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깡깡이마을

외할머니가 엄마를 영도다리 아래 버리고 왔다고 해.

여섯 살인가 그랬는데도 꾸역꾸역 피난민촌을 찾아갔대.

외할머니가 저년은 내다 버려도 찾아온다고 했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

부산 애들은 죄다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하더라.

영도 밑에 전쟁고아들이 모여살지 않았을까?

거기서 깡패도 나오고 앵벌이도 나오고 그랬던 걸까?

요새도 영도다리 열었다 닫았다 하나?

(영도다리는 배가 지나가기 위해 다리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그거 빨간다리라 그랬는데.

영도에는 깡깡이마을이 있대.

깡깡깡깡

거 아지매들이 배에 매달려서 배 고치는거다. 엄청 위험하데이.

소리 시끄릅다 그거.

깡깡깡깡.

가보고 싶어.

뭐 볼게 있다고 깡깡대는 데를.

깡깡이 예술마을

부산 영도

부산 깡깡이마을은, 작은 배들을 고치던 영도의 산업구역이다.

온갖 피난민들이 몰려살던 영도에서 남자들은 배를 타고 여자들은 배를 고쳤다.

그곳의 역사를 모아 예술마을로 만든 예술가들이 있고 마을주민들의 물품을 기증받아 마을박물관을 만들었다.

7-80년대 산업의 중심지였던 곳은 여러 곳에 있다.

어떤 도시는 산업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아파트를 건설하거나 벤처밸리를 만들거나 대규모 공원을 만든다. 이곳이 살아남은 이유는 개발이익이 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깡깡이마을박물관을 가는 길에 한 노인이 밀차를 놓고 앉아 있었다. 차가 지나가자 노인이 두 손을 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밀차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걸음을 뗐다. 관절이 다 고장났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떤 삶을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나는 이 곳의 사운드프로젝트가 상당히 맘에 들었다.

오랫동안 가보고 싶던 깡깡이마을에서, 몰래 울기도 했다.

무릎

박부장이 고등학교때부터 다니던 국밥집을 찾아갔는데 철거하는 건물에 세들어있던 모양이다. 국밥집이 이사한 곳을 찾아갔더니 일요일 휴무라고, 길에 서 있던 아지매 둘이 알려주었다.

근처 아무데나 들어간 곳은 테이블 네 개의 단촐한 식당이었다. 그 중 두 개의 테이블에 소주병과 고구마가 놓여 있었다. 머리가 허연 남자노인이 앉아서 주인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었다.

밥을 차려주는 사람은
무릎병이 오래된 게 틀림없었다.
무릎이 잘 구부러지지 않고 근육으로 수십 년 살다보면 걸음 하나 하나 뒤틀린다. 허리도 아파서 오래 서서 뭘 할 수가 없다.

주인 노인은 우리의 국밥을 차리며 계속 에어컨 설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보니 가게 안에 에어컨도 없었다. 지난 여름은 어찌 난 것일까.

비둘기 한 마리가 현관까지 들어와 밖을 둘러보았다. 자주 오는 놈 같은 폼새다.

노인이 차려준 밥상의 땡초와 마늘은 시들시들했고 김치는 묵다못해 쉬어빠졌다. 다리가 저 지경이면 무엇하나 쉬운 게 없을터였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흰 머리의 노인을 보니, 어느 시기가 되면, 장농처럼 그저 듣는 사람이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20612 / 남부민동 /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