이 있다는 걸 믿지 않고 기록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유교는 철저히 인본주의다.

품위는 인간이 스스로 충분히 가꿀 수 있다. 어느 영화배우에게 여태 같이 일한 여배우 중 최고의 미인이 누구냐 물으니, 그가 말하길 진선미(眞善美)를 뛰어넘는 것은 귀(貴)라고 했다. 위에 말한 알랑드롱처럼 눈으로 보는 조형미를 넘는 품위를 바로 귀(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젊은 시절 동학운동에 투신하였다가 동주 태화산 나복사로 피난을 갔다. 은신중에 운명에 관한 공부를 하는데 자기 얼굴은 아무리 뜯어봐도 도둑의 상이었다. 그 때 그가 깨달은 공부는 관상 좋은 것보다 몸 좋은 게 좋고, 몸 좋은 것보다 심상(心相)좋은 게 최고라는 거였다. 관상(觀相)은 불여심상(不如心相)이다. 도둑의 상이었던 김구의 얼굴은 해방 후 환국하기 전 평범한 한국인의 얼굴이 되었고 오히려 그 얼굴에 기품이 묻어났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양을 하면 사람의 얼굴도 변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걸 고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억누르려고 자각을 해도 타고난 성질이나 기질을 억누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체의 중심은 어디일까?

인중(人中)이 인체의 중심이라 말한다. 한자로도 사람 인(人)에 가운데 중(中)을 쓴다. 사람의 가운데라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말이을 이(而)라고도 한다. 콧물이 흐르는 선이 아니라 말 이을 이(而)를 쓰는 의미가 있다.

인중의 위쪽은 생각을 하는 이성적인 부분, 인중의 아래쪽은 땅에서 나는 걸 먹고 배설하는 본능의 부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중심이 인중의 위에 있다는 것이다. 순자가 본 성악설은 인간의 중심이 인간의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순자나 맹자나, 두 사상가의 핵심은 교육이다. 본성을 자제하고 희노애락을 억누르기 위해, 혹은 타고난 본성인 “이성적 사고”를 잘 지키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성리학은 인중의 윗부분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다.

퇴계 이황은 김유신의 말을 이야기하며 주인이 정신을 잘 차리면 말은 바른 길을 갈 것이고 술 마시고 졸면 말이 알아서 천관녀의 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것이 성리학의 본질이다.

율곡 이이는 또한 하늘은 폭포의 물과 같고, 사람은 그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고 했다. 하늘에 있는 진리와 내 안에 있는 진리가 같다는 말이다. 물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 그릇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인중의 위쪽을 본 게 이(理), 인중의 아래를 본 게 기(氣)가 되어 이기설(理氣說)이 시작되었다. 형이상학은 인중의 위를, 형이하학은 인중의 아래를 말한다. 이 상하(上下)를 합치 시키는 것이 바로 인(仁)이며,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덕목이다. 몸을 잘 못 움직이는 병을 불인지병(不仁之病)이라 한다. 참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이다. 인을 이루기 힘들다는 뜻이다.

생명이 어디서 나고 어디서 끊어지느냐가 인간의 출생과 사망을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생명은 인중에서 끊어진다. 숨이 막힌다, 숨이 끊어진다고 표현하는 데 이 숨이 끊어지고 막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인중이다. 사람이 죽은 것을 확인할 때 숨이 끊어지는가를 보는데 호흡이 끊어지는가를 확인할 때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인중에 손을 대고 호흡을 확인한다. 바로 인중이 기식(氣息)이 끊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 상장례(喪葬禮)의 절차

매일 죽겠다고 말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농담으로 한국사람은 매일 죽는다고 하지만, 기실 전통 상장례에서 한국인은 환갑에 죽는다고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일까. 이는 우리의 오랜 농담에도 숨어있다.

흔히들 병풍 뒤에서 향내 맡는다는 표현으로 죽은다는 것을 표현한다. 여기에 나오는 병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말한다. 병풍 앞에 있으면 산 것이요, 병풍 뒤에 있으면 죽은 것이다. 벽도 경계를 나타내지만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할 수 있는 병풍은 생사경계의 상징을 더 많이 내포한다.

예(禮)의 주체를 주례(主禮)라고 한다. 흔히 결혼식장에서 쓰는 주례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지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례는 정확하게 주빈(主賓), 큰 손님이 되고 혼인식의 주례는 신랑신부가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환갑잔치를 생각해보자.

회갑때는 잔치자리에 병풍(屛風)(평풍(平風)이라고도 함)을 펴놓고 그 앞에 고임상을 차린다. 죽음의 방향은 서쪽이라 위패는 서쪽에 놓는다. 아버지는 왼쪽에 앉고 어머니는 오른쪽에 앉는다. 돗자리를 펴놓고 음식을 차리고 잔을 올리는데 언뜻 보면 제사지내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그리하여 이를 다른 말로 산제사라고 한다.

일련의 사회생활에서 은퇴하여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에 나갈 준비를 하고, 안방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사랑으로 넘어간다. 재산도 물려주고, 곳간열쇠도 넘겨준다. 이것이 농경시대의 은퇴이며, 죽음의 의례 중의 하나이다.

회갑잔치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속하지 않는 효도잔치의 한 가지가 되는데, 이 것이 바로 죽음의 준비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회갑을 넘긴 사람은 손자들을 데리고 나가 교육을 하고 윤달을 택해 수의를 만들고, 치관을 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지금은 수명이 늘어나 회갑잔치는 거의 하지 않고 칠순잔치로 넘어갔지만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면 수를 다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의식적이며 의례적인 이런 산제사 외에 현실적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죽음은 예비가 불가능하다. 문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있다. 죽는 것은 예비할 수 없으므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출생과 죽음을 비교해서 보자.

