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살찌고 국민은 자살한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벌어진 시절이 있었다. 
식민시절 물산장려 운동 등은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자본을 벌게 하여 국가의 부강을 만들어가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돈 없으면 국가도 없다. 
80년대, 90년대까지도 국산품 애용이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밥통, 일제 보온병을 쓰면 매국노 취급을 당했고 쉬쉬하면서 몰래 들여와 썼다. 
미제 좋아하면 미제국주의의 잔재라고 호되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선 알파벳이나 외국어글자가 크게 쓰여진 티를 입고 가면 야단을 받았고 교칙으로 금지했다. 
개인적으로 중학교때 전체 조회가 있는 날, 아무 생각없이 엄마가 사다 준 영문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갔다가 (반장이라 맨 앞에 서야 하는데) 교무실에 불려가 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산 자동차가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랍다고 하며, 
사람들은 삼성과 LG가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올라가는 날 벅차하며 애국심에 눈물 흘렸다. 
IMF가 불어닥치던 시절, 장롱에서 금반지를 빼서 내놓던 순박하고 책임감 강한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 물건 써줘야 한다며 삼성핸드폰 국내점유율을 세계가 놀랄만큼 만들어 주었다. 
국내 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라며 노키아가 망해나갔고, 모토롤라도 유례없이 하위로 추락했다. 
국산 기업에 대한 이 나라 국민들의 애정은 망극할 지경이라, 
월마트, 노키아, 카르푸가 망해나가는 희한한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기업의 물품을 수입추진할 때 거래처에게 늘 강조했던 건, 이 나라는 “월마트와 노키아, 까르푸가 망해나가는 나라다” 라는 거였다. 그들에게 한국만의 감수성에 맞추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기업들은 나보다 무럭무럭 자랐다. 
회장들은 모두 휠체어를 타고 비자금을 조성했고 어떤 불법적인 증여나 상속도 모두 면제 받았다. 그들은 국가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중대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밀어주고 당겨주던 그 기업들은 아무도, 전문경영진으로 구성해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지 않는다. 
보름달을 만들던 삼립은 각종 간식을 모두 점령해 빵과 커피는 물론, 떡까지 장악한다. 
동네빵집은 사라지고 모두 다 삼립이 이름을 바꾼 SPC와 CJ 뜨레주르의 양대 산맥의 종업원이 되었다. 
LG의 자녀들이 100% 주주로 있는 아워홈이라는 외식업체는 순대도 판다.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롯데마트 통큰 치킨,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의 피자, 동네 골목을 치고 들어온 SSM 수퍼마켓, 전국민이 대기업의 종업원이 될 추세이다. 
이게 전세계적인 추세인가? 신자유주의 끝물에 한국만큼 재벌이 거대해지는 나라도 있나?
이 나라의 재벌은 Chaebol 이라는 영문고유명사가 있다. 
이 고유명사는 한국의 재벌문화에 대해서 연구한 국내의 한 학자가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영어단어로 인정이 된 경우이다.
기업은 흑자다. 공공요금은 치솟는다. 물가는 오르고, 국민은 자살한다. 
재벌은 살찌고 소비자는 죽어간다. 
각종 자동차는 국내에서 비싸게 팔고 수출이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박정희의 신념을 이어받아 이 나라는 여전히 재벌에게 관대하고 재벌을 위해 나라가 굴러가고 국민들은 봉이 된다. 
신형 휴대폰을 개발한 회사들이 수십조의 흑자를 내면서 별도의 운영체제를 개발하지도 않고, 새로운 OS로 업그레이드 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억울하면 새로 사세요. 지원금 드립니다. 이게 지들 나름대로의 서비스다. 
그러면서 죄없는 서비스 직원들만 조져,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잘 받았느냐고 확인을 하고 점수를 매기라 하고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고운 음성으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운운한다. 
닥쳐라 더러운 돼지들아. 
대기업이 수조원대,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면 사회의 모든 자원을 낼름낼름 받아먹은 만큼 기술개발을 하고 재투자를 해야지 전 국민의 종업원화를 꾀해 동전이나 뜯어가고 쉽게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소매업까지 장악하라고 밀어준 거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산품 애용이 상당히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느꼈지만 최근들어 극에 치닫는 듯 하다. 전국민을 종업원화 해서, 전국민 정규직이라도 시켜줄 것인가? 그것도 아니잖는가?
사회환원 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다. 
재투자 재개발, 국가가 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 엄청난 투자금이 필요한 연구개발. 힘쓰란 말이다. 골목에서 천원떼기 백원떼기 팔아먹지 말고. 그런 건 당신들 아니어도 충분히 할 사람 많다. 
어차피 이윤추구하는 기업이다.
그들에게 윤리적인 걸 강요할 수도 없고, 사회복지재단이 되라고 할 수도 없다.
작작 해 처먹으라는 거다.
꼼수도 부릴만큼 부려야지, 아주 영악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리지 않는 이상, 수가 너무 얕아 구린내가 풍긴다.

