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속의 계모

매일 하나씩 읽어주는 옛이야기보따리.
아이가 재미가 붙었는지 읽어달라고 한다.
오늘은 계모얘기를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전통설화/신화/전래동화 , 즉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1.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고
2. 아버지와의 애정관계는 불분명하며
3. 계모가 등장함과 동시에 아버지는 사라지거나 역할이 미미해지거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식을버려두고 계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4. 이를테면, 새로 들어온 계모들의 역할은 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보모 및 육아담당으로 들어오고, 밥벌이는 하지 않는다.
5. 다시 말하면, 아내가 없는 홀아비는 계모를 들여와 생계를 해결해주고 보육을 맡기는 기능으로 “사용” 하는 듯 보인다.
6. 여권신장따위 개도 안 물어갈 소리였던 전근대 사회에서 부계사회와 일부일처제였던 사회적 제도에서 홀로된 여자가 자식을 키우는 일은 경제적 궁핍이 당연했으되
7.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해야만 했던 홀아비들은 육아를 전혀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8. 이렇게 짝을 잃은 남과 여는 단순한 계약관계 및 자식육성을 위해 결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를 띈다.
9. 가족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대부분 이런 이야기에 임무로 수여받은 “남자의 자식”에 대한 육아를 게을리 하는 계모들은 그 사실이 발각되면 곧 쫒겨나고 만다.

말하자면 옛이야기에서의 계모는 그저 밥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는 새로운 취직자리를 얻어 자기 자식을 데리고 “주거이동”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늘 밖에 나가 있으니 “부부”의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새로운 일자리는 홀아비의 아이를 키우는 일인데 그 일을 게을리 하였으므로 당연히 해고되는 것이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계모가 아니라 그저 새로 들인 보모를 계모라고 통칭하였던 것은 아니었던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속의 “새어머니”라는 존재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무관한”, 그저 양육을 맡았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이름을 잠시 빌려쓴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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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서정오선생님의 글모음인데 이야기가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마치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이 읽어줄 수 있다. 옛날 이야기를 머리맡에서 해주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이솝우화나 삼국유사를 다시 읽고 내가 이야기를 가공해 해주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어주는 건 게으른 방법이긴 하지만, 워낙 우리말을 맛깔나게 잘 쓰시는 분이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7살까지만 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올 초부터 부쩍 매일 하나씩 읽어달라고 하고 있다.

읽다보면 아이가 잘 모르는 입말의 낱말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서 우리의 옛풍속, 즉 장작이 한 짐, 쌀이 천 석, 이런 표현이 나오면 질문이 술술술 이어진다.

이 중 “두꺼비서방님”이라는 옛이야기는 허물을 벗고 근사한 낭군이 된 두꺼비의 허물을 태워버린 색시가 서방님을 찾아 갖은 모험을 다 하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이야기로도 충분히 <반지의 제왕> 못지 않은 대형 스펙타클 서사 판타지 영화가 가능할텐데..라는 상상을 해봤다.

2013. 3. 8.

Up the hill

up the hill 이다. Hooker hill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고만고만한 juicy bar ( 두 잔 값을 내고 한 잔을 마시면 한 잔의 가격이 아가씨에게 돌아가는 체제) 들이 있고 맨 위에 스텀퍼라는 댄스클럽 ( normal한 pop음악) 이 있고 그 밑 우측엔 프렌즈라는 곳이 있었다. 사진으로 간판이 보인다. 프렌즈에는 당시 흔치 않던 포켓볼 다이가 있었고, 다트판도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갈만한 장소였다.

그 윗쪽에서 스텀퍼 사이에는 오란씨와 소주를 섞은 소주케틀kettle을 1.5리터 PET 병을 자른 것에 담아 팔았는데, 일반 미군 사병들이 자주 사 마셨다. 그 아이들은 보통 16세부터 시작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저학력층 아이들도 적지 않아 자기 이름 정도 겨우 쓰는 아이들이었고, 하루에 50단어만 사용한다는 전설의 계급층이었다.

맨 꼭대기엔 남산모텔인가 여관인가 하는 엉뚱한 여관이 골목의 마무리를 했고, 그 골목의 왼쪽으로 틀어서 내려가면 매번 불이 나서 문을 닫는 나이트클럽이 있은 유명한 계단(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연출) 연결된 길이 있다.

