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포 주인

집을 나서면 삼거리가 있다. 늘 내가 보는 방향에는 오래된 동네서점을 사이에 둔 편의점 사잇길이다. 동네서점은 길거리 모퉁이에 있다. 서점 옆에는 20년은 되었음직한 자전거포가 있다.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이는 보조바퀴가 달린 토마스 자전거를 탔다. 1년이 지난 뒤 아이는 보조바퀴를 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작아진 자전거를 질질 끌고 자전거포에 갔다. 아저씨에게 보조바퀴를 떼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분홍색 알루미늄 자전거를 그 집에서 샀다. 아저씨는 그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건지 유난스럽게 강조했다. 길 건너 자전거전문점에서 샀던 28만원짜리 자전거를 도둑맞고 난 뒤였다. 일곱 살이 된 아이는 더 이상 토마스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아이의 키에 맞는 하얀 자전거를 사려고 했더니 아저씨가 토마스자전거를 가져오면 버려주겠다고 했다. 군데 군데 낡은 토마스자전거를 다시 질질 끌고 아저씨에게 갔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새 자전거를 팔았다. 며칠 뒤 그 자전거포에는 아이가 타던 토마스자전거가 말끔하게 고쳐져 걸려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는 아이의 자전거를 그 집에서 샀는데 녹이 슬어 있었다. 아이 아빠가 자전거포에 가서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 새 자전거로 바꿔왔다. 내 아이의 토마스자전거는 오래도록 팔리지 않았다.
 
겨울이 지날 때면 자전거는 뻑뻑해졌다. 가슴이 뻑뻑해진 걸 풀려면 자전거도 풀어야 했다. 봄이 되면 아저씨에게 가서 손을 봐달라고 하고 바람을 새로 넣었다. 가끔 미안한 마음에 자물쇠를 하나 더 사기도 했다. 올 봄은 어쩌다보니 온데간데 사라져 자전거를 베란다에 넣어놓고 꺼내지도 않았다. 지난 달 어느 휴일에 아이는 자전거 바람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포 아저씨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금새 다녀온 아이는 자전거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저씨가 문닫는 날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한 번 손 봐달라고 해야겠야지, 결심은 굳건하지 않아 미적거리다 5월 말이 되었다.
 
도서관에 책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자전거가게 셔터가 닫힌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1년 사이에 그 전과 다르게 더러 문이 닫혔던 거 같다. 자전거포는 밖에 자전거를 열 대 정도 세워놓고 몇 대는 걸어놓기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이 여간 성가시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포에 가까이 가자 상중이라는 글자가 쓰인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아저씨네 누가 돌아가셨나보다. 나는 한 두 걸음 옮기다가 다시 와서 그 글씨가 쓰인 색바랜 셔터가 맘에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저녁으로 냉면을 먹었는데 냉면집에서 녹슨자전거를 사서 남편이 한 판 붙었던, 그 언니를 만났다. 저녁나절 개를 데리고 아파트단지를 휘휘 돌며 전화통화를 했다. 냉면집에서 만난 언니도 어린 개를 데리고 나와 벤치에 같이 앉았다. 한참 다른 얘기를 하다 그 언니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자전거집 아저씨 죽었대.”
 
지난 주말 자전거포 주인은 응급실에 실려 갔다. 간경화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응급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는 고인이 되어버린 그 아저씨가 낮에도 항상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얼굴이 검게 변한 것도 떠올렸다. 언니는 그냥 햇볕에 그을린 것 같았다고 했고 나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색과 간이 안 좋은 사람의 낯빛은 다르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낮에 그 자전거포에서 아저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택시기사가 운전을 해서 가는 걸 보고 어머어머 미쳤나봐 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걸 기억했다. 자전거를 고치러 갈 때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소주를 마시며 티비를 보던 아저씨의 굽은 등을 생각했다.
자전거포 셔터에 붙은 상중이라는 글씨는 본인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상중, 이라는 글자 아래는 자전거 수리 맡기신 분은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따로 적혀 있었다. 사람은 죽었는데 일상은 밀려있다.
 
아저씨는 외로웠나보다.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서서히 죽인 사람. 가끔 바가지도 씌우던 사람, 거짓말도 하던 사람, 어깃장도 놓고, 허풍도 떨던 사람. 키가 작고 단단했던 사람.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
 
자전거포 아저씨가 죽었다.
나는 삼일째,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에겐 아직 그 아저씨에게 산 자전거가 남아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흔 넘어 페미니즘

딸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뭘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위태로웠다.

야야, 너 치마가 좀 짧다. 보이겠네. 라고 했더니

치마를 번쩍 들어올려 “안에 속바지 붙은건데?”라고 반문한다.

