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깃발을 내려라.

진보나 보수는 성향과 철학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가치는 아니다.
단지 이 나라에서는 예외인 것이 보수를 자칭하는 것들이 파렴치범인 경우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인데, 진보를 자칭하는 것들 중엔 더 파렴치한데도 불구하고 사회 중심에 있지 않고 비주류로 비껴나 있기 때문에 덜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사회불만이 진보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회불만의 일부는 개인불만에서 출발해 죄책감과 공감능력으로 포장되어 발전할 때 타인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타인의 힘을 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설득이다. 설득은 논리와 감성이 고루 자격을 갖춰야 가능하다.
공감능력과 죄책감이 진보의 무기라면, 자수성가형 노력과 수치심이 보수의 무기다.
죄책감은 수치심보다 더 공감력을 이끌어내기 쉬운 집단의 성격을 띈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일로 전환되기 쉽다. 수치심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지만, 죄책감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보수적이다.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성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이다. 그런 이유로 진보는 늘 보수에 밀리는 바람이 되기 쉽다.

최근 들어 진보입네 하고 여러가지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 느낀다. 물론 나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을 거치기 전에는 그러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있었고 그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말하자면 나는 옳은 가치를 믿는 사람, 즉 나는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 여기서 비약된 논리는 나는 곧 “옳은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자기가 믿는 가치가 너무나 옳아서, 타인들의 의견- 반대파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들은 모두 미쳤고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며 그들은 모두 사리판단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진보는 진보가 아닌 자를 쉽게 욕하고 쉽게 밀쳐낸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진보가 쉽게 욕하는 “수꼴”과 다를 바 없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고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귀를 닫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무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귀를 기울여 듣고 반대진영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조근조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연대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자칫 잘 못하면 패거리를 형성하겠습니다. 가 될 수 있다.
우리 편이 되어주세요. 라는 문화는 김어준의 곽노현 쉴드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김어준은 바로 이런 식의 패러다임을 전복시켜버리는 가공할 능력을 지녔다. 우리끼리 편을 먹고 저들을 싸워 이기자. 라는 논리가 정당하게 들리는 건 그 때부터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를 치르고 대한민국에서 “진보”라 일컬어지는 진영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나라에서의 보수/진보 개념에 대한 논쟁은 일단 미루고 편의성을 위해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고 앉아 세상을 휘젓는 꼴이 보기 싫어 억울함이 하늘꼭대기까지 닿은 비새누리당진영이 외친 구호들은 한마디로 찌질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그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한 패이기 때문에. 라는 논조는 아무 동의도 얻어낼 수 없다. 이 나라의 반이상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평론가가 된 SNS 대한민국에서, 이제 그 자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한 때 나도 한 패거리였던 진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래서는 또 망하는 길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종북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도 외롭고, 우리도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함만 지르고 있다. 여전히 깃발을 높이 세워 북을 치며 전진한다. 그리고 소리 높여 구호만 외친다. 그들은 그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필패다. 그리고 몇 몇 진보의 패거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 부동층으로 옮겨가며 정치에서 멀어질 것이다. 깃발을 내리고 주저 앉아 귀를 열어라. 지금의 반 한나라당 정서는 여전히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떼로 보일 수 있다.
2013. 5. 27.

외로운 곁

“글자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게 아니고, 혼자 뗀 셈인데요. 4살 지나서 엄마가 디즈니 명작만화 전집을 사주셨어요. 처음 읽은 책이 신데렐라. 엄마가 그걸 읽어줬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번이거든요. 아마 몇 번 더 읽어줬겠죠. 하루는 다시 읽어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아, 그 때 4살쯤 맞아요. 엄마가 임신중이었어요. 뱃속에 동생이 있었으니까. 저보고 읽어준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야기를 맞춰보라고 하고 주무셨어요. 그래서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지어서 읽고 하다가 글자를 뗀 거 같아요. 그 때 그 책을 다 읽었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금성출판사 위인전집을 사줬는데, 24권짜리였거든요. 1권에 두 명씩 붙어 있는, 한 300페이지 조금 안되는 책이었어요. 그 책을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읽기 시작해서 다 읽었어요. 그 전에는 큰 집에서 안 본다고 버린다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얻어왔는데, 백과사전이 원래 검색기능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읽는 책인 줄 알고 다 읽은거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학교 들어가서는 교과서를 다 외워서 다녔구요.

