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동자동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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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1호실부터 14호실
2층, 2호실부터 28호실
스물 여덟명이 머리위에 머리를 머리 옆에 머리를 포개고 살던 고시원 자리는 작은 놀이터가 되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은 매일 목숨을 거는 일,
수명을 내놓고 돈으로 바꿔오는 일,
그 흔적을 덮어버린 깔끔한 어린이 놀이터라니,

도시개발은 내 삶을 부정하고
나의 지난한 세월을 모욕한다.

2015. 11. 3. 저녁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18-37이었던 자리.

바위앞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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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동자동 18번지에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저 바위를 건드리지 않았고
빤지름한 건물을 내처 올리면서도 저 바위만은 어쩌지 않았다.바위를 바라보고 섰는데
그 아래서 술을 먹던 남자가 나를 부른다.
“작가님!”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그래도 돼요?”
“예 한 장 찍어주세요.”

그는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되면 사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자기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어디선가 보았다고 했다.
나보고 TV에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서울역 광장에서 본 거 같다고도 했다.
자기는 노숙자라고 말했다.
자기같은 사람을 많이 찍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는 인터넷에 얼굴이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오늘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자면 된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던 바위 앞에 앉아
깨끗한 신발을 신고 술을 마시던 그에게
나는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여기 있을 거라고 말했다.

2015. 11. 4. 

검은 숲

 
 
 
탱크 빨리 빨리!
아이가 소리를 치며 달렸다. 성문은 험하게 부서져 있었다. 아이의 손엔 제 몸집의 절반만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숨을 고르며 규칙적으로 뛰었다. 전속력으로 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숨이 거칠지 않았다. 오랫동안 훈련한 것이 한 눈에 드러났다. 아이의 옆에는 다리가 짧은 개 한 마리가 혀를 쭉 빼고 달리고 있었다. 도끼를 쥔 아이의 손에 개의 목줄도 같이 엮여 있었다. 손목에 목줄의 손잡이를 잡고 쇠줄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다리가 짧은 개도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정확하게 한 팀이었다.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을. 시커멓게 색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문이었으나 워낙 튼튼한 나무로 두껍게 몇 겹으로 짜여 어지간한 세월엔 주저앉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거대한 성문을 망가뜨렸다.
 성을 둘러싼 해자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의 뒤쪽에서 우루루루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무엇이 덮치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성 안에서 불타는 용암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견고하고 오래된 성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열 두 가지도 넘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이 해자를 흐르는 용암이었다. 용암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거울을 가지고 있는 그 성주만이 알고 있다고들 했다. 성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사람들은 성주를 그렇게 길게 불렀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단 한 글자도 틀려선 안됬다. 불경스러운 자들은 모조리 끌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때 하나씩 마을로 돌아갔다. 성주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지 못한 자들은 마을로 돌아올 때 엉덩이에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났다. 가까운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아이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문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드디어, 이윽고, 어째서, 왜, 그리하여, 하물며, 드물게, 불구하고, 난데없이, 도대체. 그렇다 했다. 도대체, 라는 말도 있다 했다. 사람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한 가지의 단어들을 엉덩이에 새기고 나타난다 했다. 성주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고 거대한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엉덩이만 벗겨놓고 문신을 새긴다 했다. 그 방을 지키는 자는 턱이 날카롭고 키가 큰 자인데 얼굴은 가렸으나 곱슬거리는 머리칼은 금색으로 반짝인다 했다. 사람들은 해자를 휘감는 용암을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금빛 곱슬머리 남자가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이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용암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성의 꼭대기에 금빛 곱슬머리가 반짝거렸다. 하늘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 머리칼만 빛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등 뒤에 달린 화살통에서 촉을 꺼내 남자를 향해 겨냥했다. 혀를 빼고 서 있던 개는 아이의 발 옆에 적당하게 붙어 있었다. 금빛 곱슬머리를 향해 화살이 날았다. 용암의 부글거리는 소리에 바람을 가르는 활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지만. 팔을 내린 순간 곱슬머리는 사라졌다. 아이는 뒤로 물러나 불타오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성 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아이는 소녀가 매달려 있던 창을 찾았다. 낮에는 창문에 매달려 하루 종일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남은 소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성 안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아이는 등을 돌렸다. 멀리 검은 숲으로 향했다. 성만 아니면 된다. 성만 벗어나면 가시덩굴도 상관없었다. 검은 숲의 앞에 커다란 남자가 웃통을 벗고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남자의 옆엔 수레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수레 위엔 약간의 장작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의 수레 안에서 갑자기 작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다가 수레 안의 여자아이에게 눈을 크게 떴다. 여자아이는 다시 수레 안으로 숨었다. 까만머리. 아이는 창문에 매달리는 소녀가 생각났다. 불타는 강이 잠잠해지고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부수고 나왔는데 성문은 대체 언제 다시 생긴걸까.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깨고 무엇과 싸우고 이 자리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성을 바라보던 아이는 개의 목줄을 굳게 잡았다. 혀를 빼고 앉아 있던 다리가 짧은 개는 아이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장작을 패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 안엔 무엇이 있죠?”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며 대답했다.
“그저 숲일 뿐이야.”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없다고 대답해주지.”
“무엇이 없습니까?”
아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1년동안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알 수 없을 남자였다.
“햇빛이 없다. 그래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 그리고, 저 멀리.” 남자의 도끼가 성을 가리켰다.
“뱀으로 된 백 가닥의 머리카락과 일곱 개의 머리,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저 성의 성주가 없다.”
“그럼 무엇이 있습니까?”
남자는 도끼의 날을 바닥을 보게 하여 자루를 짚고 삐딱하게 섰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도끼를 다시 들어 장작을 팰 준비를 했다.
“이 장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는 흐엇! 소리를 내며 장작을 팼다. 수레 속의 숨은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며 아이를 보았다.
손에 든 도끼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나는 이 도끼가 필요없습니다.”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도끼를 내려놓고 개의 목줄을 굳세게 잡았다.
“가자 탱크.”
검은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햇빛도, 그림자도 정녕 없었다. 아이가 가는 숲길에 쉬고 있던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2014. 7. 16.
이하나 