나는 입을 닫았다.

아이가 열다섯일 때 딱 저만큼 짧은 빨간 치마를 가위로 난도질한 적이 있다.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네가 입는 옷이 너를 결정한다는 사상은 “남들의 시선을 고려해서 남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짧고 야한 걸 입으면 안된다는 것”은 “성폭행 당시 무슨 옷을 입었나요?”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며칠 전 누가 “이 옷은 가슴이 너무 파여서 좀 신경이 쓰인다”는 말을 하길래 “그건 그거 지적하는 인간이 젖만 보고 있다는 뜻이지.” 라고 대답한 적 있다.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굴며 질타하는 남성을 보면 자기 억제가 강한 사람인 공통점이 있었다.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본인 욕망을 해소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적어도 내 내면에서는. 때로 나도 그런 꼰대가 된다.

이 나라는 희한하게 다리를 내놓는 것엔 관대하고 젖을 내놓는 것엔 까다롭다. 유방은 여자만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신체기관이다. 유방에 대해 유난히 예민한 것은 “어머니의 신성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질책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사람의 욕망이 보인다.

세월호 유가족을 두고 “돈 때문에 저런다”는 건 본인이 돈에 대한 욕망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산다는 뜻이고,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은수미의원을 향해 외쳤던 김용남은 “공천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때였을 것이다. 그는 공천은 받았으나 낙선했다. 김용남의 욕망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마다 욕구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타인에 대한 힐난은 본인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음을 반증한다.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는 말의 뜻이 바로 이거다.

나이 마흔이 넘어 페미니즘을 배워간다. 그동안 나는 사회적 남성으로 살아왔다.

딸아이에게 카톡을 보내서, 오래 전 일을 사과하고 싶다.

“언제나 네가 꼴리는 대로 입어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다 죽겠노라”고.

 

2016년 5월 1일

 

[자본의 풍경]누가 예산을 끌어올 것인가

나는 90년대 노태우정권때 지어진 신도시에 산다. 신도시의 목적은 서울과 타도시와의 연결이니까, 이 도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고속순환도로를 끼고 있고 고속도로와도 가깝다.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정확하게 나뉜 이 도시는 두 개의 구(區)로 나뉘어 있다. 구도심에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있고, 신도심에도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봤자 80년대쯤의 가옥들이다.

지난주부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을에 관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구에 속해있지만 구도심의 모습을 가진 동네다. 아이들과 첫 수업으로 마을답사를 시작했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하늘도 맑았다. 지도를 보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근 중학교를 돌고 학교 주변 동네로 내려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학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의 길은 험난했다. 인도가 없거나, 있는 인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해 위험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과 민들레, 명자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도시순환고속도로가 아이들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저 도로가 하늘높이 치솟은 이후 그 아래는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의 횡단보도를 지나 중학교에 도착했다. 축구하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이 깔린 자기네 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며 중학교 운동장이 좋다고 한참 떠들었다. 중학교 앞에 건물을 짓고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계속 앞뒤를 살폈다. 근처에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이라며 감탄했고 동행한 교사도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골목길을 살펴보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란히 병렬을 이뤘고 80년대에 지었던 전형적인 양옥주택들이 이제는 다세대주택이 되어 철제계단과 작은 현관등을 덧붙여 변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 이상한 아저씨가 많다며 아침 등굣길에 “한 번만 안아보자.”말을 거는 남자 얘기를 했다.

 

“그럴 때는 안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막 도망 오면 돼요!”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예쁜 얼굴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친 담벼락 아래 좁은 인도가 있고 그 건너편엔 인도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2차선 도로는 근처 대기업 연구소로 들어가는 차들이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를 이룰 만큼 가득하다고 담당교사가 전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 아이들을 학교 방향으로 인도하며 가만히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할 여건이 안되니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반대편에 인도를 설치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통학로를 개선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정리하고 공론화해서 시청 도로교통과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정책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순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용을 누가 가져올 것이냐에서 걸린다. 인근에 붙어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지자체에 내는 세금에 따라 행정과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원, 도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결국 누가 돈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공이 갈린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여 안전한 통학로로 바꾸자고 백날 결의한 들, 예산을 따올 수 있는 정치인과 행정력이 없으면 백 명의 의견도 그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시 예산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행정은 결국 예산이 결정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 일개 시민이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돈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본 없이는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잔디밭이 깔린 중학교와, 3층 집도 생각났다. 아, 모두가 돈이 필요한 일이다.

2016. 4. 13.

