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 노인생애사

결혼은 아버지가 소개해 준 사람이랑 했다. 막상 결혼해서 시댁에 가보니 너무 가난했다. 집이란 게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갈 형편이었다.

서울에 정착하기로 했다. 서대문 앞에 살았다. 거기서 아이들 사남매를 키웠다. 홍제동 꼭대기에서 아침에 밥을 먹고 출발하면 서대문 독립문 앞에서 수돗물을 받을 수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가서 물을 길어서 집까지 걸어오면 점심시간이 넘은 오후 2, 3시였다. 매일 매일 사는 게 너무 고단했다.

돈을 벌어야 하니 아들을 업고 학교 옆 축대 옆에서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보수적이라 내가 밖에 나가 장사하는 걸 알리지 못했다. 나는 장사해서 번 돈으로 시골에 소를 한 마리 샀다. 소가 커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커서 또 소를 팔면 큰 재산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막내딸이 돌도 안 되었는데 애 아빠가 병이 들었다.

입원을 해서 2년간 병원생활을 하니 샀던 소도 팔아야 했다. 막내는 퇴원해서 돌아온 제 아빠를 못 알아보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동네에 이집 저집 놀러 다니며 “우리아빠는 몸이 아파서 집에 있어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남편은 이후로도 일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굶겨 죽일까봐 매일 매일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살았다. 힘들어도 힘들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학교 앞에 애를 업고 쭈그리고 앉아 장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엄두도 안 난다.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게 되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다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10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남은 건 빚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생선도 팔고, 파출부도 다니고, 청소일도 했다. 돈 버는 일은 다 했다.

*서울 모복지관 강모노인의 생애사 중의 한 토막.

이 분은 한글을 뗀지 얼마 안되어 글자가 많이 틀렸지만 수업 중에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재구성하고 있다. 아이들이 굶어죽을까봐, 학교 못 갈까봐. 그게 제일 두려운 일이었다는 말, 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살았다는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월요일엔 생애사쓰기

 

바늘을 가지고 하는 짓이니 바늘질이라고 썼을 뿐이다.
않다, 에 왜 ㅎ이 붙는지도 이해할 수 없고, 돼와 되는 왜 꼭 그렇게 다른지. ㅋㅌㅍㅎ은 별로 발음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ㅋ이 붙으면 어렵다. 부억은 왜 부엌이라고 쓰는가, 갔다, 왔다, 했다에는 꼭 쌍 시옷인가.
나는 휴대폰을 열어 “한국인이 잘 헛갈리는 맞춤법”을 찾아 왠지, 웬지, 돼, 되, 않고, 습니다, 읍니다, 를 설명해나갔다.

“한국어는 주어와 서술어로 되어 있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요.
했어. 라고 해도 알아듣죠. 하지만 내가. 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묻죠. “왜 말을 하다 말아?””
할매들이 웃었다.

선생님, 이라고 불렀더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지청구를 들은 다음 나는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학생여러분, 이라고 하면 활짝 웃는다. 월요일 생애사쓰기 수업시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은 한 문장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힘들어했다. 글쓰기가 어려워서라기 보다, 나는 목울대까지 꽉 차오른 이야기들이 아우성이라 그렇다고 느낀다. 말 나올 곳은 한 곳인데 수백가지 것들이 튀어나오려 겨룬다. 나는 송창식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아 에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너무 많은데. 할매들이 웃는다.

그새 혼자 부지런히 글을 써 온 사람들이 노트를 내민다. 한 분은 일기장이라며 초등학생 노트 네 권을 비닐에 담아왔다. 나는 이번 주에 이 글을 읽을 예정이다.

살아온 이야기들이 대부분 비슷하다.
이 교실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저학력의 여성노인들은 비슷하게 살았다.

어릴 때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가 보내주지 않았다.
집에서 동생을 보거나 조카를 돌봤다.
오빠가 장가를 들면서 올케언니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조카를 줄줄이 낳고 올케언니를 도와야 한다고 막내인 나를 학교 보내지 않았다. 혹은, 전쟁통에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유복자를 낳았는데 엄마가 일을 하러 가야 하니 막내를 업고 혼자 울었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나무를 하고 나물을 캤고, 목화솜다래를 뜯어먹었다.
참외나 복숭아서리도 했지만 늘 배가 고팠다.

집에는 늘 어쩔 수 없는 가족이 있었고 스무살이 갓 넘어 결혼을 한다.
얼굴 한 번 안 본 사내의 집으로 간다. 결혼 전에는 시집만 가면 팔자 펼 것처럼 어른들이 얘기했지만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사는 장남이거나, 참전용사다. 집안에는 상이군인이 있거나 알콜중독자가 있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거나, 고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술을 마신다. 식구가 많으면 열 둘 정도 되고, 아침에 일어나 새벽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 점심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농사일을 하고 나면 저녁을 차려야 한다.
남편은 잘 지내다가 어딘가에 몰입한다. 밖으로 나도는 남자들은 도박을 하거나 여자를 찾아 다닌다. 집안에 머무는 남편들은 이유가 있어서 때리고 이유가 없어서 때리거나, 집안에서 술을 마신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아이는 들어서는데, 한 둘쯤 뱃속에서 죽거나, 태어나서 죽는다.

살자고 집을 나오거나 살자고 남편과 헤어진다. 또는 술에 쩔은 남편이 먼저 죽기도 한다.
아이들과 살다가 연탄가스 중독 사고를 겪고, 아이들 중 한 둘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살아보려고 갖은 일을 다 한다. 파출부도 해보고 행상도 해보고, 청소일도 해본다. 직장을 구하면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고 도시락을 대여섯개씩 싸고 버스를 타고 새벽일을 나갔다.

다 늙을 때까지 같이 사는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은 이제서야 빨래도 좀 하고, 밥도 가끔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제 밥벌이 하며 살고 손주들도 잘 자란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옛날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한다.

패턴이다.
목화솜다래, 어린 동생을 업어 키우는 일, 학교를 못 가는 일, 배가 고팠던 것, 억울하게 죽은 가족,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 알콜중독, 도박중독, 연탄가스, 파출부, 행상, 내 가게.

일할 곳이 없던 여성들이 세월을 견뎌온 일.
그나마 어찌저찌 집 한 칸 마련하고 지금은 공부하러 다니니 좋을 것 같지만 공부하러 오는 것도 매번 부끄럽다.

저기에 가면 국문을 깨쳐준다는데, 이 동네에서 30년을 살아서 내가 글자를 모르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다들 내가 여고 나온 줄 아는데 행여 나 때문에 아이들이 망신당하지 않을까, 아직도 쩡쩡한 시댁식구들이 창피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말할 수는 없어. 그런데 말하고는 싶어. 그러니까, 선생님만 보셔. 내가 다음 주까지 써올테니까.”
“저는 비밀을 많이 간직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시간이 있다면 한 사람마다 10시간씩 이야기를 들어도 부족할 판이지만, 글쓰기 수업이니까, 어떻게든 한 문장이라도 써보자고 한다.
힘들다고 얼굴이 울상이 되고, 손이 떨려서 쓸 수가 없다고 해도, 다 괜찮으니까 한 번만 써보자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이런 것도 써보네요.”라고 맨 앞줄에 앉은 분이 말했다.
“저도 많이 배워요. 그리고 저는 돈도 버는 걸요.” 라고 말했다.

