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귀신이 하는 일

온라인 시대, 보이지 않는 비대면 노동에 관하여

2020년, 코로나19의 감염에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의 절반은 사업계획서를 수정하는 일이었다. 그 중의 절반은 담당자에게 비용산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온라인인데 왜 더 비싸요?”

“장소대관 안해도 되는데 이렇게 돈이 들어가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실시간 하시면 되잖아요”

“유튜브에 일주일에 한 건씩 업로드하면 되지 않나요? 애들도 한다던데”

“왜 꼭 해외 사이트를 사용하려고 하시죠? 국산 화상채팅앱도 있다던데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한 사람들의 80%는 공무원이었고, 정부지원자금을 받아 1년짜리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20% 정도 된다. 1인미디어의 시대, 4차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주제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꼬아놨는지 확인했다. 그 실타래를 푸는 작업으로 상반기가 다 지나간 셈이다.

“모바일 기기로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시작하려면 일단 방송할 채널의 구독자 수가 1천 명이 넘어야 합니다. 계정도 없으시다고요? 유튜브로 송출하려면 발언자 소리가 잘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행사를 제대로 촬영하려면 적어도 3대의 마이크와 3대의 카메라와 이 기계를 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편집은 소프트웨어로 하지만 결국 사람 손이 갈 수밖에 없어요”라는 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보와 콘텐츠의 소비자가 될 수 있고 생산자도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누구나 계정만 가지면 방송도 할 수 있고 책도 펴낼 수 있다.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사람들이 볼 만한 내용을 구성할 기획력이 있어야 하고, 그 기획에 따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며,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살려낼 수 있는 기계와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 누구나 접근은 가능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품질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없다. 기계와 기술만 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시간 송출이라는 건 안정적인 통신환경이 필요하다. 일정한 데이터가 기복 없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비슷한 용량을 가진 화면이 보이지 않는 통신선을 타고 내 눈앞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만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저 모든 장비와 기계와 통신선이 필요없이 한 장소에 모여 앉으면 되는 일이니까. 마이크를 굳이 갖다 놓지 않아도, 카메라 두 세대가 각도를 달리해서 따로 찍지 않아도, 통신선을 끌어와 장비에 연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마이크가 없을 때는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이거나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면 되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성대와 배의 힘까지 이용해 소리를 키울 수 있는 만큼 더 큰 목소리를 내면 된다. 카메라가 없어도 고개를 돌리거나 잠시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각도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신체는 이다지도 위대하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던 것을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와 복원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투입되어 숙련된 기술과 비싼 장비를 써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지치기도 했다. 나름대로 어떤 사람들은 잔꾀를 부려 비용을 절감하거나 필요한 장비를 축소해서 진행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에 응하기도 했으나 하반기로 갈수록 나도 배짱을 부렸다. “네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해요. 그렇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요. 네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합니다. 안됩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이 다음 해에도 지속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각종 행사의 온오프라인 병행은 2020년을 기점으로 자리 잡을 거라 판단했다. 초기에 시작되는 일들의 기준을 잡아둔다 해도, 일은 반복되면서 폄하되고 훼손되기 십상인데 조금 더 강력한 규칙을 적용해야 융통을 발휘할 범위도 생기지 않겠는가. 

기준이 없이 온라인 행사와 교육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다 보니 각 예산집행처의 담당자 권한도 강력해졌다. 담당자가 온라인 행사에 투입될 비용의 산출근거를 이해하면 결정권을 가진 상사의 결재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예산집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담당자는 온라인 회의 툴을 왜 미국산을 쓰냐면서 국산도 있다고 “국산품애용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공기관에서 해외결제를 용납해줄 리 없다고 체념한 어느 단체 담당자는 개인사비로 유료버전을 구매해 시비를 마무리했다. 

특강이나 교육프로그램 강의 섭외때에도 녹화했다가 쓰면 안되느냐는 질문이 빗발처럼 들이쳤다. 녹화영상을 어디에 배포할 것이며, 어느 플랫폼에 업로드할 것이며,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지 계약서를 쓰고 얘기하면 모두들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바꿨다. 녹화영상은 상호소통이 없어서 임기응변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온라인으로 전환해서 성공적인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곳도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그림은 방송국에서나 가능한 모습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이 기계화되었다고 해서, 어플에서 모든 걸 해준다고 해서, 그걸 작동하는 사람이 카메라 뒤에 서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들 모든 걸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얘기한 기계와 기술이 필요 없이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대부분 해결되는 인체의 신비를 이해하지 않을뿐더러, 화면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스텝들과 실감이 나는 영상을 찍기 위해 동상과 열사병, 근골격계 질환을 감수하는 제작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를 때, 무거운 등짐을 지고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허술한 옷차림으로 걸어 올라가는 셰르파들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명 아니었을까. 