2012. 1. 25.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이유

서른이 넘도록 각자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완벽한 이방인이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는, 이 사람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하겠거니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외국인과의 결혼은 이 사람은 나와 완전히 다른 문화의 사람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깔고 시작하는 반면, 같은 국적과 같은 언어, 혹은 게다가 동향의 사람일 경우 나와 같으리라는 엄청난 착각을 대전제로 깔고 시작한다.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부부는,
큰 일로 절대 싸우지 않는다.
말하자면 큰 일이 벌어졌을 경우, 그 어떤 집단과도 동일하게 내부에서 엄청난 단결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위기 상태에 빠지거나, 집안의 어떤 불우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외부의 침략으로 간주하고 전투적으로 뭉치게 되어 있다.
이는 아주 소규모집단인 가족에서도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집단의 규칙이다.

아주 작은 일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와 같으리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 이 역시 법륜스님이 하신 말씀.

쓰레기통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쓰레기통을 화장실에 두지 않는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나의 모친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벗어난 이후 절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지 않았다.
불결하다는 게 그 주된 이유였으며, 수세식 화장실에서는 모든 휴지가 다 녹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녹지 않는 특별한 재질의 물품을 쓰지 않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나는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고 사는 것을 불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독립을 해서 혼자 살 때도 절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지 않았다. 쓰레기통은 외려 화장실의 바깥 좀 가까운 곳에 두고 그 곳에 가지고 나와 물건을 버렸다. 예를 들어 생리대나, 수채구멍에 쌓인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해당된다. 이것은 관습이 된다. 그리고 엄마의 주장은 대부분 자식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고착된다.

반면,
남편은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두고 사는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하여 독립을 하고서도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꼭 두었다.
그 이유는 수세식 변기라 할지라도 변기의 크기나 형태에 따라 간혹 변기가 막히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뒷처리에 사용된 휴지는 반드시 따로 분리를 해서 버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장실에서는 절대로 변에 관련된 종이만 발생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나, 어떠한 물품을 뜯은 포장들이나 물기가 묻은 것들을 다른 쓰레기통에 버릴 때 오히려 벌레가 생기거나 집안 전체가 불결해질 수 있다. 그리하여 남편의 본가는 여전히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있고 가사일에 늘 부지런하신 시어머니께서 수시로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닦고 말리는 일을 해오셨다.

결혼을 하고 난 뒤 나는 화장실에 휴지통을 두지 않았다.
내가 그런 문화에서 나고 자랐고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쓰레기통이 없는 화장실에서 당황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과연 나의 문화가 합당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가다.
기실, 주부의 자리에 있던 엄마나, 그 자리를 이어받은 나도, 결정적으로, 화장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싶지 않다는 게 합리적 논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 가족이라도, 내 새끼라도 쉽게 말해 “똥닦은 휴지”를 내 손으로 치우는 일이 싫다는 것이다.
희생이라고 생각하거나 쓸데없는 집안일을 더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모두 “하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합리화의 근거들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있거나 없거나 당황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매우 당황하고 불편해한다.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남편은 있어야 한다면, 둘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엔 있는 게 맞다.

여기서 내가 나의 진정한 마음의 욕구 “똥 닦은 휴지를 내가 치우고 그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내가 닦고 씻고 말려야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관철했다면-
우리 부부은 매우 추접스럽고 민망한 소재인
“화장실에서 똥닦은 휴지를 왜 수세식 변기에 버리지 않고 별도의 쓰레기통에 따로 보관하느냐” 에 대해서 24시간 이상을 싸웠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이유는 이러하다.
대부분,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 마음의 근간엔,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상반되는 작업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아주 견고하게 굳어버린 자아의 욕구가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뿌리를 걷어내는 작업은 평생에 걸쳐 지난하게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결혼 이후 내가 곧 화장실에 쓰레기통을 비치하는 것으로 별 갈등없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에도 각종 매우 사사로운 것들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는 것이 동거인들 사이의 문제다)

왜 안되는가,
왜 용납하고 싶지 않은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나의 욕구와 상관없이 나의 양심이나 신념에 기반하는 것들도 있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철저히 나의 욕구에 기초하는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분별해 내는 과정은 쉽지 않으나,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들이 된다.