“책을 읽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버려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방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가요?”

아 맞아요. 4살이 되기 전엔 소꿉장난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싫어했어요. 제 장난감에 흙이 묻잖아요. 아이들은 풀을 뽑아다 빻고 찧고 하면서 노는데 장난감에 물이 드니까. 그래서 밖에서 안 놀았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20원을 주는데, 그걸 가지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사요. 그리고 하루종일 그걸 오려요. 다 오리고 가지고 놀면 해가 져요. 그 종이인형은 박스로 들어가죠. 그럼 그걸로 유효기간은 끝난거예요.

“혼자 있었네요.”

예. 그러니까 집안이 폭삭 망해서 시골로 내려갔을 때,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들하고 못 어울렸어요. 그러니까, 제가 구경거리였거든요. 일단 제가 어릴 때 피부가 많이 희고, 엄마가 옷을 무척 중요시하니까, 무척 튀는 옷,고급스럽고 예쁜 옷을 입었을 거예요. 그 동네로 이사간 지 얼마 안되서 동네에 공유되는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눈을 들어보니까 동네 아이들이 저를 삥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은 하얗고 옷도 깨끗한 걸 입고, 그 동네 아이들하고 너무 다른 아이였던거예요. 그 때는 피부가 희면 무슨 병자처럼 생각해서, 마치 황순원 소나기의 여주인공같은 취급을 받았어요. 어디 아프냐고 묻고 사람들이. 학교에서도 백혈병 환자라고 소문나고 그랬어요.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는데. 친구가 없었네요.

하루종일 혼자 있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왜 나는 늘 혼자였던 걸까.

기억나는 친구도 없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안수련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학년 2학기때 전학을 갔다. 그 친구가 한국일보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을 내가 대신 받아 간직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모든 짐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기 전까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는 늘 아이들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는 지혜가 살고 있었고, 그 친구와 가끔 놀았지만, 지혜야 종이인형 사러 가자. 라고 그 집 문을 두드리다가 목사님인 지혜 아빠가 “너는 어떻게 매일 종이인형을 사러 가니??”라고 윽박질렀을 때, 그 날로 나는 지혜를 찾아가지 않았다.

특별한 아이로 길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는 너무나 특별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고, 그 아이들은 모두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반장도 줄곧 했지만, 누군가를 기다려 같이 학교를 가거나 하교길에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오는 건 초등학교 5학년때쯤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절친이라고 할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4학년때는 오후반일 때 용태라는 녀석과 매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겨루기 시합을 했다. 언젠가 학교 앞에 빚쟁이가 찾아온 이후로 부리나케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잠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5학년 때 따돌림을 극복하고, 그 아이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때쯤에, 아마 그 때부터 집에 누군가와 같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6학년 남자애와 시비가 붙어 격렬하게 몸싸움을 했고 피 터지게 싸워서 동네가 뒤집히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결국 그 싸움의 끝에 엄마가 야구배트를 들고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중, 다시 한 번 패거리에서 내몰리는 따돌림을 당했고, 나는 교회와 학생회 일에 충실했다. 친구는 없는데, 늘 반장이었고, 따돌림을 당했는데도 학생회 간부를 맡았다. 중학교때 가장 친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내몰린 이후로, 중학교 때 친구들은 고등학교때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따돌림 이후에 나는 언제나 커다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10명이 넘는 모임을 주도했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사람들은 내가 모두 즐겁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화끈하다고 생각했으나 미치도록 떠들고 난 공허함은 술 외에 다른 걸로 채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건 아마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며, 몇 번의 배신을 경험한 것 가지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 사진속에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리고 사진속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걸 깨달은 지 몇 년이 지나서였다. 요즘은, 사진속에 사람이 있거나,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찍기도 한다.

그 시절이 슬펐다거나, 참혹하다거나,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랬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참으로 외로웠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내 곁을 내어줄 줄 아는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신도,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행동도, ‘그래 너는 그 정도의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할테니.

더 나아지고 싶은 생각도,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인지 규정할 수 없기에 바라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지 않다.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 도배될 수 없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다는 것. 그저 이렇게 흘러왔고, 지금 여기 있다는 것 뿐이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해졌던 그 시간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서, 좋다고 느끼는 것 뿐일게다.

