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반동안 민선8기 시정공약을 점검하는 “더좋은안양기획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각계전문가로 9인으로 구성된 “더좋은안양기획단”은 8월 31일로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성별비율과 연령비율의 아쉬움이 전달되었으니 향후 모든 위원회 구성에 지적사항을 잘 반영해 구성하기 바랍니다. 기획단은 172개의 공약사업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공약내용변경, 명칭변경, 통합, 추진 로드맵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기간에 속성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시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행정이 해야 할 일이 세밀하고 어렵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면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에서 제가 주력했던 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제안을 점검 정리하여 행정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전 제안한 정책제안을 행정에서 이해하고 추진계획을 세우기엔 어려워서 모든 정책제안을 사업화계획으로 구체화시켰는데 다행히 정책제안단과 행정기관 모두 동의가 있었습니다. 향후 각 정책제안의 핵심사업은 주요과제로 다루어 단계적으로 시정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이번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행정이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민사회의 단어는 때로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행정의 언어는 그에 비해 실체가 분명하고 로드맵이 선명해야 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데 많은 분들의 동의와 협조로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안양시는 수십 년째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이 화두입니다. 실질적으로 만안구 지역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원도심의 한계로 시민들이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기획단뿐 아니라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만안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이 들었습니다. 만안구는 안양의 기원이며 시작입니다. 향후 안양시의 시정방향은 만안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주력하길 바랍니다. 만안구는 동안구가 갖지 못한 유무형의 자산이 많습니다. 이 자원을 한데 묶어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지역으로 발돋움하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안양시는 행정과 시민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습니다. 시정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이 직설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공직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없어 행정수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차후 관련 조례 제정 또는 직원보호에 관한 원칙, 보다 폭 넓은 거버넌스 구축과 공론화과정으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안양시민들의 욕구는 다양하고 구체적이나 다소 편협합니다. 주민조직을 갖추어 진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민원과 특정 집단의 요구로 인해 시정방향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지방정부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안양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 고령화, 산업기반유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예산투입은 늘어나고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양시는 이제 대도시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공직자들이 보다 많은 복지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지역을 위해 애쓰는 공직자들과 더불어 잘 사는 도시를 위해 관심 갖는 시민 모두의 힘을 더해 안양다운 안양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저도 힘 보태겠습니다.
안양천 생태이야기관 사이트에는 ‘경기남부 안양부근의 왕곡천, 오전천, 당정천, 산본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삼봉천 등 많은 지류가 안양천에 합류한다’고 적혀 있다. 안양시와 접하고 있는 의왕시의 백운호수쪽에서 학의천이 시작하고 이 학의천이 안양시의 중심부, 쌍개울이라는 곳에서 안양천을 만난다. 이 안양천은 안양시를 관통해 서울로 향한다. 광명시를 지나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 양천구에 이르면 서울이다.
내가 안양이라는 지명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때 엄마의 지인이 반월공단에 공장을 연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른들이 안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에는 안산이라는 지명이 없었는지, 안양 인근 지역을 안양이나 반월이라고 했다. 미군부대가 점령한거나 다름없는 의정부에 사는 사람들이 안양을 지칭하면서 안양깡패가 무섭다는 둥, 안양천 물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똥물이라는 등,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하는 걸 듣고, 안양이라는 동글동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곳이라고 상상했다.
