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 혜숙씨의 찬장

JTBC/넷플릭스/ 박해영 극본 / 김석윤 연출

나는 어제 저 장면에서 천장과 수납장 사이의 깨끗한 공간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저 공간은, 가정 내 청소를 전담하는 사람에겐 외면하고 싶은 공간이고, 동시에 죄책감을 안겨주는 공간이다.

저 위에 어떤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지고 기름떡이 지더라도, 사실 같이 사는 사람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저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정 내 청소와 수납을 전담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수납을 더 하기 위해서 여러 숨은 공간들을 파악하고 있다. 자리를 만들어 일년에 한 번 이상 쓰지도 않을 물건을 쟁여놓는데 선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물건을 처박을 공간을 알고 있다. 게다가, 물건이 들어차지 않은 공간이 1년 후에 어떤 꼬라지가 될 지도 예측할 수 있다.

저 공간이 저렇게 깨끗하다는 건, 하루종일 굽고 튀기고 찌고 삶는 그 음식의 증발물들이, 천장 위 곳곳까지 스며드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저 집안의 청소수납조리전담자인, 염씨네 가족의 엄마는, 매일 잠시라도 짬이 나면 저 공간까지 닦아내어 주부가 가질 수 있는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사람이었다는 증빙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출자가 굳이, 저, 기피공간을 저렇게까지, 저렇게 길게 보여줄 이유가 있는가.

이 공간이 말해주는 것을 잘 볼 필요가 있다.

충실한 전업주부로 살아본 내 눈에는 온통 일거리다.

식탁보 위의 유리, 뜨거운 것을 올려놓으면 안되는 재질의 오래된 식탁을 쓰고 있을 것이고, 레이스로 된 식탁보를 쓴다. 의자의 등받이도 커버를 씌웠다. 저 커버는 누군가 한 번씩 꺼내서 빨아야 한다.

식탁 위에는 항상 물과 잔이 놓이는데 그 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또 노동강도가 달라진다 끓인 물인가, 안 끓인 물인가. 엎어놓은 컵은 컵의 재질에 따라 엎어놓거나 바로 놓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컵은 잠시만 엎어놔도 냄새가 난다. 그 아래 쟁반엔 늘 물때가 끼기 마련이라, 다 들어내고 쟁반을 닦아내는 것도, 누군가 할 일이다.

주방 앞 가벽에 있는 커튼, 저 커튼도 누군가 빨아야 하는 커튼이다. 냄새나고 기름때가 더덕더덕 묻기 마련이다. 벽에는 가족의 사진이 걸려있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가부장 아래 묶여 있다. 사진 오른쪽에 걸린 작은 수납장에는 각종 잡동사니, 비닐팩, 행주, 키친타올 같은 게 있겠지. 저 수납장 아래의 물건은 어수선하지만 질서가 있다. 담당자만 아는 질서다. 그 담당자. 주부. 검은 비닐, 흰 비닐, 작은 것, 큰 것, 한 번밖에 안 쓴 것, 한 번만 더 쓰고 버릴 것.

벽의 아랫단에는 최근에 유행하는 방열단열제가 붙어있다. 시트지로 된 건데 인터넷쇼핑몰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외풍이 심한 집의 맨 끝 벽에 잘라 붙이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가격대비 디자인도 괜찮은 편이다. 저 집의 단열은 저렇게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닥다닥 모여 사는 도시의 집과는 차원이 다른 추위가 있을 것이다.

천장과 벽 사이에 초록색으로 된 무언가가 덧발라져 있다. 틈새에 뭔가가 들어올까봐 막아놓는 수단으로 보인다. 바람, 비, 벌레 같은 것. 이 곳에서의 집안관리는 아파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노동은 죽어야 끝난다.

돌봄노동이 대체로 그러하다.

이 지긋지긋한 인생, 내가 죽어야 끝나지, 니가 죽거나.

그렇게 해방된, 염씨네 가족의 엄마. 혜숙.

나는 그녀의 성도 모른다.

저 공간은 전생의 나에게 죄책감의 공간이었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그 삶을, 나는 이혼으로 종결했다는 게, 혜숙 씨와의 다른 점이겠다.

2022 통영트리엔날레

통영국제음악제에 이어 통영국제트리엔날레가 개막했다. 올해가 1회.

운좋게 날짜가 맞아 예상도 안한 통영트리엔날레를 볼 수 있었다.

지역연계와 섬연계 기획전 등 다양한 연계전시가 이어진다. 섬연계라니 나같이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자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 섬연계까지 볼 수는 없어서 주제전과 지역연계전인 전혁림 특별전만 보고 왔다.

통영시내 셔틀버스는 있는데 섬 셔틀배는 없다고. ㅎ

주제전은 구 산아SB(조선소) 연구소 건물에서 진행된다. 주차장이 널직하고 진행요원들도 충분히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는 사진처럼 각 섬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보시다시피. 뭐 딱히 우와. 하긴 쫌.

주제전은 바다, 생명, 시간을 주제로 한 Take Your Time.

일반 성인 입장료 12,000원.

마지막 티켓팅은 5:15이고 전시는 6시까지 관람 가능한테 – 이 내용이 홈페이지에 없다!

* 직관적 홈페이지 디자인 좋은데 제발 정보를 중요하게 만들자.

전시장은 모두 컴컴하다. 사방이 까맣다. 작품이 돋보이고 집중도가 높다.

