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와 시민사회단체에 관하여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 이제는 국회의원 당선인에 대한 별의 별 소리들이 돌아다니는 걸 며칠 지켜보며, 부글부글한 마음을 참다가 오늘에서야 적어본다.
(요즘은 부글부글 며칠 푹 고다가 쓰는 게 패턴이 되어가나)
1. 정의기억연대는, 그 초창기부터 정신대와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알리고 비인간적이고 비평화적인 폭력적 행태를 비판하고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에 비전과 미션이 적혀 있다.
비전 :
우리 함께 손잡아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이 땅을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미션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
– 피해자 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조사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교육과 장학사업
– 기림사업과 국제연대 사업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
– 전시성폭력 피해지원

2. 시민사회단체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한다. 시민사회단체는 그 주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당사자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연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운동을 직접 실행하는 경우는 장애인인권운동, 노동운동이 대표적이다. 연대운동의 경우는 조금 더 추상적이고 거대한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교육운동, 환경운동등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
정의기억연대는 당사자와 연대체가 결합한 복합적 형태라 볼 수 있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에서였다. 그 문제를 세상에 알린 것이 한국의 학자와 시민운동가였다. 알리기만 하고 사라지는 이슈들은 수두룩하게 많다. 단체를 설립하는 것은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다. 누군가 이 일을 붙잡고 있어야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싸운다고 해서 개인의 생계가 해결되진 않는다. 대부분 초기에는 자기 사비를 털고 자기 시간을 털고 일상과 영혼을 갈아넣어 시작한다.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시민운동단체라 보기 어렵다. 돈이 모이는 이유는 투자대비 성과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단체는 자본금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으나, 시민운동을 주로 하는 단체들은 초기에 절대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 “훌륭한 일 하십니다.”라는 칭찬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다.

4. 일본군성노예문제는 이제 국제적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은 아직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박근혜정권에서 저지르는 당사자 동의 없는 합의 때문에 일이 더 꼬였다.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자가 행했던 일을 원상복귀하는 일이 어렵다. 한마디로 투표 잘못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십 년간의 노력이 작살난 것이다.
이번 일로 언급되는 문제들 중에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당사자들이 피해자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운동의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중에 김복동 어르신처럼 앞장 서서 나섰던 분도 있고 거부한 분도 있을 것이다. 모두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헤아려야 하는 부분이다. 수십 년 동안 집회에 나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또 말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왜 발생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평생 피해자로 살게 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죽을 때까지 피해를 말하게 만들었는가.
정대협인가, 일본인가?

일본이 사과를 했다면 정대협은 피해자로 말하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다면 일본은 이 모든 증거를 삭제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내 딸이 위안부로 갔어도 나는 일본을 이해한다’는 주옥순의 주장과 다른가? 그렇다면 정대협 외에 누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졸속으로 협상했던 한국정부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믿을 수 있나? 아니. 행정기관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행정기관은 입법기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고, 입법기관은 당대의 요구에 따라 이기적으로 구성된다.

5. “이래서 시민단체에 후원 안 합니다.” 라는 댓글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자 지원을 하는 재단이 아니다. 정대협에서 정의기억연대까지로 이어진 일본군피해자 문제의 보상과 지원은 국가대 국가의 문제로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보상금을 받아 피해자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에 후원하는 것은 조직이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그 조직이 무너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는다. 상근자 급여 조금 더 가져가고, 밥이라도 사먹고, 교통비라도 하라고 후원하고 회비를 내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이전의 정대협이 구호단체이거나 복지단체인가?
국가대 국가의 피해보상 문제를 일개 단체가 집행하는 경우도 없다.

후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지역아동센터에 당신이 후원금을 낸다고 치자. 그 돈으로 쌀을 살 수도 있고, 아이들의 낡은 신발을 사줄 수도 있고 다 같이 읽을 책을 살 수도 있고, 활동가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을 수도 있고 아픈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가느라 택시를 탈 수도 있다. 돈 좀 줬더니 길바닥에서 아이스크림 사먹더라고, 돈 좀 줬더니 돈 아깝게 택시 잡아타더라고, 비난하는 것은 마땅한가?

