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늘이 돋는다

1.
엄마,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이 신을 만든 게 아닐까?
– 그거 니가 몇 년전에도 물어봤던 거야.
그때도 엄마가 그런 거 같다고 했었어.
그랬나?
– 어.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이 풍진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왜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지, 왜 계속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신이 있다고, 불가항력이라고,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면 그때부터 모든 삶은 심플해진다.

이것이 내 팔자라고, 사주가 그렇더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면 안간힘을 써도 안되는 일에 관해,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을 믿어버리면,
내 인생이 그닥 쓰레기같지 않게 느껴지니까.
내 삶의 모든 노력이 공허하게 부정당하지 않는 기분이 드니까.

2.
다음 주에 끝나는 종로구 모처의 노인글쓰기 수업의 참여자들은 중산층 이상, 대다수 연금생활자로 보인다.
그 격차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고학력자들이고 글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직접 한글파일에 사진을 붙이고 사진에 캡션을 붙이는 70대가 있다. 반포주공아파트가 천 만원일 때, 아파트를 사지 않고 카메라를 샀다는 노인이 있다. 평생 공직에 있어서 인생이 참 무료했고 오만하게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하며, 개인의 모든 울분을 사회적 문제와 정치이슈로 간단하게 치환해버리는 수구전통의 성향을 가진 분이 거침없이 박근혜는 자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편이 은행원이었고 나중에 회계사가 되었는데도 사는 게 늘 가난했다고 고백한 77세 여성노인이 있었다. 모두들 은행원 월급이 썩 괜찮은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고, 그녀가 혹시 사치를 한 건 아닌지, 욕심이 많았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질문이 오갔다. 77세의 곱상한 이 할매는 성격이 명랑하고 장난기도 많아 뒤에서 보고 있으면 중학교 2학년 응원단장 같다. 사람들의 질문에 토라진 할매에게 다가가, 남편이 자수성가했고 줄줄이 동생들 공납금을 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슨 사정인지 알 거 같다고 말을 걸었다.
저는 그거 이해해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죠. 라고 웃었더니,
육남매의 외아들이고 혼자 공부한 남편이었다며 자기도 육남매의 맏딸이었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개천에서 난 용은, 그 개천의 장력에 의해 이무기로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집집마다 개천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늘로 승천하지도 못한 채, 가시나무 가지에 걸려 억울하게 뜬 눈으로 소멸되는 삶이 있다.

줄줄이 매달리는 동생들의 공납금을 대고, 병든 가족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고, 집집마다 있는 화상들의 사고를 치닥거리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졌던 사람들이, 왜 국가의 의무에 대해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나, 이해하고 싶어졌다.

복지관 뒤에 아파트에 혼자 사는 영감님은 월 300만원 정도 되는 연금을 받아 살고, 막내딸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중이라 했다.

3.

큰 아들이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보증사기를 당하고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1년이 흘러가, 며느리와 교대로 아들을 돌보는 84세의 노인은 월 40만원으로 살고 있다. 쓰러진 아들이 빚을 내어 구해준 전세집의 보증금이 5천만원이 넘고, 연락이 끊긴 둘째 아들도 호적에 올라 있어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복지관에 나오면 시름을 잊는다고 고백했었다.

평생을 비정규 공무원으로 일했던 78세 노인은 부인을 일찍 여의고 딸들은 가난하고 아들은 소식을 모른다. 복지관 청소를 하며 노인사회활동 급여로 월 20만원을 받고, 노령연금 20만원도 받는데, 매달 월세가 22만원이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노인사회활동이 중단되어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어렵다고 주거비 지원을 요청했다고, 복지사가 전했었다.

지난 달에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다.

그 이전에는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을 만났고, 작년 겨울에는 쪽방촌의 작은장례에 갔다.  발이 없는 노인이 문상을 왔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지하 장례식장으로 들어서 슬리퍼를 벗고 고인에게 절을 했다. 고인과 그는 지나가다 몇 번 본, 이웃이다.

나는 수업 중에 노인들이 하는 말을 기록하다가
“왜 노인들의 빈부격차가 이리도 큰가” 라고 적었다.
그리고 10초쯤 쉬었다가 바로 아랫줄에
늙으나, 젊으나 매한가지. 라고 덧붙였다.

4.

파업과 철야농성중에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더라는 전설같은 사내가 환갑을 넘기고도 여전히 뽀얀 얼굴로 매일 TV에 나와 조근조근 말을 한다. 이제 그는 원했던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난세의 영웅을 바란다.

그 방송국에서 하는 예능프로에 “운이 좋아 노래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 빼어난 미모의 여가수가 나와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꿈이 부정당하는 말과 같으니까. 그 사람이 간절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간절히 원했던 게 무엇일까.
그녀의 말과 달리,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살아남는 거였다.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지뢰가 터지는 언덕을 넘어 까닥하면 온 몸이 터져버릴 지도 모르는 순간마다, 그저 살아남기를, 그저 별 일 없기를 바랐는지도.

5.

일찍 세상을 떠난 막내삼촌은, 1951년 1월 1일 생이었다. 천하에 불운한 팔자라고들 했다. 남들의 말처럼 삼촌은 자기 능력을 단 한번도 발휘하지 못하고 바다 건너에서 위암으로 일찍 갔다. 문득 삼촌 생각이 났다.

미국의 오바마 케어가 사라질 거라 한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약을 부쳐야 할 것이다.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조금 더 근사한 모습으로 살길, 조금 더 의연한 모습으로 죽길.
올 겨울은 박근혜탄핵을 돕는 우주의 기운 때문인가 뜨듯한 겨울이다. 몸이 많이 피곤한데, 사람들의 상처가 자꾸 혓바늘처럼 입속에 맴돈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야겠다.

2017.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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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서울 중림동

더 많은 내부고발자

 

외부충격이다, 음모론이다,

잠수함이다, 암초다.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배가 어찌 그렇게 넘어갔으며, 모두가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해보였던 예상을 뒤엎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날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청문회에 나와 마이크 앞에 앉은 자들은 모두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날은 일반 국민들도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날”이라고 했다.

2014년 4월 16일, 해가 지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목이 메이고 눈물을 참으려고 눈알이 벌개지도록, 당신도, 나도 TV 화면을 바라보며 옥죄어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으니까.

해가 진다,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안 되는데,

해가 지면 안 되는데.

