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이를 기억하십니까

92년 10월 28일.
동두천의 한 한국여인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케네스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 사건 일시:1992년 10월 28일 새벽
  • 사건 발생장소: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 1/7 16호 김성출씨 댁 안쪽 첫 번째 방
  • 피해자:윤금이(여, 당시26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 가해자:케네스 리 마클 3세(당시 20세,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
사건개요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되었다. 28일 오후 4시 30분경 집주인 김성출씨가 피살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였다.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또한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윤금이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여성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것이다. 온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10월 28일 새벽 1시경으로 추정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故윤금이씨의 사체 사진까지도 볼 수 있다. 거기까지 내가 노출시키고 싶진 않다. 
이 여인은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이고, 너무도 슬프게 혼령조차 달래지지 못했다. 


이 사건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이 살인범은 2007년 가석방되어 미국으로 출국했다. 


최근 미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 두 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니, 보도되었다. 
미군에 의한 사건이 한 두 건이 아닐진데, 나는 이 것을 일어났다고 보지 않고, 보도되었다고 하겠다. 


두 건 모두 고시텔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었다. 
미성년자였다. 
두 번째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술을 마셨고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는 얘기를 보도에서 흘렸다. 
첫 번째 사건은 가해자가 만취로 심신미약상태임을 주장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SOFA 개정, 주한미군범죄인도조약 따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고 싶지 않다. 
자국민에게 중대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에 대해서 이다지도 관대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 사실이 궁금하다. 
특히 강대국에게 유별나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국내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수감되거나 이 나라의 법에 의해 처벌받는 통계가 궁금하다.


하긴, 성범죄 같은 거야, 이 나라에서 처벌 받아봤자 집행유예로 나올거니까, 차라리 자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백퍼 비아냥이다)


이번 두 사건에는 
1. 미군범죄 문제 
2. SOFA 개정문제
가 부각될 수 있지만, 나는 다른 사안을 생각해봤다. 


미성년자의 기준은 어디이고, 
성인의 기준은 무엇이며, 
이 아이들이 고시텔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캡쳐 떠 온 내용이다. 
이렇게도 복잡한 것이 미성년자의 기준이다. 
민법상 미성년자는 20세 미만이지만 일반적으로 청소년보호법이나 성보호법에 의해서는 만 19세 미만으로 그 폭이 달라진다. 


긴 말을 하기에.. 
오늘 기력이 떨어지는 관계로
질문 몇 개만 던지고 말란다. 










1. 


고시텔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전혀 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95년 내가 살던 서울역 동자동 뒤편의 고시원은 월 12만원 – 17만원짜리로 베니어합판으로 칸을 막아 
옆방에서 책을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잠자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 고시원이 진화해서 만들어진 게 고시텔인데


사건이 일어난 고시텔에선 정말 아무도, 그 사건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첫번째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10&newsid=20111007032936325&p=donga


아파트 단지에서 부부싸움이 소란스럽게 일어나도 주민신고가 칼같이 들어간다. 
방음이 잘되는 수준이 녹음실 수준이었는가?


두번째 사건에 대한 한겨레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9753.html

2.

누군가 물었다.
왜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고시텔에 있는건가에 대해서
첫번째 피해자는 검정고시 준비생이었고
두번째 피해자는 대학입시 준비생이었다고 전한다.

둘 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고시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왜 성인도 되기 전에
혼자 집을 나와 독립적으로
고시텔에서 살면서 시험준비를 해야 했을까

3.

고시텔은 타인의 출입에 대해서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상관없는 주거공간인가
아무런 법적 제재도 없을 것이고 소방법 외엔 관련 법규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고시텔이나 고시원의 법은 총무다.
그나마도 알바생이 많고 자리가 비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설마 누가 들어와서 뭐 훔쳐갈 게 있겠냐고?

몇년전에 고시원에서 방화를 저질러 수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있었다.
고시원과 같은 집단거주공간에 뭘 단순절도의 범죄가 일어날 거 같은가?
그렇다면 이 문제를 입법자들은,
생각을 해 볼까?
주한미군 SOFA 개정 어쩌고 저쩌고에 집중하느라고,
고시원이나 쪽방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과 목숨은,
미처 신경쓰시기 어려울만큼 바쁘시겠지.

하나의 범죄사건엔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단 하나의 원인이 단 하나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는 범죄가 아닌 우리 삶의 여러 사건들에도 드러난다.

윤금이 사건이 드러난 이후 클럽의 여종업원이었다는 얘기로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했다.
그녀가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게 불편했던가
아니면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전직을 밝히는 게 불편했던가
클럽 여종업원이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기지촌 양색시라고 불러 버릴까봐 그게 두려웠던가

클럽 여종업원과 기지촌 여성과 양색시와 양공주와 웨이트리스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클럽 여종업원과 고시생과 입시생의 차이점은 또 어디에 있는가.