1층부터 7층까지 전시가 이어지는데, 그렇다. 계단에도 미디어아트 설치가 있어서 계단으로 올라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층마다 다른 전시는 아니고 한 작품이 1층부터 7층까지 이어진다.

한 층 올라 각 층의 보통 2개실의 전시를 보고 또 한 층을 오르는 식이다. 엘리베이터는 차단봉을 설치해뒀는데 진행요원에게 엘베를 쓰겠다고 하면 차단봉을 열고 엘베 버튼까지 눌러준다.

(일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다 분노하고 왔으니 여기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엘베를 타봤더니 엘베는 환한 형광등 그대로다. 그야말로 전시를 보던 분위기를 홀딱 깨주는 것. 전시에 집중하기 위해 올라갈 때는 엘베를 포기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7층까지 천천히 걸어올라갔다가 엘베를 타고 내려왔다. 중간에 미디어아트 관람실에 낮은 빈백의자가 있어서 쉴 수는 있겠으나, 충분하지 않다. 

4층인가 5층에 미디어아트 모니터만 대여섯대가 전시된 방이 있는데 한 작품을 표현한 모니터에 빛비침이 심해서 반대편 작품과 좌우 양측의 미디어 작품이 계속 반영되었다.

작가가 이걸 봤을까. 작가도 허락한 일일까? 무지하게 궁금했다.

전반적으로 주제가 명확히 반영된 작품들이 있었고 나쁘지 않았으나 주제전이라기엔 통영이라는 지역성을 조금 더 강조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쉽게 말해, 바다와 생명, 시간은 알겠는데 그 안의 사람과 노동의 이야기가 쏙 빠진, 잘 정돈된 느낌이 강했던 건지, 내 기대가 촌빨인건지 모르겠고.

7층에서 엘베를 기다리며 서울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휠체어를 빌려볼까 생각했다. 등록증이 없으면 못 빌리지 않을까. 눈높이도 안 맞겠지 등등 여러 생각을 했다.

보행약자의 삶의 질은 이렇게 곤두박질친다.

아무튼.

엘베를 쓸 수 있으니 엘베 내부 조명을 어떻게든 너무 홀딱 깨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고.

전시 기획에 장애와 안전은 뒷전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건강하고 튼튼한 자들을 위한 예술잔치.

• 전혁림미술관도 마찬가지다.

3층까지. 엘베 없다.

• 트리엔날레 정보는 검색하시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보가 많진 않지만.

[책]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과거로부터 온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를 온전한 자기 삶으로 바라보는 홈리스의 이야기.

제주도 출신으로 보육원에서 자라 조소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IMF이후 일자리를 잃고 18년간 홈리스로 산 임상철 씨의 글 모음집이다.

6년간 빅이슈를 파는 빅판으로 활동했던 임상철 씨는 잡지를 사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자기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매달 자기가 파는 빅이슈에 글과 그림을 그려 A4용지에 출력해 끼워 넣었다. 그렇게 보인 52통의 편지. 과장도 증오도 원망도 없는 덤덤한 홈리스의 이야기.

왜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을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줄 수 있겠다.

참고할만한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wt9Ua7aht4g

지금은 조각가로 살고 계신 듯 하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글/그림, 생각의 힘 펴냄

2020. 5. 24.

임상철지음 / 생각의 힘 펴냄

은발머리의 독일할배 – 카라얀

길건너 아파트형 공장 식당가에 전주콩나물국밥집이 있는 걸 봤다.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오늘은 아버지와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나오고 있었다. 93.9 강석우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곡이 끝나자 아버지가 베토벤인 줄 알았다 한다.

나는 며칠 전 임헌정이 지휘하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었다 했고 예전에 부천필에 있었다가 지금 코리아심포니로 옮겨간 임헌정은 말러열풍을 불러온 주역이라 전했다.
– 우리나라 최초 오케스트라가 서울시향이지?
– 모르겠는데.
– 서울시향일거야. 내 기억은 그래.

검색을 해봤다.
1945년 고려교향악단이 있었다. 1948년 서울관현악단은 해군 정훈음악대에 모여 정기공연을 열었고, 1960년에 서울시향이 되었다. 육군악대는 1956년에 KBS 교향악단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 해군교향악단이 있었는데.
– 그게 서울관현악단인가봐. 해군 정훈음악대에서 공연했으니 해군교향악단으로 보였겠어.
– 그 옛날 지휘자중에 김만복이라고 있어.
– 몰라.
– 찾아봐. 그 양반이 그때도 나이가 많았어.

지휘자 김만복. 1925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공을 지휘로 바꾼 사람. 이 분은 61년부터 서울시향을 이끌고 1965년 사상처음 해외공연인 일본 도쿄에서 공연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 그 양반을 조금 알아. 예전에 아빠 느이 엄마랑 명동서 가게 했을 때 자주 왔었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부모님은 명동에서 액자가게를 했다. 당시는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라 무단복사가 가능했고 엄마는 르느와르나 모딜리아니, 밀레의 그림을 좋아해 그걸 액자로 많이 만들었고 아버지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독일에 계시던 큰아버지가 어떤 지휘자의 사진과 LP판을 보내오면서 액자로 하면 근사할 거 같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지휘자의 얼굴이나 선, 사진 자체가 매우 훌륭해 히트 좀 치겠다는 예감이 들어 복제를 해서 액자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그 사진은 잘 팔렸고 아버지는 이어서 비엔나필, 뉴욕 필의 전체 공연 장면이나 주빈 메타, 게오르그 솔티, 레너드 번스타인등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었다. 명동을 지나다 봤을까. 김만복 선생이 가게로 와서 이 사진을 어디서 구했냐 물으며 이야기를 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번스타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웨스트사이드스토리”작곡자라고 말했다. 누구냐고 빨리 이름을 대라고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검색을 했다.
– 그 분이 오면 미도파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음악얘기 하고 헤어지고 그랬어. 그 양반은 내가 음악에 대한 사진을 대중에게 보급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나는 그냥 장사한건데 말야.