코코뉴스 [자본의풍경]에 연속 게재하는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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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지난 3월 24일부터 31일 사이에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인디다큐 페스티벌이 열렸다. 코코뉴스와 연대를 맺은 창작집단3355가 공동체상영을 진행하는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엽서 이미지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Masquerade of Her>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감독 박강아름의 사적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의 생활 일부가 기록되어 후세에 남을 때 그 중 기록의 가치를 갖는 것들이 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기록의 가치를 갖는 사적 다큐에 해당한다. 십대때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여자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장한 20대 후반의 여성의 정체성은 어떤 것들이 규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이 영화의 첫 촬영은 2008년에 시작되었다. 영화는 텀블벅 후원을 거쳐 2015년에 마무리되어 그 해 4월 26일에 첫 시사회를 열었다. 2008년부터 박강아름은 “나는 왜 남자친구가 안 생길까?” 하는 사적인 질문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한 여성의 사적인 생활을 기록한다. 사회는 감독이자 주인공인 박강아름에게 단호하게 ‘남자친구가 안 생길만 하다’라고 말한다. 10대 소년소녀들부터 감독의 선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외모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남자친구 없는 몇 년을 지내며 주인공은 체중조절도 시도해보고 외모의 변신도 꾀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결국 주인공은 특별한 실험을 준비한다. 외양을 바꿔보고 사회의 인식을 시험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각자의 역사 속에 깃든 선입견으로 그녀를 규정하고 원래 주인공의 모습보다 훨씬 더 보기 좋다는 말을 건네며, 심지어 ‘몰라보겠다’, ‘훨씬 예쁘다’, ‘진작 좀 그렇게 하고 다니지’라고 쉽게 말을 한다. 주인공은 연령과 계층을 넘나드는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외모로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상을 구현해낸다. 교복을 입고, 무슬림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충실하여 주인공을 대한다.

박강아름의 원래 모습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편안한 모습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젊은 여성들은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며 살아갈까? 내가 좋아한다고 정한 것들은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영향으로 좋아하기로 결심한 옷일까? 청바지에 흰 면티는 가장 편안하고 무난한 복장이라 했나? 소녀시대가 청바지에 흰 면티를 입은 그 날부터 대한민국 여성의류에 관한 미의 기준은 뒤집어졌다.

미디어는 이미지를 쏟아내고 대중들은 거리낌 없이 소화한다. 이미지가 세계를 점령하면서 개인이 각자 스스로 창출해낼 수 있는 계층에 대한 이미지는 소멸된 셈이다. 누군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반전’이라 불리며 행위자는 ‘특이한 사람’이 된다. 이미지를 먹고 자란 사람들은 늘 새로운 이미지를 갈구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고대 서사의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초단위로 쏟아지는 정보는 사람들의 뇌를 흥분시킨다. 일상이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힘겨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돌출적인 인물이 되고 그들의 실험은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지적 자양분이 되지만 과로누적의 사회에서는 귀찮은 일이 된다.

▲ 아주 사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사회의 통념을 녹여냈다

박강아름의 실험은 지금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을 대하는 인권존중의 민감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보여준다. 기계에 사람의 몸을 맞추고 옷에 사람을 끼워 넣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물질이 만들어놓은 것에 인간을 액체처럼 변형시켜 계속 자르고 다듬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가서 누워 묻는다. 내가 이 침대에 사이즈가 맞느냐고.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사실 자본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더 많다. 자본의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가 잘려나간다. 발목이 없는 사람들이 침대에서 기어 나와 절룩거리며 기뻐한다. 나는 이제 침대에 맞는 사이즈가 되었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본의 영향력 없이 순수하게 대할 수 있을까. 이미 모두 침대에 맞춰 스스로를 다듬은 마당에 혼자 삐쭉하니 튀어나온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테세우스가 되어 프로쿠르스테스를 죽이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아름처럼, 그의 영화를 후원한 사람들처럼, 그의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처럼 죽이지 말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설득하여 다리를 다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득하는 테세우스들의 실험이 2016년 5월 26일 인디포럼에서 다시 열린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프로듀싱을 맡은 창작집단3355에 연락하면 공동체 상영도 추진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를  발랄하고 즐겁게 풀어낸 다큐다. 105분의 상영시간 동안 너무 웃다가 눈물을 흘릴 수 있으니 마스카라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영화 한 장면

제작_박강아름
각본 Screen Writer_박강아름, 정성만
프로듀서 Producer_김문경
촬영 Cinematographer_박강아름
편집 Editing_박강아름

박강아름 필모그라피
1999 <섹스>
2000 <물어보는 거야, 너한테>
2004 <유실>
2004 <파리의 노래>
2006 <똥파리의 꿈>
2007 <내 머리는 곱슬머리>