모두가 사회적 약자, 매우 약하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지구 최대 강대국의 무지한 병사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흡사, 갓 태어난 영양새끼를 둘러싸고 잡아먹는 포악한 육식동물의 사냥장면과 같다.

유린당한 피해여성들의 메타포는 무엇인가.
이 나라, 이 반도 자체 아닌가.
바로 나의 고향. 이 나라 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라.

2011. 10. 8.

故윤금이씨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피해당한 어린 여성들이 꼭 치유받길 기원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모든 범죄 희생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과 오래된 미래 2011. 10. 1.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오래된 미래의 오프닝
보현사 스님들의 반주/연주와 지역주민들의 노래자랑
보현사 스님밴드 
석수시장 중앙광장
바닥에 새긴 석수시장

미샬로프(Mishalov)로부터 온 편지 / 박찬응


68-69년 석수동의 모습을 간직한 미군병사의 사진
당시의 사진속 주인공들을 찾습니다.

벽화작업
자전거벽화에 받침대 설치한 것이 아주 굿. 

10월 23일까지 이어지는 석수아트축제페스티벌
레지던스 작가 작업실 앞

스톤앤워터
네온사인 들어오는 삽! 

Anak & Moneperro 의 오프닝 석수신령 퍼포먼스
벽면 작업도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못 찍음

Cafe Lizard 도마뱀까페

김덕영 점진적 확장

2076 안양 / Luiz roque

때 생성소 Creation Studio Of Dead Skin / by 오아영

벽면에 있는 흑연을 지우개로 지우며 창작을 해내가는 참여전시 – 구석엔 쌓인 지우개때가 산처럼 쌓여있다.

춤추는 요리사 작가 작업실

맥아더 동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소철 입주작가
경기 영아티스트 기획수상작가
회화작업인데 매우 내 취향 ㅎ 

http://cafe.naver.com/2010gyaprojec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41&
작품소개 

오프닝풍경
스톤앤워터 주최
http://www.stonenwater.org/bbs/view.php?id=notice&no=256

영화 도가니 _ 이후

트윗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인데, 
리트윗이 상당히 많이 된 부분이 있어서 
한데 묶어 정리합니다. 








영화 도가니. 그 이후. 




1. 아동성폭행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당하고도 그게 뭔지 잘 모른다는 거다. 성폭행인지 성추행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후에 아. 그게 성폭행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2. 어른들은 쉽게 안좋은 얘기를 누가 물으면 “그만 얘기하자” 라고 덮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사람들앞에서 증언을 하는 이유는 심장을 꺼내 내보이고 싶을만큼 피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기 때문이다. 더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피해아이는 공책에 증언을 미리 메모할 만큼 열성을 보인다. 그건 그만큼 강력한 처벌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들은 법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법이 그 마음을 외면할 때 아이들은 복수심에 불타기 시작한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파괴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3. 미성년자 성폭행 합의의 경우 부모가 모든 역을 대리할 것이 아니라 피해당사자 50 / 두 명이상의 법정대리인 50 으로 나눠 100이 되었을 때 합의가 가능하도록 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부모가 합의금 꿀꺽하고 애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4. 자식이 그 꼴을 당했는데 합의를 해주냐는 비난도 가능한데 합의를 해주는 경우에 꼭 돈 때문이 아니라 나도 자식 여럿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 굳이 징역 살려야 하는가..하며 비밀리에 용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


‎5. 도가니에서 나타난 것처럼 후환이 두렵지 않은(강력한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도 피해자가 되기 쉽다. 왕따를 지독하게 겪는 아이들이나 범죄에 빠지는 아이들중 쟤는 비호할 사람이 없다는 걸 가해아동이 알 경우 더 쉽게 타겟이 된다.


‎6. 아동성범죄의 합의불가 무조건 처벌규정이 만 13세인데.. 난 이 연령도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 13세면 중학교 2학년이다. 아직도 한참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7. 요즘 학교폭력을 처벌하는 학교의 규정에는 폭력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담자로 인정돼 가해자와 유사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건 불의를 묵인방관하는 것은 공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욕하라 분노하라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맑고 밝고 투명한 느낌. 
세상따위 저 멀리 던져버린 그런 청량감을 주는 것. 
오늘 해질녁 
애를 데리러 가는 그 길에 
횡단보도에 서 있던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가 
아 하늘 정말 예쁘다. 하며 지나갔다. 
분주하게 길을 걷던 내가 그녀의 말을 듣고 바라본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했는데 
요즘의 이승은 온 나라 전체가 그저 개똥밭이다. 
끊임없는 아우성이 일어나는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어제 있었던 서울시장후보의 불미스러운 일과
오늘 조조로 본 도가니 때문에 
트윗에 글을 많이 올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리트윗이 많이 되었고
방금전에 지금 청계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시위에 대해서 올린 트윗도
자꾸 RT가 되고 있다. 
집중적으로 돌려진 트윗의 1개를 제외하고 
강도높은 욕설이 첨가된 것인데, 
사람들이 타인의 욕설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시원하게 말씀 잘하십니다. 라고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이 사람들과 많이 동떨어지게 거친 것인가
아니면..
이제 속시원하게 욕도 지껄이지 못할 만큼 심하게 문명화되어 자기 페르소나의 껍데기를 둘러싸고 답답해도 욕하지 않고 그저 화를 내고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일찍 자고 화를 참고 술로 잊고 다른 것을 찾고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나 내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계발서나 허접한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며 나는 오늘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으니 열심히 살고 있어 토닥토닥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짠하다. 
현장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격한 감정조차도 자기검열을 통해 순화시키려는 눈물겨운 나라의 국민들이 
스트레스로 이틀에 한 명씩 한강물에 몸을 던지는
통채로 개똥통인 나라. 
2011년. 
대한민국.
2011. 9. 29. 