그날 아침 8시 49분, 세월호가 침몰했고, 뉴스 속보가 떴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이라는 속보를 보고 앞바다라니 별 일 없을거라 생각했다. 비어 있는 큰 아이의 방문을 닫다가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젖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교복을 입은 아이가, 큰 아이의 방에 잠시 섰다가 사라졌다. 아이의 머리는 길었고 앞머리가 단정했다. 그 교복은 하복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중에 학교로 돌아올 때 입었던 그 교복의 형태. 반팔의 흰 셔츠로 되어 있는, 짧은 치마와 흰 양말이 흐릿한 형체.

팔에 돋는 소름을 거두고 서울 서초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떴다. 그리고 나는 제암리에 있었다. 제암리교회에 도착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자목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적당히 불었고, 공기가 텁텁했다. 봄마다 오는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대기가 묵지근해지고 바람엔 먼지와 모래가 섞여 있는 듯 하고,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자꾸 아른아른하고 몽롱하게 들리는, 햇빛은 나지만 찬란하지 않은, 조금 걸으면 몸이 더워져서 겉옷을 벗어들게 되는, 화창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바람이 불어 자목련 잎사귀가 마구 떨어지는 것을 영상으로 찍으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걸 알았다. 나는 왜, 지금, 왜 하필이면 여기 제암리에 있는가, 참담했다.

별 일 없을 거라 믿었다. 침몰했다는 여객선은 거대했고, 쉽게 넘어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진도 앞바다라 어민들도, 해경도, 모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오돌오돌 떨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엄마아빠에게 안겨 실컷 울다가 저주받은 수학여행이라 운수가 나빴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저녁이 되면, 전 국민이 뉴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대참사를 피해가는 과정에 등장한 시민영웅이 한두 명쯤 나와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당연하게 펼쳐질 거라 생각했던 뉴스는 없었다. 진도에는 비가 왔고, 아이들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고, 아이들이 왜 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비 오는 진도에서 비옷을 입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길이 막혔고, 우리의 모든 소망이 그때부터 가로막혔다.

이후로 우리는 바다, 침몰, 여객선 같은 단어를 쓰기 어렵다. 노란색, 배, 고래, 리본을 보면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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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일, 안양 범계역

자로의 세월X는 돌을 던진 셈이다.

그는 동영상 시작부분에서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밝혔다. 이렇게 2년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궁금해 한 사람이 있다고, 그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유라가 독일에 있고 독일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 네티즌이 썼던 댓글을 잊지 못한다. “독일이 어떤 나란데. 과거를 청산한 나라다.”

오늘은 자로의 세월X가 업로드되었고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K스포츠재단의 내부고발자가 한 명 더 나타나 이제 K스포츠재단내의 내부고발자가 세 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의인”이라 칭함은 옳지 않으나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하되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내할 각오를 보였다. 지금 여기엔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세월호를 잊고 싶던 개인의 내면, 유가족들에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의 내면, 고통을 응시하지 못했던 비겁한 내면, 때로는 잊히길 바랐던 이기적인 내면, 그 모든 내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다시 끄집어내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각자의 내면의 고발이 필요하다.

그날 아침부터 모두들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그 하룻동안, 박근혜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정이 없는 날이니 느즈막이 일어나 드라마를 보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쉬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았는다는데 해경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질책하며, 본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며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한 뒤 중대본으로 갔을 것이다. 책임자들이 제대로 구조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며,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알고 있는 자신의 책임은 오로지 의전뿐이니까.

그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앉힌 자들이 내 이웃에 있다. 어떤 기관의 보안손님이고 싶었던 내 내면에 최순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

왜 그랬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작은 욕망들이 뒤틀려 기괴한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때 일어난다. 왜 그랬는지. 세월호의 진실은 아무리 파헤쳐도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진실도 살아남은 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 지치지 말고 진실을 파헤치는 일, 끝까지, 책임을 묻고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어 이 모든 과거를 청산하는 일.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2016년 12월 26일

그날, 2014년 4월 16일, 화성 제암리

응급실의 찌꺼기

아이의 옆 침대에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왔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초까지의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라 그런지, 어딘가 생김새에 균형이 깨져 있다.

진료를 받는다고 왔다갔다 하더니 어디서 다 큰 여자아이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쭉 빼고 내다보니 옆 침대에 있던 그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말리고 난리다.

메르스 이후, 한림대평촌성심병원은 경기도 서남권역 응급센터가 되어 병동이 모두 격리되어 있고, 각 분과별로 격리병실이 따로 있어 무척 쾌적해졌다. 보호자는 1인만 동반입실 가능한데 그 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 들어와서 설득하고 말리고 있었다.

나는 혹시 선단공포증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들었다.

주사바늘이 무서울 수 있다. 특정 공포증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일거고, 나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잘못은 아닌데 세상은 극복하라고 윽박지른다. 세상이 늘 그렇듯이.

나는 그 가족의 대화를 엿들으며 응급실에 온 부모와 자식의 입장을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왔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는 순간 8만원이 청구된다. 검사비용까지 더하면 15만원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휴알의 야간 응급실은 북새통이고, 아이는 통증을 호소한다. 아무리 경미한 질병으로 왔어도 당사자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응급실에 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보다 수십 년 더 사회적 질서를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고 이들은 아이가 타인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을 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료진 앞에서 약자가 된다. 환자는 통증에 신경을 빼앗겨 자기 통증과 증상에 집중하는 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지 못하는 보호자는 긴급하고 정확하게 의료진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이미 단단하게 구축된 관계가 있으니 보호자는 응급실 안에서는 보호자와의 관계형성에 들일 에너지를 잘라내어 의료진과 관계를 설정하는데 힘을 다한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거나 고통을 느낄 때 보호자는 의료진과 더욱 돈독하고 관계를 신속하게 맺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증상일수도 있는데, 타인과의 관계형성이 순조로운 일처리를 순조롭게 해준다는 인정과 감성에 호소하는 형태이기도 하고, 구조보다 개인에게 집중하는 인간중심적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은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모든 사람에게 집중하기 어려우므로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에는 “특정한”인간 중심이라는 말이 생략되는 것이 필수적인지도 모르겠다. 특정 인간 중심으로 구조가 개편되었을 때,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러한 인정중심을 탈피하고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환자는 보호자와 의료진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해주길 바라게 된다. 의료진에게 환자 한 명은 응급실에 누워 있는 수많은 환자들 중에 한명일 뿐이다. 의료진은 공평한 의술을 펼쳐야 하고 순서를 지켜 각기 다른 증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모든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응급실이 개편된 다음 “응급실 진료 순서는 선착순이 아니라 응급정도에 따른다”는 표어가 여기 저기 나붙었다. 의료진에게는 더 급한 환자가 많이 있고 더 위중한 환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응급실 병동이 모두 격리된 다음 이제 이 병원 응급실의 “구경거리”는 줄어들었다. 타인의 고통을 구경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더한 고통을 보며 자기 위안을 삼는다. 유치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응급실에 오게 된 수많은 사연들을 접하며 삶의 이치 한조각 정도 주워가려는 시도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특정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고자 하는 학습욕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응급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환자들은 결국 익명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은 그저 타인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이 되거나 “교통사고 피해자”가 되거나 때로 “진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아이가 응급실에 가도, 술 취해 바닥에 마구 구토를 해대는 아저씨를 보며 깔깔대거나 무서워할 일이 사라졌다.