어릴 때부터 질리게 봐 온 사진이 헤르베르트 본 카랴얀의 바로 이 사진이다. 이후로 이 사진은 여러 곳에서 복제해 전국에 흩어졌고, 큰아버지는 독일에서 간간히 자켓이 멋진 LP판과 북클릿을 챙겨주었다.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라 내 부모는 이때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무단복제의 상업적 성공으로 특수한 혜택을 받았다. 크고 나서 좀처럼 카랴안을 듣지 않는다. 그 사람의 수많은 낭설들도 못 들은 척 한다. 카라얀은 비주얼로 내 유년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더 이상 보탤수도 뺄 수도 없는, 세상에 지휘자라는 사람들이 있고, 저리도 고독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 그래서 저 사람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우리 집에 늘 있던 잘생긴 독일영감님. 은발머리에 대한 로망은 분명 저 카라얀 때문에 생긴 게 틀림없다.

콩나물 국밥이 나오고 그리그의 페르귄트가 흘렀다. 아버지가 페르귄트가 맞냐고 물었다. 나는 김윤희의 “잃어버린 너”를 생각했고, 그 책을 읽으며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울던 내 나이또래의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모를, 1989년의 어느 오후.

아버지는 펄펄 끓는 콩나물 국밥을 바라보며 말했다.
– 요즘은 곡명이 잘 생각이 안나.
– 그거 외워서 뭐해?
나는 종업원이 가져다 준 김을 쪼개 넣으며 아버지도 김 넣어드셔. 라고 말했다.

한국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
https://news.samsung.com/…/%ED%88%AC%EB%AA%A8%EB%A1%9C%EC%9…

지휘자 고 김만복 선생 타계 소식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

마흔 넘어 페미니즘

딸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뭘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위태로웠다.

야야, 너 치마가 좀 짧다. 보이겠네. 라고 했더니

치마를 번쩍 들어올려 “안에 속바지 붙은건데?”라고 반문한다.

나는 입을 닫았다.

아이가 열다섯일 때 딱 저만큼 짧은 빨간 치마를 가위로 난도질한 적이 있다.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네가 입는 옷이 너를 결정한다는 사상은 “남들의 시선을 고려해서 남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짧고 야한 걸 입으면 안된다는 것”은 “성폭행 당시 무슨 옷을 입었나요?”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며칠 전 누가 “이 옷은 가슴이 너무 파여서 좀 신경이 쓰인다”는 말을 하길래 “그건 그거 지적하는 인간이 젖만 보고 있다는 뜻이지.” 라고 대답한 적 있다.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굴며 질타하는 남성을 보면 자기 억제가 강한 사람인 공통점이 있었다.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본인 욕망을 해소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적어도 내 내면에서는. 때로 나도 그런 꼰대가 된다.

이 나라는 희한하게 다리를 내놓는 것엔 관대하고 젖을 내놓는 것엔 까다롭다. 유방은 여자만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신체기관이다. 유방에 대해 유난히 예민한 것은 “어머니의 신성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질책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사람의 욕망이 보인다.

세월호 유가족을 두고 “돈 때문에 저런다”는 건 본인이 돈에 대한 욕망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산다는 뜻이고,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은수미의원을 향해 외쳤던 김용남은 “공천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때였을 것이다. 그는 공천은 받았으나 낙선했다. 김용남의 욕망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마다 욕구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타인에 대한 힐난은 본인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음을 반증한다.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는 말의 뜻이 바로 이거다.

나이 마흔이 넘어 페미니즘을 배워간다. 그동안 나는 사회적 남성으로 살아왔다.

딸아이에게 카톡을 보내서, 오래 전 일을 사과하고 싶다.

“언제나 네가 꼴리는 대로 입어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다 죽겠노라”고.

 

2016년 5월 1일

 

[영화]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지난 3월 24일부터 31일 사이에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인디다큐 페스티벌이 열렸다. 코코뉴스와 연대를 맺은 창작집단3355가 공동체상영을 진행하는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엽서 이미지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Masquerade of Her>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감독 박강아름의 사적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의 생활 일부가 기록되어 후세에 남을 때 그 중 기록의 가치를 갖는 것들이 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기록의 가치를 갖는 사적 다큐에 해당한다. 십대때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여자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장한 20대 후반의 여성의 정체성은 어떤 것들이 규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이 영화의 첫 촬영은 2008년에 시작되었다. 영화는 텀블벅 후원을 거쳐 2015년에 마무리되어 그 해 4월 26일에 첫 시사회를 열었다. 2008년부터 박강아름은 “나는 왜 남자친구가 안 생길까?” 하는 사적인 질문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한 여성의 사적인 생활을 기록한다. 사회는 감독이자 주인공인 박강아름에게 단호하게 ‘남자친구가 안 생길만 하다’라고 말한다. 10대 소년소녀들부터 감독의 선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외모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남자친구 없는 몇 년을 지내며 주인공은 체중조절도 시도해보고 외모의 변신도 꾀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결국 주인공은 특별한 실험을 준비한다. 외양을 바꿔보고 사회의 인식을 시험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각자의 역사 속에 깃든 선입견으로 그녀를 규정하고 원래 주인공의 모습보다 훨씬 더 보기 좋다는 말을 건네며, 심지어 ‘몰라보겠다’, ‘훨씬 예쁘다’, ‘진작 좀 그렇게 하고 다니지’라고 쉽게 말을 한다. 주인공은 연령과 계층을 넘나드는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외모로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상을 구현해낸다. 교복을 입고, 무슬림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충실하여 주인공을 대한다.