소프트웨어 하나를 만들려면 수많은 협업과 지난한 노동이 필요하다. 심심풀이로 했던 게임의 오류를 잡아내느라 밤을 새우다 죽어가는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소리 없이 사라질 때, 콤마 하나 더 찍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홈페이지 때문에 애먼 상담원에게 분풀이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기계나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는 종사자가 아닌 이상 다 알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변치 않은 단 한 가지 원리까지 무시하면 곤란하다. 2020년에 내가 접한 저 많은 황당한 질문은 모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무시한 태도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는 게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계화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숙련된 노동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기계가 고장날 경우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없는 관리자들만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만든다. 기계는 오류가 나기 마련이다. 기계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하며 그 가치를 빛낼 수 있다. 무대를 설치하고 의자를 깔고 내빈석이라는 글자를 출력해 종이에 붙이는 것만이 노동으로 보인 것일까. 촬영을 한 뒤 편집을 하고 업로드를 하는 것은 귀신이 하나? 

우리의 시공간을 연결해주는 작업은 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서 행사장에 앉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노력만이 앉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덜 움직여도 되는 편리한 개인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을 깔고 앉아 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편리하고 빠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켜켜이 쌓여가는 소리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귀신같이 일한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용자가 고개를 들어봐도 몸을 일으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인류가 처음 기계로 영상을 봤을 때, 귀신의 짓이라 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노동들을 귀신으로 취급하며 2021년을 맞았다. 노동자는 이름이 있다. 그들의 노동은 귀신놀음이 아니다.

한국노동 기관지 노동과 희망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93&thread=22r07&fbclid=IwAR3LYyciM4Y2bev1LTRYcGohTPVsk6y6ywSKwcQBi12uh9bEOU5OT9BANPU

[청소년생애사쓰기]합치면 마흔넷 출간

안양 YMCA 청소년인생학교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생애사쓰기 한 책이 나왔고요. 비대면 원칙으로 주인공과 가족들만 참여했습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1년간 열심히 참여한 우리 청소년들 정말 장합니다. 칭찬해요!

안양YMCA는 매년 “청소년인생학교”를 진행합니다. 2020년에는 세 명의 청소년들이 생애사쓰기에 참여했어요. 열 다섯살이 무슨 생애사냐는 어른들의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 다섯 살도 삶이며, 열 다섯 살에게 15년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주말마다 모여 생애사쓰기의 기본을 배우고, 각 장별로 나누어 각자의 인생사를 적어봤습니다. 문화공동체 히응은 청소년글쓰기의 새로운 장르를 위해 교육을 기획, 운영하고 책으로 묶어내는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청소년의 생애기간이 짧다고 무시하는 어른들에게 일침!

“합치면 마흔 넷! 만만치 않아”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표지그림은 작가 세 명이 함께 그린 공동작품입니다.

ISBN도 받고 출간을 기획했는데 구매예정자가 적어서 성사될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른들의 큰소리에 가려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좀 더 널리 퍼질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세 분의 저자께도 응원과 지지, 격려보냅니다.

2021 정기총회 개최

공 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정기총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합니다.

일시 :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오후 7시

장소 : 온라인 Zoom

안건 1. 2020년 사업보고

안건 2. 정관 개정

안건 3. 운영위 구성 변경 승인의 건

안건 4. 회원 구조 변경 승인의 건

안건 5. 2021년 사업계획

회의링크는 당일 오전에 오픈톡과 문자메시지로 재발송드립니다.

https://open.kakao.com/o/gIefDbWc

경기중부 아파트노동자 소식지 2호

경기도노동국 공모사업 – 미조직취약노동자조직화사업으로 진행한 경기중부 아파트경비노동자지원사업단의 소식지 2호를 공개합니다.
2020년 창립총회 소식을 담았습니다.

PDF 다운받기 : 다음 링크를 클릭하세요

새창에서 열기

eab2bdebb984eb85b8eb8f99ec9e90ed9891ed9a8c-ec868cec8b9deca780-2ed98b8_210105_ver3_final_outline.pdf에 액세스하려면 클릭하세요.