 

옆 침대 아이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온 거였다. 며칠 변을 못 봐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서 관장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것이었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서운지 내내 제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다가 창피하게 왜 이러냐는 말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는 말도 했다. 무서운 일이 아니라고도 하고, 다 컸으니 할 수 있을 거라고도 하고, 별 일 아니라고도 하고, 애기들 모인 소아병동에서 제일 큰 언니가 이러면 어쩌냐고도 했다. 아이 아빠는 경고조로 이러고 집에 가면 큰 일난다, 밤새 배가 아플 것이다, 내일도 해결이 안 될 것이다, 더 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노폐물이 너무 많이 차서 그러니 해결을 하고 가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아이가 뭔가를 거부할 때 할 수 있는 모든 관용어구를 총동원해서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어머니가 해주셔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엄마도 경험이 없는지 방법을 알려달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모의 설득은 모두 다 타당한 말이었으나 아이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거부한다는 것은 감정의 문제고, 설득한다는 것은 이성의 문제가 더 강한 것일까. 윽박지르고 따지기도 하고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부모는 왜 늘 자식의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며, 자식은 왜 늘 부모의 이성적 판단을 못 미더워하는 것일까.

내 앞에 누운 내 아이는 응급실에 와서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때부터 병원출입이 잦아서 그런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괜찮다, 별 일 아니다, 라고 얘기해주면 의연해지고 가뿐한 표정을 짓곤 한다.

이 병원 응급실은 지난 10년간 내가 수차례 드나들던 곳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아이의 가벼운 중이염이나 아주 작은 골절로 찾기도 했다. 응급실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면서 내 기억의 응급실도 사라졌다. 환자이기도 했고 보호자이기도 했다. 옆 침대의 대화는 때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때로 내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우리는 타인을 설득하는데 얼마나 무능한가.

관계가 확실한 대상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감정을 감정이라 말하지 못하고 논리적근거와 감정을 뒤섞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부모, 응급실의 보호자들은 비논리와 불합리, 부조리의 총체가 되어버린다. 간절한 욕망이 최고점을 찍는 순간, 어쩌면 인간은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은 불행이 고개를 쳐들 때,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에게 남는 것은 온갖 감정과 이성에서 떨궈져 나온 찌꺼기들 뿐인지도.

2016년 12월 25일

 

 

 

시민의회 “대표”유감

오늘 오전 트위터를 들여다보다가 며칠 전 명부에 이름을 올린 “시민의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아마 오늘자 한겨레에 시민의회에 대한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리라. 시민의회를 처음 접한 건, “박근혜게이트”사이트를 통해서였다. 박근혜게이트와 박근핵닷컴을 계속 열어보며 의원 청원을 클릭하고 그 직전날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문자를 열나게 돌린 다음이다. 월요일 밤이었거나, 화요일 오전이었다. 구글닥스 형태였고 제목은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라는 제목이었다. 내가 생각한 “시민대표”라는 것은 광장에서 연단에 올라 자유롭게 발언하는 뭇사람들이었다. 어린이도, 청소년부터 그야말로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한 부산 아지매까지, 내가 생각한 “시민대표”는 그런 모든 나의 이웃 길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이었다.

시민대표를 선출하자는 말과 그 아래 글을 읽어본 뒤 나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니 정보력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름을 적어냈다. 시민대표 중 한 사람이 될 생각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도 정신없다.) 그 사이트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는 장기전이 될 이번 싸움에 직접적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이름을 적어내는 과정은 서명운동이나, 국민청원 정도로 여겼다. 말하자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 드는 것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위에 적은 바와 같이, 내가 다른 데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이 취합하는 정보를 받아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전하는 일 정도였다. 다시 광화문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정보공유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안양지역에서 받아간 손피켓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초를 빌리기도 하고, 내가 아는 화장실을 알려주는 것에 다름 없었다. 그래서 여기 저기 공유도 했고, 관리하는 페이지에도 올렸다.

박근혜게이트가 알려져 있는 사이트라 참가자가 많을 거라 생각했고 광화문에 모이는 인파를 생각해 적어도 1차 시민의회 모집에 1만 명 정도 지원할거라 예측했으나 이후 사이트에서 발표한 명단을 보니 1천명 정도였다. YMCA 각 지역 사무총장들이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띄였고 우리 지역 선배도 있었다. 이름 옆엔 괄호치고 직업이 적혀 있었는데 나름 엘리트 계층이 상당히 많아서 역시 인물들이 먼저 모이는 건가 의심했다. 쉽게 말해,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는 거다.

어제 내가 관리하는 페이지에 시민의회 모집 구글닥스를 걸어놓은 게시물에 와글 공식페이지 관리자가 고맙다는 답글을 달아서 와글에서 한다는 걸 알았다. 오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와글과 YMCA 연맹도 함께 기획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지역도, 내가 아는 다른 YMCA 사무총장도 명단에 들어가 있다. YMCA에 대해 한 마디 보태면,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기독청년운동에서 시작했다지만 종교성을 드러내 거북한 단체가 절대 아니고 나의 경우 매우 편하게 소통하고 조력하는 지역운동의 협업단체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 격을 갖추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표자 격은 가장 많이 일을 하고 가장 넓은 분야를 아우른다는 것이다. 조직력도 좋고 활동력도 강하고 기본적 철학도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팀이다. 내가 지역에서 활동가의 구실을 하게 된 것도 안양YMCA와의 인연 때문이다.

자 그리하여 화요일이 지나, 8일 목요일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수신자인 나는 “공동제안자”가 되어 있는데 향후 정국에 관련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메일로 회신해줄 것을 부탁하며 시민공동토론 운영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했다.