2012. 1. 19.

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의 잘못된 기독교 윤리, 인간의 나약함과 긍정의 배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 18. 

기억의 지배

1.

어제 트윗에 쓴 글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4학년때인가 5학년때인가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데 폭력 이런 건 아니고 집단 따돌림. 갑자기 성적이 오른 걸 애들이 내 요점정리 쪽지를 보고 컨닝을 했다며 근 6개월간 나를 괴롭혔다. 결국은 애들의 강요로 담임에게 거짓자백도 했지.

봄에 봤던 시험을 가지고 가을이 깊어갈 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내 등에 욕쓴 쪽지 붙이고 깔깔대고 뭐 그랬다. 나중엔 애들이 하도 몰아세우니까 나도 내가 컨닝을 했다고 착각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아직도 동갑내기 여자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5학년때가 맞는 거 같다. 
4학년때는 담임과 관계가 정말 좋지 않았고, 그 담임선생은, 촌지를 요구하는 김옥자라는 선생이었는데 긴 파마머리에 잠자리 안경을 썼었다. 
당시의 일을 떠올렸을 때 내가 허위 자백을 한 것이 김옥자 선생이 아니라 중간에 병가로 자리를 비웠다 다시 복귀한 허재영 선생님이었으니 5학년때가 맞을 것이다. 


아무튼 사건은 위와 같이 벌어졌고 몇달이 지나 담임에게 허위자백을 했고 교실 밖에는 아이들이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 주도를 했던 아이가 오윤숙이라는 아이였다. 머리가 유난히 노랗고 매우 날카롭게 생긴, 그런 인상의 아이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오윤숙과 내가 성적으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였는데 
나는 전교에 소문난 이혼녀의 딸이었고 – 당시 전교에 알려진 이혼가정은 단 둘 – 가정형편도 그닥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카우트를 하거나 여러가지 눈에 띄는 짓들을 했으니 그 아이 눈에 내가 가시같았을 지도 모른다. 

4학년때 우등상을 촌지때문에 받지 못해 매우 억울해 하며 하루종일 울었고 
엄마가 종업식날 학교를 찾아가 소고기 한 근을 갖다 주며 (당시는 이런 촌지도 가능하던 무려 80년대)
우등상을 주지 않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엿을 먹인 사건이 있었다. 

다음 해 (내가 5학년이 되던해에) 동생이 입학을 했는데 담임이 김옥자 선생으로 배정이 된 것. 
교실 뒤에 서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 선생이 놀랐다는 전언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입학 두번째 날에 동생이 반이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1학년 6반으로 배정받았던 아이가 2반으로 변경된 것. 
이게 선생의 농간인지 아니면 학사처리의 실수이거나 일괄적으로 몇 몇 아이들을 이동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확인 한 바가 없으므로.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나는 기필코 촌지를 건네지 않더라도 1점차로 우등상을 밀리는 일이 절대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열두살의 굳건한 다짐으로 (풉;)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4학년 전체 성적 91점에서 98점으로 빅 점프를 한 것인데. (그 몇 점에 목숨거는 아이였다 내가) 그게 사달이 된 것이다. 

2. 

쓰다가 생각이 난 건데 
중학교 2학년 때 교회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 몇 명, 유진, 수정, 혜영 뭐 이런 아이들 사이에서 남녀관계가 엮여서..
에..그러니까 유진이가 흠모하던 오빠랑 나랑 연애질을 시작한.. 그게 발화점이 된 것인데. 
사실 나는 정군을 좋아했었는데 (아 한 참 그럴 때 아닌가. 다들 양해해주시길) 정군이랑 잘 안되다가 윤군의 고백을 받고 윤군에게 틀어버린 것인데 유진이가 좋아하던 윤군을 그러니까 내가 빼앗아갔다..는 .. 
중2만의 논리에 밀려 몹쓸년이 되어버렸다. 
(너는 고백도 하지 않았잖아 응? 이라고 하기엔 사실 뭐 되게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아무튼 그리하여 이 문제도 근 일년간의 따돌림으로 이어졌는데 
교회 근처 골목에서 상당히 심한 욕설등을 당한 기억이 있다. 
그게 수차례 이어졌고 아이들이 그간에 쌓인 나에 대한 불만도 겹쳐서 (사실 당시에 내가 뭐 상당히 인격적이었다거나 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 2의 패거리 문화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버렸다. 나는 그 간극을 신앙에 집중하고 (컥) 학교에서 맡고 있던 학생회 간부 활동에 집중하고 (컥컥) 공부는 하지 않았으나 연애에도 집중했다. (환장) 