안양은 일제강점기에도 각종 산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후 60년대 산업발달기에 공업지구로 각광받으며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다. 먼저 섬유공장들이 들어섰는데 대표적으로 동일방직 공장도 있었고, 이어서 제지회사들도 천변을 따라 있었다. 약품회사도 꽤 많았다고 한다. 지금 평촌의 스마트스퀘어가 된 곳에는 대한전선이 상당히 큰 부지를 차지했다. 안양에 일자리가 많아지자 직장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마을을 확장하면서 도시가 팽창했다. 언급한 섬유, 제지 공장들은 안양천과 수암천, 학의천을 따라 줄 지어 섰다. 당시 산업폐수나 환경오염에 한 인식이 척박하던 시절, 이들이 하천을 따라 공장을 건설한 것은 물을 끌어쓰고 버리기 좋은 환경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폐수들이 안양천을 뒤덮었다.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정도는 아니었다’고도 하는데 뜰채로 물을 건져 햇빛에 말리면 슬러지가 생겨 종이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대 초반 신문기사를 보면 한강의 지천 중 최악의 오염도라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안양천은 90년대에 들어 환경운동가, 시민들, 안양시청의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안양을 찾는 외지인들이 놀라워 할 정도가 되었다. 간헐적으로 공사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천변의 한쪽은 자갈과 흙이 그대로 살아있는 둘레길로 놔두고 한쪽에만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해두었다.
내가 안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5년이다. ‘안양천 똥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힌 채였다. 둘러보는 안양천은 대체 어디가 똥물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지와 안양천을 즐겨 걸었고, 징그럽게 많아지는 잉어떼를 보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왜가리가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을 괜히 숨죽여 구경했다가 감탄사를 쏟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이 왜가리가 어쩐 일인지 안양천과 꽤 떨어진 우리 집 베란다에 날아들었다가 휙 떠난 일도 있었다. 상상도 해 본 일이라 꽤 놀랐지만, 어쩐지 상서로운 일 같아서 으쓱하기도 했다.
안양천의 생태복원은 안양시의 자랑거리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이 넘치는데 하천과 도시의 경계가 꽤 움푹하다. 어제 폭우로 일부 피해구간은 있으나 안양천 전체가 범람하진 않았다. 천변이 잠길 정도로 비가 오면 안양시에서는 방송을 내보내고 문자를 보내 천변에 주차한 차들을 이동시키라고 사전에 예보한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니까. 여름마다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은 한 번씩 범람한다. 둑을 매우고 잡풀들이 쓸려 내려간다. 이렇게 한번식 바닥을 쓸어주고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된다고 한다. 내가 안양천을 지켜본 게 벌써 17년여가 되었는데 그 사이 안양천에 산다는 생물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전에는 하천 범람으로 상습침수구역도 있었으나 그 횟수나 정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서 수해가 났을 때, 나는 굽이치는 안양천을 보며, 저렇게 내버려두는 척 하는 것이 안양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양시정에 관해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안양천에 대한 시의 정책은 늘 동의하며 칭찬해왔다. 학생들에게 안양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안양천은 사실상 안양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들의 마을환경개선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안양천에 자꾸 뭘 만들어달라고 한다. 천변에 운동시설을 더 만들어달라, 조명을 더 밝혀달라, 길을 넓혀달라, 자전거도로를 확장해달라, 심지어 학의천과 쌍개울이 만나는 곳이 자전거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하거나, 공연장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저런 이야기를 멀쩡한 자리에서 듣고 있으면 4대강 사업은 이명박 혼자 추진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가뒀다 풀었다 옥죄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시민들의 요구를 다 반영한 게 수년 전 의왕시의 학의천 구간이었다. 학의천은 안양시 평촌동과 의왕시 내손동의 경계에 있다. 안양시와 의왕시의 경계에서 양쪽을 둘러보면 확연히 달랐다. 의왕시 구간은 반듯반듯하게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널직하게 구현되어 있고, 시민들이 모여서 공연을 보거나 운동을 할 곳도 많다. 이에 비해 안양시 구간은 투박해서 마치 방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구간을 지나는 시민들은 ‘안양시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시민들이 조명을 밝혀달라 하면, 물고기도 자야한다고 대답하고, 안양시의 자전거도로를 넓혀달라하면 자전거에서 나오는 분진도 안양천을 망치는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공직자들도 있었다. 올해들어 안양천에 경관조성을 한다고 조명을 만들어붙이고 번쩍이게 만드는 걸 보고 마뜩치 않았다. 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해명이 있었고 이를 반기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자전거 도로를 넓혀달라고, 공연장과 체육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계속되었다. 언젠가, 공무원이 질 것이다. 저렇게 자기 집 앞에 뭔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요하다. 언젠가, 공무원은 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생각했다. 지고 말 것이라고.