나경원, 소수자, 인권, 도가니 그리고 나.

관련기사 1.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9174

관련기사 2.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1009321&code=910100

관련기사 3. 모닝뉴스

http://www.morningnews.co.kr/read.php3?no=40672&read_temp=20110928&section=2

관련기사 4.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4848

관련기사 5.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921

관련기사 6. 에이블뉴스

http://www.ablenews.co.kr/News/Include/NewsContentInc.aspx?CategoryCode=0013&NewsCode=001320110928173422991500






위에 링크한 기사 6개는 모두 이번 나경원 의원의 장애아동 알몸목욕에 대한 기사와 그에 부연되는 설명들이다. 
상위에 링크한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이라 링크했고 4번에 건 오마이뉴스 기사는 지난 번 대선 때 정동영후보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지난 기사다. 


사람들은 빨리 잊는다. 
지난 대선 때 반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고 싶었으나 정동영후보측의 여러가지 행보가 맘에 들지 않아 마음을 접은 적이 있다. 그 사유중에 하나가 아마 나도 잊었던 위의 사유도 작용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맹비난을 퍼부었고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변명 외에 다른 입장표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 포스팅을 작성하기로 결심한 사유는 바로 아래 사진 때문이다. 
촬영현장은 바로 이와 같았고 미리 세트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위 기사의 내용대로 나경원측은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 미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어떤 동일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익숙해진다. 
마치 쓰레기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면 후각이 마비되어 금방 불쾌감을 잊듯이, 사람에겐 망각이라는 특별한 도구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늘 두들겨 맞는 사람은 그 환경이 학습된다. 전문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 칭한다. 
늘 무시당하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은 원래부터 이래왔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늘 보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습된 무기력은 전염된다. 
저 인생은 원래 저런 인생이니까. 그래도 전화위복이라, 새옹지마라 믿고 뭐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아마, 장애아동의 엄마이기도 한 나경원의원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학재벌의 딸로, 엘리트 코스를 거쳐, 판사를 한 아리따운 미모의 여성이, 장애아동을 낳았을 때, 그래 이것도 전화위복, 하늘이 주신 삶의 체험이라고 값지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도” 있다. 


긍정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자 나에게 닥친 이 난관을 “기회로 만.들.자” 라고 하는 사고방식. 
기회로 밟고 올라가는 순간 위험해진다. 
전화위복을 활용하려는 물적대상으로 봤을 때 함정에 빠진다. 


한국장애인부모회후원회의 공동대표이기까지 한 나경원후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판에 뛰어드니 그 무게를 활용하라는 사람들의 전도에 고무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건 너에게 힘든 일이지만, 이게 너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녀를 꼬드겼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파우스트는 나약한 인간이라 죄가 있고 메피스토텔레스가 사악한 사탄이라 더욱 나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악한 유혹에 휘리릭 넘어간 파우스트는 비록 많은 것을 가졌으며 엄청난 지식을 지녔더라도, 신념이 없었다. 
늘 갈등하고 우유부단하고 욕망에 시달렸던 파우스트는 덥석. 메피스토텔레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와 쌍둥이 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 둘의 조화는 그저 가면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이다.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느냐, 가면을 쓰고 나쁜 짓을 뒤에서 몰래 하느냐의 문제. 
저질러 놓고 그래놓고 몰랐어요. 내가 죽일 놈이야 나는 왜 이럴까. 해봤자 이미 결과는 벌어진 것인데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철저하지 못해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은 말하지 않고 누군가 나를 꼬드겨서, 긍정이 나를 꼬드겨서, 내가 잘못 생각을 해서, 순간 실수를 해서. 라고. 나는 인간이니까요. 라고 역설하는 셈이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감성을 지녔으나, 가장 숭고할 수도 있는 개체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살지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라고. 말하며 웃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무뎌진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은 고금의 진리다.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아주 돌덩이 같아진다. 
그리고 그 면이 점점 반질반질해지기 시작한다. 양심따위는 미끄러져 사라진다. 
모두들 아큐가 되어 정신승리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노신을 몰라도 상관없고 아큐정전을 읽고 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대한 비평을 전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건 자생적으로 아무리 학식이 짧고 지적능력이 떨어져도 거둘 수 있는 매우 쉬운 논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망가져간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영화화되고, 공유와 정유미의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소설이 사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실제 주인공들이 살아있으며 처벌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도 못한 아이들을 유린한 극악무도한 교직원은 6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징역형을 산 건 2명뿐입니다.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나머지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와 피해자 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_KBS 뉴스보도 멘트일부 