공식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erma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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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뉴스에 게재된 영화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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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풍경 – 동네마트에서 소유의 경계를 넘기

nosmart

내가 사는 동네엔 동네 슈퍼라고 하기엔 큰 마트가 하나 있다. 대부분 이런 동네마트는 중견유통기업이 몇 개씩 점포를 가지고 있다. 때로 어떤 점포는 대기업에 인수되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에 마트대란이 벌어진 적 있다. 갑자기 동네마트가 세 개가 동시에 들어서고 기업형 슈퍼마켓도 하나 들어왔다. 1년 사이에 한 곳이 장렬히 전사하여 폐업하고 그 자리엔 비슷한 형태의 마트가 들어왔다. 정확한 명칭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동네마트”라고도 부르는데 어느 지면에서는 “지역마트”라고도 하고 “중견마트”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동네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설 때, 나는 종종 긴장한다.
내 앞에서 계산을 마친 사람이 영수증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자기 물건을 잽싸게 치우지 않을 때다.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앞 사람의 물건 옆에 내 물건이 떠밀려가고 있다. 앞 사람이 비닐봉투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다 담지도 않았다. 식은땀이 날 것만 같다. 저 사람의 물건과 내 물건의 경계에 가름대라도 놓아야 할텐데 동네 마트에는 대형마트에 있는 빨간 막대가 없다. 계산원은 개의치 않고 바코드를 빠르게 찍는다. 나는 물건을 올려놓은 이쪽에서 계산기 너머의 저 쪽의 물건들을 살핀다. 앞 사람이 내 물건을 가져갈 가능성은 고의보다 우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계산기의 바코드 인식기를 통과한 물건은 내 물건이고 인식기를 통과하기 전의 물건은 아직 마트의 것이다. 나는 마트의 물건을 나의 소유물로 전환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내 물건이 바코드 인식기를 통과해, 마트의 판매물품이 아닌 나의 소유물로 그 경계를 옮겨 완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 20여초 남짓의 시간이 걸린다. 카드나 현금, 지불수단이 계산대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계산기를 한 번 더 통과하고 계산원이 영수증을 출력할 때까지 마트의 출입구쪽에 놓인 내 물건들은 마트의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의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있다. 앞서 계산한 사람은 콩나물 한 봉지와 무 하나를 들었다. 비닐봉투에 푹 쑤셔넣고 계속 그 자리에 서서 영수증을 다시 보고 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계산원은 내 물건을 밀어내기만 할 뿐 물건이 가야 할 자리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모양새다.
드디어 앞서 계산한 사람이 자기 물건을 챙겨 자리를 떴다. 나는 장바구니에 계산한 물건들을 주워 담으며 잽싸게 카드를 꺼내 계산원에게 주고 싸인을 하고 영수증을 챙긴다. 이 역시 20여초 안에 해결될 일이다. 앞서 간 사람이 머문 시간이 얼마나 되나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세어보면 1분도 안 되는 시간이다. 30초 정도에 수많은 감정이 일어났다가 가라앉는다.

중견마트도 대형마트만큼이나 근무조건이 좋지 않다. 더 열악한 곳도 많다. 계산원은 때로 물건 진열을 하다가 뛰어와야 하고 배달을 선택한 손님을 위해 박스를 챙겨와 물건을 담아야 하고 주소지를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물건이 소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은 없다. 빨리 계산을 마치고 싸놓은 동전을 풀어야 하거나 영수증용지를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부품을 조립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정신을 압도하는 진열대와 정육, 생선, 과일코너가 외치는 유혹을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 댄스곡이 쿵쾅거린다. 좁은 통로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기어코 물건을 사서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 그 누구의 궁금증이나 불만을 참아낼 시간이 없다. 앞서 계산한 사람의 이야기, 이를테면 왜 이렇게 양파 값이 올랐는지 궁금해 하거나, 지난번에 사간 복숭아가 금방 상했다는 불만 따위를 들어줄 시간이 없다. 내 뒤에 나와 같이 물건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난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혹은 빨리 계산을 마친 직원이 다른 일을 하거나 10초라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는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바코드 인식기도 쉬지 않고 삑삑거린다. 느린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줄 체제는 없다. 돈은 빠르게 돌고 돌아 영혼을 압도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으니까.