학교를 못 가고, 공부를 못 한게, 억울하다면 모를까.
왜 자꾸 부끄럽다는 걸까. 속이 터진다.

 

2019.7.2.

[생애사쓰기] 목화솜 다래

– 나는, 아버지 어머니 잘 몰라요.
어려서부터 남의 집 살이를 해서, 그냥 사방 팔방으로 떠돌아 다니느라. 그래도 잠깐 우리 집에서 살 때가 있긴 했지. 나는 그나마 우리 큰 이모하고 좀 친했고. 식구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도 없고, 그래서 사촌집으로 갔는데 우리 사촌 오빠가 그렇게 나를 때렸어요. 뭐 달라고 해서 안 해준다면 때리고 그렇게 걸핏하면 나를 때렸어요. 오빠한테 맞으면 이웃집 언니한테 갔는데 그 언니가 나한테 참 잘 해줬어요. 언니네 집에 뒷방이 하나 있어요. 거기 숨어 있으라고 하지. 그러면 언니가 고구마 같은 거 삶아 주고 그랬어요. 그러다 그 언니 엄마한테 걸려서 욕 먹고 그랬죠. 왜 자꾸 쟤 받아주냐고.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그래서 열 한살에 제주도를 나왔어요. 나와서 내내 남의 집 살이하고.

– 전쟁이 전쟁이.. 우리 엄마가 막내를 전쟁통에 낳았어요. 내가 그 때 여덟 살이었고. 우리 엄마는 산후조리고 뭐고 없었어요. 그냥 한달만에 일을 나간 거예요. 그러니 애기를 어떻게 해. 내가 봐야지. 내가 애를 업고 다니느라, 나도 앤데, 여덟 살짜리가 애를 업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 손가락 가운데 마디가 퍼렇게 멍이 들어. 깍지를 하도 껴서. 포대기고 뭐고 애기띠도 없죠. 내가 그때는 엄마 원망을 많이 했는데, 나도 이제 우리 엄마 돌아가실 때 나이가 됐단 말이죠. 이제 나도 곧 엄마를 만나러 가겠지. 그러면 내가 가서 엄마하고 또 잘 살아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 나는 우리 집이 그렇게 못 살지도 않았어요. 가끔 쌀밥도 먹었단 말이죠. 그런데 왜 나를 학교를 안 보내줬을까.
위로 우리 오빠가 하나 있고 언니가 둘이고 내가 막내딸인데, 우리 아버지가 난봉꾼이라 내가 두 살때부터도 집에 없었어요. 계속 딴살림을 했어요. 언니는 둘 다 여우고 오빠가 이제 장가를 가서 집에 들어왔어요. 올케언니랑 오빠랑 나랑 우리 엄마랑 사는데, 오빠네 조카가 여덟이예요. 애기들을 볼 사람이 없다고 나보고 애를 보라고 했어요. 내가 조카들을 키우느라 학교를 못 간 거예요. 나도 학교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우리 오빠가 했던 말이 너무 가슴에 남아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학교 가고 싶으면 니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하라고. 그 말이 나는 너무 슬펐어. 왜 나한테 그랬는지.

– 우리 언니는 수단이 좋았어. 어려서부터 자꾸 어디서 그렇게 쌀을 퍼와. 그럼 그거 가지고 엿 바꿔먹으러 가지. 쌀뿐이 아니야.아무튼 뭘 그렇게 어디서 가지고 왔어.
나중에도 잘 사셨겠어요.
어 잘 살았어요. 그 딸들도 잘 살고요.
지금도 계세요?
우리 언니 치매걸렸지.

자꾸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들 한다. 글이 맥락이 안 맞는다고 답답해했다. 모두들 쓰다가 학교 못 간 억울한 이야기로 빠져나간다. 복숭아 서리, 수박 서리, 먹고 살만한 제일 부잣집 밭에서 한 두개쯤 가져와도 괜찮던 시절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얹어주는 공유의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목화솜이 되기 전에 먹으면 아주 맛나다고 했다. 내가 아카시아 진달래 사루비아는 먹어봤다 했더니 그런 거보다 훨씬 맛나다고 했다.

수업을 하면서 나는 눈가가 자꾸 뿌얘졌다.
목울대까지 차오른 학교 못다닌 서러움을 언제 풀어야 할까.
가계도를 그리고 생물학적 가족사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남의 집 살이”를 했다는 사람이 다섯 명 정도 되었고 “애보개” 하느라 자기 집에서도 살림살이를 했던 사람도 서넛이었다.

“글만 쓰면 눈물이 나.”
어쩌면 그건 글의 내용이나 지나온 세월에 묻힌 많은 이야기와 동시에, 한 글자 두 글자 꾹꾹 눌러 적으며 “내 이야기”를 써보는 것에 대한 애닮픔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019. 6. 10.

[생애사쓰기]성수종합사회복지관 수업을 시작하며

내일부터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 초등문해교육을 마친 어르신들과 생애사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초등문해교육을 마친 분들과의 수업은 처음이라, PPT를 손 보다가 접었다. 대신 다음과 같은 프린트물을 만들었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복지관에서 붙인 프로그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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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보내는 편지>> 수업에 함께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글쓰는 사람 이하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 번, 여러분과 만나게 됩니다.

저는 2013년부터 어르신들 뿐 아니라, 중년층, 장애인가족들과 함께 생애사쓰기 수업을 해왔습니다. 생애사라는 것은 나의 삶을 돌아보는 역사를 뜻합니다. 이 수업을 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울고 웃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 순간도 어렵지 않은 날들이 없었고 쉽게 지나간 시절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이룬 게 없다.”
“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모두 허무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한 성공한 삶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가난은 왜 부끄러웠을까?
우리는 역사에서 늘 비껴나 있었을까?

우리 모두는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다고 믿습니다.
특히 자기 삶을 쓰겠다고 모이시는 분들은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꽃을 키우듯 일궈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이제 열 번의 수업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우리 삶의 아름다운 고갱이들을 캐내 보겠습니다. 생애사쓰기 수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9.6.3.

[생애사쓰기]가난이 부끄러워서

“노조활동 한 적 없어요. 어용이었어요.”

수요일 생애사쓰기에 참여한 60대 여성의 말이다. 써온 목차에 “노조활동”이라 써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물었을 때였다.

“무슨 노조를 했겠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어요. 재첩 따고 다시마 걷으면서 살았어요. 그게 너무 고되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공장이 얼마나 좋았는데요.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 돈이 나오는데요. 왜 노조를 합니까. 짤리면 방법이 없어요. 돈 벌 데가 없는데요. 거기 사무실 가면 회의한다고 빵도 주고 음료수도 줘요. 그냥 앉아있다가 오는 거예요. 쉬고 좋잖아요? 그렇게 지냈어요. 어용노조하면서. “

이 사람의 글은 서늘하다.
세상을 뒤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묻어났다. 한 발 뒤에서, 언제나 객관화해야 한다는 삶의 강박이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흔적이다.

… 선생님, 이렇게, 누구 편을 들어서 같이 화내주고, 불합리하지만 내 사람이라 편들고, 뭐 그런 거 잘 못하시죠?