하루에도 해결할 일이 한 둘이 아니고 주로 SNS는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유입하는 입장에서 매일 “시민의회” 사이트를 들여다 본 적은 없어서 그날 메일을 받고 일단 의견을 달라고 한 질문에 답장을 썼다. 마감시간은 9시라고 했는데 시간을 지키기 어려워 조금 넘겨 보냈다.  질문에 답을 쓰는 과정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이메일을 보내고 사이트를 들어가봤다. 시민대표 추천란이 개설되어 있었고 오늘 트위터에서 공개된 여러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추천하기 버튼이 붙어 있었다. 의료사협대표도 있고 정말 제대로 일하는 역량이 대단한 활동가도 한 둘 보였다. 기억나는 건 이계삼씨가 있었다는 것과 그 외 유명인들이 있었는데 석연치 않았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 명단에 나처럼 스스로 이름을 올렸을까 싶은 의심이 들었고 할 일이 있어 금방 창을 닫았다.

그리고 오늘자 한겨레에 기사가 실리며 난리가 쏟아진 것이다. 사람들이 캡쳐해서 올린 시민대표 명단을 보니 김제동 같은 유명인사가 있고 더러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한 모양이다. 동의가 없이 진행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저녁나절 내가 공유한 이진순씨의 글은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오후부터 시민대표, 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민단체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나도 타인을 위해 싸우려고 애쓸 때가 있으나 사실 그건 궁극적으로 타인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싸우는 과정이다. 타인을 위해 싸운다기 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전투력이 좋은 사람들이 모일 필요는 있다. 그들을 “대표”라고 부른다면 “대표”라는 명칭을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사회는 흔하게 “대표”라고 칭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참여연대가 계속 소송을 내서 청와대 접근을 점점 가깝게 한 것이나, 이 나라의 노동운동을 위해 앞장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덜 나올까봐.”,“그냥 촛불 하나가 되고 싶어서”나온, 뭇사람들이고, 그들이 연단에 오르고 깃발을 들고 자유롭게 참여했기 때문에 이만큼의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 트위터리안 수유리킴은 이번 혁명의 성공은 지도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반면 각 지역에서 연대한 “비상시국행동”에서는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를 세우고 피켓을 만들고 집회장소를 섭외하고 사전에 지자체에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연대”라 하지 “대표”라고 스스로를 칭하지는 않는다.

이 글을 쓰려고 한글 파일을 열 때 바로 시민의회측에서 “제안자분들에게 드립니다” 라는 이메일이 왔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사과를 실었다. 방금 전 본 이진순씨의 페북 글과는 논조가 상당히 달라졌다. 시행착오라고 보고 싶다. 나는 이 시민의회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다. 플랫폼을 만들고 다양한 만민공동회를 구성하자는 말인데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해본 사람들이 협의체와 네트워킹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해왔던 말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공동의 “플랫폼” 하나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었고 나도 그렇게 느꼈고 그런 플랫폼들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여기 저기 산발해 있다.

그러나, 과연 하나의 플랫폼이,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할까?

올 봄에 사경계의 언론사 설립에 도전하면서 사경분야의 하나의 플랫폼이 가능한가 타진해봤으나 단 하나의 플랫폼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구조는 앞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합집산, 느슨한 네트워크, 산발적인 조직력이 하나의 명징한 주제 아래서만 뭉칠 것이다. 딱 이번의 촛불혁명처럼 말이다.

얼마 전에 적었던 대로 이번의 촛불혁명의 성공요인은 쉽고, 안전하고 (어린이와 노약자의 진입 문턱이 낮다), 주제가 선명하고 요구조건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후의 거대한 연대의 힘은 이럴 때만 발휘될 것이다. 앞으로는 각자의 욕구와 각 단체의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접하고 그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적어도 1년 이상, 민주주의와 시민주권에 대한 온갖 담론과 비판과 응원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여기서 이것을 혼돈이라 보고 등돌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것이 과정이라 인정하며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시민의회에서 지금 저런 논란이 될 법한 구상을 한 것은 분명 내부의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권력을 잡고 있을 것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있을 법하다. 나는 그것을 의심한다.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복지와 취약계층을 말하는 사람들이 지독하게 관료적이며 권위적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관료제를 타파하는 순간, 그들은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고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단체들이 있고, 조직에 속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활동가들이 있다. 시민 후원금을 유지되고, 회원들이 계속 개입하고 감시하는 구조가 아닌 시민사회단체는 조직유지를 위해 공모사업 분야에 뛰어들었고 폭력적인 80년대 운동권의 권위적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번 시민의회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런 “적폐”다. 폭력적 구조와 그 시절의 폭력성을 낭만으로 치환시키는 수많은 선배님들, 눈을 뜨고 자신을 돌볼 수 없으면 이제 그 자리를 내려놓으셔야 한다. 이번 시민의회의 대표선발에 관한 아이디어는 아마 내부의 선배님들에게서 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한 번 더, 그 구조를 의심한다. 시대가 분명히 바뀌었고, 역사의 전환점인 게 맞다. 오늘 불거진 시민의회의 사태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나는, 굳이 탈퇴를 하거나 항의를 하거나 명부에서 삭제해 달라는 말은 안 할거다. 아마 나 따위는 자연스럽게 소거될 거라 보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10일


자료1.

시민의회측에서 최초 제안한 구글닥스 내용 (삭제될 것을 우려해 복사 붙여넣기)

(공개제안문)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제목 :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

부제 : 각계각층 시민들의 공개제안

광장에 서 본 이들은 안다. 직경 50센티의 작은 공간 안에 송곳처럼 곧추서서 직경 2센티의 작은 불꽃 하나로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내는 이들의 간절함을. 눈비 흩뿌리는 차가운 도로 위에 내 아이를 앉히고, 사랑하는 이의 언 손에 나의 체온을 덜어주며,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들의 단호함을. 스스로 한 점 불꽃이 되어 거대한 촛불의 은하수를 이루는 시민들이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을 건져 올릴 유일한 희망이며, 부끄러운 역사를 바꾸어낼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품격이다.

정부와 정당, 기회주의적 언론은 더 이상 국민을 들러리로 삼지 말라. 이제 우리는 일부 특권층의 사유물로 전락한 국민의 주권을 바로 세우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논의하고 설계하려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지혜의 창고이며, 혼돈의 시대를 헤치고 나갈 거대한 사령탑이다.

거대한 촛불의 바다가 주권자의 존엄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모아내는 용광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들이 수렴되는 플랫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의구조’나 ‘대리자’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대변인은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간의 대변인 제도와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창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는, 주권자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고 주권자가 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적시하기 위해, 특권층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시민대표를 선출할 것을 공개 제안한다. 촛불시민대표단은 신망 받는 시민 가운데 온라인 최다추천을 받는 이들로 구성될 것이며, 공개적인 온라인 의사결정구조에 의해 수렴된 민의를 시민들과 순환적 토론을 이어가면서 정부와 정치권, 특검과 언론기관에 전달하고 압력을 가하는 평시민들의 시한부 대표기구가 될 것이다.