 

2016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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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풍경 – 정월대보름

대보름이라 나물을 산 건 아니다. 나물을 좋아하는데 워낙 손이 많이 가 엄두를 잘 못 내다가 동네 수퍼마켓에서 삶아놓은 걸 팔고 있으니 손이 갔다. 다 삶아놓은 걸 가져와 다시 한 번 데치고 양념하여 볶아 그릇에 담았다. 고구마순에는 들깨를 듬뿍 넣었다. 고구마순은 원래 자주색이다.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삶아 말리고 또 다시 삶았을 것이다. 그건 누가 했을까. 누군가 손톱에 자줏빛 물이 들 때까지 작은 의자에 앉아 껍질을 벗겼을까.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했을까. 깐 마늘은 스치로폼 그릇에 담겨 랩을 씌워 판다. 누가 이 마늘을 다 깠을까. 손에서 마늘냄새가 가실 날 없을 정도로 바쁘게, 손가락이 퉁퉁 불도록 물에 담궈가며 마늘을 물에 담궜다가 일일이 깠을까. 대기업에서는 몇 년전부터 깐메추리알을 포장해서 판다. 이건 누가 깠을까. 삶은 메추리알을 뭉개지거나 부서지지 않게 까려면 약품에 담궜을까. 빙초산같은 것에? 사람이 손으로 깠을까? 문득 궁금해지지만 금세 잊고 만다.

EBS에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3D직종이라고 하는 어려운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택배물류센터, 난로공장, 정육처리기능사, 오징어잡이, 아파트외벽 페인트공, 험하고 어려운 직업을 소개한다. 한 번은 양은냄비를 만드는 공장이 나왔는데 노오란 양은주전자를 일일이 사람이 두들겨 모양새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험하고 어려운 직업은 이미 로봇이 대체하는 줄 알고 있었던 내 짧은 상식이 한심스러웠다. 세상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값진 노동을 하고 있는가.

삶은 나물은 일일이 비닐봉투에 담아 가격표를 붙여 가져왔다. 나물 세 종류를 샀으니 비닐봉투 세 개가 나왔다. 얼마 전부터 작은 스티로폼은 재활용품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던 공지문을 본 기억이 났다. 음식물이 묻은 비닐도 재활용쓰레기로 버리지 말라 써 있었다. 나는 비닐봉투와 스티로폼을 모두 일반 쓰레기봉투에 쑤셔박았다. 쓰레기를 쓰레기에 담는다. 아무 것도 썩지 않을 것이다.

대보름이 가까워오자 각 지자체에서는 대보름행사를 준비한다. 예산을 세우고 기획안을 내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몰려와 성과를 낼 것인지 준비할 것이다. 대형마트부터 전통시장까지 모두들 오곡을 소포장해서 내놓고 나물을 진열했다. 소매업점에서 파는 나물은 반조리상태부터 완전조리상태까지 다양하다. 건나물 상태 그대로인 것부터 삶기만 한 것, 양념까지 완전히 끝나 가져다 먹기만 하면 되는 형태다. 기사를 검색한다. “유통업계, 정월대보름 마케팅” 이라는 제목부터 “부럼데이”라는 이벤트도 생겨났다.

대보름행사 때문에 소방서는 비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대보름행사장에 갈 것이다. 먹거리를 사먹고 엄청난 쓰레기가 나올 것이다.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치울 것이고 썩지 않을 폐기물들은 우리 땅 어디엔가 쌓이고 쌓이겠지. 풍요를 비는 대보름에 쓰레기만 풍요롭다. 누군가의 노동을 잊고 밥을 먹는다. 아무 것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무력한 인간이 나물을 썩썩 비벼 밥 한 그릇을 먹었다.

2016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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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풍경 – 백화점

100807_Nikon 063 사본.jpg 서점은 백화점 안에 있다.
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꼭 백화점으로 갈 필요는 없었는데 마트와 옷가게와 문구점이 이동거리를 생각했을 때 가장 적게 움직일 동선은 백화점에 있는 문구점과 서점, 판매점을 휙 도는 것이다.

걸음을 아껴야 한다. 겨울이니까.
문구 코너에 가서 검은색 클리어파일을 사야했다. 어디선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피아노 연주가 들리는데 분명히 누군가 연주하는 소리였다. 음원을 틀어놓은 것과 그랜드 피아노의 해머가 두들기는 소리는 명확하게 다르다.
백화점의 가운데는 길게 뚫려 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이 있는 것처럼 뻥 뚫린 공간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여자의 주변엔 아이를 안은 어른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각국에서 온 제 각각의 펜에 둘러싸여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연주는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졌다.
스테들러, 사라사, 시그노, 몰스킨, 이룸, 프랭클린 사이에 서 있었다.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다들 한 권 정도의 책을 들고 있었다.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 <미움받을 용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이들의 학습만화와, 장난감만 손에 쥔 사람도 있었다.