이 수업의 수강생들은 자꾸 나보고 점쟁이같다고 한다. “어머 다 들켰네.”라는 게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내 질문을 받은, 재첩 따는 게 힘들었다는 그 분은
“맞아요. 저는 끊임없이 저 자신을 담금질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아들에게 크게 혼이 났네요. 제가 편을 안 들어줬어요. 엄마는 왜 매번 그런 식이냐고. 아주 그냥.. 아주 크게 혼쭐이 났어요. 안 그러려고 노력해요. 잘 안되네요.”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요. 저도 좀 그런 편이거든요.

나는 수업을 마무리하며 김은화 씨의 책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표지 뒷 면을 읽어내려갔다.

“이건 책을 만들 때 투자한 사람들에게 먼저 보내주는 건데요. 음.. 이런 내용입니다.
공장노동자부터 요양보호사까지, 40년간 가족을 먹여 살린 어머니의 삶을 딸이 인터뷰하다, 라고 써 있어요. 그런 내용이고요. 제가 좀 읽어볼게요.

‘엄마는 마치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새벽 6시면 일어나 할아버지 밥상부터 오빠 도시락까지 하루 열 끼를 챙겼다. 아침 9시에 집 앞의 물류 회사로 출근, 저녁 6시에 돌아오면 밥 먹고 설거지하느라 바빴고, 새벽에는 근육통으로 끙끙 앓았다. 주말에는 빨래하고 장 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육십을 넘겨 말했다. 자기는 인생에서 이룬 게 없다고. 도대체 엄마의 노동은 무엇이었을까? ‘ “

재첩이 지겨웠던 그 분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들, 지금은 평촌에 집 한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글에서 “가난의 부끄러움”을 매번 느꼈다.

이날은 내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요. 가난이, 왜 부끄럽죠?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몇 주째, 선생님들이 써 오신 글을 보면 공통된 게 있는데요, 가난이 부끄러웠다. 가난해서 부끄러웠다, 거든요. 근데,이 가난이, 누구를 속이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 내가 도박이나 술에 빠져 가족들이 일궈놓은 것을 하루 아침에 날렸거나, 그래서 생긴 가난이 아니잖아요? 어린 데도 일을 했고, 모든 식구가 나가서 일했는데도 가난했던 거잖아요?
그러면, 음… 부끄럽기 보다 ‘화가 난다’면 모르겠는데, 대체 이게 왜 부끄럽죠? 우리는 왜, 언제부터,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했을까요? 왜죠?

저도 가난했을 때가 있었는데요.
저는 화가 났거든요. 선택에 제한을 받으니까.
부끄럽진 않았어요. 어쩌라고, 열심히 하는데. 하루종일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걸.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가난한데 어쩌라고.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부끄러울 수도 있지.
굳이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 부끄러움이 죄책감이 되거나,자기 삶을 비하하는 일이 되지 않길 바라서였다.

눈물을 싹 닫고 일어선 재첩 이야기의 그 분은 서*이 씨. 글 뭉치를 나에게 내밀며 원고를 좀 봐달라고 했다.

이 수업의 내 강사비는 두 시간에 7만원.
담당자에게는 첨삭지도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어쩌겠는가.
서*이 씨의 이야기는 안 읽어볼 수가 없는 걸.

*
수업 전후 준비와 지도에 10시간이 넘게 드는 이 수업은 평촌도서관에서 주관한다. 안양시 평생교육원 기준으로 강사비를 책정하며, 경력과 저서에 무관하게 시간당 30,000원으로 책정했다. 내가 초등학교 수업보다 강사비가 형편없다 했더니 담당자는 시간당 30,000원인데 그보다 높지 않냐며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여름이 낮아질 때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기록

– 선생님, 이제 우리 가르치려면 큰 일 났어요.
– 아주 속이 터지실거예요.

어르신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 아이고 선생님이 엄청 젊으네.

팀장이 지원서류와 저작권동의서를 묶은 종이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빠르게 지원서류를 훑었다. 1931년생부터 1952년생까지, 무려 20년이나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르신”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노인 수업을 할 때마다 이런 것들이 꺼림칙하다.

베트남 참전용사가 자유총연맹을 가면 625참전용사들과 세대차이가 나서 너무 힘들다고 했던 얘기를 기억한다.
1931년생이면 해방 때 이미 알 거 다 알고 기억할 거 다 기억하던 사람이고, 1952년생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만 기억할터였다.

모두 얼마 전에 초등교육과정을 마쳤다고 했다.
준비해 간 오늘의 교육자료를 나누자 모두들 입을 달삭이며 소리내어 읽었다. 참가자들은 오전 10시부터 모여 2시간동안 한글교실 수업을 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점심도 굶고 연달아 4시간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초등교육과정을 끝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며 정말 훌륭하십니다, 라고 말하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주책없이 솟구치는 것들이 있다.

PPT에 담았던 내용을 모두 입으로 풀었다.
– 그렇게 하면 선생님이 너무 힘드실텐데.
맨 앞에 앉은 분이 말씀하셨다.
– 저를 좀 보세요. 에너지를 좀 써야할 것 같지 않으신가요?
할매들이 와르르 웃었다.

더듬 더듬 글을 읽는 사람들의 출석도 부를 겸 내가 써 간 글을 한 문장씩 돌아가며 읽었다. 더러 더듬거렸고 더러 틀렸다. 어느 정도의 문해력인지, 어느 정도의 글쓰기가 가능한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글 잘 쓰는 사람은 종이를 앞에 두면 마구 휘갈겨 써내려 갈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조선 – 기록의 나라에서 시작해, 민간의 기록이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시니어들의 삶의 노하우가 축적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대통령의 재임순서를 나열하자 받아 적는 분도 있었다.
나는 원고지를 나눠주고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권했다. 30분 정도 걸렸는데 대부분 원고지 1매를 못 채웠다. 기본 글쓰기의 순서가 전혀 안 잡혀 있었다.

– 자, 선생님들, 저를 보세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시자고요.
누구나 종이를 받으면 당황해요. 하루종일 소설을 쓰거나 글을 쓰는 작가들도 빈 종이만 보면 도망치고 싶습니다. 한 번에 후다닥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못 봤어요. 맞춤법, 띄어쓰기, 작가들도 모두 힘들어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죠? 틀려도 된다. 맞춤법 틀리면 어떻게 할까요? 네. 고치면 돼요. 띄어쓰기 틀리면 어떻게 할까요? 네, 고치면 됩니다. 대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연습을 해봐요.
일단 생각을 먼저 하는 거예요.
상상을 해보시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모두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우리 엄마도 안 해줬던 거, 우리 아버지도 못해줬던 거, 내 동생, 내 자매, 내 자식, 남편, 아무도 못해줬던 거, 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친구 한 명.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없어. 라는 뇌까림도 들렸다.

네 없어요. 없죠. 그런 사람은 없죠.
그러니까 상상의 인물을 하나 만들어봐요. 다 되는 사람 딱 하나 있다고.
“글을 쓰면 되겠네요.” 한 사람이 말했다.

– 네,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구요. 그래서 하나씩 이야기의 순서를 정해보는거예요. 어떤 이야기부터 할까?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죠? 이야기의 순서를 잡아보죠. 메모를 하는 게 좋은데, 꼭 글자로 메모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림도 되고, 기호도 괜찮아요. 나만 알아보면 돼요.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서 한 문장씩 쓰는 겁니다.