이번 폭우는, – 폭우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도 하지만 – 안양에도 피해가 있었다. 안심하고 있던 신축아파트단지나 저층 다세대, 빌라주택에도 물이 차 올랐다.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이고 그 안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수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해가 어찌 100% 자연재해겠나. 건들지 않았으면, 사람이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고 물길을 틀어서 도시를 만든다. 그 도시 안에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겠다고 선언하며 산 허리를 베어내고 물길의 무릎을 쳐냈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마구잡이로 자를 대고 죽죽 선을 그어 만든 도시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물줄기와 그나마 버티고 있는 나무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물은 때때로 넘쳐야 한다. 그게 자연에 속해있을 때는 그렇다. 그러나 물줄기를 꺾어 인간을 불러들였으면 넘치는 물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치수하고 정치할 일이다. 자연에 빌어 도시를 만들어 산다면 어두운 물가에 불을 밝히지 말 것이며, 나무의 머리통을 잘라내지 말 것이며, 산의 심장을 도려내지 말 일이다. 매일 매일 환경을 파괴하며 산다. 내가 도시에서 쉬는 만큼, 도시를 지키는 이 하천도 마땅히 쉴 권리가 있다. 지켜왔던 자존심, 생태하천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라도.
막상 회전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 문이 휙휙 돌아가는 리듬에 맞추려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 있는 우영우를 보면, 길을 막고 섰다고 화를 내며 슬쩍 밀치고 지나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이 땅은, 어설프고, 느리고, 둔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장애인 등급에 따라서가 아니고, 부족한 것, 느린 것, 어설픈 것을 쉽게 혐오한다.
이 사회에서는 어설프고, 느리고, 둔하면 쉽게 낙오한다. 이 나라에서는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혐오할 수 있다.
낙오자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데굴데굴, 굴러떨어질테니까, 그걸 잊고 살려고 간신히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너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굴러떨어지는 너를 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기억해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내야 하니까.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거, 어차피 다 빤히 아는데. 내가 갖고 태어난 게 이것뿐이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80정도인데, 어떤 놈은 노력하는 힘 자체가 다르게 태어나서 조금만 페달을 밟으면 1200까지도 간다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잊고 있는데.
내 앞에서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짓을 하면, 당신이 낭떠러지에서 곧 굴러떨어질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 못할 것이고, 이 무서운 세상에서.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 싹 다 잊고 버텨야 하는데.
왜 자꾸 내 앞에서 문 하나 똑바로 못열고, 왜 내 앞에서 계산대 위에 펼쳐진 물건을 빨리 빨리 주워담지 못하고, 왜 내 앞에서 길을 막고 서서,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죽게 된다고,
왜 자꾸 나에게 무서운 사실을 각성시키냐고.
그러니까,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당신을 미워하지 않지만, 혐오한다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그만큼 약하고 힘들고 애타는 사람들의 혐오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회전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존경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무해하지 않아도, 살아남으려면.
그러니까, 당신의 그 둔한, 어설픈, 느린 행동으로 이 세상의 잔혹함을 내가 다시 각성하게 만들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혐오하는 땅, 여기에, 갖은 모양의 구름이 보기 좋게 떠 있던 하루였다.
사람들은 구름을 보며 고래 모양을 찾는다. 고래를 찾으며 우영우를 떠올리겠지. 완전히 무해한 장애인 우영우.
문화도시 안동에서 개최하는 다채로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문화다양성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해온 생애사쓰기 지도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구분짓는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포럼을 통해 안동지역에서도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멋진 사례를 만났습니다. 초대해주신 문화도시안동에 감사드립니다.
포럼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긴 어려워 마무리발언으로 준비했던 원고를 붙입니다.