박강아름의 원래 모습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편안한 모습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젊은 여성들은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며 살아갈까? 내가 좋아한다고 정한 것들은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영향으로 좋아하기로 결심한 옷일까? 청바지에 흰 면티는 가장 편안하고 무난한 복장이라 했나? 소녀시대가 청바지에 흰 면티를 입은 그 날부터 대한민국 여성의류에 관한 미의 기준은 뒤집어졌다.

미디어는 이미지를 쏟아내고 대중들은 거리낌 없이 소화한다. 이미지가 세계를 점령하면서 개인이 각자 스스로 창출해낼 수 있는 계층에 대한 이미지는 소멸된 셈이다. 누군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반전’이라 불리며 행위자는 ‘특이한 사람’이 된다. 이미지를 먹고 자란 사람들은 늘 새로운 이미지를 갈구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고대 서사의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초단위로 쏟아지는 정보는 사람들의 뇌를 흥분시킨다. 일상이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힘겨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돌출적인 인물이 되고 그들의 실험은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지적 자양분이 되지만 과로누적의 사회에서는 귀찮은 일이 된다.

▲ 아주 사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사회의 통념을 녹여냈다

박강아름의 실험은 지금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을 대하는 인권존중의 민감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보여준다. 기계에 사람의 몸을 맞추고 옷에 사람을 끼워 넣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물질이 만들어놓은 것에 인간을 액체처럼 변형시켜 계속 자르고 다듬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가서 누워 묻는다. 내가 이 침대에 사이즈가 맞느냐고.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사실 자본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더 많다. 자본의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가 잘려나간다. 발목이 없는 사람들이 침대에서 기어 나와 절룩거리며 기뻐한다. 나는 이제 침대에 맞는 사이즈가 되었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본의 영향력 없이 순수하게 대할 수 있을까. 이미 모두 침대에 맞춰 스스로를 다듬은 마당에 혼자 삐쭉하니 튀어나온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테세우스가 되어 프로쿠르스테스를 죽이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아름처럼, 그의 영화를 후원한 사람들처럼, 그의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처럼 죽이지 말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설득하여 다리를 다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득하는 테세우스들의 실험이 2016년 5월 26일 인디포럼에서 다시 열린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프로듀싱을 맡은 창작집단3355에 연락하면 공동체 상영도 추진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를  발랄하고 즐겁게 풀어낸 다큐다. 105분의 상영시간 동안 너무 웃다가 눈물을 흘릴 수 있으니 마스카라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영화 한 장면

제작_박강아름
각본 Screen Writer_박강아름, 정성만
프로듀서 Producer_김문경
촬영 Cinematographer_박강아름
편집 Editing_박강아름

박강아름 필모그라피
1999 <섹스>
2000 <물어보는 거야, 너한테>
2004 <유실>
2004 <파리의 노래>
2006 <똥파리의 꿈>
2007 <내 머리는 곱슬머리>

공식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ermasq/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39

코코뉴스에 게재된 영화평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39

응답하라 1988의 판타지 

응팔 마지막회를 경건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들이 나에게 이제 오늘 응팔이 끝나면 뭘 할꺼냐고 물었다.
응팔은 골목에서 시작한 가족의 판타지를 말했다. 초반의 짜증나는 성보라 캐릭터와 아들 잡아먹은 며느리라는 시어머니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판타지를 구현하는데 충실하기 때문에, 민폐 캐릭터가 없다.
• 이것은 명백한 판타지다 •
운동화끈도 못 묶고, 주차 못해 골목을 점령하는 최택과, 동생 머리 끄댕이 잡아 뜯는 성보라와, 없는 형편에 쓸데없는 물건만 사오는 성동일도, 가만 보면 싸가지 없는 정팔이도, 딸년들이 싸우는데 그만하라고 말리지도 못하는 엄마 일화와, 카리스마로 동네에 군림할 수 있는 졸부 라미란이 없다.
바르기만 해서 엄친아를 시전하는 선우는 새아빠의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은 갈등을 겪지 않고, 학생주임인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는 특공대 동룡이도 별 일 없이 순탄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위에 열거한 각자의 단점은 미화되었다. 그러니 이건, 판타지다. 주인공들은 크게 갈등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고 편들어주며 화합한다.
이건 지금, 이 시대가 내 편을 그리워하는 판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명백한 판타지다. 동네 꼬마의 눈사람을 위해 회의를 여는, 그런 골목은 없다. 인간은 갈등하기 위해 존재한다. 골목은 “어메 짠한그…”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뒷담화를 필수적으로 장착한다.
• 포기하는 자만 쟁취한다 •
응팔의 사랑은 가족보다는 현실적이다. 어남류 어남택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한데 사람들은 시각적 이미지에 압도당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어쨌거나 드라마의 청춘들은 모두 곱다.