출생은 예비가 가능하지만, 죽음은 예비가 불가능하다. 사람이 태어나는 일은 예비가 가능하니 식구들이 준비를 했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목욕을 시키고 강포에 싼다. 사람이 죽어도 염습을 하고 씻기고 작은 이불로 싸는 소렴을 거쳐 큰 이불로 싸는 대렴을 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이 같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안방의 아랫목에서 태어났다. 옛날에는 죽을 때가 되면 안방 아랫목에 눕혔다. 태어나는 장소가 죽는 장소가 된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삼칠일 친다. 상여를 질 때 횟소리를 메기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모두 스물 한 명이 일을 한다. 은정(隱丁)이라하는 못을 박을 때도 스물 한 개의 못을 박는다. 예전에 큰 배는 스물 한 명이 노를 저었다. 21이라는 숫자는 전통사회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1년은 원래 360일인데 이는 자연현상과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아 5일을 더해야 한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5일과 1/4일을 더해야 한다. 이 계산법은 복잡하기 때문에 1/4를 매해 더하지 않고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만들어 계산을 맞추는 것이다. 5일을 네 번 더하고 4분의 1을 네 번 더하면 21이 된다. 삼과 칠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21은 역법상 계산의 의미로 불완전한 역법을 완전케 해주는 기능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100일이 되었을 때 백일잔치를 한다. 이 백일잔치에는 백설기를 돌리는데, 백(百)자와 백(白)자의 중의적 표현을 더하고, 설(舌)자를 쓴다. 이는 여러 번 혀가 움직인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유명(有名)이 된다는 뜻이다. 이름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백일이 되면 이름을 짓게 된다. 백일을 버텼으니 살았다고 보는 것이며, 이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나서도 백일(百日)이 지나면 졸곡(卒哭)을 한다. 백일이 지나 졸곡을 하면 흉례(凶禮)에서 길례(吉禮)로 바뀐다. 지금은 유명무실화된 가정의례준칙에서도 백일이 탈상의 기준이 된다. 3년상은 세종때 생긴 것이다. 원경왕후가 죽고 난 뒤 세종이 백일탈상을 너무 아쉬워하자, 황희가 3년상을 제안했는데 이후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백일을 지난 사람이 성장을 하여 맞는 첫 예(禮)가 관례(冠禮), 성년식이다.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여자는 비녀를 꽂는다. 노동의 의미에서는 장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남자들의 관례에서는 마을 어귀에 있는 큰 돌을 들어 어깨에 올려야 반품에서 온품이 되었다고 본다. 여자들은 초경을 하면 혼인을 준비할 수 있게 되는데 여자는 관례라 하지 않고 계례(笄禮)라 한다.

이때부터 남자들은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날 수 있고, 술을 마실 수 있고 자(字)를 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어린 시절이 끝났다는 의미를 갖는다. 관례를 치른 후 혼인을 약속하면 서로 사주단자를 보내고 신부댁에서 길일을 택해 신랑댁에 보낸다. 납패라고 하여 신랑댁에서 간단한 선물을 보낸다.

혼인식 때 술을 나눠 마시는 것은 합궁을 의미하고 시아버지에게 밤과 대추를, 시어머니에게 닭을 올린다. 혼인례가 끝나면 신부댁으로 가고 3년을 산다. 신부댁으로 갈 때 신부도, 신랑도 모두 가마를 타고 간다. 가마는 4명이 드는 것을 탔다. 다시 신랑댁으로 돌아와 평생을 보내게 된다.

관혼상제가 인간의 기본 의례였는데 이 중 혼인의 다음에 오는 것이 상례이다.

사람이 죽는 것이 상례인데, 안방 아랫목에서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고 매장을 한 뒤 혼을 다시 모셔오는 절차가 있었다. 혼백상자를 가져와 상청에 모시고 살아있는 것처럼 아침에 밥을 올리고 저녁에 밥을 올리는, 상식을 올리는 의식을 갖췄다.

죽음을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임금이 죽으면 붕(崩), 제후가 죽으면 훙(薨), 일반인이 죽으면 졸(卒), 가장 보편적인 말로는 죽었다, 사(死)를 썼고, 비하하는 말로 뒈지다쯤에 해당되는 폐(廢)라는 말도 썼다. 귀양을 가 위리안치에 봉하는 것도 폐인(廢人)이라 칭했는데 살아있으나 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을 썼다. 이는 혼은 날아가고 육신은 흩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사상 앞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혼을 불러오는 행위이며, 술을 땅에 붓는 것은 육신을 불러 모으는 것이 된다.

(1) 임종(臨終)

가족이나 가까운 혈족이 운명(殞命)할 때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자가 평소에 입던 옷 중에서 흰색이나 엷은 색의 깨끗한 옷을 골라 갈아 입히고 거처하던 방과 운명한 뒤 모실 방도 깨끗하게 치워 둔다.

유언(遺言)이 있으면 침착한 마음으로 기록하거나 녹음해 두고, 병자가 죽기 전에 가장보고 싶어하는 친족 친지에게 속히 연락하여 운명을 지켜볼 수 있도록 손을 써야 한다.

임종단계에 들어가면 바깥에 있던 사람을 안방 아랫목으로 눕힌다. 집안의 중심은 안방이며, 안방에 모시는 것을 천거정침(天居停寢)이라고 한다.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두고 호흡의 기식을 보며 인중을 살펴 숨이 끊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기식이 끊어지면 사람이 완전하게 죽었다고 본다. 북쪽에 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초혼(招䰟)을 하게 되는데 이를 복복(復復)혹은 고복(皐復)이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 고인이 입을 새 옷을 줄 테니 영혼이 다시 들어오라고 부르는 의례이다. 기록에 있는 의식이나 대부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정형화된 형식이 있으나 지방마다 그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초혼을 하고 날 때가 되면 몸이 경직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사자상을 차린다. 사자상은 문밖에 신발을 세 켤레 두고, 밥도 세 공기, 간장도 세 종지, 물도 세 대접을 준비한다. 저승사자는 보통 삼사(三使者)자라고 하여 세 명이 움직이고 삼성이라는 신과 함께 혼을 데리러 온다.

(2) 수시(收屍)

먼저 눈을 곱게 감도록 쓸어 내리고 몸을 반듯하게 한 다음 손과 발을 매만져 가지런히 한다. 머리를 약간 높게 하여 괴고, 깨끗한 솜으로 코와 귀를 막는다. 이를 수시 또는 정제수시(整齊收屍)라 한다. 얼굴에 백포를 씌우고 홑이불을 머리까지 덮은 뒤 병풍이나 장막으로 가린다.

사자상을 차린 후에 시신을 곧게 편다. 이를 수시라고 한다. 몸을 잘 펴서 칠성판이라는 판 위에 올린다. 북두칠성을 본떠서 만들었다하는데 시신에서 나온 분비물을 걸러내고 잡귀를 쫒기 위해 구멍을 일곱 개 낸 판이다. 이는 염습을 위해 몸을 정리하는 것이다.

(3) 발상(發喪)

초상을 알리고 상례를 시작하는 절차이다.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곧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근신하며 애도하되, 호곡은 삼간다. 흔히 ‘謹弔’라고 쓰인 등을 달아 놓거나 ‘喪中’또는 ‘忌中’이라 쓰인 네모난 종이를 대문에 붙여 초상을 알린다.

이후 발상(發喪)이 이어지는데 여기부터 의례적인 행위가 시작된다. 곡을 하는 것도 아이고, 에고라는 소리를 넣어서 해야 한다. 발상(發喪)은 상장례가 바뀌는 단계를 말한다. 장례는 임종의 단계가 지나면 그 주체가 바뀌어 상례에서 장례로 전환된다.

(4) 부고(訃告)

호상은 상주와 의논하여 고인이나 상제와 가까운 친척과 친지에게 부고를 낸다. 부고에는 반드시 장일과 장지를 기록해야 한다. 가정의례 준칙에는 인쇄물에 의한 개별고지는 금지되어 있다. 다만 구두(口頭)나 사신(私信)으로 알리는 것은 허용된다.