구성/ 기획/ 문화공동체 히응

경기중부 아파트노동자 소식지 1호

경기도노동국 공모사업 – 미조직취약노동자조직화사업으로 진행한 경기중부 아파트경비노동자지원사업단의 소식지 1호를 공개합니다.

PDF 다운받기 : 다음 링크를 클릭하세요

새창에서 열기

eab2bdebb984eb85b8eb8f99ec9e90-ec868cec8b9deca780_2020_09ec9b94ed98b8.pdf에 액세스하려면 클릭하세요.

구성/ 기획/ 문화공동체 히응

[새책]출간 소식

2020년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이 시대의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는 주제로 청탁을 몇 건 받았습니다. 학교와 학교밖을 연결하는 일을 2014년부터 해왔고,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지원청, 교육부와의 업무협력을 해온 시민단체 책임자이며 전문 집필이 가능한 위치라는 것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육관련 담론은 전문영역의 연구자들이 말하기 마련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학교와 지역교육청을 둘러싼 우리들과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처음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학교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원고를 썼고, 이 원고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민들레에서 만드는 계간 민들레에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글로 썼습니다.

민들레에서 펴낸 <함께 만드는 마을교육공동체> 민들레선집 3 에는 마을교육공동체의 현실과 방향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책에는 대안교육에서 공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의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필진들의 글이 같이 있습니다. http://aladin.kr/p/nyot5

계간 창비에 실렸던 글은 개고하여 학교 공동체와 마을교육의 유기적 결합에 대해 더 추가했습니다. 창비에서 나온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전문연구자들이 다수이고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한 내용입니다. http://aladin.kr/p/iyOKQ

교육공동체 벗이 펴낸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는 코로나와 관련된 제 원고중 가장 마지막에 쓴 글입니다. 학교의 본질과 마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을 담았습니다. http://aladin.kr/p/lyO1g

제가 쓴 글들은 어찌 보면 매우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학교는 지식의 전달체가 아니며 공동체를 살아갈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교와 마을은, 정부와 시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협력하여 자본에 대응해야 합니다. 국가는 이전처럼 막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적은 모두 자본에 깃들어 있습니다. 위기의 시절에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외부에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특수한 상황이라 유일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같이 울고 웃으며 고민해왔던 동지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널리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모두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방향은 함께 더 치열하게 논의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교육부는 새해에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세심한 정책으로 상처받은 교육공동체를 감싸 안길 바랍니다.

택배노동자 연대투쟁 출력물

우리들의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택배 기사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택배기사도 여럿입니다. 그동안 저임금 고노동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이득을 취한 택배회사들은 무엇을 책임졌습니까?

상하차 분류작업을 약속한 재벌 택배회사들은 상하차 분류작업 인력투입을 미루고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택배기사는 코로나시대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노동자입니다.

문화공동체 히응은 전국의 택배노동자와 연대하고자 합니다. 본 출력물은 A4 사이즈에 맞춰 제작되었습니다. 한 장씩 출력해 현관문에 붙여주세요. 택배기사들이 자기의 일터를 지키고 소비자는 기쁘게 택배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다음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문입니다.

약속한 분류작업 인력투입을 외면하고
일요일 근무까지 강요하는 택배사를 규탄합니다

택배사에게 묻습니다.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대로는 택배노동자가 여기저기서 쓰러질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정부와 택배사 그리고 택배노동자가 서로 양보해서 사람이 죽는 것만큼은 막자고 약속했습니다. 대책위는 고심에 고심 끝에 정부와 택배사의 발표를 믿고 분류작업 전면거부 입장을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택배사는 눈가리고 아웅하듯 노동조합 조합원이 많은 터미널에만 면피용으로 분류인력을 투입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전국의 택배노동자들에게 약속한 2,067명 중 20%도 안 되는 300여 명 인력을 전국 터미널에 투입하고, “더 이상은 못한다”, “할만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벌 택배사는 택배노동자를 속이고, 정부를 속이고 국민 모두를 속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택배사는 오는 27일 일요일까지 출근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택배노동자에게 강제로 통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할말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외출을 꺼릴 때 위험을 무릅쓰고 배송했던 택배노동자에게 할 짓입니까. 이것이 코로나로 인해 힘든 경제상황에서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택배사가 우리 사회와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까. 