문제는 외로운 것에 익숙한 사람의 곁은, 언제나 춥다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의 주변에 맴도는 외롭지 않은 사람들도 금새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3. 5. 22.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다에 대하여.
이해하다.
그려 니 맘 안다.
理解。이치를 따져 파헤치거나, 남의 마음을 알아듣고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인다가 사전적 의미.
영어로는 understand.
아래에. 서다.
Understand를 적어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절대 시작조차 불가능한 일.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늘 알고 싶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했는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때, 혹은 말해 주지 못할 때도 알고 싶었어.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자기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알고 설명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대체 내가 상상하지 않는 일을 왜 저지르는지, 왜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해는 사랑과 존중이 시작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억지로 이해한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당췌 일베를 이해할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디선가 어그러진 분노와 원망을 특정한 이슈에 몰아내고 있을 뿐. 본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그게 스스로의 영혼을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 모를 뿐. 그들이 어디서부터 억울했는지, 어디서부터 화가 났는지, 그 방법을 스스로도 찾지 못하고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 현상.
그래서 극도의 찌질함으로 무장하고 키보드 앞에 노예가 된, 사회적 병리현상.

세스코가 처리할 수 있을까.

2013.5.22.

저 새끼는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1930년대생 어르신들을 만날 일이 생겼다.

오늘 처음 자리를 가졌고, 내 딴에는 그 분들께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성지게 펼쳐주시지 않으실까 기대도 했으나 기대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단답형으로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고 가장 연세가 많으신 구순의 할머니는 한맺힌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1930년대.

이 분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일본제국은 곤고했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국가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나 개념이 생기기 전에 일본이름이 주어졌다. 학교에 가면 일본어를 배웠으며 일본선생에게 일본노래를 배웠다. 불과 여섯 살, 일곱 살, 많아봐야 열 살인 아이들에게 왜 일본이름을 썼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1930년대생, 그들의 부모들은 190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일제침략을 직접 목도한 세대일 것이다. 그들이 새파랗게 두 눈을 뜨고 국권이 침탈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나라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내부가 얼마나 썩어들어갔는지 이미 다 체감하지 않았을까.

한 국가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는 것은, 강력한 무력과 고도의 심리전이 같이 동반된다 하더라도, 어딘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물샐 틈이 없는 집구석에 도적이 들어오진 않으니. 어쩌면 일제시대의 개막을 환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점령을 환영한 자가 과연 친일이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폭압과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어찌됬건 무엇이 됬건 “새로운 것”이 도래하길 기다리지 않았을까 말이다. 물론 친일의 문제는, 폭력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동조했다는 점이 크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 정치적으로 독립을 주창하고 굳게 맞서 싸웠어야 하는 것은 국가구조를 지켜내는 명목으로 녹을 먹는 자들이지, 논밭에서 뒹굴고 해지면 피곤해 곯아 떨어지는 백성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30년대생.

이 분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학교를 다니고, 국가와 민족의 사전적 정의를 알게 될 때쯤에 해방을 맞이 하게 된다. 그리고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1945년 8월에,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 것인가.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웠던 일본어와 불과 20년이 안되는 세월동안 정겹게 써오던 두 개의 이름들, 그 중의 하나를 처참하게 밟아버리고 정들었던 일본인 선생과 이웃들이 (모든 일본인 개개인이 제국주의인 것은 아니므로) 있었다 한들 모두를 부정해야 하는 역동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매일 보고 다녔던 일장기를 불태우고 저들은 모두가 다 악마와 같은 것들이라고 한 순간에 세상이 뒤집혔을 때, 10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태평성대에도 자기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던 순간,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이들은 문맹이 된다.

배운 것은 일본어요, 썼다가 불이익을 당한 것은 조선어였으니, 그들이 조선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돌아왔을 때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이리저리 흔들렸고, 곧 전쟁이 터져 피란을 가거나 숨어 지내거나 전쟁터에 나가거나 살아 있기 위한 시간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무렵, 피폐해졌거나, 혹은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벌어, 먹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악착같이 조선말을 다시 익히고 갈고 닦고 학교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20세기만 그랬던가, 그 때 동아시아만 그랬는가.

