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수퍼에 못 보던 아가씨가 캐셔를 보고 있다.
[태그:] 한국사회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내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학교 입학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위해 검토를 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 묶음에 입학식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가정환경조사서 / 예방접종증명서 / 저녁 돌봄 지원서 세 가지다.
저녁 돌봄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 취학통지서를 받고 준비해 온 예방접종증명서를 민원사이트에서 출력했다.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 미리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인데, 입학식 전에 미리 접종을 받은 기관과 연락을 취해서 전산망에 올려달라고 요청을 해야 했다. 이런 서식은 최근에 전산화가 되었기 때문에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펴놓고 가족사항을 적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아마 그 전에 봤던 학교 유인물에 영어와 한자가 마구 뒤섞여 있었던 것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다른 이유의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좀 짜증이 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 말이 있다.
살면서 다들 그렇게 말하듯이, 옛 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이 속담은 매우 쉬운 말로 전하고 있지만 그 말은 사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가정환경조사서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내가 초등학교 즉, 그 때 말로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는 80년대였다. 그 시대에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사람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같이 살지 않는 편이 각자에게 훨씬 좋은 경우이다. 더 같이 억지로 살았다가 어떤 불행이 펼쳐졌을 지 예상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별에 대해서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미 한국이라는 이 고리타분한 보수의 나라에서, 조선조 이상하게 왜곡된 유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는 이 환경에서, 이혼만은 절대 불경스러운 일이라며 참고 지내다가 결국 더 큰 불행을 앞두고, 아니면 이미 불행해 질대로 불행해 진 상태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관계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이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는 결혼부부들은 이 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이 국가의 결혼은 수많은 인간관계와 불필요한 친족관계 때문에 얼기설기 꼬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되도록이면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인간의 일부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따져본다면, 그 역시 주장의 논거는 희박하다. 단순히 그런 거 아닌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원래 그래 왔으니까. 글쎄 그 보다는 사회체제가 더욱 복잡해 지지 않았으면 하는 암묵적 동의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성장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이혼녀의 딸로 살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이다. 정작 당사자는 오죽했겠는가. 교회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시간에 사람들 많은 데서 “이집사 이혼했다며?” 라는 말도 들은 사람이 모친이다. 그게 그 때는 수모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내가 늘 의아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살짝 귀뜸한 일이 왜 전교에 소문이 퍼졌는가 하는 거다. 내가 고의적으로 누설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이혼자녀”라는 것이 매우 흔치 않은 사례였다. 전교에 단 두 명이 이혼자녀로 알려져 있고 그건 꼬리표가 되었다.
“쟤 엄마 이혼했대.” 라는 말.
가정환경조사서에 억지로 아빠를 적어 넣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같이 살지 않을 뿐이었고 자주 만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되던 세상을 지나, 사람이 죽어도 열녀가 났다고 숭앙하던 극악무도한 세상을 지나, 전쟁을 거쳐 수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척을 지는 것은 대단히 불손한 일로 여겨지던 세상에서, 이혼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강요했으며, 결핍된 것은 모자란 것이고, 그 모자란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이며,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옳지 않다는 폭력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흔히들 결손가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결손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굳이 그런 낱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국가와 사회가 정해놓은 가족의 이미지는 아빠 엄마 자식 둘로 이루어진 것이 정상, 그 외의 것은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규칙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할 수 있고, 다른 것들과 같을 수 없다. 다양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지만, 정치가 시작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범주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통치하기 쉬운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줄을 세워, 이 줄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들은 법이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조르주 아감벤이 말했던 호모사케르의 존재 이유와 법철학이라고 하는 어려운 이름의 학문의 요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법은 법 안에 있는 사람만 보호할 수 있고, 법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외면해도 되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 그 편이 통치하기에 편하다. 누구도 반발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법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되지 않고 법 안에 속한 존재가 되어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에게 법은 마치 커다란 성채처럼 느껴진다.
그 성채 안에 들어간 자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규칙과 윤리, 도덕과 원칙, 이 것들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폭력이 가득한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 안에서 떨궈져 나오면 어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이용하면 사람들은 “고분고분” 해진다.
사회적 질서를 위해, 사회적 문란함을 없애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해놓았던 “올바른 가족상”에서 벗어났던 나는, 지금 그 “올바른 가족상”에 또 얼마나 멀리, 혹은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정환경조사서에 남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적으면서 학력을 적는 란이 없다는 것을 새삼 희한하게 느꼈다.