자 이런 식이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아직 우리는 체감하지 못했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으나 언제 입법화 될 지 모른다. 
아동성범죄의 공소시효는 분명히 폐지되어야 하는데, 저항력이 없는 아이들이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당한 일을 그 때 당시엔 사실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게 성폭행이었고 그게 성추행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인이 되어, 심지어 부모가 되어, 나 이제, 그 때 그게 성폭행/성추행이었다는 걸 알았어. 라고 고백하는 얘기들을 간간히 듣는다. 


그런데, 아동성범죄를 역겹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 나라에선 버젓이 미성년자들이 나를 유혹해봐, 혹은 너를 유혹해줄께 라는 뜻의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든다. 동안이세요. 라는 말에 담긴 젊음에 대한 갈망은 단순히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순수한 의미로 들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변형된 롤리타 신드롬이 조금씩 반영되는 것은 아닌가. 왜 원조교제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는가, 언제부터 사람을 영계라는 호칭으로 싸잡아 부르게 되었는가, 왜 이나라 사람들은 젊은 것에 대해 갈망하는가. 아니 그게 비단 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문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특별히 이 나라는 매우 인간관계가 권력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나이를 중시하고 혈연,지연,학연이 중심이 되며 어디를 가든 리더, 즉 대가리와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예의를 지키고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율법을 기초로 삼는 국민정서상, 너 몇살이야? 라는 얘기가 싸움판에 빠지지 않는 나라. 
그리하여, 오빠. 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남자들과 오빠. 라고 불러주면 좋아한다는 걸 다 알고 있는 여자들. 
환갑이 되도 듣고 싶은 단어는 “오빠” 라는 것은 남성연장자와 여성연하자의 연애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통념이 되어 있는 나라, 그래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아이유의 노래 가사 중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에 수많은 남자들이 맥없이 부질없이 쓰러지고 마는 나라. 


그래 나이 어린 여자는, 귀엽고 예쁘고 젊고 상큼하기도 하지만 일단 나이로 밀어부쳐 고분고분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환타지가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적지 않게 시작되고 있으나, 사실 까놓고 
“어허..어린게 오빠한테 까불어?” 이런 문장 하나로 상대방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정서가 이 나라엔 숨어 있지 않나?
물론 요즘에야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새끼” 라는 반발과 함께 정강이를 까일 수도 있는 현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판타지적으로 그런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이가 권력이 되는 나라에서 연하의 여성은 매우 이상적인 연애의 대상이며 이에 발전해 성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선 비일비재하게 정서적 결함과 뇌질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무수한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평생을 지옥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무에 못질을 하고 못을 빼낸다고 그 구멍이 메꿔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빤스 밑으로 10cm 정도밖에 안되는 치마를 끌어내리며 가는 걸 보면 심란하다. 
본인도 신경이 쓰이는 길이, 무엇이 저 아이에게 저 치마를 입게 만들었나. 
무엇이 저 아이에게 치마를 줄이게 했나. 
치마가 길면 바보취급 받는 이 나라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어른들이 소위 예능이라고 말하는 오락프로에 나와 궁둥이를 흔들며 현란한 춤을 추는 어린 여자들을 보며 박수치고 잘한다고 칭찬해줄 때, 그 문화가 전체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할 때, 아이들은 치마가 짧아야 살아남는 이상한 세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이번 행보가 흥행중인 영화 도가니에 맞물려, 사학재벌의 딸, 그녀가 앞장서서 반대해서 사학법 개정이 통과되지 못했다, 라는 의견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매우 곤란한 시기에 본색이 드러난 것일까. 


누군간 이렇게 쉽게 말할 것이다. “때가 좋지 않다’ 라고. 


카드놀이를 하자고 졸라대는 나의 어린 아이를 보며, 
나는 얼마나 이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었는가 생각한다. 
나는 늘 아이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가, 나는 얼마나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는 엄마였던가. 
아이를 욕되게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기는 것처럼 모욕을 주지 않았던가. 
분명히, 나 역시, 그랬던 순간이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지워버린 기억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아이를 잘 야단치는 그런 사람이니까. 
분명히 그렇게 아이를 절벽위에서 떠미는 것처럼 아주 초라하게 만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남의 아이에겐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내 아이에겐 당연한 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쓰는 말 “내 자식 같아서요” 라는 말이다. 
남의 자식 앞에서 깍듯하고 내 자식앞에서 안하무인인 부모의 말을 듣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젠가부터 “내 자식 같아서요” 나 “가족같이 일합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막 대하겠다 라는  뜻으로 들린다. 