작년, 재작년 추석기간에도 일요일은 쉬게 해줬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 3월부터 갑작스럽게 증가한 택배물량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택배노동자입니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사상 유례없는 추석 택배물량을 지금도 배송하고 있는 택배노동자입니다. 애시당초 택배노동자의 과도한 업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택배노동자가 일하다 죽던지 말던지 돈만 더 벌겠다는 것이 재벌 택배사의 모습입니다.

택배사에게 경고합니다. 정부와 협의하고, 택배노동자와 국민에게 약속한 분류작업 인력을 지금 당장 투입해야 합니다. 또한, 27일 일요일 근무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택배노동자에게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제 택배는 국민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됐지만, 택배사는 언제든 국민이 심판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택배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택배노동자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택배사에 대한 심판은 더 커질 것입니다.

대책위는 약속한 분류작업 인력투입을 저버리고, 일요일까지 근무를 강요하는 재벌 택배사를 규탄하며,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을 경우 다시한번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2020년 9월 23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https://url.kr/xKPAEC – 구글드라이브에서 위 출력물의 PDF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날 다시 오면

1.

아침일찍 욕실공사를 맡은 업체 사장님이 와서 콜타르와 비슷한 방수액을 바르고 갔다.
새벽까지 이제훈, 최우식, 박정민, 안재홍이 나오는 <사냥의 시간>을 절반정도 보다가 잤다. 첫 장면에 황폐해진 서울의 소공로가 나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저 풍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길 건너 목욕탕은 찜질방에 없어 한 번도 안 가봤다. 들어가니 매표소에 사람은 없고 무인발권기가 있었다. 아무리 코로나시대라도, 매일 목욕탕을 들르지 않으면 밥을 굶은 것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오늘도 너댓명의 직원과 너댓명의 손님이 있었다. 정기권을 끊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목욕탕은 어딜가나 늘 뉴스를 틀어놓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3단계로 빨리 가야 한다고 봐.”
“뭐 먹고 살으라고.”
“딱 2주만 하고 빨리 잡자는거지. 홍콩이 그렇게 잡았잖아.”
“교회가 문제야 교회가.”
“교회 소모임을 다 못하게 해야돼.”
“아니 근데, 지금도 응? 이 와중에도 자기들은 병이 안 걸린다고 하잖아. 교회 다니는 분들은 그래.”
“아휴 그러게나 말이야. 교회를 싹 다 닫게 해야돼.”

격한 발언은 없었지만, 교회가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걸 들으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하면서 침 튀기는 사람은 이 안에 없겠구나.
기독교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니, 이제 이 나라의 기독교는 끝까지 온 거 같다.

2.

원두가 떨어져서 고심 끝에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가서 블렌드 원두를 샀다. 블렌드 원두는 200g에 오천원이다. 이집은 원두를 살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오늘도 뭘 드릴까요? 묻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았다. 신 나서 사진도 한 방 찍고 편의점에 들렀다. 아침거리로 간단하게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담배만 두 갑 샀다. 사장님이 아이와 통화중이었다.
“일어났어? 밥 차려놓은 거 먹고. 수업 듣고, 영어 숙제 하라고.”
나는 씩 웃음이 나서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자고 있다고 얘기했다.
중학생라 새벽 서너시까지 안 자고 오후 한 시나 되야 일어난다고 했더니 “밥 차려놔도 챙겨먹질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편의점을 나왔더니 자전거가 무거운 가방 때문에 자빠져 있었다. 소중하게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바닥에 다 뿌려졌다.
자전거를 일으키는데 노년의 남녀가 헤어지며 “코로나 끝나면 밥 한 번 먹자.”는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와 쏟아진 아메리카노를 대신해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데 교육지원청 담당장학사에게 카톡이 왔다.
“국장님, 뉴스 들으셨지요? 9.11까지 원격수업이요. 저희도 방송을 통해 본 거라, 학교에서도 지금 고민이 많을 거 같습니다.”

3.