없어야 마땅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세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지 않으면 보호해 주지 않을테야. 이 나라는 전쟁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나라니까. 게다가 삼면이 바다니 도망갈 데도 없고, 그 위엔 당신을 잡아 먹으려는 괴수들이 드글거리거든” 이라는 협박을 들으며 고분고분 줄 서던 기억.
가정환경조사서, 부모의 화목 정도와 내 집의 경제를 책임진 자들이 기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확인했던 그 고리타분한 서류가 30년을 돌아 나에게 다시 왔다. 내가 학부형이 되면 실내화를 빨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꿈이었으며, 이제는 학교에 경찰관이 나타나 학교폭력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움츠러진 몸씨, 주눅든 말씨, 머뭇거리는 마음씨가 모두 문제가 된다고 했던 것은 정해진 매뉴얼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는 읽었다.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굳이 그가 덧붙여 읽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쫄면 피해자가 되니까” 라고.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말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조금 뻔뻔한 태도를 가지라고, 조용하거나 얌전한 성격은 법으로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법과 폭력의 반복이 거듭되는 동안, 이제는 피해자가 될 성격과, 가해자가 될 성격의 유형이 나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싫어. 저리 가. 하지 마”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의 폭력이 사라지는가.
이 사회는 사회의 조직보다 언제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고, 사회가 개인을 지배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잘해야 국가가 잘할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다.
대체 이 파렴치한 구조의 사상은 언제쯤 끝이 날까.
의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는 무사도 아닌, 징징대며 삥이나 뜯는 골목상권의 양아치 같은 이 조직은, 예전엔 자라였고 여태 솥뚜껑으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이 솥뚜껑이다. 밥도 짓지 않은 무겁기만 한 솥뚜껑이, 솥은 어디로 간 지 뵈지도 않은 채 여기 저기서 날아다니고 있다. 이 나라의 전쟁과 테러는 솥뚜껑들이 해내고 있다.
2013년 3월
아들의 집
나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2006년도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2006년 12월에 처음 아파트에 입성했다.
난곡의 판자촌을 깎아 만든 재개발 단지였다. 유모차를 밀고 높은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시흥의 뒷길을 돌아 멀리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성채가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만큼 생경스럽고 낯선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었지만, 언제나 기괴하고 이상야릇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산안개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림역과 기온차이도 3도 정도 났다. 미림여고를 지나 버스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올 때는 귀가 멍멍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2009년 7월에 지금 살고 있는 평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 곳은 모두가 아파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이다. 20년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신도시 1기 도시 중의 하나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조금씩 낡아가고 있지만, 적절한 20-30대 평수가 골고루 있고, 사교육시설등이 잘 되어 있고 구획정리가 깔끔한데다가 인구밀집도가 높아 생활편의시설이 많다. 이런 편리성 때문에 20-30대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로 평가해 이주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안양이나 평촌 들녘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신도시라는 것이 원래 외부인을 유입하기 위한 곳이므로.
아이는 그렇게 기억이 생성될 무렵부터 아파트촌에 살았다.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문화의 격차가 생겨나고 있다.
일단 아이는 흙길을 잘 걷지 못한다. 산에 데려가면 자꾸 미끄러지곤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물이 마르면 물이 마르는대로 그 느낌이 달라지는 산길과 흙길을 잘 걷지 못하는 것이다.
“벽장속의 요정”이라는 김성녀 주연의 모노드라마 연극에는 40여년을 벽장에 숨어 살던 정치범 아버지가 세상에 처음 나와 포장된 도로 위를 걸으며 튕겨져 나갈 거 같고, 미끄러질 거 같다고 하던 것과 상반되는, 그러나 역시 낯설다는 것에 대해선 동일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파트단지를 나와 안양천변을 걸어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많은 관양동 인근의 밤산책을 나갔다가 반지하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_ 엄마 저기는 뭐야?
_ 집이지.
라는 내 말에, 저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냐고 물었다. 집이 땅 속에 있어? 라고.
아이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반지하방. 엄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다 한 번씩 거쳐갔던 주거시설. 반지하방. 거기도 사람이 살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이는 낯설어 했다.
또 몇 달 전에는 내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이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마당이 뭐야?”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원래 집은 대문이 있고, 마당이 있고, 그 안에 건물이 있고, 건물에 들어가는 현관문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유년기를 모조리 보냈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아이에게 마당이란 매우 먼 곳의, 동화나 영화에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처음 크레파스를 쥐고 집을 그릴 때도 아이는 아파트를 그렸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파트는 왜 모두 네모모양이야? 라고 묻긴 했다.
세모난 아파트, 동그란 아파트가 있으면 재미날 거 같아. 라고 말하긴 했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함부로 놀러가지 못하는 곳.