간혹 미군 헌병대가 나타나면 골목이 좀 얌전해졌고, 비상이 걸리거나 미군범죄가 일어나면 모든 일반사병은 외출금지가 걸려 이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병들을 상대하는 저렴한 술집들이 있어, 고위 장교나 다른 외국 비지니스 맨들은 이 곳을 찾지 않았는데, 유독 스웨덴 네덜란드 등 스칸디나이아 근처 복지국가쪽 엔지니어들은 이 곳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발전기를 파는 북유럽 A모회사 팀들이 특히 이 골목을 좋아했다.

당시 매우 인상깊은 커플이 하나 있었는데 50대의 북유럽 엔지니어 커플로, 비혼이었는데, 아줌마는 작고 마른 체형에 아주 머리가 길고, 아저씨는 콧수염이 난 바이킹 같이 생겼었다. 이 둘은 주말마다 이 골목의 입구에서 헤어져 밤새 각자 놀다가 동 틀무렵 헤어진 곳에서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갔다.
Honey, did you have fun?
Yes, I did. How about you?
Me, too!
I’m very grad to hear that you had fun!

스텀퍼stumper 에는 이태원에서 잔뼈가 굵은 듯한 한국인 디제이 아저씨가 있었는데 언제든지 내가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 를 틀어달라고 하면 두 번 세 번씩도 틀어주곤 했다.

이 사진이 찍힌 지점의 좌측쯤에 있던 업소에서 그 당시에 여성접대부가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 관광특구로 개발되고 이태원이 내국인에게 업소를 오픈해야 하는 규정이 생긴 뒤 IMF가 터지고 이 골목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때 흥이 좋은 (군인들에게도, 민간인들에게도 아무 불행한 사건도 없는) 때에 이 골목은 사람으로 꽉 차서 걸어올라가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때 나는,
스물 셋에서 스물 다섯,
하루종일 미니스커트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계단을 뛰어다니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나르다가 12시에 마감을 하면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떨구는 대신 카스 한 병 마시고 카스 두 병을 마시러 이 골목의 프렌즈를 김언니와 올라갔었다.

알콜중독으로 비명횡사할 것 같던 김언니는 일본남자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지금 고등학생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제 에비가 사다 준 설렁탕 반그릇을 먹은 아이가 “아 행복하다” 라고 말한다.

아들의 집

나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2006년도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2006년 12월에 처음 아파트에 입성했다.
난곡의 판자촌을 깎아 만든 재개발 단지였다. 유모차를 밀고 높은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시흥의 뒷길을 돌아 멀리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성채가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만큼 생경스럽고 낯선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었지만, 언제나 기괴하고 이상야릇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산안개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림역과 기온차이도 3도 정도 났다. 미림여고를 지나 버스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올 때는 귀가 멍멍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2009년 7월에 지금 살고 있는 평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 곳은 모두가 아파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이다. 20년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신도시 1기 도시 중의 하나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조금씩 낡아가고 있지만, 적절한 20-30대 평수가 골고루 있고, 사교육시설등이 잘 되어 있고 구획정리가 깔끔한데다가 인구밀집도가 높아 생활편의시설이 많다. 이런 편리성 때문에 20-30대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로 평가해 이주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안양이나 평촌 들녘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신도시라는 것이 원래 외부인을 유입하기 위한 곳이므로.

아이는 그렇게 기억이 생성될 무렵부터 아파트촌에 살았다.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문화의 격차가 생겨나고 있다.
일단 아이는 흙길을 잘 걷지 못한다. 산에 데려가면 자꾸 미끄러지곤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물이 마르면 물이 마르는대로 그 느낌이 달라지는 산길과 흙길을 잘 걷지 못하는 것이다.
“벽장속의 요정”이라는 김성녀 주연의 모노드라마 연극에는 40여년을 벽장에 숨어 살던 정치범 아버지가 세상에 처음 나와 포장된 도로 위를 걸으며 튕겨져 나갈 거 같고, 미끄러질 거 같다고 하던 것과 상반되는, 그러나 역시 낯설다는 것에 대해선 동일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파트단지를 나와 안양천변을 걸어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많은 관양동 인근의 밤산책을 나갔다가 반지하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_ 엄마 저기는 뭐야?
_ 집이지.
라는 내 말에, 저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냐고 물었다. 집이 땅 속에 있어? 라고.
아이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반지하방. 엄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다 한 번씩 거쳐갔던 주거시설. 반지하방. 거기도 사람이 살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이는 낯설어 했다.