장애학연구자이자, 노들야학의 교사인 김도현 선생이 쓴 “장애학의 도전”에 보면, 우리가 장애를 별도로 분리한 것은 200년이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부 기능이 약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분리해낼 경우, 시내에는 누가 남을까요? 신체적으로도 아주 우월하고, 지적으로도 월등하고, 할 줄 아는 게 많은 팔방미인에, 건강한 사람들만 남겠죠.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을 쳐내면,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저도 쳐내질 겁니다.
지금 여러 곳에서 장애인투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여기 안동에 고속버스를 타고 올 권리, 또는 시설에 갇혀서 살지 않을 권리를 외치는 겁니다. 비장애인들은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기본권에 대한 것이죠. 내가 사는 지역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별로 안 보인다거나,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당연하다거나, 저상버스가 없는데도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거나, 내 자녀의 학교에 장애아동이 없다거나, 재활수영이 가능한 수영장이 없다거나, 영어로 된 간판이 줄 지어 있다는 얘기는, 차별이 만연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저출생, 끊이지 않은 산업재해 같은 게 있겠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 느낌은 모두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더라도, 국가가, 사회가, 내가 사는 이 고장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라는 신뢰, 그 확신이죠. 그런 확신이 보편적으로 퍼져나갈 때 사회는 안정되고 한국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큰 난관인 저출생의 문제도 해결되리라 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집이 되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장애의 역사”라는 책의 마무리에 나오는 말인데요. 이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국가는, 사회는,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는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나는 어제 저 장면에서 천장과 수납장 사이의 깨끗한 공간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저 공간은, 가정 내 청소를 전담하는 사람에겐 외면하고 싶은 공간이고, 동시에 죄책감을 안겨주는 공간이다.
저 위에 어떤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지고 기름떡이 지더라도, 사실 같이 사는 사람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저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정 내 청소와 수납을 전담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수납을 더 하기 위해서 여러 숨은 공간들을 파악하고 있다. 자리를 만들어 일년에 한 번 이상 쓰지도 않을 물건을 쟁여놓는데 선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물건을 처박을 공간을 알고 있다. 게다가, 물건이 들어차지 않은 공간이 1년 후에 어떤 꼬라지가 될 지도 예측할 수 있다.
저 공간이 저렇게 깨끗하다는 건, 하루종일 굽고 튀기고 찌고 삶는 그 음식의 증발물들이, 천장 위 곳곳까지 스며드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저 집안의 청소수납조리전담자인, 염씨네 가족의 엄마는, 매일 잠시라도 짬이 나면 저 공간까지 닦아내어 주부가 가질 수 있는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사람이었다는 증빙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출자가 굳이, 저, 기피공간을 저렇게까지, 저렇게 길게 보여줄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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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이 말해주는 것을 잘 볼 필요가 있다.
충실한 전업주부로 살아본 내 눈에는 온통 일거리다.
식탁보 위의 유리, 뜨거운 것을 올려놓으면 안되는 재질의 오래된 식탁을 쓰고 있을 것이고, 레이스로 된 식탁보를 쓴다. 의자의 등받이도 커버를 씌웠다. 저 커버는 누군가 한 번씩 꺼내서 빨아야 한다.
식탁 위에는 항상 물과 잔이 놓이는데 그 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또 노동강도가 달라진다 끓인 물인가, 안 끓인 물인가. 엎어놓은 컵은 컵의 재질에 따라 엎어놓거나 바로 놓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컵은 잠시만 엎어놔도 냄새가 난다. 그 아래 쟁반엔 늘 물때가 끼기 마련이라, 다 들어내고 쟁반을 닦아내는 것도, 누군가 할 일이다.
주방 앞 가벽에 있는 커튼, 저 커튼도 누군가 빨아야 하는 커튼이다. 냄새나고 기름때가 더덕더덕 묻기 마련이다. 벽에는 가족의 사진이 걸려있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가부장 아래 묶여 있다. 사진 오른쪽에 걸린 작은 수납장에는 각종 잡동사니, 비닐팩, 행주, 키친타올 같은 게 있겠지. 저 수납장 아래의 물건은 어수선하지만 질서가 있다. 담당자만 아는 질서다. 그 담당자. 주부. 검은 비닐, 흰 비닐, 작은 것, 큰 것, 한 번밖에 안 쓴 것, 한 번만 더 쓰고 버릴 것.