우리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차차 늘려나갔고, 대면이 불필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도 청자의 표정이 보이면 어떤 생각을 하며 듣고 있는지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느끼는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까.
모두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수도권 병상이 7개 남았다는 뉴스 속보가 도착했다.
본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의 전쟁인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은 자꾸 “좋은 날 다시 오면”이라고 말한다.
그 좋은 날은 이제 끝난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광복절 이후의 창동역

7시 30분, 지하철역 플랫폼에는 지하철이 도착하면 열릴 문 앞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두 줄로 서 있었다. 모두들 서울로 가는 사람들일 거다. 이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 강의 북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휴대폰 화면을 또릿하게 보고 있는 원피스 입은 아가씨 앞에 섰다. 지하철 안에서 누가 먼저 내릴 것인지 예측하고 싶었다. 내 모든 지략을 동원해도 당장 내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의 아가씨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린 삼각지역에서 일어섰다. 거기서 내려 6호선을 갈아탈지도 모른다. 사당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내렸던 건 지하철이 4호선까지 있었을 때의 이야기였나보다. 동대문을 지나자 지하철이 한산해졌다. 자리가 많은데도, 한 여성노인이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봇짐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몸의 방향을 비틀어 노인을 등지고 앉았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그 옆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노인은 교회에 다닐 것 같았다. 그는 마스크를 코까지 잘 아무려 쓰고 있었다. 나는 다른 자리에 가서 앉고 싶었다.

불안했다.

미아삼거리역은 미아사거리역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거기는 내가 살 때도 미아사거리였던 것 같다. 객차 안에 자리가 더 많이 생겼다. 나는 입구쪽에 있는 텅 빈 자리에 맨 끝에 가서 손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았다. 노인이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살갑게 노인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했고,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다들, 다들, 악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몇 개로 서서히 쪼개지고 있었다. 창동역에서 내려 내가 좋아하는 루꼴라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 스타벅스는 이마트 안에 있었다. 물건을 정리하던 이마트 직원에게 출입구를 물으니 그 시간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백번 드나들던 그 동네는,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그 흔해빠진 스타벅스가 이마트 안에 단 하나 있었다. 나는 충전된 스타벅스 카드로 샌드위치를 사먹을 야심찬 계획을 포기하고 김밥을 수십 개 말아 쌓고 있는 분식집에 들어가 2500원짜리 잔치국수로 아침을 먹었다. 국수엔 요즘 비싼 애호박도 들어있었다.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쯤, 마을버스를 탔다. 다시 내린 창동역 광장에는 남자 노인이 색스폰을 연주하고 있었다. 저 멀리 야외탁자 두어 개를 붙이고 말라가는 고추를 바라보며 뭐라 뭐라 말하는 노인 몇 명이 보였다. 역 주변을 돌았는데 마땅히 점심을 먹을 데를 못 찾았다. 나는 반대편 출구로 나가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집이 몇 곳 있었는데 집집마다 “생맥주 있습니다.”, “생맥주는 홀에서 드실 수 있어요.”, “테라 생맥주 팝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는 떡볶이 집에 들어가 3천원짜리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잠깐 참을까 하다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떡볶이가 먼저 나왔는데 맥주를 기다렸다가 맥주를 먼저 한 모금 마셨다. 역 주변을 도는 사이 이미 지쳤다. 떡볶이 한 개를 긴 꼬치로 집어 입에 하나 넣었다. 홀 안에는 둘이 앉아 점심으로 떡볶이와 분식을 먹는 같은 옷을 입은 남녀가 있었고, 노트북을 놓고 혼자 앉은 남자가 있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2인석에 앉았는데 내 바로 옆 2인석에 한 남자노인이 와서 앉았다.

“아이구구구. 하아…”

노인이 되면 소리가 많아진다. 앉는 소리, 일어나는 소리, 물건을 내려놓을 때, 의자를 끌 때, 물을 마실 때, 음식을 먹을 때, 씹은 음식을 삼킬 때, 모두 소리가 난다.

노인은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맥주는 시키지 않았다. 그가 나를 흘끗 보는 게 느껴져서 나는 휴대폰에 코를 박고 떡볶이를 씹었다. 노인은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올려놨다. 마스크도 벗어 모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나와 너무 가까이 앉았다. 노인이 물을 뜨러간 것인지, 오뎅국물을 가지러 간 것인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노인의 테이블을 보았다. 세탁한 지 오래된 듯 흔적이 있는 모자위엔 적어도 하루이상은 쓴 것 같은 꼬깃꼬깃한 마스크를 올려두었다.

노인이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떡볶이와 맥주를 번갈아 먹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말을 시작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네 어르신 요즘 힘드시죠.’라고 교실 안에서 살갑게 웃던 나를 꺼내야겠지. 노인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할 것이다. 남성노인이니 대통령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씩 웃고 서둘러 입을 닦은 후 자리를 떠야겠지.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떡볶이를 입에 넣은 채 말할 지도 모른다. 침이 튈 것이다.