성덕선은 상징이다.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상징이지 동창의 75%가 좋아하는 여신을 말하는 건 아니다.
택이가 남편이 된다는 건 그의 승부수 때문이다. 결정적일 때 치고 나가고, 버릴 패를 확실히 포기하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사랑 앞에 불친절하지 않다. 택이의 사랑은 정석이다. 이건 사랑을 얻는 법에 대한 이야기지 택이가 덕선이를 차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환이가 탈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성인이 된 아이들이 호프집에서 모여 피앙세 반지를 앞에 두고 한 고백이다. 친구들 앞에서 붕 띄웠다가 완전히 자빠뜨려 모래사장에 내리꽂은 형국이다.

덕선이가 정환이를 사랑했대도, 저런 남자와 결혼하면 안된다. 어따대고 고백을 장난으로 떡칠하나. 이건 정환이가 츤데레인 게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사랑에 대한 것이다. 사랑은 조롱하지 말아야 한다. 정환이가 사천에 내려온 택이에게 빨리 덕선이를 잡으라 말한 건 제 사랑의 알량함을 인정한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가 이 드라마를 본 것은 판타지의 구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에겐 저런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고, 27년째 만나고 있으며, 아이들이 자라 술 한 잔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의 판타지의 빈 공간을 채워준 친구라는 소재가 맘에 들었다.
한 가지 더, 청춘들의 러브라인, 골목에서의 포옹과, 바닥이 뜨근할 거 같은 이불 위에서의 꿈결같은 키스가 전혀 추하지 않아서다.

다시는 저런 순간이 나에게 오지 않겠다는 걸 매 번 확인하고 나 자신에게 각인시키면서도 내 마음이 완전히 늙어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해줘서, 그래서 좋았다.
인간에겐 판타지가 필요하다.

그 판타지가 더럽지도 추하지도 않다면 굳이 미워할 이유가 왜 있겠는가.
• 기분좋은 판타지였던 이유 •
건물주가 없기 때문이다.

정봉이네는 집주인이지만 단 한 번도 집세를 올리지 않은 듯 하다. 외려 이자 얘기도 안하고 차용증도 안 쓰고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선우네도, 택이네도, 동룡이네도, 모두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택이아빠의 가게는 집에 붙어있고, 이들은 골목을 공유한다.
갑질하는 대상은 유일하게 드라마 끝날 때 성동일을 정리해고한 한일은행이다.

건물주 없는 세상, 상상해봤나.

어쩌면 이건 판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로서 응팔은 끝났다.

성동일이 은행에서 짤린 건 이제 자본이 등장했다는 얘기로 해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동룡이는 외식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보라와 선우는 결혼해서 검사와 의사커플이 되어 금수저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곧 IMF가 닥치겠지만, 모두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덕선이네는 검사 딸, 의사 사위, 국보급 바국기사 사위와 정규직 승무원 딸이 있고, 선우네와 택이네도 이 구도를 같이 가져간다. 정환이네는 이미 자본을 축척해뒀고 금성전자 대리점이 문제겠지만 하이마트가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둘째 아들이 철밥통이다. 정봉이는 희대의 럭키가이, 조만간 백종원이 될 것 같다. 동룡이는 곧 예식장과 장례식장 사업에도 진출하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회를 기다리며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 소감 (7월 14일분)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첫 강좌를 듣고

첫 강좌의 내용은 중독과 몰입이었다. 게임을 몰입이라 보지 않고 중독이라 폄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게임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경혁 선생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키워드 :

괄시와 굴욕의 역사.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게임은 태초부터 환영받은 적 없다.

Hell 조선이라는 용어도 게임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다양한 종류의 심층적인 게임을 잘 하지 않지만 간간히 기사를 검색하거나 게이머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항상 검색해서 알아내려 했던 덕인지 강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첫 강의는 우리가 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중독과 몰입이라는 단어는 비슷하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과학적으로 두 가지의 뇌 상태는 같을 수 있으나 이 사회의 언어로써는 부정적, 긍정적 효과를 동반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제 1강에서는 게임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는 중독, 혹은 몰입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기로 했다.

게임의 사전적 의미는 놀이다. 중국어에서는 게임을 유희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말하는 놀이의 범주는 상당히 여러 가지다. 게임은 놀이의 한 갈래이지만, 놀이의 한 갈래로 완전히 편입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은 명확히 말해 비디오게임이며, 이 비디오게임이 현재는 컴퓨터게임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은 모바일게임이라 하는데, 스마트폰도 말하자면 작은 컴퓨터와 다름없으므로 모바일게임 역시 컴퓨터게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초의 컴퓨터게임은 1958년 미국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주거니 받거니 공을 치는 화면이 컴퓨터로 만들어졌고 부룩 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이는 비디오게임, 컴퓨터게임의 역사를 찾아봤을 때 나오는 정설이다. 그 이전에 어떤 개인이 어디선가 혼자 만들어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전산시스템의 수준으로 봐서 한 개인이 혼자 만들고 놀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논다, 컴퓨터게임의 출발은 놀기 위한 것이었을 거다. 어쩌면 그 놀이를 위장해 사실상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전략시뮬레이션은 전쟁전략을 짜기에 적당했을 것이고 컴퓨터의 능력을 평가하고자 퍼즐게임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임을 놀이, 여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유사 이래 인간들이 찾아내는 놀이가 환영받거나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인간은 언제나 승부를 가르기 위해, 상징적인 경쟁을 하기 위해, 또는 개인이 즐거움을 찾기 위해 어떤 놀이를 찾아왔다. 이 놀이는 대부분 현재 문화예술의 갈래가 되었다. 오래 전 구텐베르크 활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쉽게 손에 책을 넣게 되었을 때 어떤 나라에서는 마구잡이로 베껴 퍼져나가는 소설이 사람들의 정서를 해친다고도 하였다.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움직이는 그림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 말했다. 사진도 마찬가지, 그림의 영역을 침탈당한 자들은 사진을 비난했다. 만화도 그러했고 세상에 새롭게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과 놀이는 처음엔 비난으로 시작했다. 왜 그랬던 걸까.