벽의 아랫단에는 최근에 유행하는 방열단열제가 붙어있다. 시트지로 된 건데 인터넷쇼핑몰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외풍이 심한 집의 맨 끝 벽에 잘라 붙이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가격대비 디자인도 괜찮은 편이다. 저 집의 단열은 저렇게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닥다닥 모여 사는 도시의 집과는 차원이 다른 추위가 있을 것이다.
천장과 벽 사이에 초록색으로 된 무언가가 덧발라져 있다. 틈새에 뭔가가 들어올까봐 막아놓는 수단으로 보인다. 바람, 비, 벌레 같은 것. 이 곳에서의 집안관리는 아파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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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동은 죽어야 끝난다.
돌봄노동이 대체로 그러하다.
이 지긋지긋한 인생, 내가 죽어야 끝나지, 니가 죽거나.
그렇게 해방된, 염씨네 가족의 엄마. 혜숙.
나는 그녀의 성도 모른다.
저 공간은 전생의 나에게 죄책감의 공간이었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그 삶을, 나는 이혼으로 종결했다는 게, 혜숙 씨와의 다른 점이겠다.
통영국제음악당의 콘서트홀은 1층에서 외부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마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을텐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외부 주차장에 대고 올라가느라 내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콘서트홀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니 주차장에서 올라오리라 생각했다.
약 3층 높이의 콘서트홀의 풍광은 꽤 멋졌다.
입장권을 늦게 예매한 탓에 표가 몇 장 없어 5층 객석을 예매한 것을 발권하고 나서 알았다. 객석이 5층씩이나 되나 싶어 엘리베이터를 찾았는데 객석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다.
입장권을 확인하고 있는 직원에게 5층까지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5층까지 걸어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고 내려올 때는 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말 연결 통로가 없느냐고.
이 직원은 없다고만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10년 넘게 관절염을 앓고 있다. 2층 정도는 불가피하게 계단을 쓰기도 하지만 에지간하면 계단은 피하는 게 내 건강에 좋다. 하루 5-6천보가 한계이고 1만보를 걷게 되면 다음 날 후유증이 오래간다. 반월상연골판 파열로 시작된 무릎문제는 연골이 닳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지고 남들보다 무릎 주변 근육을 훨씬 더 쓰기 때문에 피로도가 상당하다. 특히 제일 안 좋은 건 계단을 내려올 때 받는 충격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그러면 장애인과 노약자는 아예 입장 불가라는 말인가 싶어 황당해 하고 있으니 체격이 좋은 젊은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제가 관절염이 심해 5층까지 걸어갈 수 가 없어요.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줄 상상도 못하고 예매를 잘못했네요. 무슨 방법이 없겠어요?” 물었더니 이 직원은
“아.. 네 고객님. 저희도 그 문제로 민원도 많아 들어와서요. 문제긴 하죠. 저희도 시설 보완을 준비중인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아니 그러면 저는 공연을 못 보겠네요? 아니 국제음악당이라는 데가 어떻게 이렇게 설계를 하죠? 이건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도 되겠네요.”
라고 화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티를 냈다. 젊은 직원은 잠깐 침묵하더니 통영 억양이 섞인 표준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표를 바꿔보겠습니다. 1층에 잔여좌석이 있는지 살펴보고 바꿔드리면 어떨까요?”
이보다 좋은 제안이 있을 수 있나. 나는 반색을 하며 당연히 그러면 좋겠다고 고마워했다.
직원이 매표소로 들어가 한참을 안 보이더니 표 두 장을 가지고 나왔다.
박부가 직원이 나오는 걸 보고 다가가 표를 받으려고 하자 직원이 나에게 꼭 직접 설명을 드리겠다고 하더란다.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 그는 그 옛날 패밀리레스토랑의 직원처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 앉더니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시설 문제가 있어서 불편을 겪게 되셔서 죄송하고요. 지금 1층은 표가 없다고 해서 제가 2층 좌석을 구해봤는데 2층도 어려우실까요?” 라고 했다.
