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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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내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학교 입학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위해 검토를 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 묶음에 입학식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가정환경조사서 / 예방접종증명서 / 저녁 돌봄 지원서 세 가지다.

저녁 돌봄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 취학통지서를 받고 준비해 온 예방접종증명서를 민원사이트에서 출력했다.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 미리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인데, 입학식 전에 미리 접종을 받은 기관과 연락을 취해서 전산망에 올려달라고 요청을 해야 했다. 이런 서식은 최근에 전산화가 되었기 때문에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펴놓고 가족사항을 적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아마 그 전에 봤던 학교 유인물에 영어와 한자가 마구 뒤섞여 있었던 것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다른 이유의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좀 짜증이 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 말이 있다.

살면서 다들 그렇게 말하듯이, 옛 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이 속담은 매우 쉬운 말로 전하고 있지만 그 말은 사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가정환경조사서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내가 초등학교 즉, 그 때 말로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는 80년대였다. 그 시대에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사람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같이 살지 않는 편이 각자에게 훨씬 좋은 경우이다. 더 같이 억지로 살았다가 어떤 불행이 펼쳐졌을 지 예상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별에 대해서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미 한국이라는 이 고리타분한 보수의 나라에서, 조선조 이상하게 왜곡된 유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는 이 환경에서, 이혼만은 절대 불경스러운 일이라며 참고 지내다가 결국 더 큰 불행을 앞두고, 아니면 이미 불행해 질대로 불행해 진 상태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관계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이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는 결혼부부들은 이 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이 국가의 결혼은 수많은 인간관계와 불필요한 친족관계 때문에 얼기설기 꼬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되도록이면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인간의 일부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따져본다면, 그 역시 주장의 논거는 희박하다. 단순히 그런 거 아닌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원래 그래 왔으니까. 글쎄 그 보다는 사회체제가 더욱 복잡해 지지 않았으면 하는 암묵적 동의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성장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이혼녀의 딸로 살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이다. 정작 당사자는 오죽했겠는가. 교회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시간에 사람들 많은 데서 “이집사 이혼했다며?” 라는 말도 들은 사람이 모친이다. 그게 그 때는 수모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내가 늘 의아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살짝 귀뜸한 일이 왜 전교에 소문이 퍼졌는가 하는 거다. 내가 고의적으로 누설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이혼자녀”라는 것이 매우 흔치 않은 사례였다. 전교에 단 두 명이 이혼자녀로 알려져 있고 그건 꼬리표가 되었다.

“쟤 엄마 이혼했대.” 라는 말.

가정환경조사서에 억지로 아빠를 적어 넣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같이 살지 않을 뿐이었고 자주 만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되던 세상을 지나, 사람이 죽어도 열녀가 났다고 숭앙하던 극악무도한 세상을 지나, 전쟁을 거쳐 수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척을 지는 것은 대단히 불손한 일로 여겨지던 세상에서, 이혼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강요했으며, 결핍된 것은 모자란 것이고, 그 모자란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이며,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옳지 않다는 폭력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흔히들 결손가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결손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굳이 그런 낱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국가와 사회가 정해놓은 가족의 이미지는 아빠 엄마 자식 둘로 이루어진 것이 정상, 그 외의 것은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규칙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할 수 있고, 다른 것들과 같을 수 없다. 다양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지만, 정치가 시작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범주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통치하기 쉬운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줄을 세워, 이 줄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들은 법이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조르주 아감벤이 말했던 호모사케르의 존재 이유와 법철학이라고 하는 어려운 이름의 학문의 요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법은 법 안에 있는 사람만 보호할 수 있고, 법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외면해도 되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 그 편이 통치하기에 편하다. 누구도 반발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법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되지 않고 법 안에 속한 존재가 되어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에게 법은 마치 커다란 성채처럼 느껴진다.

그 성채 안에 들어간 자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규칙과 윤리, 도덕과 원칙, 이 것들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폭력이 가득한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 안에서 떨궈져 나오면 어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이용하면 사람들은 “고분고분” 해진다.