자기 확인을 위해 사는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 사람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없어도 오늘을 넘길 수 있는 물건을 산다. 물건의 필요성은 주관적이다. 물건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굳이 오늘 사지 않아도 될, 시그노 펜 한 자루와, 펜텔의 펜 두 자루와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내가 검은 파일 위에 올려 계산을 기다린 것처럼.
돈을 내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되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생명 없는 물건이 위로가 되는 공간에서 사람이 규칙대로 맞추어 연주하는 음악은 어떤 지위를 갖는가.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건 생명 없는 물건인가 아니면 물건을 사는 행위인가. 물건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정말 그 물건은 무생물인가.
백화점에 창문도 시계도 없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오로지 물건을 소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내내 서있다. 가만히 진열대에 앉아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물건들은 누군가에게 불려가 꽃이 될 것이다. 위로가 되고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자신감을 되찾아줄수도 있다.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적게는 수명, 많게는 수백 명의 손길이 닿는다. 만든 사람들이 손길 하나 하나에 영혼이 묻어 물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자본이 만들어내는 실재하나 실체가 없는 사물에 불과할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시시때때로 모양을 바꾸는 집이었다. 그 안엔 대체가족이 살고 공동체를 이루었다. 사랑하는 법에 대해 혼란스럽던 하울의 친구들은 환경이 변해도 계속 함께 했다. 우리가 사는 성이 그 때마다 변한다해도, 자본이 들고 나더라도, 우리의 사랑도 굳건할 것인가.

사물을 바라보고 주머니에 넣어 행복해진다면, 그 때부터 그 사물의 삶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얼마나 지독히 외로우면, 말 걸지 않는 사물을 사랑하며 계절을 건너는가.

201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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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 숨막히게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숨막히게 그리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나의 한 시절,
어쩌면
그 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 밤에 삼각대를 놓고 벚꽃을 찍고 있으면
술에 취해 흔들흔들하면서도 가만히 서 있던 그 사람,
그 때의 그,
그 때의, 나.

2016년 4월 4일의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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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있는 건 오늘이다

3·1절을 전후하여 위안부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이 화제를 모았다. 국민모금으로 14년에 걸쳐 제작한 영화다. 관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개봉 10일만에 220만명을 넘어섰다.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준익감독의 “동주”도 100만 관객을 넘었다. 제88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미국영화 “스포트라이트”도 순항중이다. 바티칸의 성추문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TV에서는 tvN의 주말극 “시그널”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1990년대 미제사건을 다루던 시그널에서 밀양여중생집단성폭행 사건을 다루자 SNS에는 당시 가해자들의 실명과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SBS의 “그것이알고싶다”가 방영된 밤에는 포털마다 관련 게시물이 등장하고 해당 게시물의 댓글이 계속 달린다.

그 사이 국회방송은 최고 시청율을 기록하며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중계했다. 마이국회텔레비전이라는 패러디게시물이 온라인에 등장했고 필리버스터 요약정리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소와다리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초판본 시집이 인기리에 팔린다. 윤동주와 백석, 김소월의 첫 시집의 활자체를 고스란히 구현했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2015년 봄호에 1966년 판본을 복원해서 독자들에게 증정했다.

 

인기를 끌고 있는 문화컨텐츠들의 주제는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복고의 옷을 입은 정의다. 수년전부터 문화계에는 복고바람이 불고 있다. 복고의 소재를 가져오지만 그 안에 담긴 욕구는 정의의 회복이다. 올바르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리자는 의도가 숨어있다. 역사를 바로잡는 정의, 양심을 지키고 싶은 정의, 불의를 응징하고, 악을 궤멸하고자 하는 욕구가 드러난다. 거시사부터 미시사까지 그르친 것들을 복원하고자하는 대중의 열망에 부합하는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제목으로 민중미술작가들의 전시를 열었다. 2월 한달간 이어진 전시는 이종구, 신학철, 황재형, 임옥상의 작품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나란히 전시되었다. 1980년대에나 볼 수 있었을 법한 작품들이 2016년 인사동 한복판에 내걸렸다. 이 역시 복고열풍인가 싶었으나 폐광의 모습이나 6월항쟁을 그린 작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몇 달 전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농민을 쓰러뜨린 그 물대포의 현장이 목탄드로잉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다시 빙빙 돌아 그 자리다.

마을공동체운동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새마을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거나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되새겨야 한다는 논조의 논문을 찾았다. 지금의 대통령은 태극기 옆에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 과거를 불러오는 표상이 된다. 현실이 무겁고 괴로울수록 사람들은 현재를 직시하기보다 다른 곳으로 도피한다. 어제는 굶었는데 오늘은 밥을 먹게 되니 좋았다고들 한다. 그것이 스스로 일군 것임을 부정하고 타인의 권력에 의해 수혜를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해 낸 것도 허상으로 믿는 것은 강력한 독재의 결과이다.