그런 사람 없지.
그런 사람이 어딨나.
그 말이 귀에 남았다.
엄마 또래인 참가자들이 “선생님 강의가 정말 정말 재미있네요. 아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라고 환히 웃어주었다. 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고개를 꾸벅 숙여 맞절을 했다.

수업 시간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려웠다. 평촌도서관부터 나는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Mr의 의미로 선생을 붙인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배라는 말보다는 그 말이 좋다. 여성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머니인 것은 아니다. 혹시 자식을 먼저 보냈으면, 뼈 아플 말이기도 하다.

– 글쓰기를 하시다가, 어느 날 도저히 못 쓰겠고, 눈물이 그치지 않거든, 여기 복지관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상담을 받으셔야 해요. 누구나, 그런 거 하나쯤 있잖아요. 평생을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거. 있으시죠? 한 두 개쯤 있으실거예요.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글을 쓰시다보면 그게 떠오를 거예요. 정신력이 강하고 나약하고가 아닙니다. 그냥 내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잘 봐야 해요.
겨우 빠져나온 웅덩이가 있어요. 동굴이 있고, 무시무시한 바위가 있었어요. 잘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그게 떡 하니 내 길을 막을 거예요. 그 이야기가 내 뺨을 막 때릴 거예요. 그럴 때는 잠깐 쉬고, 그 동굴을, 바위를 가만히 보세요. 내가 이걸 다시 잘 볼 수 있나. 생각하셔야 해요. 내가 중간에 그만두면 선생님한테 미안하니까, 복지관에 미안하니까. 아뇨.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여기서 두 시간동안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는 나 자신만 생각하세요. 이기적으로 하세요. 숙제 안 해서 선생님한테 미안하다,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쉬는 시간에는 오십이 넘도록, 육십년을 살도록, 글자를 쓰지 못해서 남편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살았노라고, 은행도 피해다니고 관공서도 피해다녔다고, 멋지게 생긴 참가자가 말했다.

나는 칠판에 글을 네 줄 썼다. 이런 식으로 써보시죠 오늘은.
땡땡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그렇게 잘 헤쳐왔니. 나는 내가 너무 기특하고 예쁘다. 고맙다. 땡땡아. 이제 여기서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글로 한 번 써보자!

나는 참가자들이 쓴 원고지를 모두 걷어 집으로 가져왔다. 10회의 수업이 끝나는 날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10번은 충분하지 않지만, 태양이 더 뜨겁고 낮게 내려오는 이 여름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시원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수 십년을 글자를 쓰지못하고 읽지 못한 삶의 무게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문맹율이 기록적으로 낮은 나라에서 이 사람들은 수 십년을 모른 채로 버텼다. 반지하 방의 푸념따위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동화로 쓰는 생애사 – 9월 4일의 기록

“나 고등학교 때” + 화난 얼굴 행복한 얼굴
수업 10분전, 대부분의 학우들은 그 정도 시간에 들어온다. 담당 복지사도 10분 전에 와서 오늘 결석자를 알려준다. 복지사 선생님과 한 청년이 같이 들어왔다. 건강하고 잘 생긴 청년이다. 자원봉사 선생님이라고 복지사샘이 알려주니 갑자기 교실에 환호성이 터졌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쑥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상민 씨가 일어나서 자기 소개를 하고 싶다고 했다. 편한대로 해도 된댔더니 춤으로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서 승민 씨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줬다. 씨스타의 Ma Boy라는 노래였다. 승민 씨의 춤은 동작이 조밀하지 않다. 전체적인 동작을 크게 확장하여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 미세한 움직임은 잘 표현하지 못해도 충분히 흥이 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오히려 육감적인 동작을 표현하지 않아서 보는 나도 덜 쑥스러웠다. 승민 씨가 춤을 추고 나자 수정 씨도 춤으로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나섰다. 수영 씨가 자기 노래를 부르고, 채영 씨는 어린이 찬양인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혜은 씨는 다들 노래를 한 소절씩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혜은 씨도 노래 하겠냐고 물었더니 가스펠 곡 하나를 골라서 말해주었다. 나는 유투브와 음악 스트리밍 앱을 번갈아 열어가며 노래를 틀었다.
수영 씨가 작곡한 곡중에 “봄바람”이라는 곡이 있는데 나는 이 곡이 참 좋다. 재능 있는 누군가 수영 씨의 곡을 유명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그게 또 좋은 일일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여기 저기 알려보고 있다.
새로 온 자원봉사 청년에게 자기 소개를 하겠다는 의미는 채영 씨 차례에서 무색해졌다. 누군가를 위한 소개가 아니라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 어떤가. 글 쓰기 시간이라고 글만 써야 하는 건 아니다. 노래도 괜찮고 그림도 괜찮다. 울고 웃으며 수다를 떨며 한 시간을 보내도 상관없다. 생애사 쓰기의 의미를 나는 자기 표현하기라고 본다.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넘어가기 위해선 마음의 고갱이를 깊이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여러 명이 같이 한다면 서로를 표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학우들이 춤으로 노래로 자기 표현을 하는 걸 보니 흐뭇했다.
지난 주에 썼던 글은 중학교때 이야기, 오늘은 고등학교때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다른 생애사쓰기는 생애주기별로 하나씩 훑어 나가지만 여기는 이야기의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게 약간 어려워서 단편적으로 끊어서 진행한다. 옛 기억을 꺼내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면이 있다. 비장애인들이나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기 기억을 재구성해 이미 스토리로 만들어 머릿속에 저장해둔다. 수시로 그 에피소드를 꺼내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주목을 끄는데 익숙하다. 인터뷰를 많이 해 본 사람들이 가진 특성이 이런 것인데 자기 서사가 확실해 오히려 그 안에서 한계가 생기는 경우다. 여기서 한 얘기를 다른 데 가서도 하기 때문에 우물처럼 고여버린 서사가 있다. 그 틀을 깨는 질문을 던지면 당황하고 그럴 때 자기 세계의 균열이 일어나는데 어떤 이들은 균열을 두려워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진지하게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자폐와 지적장애의 특성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어렵지만 여기도 분명 자기 서사가 있다. 고정된 서사를 깨는데 비장애보다 어려운 면이 있다. 자폐가 있는 학우들은 자기 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고 내가 그 틀을 깨려고 망치를 들고 덤빌 일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흐름을 타는 정도면 충분하다. 수영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인데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최선규 아나운서나 90살이 되어도 더 멋진 노래를 만들거에요, 최선규 아나운서와 듀엣을 할거예요. 라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은혜 씨는 수현 씨와 다른 서사를 보이는데 은혜 씨의 서사는 다 독립적이다. 본인이 겪었던 불쾌한 정서가 모든 서사를 관통한다. 반짝이는 흰 바지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
학우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혜은 씨도 비슷하다. 각자 일종의 테마를 가진 셈인데 혜은 씨는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어.”, “기분이 안 좋아 아침에 울었어.”가 자신의 테마다. 매번 이 문장이 들어가고 아마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추측할 뿐이다. 혜은 씨에게는 불안이 느껴진다. 세상만물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모든 것들이 쉴 새없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 역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건 아닐까. 작동하기 위해서. 지구가 뱅글뱅글 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인간은 불안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기현 씨는 자원봉사선생님이 딱 붙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나가게 도우니 긴 글을 쓸 수 있었다. 계속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랬냐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사회복지학과 전공학생이거나 자원봉사를 오래 해 본 청년들인데 숙달된 경험이 있어서 나도 많이 배운다. 자원봉사자들도 사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보이긴 하지만, 타인의 마음의 문을 열어 열쇠 하나씩 꺼내는 것 같은 작업은 능숙하게 잘 해낸다. 비장애인 생애사 쓰기에도 이런 역할을 서로 해 보는 게 괜찮을 것 같다.
승민 씨는 요즘 모든 글의 마무리에 “사랑해”를 넣는다. 친구들아 사랑해, 동진아 사랑해, 우리 좋은 친구 되자, 은혜언니 사랑해. 사랑이 넘치는 승민 씨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려고 최선을 다한다.
수정 씨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청년들이 왜 내 시대의 대중문화를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부모님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부모님들은 아마 나보다 10살 정도 많을텐데, 수영 씨만 해도 홍학표, 장철웅, 최선규 아나운서를 말하고 혜은 씨는 자꾸 김병세 이야기를 한다. 지금도 활동하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이지만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들이다. 어디서 봤냐고 물으면 TV에서 봤다고 대답을 하는데 누군가 90년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집안에서 TV를 틀어놨을 것이고 어릴 때부터 그 문화에 익숙하게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시대의 대중문화는 아이돌 음악에 집중되어 있다. 또래의 비장애인에 비해 20년전 대중문화에 모두 익숙해져 있는 게 특이하다. 나는 기억하는 이들이지만 20대 후반의 미술선생님은 잘 모를 이야기들인데 스물 네 살의 수 씨가 탤런트 홍학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웃음이 나올 뿐.
이날은 지난 주에 이어서 얼굴 그리기의 채색을 했다. 얼굴을 그려서 종이에 반절만 붙인다. 떨어져 있는 종이를 넘기면 얼굴이 두 개가 되는데 기분 좋을 때의 내 표정과 기분 나쁠 때의 내 표정을 그리고 색으로 표현했다. 은혜 씨는 기차와 전철을 탈 때 행복했다는 걸 표현하며 행복하면 얼굴이 초록색이 되고 화가 나면 주황색이 된다고 했다. 신종인플루엔자 주사를 맞을 때 기분이 나빴다고 하는데 지난 주에도 신종인플루엔자 주사 얘기를 했다. 무척 아팠던 모양이다. 수영 씨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그렸는데 “컵라면만 먹고 싸우고” 라는 말을 했다. 중고등학교때 음악학원 다닐 때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학원에서 받은 교육이 좀 혹독했던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음악교육을 받다가 고등학교 졸업때쯤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정 씨는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했는데 “미안하구나 얘야.”라는 할머니의 말을 말풍선에 그려 넣었다. 자기 얼굴에는 “할머니 가지마”라는 말을 적었다. 20대 쯤 되면 대부분 아무리 슬펐던 일이라도 자기 검열에 걸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정 씨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감정을 잘 표현한다.
승민 씨는 화가 나면 초록색, 칭찬을 받으면 하늘색이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반장이 뭐라고 했던 걸 기억해서 말했는데 행복한 건 “선”, 불쾌한 건 “악”이라고 말했다. 이분법과 대립은 가장 쉬운 학습법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혜은 씨는 화나면 보라색이 되고 기분이 좋으면 연두색인데, 연두색은 메로나 색깔이다. 혜은 씨는 대부분의 그림에 메로나 색깔인 연두색을 주로 칠한다. 화가 난 얼굴에 보라색을 칠하고 “엄마 혼나” 라고 적었다. 혜은 씨는 조사를 많이 쓰지 않는다.
채영 씨는 기분이 좋으면 살색, 화가 나면 까만색. 기현 씨는 재밌으면 살색, 화가 나면 파란 색이 된다. AOA에 초아가 탈퇴해서 이제 AOA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이 파란 색에 집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 역시도 낭설인 것 같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낭설이 있나.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쉽게 일반론을 찾아내려고 한다. 다양성을 이해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사실을 구겨넣으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을 편협하게 만든다. 자폐는 세상밖으로 나가기 어렵고 자기만의 세상에 산다고들 말한다. 과연 자폐자만 그럴까. 비장애라는 사람들 중에 자폐보다 더 편협하고 더 좁은 자기 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2018년 9월 4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9월 11일의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발달장애인 생애사쓰기 교실의 수업기록