(5) 염습(殮襲)

운명한지 만 하루가 지나면 시신을 깨끗이 닦고 수의(壽衣)를 입힌다.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염습을 한다. 우선 목욕물과 수건을 준비하고, 여러벌의 수의를 깨끗이 닦은 후 겹쳐진 옷을 아래옷부터 웃옷의 차례로 입힌다. 옷고름은 매지 않으며, 옷깃은 산사람과 반대로 오른쪽으로 여민다. 옷을 다 입히면 손발을 가지런히 놓고 이불로 싼 뒤 가는 베로 죄어 맨다.

염습부터 살아있는 사람이 주체가 되기 시작한다. 베옷을 입히는 것은 오래된 풍속이 아니고 옛 시신을 발굴해보면 대체적으로 평상복을 입혀 묻었다. 관료는 관복을 입히고 관료가 아닌 사람들은 평소에 입던 옷 중 깨끗한 것을 골라 입혔다. 염은 오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 작업에 쓰이는 솜을 말한다. 이 때 빈곳을 채운다는 의미로 반함을 하는데 씻은 쌀이나 구슬을 죽은 사람의 입에 물리는 일이다. 이 쌀은 바로 사람의 몸을 의미한다.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면 시반현상이 일어나고 몸이 부패하기 시작한다고 보고 염습을 진행한다. 씻겨서 옷을 입히는 절차를 보면 사람이 태어났을 때와 같다. 여자는 여자가 하고 남자는 남자가 하는 식으로 현대의 절차가 바뀌었다. 입관을 한 뒤 주검은 무덤으로, 즉 장지로 가게 된다. 상례는 발상, 상주들, 즉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이며, 장례는 매장절차를 말한다.

(6) 입관(入棺)

염습이 끝나면 곧 입관한다. 이때 시신과 관 벽 사이의 공간을 깨끗한 벽지나 마포(麻布) 등으로 꼭꼭 채워 시신이 관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망인이 입던 옷을 둘둘 말아서 빈 곳을 채우기도 한다. 시신을 고정시키고 홑이불로 덮고 관뚜껑을 덮은 다음 은정(隱釘)을 박는다.

그리고 관 위에 먹으로 ‘○○(직함)○○(본관)○○○(성명)의 널’, 여자의 경우는 ‘○人○○(본관)○씨의 널’이라 쓰고, 장지(壯紙)로 싼 뒤 노끈으로 묶는다. 입관이 끝나면 관 밑에 나무토막을 깔고 안치한 다음 홑이불(관보)로 덮어 둔다. 관은 병풍으로 가린다.

(7) 성복(成服)

입관이 끝나고 영좌를 마련한 뒤 상제(喪制)와 복인(服人)은 성복을 한다. 성복이란 정식으로 상복을 입는다는 뜻이다. 요즘은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을 입지 않고 남자는 검은 양복에 무늬없는 흰 와이셔츠를 입고 검은 넥타이를 매며, 여자는 희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흰색 버선과 고무신을 신는다.

(8) 발인(發靷)

영구가 집을 떠나는 절차이다. 발인에 앞서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린다. 이를 발인제라 한다.

(9) 운구(運柩)

발인제가 끝난 뒤 영구를 장지나 화장장까지 장의차나 상여로 운반하는 절차이다. 장의차를 이용할 때 상제는 영구를 차에 싣는 것을 지켜본다. 승차 때는 영정, 명정, 상제, 조객의 순으로 오른다. 상여를 이용할 때는 영정, 명정, 영구, 상제, 조객의 순으로 행렬을 지어 간다.

(10) 하관(下棺)

장지에 도착하면 장의차나 상여에서 관을 내려 광중(壙中)에 넣는다. 하관때는 상주와 복인이 참여하되 곡은 하지 않는다. 광중이란 관을 묻기 위하여 파놓은 구덩이이다. 관을 들어 수평이 되게 하여 좌향(坐向)을 맞춘 다음 반듯하게 내려놓고 명정을 관위에 덮는다. 그 다음에는 횡대를 차례로 가로 걸친다. 이때 상주는 ‘취토(取土)’를 세 번 외치면서 흙을 관위에 세 번 뿌린다.

기존에 있는 무덤이나 묘지가 진짜일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장례는 풍장이 많았다. 시신을 나무에 매달아 바람에 의탁한 후 풍화가 되면 뼈만 추려 항아리속에 넣었다가 땅에 내려놓고 풀로 덮거나 가매장을 하여 탈골이 될 때까지 기다려 뼈만 다시 묻었다고 전한다. 여기서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조선조에는 특정 계급만 의례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일반 백성들은 풍장의 풍습을 유지했을 것이라 본다.

한국의 장례는 풍수와 관련하여 탈관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관에 쓰는 널과 탈관문제는 기본적으로 뼈가 잘 산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동남아의 아열대기후는 부패가 잘 안되기 때문에 주로 화장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뼈의 산화가 늦어지는 지역에서는 탈관을 하여 하관을 했다.

명당지혈을 찾는다는 얘기에 의문이 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대부분 왕족을 중심으로 한 최상류층의 의례만 남아있을 뿐 일반인들의 장례문화는 거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풍수에 따라 명당을 찾는다는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보급된 일로 추정하는 것이다.

(11) 성분(成墳)

상주의 취토가 끝나면 석회와 흙을 섞어서 관을 완전히 덮는다. 이때 빨리 굳도록 물을 조금식 끼얹고 발로 밟아 다진다. 평토를 한 다음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고 잔디를 입힌다. 지석(誌石)은 평토가 끝난 뒤 무덤의 오른쪽 아래에 묻는다. 나중에 봉분이 허물어지더라도 누구의 묘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2) 위령제(慰靈祭)

성분이 끝나면 묘소 앞으로 영좌를 옮기고 간소하게 제수를 차린 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화장을 했을 때에는 영좌를 유골함으로 대신하여 제사를 지낸다.

상주는 특별한 지팡이를 짚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나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대나무의 상징은 하늘을 상징하여 동그랗다. 고통을 당해 속이 비었다는 의미가 있다. 대나무의 마디부분은 세(世)라고 하고 마디와 마디 사이는 대(代)라고 하는데 세대차이의 어원이 된다. 어머니는 고통을 당해 단단하다는 의미이며 땅으로 상징하여 나무를 네모낳게 깎는다. 오동나무의 오동(梧桐)의 동(桐)자가 동(同)과 음이 같은 것을 취해 아버지와 같이 슬퍼하라는 의미가 있다 하며 오동나무는 마디가 없어 두 사람을 모시지 않는다는 뜻을 말한다. 이는 천원지방(天元地方)의 의미를 띄는데,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난 것이 자연의 일부라 인정하고 무덤도 바닥은 네모지게 파고 봉분을 동그랗게 하는 이유가 된다.

(13) 삼우(三虞)

장례 후 3일째 되는 날에 첫 성묘를 하고 봉분이 잘 되어 있는지를 살피고 간단한 제사를 올린다. 이를 삼우라 한다. 요즘은 초우와 재우는 생략한다.

(14) 탈상(脫喪)

상기(喪期)가 끝나 복(服)을 벗는 절차이다. 탈상은 부모, 조부모, 배우자의 경우 별세한 날로부터 100일까지이고 그 밖의 경우는 장례일까지이다. 이때 지내는 제사가 탈상제인데 제사 지내는 방법은 기제(忌祭)에 준한다.