 

사회적 질서를 위해, 사회적 문란함을 없애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해놓았던 “올바른 가족상”에서 벗어났던 나는, 지금 그 “올바른 가족상”에 또 얼마나 멀리, 혹은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정환경조사서에 남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적으면서 학력을 적는 란이 없다는 것을 새삼 희한하게 느꼈다.

 

없어야 마땅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세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지 않으면 보호해 주지 않을테야. 이 나라는 전쟁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나라니까. 게다가 삼면이 바다니 도망갈 데도 없고, 그 위엔 당신을 잡아 먹으려는 괴수들이 드글거리거든” 이라는 협박을 들으며 고분고분 줄 서던 기억.

 

가정환경조사서, 부모의 화목 정도와 내 집의 경제를 책임진 자들이 기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확인했던 그 고리타분한 서류가 30년을 돌아 나에게 다시 왔다. 내가 학부형이 되면 실내화를 빨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꿈이었으며, 이제는 학교에 경찰관이 나타나 학교폭력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움츠러진 몸씨, 주눅든 말씨, 머뭇거리는 마음씨가 모두 문제가 된다고 했던 것은 정해진 매뉴얼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는 읽었다.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굳이 그가 덧붙여 읽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쫄면 피해자가 되니까” 라고.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말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조금 뻔뻔한 태도를 가지라고, 조용하거나 얌전한 성격은 법으로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법과 폭력의 반복이 거듭되는 동안, 이제는 피해자가 될 성격과, 가해자가 될 성격의 유형이 나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싫어. 저리 가. 하지 마”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의 폭력이 사라지는가.

 

이 사회는 사회의 조직보다 언제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고, 사회가 개인을 지배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잘해야 국가가 잘할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다.

 

대체 이 파렴치한 구조의 사상은 언제쯤 끝이 날까.

의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는 무사도 아닌, 징징대며 삥이나 뜯는 골목상권의 양아치 같은 이 조직은, 예전엔 자라였고 여태 솥뚜껑으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이 솥뚜껑이다. 밥도 짓지 않은 무겁기만 한 솥뚜껑이, 솥은 어디로 간 지 뵈지도 않은 채 여기 저기서 날아다니고 있다. 이 나라의 전쟁과 테러는 솥뚜껑들이 해내고 있다.

 

2013년 3월

2009년 12월 쓰다 –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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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 벌어야만 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건간에, 모든 사람들은 제 밥을 벌기 위해, 혹은 제 가족의 밥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 밥벌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것은 소설가 김훈 선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 단어에 매혹되어 그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서 읽었고, 밥벌이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밥벌이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에게 언제 네가 제대로 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나는 치열하게 밥을 벌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일부는 떼서 저축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혹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돈 말고, 나는 그 때 매일 매일 밥만 벌었다.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일주일을 버티기 위해, 또 한달 치 월세를 내기 위해, 나는 그 때 밥을 벌었다. 밥벌이가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치가 떨리던 그 시절에, 나는 마음속이 헛헛해지면 마포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10년도 훨씬 더 전에, 그 설렁탕 집엔 지긋한 나이의 노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해방 이후, 혹은 전후부터 그 자리에서 설렁탕을 끓여대지 않았을까 싶은 양반이었다. 10년이 훨씬 더 지나, 그 자리에 다시 가보니 그 집은 여전히 설렁탕 냄새를 골목 자욱히 풍기고 있었고,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은 30/40대의 젊은 사내로 바뀌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전과 다름없는 설렁탕 한 그릇을 내게 내어주었다.

설렁탕에 대한 미련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기원한다. 중학교 때 나를 총애, 아니 편애 하시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중학교에 다닐 동안 읽어야 할 리스트라며 파란 메모지 몇 장을 건네 주셨다. 그 중에 한 편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을 편애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책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삼중당문고의 후예뻘인 어느 출판사의 작은 문고판으로 현진건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운수 좋은 날엔 가난한 인력거꾼이 밥을 벌러 다닌다. 그의 아픈 아내는 그가 일을 나서기 전에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억세게 운이 좋은 일진을 맞아 손님을 태우고 경성거리를 미친듯이 달린다. 그리고 설렁탕 한 그릇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지독히도 운 나쁜 여편네는 이미 이 세상을 버렸다. 나는 그 때 설렁탕. 이라는 음식에 모든 삶의 비애와 고통과 팔자를 담아 버렸다. 얼마 전 읽은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이라는 산문집에는 릭샤 운전수에 대한 비애가 담긴 글이 한 편 읽었다. 나 자신이 그 릭샤에 앉아서 묻어 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시인의 착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을 모두 설렁탕 한 그릇에 응축 시키기로 했다.