수업기록이 많이 밀려서 오늘의 이야기부터 써보려고 한다.chaeliminhye

내일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쓸 수 있겠지.

어제 저녁 미술샘에게 문자가 왔는데 일찍부터 자느라고 통화를 못했다. 내일은 사물에 대한 걸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연락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 여행 간 이야기, 올 여름, 비가 올 때 어떨까, 여러 가지 주제로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해봤다. 초등학교 때 이야기, 중학교 때 이야기까지. 화가 났을 때 표정과 기분이 좋을 때 표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아무래도 이 생애사쓰기는 연속성이라기 보단 단편들이 이어지는 편이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학우들에 따라 모든 것이 많이 다르다. 한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점점 감정의 층위를 들어내기도 한다. 변화가 없을 것 같다가도 큰 변화를 나타내기도 해서 나도 매번 고민이다.

단조로운 수업으로 진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내 편견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굳이 어려운 것을 시도해 실패의 경험을 줄 필요 있나. 잘 한다고 칭찬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예전에도 한 번 적었겠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여섯 살무렵부터 꾸지람을 주로 듣고 산다. 하지 마, 안 돼, 거기 가면 안 돼, 조용히 해, 여기서 떠드는 거 아니야, 여기서 그러면 안돼, 그건 하지 말아야 해. 끊임없는 금지와 억압. 대부분 이 행동교정은 지도사와 가족에게서 온다. 기본 질서를 지키기 바라는 마음, 깊이 이해한다. 그 행동을 그대로 두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놀라는 일까지 생기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으니까.

몇 명이 일찍 와 있고 서너명이 나중에 같이 들어왔다. 주로 복지관 셔틀을 이용하기 때문에 학우들이 도착하는 시간은 엇비슷하다. 재민 씨가 이 주째 나오지 않았다. 언어전달이 안되는 재석 씨에게 이 시간이 재미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난 주부터 자리를 같이 한 청년 자원봉사자가 들어오자 기현 씨와 동욱 씨가 호감을 나타냈다. 기현 씨는 자원봉사 청년의 팔에 있는 헤나 레터링을 보고 “문신이다.”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가 문신은 아니고 몇 달 있다가 지워지는 레터링이라고 말했다. 청년은 나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넸고 나는 그에게 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라 느꼈다. 어쩌다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 학생인지, 사회복지쪽에 관심이 많은 지, 짧은 질문을 몇 개 하고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일 때문에 청년이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다.