탈상은 상복을 벗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것을 주로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49제를 지내고 더러 100일 탈상도 있다.

우리나라는 점점 화장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땅을 사고 무덤을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인데 이처럼 의례를 바꾸는 것은 대체적으로 돈 때문이다.

이후에 남은 절차가 제례이다. 관혼상제의 마지막 부분이 제사인데 한국사회의 친족관계는 이 제사절차를 위해 정리되었다 봐야 한다.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형제간이 2촌이 된다.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4촌이 있고, 증조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6촌이, 고조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8촌이 있다. 동고조를 8촌까지로 명하는데 고조할아버지, 즉 위로 4대까지는 집안 사당에 모신다. 4대면 거의 100여년, 한 세기가 되고 4대가 넘어가면 사당에서 물러나 조상이 된다. 보통 4대조까지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지만 4대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없애지 않고 계속 봉사하는 신위를 위한 제사를 불천위제사라 부른다. 불천위는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적 학문적으로 뛰어난 경우에 한하여 자손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조상이다. 국가에서 명하거나 유림에서 지정하기도 하며 부부를 합동으로 제사지낸다.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신다고 하여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을 사용해 불천위제사(不遷位祭司)라 한다.

상장례와 제례에는 촌수에 따라 복식이 달라지고 불천위제사를 포함해 100년 이후의 조상을 모시는 지체는 집안이 아니라 문중이 된다. 죽은 자의 무덤, 산소가 주체가 되고 죽은 사람의 집이라 하며 무덤을 유택(幽宅)이라 한다.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를 선물(膳物)이라 한다. 이 음식을 할 때 파와 마늘은 쓰지 않는다. 오로지 간장만 사용하는데 이는 한 집안은 한 가지 맛의 장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 집안이라도 각자의 입맛이 다르니 마무리 양념은 각자 집에 가져가 조리해서 먹으라는 뜻이다. 국가의 제사나 향교의 제사는 간장도 쓰지 않고 전혀 간을 하지 않는다. 제사의 음식은 궁극적으로 모인 제례의 주체들이 먹을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갑오경장 이후 신분제도를 철폐하여 4대봉사까지만 하도록 정리하였고 제사는 기본적으로 살아있을 때 얼굴을 본 사람까지만 지내게 되었다. 일반사람은 대부분 자기 부모님의 제사만 지내는 편이다.

  • 품격 있는 죽음

유교에서 가장 이상향으로 보는 것은 요순시대이다.

요순시대는 집안이 갖추어지고, 깨끗한 옷을 입고,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처자식을 먹일 수 있고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사회였다고 한다. 이런 시대를 소강이라고 한다. 그 다음 단계를 대동사회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시대를 꿈꾸는 것이다.

인간은 행불행을 논하기 어렵고 하늘의 도가 옳고 그른지 정의내릴 수 없으나 인간이 지향하는 지점은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인간이 하는 근심걱정이 하루에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처럼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인중의 아래에서 일어나는 먹고 본능을 채우는 일부터 인중의 위에서 일어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깨닫는 일까지 사람의 인생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스티븐 호킹은 사람의 죽음이 컴퓨터가 꺼지는 것과 같은 구조라 하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마음 심(心)자에도 어떤 파장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과연 단순한 기계의 종료로 치부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죽음을 이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끝없는 고행으로 이어져왔다. 인간은 각자의 수양을 통해 인간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데 사후세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행불행을 뛰어넘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몸은 못 움직이고 의식은 남아있을 때 우리는 품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고통을 인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삶과 죽음은 새끼줄처럼 하나로 꼬여 있어서 안이 행(幸)이면 밖이 불행(不幸)일 수 있고 안이 불행이어도 밖이 행일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심상(心相)중에 자존심,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은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를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늘 짐승과 사람의 경계, 사람과 신의 경계에 놓여 있다.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남는 마지막 순간, 그 순간을 숭고하게 남길 필요가 있다. 비록 육신은 이 세계를 떠나가지만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을 지켜왔던 혼은 자손과 자손을 통해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8월 10일

용산구 동자동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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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1호실부터 14호실
2층, 2호실부터 28호실
스물 여덟명이 머리위에 머리를 머리 옆에 머리를 포개고 살던 고시원 자리는 작은 놀이터가 되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은 매일 목숨을 거는 일,
수명을 내놓고 돈으로 바꿔오는 일,
그 흔적을 덮어버린 깔끔한 어린이 놀이터라니,

도시개발은 내 삶을 부정하고
나의 지난한 세월을 모욕한다.

2015. 11. 3. 저녁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18-37이었던 자리.

바위앞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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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동자동 18번지에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저 바위를 건드리지 않았고
빤지름한 건물을 내처 올리면서도 저 바위만은 어쩌지 않았다.바위를 바라보고 섰는데
그 아래서 술을 먹던 남자가 나를 부른다.
“작가님!”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그래도 돼요?”
“예 한 장 찍어주세요.”

그는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되면 사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자기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어디선가 보았다고 했다.
나보고 TV에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서울역 광장에서 본 거 같다고도 했다.
자기는 노숙자라고 말했다.
자기같은 사람을 많이 찍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는 인터넷에 얼굴이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오늘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자면 된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던 바위 앞에 앉아
깨끗한 신발을 신고 술을 마시던 그에게
나는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여기 있을 거라고 말했다.

2015. 11. 4. 

게임 규제는 과연 게임을 규제했는가

2004년 10월 몇몇 시민단체들이 ‘청소년 수면권 확보를 위한 대책마련 포럼’을 결성해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게임의 셧다운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2005년 7월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처음으로 셧다운 제도 입법이 시도되었으나 게임 업계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 충돌 문제로 입법은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에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 방지를 목적으로 ‘정보통신 서비스 중독의 예방과 해소에 관한 법률’이 발의(대표발의 한나라당 김희정)되어 장시간 몰입 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의문구와 서비스 이용을 시작한 지 특정 시간이 경과하면 경고문구를 표시하며, 장시간 이용 시 페널티를 부과하며 특히 청소년 이용자에 한해 그 친권자,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의 요청에 따라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법으로 담고자 했으나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무산되었다.

2008년 7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한나라당 김재경)이 발의되어, 온라인 게임 업체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의 제공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해당 온라인 게임 업체를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2009년 4월에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표발의 통합민주당 최영희)이 발의되었고, 법안의 내용은 밤12시부터 오전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 금지, 청소년 연령 확인 및 게임 가입시 친권자 동의, 게임에 인터넷 게임 중독 경고 문구 표시 등이며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김재경 의원의 법안과 유사하며 더 상세했다.

2010년 6월 3일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정안와 여성가족부의 개정안을 합의하여, 셧다운제 도입의 중재안을 마련하였고, 이후 2011년 4월 29일에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에 ‘셧다운제’ 도입을 골자로 대상을 만 16세 미만으로 제한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 법률안’을 상정, 통과되었다.

