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모자를 쓴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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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인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처음 진행하게 되었다. 보조강사로 시작해 두어 번의 수업을 맡았다. 내가 맡은 첫 수업에는 남성 노인이 열 명이 넘었고 여성 노인이 세 명이었다. 그 이후에 만난 어느 집단도 이렇게 남성 노인이 많은 경우는 없었다. 그 교실의 남성 노인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의 모자에는 보훈, 호국 같은 글자가 수 놓여 있었고 몇 명은 그 모자에 배지를 잔뜩 달고 있었다. 모자를 쓴 노인들은 좀처럼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쓸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등을 의자에 깊이 넣고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였다.

노인들이 글을 쓰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나는 복지관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다. 수강생의 특성을 알려달라고. 사전에 복지관측에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참가자의 70%가 문맹이었고 나머지 30%도 문자를 해독하는 수준이라는 것. 문장을 완성해 한 편의 글을 써볼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교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후반 출생자였다. 잊고 있던 근현대사를 다시 뒤졌다. 1919년 3.1운동, 1921년 조선어연구회가 설립되었고,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했지만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을 몰고 간 일제는 1938년 한글교육을 금지시킨다. 1939년 징용령이 공포되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었다.

일본 전쟁영웅 찬양 글을 쓰는 학생들
일본 전쟁영웅 찬양 글을 쓰는 학생들ⓒ경남교육청 홈페이지

그 교실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앉아 있던 노인들은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연표를 읽은 나는 다음 수업에서 이들에게 모두 일본어는 조금이라도 기억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인들은 갑자기 신나서 자기가 기억하는 일본어와 일본노래를 이야기했고 몇 년 전 일본 여행 갔을 때 통역이 필요 없었다는 허세까지 부렸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소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한글말살정책의 현상이 강의장에 고스란히 살아났다. ‘지금 돈으로 치면 500원씩 벌금을 걷어갔다, 우리 센세이는 때렸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그걸 고자질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일본인 센세이보다 조선 선세이가 더 나빴다..’ 이들은 일본어를 얼마나 혹독하게 배웠고 잘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한국어를 배울 수 없던 상황에 대해 하나씩 점검하며 물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던 사람들이 적었고 다닌 사람들이 배운 언어는 일본어. 45년 광복을 맞아 하루아침에 선생들도 사라져 버렸다. 학교는 길을 잃었고 이들은 산으로 들로 소란스러운 정국을 구경하며 몰려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혼란스러운 정치대립이 이어져 길에서 싸움이 잦았다고 기억했다. 코에 솜털이 거뭇해질 때쯤 전쟁에 뛰어들어야했고 돌아와 보니 청년이었다.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사내들. 이들이 문맹으로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는 이들을 방첩대나 보안대라는 이름으로 불러 세웠고,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이용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경력도 이력도 없이 배지를 잔뜩 달고 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며,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2017년 8월 22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2017년 8월 22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들의 삶은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발화하지 못한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꿈틀거리다 어디론가 몸을 감췄다. 비가 오면 냄새를 피우는 썩은 사체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기회가 되면 사람들을 괴롭혔다. 공포와 불안은 혼백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내가 만난 노인들이 어제 광화문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빨갱이 세상을 막아야 한다는 공포는 어느 집에나 있는 억울하게 죽은 조상신이었다. 노인들의 목덜미엔 비참하게 죽어버린 혼백이 매달렸다. 모자에 배지를 달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 일본 선생의 매질을 기억하며 손가락을 구부리던 그들의 모자를 기억한다.

[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나는 다 실패여”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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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이었다.
서울의 어느 노인복지관에서 ‘노인 자서전 쓰기’ 수업을 의뢰해왔다. 나는 그 수업의 보조강사이자 기록자로 참여했다. 복지관의 규모가 커서 수강생도 많았다. 노인들은 대부분 유년기의 기억을 이야기하다 울었다. 그들이 겪은 전쟁은 그저 비참이었다. 누군가 사라지고 누군가와 헤어진 이야기만 이어졌다. 자기를 살뜰하게 챙기다 사라진 아버지를 이야기하던 여성 노인이 펑펑 울었다. 노인들의 서사는 유년기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맨 뒷자리에 앉아 글쓰기 교재를 뒤적거리던 남성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 인생은 실패입니다.”
강사로서의 역할은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일인지라 나는 그에게 최대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실패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그는 슬며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다들 뭔가를 이뤘어요. 일이 있거나, 자식이 있거나. 여기 책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사람들이 살다 보면 뭐 하나라도 이룬단 말이죠.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예요.”
나는 짓궂은 표정으로 “아닐걸요.”라고 말하고 웃었다.
“정말이에요. 나는 다 실패. 모든 게 다 실패.”

2017년 1월이었다. 나는 그에게 성공한 사람들은 오늘 모두 청문회장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굵은 주름이 남은 굽은 손가락으로 노인은 얇은 글쓰기 교재를 쥐고 가만히 있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남은 듯했다.
다른 노인들은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숙여 그의 앞에 다가갔다.
“아버님, 우리 모두 다 죽잖아요. 인생에 성공이 어딨어요. 모두 다 죽는다는 건 결국 다 실패한다는 말이잖아요. 아닌가요?”
노인이 허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다 실패여….”
“어떻게 실패했는지 알려주세요. 그럼. 실패인지 아닌지 좀 보게요.”

노인이 환하게 웃었지만 어이가 없는 것인지, 기분이 나아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굽은 허리를 일으켜 노인이 나에게 목례를 했다.
그는 다시는 그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노인 자서전 쓰기 수업 참가자
노인 자서전 쓰기 수업 참가자ⓒ필자 제공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내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패”라고 뇌까리며 형광등을 켜둔 채로 모로 누울지, 나는 알 수 없다.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이 실패였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이냐고. 헤어진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이 칼럼을 시작한다.

당신의 인생은 실패도 성공도 아니라고. 나도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