 비오는 거리에서 인력거를 끈다고 생각해보자. 집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퀭한 눈을 하고 아비를 기다린다. 병들어 아픈 여편네는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오늘도 밥을 벌기 위해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사지 육신이 메말라 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린다. 뚱뚱한 귀부인이 인력거에 올라타 그 인력거가 휘청하더라도 별 수 없다. 귀부인은 팁까지 얹어서 돈을 내고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설렁탕이다. 설렁탕을 몇 그릇을 사야 할 것인가. 돈 벌어오는 자가 가장 단 한 명뿐인 가족구조라면, 가장은 설렁탕을 보며 침을 꿀떡 삼키고 포장을 해가야 할 것이다. 가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아는가, 그 당시에는 알았으나 일선에서 물러 나고 난 뒤 금세 잊었다. 단지 중국에 있던 유학시절동안 인력거를 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은 있다.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되었다. 나의 양심은 알량한 돈 몇 푼에 그의 팔다리를 욱신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의 밥벌이였다. 내가 그의 인력거를 타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인력거를 타지 않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서 나는 늘 갈등했다.

 비가 오는 날, 속이 헛헛한 날이면 설렁탕집을 찾는다. 이제는 아이를 데리고 설렁탕집을 찾는다. 해방 이후부터 설렁탕을 끓여낸 커다란 솥이 있는 작은 집이 아닌, 대형체인점으로 가서 어린이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켜주고 나도 한 그릇 시켜 먹는다. 아이와 먹는 설렁탕은 급하다.

대신, 혼자 먹는 설렁탕은 어쩐지 슬프다.

나는 그 마포의 그 작은 설렁탕 집에서 고깃내를 실컷 맡으며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설렁탕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설렁탕 집으로 나를 데려가 설렁탕을 사 먹였던 늙었던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마포에서 설렁탕을 먹을 때 마다 아버지를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마포를 떠나 다시 그 집에 가서 설렁탕을 먹으려면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는 이미 이 나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마포에까지 가서 설렁탕을 먹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체인점에서 급하게 밥을 먹을 뿐이다.

밥을 벌었는가. 오늘 나는 충분한 밥을 벌었는가. 나를 위해 밥을 벌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 또 한 때 나를 위해 밥을 벌었을 두 사람을 위해, 나는 가만히 설렁탕을 바라본다.

 

2009. 12. 

 

이성복 새 시집 – 래여애반다라

빛에게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부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 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 거지,

아무도 그 잠 깨워줄 수 없고

아무도 그 목숨

거두어 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그 눈물 마르면

빛은 돌아가겠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죽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빛이 있을까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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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2013. 3. 

MADE IN CHINA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후배들을 만났다. 후배 한 명은 우울증이 온 것이 아닌가 고심하고 있었고, 다른 한 후배는 그런 정신적 괴리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대화를 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의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못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소를 옮기면서 후배와 함께 잰 걸음으로 호텔의 상가에 들어갔다. 그 호텔의 상가는 남대문 시장의 수입상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므로, 적당한 가격에 아이에게 어울리는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핸드백과 스카프, 빅사이즈 옷과 셔츠나 넥타이를 파는 점포를 지나 나는 장난감 가게 앞에 도달했다. 환호성을 지른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멋진 자동차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도 있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 자동차도 있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성인 남자의 엄지 손가락만큼 작은 자동차 6대가 한 개의 비닐지갑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약국에서 산 어린이용 비타민제에 끼워져 있는 자동차와 동일한 제품 같아 보였다. 아이는 자동차가 맘에 들었는지 제 손에 들고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잃어버릴까 봐 – 라고 말하며 자동차를 쉽사리 꺼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비닐 지갑 속으로 자동차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분주한 식당에서 속사포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며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드문드문 대화를 빠르게 이어갔다. 후배와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우리는 대화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제 손에 자동차를 들고서 쫄랑 쫄랑 나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자동차들을 제 아빠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슝- 하고 나가는 자동차가 신기했던지 한 참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많은 미니카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지 책장 사이에 쑤셔 박아 나름대로 숨겨 놓기도 했다.