(지난 주에 이 청년이 등장하자 갑자기 여학우들이 장기자랑을 하겠다고 나서서 20분간 돌아가며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라이너스의 담요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스누피를 아는 학우도 있고 모르는 학우들도 있었다. 나는 라이너스가 늘 담요를 가지고 다니며 슬프거나 우울할 때 담요를 꼭 쥐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양이라 하며 학우들에게도 그런 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동선은 기타를, 수영은 기타와 A4용지, 수정은 우쿨렐레, 채영은 곰인형, 승민은 부채, 기현은 가수들의 앨범을 말했다. 은혜 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빛나는 흰색 말 인형과 검은 말 인형에 대해서 적고 있었다. 은혜 씨가 몇 주째 말수가 부쩍 줄었다. 어딘가 모를 우울감이나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게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자폐와 지적장애를 같이 동반한 혜은 씨는 좋아하는 물건, 에 대해서 써볼 건데 혜은 씨는 소중한 물건이 있냐고 묻자 “기분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기분이 좋아서.”는 혜은 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기분이 좋아서 방긋 방긋 웃어.”

, “기분이 안 좋아. 혜은이 울어.”라고, 자폐의 특성이라고 하는 같은 말 반복의 몇 가지 대사다. 혜은 씨는 내가 “성경책 좋아해요?” 물었더니 “어, 성경책 좋아. 예배갈 때, 성경책, 가져가.”라고 대답하더니 연필을 쥐고 성경책. 이라고 적었다.

채영과 승민, 수정 씨 세 명은 서로 농담도 하고 웃고 장난을 잘 친다. 말하자면 셋이 소녀들의 그룹같은 걸 형성하고 있는데 같은 수업에 들어오는 수영 씨와 은혜, 혜은 씨와는 조금 다르다. 채영, 승민, 수정 세 명은 지적 장애고 수영, 은혜, 혜은은 자폐다. 나는 점점, 지적장애, 에 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것과, 자폐에 증상을 말하는 “증”을 붙이는 일이 쉽지 않다. 지적장애는 한 단어처럼 들려서 사는 데 불편함이 있다, 고 들리지만 자폐를 자폐증, 이라고 말하면 어떤 병명처럼 들리는 것이다. 병이란 무엇이고, 장애란 무엇인지, 자꾸 그 말에 걸려 넘어진다. 자폐증, 이라고 하면 이어지는 단어에 ‘환자’를 붙여야 할 것만 같아서, 그런 말이 익숙해서 그게 껄끄러운 것이다. 지적장애 세 학우가 서로 대화가 잘 되는 것은 서로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상대방의 기분과 의사를 읽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고도로 지능적인 사람이 악의적인 장난을 친다면 난감해 할 것은 분명하다. 고기능으로 장난을 친다는 것은 투명하지 않다는 말인데 이들의 언어와 행동은 상당히 투명하고 읽어내기 쉽다. 배배 꼬아 말을 하거나 애둘러 말하는 것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거나 아예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대신 직감으로 알겠지만 그에 대한 확신을 갖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학자들이 뭐라고 그 원인을 파악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경험치라고 생각한다. 많이 겪어보지 않으면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까지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공부하는 곳을 다녔지만 모두들 학원 가고 놀러다닐 때 이들은 조금 뒤에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친구들과 어울려 멀리 놀러나가지 못했다. 비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들을 접촉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서로는 서로에게 영원히 낯선 존재로 남을 수도 있다.

점점 글 쓰는 속도가 빨라진다. 아예 주제를 뭐로 정할 건지 설명을 하는 와중에 써내려가는 학우도 있다. 이제 수업이 네 번 더 남았다. 10월 말이 되면 끝난다. 무척 서운할 것이다. 화요일 오전은 나에게 더없이 평화로운 시간이다. 그렇다고 내가 주제만 던져주고 노는 건 아니다. 학우들은 옆에서 질문을 보태주면 바로 다른 대답을 해준다. 이들과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내가 다음에 뭘 쓰면 좋을지 말하지 않고 앞에 쓴 글에 대해서 질문에 질문을 보탠다. 그러면 풍성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열 명쯤 되는 학우들이다 보니 일일이 다 못 챙기는 게 안타까울 뿐. 기현 씨는 자원봉사 청년이 옆에 앉아 있으니 글이 계속 길어지고 있었다. 혜은 씨도 계속해서 질문을 하면 이야기를 더 해 나갈 수 있다. 오늘은 고무찰흙과 색연필, 크레파스도 좋아한다고 적었다.

지금 이 수업처럼, 아홉 명의 발달장애인과 그만큼의 비장애인이 같이 안전한 시설 안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놀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누구도 이들을 피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면 사는 게 그닥 어렵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미술 선생님이 학우들과 수업을 할 때마다 어떤 몽상에 빠진다. 이 교실만큼은 더없이 평화로운데, 이 문을 열고 나가면 각자의 전쟁터가 시작된다. 복지사는 행정감사를 준비하고 서류를 꾸미고 이용자들의 민원을 받아내야 하고 나는 이런 저런 업무 처리를 해야 하고 다른 강의와 글을 쓰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자꾸 뭘 흘리고 놓치며, 미술 선생님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까지 가서 수업을 하고 대학원 논문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 수업을 같이 한 발달장애청년들은 더러 길을 걸을 때 고개를 숙이거나 누군가에게 아무 잘못 없이 욕을 먹기도 하며, 이들을 유혹하는 온전한 악을 잘 피해 다녀야 한다. 하늘이 맑았다. 채영 씨의 곰인형이 너무 귀엽고, 자꾸 “김병세 세수해”라고 말하는 혜은 씨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다가 은혜 씨의 글과 다른 그림이 마음에 남았다. 얼굴이 검은 쥐와 뱀을 그렸다. 그룹홈에서 나와 집에서 다닌다고 했다. 은혜 씨에게 집은 어떤 곳일까. 은혜 씨가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빛나는 흰 바지를 입고.

2018년 9월 11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여덟번 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여덟 번 째 수업 – 나를 소개해요

 

생애사쓰기는 흐름과 단계가 있다.

혼자 하는 생애사 쓰기는 위험이 더 높다. 여럿이 하는 생애사쓰기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살면서 사람들은 많은 감정들을 억누른다. 그런 것들이 쌓여 돌이 되고 바위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앞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생애사쓰기를 하겠다고 도전하는 건 그 바위 앞에 직면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접근한다.

많은 강좌를 깊숙이 진행할 수 없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놓인 바위를 강사 한 명이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인데,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도움도 적당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떤 바위는 너무 거대해서, 친구나 지인이나 글쓰기 강사의 도움으로 안될 때도 있다. 좀 더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자아와,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이 모인 강좌에서는 섣불리 참가자의 삶을 건드리면 안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생애사쓰기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만약에 타인들이 당신에게 “험난하게 살아왔다”라고 말한다면 절대로 혼자서 자기 삶을 돌아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소금기둥이 되리라는 말처럼. 어쩌면 그 말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이 무너져 버린다는 비유는 아니었을까.

이 생애사쓰기 수업은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그 특수성은 단지 조금 느리다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쉽게 발달장애인은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작은 그룹 안에서도 명확히 확인했다. 수영씨는 아무리 봐도 지능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동선씨도 지능이 낮아보이지 않는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과의 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처세에 밝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사회성이란 대체 뭘 말하는가? 타인의 감정을 바로 읽어내고 혹은 미리 예측해서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하고 상대방이 좋아할 행동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 의견을 내거나 감추거나, 뭐 그런 행위들을 말하는 거 아닌가?