전쟁이후 국가재건에 열을 올리던 국내사정은 차치하고 이건 단순한 억압의 문제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각 매체마다 다른 이유가 있으니 일일이 여기서 따지긴 어려워도 대부분 새로운 문물의 등장은 기존 문물의 영역을 침범해왔고 파이를 나눠야 했다. 인간이란 종은 애시당초 보수적이라 새로운 물결이 거대하게 몰려올 때 불안과 위기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지라 새로운 매체, 새로운 문물은 거의 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게임은 비디오게임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넘어가고 현재는 모바일게임까지 발전해왔다. 게임이라는 건 상호작용, Digital interactive Contents가 중심이다. 기존의 게임, 놀이도 상호작용이 중심이라면 게임은 digital 이라는 영역이 포함되어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져 더 풍부한 선택지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의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디지털 상호작용이 게임의 기본이라는 얘기를 듣자, 화면으로 넘어오기 전의 게임과 비교를 해봤다. 오래전 모니터없이 실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던 상호작용의 게임은 게임의 룰을 참가자들이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다.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게임은 제작자와 제공자가 있고, 디지털이라는 영역이 개임했기 때문에 게임의 룰도 그 계산 안에서 이루어진다. 비디오게임(모니터와 컴퓨터 게임을 이하 비디오게임이라고 칭하겠다)은 게임의 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각본에 의해 제작해야 하고 수많은 선택지를 만드는 것 하나 하나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게임안에서 개별적으로 최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개발단계에서 이미 완성품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임의 선택은 한계가 있다. 각종 게임들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패치를 만들어도 그 역시 개발자, 즉 생산주체에게 게임의 규칙을 정할 권력이 주어진다.

비디오게임이 사용자의 적극적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게임은 각종 매체와 예술장르를 포괄하여 발전한다. 마치 블랙홀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예술의 영역을 흡수하여 발전한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게임OST가 주목을 받던 때가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던 사람들은 게임의 현란한 미적 기술과 아름다운 음악이 동반된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새로운 매체가 탄생했다고 환영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게임은 최대한 사용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람들을 매혹할 만한 수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은 매혹의 기술이 돋보여야 살아남는 장르이다. 그게 어떤 방향이건 간에 생산자의 취향에 맞는 소비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계층이 넓고 깊게 빠져들수록 문화예술의 생산자는 흥하게 된다. 게임은 복합적인 문화매체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각본이 필요하다. 게임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다. 무모한 퍼즐게임은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못한다. 게임의 기본은 이야기구조의 흥미로움이다. 이야기로 사람을 매혹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게임은 다른 장르를 가져왔다. 중독성이 있는 효과음으로 시작한 단순한 게임들이 유려한 음악으로 스토리에 힘을 북돋는다. 또한 미술역시 사실적 기법을 동원하거나 단순화한 상징적인 것 여러 가지를 보태 가장 아름답게, 가장 눈에 띄기 쉽게, 소비계층이 가장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구현한다. 게다가 사용자의 적극적 상호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연극적 요소를 배치한다.

1강에서 이경혁씨는 게임은 시간과 공간을 현실과 다르게 유리되어 있다고 했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고, 장소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과 그 안에 주어지는 모든 미장센은 역할이 있는 소품들로 채워진다. 현실세계에서는 당장의 어떤 사건을 이루어내기 위해 모든 사물이 그 역할을 하지 않지만, 게임에서 보이는 공간의 사물들은 대부분 어떤 임무를 띠고 있다. 목적성이 강한 장소가 주어지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몰입도를 최적화하기 위한 계산된 시간일 테고 장소 역시 몰입도를 이끌기 위한 장치로 꾸며져 있다. 말하자면 게임속의 모든 사물과 세계는 필요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 그저 무용의 물체는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유저들은 게임공간속에 무의미한 사물을 발견했을 때 황당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각종 도구들을 생산자가 이미 적절하게 배치했을 거라고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게임의 세계관은 유용한 사물과 유용한 시간, 유용한 공간의 연속이다. 일상생활에서처럼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되는 것은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과 사용자간에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인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몰입이 탄생한다는 것이 이경혁씨의 주장이다.