시민대표는 주권자의 요구를 대변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이 규정한 유일무이한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국민의 뜻은 국가의 명령이며 그 어떤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나 정치공학적 이해타산과도 무관하게, 투명하게 수렴되고 여과없이 수용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이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과 그 이후의 과제를 논의하는 국가적 의사결정체계 어디에도, 현재 국민의 여론을 가감없이 대변할 정직한 대리자는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 4%의 대통령은, 국민의 뜻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 정치공작과 범죄은닉을 꾀하고 있으며, 국민의 대의기관이 되어야 할 국회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앞세워 민의를 왜곡 대표하고 있다.

박근혜게이트의 공범세력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배를 갈아타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정치권은 광장의 방식과 제도권의 방식이 별개라고 주장하며, 대선후보들은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꾼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박근혜 퇴진과 포괄적인 국가개조를 주장해온 국민의 목소리는, 정치적 협상의 명분으로, 흥정의 대상으로 축소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을, 우왕좌왕하는 제도정치권에 모두 맡길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추천하고 선출한 시민대표단을 구성해서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에 국민의 뜻을 전달하고 관철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대표단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박근혜게이트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고발하고 감시한다. 지난 10월 25일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촛불항쟁에서 확인된 시민들의 목소리는, 박근혜 한 사람의 탄핵이나 측근 몇몇의 처벌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어서는 안 되며 뿌리 깊은 특권층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포괄적인 국가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비리에 가담한 부역자들은 개혁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이들이 꼬리 자르기를 통해 특권연장에 나서지 않도록 법적,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시민대표단은 성역 없는 수사와 엄중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시민의 입장에서 고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시민대표단은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국가개조를 위한 시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수렴한다.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권력집단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 생명과 주권이 존중받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시민대표단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건강한 토론과 합의를 모아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역과 성별, 직업과 세대별로, 각계각층의 총의를 모아 포괄적인 국가개조방안을 정리해서 국가적 의제로 제출하는 것을 과제로 한다.

시민대표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시민대표단은 제한된 임기동안 시민의 의견을 모아내고 대변하는 무보수 자원봉사자이다. 평시민의 일원으로, 어떠한 특권과 독단적 지휘권도 용납되지 않는다. 특정정당이나 이권단체, 대권후보의 입장에 기반한 개인의견을 앞세워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온라인을 통해서 수렴된 국민여론만을 대변한다. 시민이면 누구나, 연령과 학력,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시민대표 후보로 온라인 추천할 수 있으며 이들 후보 가운데 최다 신임을 받은 이들이 시민대표단을 구성한다.

시민대표단 구성을 공개 제안하는 우리들은, 빠른 시일 내에 시민대표의 자격요건과 선출방법, 시민대표단의 구성원칙과 윤리강령에 대한 방침을 세울 것이며, 논의과정은 모두 온라인사이트(http://www.citizenassembly.net)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 앞에 공개하고 의견을 물을 것이다. 공개제안단은 시민대표들이 선출될 때까지 필요한 제반 실무를 담당하고, 대표단이 꾸려지는 즉시 해산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촛불행진만으로는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시민의 위대한 힘을 창의적 공공지대를 통해 수렴하고 제도화 해내야 한다. 정부가, 정당이, 언론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시민적 공공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여덟자 구호만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탁월한 발상과 열정과 힘을 제대로 모아내고 공식, 비공식적으로 확산할 때이다. 직접민주주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토론과 성찰에 기반한 숙의적 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와 정당, 언론이 지금껏 보여주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이제 시민의 손으로 만든다.

공동제안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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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을 입력해주시면, 공동제안자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공동제안자는 대표단의 구성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며 대표단이 구성되는대로 역할을 종료합니다.

공개시점은 12월 7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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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제안자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곧 공동제안자를 공개하고 시민대표 추천단계를 진행합니다.

관련 토론 및 제안은 http://www.citizenassembly.net 에서 진행됩니다.


자료 2.

 

12월 8일 수신한 시민의회측의 이메일

시민공동제안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시민공동제안의 실무를 맡고 있는 와글입니다.

‘촛불광장의 민의를 대변할 시민대표를 선출하자’는 제안은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1차로 128명, 2차로 1,013명까지 총 1,141명의 시민들이 공동제안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박근혜게이트.com에서 명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부터 공동제안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두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http://www.citizenassembly.net)에 들어오셔서 “시민의회 운영원칙” 토론방이 있으니 주제별로 여러분들의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11일까지 의견을 모을 예정입니다. 12일부터는 시민대표 선출과정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로는, 공동제안자들의 제안과 관련해 <한겨레21>에서 취재요청이 왔습니다. ‘시민의 시간- 촛불 시민의 꿈’(가제)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실을 예정인데 아래 공통질문 세가지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답변은 한겨레21 기사에 반영될 것이며, 한겨레21 지면에 다 반영되지 못한 의견들은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에 전부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마감 때문에 8일(오늘) 오후 9시까지 회신되는 답변에 한해 한겨레21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바쁘시겠지만 info@citizenassembly.net 로 간단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동제안에 함께 해주신 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온라인 시민의회에서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료 3.

위 메일에 관해 답변한 내용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87년 체제가 가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이전의 이 국가는 누군가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토막, 공화제의 한 토막을 가지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87년의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민주주의과 공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결합시켜 헌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 독재 정권을 종결한 것도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주로 가면을 바꿔 씁니다. 신도시 개발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자본은 거대해서 그 뒤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기 좋습니다. 그저 폭력정권은 시대가 바뀌자 그에 걸맞은 열차로 바꿔 탄 것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폭력정권이 얼굴을 바꾼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는 재빠른 이들이 바꿔 쓴 가면을 이제야 알아챈 것은 아닐까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제의 확립,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입시제도를 어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적폐는 입시제도 중심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뒤집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별로, 모임별로 꾸준한 공부모임과 토론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공적기관, 공공시설물의 사용권을 확대하여 시민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시민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지역별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가, 이를 집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이루어나가는 이중구조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입법기관이 절대적으로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역별, 모임별로 꾸준한 시민모임이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방적인 체계로 급전환해야 합니다. 운동성을 유지한다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쉽고 편안한 말로 마을에서 함께 느리고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는 제2의 건국에 다름아닙니다. 대신 싸워온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2016년 11월,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공의 기억을 가진, 집회와 시위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시민들을 이겨낼 세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억을 더하고, 모이기에 힘쓸 때입니다. 각 지역별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https://allmytown.org/2016/12/09/%EB%B0%95%EA%B7%BC%ED%98%9C-%EC%9D%B4%ED%9B%84-%EC%8B%9C%EB%AF%BC%EC%9D%98%ED%9A%8C-%EB%8B%B5%EB%B3%80%EB%82%B4%EC%9A%A9/

 

 


자료 4.