인간은 그저 큰 물결에 휩쓸려 흘러 흘러 떠내려 간다. 그 중에 누가 더 근력이 좋아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끌어안는지, 그 통나무 위에 떠내려가는 누구를 건져 올리는지, 어떤 사람은 떠내려 가는 돼지를 실어 올릴 수도 있고 거센 물살 속에서도 실속 차리는 인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힘에 부쳐 물밑으로 가라앉는 자도 있다.

물길은 끝없이 흐르고 우리는 언제 헤엄을 치고 언제 고개를 들며 언제 숨을 쉴 것인가 결정하며 떠내려 간다.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할 것인가, 같이 죽기를 불사할 것인가 말이다.

소용돌이 치는 물결, 아래는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흙탕물속에서 끝없이 내몰리고 휘몰아치는 일. 그런 자아들이 모여, 타인은 과연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 지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한반도가 3면이 바다인데, 그 모든 바다를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의 모든 인간은 중앙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모두가 사대문안에 모여, 다른 놈은 어떻게 담을 타고 오르는가,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어떤 집단도 정당한 제도를 만들어 번호표를 끊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게 되는 정서의 출발.

그건 바로 “저새끼는 어떻게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는거지?” 라는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2013. 5. 20.

일본극우주의자들의 망언 및, 일베충 광주모독 때매 매우 속이 시끄러운 2013년 5월이다.

엄마의 일요일

일요일,

지난 달에 국립극단 안티고네를 예약했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할 일이 있고,

날씨는 더없이 좋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찬란한 일요일이였다.

 

예정대로였다면,

오전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하다가 여유있게 공연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어린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남편은 급작스럽게 출장을 갔고, 그 출장은 늘 급작스러우며, 일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사정과 거래처의 문제에 준하기 때문에 변경되는 일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외에는 없으며, 그런 급박한 출장이 잡히는 경우는 주로 내가 모든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는 결과가 있다.

금요일에 남편이 출장을 갔고,

나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아이와 놀고 시간을 보내고 밥을 해먹이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려고 매우 매우 애를 썼으며, 토요일엔 맛있는 콩나물과 쭈꾸미를 넣고 맛있는 탕도 끓여 먹었으며,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여유있게 연극을 보러 가고 아이는 제 이모에게 맡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순조롭지 않아 나는 늦게 일어났고, 아이는 뭉기적 거렸고, 애 이모도 마감해야 할 일이 있어 피곤한 상태라 일찍부터 애를 보내기가, 애한테도 내 동생한테도 미안해서 뭉기적거렸고, 1시간 10분 전에 차를 몰고 공연장으로 출발을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도 못하고 차를 돌려서 돌아왔으며, 마음을 비우고 아이와 함께 꽃구경이나 하자 하고 호숫가에 갔으나 아이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곯아 떨어져 버렸으며, 밥을 먹고 몇 가지 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9시에 아이를 재우고 나의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자 했지만 아이는 낮에 푹 낮잠을 잔 탓에 11시가 넘도록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11시 20분에서야 컴퓨터에 앉아서 미진한 일을 하나 마무리 했다.

이건 모두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건 가정의 경제를 백프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육아를 주로 담당해야 하는 환경의 문제이며, 그 와중에도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내 일을 하겠다고 붙잡고 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고등학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기지배 공부 해봤자 팔자 사나와진다” 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싶다. 차라리 배운 것도 없고 꿈도 없고 돈 벌어다 주는 사내 밑에서 고분고분하게 애나 키우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자기 존재가치 따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채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산다면 인생은 오히려 더 풍요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억울하다거나, 화가 나는 단계도 지났다. 그저 이제는 아, 아직 이 나라에서 배운 여자가 사는 것은 매우, 쉽지 않고, 팔자 사나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2013 4. 21.

라면의 중의

트위터에 들어가 봤다.
라면 얘기가 얼마나 있나 좀 보려고.
대한항공 비지니스석 라면 사진도 있다.
내가 이 사건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 건, “청장년층의 배알을 뒤틀을 만한 대기업의 상무이사”가 비행기 비지니스석에서 진상을 부렸다는 게 포인트다.

대중에게 질투와 시샘을 받기 충분한 자리인데 대부분 기업의 이정도 되는 이사들 중에는 일정 비율의 개새끼가 존재한다. (어머 개님들 미안)

1/5 쌍놈새끼 이론에 기반하는데 동서고금 어느 조직에도 1/5는 그러하다… 는 논리다.