또 몇 달 전에는 내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이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마당이 뭐야?”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원래 집은 대문이 있고, 마당이 있고, 그 안에 건물이 있고, 건물에 들어가는 현관문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유년기를 모조리 보냈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아이에게 마당이란 매우 먼 곳의, 동화나 영화에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처음 크레파스를 쥐고 집을 그릴 때도 아이는 아파트를 그렸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파트는 왜 모두 네모모양이야? 라고 묻긴 했다.
세모난 아파트, 동그란 아파트가 있으면 재미날 거 같아. 라고 말하긴 했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함부로 놀러가지 못하는 곳.
마당과 골목이 없는 곳.
경비아저씨와 관리사무실이 있는 곳.
누군가 우리집을 지켜주는 대리인과 노동의 대리자가 존재하는 곳.
그 대신에 마당도, 대문도 없는 네모난 공간.
우리집과 저 친구의 집이 똑같고, 우리집은 몇 평이고, 친구의 집은 몇 평인 것으로 한 번에 수치상의 가늠이 되는 공간.

그러나, 그 집엔 다락방이 있고, 좁은지 넓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집엔 뭔가가 있는, 그 집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

그런 자리에서 아이가 자랐다.

이 아이가 좀 더 자라,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질 수도 있겠고,
우리가 다른 형태의 주거형식을 택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을 때, 아이가 갖게 되는 마음의 폭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내 마음대로 내 집을 개선하지 못하고, 정해진 양식과 주어진 형식에 따라 객관식의 답을 맞추듯 다지선다로 골라야 하는 삶이 지겨워지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선택지를 고르는 인생은, 2006년생 내 아이에겐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당연한 인생의 법칙이 될 지도 모르겠다.

2013. 1. 3.

The strongman and his daughter

노무현때부터, 별 차이 없는 득표율로 대통령들이 당선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절반으로 쪼개져 각자의 투쟁을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유신의 망령은 그 공포가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유신에 태어난 모든 자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반정부적 생각을 스스로 검열하는 무의식속에 그들이 늙어간다. 베이비붐 세대는 죽을 때까지 투표권을 가질 것이고, 그들의 새마을 운동은 무덤까지 추억으로 회자될 것이다.
20대 이하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이 나라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고려장을 부활하고 싶을 만큼 세대간 이견이 벌어질 수 있고, 이제 젊은이들의 삶을 그들이 볼모로 잡고 있다.

새누리당에겐 승리의 공을 세운 것은 변함없이 똥물에 발담그고 있는 민주당이다. 이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진보의 싹과 풀뿌리의 힘까지 앗아가고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이기고 싶다” 는 마음을 갖는 순간 망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김문수가 탄생한다. 함께 하겠다. 낮은 자리에 있겠다 라는 마음이 퇴색되는 순간 절대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애시당초 민주는 중도보수파이지 진보도 아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그들은 자존감을 잃은 지 오래되어 자력갱생은 기억조차 없다. 강력한 지도자가 독재를 펼쳐 이 시궁창에서 절벽으로 떨어지지만 않기를 바란다.

이제 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동북아 파시즘의 라인업이 완벽구성되었다. 성장의 정점을 찍은 체제를 다시 부활시키는 길은 전쟁으로 체재를 쇄신하는 극단의 방법이 남아 있다. 성장이 끝난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면 있던 것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이다.

세계의 흐름이 그러할 진대,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투쟁은 언제나 지속되며, 역사는 투쟁과 분쟁을 거듭하며 발전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모두 다 행복한 세상은 언제나 유토피아에 머물러 있다. 진보와 민주에 대한 열망은 바람으로 충분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본질이며 본분이다.

이번 기회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겠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국민을 저버린 민주당은 헤쳐모여 하여 새누리와 합당하라. 내가 당신들을 온전히 버릴 수 있도록.

메이저 언론은 더욱 더 돈벌이에 혈안이 될 것이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진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친일과 파시즘, 유신의 떨거지들은 이거 먹고 떨어지기 바란다.

이제 군소언론, 지방지, 풀뿌리들로 더 게릴라처럼 함께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 굴하지 말고 끝까지 개기리라. 죽기밖에 더하겠나.

서울시 교육감 재선으로 서울의 아이들은 더욱 더 괴로워질 것이고, 그 아이들을 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일게다.

다시 시작이다.

더불어, 이 쪽팔린 역사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이명박 설사 골고루 청소 잘 해주길 바란다. 더 싸질르지나 말길.

+ 덧붙여, 이 곳은 원래 이런 나라였다. 노무현을 뽑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뽑았던 나라.
박정희에게 고문받은 사람들이, 그의 딸을 추대하는 나라
홍반장의 부활을 축하하며, 김두관 전지사의 혁혁한 공로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