 

“사울의 아들”이라는 영화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강제노역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줌의 슬픔도 애도도 허락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인간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되는지 알 수 있다. 2016년 봄, 대중들이 그리워하는 과거에는 슬픔과 애도가 허락되었던가. 국가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슬퍼할 수 있었던가. 갈비탕에 기름이 많다는 김수영의 저 사소한 분노처럼 사람들은 TV가 불러온 개인의 범죄에 분노하고, 혐오의 대상을 재빠르게 찾아낸다. 바닥에 낮게 깔리는 가스처럼 독재의 힘이 이 땅을 휘감던 과거의 공포는 생각보다 명이 길다. 두려움은 오래 오래 살아남아 다시 소생했다. 테러방지법을 등에 지고, 공포가 부활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악한 과거는 뻔뻔하게 되살아났다.

 

과거의 폭력을 바로잡아 오늘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과거를 돌이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건 드라마의 설정일 뿐이다.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건 과거가 아니라, 그저 오늘 뿐이다.

임옥상 2015 종이에 목탄 220*720 상선약수(上善若水)
임옥상 2015 종이에 목탄 220*720 상선약수(上善若水)

 

– 편집장 칼럼으로 쓰려다가 주제에 맞지 않아 개인 블로그로 돌립니다.

작은 장례 – 2016년 1월 21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사랑의쉼터, 돈의동 첫 작은장례를 치르다.

 

돈의동은 탑골공원의 담벼락을 끼고 돌아 종로 3가에서 5가의 숨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주거지역이다. 주소는 돈의동 103번지. 103번지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한 사람이 산다. 103번지에만 700여명이 산다. 이들은 모두 혼자 산다. 옆 방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삶을 나누며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이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혼자다. 사람들은 이들을 쪽방촌 홀몸노인, 혹은 독거노인이라고 부른다. 700여 명 중, 노년층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노인인 것도 아니다. 103번지의 골목을 오가다 보면 꽤 많은 장년층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청년 장애인도 눈에 띈다.

고독사가 이슈로 부각되며 노인고독사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통계청에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고독사망자 연령비율 1위는 60대 이상 독거노인이 아니라, 50대 남성이었다.

103번지 주민들은 어딘가가 아프다. 젊은 시절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 직업으로 인한 질병을 얻은 사람, 여러 이유로 마음을 다쳐 술로 달래다 몸도 다친 사람, 직업병, 만성질환, 성인병, 신체적 정신적 장애, 이들은 모두 각자 다양한 이유로 아프고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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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도에 붙어 있는 돈의동 지도

가족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공동체다. 이 기초공동체를 기반으로 사회가 이루어지고 지역과 국가와 이익집단이 탄생한다. 기초공동체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돈의동과 다른 쪽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개체가 되어 골목을 떠돈다. 이들은 가난과 굶주림, 추위나 더위 따위의 물리적 환경은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몇 년 전 노숙자 인문학운동을 하던 이가 했던 말을 잊지 않는다. 노숙자의 공통점이 게으르거나, 술문제가 있거나, 아프기 때문인 거 같냐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가족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대화를 할 사람도, 없어요.”

돈의동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세상에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고 사람에 의해 길러진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는 막막한 어둠,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 돈의동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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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103번지. 2015년 가을촬영

이 돈의동의 복지를 담당하는 것은 종로1,2,3,4가 주민센터와 사랑의쉼터라는 복지관이다. 복지관은 구세군재단이 위탁운영을 한다. 작은 골목의 사이로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엔 교육관과 샤워시설이 있고, 1층과 2층엔 휴게공간이 있다. 3층에는 사무실과 상담실이 있다. 이화순소장과, 사무국장과, 복지사 둘이 이 공간에서 업무를 본다. 복지관 쉼터 계단에는 “주폭”에 대한 경고가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술을 먹고 난동을 피우는 주민들이 많다. 5년간 일한 복지사는 주민에게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거기 있다. 주민들이나, 주민복지를 책임지는 행정직들도 술 때문에 괴롭다. 술을 마셔서 괴롭고 못 마셔서 괴롭다. 술에 취해서 괴롭고, 술이 안 취해서 괴롭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맨 정신에 버틸 수 없는 날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가난한 자들의 마취제는 화학작용으로 만든 술뿐이다. 소주 한 병 만큼의 위로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다들 자기 한 몸 누일 쪽방보다 커다란 사연을 품고 산다. 죽이고 달래고 얼러봐도 상처받은 일들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추운 날 시린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길모퉁이에서 툭 치고 튀어나오는 고통이 이들을 들볶는다. 사연을 말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추운 겨울, 쪽방촌에 죽음이 문을 두드린다. 한 달에 한두 명은 시신이 되어 103번지를 떠난다. 이들은 무연고자다. 공고를 내도 가족을 찾아도, 시신양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죽음은 무연고 독거자의 시신처리라는 이름을 쓴다.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죽어 사라질 육신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103번지의 이웃들은 애도를 표할 방법이 없다. 살아서 한 줌 도움이 못되었다면 가는 길이라도 잘 보내주고 싶은 103번지의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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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쪽방촌의 한 건물. 아래에서 위로 3층까지 주거공간이 있다. 2015년 여름 촬영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죽음의 의식을 개선하는 단체다. 상업주의에 휩쓸려 가정의 대소사도 외주를 주게 된 이 시대에 함께 하는 상포계를 통해 의례의 힘을 확인하고자 한다. 자본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고 혈연으로 한정하지 않은 타인의 장례를 준비한다. 그 조합비의 24%중 20%는 조합운영비, 그 중 1%를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하고 4%는 연합회 회비로 사용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을 가진다. 무턱대고 사회공헌만 하는 곳은 협동조합보다 사회복지재단이 걸맞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모인 협동조합이라면 공동체의 회복에 지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 원칙을 지켰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는 상포계를 통해 상장례의식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기 분야를 지키며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MOU를 맺었다.