그러니까 나는 두 번의 따돌림을 겪었던 것인데 
경미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반전체나 전교생에게 낙인이 찍힌 것보다는 
내가 어울리던 패거리에서 떨궈져 나간 것이라 다른 아이들도 남아 있었고 나에게 할 일도 늘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에 몰빵 한다거나 중학교 때는 다른 활동에 몰빵 했다. 
이 아이들과는 졸업식 즈음에 다시 화해를 했는데 역시나 나는 매우 기가 죽은 상태였고 
내가 학생회장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 얼만큼의 영향이 있었던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건 알 수 없다. 
그런 수준의 아이들은 아니었던 거 같다. 
이 아이들과는 주로 유재하나 봄여름가을겨울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3. 

문제는 동갑내기 아이들과 두 번의 마찰을 빚은 후
나는 75년생 여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가정내 우환으로 학교를 1년 쉬고 76년생들과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는 아이들과 고딩에게 하늘같은 1년의 차이를 극복하고 참 잘 지냈다. 
그리고 졸업후 75년생들과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기들이 모두 76년생이었으므로. 
친구들의 연령대가 77까지 내려가는 일도 펼쳐졌으나 잦은 이사와 이직, 결국 유학까지 가면서 여러가지 연결고리들이 사라져버렸고 지금 내가 연락을 하고 종종 만나는 75년도생 친구들은 초등학교 동창 남자 아이들(이젠 아이들이 아니지만) 두명 정도와 고등학교 동기는 아니지만 입학 때 같은 반이었던 동갑내기 3명이다. 

기실 나란 사람이 사회성이 상당히 좋고 사람을 잘 사귀고 여기저기 커넥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발이 넓은 편인데 주변에 75년생이 이렇게 없다는 건 약간 의아할 정도이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친구들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함께 무리지어 몇 번 만났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느껴 친한 친구에게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게 좀 어렵다고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75년생 여자, 라든가 동갑이라든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뒤로 주춤. 하게 되었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최근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지적장애를 입었다는 어느 여학생의 사연을 듣고 나서 떠오른거다. 





4.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 

성폭행 피해자는 뉴스에서 성폭행에 대한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 2차 3차의 정신적 상해를 입는다고 한다. 
나 역시 기억도 잘 하지 못하던, 그러니까 가슴속에 막 새겨놓고 곱씹고 그러던 일이 아닌, 
내 무의식, 잠재의식 저기 어느 구석방에 처박아놨던 기억과 상처와 난감했던 그 공기가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인데, 다행히도 2차 상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그건 당시에 별로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고, 지금 내가 많이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양쪽 성의 부모중에 편향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성별의 부모와의 유착관계가 성장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설을 들었다.  예를 들자면 양쪽 부모 중 특별히 엄마와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빴던 영유아기를 지내면 성장을 해서도 여성들과 잘 지내지 못하거나 엄마 또래의 여성들을 대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인데, 이건 익숙함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지냈던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할머니를 친근하게 여긴다. 
어려서 단 한 명의 노인도 만나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세상의 모든 노인을 어색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나는 아이들과 내 동생과 나의 인간관계의 폭을 보면서 우리의 기억나지 않는 영유아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 한다. 

특정한 패턴이 사람마다 발견되는 것은 있다. 
내 경우는 연상의 남자들이 연상의 여자들보다 편하고 연하의 남자들보단 연하의 여성들이 편하다. 
그건 아마 내 기억속에 각인된 상처나 여러가지 경험들로 인해 스스로 방어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나를 공격해왔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는 자체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5. 