오늘 밤 11시경에 들어온 시민의회측의 메일

 

시민의회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전달합니다

제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합니다

온라인시민의회 공동제안자분들과 시민후보로 추천되신 분들께 사죄 드립니다.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와글 대표 이진순입니다. 오늘 하루 온라인시민의회에 대한 많은 분들의 질타와 염려의 말씀을 깊이 가슴에 새기며 들었습니다. 저희 사이트 운영진의 미숙함과 성급함으로 인해서, 촛불시민들의 다양한 국정개혁 요구가 수렴되고 표명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서 마음을 모아주셨던 모든 분들께 본의아니게 깊은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서 뭐라 송구한 말씀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저의 불민함으로 평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할 시민대변인단의 명칭을 시민대표로 개괄함으로써 많은 분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당사자 동의 없이 추대된 후보분들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간 제기된 비판과 질타를 겸허히 수용하면서, 온라인시민의회 플랫폼의 운영 전반에 대해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를 전면 교체하여 시민대표후보 추천란을 폐쇄하고 제안문에 서명해 주셨던 분들의 명단은 삭제하고 제안문 원문만 올립니다. 그간 논의의 배경과 그간 토론방에서 제기된 논의를 중간 요약하여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지 않은 것은, 저희의 뼈아픈 실책으로 인해서 시민공론장에 대한 모든 시도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는 전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견이나 꾸지람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아낌없는 쓴소리 들려주세요.

아래는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에 게재할 운영진의 입장 글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사죄드리며 더 많은 비판과 조언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와글 대표 이진순 드림

안녕하십니까. 온라인 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자입니다.

10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여러 온라인 공간에 많은 시민들께서 시민의회에 대한 우려와 질타를 남겨주셨습니다.

먼저, 논의의 충분한 공유없이 미숙하게 시민의회의 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시민 여러분들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 드립니다.

저희들에게는 시민들이 주신 질타 하나하나가 깊은 반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르쳐 주신 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촛불 시민의 대변인을 뽑자는 저희의 뜻에 흔쾌히 동의해 공동제안자로 참여해주신 분들께 누를 끼친 점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만큼 송구스럽습니다.

시민들께서 질타해주신 점들을 새겨, 저희는 아래와 같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민의회 대표단 구성에 대한 논의는 원점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민대표는 어떤 권한을 가진 대의기구의 대표자가 아니라 시민의 의견을 모아 제도정치권에 전할 전달자 혹은 대변인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표현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자격요건과 선출방식, 구성, 명칭에 대한 논의도 토론방에서 진행 중이었으며, 시민의회를 제안한 사람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맞다고 보았습니다(시민의회 논의된 원칙 보기).

그런데 이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대표 추천하기 메뉴를 시범운영하여 인기투표처럼 시민대표를 추천받은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다. 추천된 분들의 사전 동의나 본인 확인 과정은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본인이 수락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점에 대하여 대표로 추천받은 분들과 추천하신 분들 모두에게 사과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시민대표 추천은 잠정중단하고 온라인 시민의회의 필요성과 운용방식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수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왜 온라인 시민의회를 구성하려고 했는가.

온라인 시민의회는 제도권 정치를 배제한 채 새로운 법적, 제도적 장치를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탄핵소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시민들은 이제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카톡으로 제보도 하고, 메신저를 통해 탄핵 가결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들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담보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가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의회를 만들고자 한 뜻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 과정에서 광장의 주체로 우뚝 선 시민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을 새로 고침 할 소중한 의견과 대안들을 제기하셨습니다. 저희는 이 소중한 민주주의의 자원들이 촛불 광장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축적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다른 나라의 여러 사례들이 이러한 시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해외 사례 보기).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 이전에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실험들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르익었다는 논의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기 되어 왔습니다.

저희는 시민대표 선출에 대한 논의는 중단하지만 국정개혁과제에 대한 평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제별 논의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표명할 지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거치고자 합니다. 시민의 참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면 좋겠는지, 시민의 의견을 모아낼 공론의 장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희의 시행착오가 더 나은 시민공론장 형성의 발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토론방 가기)

다시 한 번 시민의회에 관심과 질타를 쏟아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2.10. 온라인시민의회 사이트 운영진 드림

박근혜 이후 – 시민의회 답변내용

citizenassembly.net 에 공동제안자로 참여했는데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변을 요청해와서 적어본 내용입니다.

 

1) 87년 이후 민주화 시대가 열린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짜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87년 체제가 가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이전의 이 국가는 누군가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토막, 공화제의 한 토막을 가지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87년의 투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 자체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민주주의과 공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결합시켜 헌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 독재 정권을 종결한 것도 큰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독재정권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주로 가면을 바꿔 씁니다. 신도시 개발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자본은 거대해서 그 뒤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기 좋습니다. 그저 폭력정권은 시대가 바뀌자 그에 걸맞은 열차로 바꿔 탄 것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폭력정권이 얼굴을 바꾼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는 재빠른 이들이 바꿔 쓴 가면을 이제야 알아챈 것은 아닐까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를 재편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제의 확립,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도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입시제도를 어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적폐는 입시제도 중심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뒤집으면 우리가 처해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별로, 모임별로 꾸준한 공부모임과 토론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공적기관, 공공시설물의 사용권을 확대하여 시민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시민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지역별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가, 이를 집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이루어나가는 이중구조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입법기관이 절대적으로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국가 위기의 상황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촛불이 국면을 전복한 경험을, 우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역별, 모임별로 꾸준한 시민모임이 이어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방적인 체계로 급전환해야 합니다. 운동성을 유지한다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쉽고 편안한 말로 마을에서 함께 느리고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이는 제2의 건국에 다름아닙니다. 대신 싸워온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201611,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공의 기억을 가진, 집회와 시위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시민들을 이겨낼 세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억을 더하고, 모이기에 힘쓸 때입니다. 각 지역별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불우한 이웃

차 안에선 주로 CBS라디오 93.9를 듣는다. 탤런트 정애리가 애틋한 목소리로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며 모금을 독려하는 월드비전 후원모금광고가 자주 나온다.
오늘은 젊은 부부의 사연, 아빠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중이고 엄마는 미용실 스텝인데 월수입이 600,000원 정도.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방과후 특별활동비를 내지 못해 특별활동 시간에 혼자 교실을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불현듯 화가 솟구쳐 올랐다.