평소에 저 쌍놈새끼 계급장 한 번 떼고 덤벼보자 하고 싶던 을분들이 지구최고 미인 승무원일 대한항공 여승무원을 괴롭히고 때리기까지 했다는 게, 남성들의 오빠의식을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다.
(보잉사 여직원이었어봐라 이렇게까지 안 됐다. 해외항공사 여승무원들은 건강함이 우선이지만 국내항공사는 일단 미모가 갑이다. 게다가 노선별로 미모의 등급이 있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몇 가지 댓글을 보다가 눈에 박히는 건 “비행기가 룸싸롱인지 아나” 라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룸싸롱에서 해장으로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하이의 전설적인 어느 마담은 삼겹살도 구워줬다더라. 향수병 달래라고. (룸빵문화의 전세계적 전도사는 당연히 한국) 어떤 새끼는 잔치국수를 달라고도 한다더라 해장국을 사오라는 새끼도 있다더라의 오래전 풍문이 기억났다.

포스코의 모체는 포항에 있고, 포항의 경제구조가 포스코에 있고, 그리하여 의문의 술집 여종업원 연쇄자살사건도 조용히 넘어갔었고, 에지간하면 다 그렇게 됨니더. 했던 르뽀 프로그램의 어느 아지매도 생각났다.

그래 이 왕상무는 룸빵이 생각난 것일게다. 어제 숙취가 안 풀려 죽을 찾은 것일게다. 숙취가 아니라 술이 덜 깼을 수도 있다. 아직도 룸빵인지 비행기인지 잘 구분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호재를 만났다. 국정원 사건과 남북문제 여러가지를 면피할, 애국적 사건이다. 대중의 공분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여승무원에게 라면을 여섯번 끓여오라고 했다고 신상털고 성지순례 하는 만국의 중생들이여.. 오늘 밤도 수많은 여성동지들이 당신의 상무님의 라면을 끓여바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새끼는 멸치국물 낸 잔치국수를 가져오라고 지랄을 하고 있겠지. 그래 오늘은 일요일이라 룸빵도 노는 날이겠지만, 월요일은 또 주말에 집에 있었으니 한 잔 빨아줘야 되지 않겠느냐.

대기업의 주요임원과 아름답고 고매한 스튜어디스와 테러에 히스테리 걸린 비행기라는 공간과, 게다가 밥도 스파게티도 아닌 그 흔해 빠진 라면이라는 게, 게다가 요즘 중요한 전략인 “라면 먹고 갈래요” 를 모욕하였으며, 향수와 성공신화를 동시에 자극하는 비지니스클래스의 라 면. 이라는 게 정말 팔리기 좋은, 매우 핫! 한 이슈가 되었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출근한 임원들이 무슨 결정을 내릴까 참 궁금하다.
왕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최소 1년간 라면 봉사를 해야 마땅한데, 기왕이면 당신이 다닌 룸빵 언니들한테도 좀 끓여주면 참 좋겠다.

2013. 4. 21.

회전목마

1.

사람은 근본적으로 보수성을 띄게 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회귀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흔히 인사불성 상태로 술을 마시고도 집으로 찾아 들어가는 걸 귀소본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예정이면 정신 못차리고 자다가도 희한하게 눈이 떠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시공간을 찾아간다는 얘기로 들린다.

2.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피해자가 되고, 학습된 분노의 방식으로 가해자가 된다고 한다.

폭력의 기억은 가장 큰 트라우마일 것이다. 그게 누구로부터 받은 것이든, 본인이 가한 것이든,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발휘되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가장 아픈 기억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3.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개인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된 부분을 복구하고 싶은 본능은 없을까

혹은,
그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리 어떤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단지 “익숙하기 때문에”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매맞은 어머니 아래서 자란 딸이 다시 그 인생 유전을 겪는 경우 말이다. 버려진 유년기를 보낸 장년의 가장이 다시 스스로 버림받기를 선택하는 경우 말이다.

학습된 무기력, 혹은 학습된 폭력의가해 외에도, 딱히 어떤 폭력의 기억이 없더라도 자기 과거의 어떤 특정한 부분으로 회귀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어찌저찌해서 돌고 돌아 다른 삶을 산다고 고단하고 지리하게 노력했는데 결국은 원점인 느낌 말이다.

4.