생산자의 능력에 따라서겠지만 사실상 게임은 그 규칙과 세계가 정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영역이다. 무한히 확장하느냐는 개발자, 즉 생산주체가 정할 수 있다. 어쩌면 사용자중에 무한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애쓰는 주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그런 양상을 보이는데, 기초적으로 개발사에서 제공한 영역을 넘어서 사용자들이 끊임없이 변형판을 만들어 게이머들 사이에 상호 제공한다. 이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개발과 비판, 사용의 영역을 마구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비디오게임은 앞서 말한 “생산자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게임의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체되고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 흔해지면 그 때는 비디오게임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지 지금 내 수준으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본 강좌에서 짚은 부분은 생산과 소비 주체의 혼재가 아니라 사행성 게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게임이 모바일형태로 더욱 개인과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모바일게임은 돈과 더 가까워졌다. 지문인식이 가능한 경우 신용정보를 등록해두면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지출이 가능해졌다. 결제가 간편해진다는 것은 소비가 더욱 쉬워진다는 말이다. 소비가 쉬워진 게임시장이 이런 기회를 간과할 리 없다.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은 어느 수준에 오르면 현금을 동원하지 않고는 레벨업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나, 현금이 있으면 더욱 쉬운 게임을 펼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평등의 수치가 가속화될수록 게임시장은 발전한다. IMF 시절 우리나라 e-sports가 가장 크게 성장했듯이, 그 때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탄생했고 PC방 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인간의 비겁함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적 원인이 매우 명백하다. 현실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를 얻기 어려워질 때 사람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수단을 택한다. 적어도 몇 백 시간 내에 한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그 쾌감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게임은 공들이고 시간 들인 만큼 댓가가 돌아오는 매우 평등한 매체였다.

모바일시장이 나타나면서 이 평등함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현질,이라고 하는 금융결제, 즉 돈을 가진 자가 더 앞서 나가는 게임의 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암담한 시대에 유일한 구원이었던 게임마저 더 이상 평등하지 않은 형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와 유리된 듯 보였던 게임은 현실과 매우 가까워졌고 이제는 개인의 손바닥 위로, 화장실 안으로 침대 머리맡으로 아주 은밀하게 진입해 들어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생산자들이 머리를 짜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다. 더욱 개인화된 게임은 밀실과 광장의 경계를 허물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현실과의 경계를 점점 낮추고 있다.

게임은 마치 자생적으로 점점 커져가는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유동체가 되었다.

단순히 화면 안에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던 게임은 이제 현실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며 그 영역을 계속해서 파괴해나가고 있다. 마치, 애니팡의 동물들이 줄을 지으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가듯이, 언젠가는 애니팡의 화면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처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게임의 확장력은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할 수도 있다.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할 것이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노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던 시절을 지나, 남녀노소 막론하고 지하철에 앉아서도 뭔가를 터뜨리며 쉽게 웃고 쉽게 돈을 지불하는 때가 도래했다. 이제 여기서 게임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이 피시방으로 옮겨가고 피시방이 손바닥으로 들어온 시기처럼, 모바일게임의 급속한 성장으로 게임은 이제 또 다른 영역을 찾아 나설 것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어, 어떤 차원의 공간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고 할지, 그것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직 미지의 차원 – 우리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시공간 – 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Hell 조선에서 게임을 읽다> 제 1강 중독과 몰임 / 이경혁씨의 강의를 듣고

본 강의는 7월 14일부터 총 5강, 서울 종로구의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인문학협동조합의 기획강의입니다.

[전시]즐거운 나의 집 – 2015.2. 서울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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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지어진 김수근의 작품.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내 아르코미술관.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한 김수근의 건축물 안에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중첩시켜 보는 것일 지도 모르겠으나 어찌됬건 한국건축에 앞장선 사람이 지은, 둔탁하고 육중한 건물에서 홈 스윗홈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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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나의 집>전시 프로그램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집 속에서 동시에 거주한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

이 세 가지가 하나 된 산에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 말은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가 처한 현실 – 역설적으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주거조건에 처해있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많이 묻는 질문 “아직도 거기 살아?” 라는 것들.

태어나서 여태까지 서른 번을 넘게 이사를 다닌 나에게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은 열군데가 넘어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기억해 낼 때 마다 꼭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다.

전시는 인트로에 해당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우리가 살았던 공간에 대한 스냅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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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들어서는 것처럼, “다녀왔습니다” 라는 발판의 인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이 나온다. 익숙한 물건들, 누군가의 집에 꼭 있던 물건들. 양주, 상패, 애매모호한 성질의 물체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낡은 브라운관 티비엔 사물에 대한 텍스트가 흘러나온다. 오래전 어떤 접대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색깔의 소파에 앉으니 갑자기 장식장이 있던 어느 거실로 돌아가는 듯 하다. “홍은동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던 앞치마를 맨 여자가 나타날 것만 같은 물성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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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들어가면 지지고 볶는 소리가 난다. 하얀 테이블에 미색 자기들이 놓여있고 식탁에서 나눌 법한 대화들이 소설과 문학작품에서 튀어나와 테이블과 그릇에 붙여져 있다. 문득, 그 공간에서 나는 눈물이 올라왔다. 따뜻하고 독립된 부엌 한 번 가져본 적 없던 유년이었으나 부엌과 밥상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아련한 원형이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와 밥을 차려낸다는 것과 함께 먹는다는 것.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중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밥을 먹는 일이 아닐까.

이어지는 침실에서는 함께 잠을 잔다 하더라도 잠이 뒤엉켜 섞이거나 서로 잠을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관계와 잠을 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잠에 빠져들면 인간은 모두 개인이 된다. 꿈과 꿈이 엉키는 일도 없고 잠이 합쳐지는 경우도 없다. 가장 독립적 공간인 화장실도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다. 근대 중국에서는 배변의 문제를 함게 해결하는 공동체중심의 개방형 화장실도 있었으나 아무리 공간을 나눠쓴다 하더라도 배설의 문제는 개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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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부엌은, 함께 해야만 그 가치가 상승되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겠나.