정애리 목소리가 울먹이는 듯 했고 그 톤으로 전화번호 읊는 걸 듣고 있자니 더 성질이 났다.
구호, 긴급구제가 필요한 이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 복지제도의 빈 칸을 국민들이 돈 모아 때우는 구조가 신물난다. 중국 공영방송에서 이런 행태를 자주 보이는데 극악한 상황에 내몰린 가족을 조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섬기고 살림을 도맡아 하는 어린이들을 미담으로 포장해 내보내는 것이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효도”나 “이웃에 대한 배려”로 뒤집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 그 사이에 대상화 되는 가난한 타자들, 테두리를 나눠 그 안에 사람을 넣어두고 여기는 불쌍한 집단이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강요하는 국가의 폭력적이고 지능적인 사기에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가.
언제까지 모금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

이제는 법안을 발의하고 행정소송을 내고 국회와 공조하여 제도를 바꿔낼 때가 되었다.
초대형화된 구호단체가 초등학교까지 진입해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자”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고 구호단체도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러 단체에 기금을 내고 있는데 이번에 좀 정리해서 참여연대로 돌려야겠다.
2016.11.21.

1987년, 민주주의는 더디게 온다 

1987년 나는 6학년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젊은 여선생이었는데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녔다. 입술위에 검은 점이 있었다. 

선생님이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 가난뱅이 등치고” 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6월이 지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선포된 이후 담임선생님이 나와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를 불렀다. 

아마 그때 내가 2학기 반장이고, 걔가 부반장이었을거다. 성적은 비슷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노태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화적인 정권이양이 이루어져야 88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8올림픽은 우리 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그래?” 라고 반문한 뒤, 그래,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말하고 내 옆에 섰던 그 녀석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장래희망이 “직장인”이라고 쓰는 매력 터지는 녀석이었는데 대답하기를 

“김대중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녀석에게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자식의 그 대답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거다. 

참고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서울 도봉구에 있었다. 

지금 어떤 6학년은 

다음 대선에서 누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 살짜리도 최순실을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누가 되더라도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을 뽑으면 좋겠지만, 감시할 권리와 의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해야 하겠지. 

죽 쒀서 노태우줬던 87년은 실패였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그렇게 더디게 오니까. 

당당하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내가 부끄럽지도 않다. 내가 봤던 건 이득렬앵커의 뉴스 뿐이었으니까. 

모두가 어른들의 몫이다.
2016.11.29. 

뒤통수

1.
몇 년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암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턱에 뭔가가 날아왔고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 날아와 내 턱에 부딪쳐서 떨어진 건 일수대출 찌라시.

일수대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기 저기 종이를 던지는데 그 종이는150~200g 정도 되는 아트지 류다. 코팅된 두꺼운 종이라는 얘기.

기껏해야 책 표지 정도 되는 얄팍하고 작은 종이가 바람을 얹고 날아왔을 때 중력이 얼마나 더 해지는지 실감했다. 꽤 오랜시간 아팠고 자칫했으면 종이에 베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종이를 던진 사람은 스쿠터를 타고 있었으니 온데간데 없고 나는 길거리에 서서 황망해져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어떤 방법도 없었다.

길거리에 찌라시를 뿌리는 행위는 적법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일테고 그는 그렇게 사는 게 방법이라고 배웠을 터이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그 행위로 인해 타인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려줬거나,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다면,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자각한 적 있다면 그날 내가 봉변을 당할 일은 없었겠다. 나 외에 다른 누군가도 그런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2.
올해 겪은 많은 일들이 이런 누군가의 습,으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스스로를 깨지 못하고 질문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 나의 습때문에, 혹은 타인의 습때문에. 때로 나는 피해자가 되고 중간에 끼인 자가 되고, 동조자가 되고 혹은 모르게 가해를 했을 것이다.

행동 하나 하나를 살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이라는 주장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주장에도 모두 동의한다.

길가다 똥을 밟은 이유는 누군가 똥을 싸질렀거나, 누군가 알고도 미리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똥을 밟은 것에 분개하느라 똥을 치우지 못하고 가버린다.

3.
뒤통수를 친다는 표현은 그래서 적확하다. 뒤통수를 맞는 일은 대부분 과거에서 발생해 현재의 나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고와 갈등은 언제나 과거에서 온다.
당신의 과거로부터, 나의 과거로부터.
청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과거로부터.

은발머리의 독일할배 – 카라얀

길건너 아파트형 공장 식당가에 전주콩나물국밥집이 있는 걸 봤다.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오늘은 아버지와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나오고 있었다. 93.9 강석우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곡이 끝나자 아버지가 베토벤인 줄 알았다 한다.

나는 며칠 전 임헌정이 지휘하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었다 했고 예전에 부천필에 있었다가 지금 코리아심포니로 옮겨간 임헌정은 말러열풍을 불러온 주역이라 전했다.
– 우리나라 최초 오케스트라가 서울시향이지?
– 모르겠는데.
– 서울시향일거야. 내 기억은 그래.

검색을 해봤다.
1945년 고려교향악단이 있었다. 1948년 서울관현악단은 해군 정훈음악대에 모여 정기공연을 열었고, 1960년에 서울시향이 되었다. 육군악대는 1956년에 KBS 교향악단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 해군교향악단이 있었는데.
– 그게 서울관현악단인가봐. 해군 정훈음악대에서 공연했으니 해군교향악단으로 보였겠어.
– 그 옛날 지휘자중에 김만복이라고 있어.
– 몰라.
– 찾아봐. 그 양반이 그때도 나이가 많았어.