노인은 몇 살쯤 되었을까. 칠십대 중반정도로 보였다. 그렇다면 내 부모의 나이와 비슷한 또래다.

거기, 창동이라는 넓은 동네 중에 중랑천과 각을 이루는 큰 도로에서 산쪽으로 오목하게 파인 지형에 새롭게 생긴 동네라 ‘신창동’이라고 부르던 곳이 있었다. 버스정류장의 이름이 ‘양조장앞’이거나 ‘신창시장’이었다. 내 친구들의 부모들은 신창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어느 집 지하에 있는 공장에 다니거나, 양조장에 다니거나, 샘표간장에 다녔다.

거기, 그 창동역은, 87년, 그 동네로 이사한 뒤, 신창동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창동에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방학역 부근의 중학교를 다니다 월계역 부근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수시로 드나들던 몇 개의 지하철역 중의 하나다. 창동역 부근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국내 최초 대형마트인 하나로마트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떡볶이를 먹는 저 노인은 내가 모르는 내 동창의 아버지일수도 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맥주도 다 마시고, 노인과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났다. 몸을 돌리자 가게의 문 앞에 노인과 거의 흡사한 모습의 다른 노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엔 튀김접시와 맥주가 있었다. 맥주 3천원, 떡볶이 3천원의 값을 치렀다. 휴대폰으로 ‘6천원, 점순이하우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열려 있는 문 밖에는 모자를 쓴 한 쌍의 남녀노인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백색의 SUV가 노인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남자가 오른손으로 머리가 허연 여자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차를 막는 시늉을 했다. 여자의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노인과 바짝 붙어 앉아 점심을 먹는 일은 흔치 않다. 창동역엔 노인이 많았다. 김밥 한 줄은 우리 동네보다 2천원이 쌌다. 인근에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있지만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쓰지도 않을 노트북을 가지고 간 데다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마스크가 이미 홀딱 젖었다. 돌아오는 열차에서는 남녀노인한쌍이 내 옆에 앉았다. 분홍색 천마스크를 쓰고 있던 내 옆자리의 여성노인이 기침을 다섯 번 정도 했다. 에어컨을 틀어서 목이 건조해졌을거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번화가로 들어가 상가건물 1층의 화장실에서 비누로 손을 박박 닦았다.

내가 복지관 교실 안에서 이야기를 듣던 노인들과 오늘 만난 노인들은 달랐다. 그들을 느끼는 내가 달라졌다. 웃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퍼부을 것만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마주친 그 수많은 노인들 가운데 단 한명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일주일내내, 노인들의 삶에 관한 칼럼의 마감날짜를 넘기면서, 절망하고 있다. 나에게 남았던 모든 이야기들이 증발해버린 것만 같다.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조금 나았을까. 모르겠다.

[강의]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

지난 6월 26일에는 인천 청학연수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을 확인하는 특강 “책, 읽을까 볼까”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진행했는데요. 담당자께서 강의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갑자기 빔 프로젝터의 렌즈가 작동하지 않아 약간 어수선한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준비해준 도서관 담당자와 강좌에 참석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께서 경청해주셔서 기분 좋은 강의가 되었습니다.

유튜브로 모든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죠.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은 읽지 않고 유튜브만 봐서 큰일이라고 하지만, 실제 통계상으로는 아이들은 적어도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현실을 파악한 뒤 작은도서관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책을 준비해와 종이책이 가진 물성에 대한 짧은 발표도 해봤습니다.

이 수업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신간소개글을 작성하고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댓글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아주 잘 설계된 프로그램이죠.

여타 공공기관에서는 강사가 한 번 다녀가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은데, 청학연수도서관에서는 강사와 수강생이 일시적이지만 후속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도서관측에서 후속작업에 대한 인건비도 책정해서 여러모로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안양에서는 평생교육이 뒷전으로 밀리고 도서관 운영에 참신한 면이 없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연수구 도서관에서는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이 직접 신간소개 책자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책자도 펴내고 있더군요. 무척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천연수구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들이 마을의 거점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에게 제가 소개한 필독서가 있는데요, 김성우, 엄기호 씨가 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권합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10점
김성우.엄기호 지음/따비
강의 시작 전, 각자 준비해 온 책을 들고 사진을 찍어봤어요.
연수구립공공도서관에서 펴낸 신간추천 책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