문제는 이러한 기억들이 제대로 박혀있는가도 있으나 오인되고 조작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1차 따돌림을 당했던 초등학교때의 그 컨닝사건은 내가 허위자백을 하면서 정말 내가 컨닝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혼란에 빠져 상당히 괴로움을 겪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갈등으로 인한 한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으로 인해 조작된 기억이 주입되고 세뇌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게 서른 여덟이나 된 지금에 와서도 작용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그것으로 인해 나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나와 갈등을 빚었거나 나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기억이 나의 인생의 어떤 장애물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부분이다.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이자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인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객관주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개인의 선입견이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선입견이란 이해하는 사람, 즉 해석자에게 축적된 모든 정신적 자산 일체 (관습, 지식, 경험 등을 통해 생성된)를  뜻하며, 이러한 선입견이 ‘현재의 견해’로 작용하면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이 정신적 자산이 없는 한 그 어떤 이해과정도 작동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선입견에 의해 이루어진 이해의 과정들은 인식의 근본적인 지평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주목할 또 다른 점은 바로 선입견, 즉 대상을 보는 현재의 관점을 ‘열린구조’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가다머는 선입견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방되어 있고 변화한다고 말한다. (중략) 결과적으로는 뻔한 말일지 몰라도 선입견이라는, 경계해야 하는 가치를 정신적 자산으로 해석하고 열린 구조를 통해 이에 대한 오류를 방지하는 가다머의 해석.. 

선입견은 그 자체가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선입견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닫힌 구조’로 인해 위험해지는 것이었다.  

– 선입견을 허하라  / 김선미 씀 
디자인 문화잡지 “지콜론 57호” 2011년 12월분 중에서 발췌  

그리하여, 
나는 내가 가진 선입견이 얼마나 닫힌 구조로 나를 봉쇄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이다. 
이 깨달음이 나에게 내가 가진 선입견을 다시 열린 문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짐작해 볼만한 것이다. 

얼마전 인생이 통채로 조작당한 느낌이 들었을 때, 내가 했던 생각도 이런 것이다. 
그 조작된 기억들이 나를 얼마나 방해해왔는가, 그런 이유로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은 무엇이며, 결국 지금의 나는 얼마나 또 내 삶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스스로를 좀 먹고 있는 요소가 있는가 꼼꼼히 점검할 것. 

결론은 어쨌거나 지나온 나의 모든 아픔도 내 인생을 구성해 온 요소들이며, 그로 인해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인간 역시 과거에 대해선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선입견들이 꼭 내 인생을 방해해왔다고 규정짓기도 애매한 것이다. 

내가 꼭, 굳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때 과연 내가 더 행복해졌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흔하게 내가 하는 이 말은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은 움직이는 동물이고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분할하므로, 나의 사고가 달라진 하루 하루의 시점에서 나는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구난방 한 입으로 여러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日新又日新에 해당되는, 인격도야, 혹은 불교적 철학에 닿아있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성인군자가 나치가 되진 않지만, 성인군자도 어떤 경험이 의식으로 들어와 장애가 되기 시작하면서 나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므로. 

6. 

최근들어 일어나는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의 노출 (난 이것을 언론 노출이라고 본다. 여태 없었던 일들이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라 늘 있었던 일들이 최근에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 뿐이다)과 고문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급작스럽게 사망한 故 김근태 의장을 생각한다. 

고문으로 인해 혹자들은 자기들이 정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채 허위자백을 하고 이후 살아남기 위해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신이 우파나 보수의 호위무사라고 생각하며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가슴속 어느 어두운 곳에 처박아 둔 조작된 기억들과 

전두환을 비롯한 몇 명의 독재자들을 열심히 보필하고 독재자의 딸을 대권주자로 추대하려는 사람들의 왜곡된 기억과 

새마을 운동이 사실상 농촌을 황폐화 시킨 박정희 독재정권의 매우 파렴치한 임기응변적 대책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지 못하고 흰쌀밥 먹게 해준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안스러운 구호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위원장님께서 돌아가셨다” 며 통곡을 하는 북한의 주민들과 

역사를 지우고 또 어린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심어주려는 위정자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당시엔 친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스스로 조작한 기억과 가치관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7. 

기억은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기억을 끄집어 내어 다시 펼쳐서 하나씩 따져보고 다시 잘 접어 마음속에 다시 넣어두는 것도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 작업은 매우 지난하고 고통스러워서 자기 자신이 명료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유지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합리화를 하고 변명을 하고 그런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기억을 해내지 않으면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고 조금 더 숭고한 인간미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사람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사람으로 인한 기억에 의해 베어진다. 
그 기억을 꺼내서 다시 접어낼 수 있는 힘이 그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기억은 분명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억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 기억들이 아픈 기억이 아니었길 바라는 욕망을 버린다면, 
조금은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기억들은 기억으로 잔존한다. 
인정하고 보내주는 것. 나뭇잎 배에 글자를 적어 흘려 보내듯이, 유리병에 편지를 적어 먼 곳으로 떠나보내 듯이 기억으로 베어진 상처들을 모두 다 고이 접어 보낼 수 있길 빈다. 