직장으로 처리되는 돈의동 주민들의 장례를 대신해서 치르기로 약속했다. 병원의 영안실이나 상조회사의 식사대접, 화려한 제단과 방문객을 대신해, 이웃들이 죽음의 본질을 생각하며 애도하고 한 번쯤 그를 기억하고, 영정사진을 놓고 잘 가라고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함께 살던 공간에서 그를 기리는 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착안한 “작은 장례”이다.

장례의식은 상업적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알고 있는 장례절차는 전통의식과도 다르고 죽음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도 아니다. 상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계산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남았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작은 장례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사회환원이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이 깊어갈 때 작은 장례를 약속했다.

2016년 1월에 돈의동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약속한대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사랑의쉼터와 첫 작은 장례를 준비했다.

좋은 일을 할 때 외부에 얼마나 알려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갈등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 때문인지 좋은 일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작은 장례를 준비하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이 사람의 죽음을 한 번쯤 기억해 달라는 의도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추도식을 취재하겠다는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무국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슈화되어 이것이 마치 행사처럼 비춰질 때, 가치가 훼손되고 본질이 곡해될까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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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지관 앞 2016년 1월 21일 아침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아침. 며칠 째 혹한이 몰아치고 있었다. 엘니뇨현상으로 겨울이 따뜻할 거라더니 자연현상은 인간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일주일째 영하 10도에서 수은주는 깔짝대기만 했다. 대설이었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겨울철 맑은 하늘은 추위의 상징이다. 하늘이 맑고 햇빛이 쨍쨍했다. 사랑의쉼터 앞에는 카메라와 휴대폰, 수첩을 든 취재진들이 몰려왔다.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가시는 길 평안하길 바란다는 추도사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김상현 이사장이 읽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사랑의쉼터 이화순 소장이 상주가 되었다. 삼베완장을 차고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웃들이 소식을 듣고 와 조문을 했다. 사랑의쉼터 지하 교육장엔 작은 제단이 차려졌다. 고인의 독사진도 없어 주민등록증을 확대해 영정사진을 놓았다. 검소한 꽃바구니 두 개가 제단을 지켰고, 흰 국화와 향, 간소한 제기가 놓였다. 간단한 다과가 한쪽에 차려졌다. 쪽방만한 돗자리에 이웃들이 차례대로 신을 벗고 올라가 고인과 이별했다. 신발을 벗은 맨발을 사진기자가 뒤에서 찍었다. 굳은살만 남은, 한 생명의 삶을 말해주는 발뒤꿈치에 애도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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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아이가 조문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에게 소주 한 병의 위로가 되었을까.

적어도 오늘 돈의동을 떠난 고인의 죽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여기 한 사람이 힘들게 살았고, 그리고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를 기억했고, 2천 원짜리 국수를 지하시장에서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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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지하시장, 조문객들은 2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나눠먹었다.

몇 사람은 말했다. 나도,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데, 나 가는 길도 저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년째 결연장례를 약속했다. 가는 길을 약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집단구술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이 늘어나고 한겨레두레의 공동체기금이 늘어날수록 외로운 죽음이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 같은 하늘 아래 머리를 내리고, 같은 땅 위에 발 딛고 살던 사람들은 먼저 가는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그의 삶을 기억하고 이별을 슬퍼할 권리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길 너머에 사람답게 이별하는 의식이 있다. 장례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차가운 삶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골목에 뒹구는 소주병처럼 깨어지지 말자고, 훈훈하게 덥힌 따뜻한 술이 되어, 고인의 가는 길을 덥히고 싶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에 살던 故김철구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