 장난감을 산 지 이틀이 지난 날, 나는 아이와 자동차를 함께 가지고 놀았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전적으로 아이가 같이 놀자고 매달렸기 때문이었는데, 몇 개의 자동차는 이미 더러 고장이 나 버려서 뒤로 당겼다가 놓아도 앞으로 가지 않았고, 몇 개의 자동차들은 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는 자동차들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 보았다.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조립을 했을까 싶을 만큼 작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자동차의 아래쪽엔 MADE IN CHINA 라는 글씨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화학물질 냄새를 맡아 가며 이 자동차를 조립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삐뚤게 붙여진 자동차들의 스티커들을 보다가 손톱보다 작은 스티커를 사람 손으로 붙였을 거라고 확신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왔다.

 누군가 이 자동차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집으로 돈을 부쳤으리라, 누군가 그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 피를 토했을 지도 모르겠다. 인권유린의 사각지대라는 말 따위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 것을 만들었으리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좋다고 신명 나게 웃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오래 전 나는 사탕을 먹을 때마다 신경숙의 소설을 생각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짝꿍의 엄지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뒤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이 그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짝꿍은 나는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데 하루에 몇 백 개씩 사탕을 리본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뒤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조용히 손을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리본 모양으로 묶여진 사탕을 먹을 때마다,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에 달콤함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진다. 누군가 생산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 그 어떤 단상도 할 수 없는 삶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과연 나는 그들이 만든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들의 인권을 위해 내가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쳐들어 왔다. 나는 자동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이걸 봐봐. 이걸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봐.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고질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일 게다. 즐거움 속에 숨겨진 인생의 비애를 포착해 내는 기질은 사춘기시절 감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수반된 것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런 삶에 버거워 하고 있다. 왜 나는 좀 더 단순하게 살 수 없는가, 그저 이건 MADE IN CHINA 니까 벌써 고장이 나버렸잖아. 하고 넘겨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과연 양심의 소리인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생업의 현장에서 밥벌이를 했던 나의 비애가 가져다 주는 자기 연민의 확대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아프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그들이 행복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아이와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뒤로 힘껏 당겼다가 손을 놓는다. 자동차는 급회전을 하면서 저 멀리에 가서 부딪히곤 했다.

 이미지

2009. 12. 

직업의 기로에서 서서 야근없는 세상을 꿈꾸자

1.

30대 초반
누가 나에게 직업을 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적성”이라고 대답했는데 나보다 20년은 더 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직업선택의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2.

생각해보면
적성이라는 건 근무조건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만약에, 좋은 학교 비국영수과목 교사인데, 급여는 연봉 6천 정도 되고, 30평대 주택을 제공하고, 방학은 유급으로 칼 같이 쉬고, 애들도 사고치는 놈 하나도 없이 건전하고, 교사잡무 하나도 없고, 교장마저 민주적이라면.

과연 몇 명이나, 그 직장을 마다하고 “적성에 안 맞아서 못 다니겠다” 하겠는가.

굳이
교사를 예를 든 건 교과외 잡무 고려하지 않고 학교선생이 만고땡이라는 편견들 때문이다.

연봉 1억짜리 의사인데(종합병원에서 이 정도 주지도 않지만) 종합병원이라 하루에 2시간 자고 과장이 완전 개새끼라 허구헌 날 불려가 조인트 까이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동료들에게 왕따 당해서 맨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도 이 사람이 과연 연봉 하나 바라보고 버티겠는가.

3.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좋은 일은 계속해서 칭찬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들 하지만 티비보고 놀고 먹는 거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그런 게 직업이 되지는 않는다.