2011년 1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셧다운 제도가 시행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1월까지 계도 기간을 결정하였다.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셧다운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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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셧다운제에 대한 설명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중 유일하게 청소년이라는 특정 계층에게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적 조치를 실행하였다. 중국이 법적으로 게임을 도박등 규제대상으로 규정한 적이 있지만, 특정 연령계층에 대한 법률적 제한이 실시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최초에 이 법안을 제안한 청소년단체, 라는 곳에서는 “수면권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웠다. 이는 청소년들의 잠잘 권리를 보장한다는 말이다.

특정한 계층이, 또 다른 특정계층의 수면권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법적으로 어떠한 계층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연령대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꽤 많은 나라에서 동일하게 연령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이나, 미성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공연관람물에 대한 등급제를 실시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허용하고 어떤 계층에게는 관람을 금지하는 일은 이미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계층의 구분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괄목한만한 저항이 없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대부분의 성인들은 청소년 셧다운제가 필요하다고 동의한 편이며, 게다가 이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셧다운제를 대부분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보고 있지만 이를 단순히 게임에 대한 규제로 볼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핵없는 미래를 물려주자”는 구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 있다. 청소년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요청한 적이 없는데, 청소년을 대상화하며 보호해야 할 계층으로 규정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매우 당연하게, 청소년과 미성년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두고 그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고 펼쳐왔으며 국가제도 아래 모든 기관이 이 기준을 아무 의심 없이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라는 명목은 그들이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을 함의하며, 보호받을만한 대상이라는 것은 미약하고 부족하다는 뜻을 포함한다. 청소년 셧다운제 제안의견 중에는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정규교육에서 사춘기 시절에 우리 자신을 타자화하며 학습받은 것 중에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명제에는 “사춘기는 사리판단이 부족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시기”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청소년은 사리판단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두 미성숙한가?

미성년은 오히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엄격하다. 나는 그중 가장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시기를 초등학교 입학 직전으로 본다. 이후 아이들은 자라나며 세상을 접하게 되고 여러 가지 도덕과 윤리를 어겨도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소년기의 돌출적인 행동은 사리판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과잉과 뇌구조의 재편성으로 인한 완급조절의 실패로 보이지만 사실은 청소년계층에게 가해지는 과다한 폭력과 통제가 그 원인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청소년계층의 사리판단력은 성인과 비교해서 모자람이 없다. 범죄자의 대다수는 성인이다. 법이라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 연령층이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기본 행동 양식인데 이를 가장 많이 어기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에게 “너희들은 사리판단력이 부족하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셧다운제를 포함한 게임에 대한 규제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화하며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그들의 특성을 규정하고 그들의 개성을 통제하려는 습성이다. 온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암묵적 동의에 대한 침묵이 이어졌으며 그간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지 못한 결과물이다.

이 사회는 미성년자를 통제하려는 정책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다. 미성년자들이 펼치는 모든 행동은 새로운 것들이다. 구세대의 문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때마다 성인들은 미성년자들의 “미성숙함”이 기괴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고 비아냥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 학생들의 짧은 교복치마에 대해 성인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들은 볼썽사나운 교복개조라고 폄하하며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 수 없는 걸그룹들을 창조해냈다. 걸그룹들은 일정 구성원이 미성년자이나 철저하게 성을 상품화하는데 앞장서왔고 그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재능을 상업화하고 대중 앞에 내세운 것은 분명히 어른들이었다.

교복치마 논쟁이 정신없을 때 삼선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문화가 비난을 받았다. 그들이 큰돈을 들여 사 입는다는 노스페이스 파카에 대해서도 국가의 미래를 운운하며 걱정들을 토해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던 어른들은 앞장서서 아웃도어 시장을 전세계 어디에도 유래없는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어냈으며, 삼선슬리퍼에 대해서 안전을 문제삼던 어른들은 각종 대형사고를 만들어 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아웃도어 사업을 일으킨 것도, 그 시장을 키운 것도, 인재가 아니라고 우길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만든 것도 모두 성인들인데 그들은 단지 아이들이 먼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때마다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미성년자를 비난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먼저 가는 자의 머리채를 잡아 당겨 주저앉히고 왜 앞장서서 가느냐고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 양아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문화가 이 사회에 깊이 팽배해 있다. 미성년자들이 성인들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빠른 것은 유연하며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성인들은 낯선 것을 일단 터부시하며 두려워한 뒤 공격을 하다가 결국 그 문화를 광적으로 흡수하고 재생산하며 산업화한 다음 부를 축적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런 문화의 패턴이 이 사회에선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생각해보라.

청소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왜 비난을 하는지 “어른”이라는 자들의 솔직한 의견은 대부분 한가지로 모아진다.

“꼴 뵈기 싫어서.”

이는 낯설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경함에 대한 치졸한 반응일 뿐이다.

셧다운제와 청소년에 대한 게임규제 역시 다를 바 없다. 선거권을 가진 성인들이 규제하는 것은 단순히 게임이 아니며, 그들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는 데 진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규제하는 것은 새롭게 밀려들어오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본인들의 경직된 자아로 가득한 구태한 문화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세상의 많은 것들이 왜곡된다. 이는 사회뿐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가정에서 발생한 교육에 대한 강박이 바로 사회로 나아가 합리적이지 않은 법령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게임셧다운제를 비롯한 각종 청소년에 대한 규제인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 소감 (7월 14일분)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를 듣고

첫 강좌의 내용은 중독과 몰입이었다. 게임을 몰입이라 보지 않고 중독이라 폄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게임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경혁 선생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키워드 :

괄시와 굴욕의 역사.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게임은 태초부터 환영받은 적 없다.

Hell 조선이라는 용어도 게임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다양한 종류의 심층적인 게임을 잘 하지 않지만 간간히 기사를 검색하거나 게이머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항상 검색해서 알아내려 했던 덕인지 강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첫 강의는 우리가 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중독과 몰입이라는 단어는 비슷하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과학적으로 두 가지의 뇌 상태는 같을 수 있으나 이 사회의 언어로써는 부정적, 긍정적 효과를 동반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제 1강에서는 게임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는 중독, 혹은 몰입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기로 했다.