분명 이번 나경원후보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 맞다.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고 후보와 관련기관은 사과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장애아동의 어머니라는 것을 공포하고 더 잘 안다고 떠벌였으면 소수인권을 지켜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촬영팀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더라도 자신이 문을 닫았어야 하지 않는가. 
장애아동은 사춘기가 없는가? 장애아동은 예민한 시기가 없는가?
12살에 발가벗겨져 문짝도 없는 오픈된 공간에서 목욕을 해야만 했던 아이의 마음을 당신은 아는가?


가끔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문구중엔 “목욕하고 싶어요” 라는 사연이 있다.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처연한 이야기다. 
수단화 하지 말라. 
분노가 치밀어 쌍욕이 나올 뿐이다. 


나후보가 장애아동이고 그 곱디 고운 얼굴 때문에 발탁이 되어
12살 나이에 서울시장 후보인 이성의 남성후보에게 발가벗겨진 채 카메라 앞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면
당신은, 그 후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을 것인가 복수의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문제는 후보측만이 아니고 소수자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혹은 소수자를 자주 대하기 때문에 무뎌진 양심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게다가 그를 비난함과 동시에, 나는 얼마나 누군가의 인권을, 옷입고 가꿔진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가. 
돌아볼 일이다. 


한 장의 보도사진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글을 마쳐야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뉴스를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쳐 애먼 내 시간을 분노를 삭이는 데 쓰지 않는 세상은 과연 오지 않는 걸까. 
절망스럽다. 


2011. 9. 28. 






[연극]우어파우스트 – 명동예술극장 공연

<10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질
우어파우스트>
명동예술극장 안내링크
플레이디비 관련정보
우어파우스트는 쉽게 말해 괴테의 파우스트의 초고이다. 
그렇다고 이 초고를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고 보긴 어렵다. 
약간은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연출을 가미한 명동예술극장의 우어파우스트는 독일연출가 50인중 한 명인 다비드 뵈쉬가 연출을 했다. 해외연출가를 초청해 공연을 만들어 보자는 계획중에 우연히 인연이 닿아 젊고 실험적인 연출을 하는 다비드 뵈쉬가 그 적임자가 되었다고 한다. 
TV에서 낯이 익은 정보석씨가 출연해 대중적 흥미가 더할 수 있겠다. 
이 연극은 정통연출기법과는 상이한, 게다가 약간은 그로테스크하여 보는 이가 거북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했을 것이다. 
실험적 예술적 연극을 한답시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연극의 3대 요소중의 하나인 관객이 빠져버리는 일이므로. 
게다가 이 연극엔 중간중간 소극장 공연처럼 관객과의 소통도 (매우 미미한 양이지만) 대본에 속해있다. 
연극의 규모에 비해,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신(神)을 맡은 정규수 (올해 명동예술극장에서 가장 자주 만난 배우인듯), 파우스트 박사에 정보석, 메피스토텔레스의 이남희, 그레트헨의 정지아, 그레트헨의 오빠 역의 윤대열, 꽃님이로 변질된 학생역의 김준호. 
그리고 이 극의 주인공 중 한 명은 바로 무대다. 
약간 시선이 분산된 듯한 느낌의 무대 왼쪽엔 그레트헨의 초라한 생활을 나타내는 세면대가 있다. 그것이 그레트헨과 발렌텐의 공간 전부이며, 가운데 부분은 곡선의 빗사면으로 되어 있는 벽이 뒤에 펼쳐져 있다. 올라갈 수 있을 듯이 보이나 오르기가 힘겨운 그 어떤 추상적 이미지를 무대로 표현했으며 모두 검은색 일색이다. 

파우스트의 내용은 잘 알려진 바, 이 극에서 주의할만한 특이점들만 이야기 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모든 것을 가진 지식인, 그러나 인간의 무능함에 답답함을 느끼는 자이나, 뚜렷하게 고고하거나 숭고한 인물은 아니다. 그리하여 메피스토텔레스와 계약을 맺고 때론 그를 조정하고 때론 그를 압박하고 때론 그에게 이끌려 다닌다.

메피스토텔레스는 성서에서 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열한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저돌적이고 지능적이고 파괴적이며 우월한 존재다.
타인을 정복하거나 그 위에 군림하는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또한 매우 추접스러우며, 성적 욕구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도 있을 법한데, 식욕과 수면욕이 나름대로 존중받아 마땅한 것으로 당연시 된다면 성욕은 사람들이 매우 노출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대식욕이나 과대수면욕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그러우나 과대성욕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극의 메피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과대성욕은 거침이 없다.
단순히 성욕으로만 표현된 것 같겠지만, 메피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성욕은 그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총체적 집합이다.