시민사회단체의 후원금은 대부분 운영비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비용으로 노동하는 활동가들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최소한의 급여가 필요하다. 전국평균 활동가들의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최저시급 이상의 비용을 받을 자격이 있고, 상여금을 받을 자격도 있고, 복리후생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운가?
한겨레에서 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사가 있다.
http://www.hani.co.kr/…/society/society_general/918928.html…
나는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하고 있지만, 2014년부터 지금까지 무급으로 일했다. 교육운동 외 다른 단체의 간사역할을 하면서 2020년부터 월 20만원씩의 활동비를 받고 있다. 그게 내가 받는 급여의 전부다.

각 시민단체는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의 재정상황이 되면 홈페이지에 모든 재무상황을 공개한다. 홈페이지 운영도 어려운 단체는 총회를 거쳐 회계 내역을 공개한다. 내부자들이 자금을 유용하면 운영위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싸인 하나 맘 편하게 못 받는게 시민단체다. 모두가 감시자고 철저하길 원한다.

6. 활동가의 자녀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유학을 갔다고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해 실소을 참지 못하겠다. 세상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당신들이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인내심과 위기대처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접시 닦으며 유학 생활 하는 사람 있고, 노숙자가 되면서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케이스도 봤다. 2년제 컬리지를 다녔다가 4년제로 점프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중국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해결하고 사업도 했다. 가진 게 없는 집구석에서, 부모는 운동한답시고 내 팽개쳐져 자란 아이들은 상상이상으로 강인하게 자란다.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알아서 크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돌파력은 보호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다. 배경 없고 돈도 없는 자들이 신념을 가졌을 때,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가진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다. 년 소득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유학이라 놀라운가? 그만큼 대단한 의지의 인간들과 그 자녀들이 시민운동계에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서 버티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파들이 수십 년을 괴롭히고,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현실화 시키는 일이 만만해보이나? 그렇게 우스운 사람들 아니다. 운동가들은 돈과 명예를 떠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안다면, 이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7. 김복동 장학금은 한겨레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의 자녀들, 보호받지 못하나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쓰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장학금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44520.html
활동가는 시민단체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만을 말하지 않는다. 급여 없는 활동가가 더 많다. 때로 활동가들은 과로사로 먼저 떠나기도 한다. 투쟁과정중에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미약하나마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적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만드는 장학기금들이 더러 있다. 운동에 빚을 진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기금이다. 김복동 장학금이 나눠먹기로 보였다면, 고인의 유지가 무엇인지, 그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떠드는지 궁금하다.

8. 정의기억연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어쨌거나 물어뜯고 공격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겠다. 본인의 낮은 자존감을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남은 삶에 행복이 있길 간절히 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첨언하자면.

그동안 시민운동은 정치, 행정과 시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계형 정치인이 늘어나고, 정치가 신뢰를 잃고, 언론도 돈을 쫓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뒷심이 부족해졌다. 믿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찾아오는 언론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운동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언론사도 만들고 직접 정치에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판에 속한 자들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다. 모든 것이 운동의 일환이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이후에 변질되는 것은 개인의 운명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개인의 욕망까지 비난할 권리는 없다.

caption
2020. 5. 12.

[퍼스트 펭귄] 06. ‘위안부’ 할머님들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8.10.29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5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아픔을 공유한 두 여자의 만남

1943년, 이화여전 1학년 학생들은 학교 건물 본관 지하 염색교실에 모여 빽빽하게 인쇄된 서약서에 양쪽 엄지손가락 지장을 찍었습니다. 일본인들의 강요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1학년이던 윤정옥은 부모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두어라.”