지휘자 김만복. 1925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공을 지휘로 바꾼 사람. 이 분은 61년부터 서울시향을 이끌고 1965년 사상처음 해외공연인 일본 도쿄에서 공연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 그 양반을 조금 알아. 예전에 아빠 느이 엄마랑 명동서 가게 했을 때 자주 왔었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부모님은 명동에서 액자가게를 했다. 당시는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라 무단복사가 가능했고 엄마는 르느와르나 모딜리아니, 밀레의 그림을 좋아해 그걸 액자로 많이 만들었고 아버지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독일에 계시던 큰아버지가 어떤 지휘자의 사진과 LP판을 보내오면서 액자로 하면 근사할 거 같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지휘자의 얼굴이나 선, 사진 자체가 매우 훌륭해 히트 좀 치겠다는 예감이 들어 복제를 해서 액자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그 사진은 잘 팔렸고 아버지는 이어서 비엔나필, 뉴욕 필의 전체 공연 장면이나 주빈 메타, 게오르그 솔티, 레너드 번스타인등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었다. 명동을 지나다 봤을까. 김만복 선생이 가게로 와서 이 사진을 어디서 구했냐 물으며 이야기를 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번스타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웨스트사이드스토리”작곡자라고 말했다. 누구냐고 빨리 이름을 대라고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검색을 했다.
– 그 분이 오면 미도파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음악얘기 하고 헤어지고 그랬어. 그 양반은 내가 음악에 대한 사진을 대중에게 보급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나는 그냥 장사한건데 말야.

어릴 때부터 질리게 봐 온 사진이 헤르베르트 본 카랴얀의 바로 이 사진이다. 이후로 이 사진은 여러 곳에서 복제해 전국에 흩어졌고, 큰아버지는 독일에서 간간히 자켓이 멋진 LP판과 북클릿을 챙겨주었다.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라 내 부모는 이때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무단복제의 상업적 성공으로 특수한 혜택을 받았다. 크고 나서 좀처럼 카랴안을 듣지 않는다. 그 사람의 수많은 낭설들도 못 들은 척 한다. 카라얀은 비주얼로 내 유년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더 이상 보탤수도 뺄 수도 없는, 세상에 지휘자라는 사람들이 있고, 저리도 고독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 그래서 저 사람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우리 집에 늘 있던 잘생긴 독일영감님. 은발머리에 대한 로망은 분명 저 카라얀 때문에 생긴 게 틀림없다.

콩나물 국밥이 나오고 그리그의 페르귄트가 흘렀다. 아버지가 페르귄트가 맞냐고 물었다. 나는 김윤희의 “잃어버린 너”를 생각했고, 그 책을 읽으며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울던 내 나이또래의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모를, 1989년의 어느 오후.

아버지는 펄펄 끓는 콩나물 국밥을 바라보며 말했다.
– 요즘은 곡명이 잘 생각이 안나.
– 그거 외워서 뭐해?
나는 종업원이 가져다 준 김을 쪼개 넣으며 아버지도 김 넣어드셔. 라고 말했다.

한국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
https://news.samsung.com/…/%ED%88%AC%EB%AA%A8%EB%A1%9C%EC%9…

지휘자 고 김만복 선생 타계 소식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

배롱나무 꽃 필 때

  • 어떤  관계의 균열에 관하여

산책을 하다 문득 배롱나무를 본다.

그때 이후로 나는 여름마다 배롱나무 꽃피기를 기다린다. 배롱나무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만지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한다.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면 새 껍질이 드러나는데 그 껍질이 매우 부드러워 사람의 속살 같다고 한다. 배롱나무를 설명한 문건을 찾다보면 “여인의 속살”이라는 말이 나온다. 배롱나무 꽃은 7월부터 8월까지 이어서 핀다. 백일을 핀다고도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분홍색 꽃은 마치 구겨진 종이로 만든 것 같다.

배롱나무 꽃이 필 때,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배롱나무 꽃이 피던 계절이었다. 9년 동안 나는 그의 아내였으며, 그와 사는 동안 양가 가족들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겪었고 우리는 업무분담을 한 동료로 지냈다. 배롱나무의 이름을 알게 된 그해 여름, 그가 새 연인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내 의심을 거두지 않던 나는 그의 휴대폰에서 연인의 사진과 연인과 동행했던 여행의 이동경로를 알게 되었다. 배롱나무 꽃 아래서 나는 울었다. 아이를 업고 있었다면 더 그럴싸한 신파가 되었겠으나, 아이는 어느새 더 이상 업혀있을 수 없을 만큼 자라버렸다.

 

그와의 결혼이 격렬했던 것처럼, 이혼 역시 그랬다. 뜨거운 여름에 만나, 9년을 함께 살고 뜨거운 여름에 헤어지기로 한 뒤 우리의 서류는 차가운 겨울이 다 되어서 정리가 되었다. 다시 배롱나무 꽃이 피고 졌다. 올해도 배롱나무 꽃이 피었다.

그날의 비참했던 기분은 두 번째 배롱나무 꽃을 맞으며 사그라졌다. 마치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듯이, 배신이나 이별, 따위의 낱말이 벗겨져버렸다.

배신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나는 관계의 균열에 대해 생각했다. 지붕이 깨진 집에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것처럼 균열이 시작된 관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타자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관계는 양가의 일을 해소하고 육아의 분담을 나누는 업무로 이어졌으며 어느 순간 그 모든 업무가 갑작스럽게 종료되었을 때, 관계는 갈 길을 없고 소멸되었다.

그가 나를 버렸다, 라는 문장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가 나를 소유한 적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균열은 서로 존중하지 않을 때 시작되었다. 존중을 버리고 편리를 취했을 때, 관계는 마치 공장의 부품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재빨랐다. 그 사이 우리는 서로를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이 가진 기능에 집중했다.

 

그해 배롱나무 꽃이 필 때, 그가 새 연인과 아들바위 위에서 오징어회를 먹은 것은 관계의 균열에 빨려 들어간 어떤 타자가 우연찮게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그때 우리는 과연 누가 누구를 배신하였는가. 나는 그를 사랑하던 나를 오래전에 배신했고, 그는 나를 사랑하던 그 자신을 배신했다.

그 사랑이 왔던 시절을 기억했다. 사랑은 언제 오는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돌아보게 되지 않았던가. 내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 오는 사람이 가장 사랑스럽다. 이것은 매우 우연한 사건이다. 사건은 시간과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때로는 맑은 냇물처럼, 때로는 거대한 파도처럼, 아주 우연히 발생한다. 불행은 예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도 무참히 왔다 비루하게 떠난다.

 

어떤 사랑은 깨져버린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빗물에 대해 영원히 함구하고자 한다. 개입된 타자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우고자 한다. 어떤 사랑은 깨져버린 지붕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빗물이 들이닥친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그는 빗물을 지우고 지붕만 말했으며, 나는 지붕을 지우고 빗물만 말했다. 더 이상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균열이 점점 벌어져 결국 집이 무너져버린 셈이다.

 

어떤 관계의 균열 사이에 휘말려 들어간 타자는 어찌 되는가. 폐허위에 쏟아진 타자의 욕망은 어디로 갈까. 타자는 당사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다. 배롱나무 꽃이 지고 난 다음, 차가운 바람이 불면 알게 될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2016.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