한 사람이야기 1- 김여사

김여사가 3층에 옥탑하나를 얹은 건물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1층에는 서너개의 점포에 세를 주고 2층엔 살림집이 세 가구 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지하도 꽤 평수가 넓어 어떻게든 세를 낼 수 있을터였다.
동네엔 평수 작은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퍼와 시장이 생겨났다.
근처엔 더러운 개천이 흘렀고 옥상에 올라 보면 산이 보였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리운 것은 변함 없었다. 구태여 그립다는 단어로 표현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한가롭지도 않았다. 돈을 쌓아놓고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 어느정도의 부채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쩍 자라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터였다.

옆 건물엔 두서너살 많은 여자가 1층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린 머리를 한화려한 여자였다. 건물을 올릴 때 일꾼들 찬을 해다 나르곤 하면 힐끔힐끔 들여다 보는 게 영 거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건물이 한복판에 들어선다며 입방정을 떠는 모양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그닥 싫지도 않았다.

건물을 다 짓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이사하는 날 옆 집의 올린머리 여자는 빤히 식구들이 짐을 나르고 일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내리 보고 있었다. 어찌됬든 이웃간이니 인사나 나눠볼까도 싶었지만 놀란 괭이눈 같기도 하고 째진 메기입같기도 한 게 영 밥맛이 떨어져 아는 척 할 맘이 싹 가셨다.

일 년쯤 지난 뒤에 옆 집 여자는 김여사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고 때때로 불쾌한 말을 서슴치 않았으나 지척에 사는 입장에 쓴 소리 하거나 얼굴 붉히기도 싫어 참 특색있는 인물이다 생각하고 지냈다.

“나는 자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세상에 저 여자는 뭔 복이 있어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 이런 삐까뻔쩍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오나 하고 빤히 봤다니까.”

옆집여자가 1년쯤 지나 김여사에게 칭찬이랍시고 한 얘기였다.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와서 이런 저런 동네 흉이나 늘어놓고 가는 옆집 여자였지만 김여사는 새파란 나이에 뭔 복이 있어, 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그간 부엌없는 집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전기 아껴가며 애들 눈 버려가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옆집여자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편하게 살아온 여편네로 알아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김여사는 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 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소란스런 옆집 여자가 감색 자켓을 하나 빌려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다 큰 아들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빈 집으로 긴 햇살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라 휴대폰으로 적어봄..
좀 진지하게 써볼 걸 그랬나..

 

2014.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