좋아하긴 하는데 타고난 재주가 젬병이거나 죽어라 노력해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

강풀이라는 만화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었지만 몇 년을 해도 그림이 별로 늘지 않는다. 본인도 고백한 것이 가장 큰 컴플렉스가 그림 못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전공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도 했는데 강풀은 그림보다 스토리다.

그렇다고 강풀의 스토리가 박제동이나 허영만 스타일도 아니다. 강풀은 딱 웹툰에 어울리는 그만의 스토리에 그만의 그림이 맞는 거다. 자기 분야를 개척한 셈이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피나는 노력을 해서 큰 성과를 이룬 셈인데.

이 사람은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중적 스토리를 잘 짜내는 재능이 있다. 그건 이야기꾼의 소질이 아닐 수도 있다. 시대를 잘 읽거나 다른 사람과 공감을 잘 하는 성품과 때로는 유치하고 깊이 없이 잘 흥분하고 선동하는 재주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 본다.

되고 싶은 게 미스코리아인데 팔다리 짧고 얼굴이 타고나게 크다면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미스코리아가 좋다면 그와 관련된 분야중에 다른 일을 하면 될 것이다.

4.
예전에 통기타들고 한밤중 시내를 쏘다니며 밥벌이를 하던 시절에 내가 따라다니던 9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노래판이 개판이니 어쩌니 하던 나에게 그 언니가 물었다.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글쓰는 거”
“그럼 뭐 글판은 깨끗할 거 같냐? 다 똑같애. 어디가나 개새끼는 존재한다. 니가 그 시궁창에서 버틸만큼 좋아하는 거만 할 수 있는 거야.”

돌아보니 그랬다.
노래와 무대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은 모두 그 판에 남았고 나는 도망쳐 나왔다.
아이돌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5.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딴지라디오의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춘심애비가 한 말은 그거다. 직업은 “덕질”의 승화.

덕질이라는 말은 오타쿠 – 오덕- 의 통신의 변형체로 좋아하는 일에 매니아급으로 매진한다는 말이다. 약간의 편집증을 동반하기도 하는 취미를 말하는데, 결국 이런 덕질의 결과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덕후들이.. 판타지소설과 무협지, 게임이나 드라마로 먹고 살 수 없을까 궁리한다.

그앓실에서 주장하는 바는 덕질이라 함은 좋아하는 일이고 대단히 몰입하게 되는 일인지라, 중간이상 가지 않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에 어이가 없어보여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덕질의 결과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 그림을 그리던 뭘 만들던 글을 쓰던, 그건 에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해내기가 상당히 어려운 지리멸렬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수나 박사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도 덕질인거다. 별자리만 보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것도 덕질이고, 운 좋으면 그 덕질의 결과물로 천문학자가 되는 게 정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6.

문제는 먹고사니즘이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정말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세상에 모든 사람들 중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 프로나 되나. 전혀 없지 않나. 한 5% 되나? 라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다시 세상을 고요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에 붙인 채 사람들을 바라봐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거 같다면, 그 반대급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와 저건.. 나는 때려죽여도 저건 못 해. 하는 종목들 말이다.

채식주의자가 정육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알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주류감별사를 할 수는 없다.
야채를 파는 일이나, 그저 회사에서 종이만 들여다 보고 있는 일도 어느 정도는 다 견딜 만 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인 것이다. 이상적인 직업은 대부분, 반절은 놀고 반절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누가 돈도 주면 좋을, 그런 것들을 말한다.

40-1. 지금 이 시점에 생각하건대, 이상적인 직업은 없다.
이상적인 밥벌이를 하는 사람은 지독한 덕후이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데 누가 건드리는 경쟁자도 없어서 돈 걱정을 안하고 살도록 태어난 천하의 행운아이거나, (예를 들면 100년짜리 저작권을 보유해서 매 년 억대 이상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아니면 뼈를 깍는 노력으로 오로지 드라마 주인공만이 가질 수 있는 지독한 집중력과 몰입력을 발휘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매우 기괴한,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이상한 인간일 수도 있다.

결론은 그거다.
이상적인 직업은 없다.
할 만 하니까 밥 먹고 사는 거다.
이 짓 하다가 뒈질 거 같애. 그러면 그만 두는 게 맞다.