이 그룹에서 일어나는 처세는 좀 다르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려고 고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자기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하고 절제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평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특강수업도 나간다. 초등학교의 경우 많을 때는 1개 학기에 40시간 이상일 때도 있는데, 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의 특색이 있다. 쉽게 말해 눈치가 빤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강사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아이들이 미리 유추해서 준비하고 대답하면서 그 몇 초간에 일어나는 경쟁이 불꽃튀게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는 대부분 성적이 좋거나 부유한 아이들이 많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정제된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그 반면 부유층이 적고 성적 성취도가 대단히 높지 않은 학교는 경쟁하려는 욕구가 조금 떨어진다. 이런 반이 오히려 아이들의 공동작업에서 창의적인 대답들이 많이 나온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고 모르겠는 걸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모르는 걸 감추려고 애쓴다.

복지관의 이 반에서 감추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 죄책감, 자기의 눈치없는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단지 경쟁하지 않을 뿐이다. 질투나 시기는 있지만 그 강도가 세지 않아 귀여워 보인다.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고 나를 인정받기 위해 손을 높이 드는, 그런 경쟁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이 그룹에서 바로미터로 삼는 것은 모든 참가자들이지만 그 중에 은혜 씨와 기현 씨의 변화를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다. 은혜 씨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고, 기현 씨는 자기 주도적인 문장을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생애사쓰기의 단계는 대체적으로 이러했다. 처음엔 좋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서 쓰고 발표한다. 서로 먼저 좋은 면들을 드러낸다. 그래야 상호간의 신뢰가 생기고 긍정적인 연대의식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 단계가 지나면 1/3 정도 되는 지점에서 조금씩 서로 상처를 노출하기 시작한다. 이건 강사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 꺼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억울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타인과 부딪히며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타인과 나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글을 들으면서 자기 기억을 비교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과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거나, 허언증에 가까운 거짓말로 자기 정체성을 감추는 사람은 끝까지 그 작전을 고수하게 된다. 그런 참가자는 그런대로 내버려 둬도 무관하다. 강사입장에서는, 다 알 수밖에 없다. 글쓰기로 강사를 속일만큼 능수능란한 거짓말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건 글쓰기의 힘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드러나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 마련이다.

서로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 오면 어느 이야기에나 있는 절정부분이 나타난다. 6회기를 넘어가는 수업은 대부분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 드라마틱한 부분을 만나려면 계절을 두 개 정도 같이 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누군가가 써온 걸 읽다가 울고, 그걸 듣고 또 누군가 울고, 그날은 자기 얘기를 숨기고 있다가 집에 가서 혼자 몰래 쓰고는, 강사에게만 가져온다. 발표는 못 하겠다며. 그렇게 하나씩 자기의 비밀을 나에게 고백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가 만일 타인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힘겨워 하는 인간이었다면 이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이입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데, 그저 나는 그런 것들이 다 견딜만 하다.

그래서, 누군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다.

나는 이제 이 교실에서 처음부터 다시 생애사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 회기에 나의 기억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는 일이 가장 앞서야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생애사쓰기 수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쓰기는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나 자신에 대한 소개는 애써 앞서 할 필요는 없다. 만일 조금 더 글쓰기에 능숙한 이들이거나, 자기 성찰을 해 본 경험자들이 모였다면 시작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고 맨 마지막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서 비교해보면 될 것이지만.

그 외 글쓰기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든가, “내가 가장 잘났을 때”등 좋은 기억을 먼저 공유하는 게 쉽다.

7월 10일, 여덟 번째 수업은 그래서 자기 소개하기를 주제로 정했다. 이날 나오는 글의 소재들을 가지고 다음 단계를 하나씩 확장시켜 나가면 된다.

학우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소재들을 나열해보자고 권했다. 나는 어떻게 생겼고, 나의 성격은 어떤 편이고, 나는 뭘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습관은 어떤 게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소원은 무엇인가.

학우들은 이미 음식에 대한 글을 써봤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습관, 싫어하는 타인의 행동, 등에 대해서 적었다. 그리고 대부분 절반이상을 자기의 꿈과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 적었다.

수영 씨는 노래를 만드는데 늙을 때까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역시 최선규아나운서와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수정 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꽃집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으며, 기현 씨는 나에게 확인하지 않고 나중에 바리스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채영 씨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은혜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승민 씨는 보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동선 씨는 바리스타가 되어 해외에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혜은 씨만 자기 꿈을 적지 않았는데, 혜은 씨는 늘 근접한 과거와 현재만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학우들의 글과 그림을 여러 번 다시 봤다. 아무도 “나는 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단 한명도, “나는 자폐인입니다.”라거나, “나는 지적장애인입니다.”라고 적지 않았다.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꿈을 적었을 뿐이다.

2018년 7월 10일의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네 번째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6월 5일의 기록

 

날씨가 화창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할테지만 일단 햇빛이 비치면 기분은 괜찮다. 그저 모른 척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 미세먼지 수치 같은 것은 그냥 모르는 척 하는거다. 지난 번 지각 때문에 사뭇 긴장했다. 바로 옆 도서관에 주차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수업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오전의 복지관은 늘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로 바쁘다. 15분 일찍 들어갔는데 벌써 다들 와서 앉아 있다. 제 시간에 맞춰오는 건 혜은씨와 기현씨인데 정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늦게 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들 미리 미리 와서 일찍들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지난 번에 미술선생님과 협의를 했었다. 일단 제일 쉬운 게 음식일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나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봐요. 라는 말은 구체적이지 않아 이렇게 글쓰기 주제를 던지면 누구나 곤란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하고, 그걸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가장 맛있게 먹었을 때는 언제인지, 누구랑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특별히 그걸 먹을 때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글을 풀어나가는 순서를 하나씩 짚어가야 한다.

이건 발달장애인이라서의 예가 아니다. 전문 글쓰기꾼이 아닌 사람들의 글쓰기 교육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중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인터뷰와 구술을 진행하다 보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 질문들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띄게 하고 그것들이 모여야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꾸러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여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글쓰기 교육의 큰 차이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장애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경우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글을 쓸 줄 모르는 학우가 둘 있다. 채영씨는 발화에 문제가 없고 이야기도 잘 하지만 글씨를 못 써서 자원봉사선생님이 붙어서 말을 받아적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러저러한 질문을 섞어주면 자원봉사선생님이 그걸 활용해 몇 가지를 더 추가해서 물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재민씨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어. 어. 응. 응. 정도, 어와 응의 중간발음으로 긍정을 표시하고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부정을 표시한다. 재민씨의 글쓰기는 자원봉사샘이 거의 도맡아 하는 것인데 손가락으로 예시를 계속 제시하며 단어를 하나씩 골라낸다.