청년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얘기하는데 괜히 승질부렸다 싶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만 남겨서 “아닙니다. 2층은 제가 갈 수 있어요. 2층 정도는 괜찮습니다. 선생님 배려해주신 건 제가 꼭 기억할게요. 선생님 잘못은 아니죠. 건물 설계를 잘못한 건데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그가 가져온 표 두 장과 내 표 두 장을 바꿨다.
공연장은 사진과 같다. 5층은 아니고 4층이었을거다. 통영의 숙소들도 4층이 없었다. 아직 4자를 쓰지 않는 거다. 2층의 객석도 2층에 도착하면 반층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영화관도 그렇듯이. 
공연이 끝나고 나는 어셔에게 휠체어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맨 앞이나 맨 뒤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대답했다.
오늘 공연은 2층 합창석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객석에 앉아 휠체어없이 밖을 다닐 수 없는 내 친구를 생각했고 의족을 쓰는 지역 선배를 생각했다. 다리가 휠대로 휘어 서 있으면 양쪽 다리가 마름모를 만들던 통영활어시장의 회뜨는 할매도 생각했다. 뇌병변을 앓거나 뇌성마비가 있거나. 당장 이 자리에 있다면, 나와 같은 일을 겪을 사람은 떠올려보면 한 두명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도로를 파고 통신회사의 데이터센터로 가는 전용 전선을 묻고 있었다. 작업시간은 5시까지인데 이미 6시가 넘었다. 길은 어두워졌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시작되면서 사거리는 붐볐다. 이들은 사거리의 한갈래, 왕복 5차선 도로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전선을 묻고 땅을 다지던 롤러가 잠시 멈췄다. 롤러 옆에는 주황색 안전고깔이 있었다. 고깔이 롤러의 바퀴에 끼었다. 운전자는 잠시 내려 고깔을 빼내려고 롤러의 기어를 중립에 놓았다. 운전자가 롤러에서 내리는 순간 옷깃에 기어가 걸렸다. 롤러는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했다. 운전자는 롤러에서 떨어졌고, 롤러 바로 앞에 있던 노동자 세명이 그대로 치였다. 세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지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번의 사고는 수차례의 메시지를 보내 경고한다. 읽지 못했거나, 읽지 않았을 뿐이다.
1. 안양에서 도로포장공사를 하던 인부 셋이 기어가 풀린 롤러에 깔려 숨졌다. 운전자는 p단에 기어를 놨는데 옷깃이 걸리며 기어가 풀렸다고 했다. 옷깃에 기어에 끼이는 일은 승용차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승용차는 그렇게 쉽게 기어가 바뀌지 않는다. 하물며 공사현장일을 하는 장비차가. 급발진했다고 한다.
2. 윤석열이 뭐더러 거기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주 52시간이 짧다고 개소리나 지껄이던 자가, 사람이 셋이나 죽은 자리에 나타나 했단 말도 가관이다. 시동을 끄고 내렸어야 한다. 운전자의 책임을 묻는 말이다.
3. 나는 사망사고에 대해 좀 의아했다. 막힌 공간도 아닌데 세명이 미처 몸을 피할 시간도 없었다는 얘기라, 그 구간이 경사가 가파른 것도 아닌데, 뭔가 다른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4. 재해를 불러온 사고의 책임자는 이럴 경우 발주자인가 시행사인가. 사고현장인 안양시는 발빠르게 현장확인을 하고 해당구청에 대책반을 설치했고, 수장인 시장이 누구의 책임을 묻기전에 송구하고 안타깝다며 장례식장을 찾았다. 좋은 태도라고 본다. + 발주자는 LG U+. 지난 가을부터 안양 전역에 통신선을 다시 깔고 있다. 생각해보니, 가을에 우리 사무실 부근에도 저 공사를 한 적 있다. 내 사무실 근처에 공사 하러 왔던 이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5. 오래 전에, 난곡을 깎아지은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경사가 가팔라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경사진 아파트입구에 열선을 깔다가 비슷한 인원의 사람이 죽었다.