우리가 살던 집에서 느끼는 푸근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에는 오늘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해 말한다. 충격이 시작된다. 현대의 집은 돈으로 귀결되고 부모의 재산과 나의 수입에 비례하여 주택 DTI를 설치미술로 구현했다. 놀랍고도 비참한 결과에 불쾌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뭔가 기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댓가를 가늠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선대에 이루어놓은 자산이 없으면 미래가 불확실한 빚더미에서 시작하고 빚더미로 끝나는데 과연 이 게임에서 돈을 버는 자는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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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마감 마지막 기회. 라는 말이 도시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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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협력전시기관의 철학과 홍보가 같이 담겨있다.

본 전시는 ㈜글린트와 아르코미술관이 협력한 전시라는 게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가 하는 질문에 <즐거운 나의 집>전시는 글린트의 주장에 따른다. 공유주택, 쉐어하우스, 함께 사는 집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건국이래 주택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다. 집이 좁고 낡았다며 시멘트를 들이붓고 발라대더니 땅값은 정신없이 오르고 다닥다닥 붙은 층간소음 작렬하는 공동주택에, 붙박이 장롱 문짝 하나에 300만원이 되는 평당 1400, 2000이 예사로운 나라, 땅과 집을 가진 권력자들은 절대 이 기득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이 말했듯이 “땅이 곧 생명”이라고 믿고 있는 이 수많은 땅주인과 건물주들은 땅이 마지막 생명이며 자손만대 길이 남을 영생의 복권이므로. 과연 대안은 가능한가? 인심좋은 지주들의 선량한 기부에 힘입어서? 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일까?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다음 전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으로 이어진다는데 창밖으로 정말 살고 싶은 집의 풍경이 보였다. 남의 사생활, 누군가의 고즈넉한 집이지만 저런 집 한 채 꿈꾸며 살아도 죽기 전에 한 번 이뤄보기 힘든 나라. 참으로 착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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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같은 고시원을 나와 벌집같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달라진 것 같지만 달라진 건 하나 없다. 집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언제까지나 집의 물성을 무시하고 추억만 곱씹으며 살아야 할까.

2015. 2. 2.

새마을운동을 부르는 시대

1.
아이가 보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중계 유투브 영상이다. 양띵의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장면.

마인크래프트는 정육면체 블록을 이용해서 기본적으로 집을 짓고 양식을 구하는 등 생존을 시작하고 발전하면 마을과 도시를 만들거나 여러가지 모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최근 초딩들에게 각광받는 게임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컴퓨터수업에도 활용한다. 정육면체를 이용해 공간활용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그 일선엔 아프리카티비에서 게임중계를 한 양띵이라는 게임중계자가 있다.
양띵은 미소와 옴므 등과 함께 양띵크루를 만들어 합동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지난 해 양띵은 유투브 한국인 크레에이터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지금은 CJ E&J와 계약을 체결해 앱을 출시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양띵의 이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이 처자는 1990년생으로 2007년부터 아프리카티비 BJ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뒤져보니 얼마 전 “민주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하는데 그에 대해서도 적극 사과를 했단다.

아이가 유투브로 양띵 방송을 볼 때 나도 옆에서 가끔 지켜보는 편이다. 욕설도 나오고 편안하니 초딩부터 청년층까지 재미있게 볼 만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건 분명하다.

욕설에 대해서는 나는 매우 관대한 편이며, 영어 섞어쓰는 보그병신체보다는 욕설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 또한, 방송에서도 불현듯 욕이 튀어나왔다가 자제합시다~ 같은 말도 이어지기 때문에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제 본 방송에 새마을농사 미션이 있었는데 플레이어 (마인크래프트는 게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화면이 움직인다)가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다 이 장면을 봤고 아이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새마을농사를 짓는거라고 대답했다.

2.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시대에서 큰 비중을 가져온 일이며 그 평가는 여러 갈래다.

나는 (김영미 저 / 푸른역사 펴냄)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고 그 책에 이어 새마을노래를 벨소리로 하고 다니는 골수 새마을키드 한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일어나지만 새마을운동을 단순히 박정희 독재의 상징으로 바라봐도 되는지 궁금하다. 참여한 국민들이 있었고 저항보다 동원에 적극적이었어야 했던 가난이 있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상이라고 본다.
4.19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대체 어디서 뭘 했고 당시 국민들은 뭘 했길래 소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18년동안 독재를 하게 내버려뒀는가. 이미 이건 역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복고와 보수주의가 같이 오면서 우경화가 그 바닥에 깔어 있다는 것이다.
공안정국, 조작질은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고 우경화도 전세계적으로 전방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은 현상이다.

인기절정의 개그콘서트에서 일베의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여성비하, 외모비하가 공중파를 타며 일반화 되는 오늘, 일베의 용어를 쓰면 개망나니가 되고 호로자식이 되며 일베는 일베가 아닌 사람들을 비하하고 공격하길 즐긴다. 오유나 다음까페의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스북 유저들을 꺼려하고 페이스북 골수유저들은 오유와 다음까페를 무시하는 이 요상한 현상.

서로간의 교차하는 컨텐츠를 가지고 싸우거나 타 집단의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거침없이 비난을 해도 되는 이 분위기.

70년대를 불러내고 정신승리를 부르짖는 이 분위기. 모 논객이 토 나온다고 했던 바로 그 분위기. 그 현상을 보는 거다.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정신적 세뇌를 받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외롭고 우울하고 처참한 세상에서 현대인을 움직이는 건 “멋져 보이는, 좋아 보이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새마을운동이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보일 수 있다. 그 말은 새마을운동을 대체할 다른 역사적 컨텐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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