나는 이 자원봉사샘의 기법에 탄복했다. 재민씨 제일 좋아하는 게 어떤 음식이예요? 라고 물을 때 검지로 고기, 중지를 꼽으며 야채, 라고 하면 재민씨가 그 중의 손가락을 짚어낸다. 가장 큰 카테고리에서 점점 카테고리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수차례의 단계를 거쳐 문장 하나를 완성한다. 자원봉사샘들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인데, 친절하고 상냥할 뿐 아니라 전공을 잘 살려 학우들과 친밀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이날은 은혜씨가 약간 불안불안했다. 표정이 긴장되어 있었고 입술에 힘을 주고 꾹 다물기를 반복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짜증내니까요.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해서 엄마를 화나게 하니까요. 라는 문장을 여러 번 얘기했는데, 아마 주말을 지내며 가족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학우들의 글을 살피며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누가 만들어줬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등 구체적 사건을 쓰도록 했다. 기현 씨는 늘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수행과제에 대해 다시 묻는다. 음식에 대해서 써보자고 하니 기현씨가 나에게 자기는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럼 일단 고기를 좋아합니다. 라고 쓰면 되겠네요? 라고 말하면 기현 씨는 내 입에서 나온 문장을 그대로 받아쓴다. 그런 다음에 다 썼다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고기를 좋아하나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럼 소고기. 소고기 중에 어떤 게 좋나요? 양념한 거? 불고기? 아니면 구운 것? 갈비?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면 그 중에. 굽는거요. 라고 대답한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서 문장을 하나씩 완성해 말해주면 거의 그대로 받아적는 편인데 항상 한 문장, 한 단어를 쓸 때마다 바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자꾸 확인을 하려 드는 것인데 스스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더 있다면, 기현 씨가 남에게 묻지 않고 알아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 라는 질문이 기현 씨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모르고 있다. 기현 씨는 그저 그 속도가 조금 더 늦을 뿐. 발달장애인은 “조금 느린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현 씨의 글쓰기가 바로 그런 “느림”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매번 문장마다 확인하는 것도 조금 느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체면을 차리느라 대놓고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미사여구를 꾸며대다가 쓰지 않는 게 나은 글을 쓰거나, 하지 않는 게 나은 말을 하는 반면, 기현 씨는 묻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조금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 중에 은근히 러브라인이 형성된 걸 확인했는데, 여학우 한 명이 남학우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고 남학우 한 명도 다른 여학우를 맘에 두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나 너 좋아해, 라는 직접적 표현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오면 꼭 네 선물을 사올게, 라는 말이 있었고 다른 한 남학우는 누구누구의 애정표현이 부담스럽지만 괜찮다, 네 마음만 받을게. 라는 표현을 글에 적은 게 있었다. 말, 좋아한다는 말, 호감을 갖는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떠 다녔다.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감정을 말로 먼저 표현한다. 말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 다음에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의사소통 체계라는 생각을 했다. 말을 먼저 허공에 던지고 누군가 그 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 같은 행위. 공기 중에 떠 있는 말이 어딘가에 안착을 하는가 아닌가의 여부. 이들도 당연히 호감을 갖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기를 거친 이십대 초중반의 청년들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언어와 의사소통능력이 어린이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들을 모두 유아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조금 느릴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제 이들도 연애와 사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수정 씨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다며 자기가 만들 줄 안다고 했다. 나는 요리법을 글로 표현해달라고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수정 씨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가족과 함께 볶음밥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다. 맛이 매콤하고 아주 맛있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직접 볶음밥을 해줘야겠다. 몇 년 후에 꼭 해줘야지.”

수정 씨가 해 온 숙제는 지난 수업시간에 쓴 글을 이어서 써오는 것이었는데 파리가족여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숙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파리에서 봉주르라고 인사를 하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에펠탑까지 보고 다시 또 한 번 가고 싶어진다. 몇 년 후에 신혼여행으로 파리로 가고 싶다. 왜냐하면 파리에 있을 때는 내가 마치 공주가 된 느낌을 받았다. 결혼한 후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어진다.”

수정 씨는 말하자면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들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속에 정해두었는데 수정 씨의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들을 둘러싸고, 이들에게 삶을 돕고 있는 비장애인 어른들이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발달장애라는 이유로 착하고 좋은 것만 강권하지 않았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욕을 먹을까봐 계속해서 입을 막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생각은 이 날 은혜 씨 때문에 조금 더 굳어졌는데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은혜 씨가 내내 입을 앙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혜 씨는 긴장이 되면 입술에 힘을 줘서 입술을 약간 내민 채로 꽉 다물고 있는 모습을 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오늘 수업 시간에 한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한 적 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싫어하니까요.”

이날 은혜 씨는 내내 입을 앙 다문 채로 중국요리를 먹은 이야기를 썼다.

“나는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중국집에 가서 짬뽕, 짜장면, 탕수육, 잡채밥, 볶음밥, 사천탕수육을 먹고 나서 배부르니까 중국음식만 먹고 난 뒤에는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으려야 하니까 살을 빼서 흰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나는 운동을 해야겠어요. 나는 음식 많이 안 먹고 음식 조금 먹어야 해야 되겠어요.”

중간중간 동사가 중복되거나 어법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맞춤법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글에 갑자기 흰 바지가 등장한 게 흥미로워서 은혜 씨에게 흰 바지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살을 빼야 해야 되겠어요. 흰 바지는 안 좋아요. 음식물이 묻으면 더러워져요. 은혜는 흰 바지를 좋아하지 않아요. 생리해도 묻으니까요. 귀찮으니까요.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은혜씨는 문장의 어미를 ~~하니까요. 로 마무리할 때가 많은데 이런 말을 할 때 특별한 심리상태가 있는지 주목해봐야겠다. 흰 바지를 입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듣고 난 다음 나는 은혜 씨에게 다시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은혜 씨, 여기에 흰 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써줄 수 있어요? 은혜 씨는 다시 입술을 앙 다물고 흰 바지에 대해서 적었다.

“나는 흰색 바지를 입으면 얼룩 생기니까, 생리할 때도 잘못하면 묻고 나서, 지저분하니까요. 때가 타서요. 흘리고 난 뒤에는 튀겨서요. 나는 흰색 바지가 싫어요.”

또박또박한 글씨를 가만히 읽었다. 이 문장은 ‘나는 흰 바지를 꼭 입고 싶은데, 흰 바지는 날씬한 사람만 입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다가, 깨끗하게 흰 색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엄마가 입지 말라고 하니 이제는 아무리 흰 바지가 좋아도 흰 바지를 입지 않는 사람인 척 하며 내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게 차라리 속 편하겠어요.’ 라는 뜻이 아닐까.

 

나도 흰 바지를 입어본 적이 인생에 열 번이 안 되는데, 은혜 씨가 말하는 동일한 이유였다. 은혜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 키에 알맞은 체격이다. 내가 은혜 씨에게 “선생님도 흰 바지 입고 싶은데 몇 번 못 입어봤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옆에 앉은 채은 씨와 승민 씨가 재밌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은혜 씨에게 속마음은 진짜 흰 바지를 입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뭔가 꾹 참고 있는 사람을 툭 쳐본다는 것은, 이후에도 긴 시간이 보장되었을 때의 이야기니까.

 

내 시간이 끝나고 다들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색칠을 시작해서 1층 까페로 내려갔다. 목이 타서 주스를 하나 마실 생각이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이 까페에서 바리스타들을 돕고 있었다. 복지관의 1층 까페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 나는 자몽에이드를 하나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눈에 확 띄었다. 남자인데, 청치마를 입고 검은 쫄바지를 안에 입었다. 어린 아기처럼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높이 솟구치게 묶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학교 운동회에 남자애들이 여장한다고 장난스럽게 분장을 한 것 같은 차림이라 웃음이 나왔다. 복지사 선생님이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강사에게는 음료값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시원한 주스를 손에 쥐고 다시 4층 교실로 올라갔다. 즐겁게 웃기도 떠들기도 하며, 시간 내에 그림을 다 그리려고 열심히 손을 움직이는 학우들을 보며, 이십대 발달장애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들 뭘 알 수 있겠느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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