파우스트는 무료한 일상에서 그레트헨을 마주치고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가 처음에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거나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싶다가 아니고 오늘 밤 당장 품에 안고 싶다. 라는 감정이다.
누군가 사랑은 사랑으로 포장된 성적욕구에 불구하다고 했던가.
거침없는 파우스트의 욕구는 왜곡되어 그레트헨에겐 사랑으로 여겨진다.

또한 파우스트의 욕구가 그레트헨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레트헨은 물욕으로 인해 사랑을 확인한다. 사랑이라고 이름지어지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성욕, 그 성욕을 채우기 위해 전달되는 선물공세로 여성의 물욕을 충족시키고 상호 욕구를 충족하는 그런 단계로 표현한 것이다.

(일부에선 여성비하, 여성혐오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남녀의 성별의 상징적 의미를 과하게 곡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에서 기록하는 여성성을 이토록 유혹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유전학에서 말하듯이, 여성만이 출산을 할 수 있고 여성만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에 남성의 동물적 본능, 존재를 남기고 후손을 생성하고 싶은 (혹은 그 후손을 생성하는 것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함이라면)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오로지 여성의 자궁이 필요하다. 남성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역사이전에 모계사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역사가 기록된 이후엔 대부분 남성중심으로 세계역사가 재편되었고 그것들이 증거로 남아있다.
결코 남성이 초월할 수 없는 경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인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가 남성의 시각에서는 오로지 여성이다. 남성은 여성을 차지하고 그로 인해 욕구를 충족해야만 생명의 의미를 갖는다.

자식을 낳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교육과 양육의 책임이 더 커졌으나 역사적으로는 자식을 낳는 것은 자신의 영역과 유전자를 확대하는 의미가 더 크다. 물질이 부족하던 시절엔, 자손을 퍼뜨림으로써 왕국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 박사는 성적욕구와 물적 욕구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그레트헨을 차지하나, 그레트헨은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잠시 물적 욕구에 흔들려 파우스트를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것도 하인리히라는 가짜 이름을 믿는 것) 애초에 욕구로 시작한 것이 사랑으로 돌변하긴 어려운 것. 
그레트헨을 만나기 전,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박사를 찾아온 성공의 욕망에 불타오르는 한 청년을 개로 만들어버리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명성이 자자한 파우스트의 오른쪽에 앉겠느냐는 메피스토텔레스의 사기에 당해버린 농락당한 학생은 그 욕구 때문에 족쇄를 대신해 바지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하게 된다. 
개의 상징은 언제나 그렇듯. 
개같은 것. 
자, 그레트헨이 파우스트에게 유혹당하고 그에게 버림받고
이제 그의 오빠 발렌틴의 모욕이 기다린다. 
발렌틴은 지고지순한 누이에 대한 욕구로 그레트헨을 모욕한다. 
이 역시, 욕구다. 인간의 욕구, 뭔가 되고자 하는 욕구, 무엇으로 남고자 하는 욕구,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아 욕구 욕구 욕구. 
이렇게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는 쌍둥이 같은 모습을 보이거나 서로 거울처럼 반영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사실 파우스트가 숭고한 인격체 자체가 안되므로, 그 안에 내면적으로 잠재해 있는 한 인간의 악마성에 대해서 표현한다. 
신은 극중에서 내내 무력하다. 
심지어 잘 걷지도 못한다. 초반에 메피스토- 를 외쳐 부를 뿐, 아무 역할을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가 순간,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장면이 있다. 

후반부로 치달아, 그레트헨이 완전히 파괴되기 직전,
메피스토텔레스의 악마성의 최고조에 다르는 장면이 펼쳐진다.

메피스토텔레스는 높은 곳에 올라, 꽃님이를 옆에 호위무사처럼 인형처럼 앉혀놓고 마이크를 잡고 목사나 신부가 입을 법한 예복을 입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그레트헨을 단죄하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이 흡사, 기도원이나 부흥회에서 우리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 강대상위의 그분들의 단죄장면이다.

너는, 죄인이고 너는 더럽혀졌으며 너는 원죄가 있어 벌을 받아 마땅하니.
현실의 목회자들은 구원받을 지어다, 라고 하겠지만 메피스토텔레스는 너는 파멸을 면치 못하리라고 저주한다.

현실과 극의 완벽한 오버랩.
연극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서준식의 옥중서간을 읽으며 그가 느낀 예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과연 우리의 신은 우리를 단죄하기 위해 존재하였던가.
그분은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용서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니었던가.
대체 누가 인간을 단죄하고 인간에게 죄를 물으며 인간에게 죄사함을 받기위해 종교기관에 충성하라고 말하더란 말인가.

(게다가 이 연극을 보고 온 날 PD수첩에서 기독교의 부정축재에 대한 꼭지를 내보냈다)

신은 그레트헨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위해 눈을 뿌려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하지만, 결국 그레트헨은 미치광이가 되어버리고 파우스트는 또 다르게 시작한 아주 가벼운 작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레트헨을 떠나버린다.