그러나,
약간의 불만, 약간의 불화, 조직간의 약간의 갈등, 거래처의 개새끼, 김부장 썅노무새끼. 이런 이유일 경우, 그런 이유로 인한 전업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한다. 개새끼를 처단하고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드럽고 치사하니 내가 여기를 떠나야 하는가. 혹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지경인가 아닌가.

7.

그러나 2013년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직장의 문제와 이직, 인생뒤집기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이 직업관을 가지지 못하고 40대와 50대를 송두리채 날리고 환갑이 되어 퇴직을 한 다음에 아. 이제 너무 기운이 빠져버렸는데, 자기 직업에 어울리는 일을 찾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직업관에 대한 정확한 교육의 부재,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하도록 바쁘게 휘몰아치는 사춘기, 또한, 직업에 귀천이 있으며, 직업엔 연봉차이가 있으며, 그리하여 그게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행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으리라고 강요당한, 말도 안되는 교육을, 게다가 12년이나! 존내리 길게 받았던 것이다.

2002년 이후라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그리고 이전에 있던 IMF로 인한 정리해고, 이제는 염치도 송구스러움도 없는, 당연한 정리해고 인원감축으로 한 사람이 서너명의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런 일들이 당연해졌고 그 시스템에서 세상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게 지금의 30대 이상의 직장인들이다.

과다업무.
그러니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거다. 열정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는 과중한 업무가 몰아치는 거다.
좋아하지 않고, 미치지 않고, 제정신으로 즐겁게 출근하고 퇴근할 수 없는 업무량.
야근과 특근, 주말에도 자진하여 회사를 나가야 하는 미친 업무량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아 나는 이 일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라고 살짝 뇌를 틀어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8.

그리하여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열정이 없는자는 뒈져도 모름” 이라고 안면을 까고 있다.
그건 모두 누군가가, 집약된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니 왜.
왜 늘 뜨겁게 살아야 하지?
그렇게 부글부글 끓으면서 굵고 짧게 살다가 일찍 죽으면 누가 좋은거지?
병원과 장례식장과 각종 상조회와 일회용품을 만드는 중국의 공장들?

좀 천천히 살면 안되나?
좀 놀면서 살면 안되나?
누구나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건데, 그렇게 다들 미쳐 날뛴다고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말이다.

9.

최근에 제주에 아무 생각없이 내려가는 청년들이 많다고 들었다.
감귤농장에서 귤을 따면 하루이틀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작년부터 내 주변의 30대 초반들이 하나 둘씩 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모아둔 돈푼이나 있으면 자기계발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래저래 복장 터지는 마음으로 몇 건의 아르바이트로 연명을 하고 있다.
부모님의 집에서 다음 행보를 구상하는 친구들도 있다. 내 주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내 주변의 주변도 그러하다.
결혼하고 가장이 된 40대들도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경우가 늘어난다.
기술이민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이미 나가 있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 나라에서 영구히 뭘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는 자는 매우 적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20대 이상 젊은 청춘들은 대부분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으면 떠나야지 라고 마음의 보따리를 꽁기꽁기 싸고 있는 거다. 국가의 큰 인력이 되는 2-40대들이 이 나라를 슬금슬금 떠나고 국민연금에 탈퇴하고 나면, 이 나라는 노인들의 나라가 되겠지.
386은 늙어가고 일할 사람은 없어질 게다. 젊은이들은 어디선가 내가 왜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길 원할 지도 모르고, 그 중에 여전히 미쳐 있는 뜨거운 인간들은 세상을 주도하며 살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필요한, 야근에 미친 한국의 젊은이들은 모두 사라져 있을거다.

10.

취업과 이직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의 수많은 동지들에게 이 글을 바치며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티비를 줄이되, 특히 예능프로그램을 삼가하라.
연예인 기사를 읽지 마라.
여성독자를 타겟으로 한 월간잡지를 읽지 마라.

예능프로그램과 연예인기사는 매일 매일 “니 인생은 찌질해” 라고 강조해 줄 것이며
월간지는 “너는 정말 간지가 안나” 라고 강조해 줄 것이다.