2012. 1. 5. 
















대한민국 새판짜기

진보나 보수가 없는 이 나라에서 그러니까 지금 보수들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가카와 기득권을 비판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보진영에 올라탄 꼴이 된다.

여론이나 파벌을 나누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이지만 굳이 규정하자면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이 나라는 군림하고자 하는 놈들과 군림당하지 않으려는 세력으로 나뉘는 것인데. 그나마 웃긴 건 이게 1%와 99%의 대도 아닌 것이 이 1%축에도 못 끼고 자기가 누구 때문에 삥을 뜯기고 사는지 잘 모르면서 마치 자기가 1% 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호위무사라도 된 듯 까부는 형국인데 대표적인 자가 강재천 되겠다.

사실 학문이라는 게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공산주의는 현실적용하는 거에 모두 실패했는데 그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유토피아적 발상 때문 아닌가. 그러다 보니 공부 좀 했다 하는 것들은 니들이 아는 게 이게 정답이 아닌 세상인데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줄테니 잘 들어봐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되니.. 이건 자본으로 군림하려는 새끼들을 깐다는 것들이 지식으로 또 군림을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

그러다 보니 이건 마치 피라미드처럼 군림하려는 자본가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앉아있고 그 밑에서 개뿔 가진 게 지식밖에 없는 지식분자들이 2차 군림을 꿈꾸면서 이들에 의해 선동된 자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꼬라지밖에 안되는 거다.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지식분자들을 죄다 노동으로 교화시켜야 한다며 하방운동을 시켜버린 공산당과 모택동의 심정이 바로 이런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분쟁과 토론이 나쁘니까 서로 연대하고 까지 말고 싸우지 말자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이겠다.
이 엄청난 역동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건 이 나라의 빈곤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니 설령 이게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해도 조금 견디고 참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영화 도가니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멍이 들고 부어오르고 그 멍이 빠지고 깁스를 하고 뼈가 다시 붙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우리의 이 나라도 그 모두 과정중에 서 있는 아주 올바른 현상 아닐까.

건국 60년중에 민주주의 한 게 몇 년인가.
친일과 독재를 청산하지도 못한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자가 대권주자로 나서는 여기는 아직도 군림하려는 자에게 “여지를 주는” 답답하리만큼 선량한 국민들이 있는 나라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있다는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기운은 잘 하면 뭔가 아주 혁신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다.

2012. 1. 4.

휴대폰에서 어썸노트에 끍적거린 건게 너무 길어져서 뭐 블로그에 올려도 돠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그저 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고3이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졸업을 하지 못해서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과 교복을 입고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갑자기 주가를 올리게 된 바로 그 지역) 그 학교로 돌아간다. 담임선생이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나는 때로 그 아이들의 담임보다 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
갑자기 스무살 무렵의 여러가지 공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잠이 들었다.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저 나는 남들이 사는 이십대을 지내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출근을 해야했고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구해야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구치소에 면회를 가야 했다.

그런데 어제 꿈에는 난데없이 내가 살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고시원이 나타났다. 빨래를 들고 세탁실 앞에 순서를 시다리고 있었다.
고시원의 낡아빠진, 혹은 낡아빠질 수밖에 없는 세탁기 앞에서 우리는 빨래를 줄을 세워 다른 사람의 빨래가 끝나길 기다렸고 축축한 빨래들을 창문이 없는 방에 널곤 했다.

냄새나는 냉장고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스레인지가 있는 휴게실도 등장했다.

잠에서 깬 나는 내 마음 어디가 아픈가를 하루종일 생각했다.

시간이 가서 그렇다.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은 자라면 떠난다.
내가 부모를 떠난 것처럼.

큰 아이는 성인식을 할 것이고 더 이상 인생이 버겹지 않은 날 술도 마실 것이다. 작은 놈은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조숙한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남편의 귀밑머리는 더 이상 하얗게 될 자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싱그럽던 스물 셋의 후배들이 서른을 넘겼다. 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시간은 지난하게 흘러간다.

삶이 지리멸렬하다고 불평할 시간따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소원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흙을 밟은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한 밤에 궁색해지는 신체를 탓하면서도 깨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겪어야 할 일이나, 먹어야 할 음식이 정해져 있다는 글을 읽었다.

정말 나는 너무 오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이제는 앉아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

2012. 1. 2.

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