욕구로 시작하여 욕구로 끝나는 우어파우스트.
현대적 영상과 현대적 음악, 그리고 매우 절도 있고 깔끔한 구성이 조금 낯설 수 있으나 복잡다단한 인간의 총체력 무력함과 선악을 표현하려는 괴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 매우 아쉬웠던 것은,
내 뒤에 영화계 원로분들이 앉으셨는데, 이 나라의 거목이신 김모감독님과 그 옆에 계신 분께서 연극을 보는 내내 관전평을 해대셔서 극몰입에 엄청난 괴로움을 겪었다.
내 뒷줄에서 서너자리 오른편이 앉으셨는데 바로 그 앞에 앉은 여자관객분은 연극을 보는 게 아니라 짜증만 받고 가신 듯 하다. 어이가 없어 사람들이 계속 뒤를 돌아봤지만 그 분들은 그치지 않았고 뭐라고 말하는지 거의 다 들릴 지경이었다.
무대위의 배우들도 누가 말을 하는지, 저 분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아마 외국인인 연출자 빼고 아무도 그 분에게 항의하지 못했겠지.

당신이 만든 영화를 보고 늘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늙어지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참담한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정중하게 사과하시고 그 앞자리 여자분 표 물어주시면 참 좋겠다.

2011. 9. 20. 관람.
@명동예술극장

빅이슈를 만나다

명동예술극장에 연극을 보러 나간 길. 
카메라는 들지 않았고 오는 길에 뭔가 사와야 할 물건이 있어서 부러 차를 가지고 나갔다. 
주차를 하고 동생을 만나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동성폭행법개정에 대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나올 때 해야지 했던 걸 깜빡했다는 걸 집에 오는 길에 깨달았다. 


연극을 보고 나와 
촉박한 시간에 마구 발걸음을 빨리 하는 순간에 빅이슈를 팔고 있는 판매자 분을 마주쳤다. 
내 기억속의 코스모스백화점, 그리고 그 이후에 십수번 이름을 바꾼 눈스퀘어 앞이었다. 


내용이 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빅이슈를 사야했다. 
빅이슈가 발행된 지 1년여는 된 거 같다. 


거의 서울 지하철권에서 판매가 되는데 나는 빅이슈가 창간된 즈음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빅이슈를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빅이슈는 1권에 3000원이다. 
빅이슈 1부는 1400원에 빅판(판매자)에게 공급되고 권당 1600원의 수익을 갖는다. 


나는 3천원 한 권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동안 빚진 느낌을 청산하고 싶어 3부를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같은 내용으로 3권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과월호를 섞어서 드리는 게 어떨까요 하는 빅판의 말씀에, 아, 과월호도 있으면 과월호도 사야겠다 싶어 이번호 3권과 과월호 각기 다른 2권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한꺼번에 5권을 사니 빅판께서 민망하셨는지 음료수를 사겠다고 하시며 음료수를 먼저 내게 건네야 돈을 받을 것 같으셨다. 


빅판의 빨간 조끼 주머니에 다행히 잔돈이 있었던 지라 15000원을 넣어드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모퉁이를 돌면서 트위터에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트윗을 올렸다. 



명동눈스퀘어 앞에서 빅이슈 판매자분을 만나서 이번호 3권 달라하니 똑같은 거 3권 가져가느냐며 과월호로 가져가면 어떠냐 하셔서 이번호 3권에 과월 각 1권씩 달라하니 음료수 사주신다고 하신 판매자분. 감사합니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어떤 분께서 RT를 거쳐 내가 오늘 만난 판매자분께 멘션을 연결해주셨고 
내가 오늘 만난 빅판께서 이런 글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bigissue_h 앗!그 분이시군요.말한마디 때문에 3부에서 5부가 되지 않으셨는지?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빈말이 아니였는데 음료 드셨으면 지금 더 마음이 편했을텐데 아쉽네요 따뜻한 밤 보내세요 ^^


라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트윗을 열기 전에, 
오늘 아침 남편과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으로 
가난하거나 무지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멘션을 읽고 난 다음 지금은, 
누군가가 가난하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편견을 갖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조금 수정을 했다. 일반화는 무섭다. 날이 갈수록 분석을 하고 어떤 규칙을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섣부른 일반화를 너무 많이 범한다. 


나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그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세상에 가난하고 무지하고 혹은 그렇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혹은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려, 어리석지 않은데도 어리석어지고 그저 누군가를 믿었는데도 갑자기 발등이 찍혀버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을 때,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 당당하게 비난하려면 
부채감이라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밟고 일어선 누군가가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의로 밟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받았던 혜택과 내가 누렸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 언제나 누군가의 올바른 정책 덕분이었을게다. 


그저 나 혼자 스쳐지나가는 일화로 간직할 만한 일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뜨거운 일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밤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갑자기 쌀쌀해져 라면이 매우 땡기는 밤이다. 