이런 악의 축 세 가지만 끊어도, 세상은 조금 편안해진다.
개의치 말고 거침없게,
열정? 난 피곤하니 천천히 가겠다. 라고 말하며.
야근없는 사회를 위해 오늘도 누워보자. 뒹굴뒹굴.

2013. 2. 20.

안녕 새.혼.

설날 연휴.
아이와 함께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서 한옥의 풍경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느즈막히 출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행사는 끝물이거나, 이미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지인의 집 근처에 차를 대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이는 차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아이를 깨웠다. 다 왔다. 다 왔다. 자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 졸려. 엄마 졸려를 반복하던 아이는 그래도 새로운 나들이에 기대가 되었는지 금새 잠을 떨치고 일어나려 노력했다. 아이를 차에서 끌어내 길을 걷다가 장갑은? 이라고 물으니 차에 두고 왔다고 한다. 다시 차에 돌아가 아이의 장갑을 꺼내는 순간, 뒷 문이 열리는 자리에 오래된 새의 사체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음을 외면했다.

세상에 죽어나가는 것이 어디 한 둘 뿐이랴. 하늘을 나는 새가 땅에 떨어져 죽는 일은 언제나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그들도 결국은 죽고 나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순리인 모양이다.

한옥마을에서 연을 만들기도 하고 이리 저리 한옥을 구경하며 차례상 지내기의 이야기도 듣던 아이는 신이 났다. 오징어도 뜯어먹고 솜사탕까지 손에 쥐었다. 친구를 만나러 다시 차에 올라탈 때 아이에게 말했다.

“너 차에 탈 때 뭐 발견한 거 없어?”

“뭐?”

“거기 죽은 새 한 마리 있는데.”

“어디?”

아이에게 차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면 보일 것이라 말해주었다.

아이는 차 문을 다시 열더니

“어 진짜네. 새가 죽어 있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종알댔다. 죽음에 대해서 큰 경외감이나 큰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거부감따위 없이.

“엄마 엄마, 이제 저 새의 영혼은 다시 하늘로 간거야? 그럼 저 새의 이름은 무엇이라 지어주지? 새의 영혼. 이니까 새.혼. 이라고 지어줄까? ”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이자 아이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안녕 새혼아. 잘 있어. 다음에 또 만나. 하늘나라에 잘 가.”

 

할머니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고 장례식장에 도착해 눈물을 그렁거리던 일곱살의 손주는 해를 넘겨 여덟살이 되었고, 이제 사람도, 새도 그 영혼이 살아 하늘로 도달하리라 믿는지도 모른다.

안녕. 새혼아. 하늘나라에 잘 가. 훨훨 날아가렴.

이치를 깨닫지 않아도, 무엇인가 배우지 않아도 깨닫는 아이.

아이의 영혼은 무엇이라 이름지을까.

 

2013. 2. 14.

무가치의 의미

고통과 폭력의 치하에서 매일 매일을 살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억압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하는 상태에 빠져들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되도록 고통받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우연치 않은 계기로 그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때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자신이 얼마나 폭력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왔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 하나 주워올리는 고통의 조각들은 생명이나 재산을 담보로 스스로 얼마나 무력하게 살아왔는가를 비수처럼 정확하게 아픈 곳을 다시 찔러준다.

그 고통의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경험치를 가지고 연마를 해왔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 아픔을 일일이 드러내어 치료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완전히 넋을 놓기도 한다.

때로는 없는 자아를 창조해내어 정신질환자가 되기도 하고, 무기력에 빠져 다른 중독에 빠져 고통을 회피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정서와 정신 장애에는 분명한 폭력의 이유가 있다.

한 자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타인의 행위는 폭력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이 중에 신체적 폭력 외에 언어폭력, 방임, 통제 등도 포함되어 있다.