게임의 사전적 의미는 놀이다. 중국어에서는 게임을 유희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말하는 놀이의 범주는 상당히 여러 가지다. 게임은 놀이의 한 갈래이지만, 놀이의 한 갈래로 완전히 편입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은 명확히 말해 비디오게임이며, 이 비디오게임이 현재는 컴퓨터게임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은 모바일게임이라 하는데, 스마트폰도 말하자면 작은 컴퓨터와 다름없으므로 모바일게임 역시 컴퓨터게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초의 컴퓨터게임은 1958년 미국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주거니 받거니 공을 치는 화면이 컴퓨터로 만들어졌고 부룩 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이는 비디오게임, 컴퓨터게임의 역사를 찾아봤을 때 나오는 정설이다. 그 이전에 어떤 개인이 어디선가 혼자 만들어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전산시스템의 수준으로 봐서 한 개인이 혼자 만들고 놀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논다, 컴퓨터게임의 출발은 놀기 위한 것이었을 거다. 어쩌면 그 놀이를 위장해 사실상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전략시뮬레이션은 전쟁전략을 짜기에 적당했을 것이고 컴퓨터의 능력을 평가하고자 퍼즐게임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임을 놀이, 여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유사 이래 인간들이 찾아내는 놀이가 환영받거나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인간은 언제나 승부를 가르기 위해, 상징적인 경쟁을 하기 위해, 또는 개인이 즐거움을 찾기 위해 어떤 놀이를 찾아왔다. 이 놀이는 대부분 현재 문화예술의 갈래가 되었다. 오래 전 구텐베르크 활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쉽게 손에 책을 넣게 되었을 때 어떤 나라에서는 마구잡이로 베껴 퍼져나가는 소설이 사람들의 정서를 해친다고도 하였다.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움직이는 그림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 말했다. 사진도 마찬가지, 그림의 영역을 침탈당한 자들은 사진을 비난했다. 만화도 그러했고 세상에 새롭게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과 놀이는 처음엔 비난으로 시작했다. 왜 그랬던 걸까.

전쟁이후 국가재건에 열을 올리던 국내사정은 차치하고 이건 단순한 억압의 문제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각 매체마다 다른 이유가 있으니 일일이 여기서 따지긴 어려워도 대부분 새로운 문물의 등장은 기존 문물의 영역을 침범해왔고 파이를 나눠야 했다. 인간이란 종은 애시당초 보수적이라 새로운 물결이 거대하게 몰려올 때 불안과 위기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지라 새로운 매체, 새로운 문물은 거의 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게임은 비디오게임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넘어가고 현재는 모바일게임까지 발전해왔다. 게임이라는 건 상호작용, Digital interactive Contents가 중심이다. 기존의 게임, 놀이도 상호작용이 중심이라면 게임은 digital 이라는 영역이 포함되어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져 더 풍부한 선택지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의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디지털 상호작용이 게임의 기본이라는 얘기를 듣자, 화면으로 넘어오기 전의 게임과 비교를 해봤다. 오래전 모니터없이 실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던 상호작용의 게임은 게임의 룰을 참가자들이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다.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게임은 제작자와 제공자가 있고, 디지털이라는 영역이 개임했기 때문에 게임의 룰도 그 계산 안에서 이루어진다. 비디오게임(모니터와 컴퓨터 게임을 이하 비디오게임이라고 칭하겠다)은 게임의 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각본에 의해 제작해야 하고 수많은 선택지를 만드는 것 하나 하나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게임안에서 개별적으로 최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개발단계에서 이미 완성품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임의 선택은 한계가 있다. 각종 게임들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패치를 만들어도 그 역시 개발자, 즉 생산주체에게 게임의 규칙을 정할 권력이 주어진다.

비디오게임이 사용자의 적극적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게임은 각종 매체와 예술장르를 포괄하여 발전한다. 마치 블랙홀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예술의 영역을 흡수하여 발전한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게임OST가 주목을 받던 때가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던 사람들은 게임의 현란한 미적 기술과 아름다운 음악이 동반된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새로운 매체가 탄생했다고 환영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게임은 최대한 사용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람들을 매혹할 만한 수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은 매혹의 기술이 돋보여야 살아남는 장르이다. 그게 어떤 방향이건 간에 생산자의 취향에 맞는 소비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계층이 넓고 깊게 빠져들수록 문화예술의 생산자는 흥하게 된다. 게임은 복합적인 문화매체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각본이 필요하다. 게임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다. 무모한 퍼즐게임은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못한다. 게임의 기본은 이야기구조의 흥미로움이다. 이야기로 사람을 매혹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게임은 다른 장르를 가져왔다. 중독성이 있는 효과음으로 시작한 단순한 게임들이 유려한 음악으로 스토리에 힘을 북돋는다. 또한 미술역시 사실적 기법을 동원하거나 단순화한 상징적인 것 여러 가지를 보태 가장 아름답게, 가장 눈에 띄기 쉽게, 소비계층이 가장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구현한다. 게다가 사용자의 적극적 상호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연극적 요소를 배치한다.

1강에서 이경혁씨는 게임은 시간과 공간을 현실과 다르게 유리되어 있다고 했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고, 장소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과 그 안에 주어지는 모든 미장센은 역할이 있는 소품들로 채워진다. 현실세계에서는 당장의 어떤 사건을 이루어내기 위해 모든 사물이 그 역할을 하지 않지만, 게임에서 보이는 공간의 사물들은 대부분 어떤 임무를 띠고 있다. 목적성이 강한 장소가 주어지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몰입도를 최적화하기 위한 계산된 시간일 테고 장소 역시 몰입도를 이끌기 위한 장치로 꾸며져 있다. 말하자면 게임속의 모든 사물과 세계는 필요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 그저 무용의 물체는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유저들은 게임공간속에 무의미한 사물을 발견했을 때 황당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각종 도구들을 생산자가 이미 적절하게 배치했을 거라고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게임의 세계관은 유용한 사물과 유용한 시간, 유용한 공간의 연속이다. 일상생활에서처럼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되는 것은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과 사용자간에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인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몰입이 탄생한다는 것이 이경혁씨의 주장이다.

생산자의 능력에 따라서겠지만 사실상 게임은 그 규칙과 세계가 정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영역이다. 무한히 확장하느냐는 개발자, 즉 생산주체가 정할 수 있다. 어쩌면 사용자중에 무한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애쓰는 주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그런 양상을 보이는데, 기초적으로 개발사에서 제공한 영역을 넘어서 사용자들이 끊임없이 변형판을 만들어 게이머들 사이에 상호 제공한다. 이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개발과 비판, 사용의 영역을 마구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비디오게임은 앞서 말한 “생산자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게임의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체되고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 흔해지면 그 때는 비디오게임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지 지금 내 수준으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본 강좌에서 짚은 부분은 생산과 소비 주체의 혼재가 아니라 사행성 게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게임이 모바일형태로 더욱 개인과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모바일게임은 돈과 더 가까워졌다. 지문인식이 가능한 경우 신용정보를 등록해두면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지출이 가능해졌다. 결제가 간편해진다는 것은 소비가 더욱 쉬워진다는 말이다. 소비가 쉬워진 게임시장이 이런 기회를 간과할 리 없다.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은 어느 수준에 오르면 현금을 동원하지 않고는 레벨업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나, 현금이 있으면 더욱 쉬운 게임을 펼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평등의 수치가 가속화될수록 게임시장은 발전한다. IMF 시절 우리나라 e-sports가 가장 크게 성장했듯이, 그 때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탄생했고 PC방 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인간의 비겁함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적 원인이 매우 명백하다. 현실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를 얻기 어려워질 때 사람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수단을 택한다. 적어도 몇 백 시간 내에 한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그 쾌감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게임은 공들이고 시간 들인 만큼 댓가가 돌아오는 매우 평등한 매체였다.