윤정옥의 부모님은 ‘처녀 공출’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딸이 낯선 곳으로 끌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기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멀리 피난을 갔습니다. 그 시기에는 학도병과 강제징용이 많았습니다. 또래들은 어디론가 끌려갔고 또 사라졌습니다. 해방이 되고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윤정옥은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그때 끌려간 여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975년, 일본의 영토가 된 오키나와에 한 한국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1914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故배봉기 할머니입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의 출입국 정책 때문에 추방당할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에 살게 된 사연을 말하게 됩니다. 할머니의 사연은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요. 배봉기 할머니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임을 밝힌 첫 번째 사람입니다.

캡션2017년 광복절을 맞아 151번 서울시내버스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입력

198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사회적 책임감을 가졌던 윤정옥 교수는 배봉기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윤정옥 교수는 그 시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수차례 거절 끝에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윤정옥 교수는 그때부터 태평양 전쟁 당시 끌려갔던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1988년, 드디어 그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게 됩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여성학자 이효재, 한국교회여성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을 결성합니다. 이 여성단체들이 민족적 문제를 넘어 반인륜적 폭력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퍼스트펭귄들입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할머님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

캡션 입력용기를 내어 세상에 아픔을 이야기한 사람들
 
1991년, 단체들은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을 이끌어냅니다. 윤정옥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지 3년 만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저는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단단히 결심했어요.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엔 나오게 됐어요.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칠십이 다 됐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아. 근데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이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그때 그 사람에게….”
끌려감, 故 김순덕 (1921-2004)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238명의 할머니가 피해자로 신고하였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와 다른 두 명의 피해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으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던 일본 정부도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1993년, 조사가 끝났다며 당시 관방 장관의 이름을 딴 ‘고노 담화’가 발표됩니다. 부분 인정,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비치는 듯했지만, 국가의 책임은 민간업자에게 떠넘겼습니다.
 
2년 후, 일본은 일본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합니다. 정부의 반성과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위로를 담은 인도적 차원의 의미를 전한 것이죠. 일본 국민을 포함한 한국, 대만, 필리핀의 피해 여성 258명에게 기금을 전달하고 정부의 책임을 다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위로하고

 
이제 모두 할머니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와 시민강좌, 교육기관에서 증언과 강연을 시작했는데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이끌었고, 그해 12월 유럽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했습니다.
 
또한 일본군에 대한 피해를 넘어 미군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들을 격려하고,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에서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할머니들의 움직임은 단지 ‘나의 피해를 보상하라’의 차원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과 인권 유린에 대한 항거입니다. 
 
201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나비기금’을 제안합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차별,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세계 각지의 전쟁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지원과 연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정기수요시위의 한 장면 (사진 : 신권화정)

소통 없는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의 힘

 
2015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외교부 장관을 서울에 보냅니다. 우리 피해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한다’고 발표합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이 아닌,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세우고 일본 정부가 주는 10억 엔(100억)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에는 앞으로 국제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고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 : 신권화정)
 
 
많은 시민들이 이 합의를 반대했고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고, 뜻을 달리하는 시민들의 욕설과 소녀상에 대한 망치 테러도 있었지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다시 수요일을 지키기 위해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 남녀불문 국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할 때 썼던 이름입니다. 위안부는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성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피해자의 삶을 표현하기 적당한 말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일본군 문서에서 직접 사용한 말인 ‘위안부’를 쓰되, 작은따옴표로 감싸고 “일본군 ‘위안부’”라고 쓰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로 표기합니다.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 그리고 이 반인륜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연대는 26년간 천 삼백 번이 넘는 수요일을 버텼습니다. 집회는 일시적인 것을 말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를 항의한다는 의미가 더 많은 “수요시위”를 정식 명칭으로 씁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나비가 되어 이 한 많은 땅을 떠나고 2018년, 지금 스물일곱 분이 남았습니다. 민족과 개인의 불행을 넘어, 세상에 고통받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피해자들을 위해,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수요일을 지킵니다. 전쟁이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의 퍼스트펭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일을 지킬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수요일을 지켜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사)시민 신권화정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 http://womenandwarmuseum.net
👉🏻 정의기억연대 서명 참여하기 : http://womenandwa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