때로 한 공동체에서 정신적 나약함을 보이거나 특별한 정신장애를 보이는 경우는 가장 정상적이고 윤리적이며 비폭력적인 자아를 가졌을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 폭력의 치하에서 인정받는 방법은 같이 폭력을 배워 가해자의 아바타가 되는 것인데, 이런 개체는 그 사회에서 주목받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즉 영웅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사람이 갖게 되는 여러가지 고통은 대부분 하나의 큰 이유로 통합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 한 인간의 존재와 존엄성 자체에 대한 가치를 잔인하게 묵살당하고 호도당했을 때, 사람은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그 죽음을 실천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아의지와 실천이성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보이고자 애를 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맞서 버텼던 자들은 대부분 극단적 종말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애초에 폭력의 가해자가 생존하는 한, 이러한 죽음 역시 다시 한 번 몰가치 해지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승리는 살아남아 버티는 자의 것이고, 한 번 자각된 폭력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순리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살아있는 그 자체로 존엄하여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도시의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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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내 신변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레스 저항력이 약해지는지, 이제는 몸의 증상으로 치환되는 일이 너무 잦아지는 중이다.
사소한 일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진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까지 아파져 급하게 휴대폰 어플을 켜고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극장에 영화예매를 했다.
바지만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외투를 챙겨입고 부랴부랴 어두워 지는 밤길을 달려 극장까지 오는 길에 운전을 조심해야겠다 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귀향이 시작되었는지 도로엔 차가 그득했다.
하늘은 푸르스름하고 땅은 네온사인과 차량불빛으로 온통 붉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 엄마에게 쉬- 쉬- 하며 까치발을 들었다. 귀엽게 생긴 그 아이를 보고 “아이고 어떻게 하지?” 하며 말을 건넸다. 아이는 수줍은 듯 제 엄마 뒤로 숨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극장 매표소가 보이는 장소에서 애기엄마가 두리번 거리기에 화장실 방향을 알려주고 예매해 둔 표를 기계에서 뽑아냈다.
영화는 두 시간일 것이고 저녁은 아직 먹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팝콘판매대에서 핫도그와 사이다를 시켰다. 음식을 파는 애들은 하나같이 날렵하고 얼굴이 작고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다. 군대도 안 갔다온 거 같은 소년도 청년도 아닌 사내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팝콘이며 탄산음료를 뽑아냈다.
핫도그는 내가 예매한 영화 홍보용 포스터로 둘러 싸진 멋드러진 지함에 들어 있다. 그 박스를 한참 들여다 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영악하고 영민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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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은 의자 앞에 두 어린아이가 앉아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었을까. 두 아이는 남매 같기도 하고 쌍둥이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아이패드 미니 정도 되는 작은 타블렛을 들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영화 광고판 앞으로 가서 섰다. 여자 아이는 검은색원피스 스타일의 패딩코트를 입었고 남자 아이도 검은색 패딩 다운 자켓을 입었다. 이 시간에 영화관에 아이 둘만 있는게 이상하게 느껴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핫도그 지함을 바라보다가, 또 영화 안내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을 바라보았는데 저만치 서 있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묘하다. 남자 아이가 울고 있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찍어누르고 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달래는 듯 하다. 확실한 건,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의 아이 둘이라는 것이다. 방치, 방임, 이런 단어들이 생각났다. 주변의 사람들은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두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부모들은 어디에 간 것일까. 아이들은 이 시간에 저 비싼 기기를 들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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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에서 영화가 끝난 모양이다.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나오며 아이들을 끌어 안았다. 여자 아이가 제 아빠로 보이는 파란 점퍼를 입은 덩치 큰 남자에게 팔을 휘둘렀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고 항의하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 아이는 연신 눈물을 닦아 냈다. 퍼머를 한 단발머리, 고운 얼굴의 엄마가 사내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울고 있었다.
남들이 볼까 얼른 눈물을 훔쳤다.
왜 내가 울고 있는가.
2013. 2. 8.

동물원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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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과천 현대미술관

20,000원 내고 멤버십 갱신

국립미술관 기획전 무료입장.

임충섭 개인전

그리고 2011 소장품 대전. 

 

현대미술관은 가는 길은, 그 길이 수려하고, 그 길이 멀고, 그 길이 고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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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감을 받고 온다. 

오늘도 두 세시간, 

푹 쉬고, 많은 것을 머릿속에 넣고 가슴을 비우고 돌아왔다. 

가까이에, 그리고 이 사회에,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의 주체는 미술관이다. 

동물원 옆 미술관의 주체는. 동물원이다. 

 

2013.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