모바일시장이 나타나면서 이 평등함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현질,이라고 하는 금융결제, 즉 돈을 가진 자가 더 앞서 나가는 게임의 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암담한 시대에 유일한 구원이었던 게임마저 더 이상 평등하지 않은 형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와 유리된 듯 보였던 게임은 현실과 매우 가까워졌고 이제는 개인의 손바닥 위로, 화장실 안으로 침대 머리맡으로 아주 은밀하게 진입해 들어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생산자들이 머리를 짜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다. 더욱 개인화된 게임은 밀실과 광장의 경계를 허물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현실과의 경계를 점점 낮추고 있다.

게임은 마치 자생적으로 점점 커져가는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유동체가 되었다.

단순히 화면 안에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던 게임은 이제 현실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며 그 영역을 계속해서 파괴해나가고 있다. 마치, 애니팡의 동물들이 줄을 지으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가듯이, 언젠가는 애니팡의 화면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처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게임의 확장력은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할 것이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노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던 시절을 지나, 남녀노소 막론하고 지하철에 앉아서도 뭔가를 터뜨리며 쉽게 웃고 쉽게 돈을 지불하는 때가 도래했다. 이제 여기서 게임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이 피시방으로 옮겨가고 피시방이 손바닥으로 들어온 시기처럼, 모바일게임의 급속한 성장으로 게임은 이제 또 다른 영역을 찾아 나설 것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어, 어떤 차원의 공간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고 할지, 그것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직 미지의 차원 – 우리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시공간 – 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제 1강 중독과 몰임 / 이경혁씨의 강의를 듣고

본 강의는 7월 14일부터 총 5강, 서울 종로구의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인문학협동조합의 기획강의입니다.

한심한 독서

1.
글자를 읽기 시작한 건 너댓살 무렵이다. 당시엔 그 나이에 글자를 읽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신동소리를 들었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동일하리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읽는 책이 국민서관의 <신데렐라>였다. 참으로 한심한 동화다.

7살엔 사촌오빠네서 얻어온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읽었다. 읽는 책인 줄 알았다.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48권짜리 위인전집을 읽었고 그 다음에 전래동화집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 읽었다 싶은 건 전래동화전집이었다. 나머지는 차라리 읽지 않고 나가 노는 게 나았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읽을 게 부족해 세로로 된 책이나 어른들 책도 읽었다. 선데이서울도 읽었고 뺑끼통도 조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세계걸작 다이제스트를 읽은 건 누군가 읽지 말라고 뺏었어야 했다.

초등학교 때 독서대회를 한 달간 했다. 상 받으려고 얇은 책만 골라 읽고 독후감을 날림으로 썼다. 한 달동안 53권을 읽고 전교 1등을 했다. 목적은 상장이었지 책 읽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때는 성경을 두 번쯤 읽고 휴거를 주장하던 다미선교회의 책과 두란노서원과 말씀사에서 나온 종교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성경을 읽은 것 외에, 쓰레기를 읽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차라리 연애나 하든가 연예인 팬질이 나았다.

진심으로 책을 읽은 건 중•고등학교 때였다. 한국근대문학을 많이 읽었고 정신세계사의 책을 읽고 몇 달을 앓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매일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운 주제에도 책은 읽었다. 무언가를 읽고 쓰는 일은 매우 당연한 일상이라 무시로 읽고 썼다. 쓰는 건 대부분 체계없는 일기였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건너간 다음에도 교보에 해외 책배송이 생기자마자 생활비를 탕진해가며 책을 샀고 한국에 들를 때마다 40kg를 채워 배낭에 넣어 지고 비행기를 탔다.

2.
문제는 이때쯤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싶었던 게 아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읽으며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는데 독후감을 위해 책을 읽게 되었다.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쉽고 흔하게 말하는 트라우마나 컴플렉스 따위였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과 책을 골랐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책 사는 일이 더 쉬워졌다. 돈을 벌지 않아도 책 살 돈이 생긴 건 노다지 금광을 발굴한 셈이었다. 책을 읽으며 엑셀에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가까이 있었으나 ‘구멍난 가슴’을 메우기 위해 책을 사제꼈다. 결혼 후 2년차부터 읽는 책보다 사는 책이 많아졌고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책 집착은 도를 넘어섰다.

엑셀에 칸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쉽고 얇은 책을 읽어야했다. 1년 목표를 100권으로 잡고 2006년부터 꾸준히 목표를 달성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년 2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리스트를 정리했다. 심할 때는 하루에 여러 권을 읽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 시기에 읽은 책은 대부분 글자만 읽었다. 책을 더 보관할 수 없어서 박스채 팔거나 여기저기에 기증을 했다.

책 읽는 속도는 당연히 빨라졌고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어졌다. 책을 사들이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실 알라딘에서 책을 산 게 몇 년 안된다. 이 시대의 지식분자들은 다 거기서 책을 사는 거 같아서 거기서 산 것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책을 읽고 싶어서 읽은 게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에게 나는 이만큼 읽었다고, 이런 것도 읽는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내면에 곯아가는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앉아서 활자만 읽었다.
오래전에 그만둔 방송통신대에 복학을 했다가 1학기만에 그만두었다. 책 읽을 시간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런닝머신 위에서도 책을 읽었다. 실내 사이클 위에서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수영장을 다니지 않았고 언제나 가방엔 한 권 이상의 책이 있었다.

집안은 책으로 점점 좁아져갔고 알라딘에 지불하는 돈은 점점 많아졌다. 그럴수록, 머릿속에 남은 건 없어졌다.

집주인과의 갈등도 본격화되었다. 두 번 읽지 않은 책을 사들이는 이유에 대해 추궁했다. 매달 몇 십만원 어치의 책을 사서 쌓아두었다가 다시 어디론가 처박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책을 사들이는 일에도 집중했다.
그저 다 돈지랄이었다.

3.
2013년부터 엑셀에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그만두었다. 제일 소중하게 여기던 파일인데 지금은 어디다 처박아뒀는지도 모른다.
읽는 책의 권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책을 사는 수량은 여전했다. 어설프지만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필요한 책은 더 늘어났다.

여전히 책을 사고 있었지만 책에 집착하느라 일상을 무너뜨리는 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대해 몇 명의 정신과 전문의와 진지하게 상담도 했다. 술을 못 마시면 활자를 읽었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의 위기가 오면 급격하게 책 구매액이 늘어났다. 택배가 올 때가 되면 뭘 샀는지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모조리 다 책값으로 탕진했다. 그 책들이 지금 다 우리집과 퇴직한 회사의 작은 도서관 일부에 있다.

견딜 수 없어서 대형 붙박이 책장을 짰다. 도서대여점같은 슬라이딩으로 했어야 했는데 만드는 분이 벽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 했다. 도서대여점의 책은 얇고 가볍지만 내 책들은 그러하지 않으므로.

도서정가제 시행 한달전, 물욕이 폭발했다. 알라딘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무이자 할부가 잘 되는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폭풍처럼 택배가 밀려들었다. 알라딘 배송 아저씨는 급기야 짜증을 내기도 했다. 책 좀 나눠서 시키라고 박스를 던져놓고 가기도 했고 도서정가제가 언제 끝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 때 긁은 카드값을 나는 아직도 갚고 있다.