6. 지금 나의 동거인은 조선소와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조선소에서 용접불똥에 불이 나서 배 안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죽은 이야기, 제주도의 모 리조트 건설시 사람이 죽은 얘기를 가끔 한다.김포의 신도시를 짓다가 시행사의 하청업체가 2인 1조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현장일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거기였다.
7. 안양 사고 현장에 윤석열이 나타났다는 속보에 이어, 강서구 아파트에서 창틀을 교체하던 40대와 30대 인부 둘이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떴다. 예전에 아파트 외벽 청소를 하는 과정을 보고 관리사무소에 항의를 한 적 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발주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아파트건설사이고 시행사가 하청을 준 것이라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변명했다.
8.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사이트에는 매일 무수한 사고의 기록이 올라온다. 오늘 하루만 해도 다섯 건이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공동현관이 통유리로 된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항상 통유리창과 복도를 반짝이게 닦아놓는 미화원에게 비타500을 한 병 건넨 적 있다.
그는 음료수병을 들고 울먹거렸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청소하는데 물 펑펑 쓴다고 방금 입주민에게 욕을 먹었다고 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드냐고 물었지만, “우리가 쓰는 물은 지하수인데…..”라며 그는 울먹이기만 했다. 그 아파트는 비싸고 넓은 평수를 자랑했다. 반상회는 없는데 골프동호회가 생긴 아파트다. 그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는 지하에 있었다. 내가 그 아파트에 7년을 사는동안, 7년동안 근무한 직원은 늘 지하에 있었다.
모든 아파트에는 청소/미화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평일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로 근무하고 토요일에 출근하는 곳도 있다.
한달 급여는 100만원에서 140만원 수준. 휴게시간은 하루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다.
주로 청소하는 곳은 계단과 복도, 엘리베이터지만 아파트 화단의 잡초를 뽑거나 분리수거를 돕고, 지하주차장을 청소하는 일에도 동원된다.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비가 오면 미끄럽지 않게 헌 카페트 같은 것도 가져다 깐다. 이 업무는 원래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다.
오래된 아파트의 계단마다 끄트머리에 반짝이는 금색테를 본 적 있는가? 그것을 신주라고 부른다. 신주는 아파트미화노동자들의 오래된 골칫거리다. 관리자가 이 신주가 반짝이는 걸 원하는 경우, 틈새에 낀 이물질까지 죽어라고 닦아내야 한다. 최근엔 신주전용 청소기가 나왔다는데 모든 아파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월 급여 100만원 남짓. 이들은 밥 사먹을 돈을 아끼기 위해 휴게실에서 밥을 지어 각자 반찬을 가져와 먹는다. 코로나때문에 모여서 먹지 못하고 둘 셋씩 분리해서 먹어야 하지만, 그 시간도 공간도 여유롭지 않다.
주차장의 배관의 끝에는 비밀스러운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노동자들이 누워있다. 고된 노동 중간 잠시 쉬는 사이, 이들은 지하주차장에 눕는다. 시멘트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유리섬유에도 노출되어 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스며들어오는 곳에서 고소한 밥을 짓는다.
사진은 경기중부아파트노동자협회의 활동가가 경기도 보조금으로 진행하는 미화원 간담회와 실태조사를 거치며 찍은 것들이다. 활동가들이 둘러본 내용을 정리해 적는다. 과천, 군포, 의왕, 안양의 아파트들이 대체적으로 이렇다. 주워온 소파, 주워온 냉장고, 주워온 선풍기가 지하주차장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경기도의 예산으로 경비원 휴게실 개선사업이 시작되었으나 미화원 휴게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청소, 미화노동자들이 꼭 가난하고 불쌍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아니다. 기업출신도 있고 공무원 출신도 있다. 평촌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노동과 노동사이 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내가 쉬고 싶지 않은 공간에서 타인에게 쉬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것은. 공.정.하.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