빅이슈코리아 공식 사이트 bigissuekr.tistory.com
최근들어 빅이슈 측의 문제가 있는 풍문이 들리는데 괘념하지 않겠습니다. 
빅판들께서 공정한 수입을 가져가실 수만 있다면 빅이슈는 꼭 계속되길 바랍니다. 







세계, 어제와 오늘.

표출되지 못한 언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정확성을 잃은 감정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거리를 헤매이고 
TV에 나오는 누군가를 모방한다
흠모하진 않으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시기심이 있다
내가 저 아이보다 못한 게 무엇이 있느냐는 
바닥을 친 자존감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을 쫓아 
재빠르게 자존감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
딸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닌지 한 달이 된다.
지난 주엔 나와 7년을 산 개의 목욕을 시켰다.
한달만에 능수능란한 관리사가 되었다.
어제의 아이는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시 내 앞에 서 있다. 
케익 하나 사다 주면 헤헤 하고 내내 웃던 보조개와 
스파게티는 이렇게 먹는거라고 가르쳐 주던 나를 보며 부끄럽게 웃던 얼굴로
진작에 좀 .. 이라는 나의 타박에 
눈가가 빨개져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가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어차피 공부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아이는 그저 세상에 뛰어들어 인생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는 비정규직이다.
아이를 낳으면 알바를 많이 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내 아이가 알바를 하겠다고 나서니 선뜻 칭찬이 나오지 않는다.
왜 험한 세상을 일찍 배우려고 하느냐.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만나도 늦지 않는다.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엄마, 한 걸음을 떼니까 두 번째 걸음이 쉬워요. 라고 말하는 아이의 옆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우리 얼마나 힘들었니.
다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참 잘 하고 있구나. 라고 
매우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절대 비난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심하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항상 측은지심을 갖고 왜 저 사람이 저런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하라 했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인지
이 사회의 문제인지 잘 살펴보는 사람이 되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낮추어 너에게 적용시키지 말라고 했다.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다가서지 말아야 할 세계가 있고 
접하지 말아야 할 직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의 기준, 너의 잣대가 되어야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무도 무시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아직도 .. 제가 그래 보여요? 라고 묻는다. 
아니. 네가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청소년기의 네 나이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 
네 동생이 네 나이가 되면 네 동생에게도 똑같이 말할꺼야. 
며칠 전에 할머니 걱정이 되어 
몸에 좋은 음식을 해드리고 싶어 고민하다가 
도곡동의 한 한의원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온 것은 
아주 기특하고 훌륭하고 기쁜 일이다. 
근데 솔직히 엄마는, 
진작에 조금이나마,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조금 덜 아프게 하지 그랬니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날은 좀 화가 났었다.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눈가가 벌개지지만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또 아이에게 못을 하나 박은 셈이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나는 말해야 했다.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뼈아픈 고통도 느껴봐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 
차라리 내가 주는 상처가 낫다고. 
자위하고 싶다. 
아이는 커간다. 
자기의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관찰하고 부딪치고 느끼면서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매우,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만으로 다섯살하고도 6개월이 지난 작은 아이는
요즘 태권도를 다녀오면 뛰어나가 동네 형들이랑 놀기 바쁘다.
엄마 안녕. 
하고 저 혼자 문을 닫고 나가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다 간혹, 
엄마가 태권도에 데리러 와. 
라고 말한다. 
왜 데리러 오라고 했어?
아이와 오솔길을 걸으며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하며 내 팔에 제 얼굴을 문지른다.
어두워질 때까지 아이들과 놀다가 
밥먹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나의 작은 아이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낸 80년대의 아이처럼 저녁을 보낸다.
그렇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일이 성사되어 
이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동생에게 피부가 탄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밤도 새지 못하고
예전처럼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고
가끔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발견한다.
흰머리를 발견해도 뽑지 않는다. 
이미 남편은 염색약을 써야 할 정도가 된 지가 오래다. 
늙어가는 중이다.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고 
아주 조금씩, 늙어가는 중이다. 
스무살 무렵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진절머리 나는 질풍노도의 혼란을 지나 서른이 되면 어딘가 안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30대의 반을 훌쩍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흔이 되고 싶다. 
그럼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간혹 그저 세월을 건너뛰어 쉰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나이. 
언젠가 엄마가 쉰 다섯 쯤 했던 말처럼
“이제 이 나이쯤 되면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나에게 나이는 환상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다.
사람으로서 
가장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기쁜 마음으로 
참 잘 지내었다. 라고 말하며 떠나고 싶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별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해서 조금씩 걷는다. 
때론 울고 웃고 욕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 
얼마전 남편이 몇 년전의 나의 습성에 대해서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말하는 그 습관은 그 때의 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이미 몇 년간 그렇지 않았잖아.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매일 매일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살아. 
라고. 
나는 내일,
오늘 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거다. 
2011.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