마당과 골목이 없는 곳.
경비아저씨와 관리사무실이 있는 곳.
누군가 우리집을 지켜주는 대리인과 노동의 대리자가 존재하는 곳.
그 대신에 마당도, 대문도 없는 네모난 공간.
우리집과 저 친구의 집이 똑같고, 우리집은 몇 평이고, 친구의 집은 몇 평인 것으로 한 번에 수치상의 가늠이 되는 공간.
그러나, 그 집엔 다락방이 있고, 좁은지 넓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집엔 뭔가가 있는, 그 집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
그런 자리에서 아이가 자랐다.
이 아이가 좀 더 자라,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질 수도 있겠고,
우리가 다른 형태의 주거형식을 택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을 때, 아이가 갖게 되는 마음의 폭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내 마음대로 내 집을 개선하지 못하고, 정해진 양식과 주어진 형식에 따라 객관식의 답을 맞추듯 다지선다로 골라야 하는 삶이 지겨워지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선택지를 고르는 인생은, 2006년생 내 아이에겐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당연한 인생의 법칙이 될 지도 모르겠다.
2013. 1. 3.
한국사회, 가족의 파시즘 – 강준만 글 발췌
냉정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자면, 한국의 어머니 역사는 어머니가 ‘자궁 가족’의 수장으로서 그런 전쟁 (입시전쟁) 체제에 순응해 온 슬픈 역사다. 그 역사는 ‘보수적 과잉반응’, ‘보상적 인정 투쟁’ 이라고 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보수적 과잉 순응이다. 이는 어떤 체제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 체제에 과잉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어머니의 카드는 아들이다.둘째, 보험적 투자협정이다. (중략)
“한국의 특수한 모성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국 중산층 어머니는 서구의 어머니처럼 아이의 감정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공감하는 어머니가 아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하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파악하면서, 아이의 성적과 대학 진학, 이에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성공에 책임을 지는 것을 어머니 역할로서 받아들이고 있다….이러한 한국사회의 모성 이데올로기는 아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들과 전적으로 함께 지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윤택림
“근 1-2 세기 동안 지속된 식민지적 격동기와 혼란기를 살아가면서 여자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했으며 특히 부계 혈통주의의 전통에 따라 아들에게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커지니까요.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만, 아들을 둔 어머니들을 남녀 고용 할당제를 반대하며,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앞장서서 존속시킵니다. 여자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개별 가족내의 어머니로서 강해졌지만 여전히 여자로서는 매우 취약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조한혜정셋째, 보상적 인정 투쟁이다. 아들에게 뭘 바랄 게 전혀 없을 만큼 유능하고 당당한 어머니들이 많다. 그래도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인정 투쟁’을 피해갈 순 없다. “니네 아들 무슨 대학 다니니?” 여기서 기죽는 어머니들이 많다. 아들에게 뭘 바라서가 아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인정 투쟁의 도구다. 어머니의 유능함을 입증해주고 자존심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중략)
교류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어머니의 인정 투쟁은 변형된 권력투쟁인 셈이다. 투쟁이 습속이 돼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면도 있다.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완화 되기는 커녕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중에겐 다른 선택이 없는 점도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끄는 新자궁 가족모델과 이에 따른 ‘도구적 모성’은 한국사회의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전 세계적으로 살펴볼 때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일 수록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한국에서 개인은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대표선수다. 한국인은 국가의 이익과 가족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가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부정부패가 성행하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중략)
집단적 위선의 향연을 꼬집고 ‘가족 파시즘’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득재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가국체제’, 즉 가족과 국가의 논리가 끈끈하게 결합된 체제로 보면서, 가족을 파시즘의 씨앗이자 파수꾼으로 규정했다. 이런 시각에 근거하여 이명원은 한국의 가족주의는 국가주의로 표상되는 집단주의의 하위구조이기 때문에 지난 역사를 통하여 작동되었던 가부장적 ‘국가 파시즘’ 체제는, 가족단위 내에서 가부장적 ‘가족 파시즘’ 체제로 재생산된다고 보았다.“오, 가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에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살점이면서, 나를 낳고 키워준 사랑과 감사의 궁극적 상징이자, 때로는 내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끔찍하게도 들러붙는 수초 같은 것’ – 김용희
어머니 수난사 – 강준만 발췌
오늘 낮에 친구와 나눈 대화. 경상도 남자들의 해외망명(?) 욕구에 대한 원인은 가족파시즘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 페북의 어느 글을 읽고 다시 강준만의 책을 꺼내 일부 발췌해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