지금도 내 서재와 마루와 아이의 방은 당연하고, 거실의 테이블 위, 소파위, 안방의 침대 옆, 화장대 위, 식탁 위에도 책이 있다. 읽다 던져버린 책, 읽으려고 꺼내 둔 책, 읽고 안 치운 책.

올 해초, 1월달에 갈급증이 다시 생겨 한 달동안 빨리 읽을 수 있는 만화책과 동화책을 포함해 40여권의 책을 읽고 리스트만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3월부터 거의 책을 읽지 않고 근 10여년만에 최소수량을 매달 갱신하며 7월을 맞았다. 보름째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한 편 읽고 던져놓고 애니팡이나 하다가 이해가 안된 구절을 다시 들춰 읽고 단편 하나를 두 번 세 번씩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4.
누군가는 무슨 개소리냐고 했지만, 나는 학력컴플렉스와 지적컴플렉스가 심했다. 이게 과거형인 건 이제는 그 컴플렉스가 극복되어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갈고 닦는다. 우연히도 나는 그게 책이 되었다. 라면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읽듯이 수많은 활자를 읽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이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라 하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기억나는 스토리가 없고 핵심도 다 날렸다.

최근들어 글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나눌 사람이 생겼는데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천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사실은 한 권도 안 읽은 것 같다. 녹아내린 책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나 그거 읽었어.
나는 이것도 읽었어.
나 좀 봐줘.
나는 이걸 읽어.
나는 이만큼 읽었어.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허세를 부리고 지적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었지 주로 숫자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내면의 들키고 싶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직면하지 못해서 내내 활자속으로 도망다니기만 했다.

한심한 독서를 중단했다.
이제서야 책을 읽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놓친 부분이 없나 다시 읽고 문장을 곱씹어 보면서 가만히 여운을 느끼게 된 지금이, 이제서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게 된 셈이다.

어릴 때의 독서편력을 들은 정신과 전문의는 그랬다. 외로웠을 거라고. 방임이 있을 때 활자에 천착할 수 있다고. 아이들은 친구와 노는 게 재미있고 가족과 교감을 나누는 많은 활동이 더 즐거운 것이지 책만 쳐다보는 것은 결코 친구와 노는 만큼 재미있는 일은 아니라고. 동생은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렸고 나는 동생 옆에서 책을 읽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마흔이 인생의 중반이라면 여러 방면으로 판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달간 도서구입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제 활자에 대한 집착은 내 정서상태의 척도가 된다. 기억도 나지 않을 글을 과자봉지의 성분분석표를 보듯 읽는 짓을 그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기 전까지 못 읽고 가는 책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끝.

2015. 7. 8.

푸닥거리

1.

행동과 실천이 잘 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변한다고 누가 말했다.
계속해서 인지하게 되면 언젠가는 행동도 변하는 걸 스스로 체험했다는 사람이 한 말이다. 공부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텍스트 놓고 답을 도출하는 주입식, 암기식 기술적 공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학교에서의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내내 가짜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버렸다.

2.

가치를 가지고 해나가는 모든 일이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쇠귀에 경읽기도 하루 이틀이지 어떤 날은 너무 지친다고도 했다.
과연 세상이 좋아질까요? 그가 물었다.

세상은 결코 지금보다 대단히 좋아지진 않을 것이고 평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인간이 부지런히 가치를 위해 숭고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이유는 그저 도전하는 바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하겠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없고
백사람이 모여 백마디를 백년동안 외쳐, 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 말했다.
인간은 그만큼 미약한 것이니,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산을 폭파시키지 않고 돌을 지어 나르던 시지프를 이해할 수 있겠지.

3.

대부분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일.
외면해도 무관한 일.
내가 가진 것이 적지 않기에 대충 살아도 괜찮은 일.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시작하는 일은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일이다.

금요일날 본 연극 중 대사 몇 가지가 남았다.
습관대로 사는 인생 습관대로 살다가 아무 생각없이 죽는다고.
잡귀 들린 인생, 남을 원망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물질에 의존하는 이 모든 것이 잡귀라던 대사. 우리가 아는 정서적 문제를 예전엔 잡귀가 들려서 그랬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잡귀를 쫒으며 사는 일.
푸닥거리는 언제나 필요하다.

2015. 7. 12.

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9. 버터링 쿠키

금요일 독서클럽
오늘은 상담샘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찍 도착.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야기동화책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기대한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9장에 맞춰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맘을 비웠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나눠준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마을교육 방과후 활동엔 간식비가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버터링 쿠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다른 활동시간에 아이들이 먹은 것 같은 빈 박스가 쌓여있다. 오뜨, 마가레트같은 과자박스이다. 왜 아이들에겐 늘 달디단 과자와 설탕이 가득한 음료수를 간식으로 줘야 하나.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붙잡아매는 유혹거리를 보며 속이 불편했다. 내 새끼에게는 먹이려 하지 않는 과자를 숫자대로 나눠주려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았다.
이것부터 바꿔야겠다, 내년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아이들에게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가 나눠줄께요 라고 하며 손을 벌렸다.

은서가 울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은서의 섬세한 그림이 자꾸 맘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에 간 제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니랑 우격다짐을 하며 싸우던 하윤이의 그림책은 제니와 하윤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제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아이들은 꽤 많이 진도를 나가 많이 완성했다. 아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뒷문에 야구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민영이가 있었다.

몇 주전, 엄마가 방과후를 그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라 했다며 독서클럽을 그만두었다. 늘 무기력하던 민영이는 첫 날 독서실 구석에 앉아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민영이에게 선생님도 이 책 되게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었다. 캠코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신이 나서 방방 뜨던 민영이가 평소에 늘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도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어우 어쩐 일이야. 들어올래? 민영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빠?
민영이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학원 가야 되니?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들 만나러 왔어?
아녀. 민영이가 대답했다.
그냥 들렀어요.
지쳐서 금새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
집에 들었다가 영어학원 바로 가야 돼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민영이가 큐브블록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선생님꺼라며 따로 챙겨둔 버터링 7개를 크리넥스에 싸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민영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물을 먼저 주었더니 민영이가 물을 조금 마셨다.

버터링 쿠키를 받아든 민영이의 손이 너무 번잡했다.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들고 나와 버터링쿠키를 담아 주었다.

지금 가야 되니?
민영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인 듯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민영이를 뒤에서 살짝 안아들고 다섯걸음을 걸었다. 내 새끼는 40키로에 육박하는데 그보다 한 살 많은 민영이는 30kg남짓인 거 같았다.

우리, 다음 다음주까지 할꺼야.
시간 나면 또 놀러와.
민영이가 배꼽에 한 손을 대고 무겁게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는데 민영이가 뜨거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부모님이 늘 늦게 오세요. 무기력한 편이죠.’ 상담 선생님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눈물이 고여 선생님 책상에 있는 휴지를 얼른 뜯어 눈가에 대는데 아이들이 제가 그린 것들을 들고 와 떠들었다.
아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민영이가 모래위를 터덜거리며 지나갔다.

201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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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자단 3.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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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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