오래전에 장서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회전목마 라는 MBC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그 제목의 뜻은 돌고 돌아도 결국 원점이라는 것이었다. 두 자매가 지지리도 고생을 하며 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삶의 불행은 언제나 원점이었다.

그게 딱히 불행이라 하기도 어렵고 행복이라도 하기도 어렵더라도, 인생 전반에 걸친 하나의 주제가 있을 것이고 언제나 그렇게 비슷하게 지내온 한가지의 중심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 같은, 남들에게 평범한 행복이라든가, 남들에게 일반적인 일상 같은 게 너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져서,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 낯선 행복을 아무 생각없이 벗어버리는 일 말이다.

5.

그래서 결국은 외로움이라든가, 방치라든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회전목마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이 돌고 또 돌아 다시 외로운 상태로, 방치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나에게 가장 편한 밥반찬인, 굽지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스팸에 계란후라이 하나. 뭐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13. 4. 12.

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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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루가 추웠다. 나만 추웠겠는가. 그도 추웠을 것이고, 당신도 추웠을 것이고, 우리 모두, 조금씩 시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듯한 것이 생각나서 나는 설렁탕을 사러 간다. 검은 나의 차를 타고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광경을 본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야근을 하기 전 허기를 달래려는 남자들이 신발을 반쯤 벗은 채 앉아 설렁탕을 훌훌 먹고 있다.

외롭다고 말을 하면 그 뒷모습이 초라해보일까봐

쓸쓸하다고 말을 하면 내 신발의 뒷축을 감추고 싶을까봐

아프다고 말을 하면 앞선 자의 눈이 아련해 질까봐

오늘도 가면을 쓰고 하루를 지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긴 한 숨을 쉰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그 모든 대답은 나에게 있는데 애써 들여다 보는 시간이 엄습해오는 걸 느끼는 바로 그 때가 어스름.

침대맡에 앉아 일기를 쓰는 그 한적한 시간에 물밀듯이 밀려드는 안타까움에 대하여.

그럴 나이와 그럴 때가 따로 있다는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밀어내면서

최백호의 신보를 뒤적거리는 밤들이 이어지더라도,

그래 내일은 또 무슨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 다행인 시절.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여름은 멀리에 있다.

 

뒤틀리는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삐딱하게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휴대폰을 꺼내 그 어스름을 담는 시간. 그저 내가 기억하기 위해, 내 눈보다 다른 것에 의존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촘촘히 이어져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나이를 먹고 아이는 자란다.

2013. 4. 10.

 

내일의 전쟁, 오늘의 일상

내일 세상이 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가.

뭐 영국에서 염려됬는지 연락이 왔었다.
BBC 는 매일 매일 북한 소식 전하느라 정신이 없고, 미국은 CNN도 난리를 치는 모양이다.

나는 일단 전쟁은 나지 않는다. 라고 믿고 있긴 하다. 그 이유는

1. 본국보다 영국과 미국에서 더 수선을 떠는 게 매우 의심스럽고
2. 북한의 결속력이 그렇게 전력투쟁 할 만큼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3. 늘 사고치고 강짜 부리는 건 조직이나 사람이나 비슷한데 그들이 원하는 건 정말 전면불사 자폭이 아니고 뭔가 다른, 매우 유치찬란한 것일 경우가 많으며
4. 북한은 남한은 솔직히 쳐주지도 않고 자기들의 적이 미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고
5. 북/중의 관계상, 디펜스 21에서 논평한대로 한국 수도권에 중국인이 너무 많아 외교분쟁 가능하다. 여기 한 표 주고 싶고
6. 지금 전쟁분위기와 한반도 위기를 극도로 끌어올리면 양쪽 정부가 자리를 잡는데 매우 유리한 것이, 한국도 미국도 북한도 모두 정권 초창기라는 점이고
7. 동아시아내의 우경화는 필연적이고 이로 인해 권력자들은 우경화의 초석을 다지는 게 매우 중요하고
8. 이 국면에 조용하게 팔짱끼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도 무지하게 의심스러우며
9. 나는 음모론을 믿는 편이고
10. 전쟁 따위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내일의 불확실한 전쟁보다 오늘의 나의 하루가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불확실한 전쟁보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 훨씬 중요하고,
내 아이의 알림장이 더 중요하고,
이 새끼가 왜 매일 줄넘기 하기를 안 지키는가도 중요하고
내일 있는 딸래미의 모의수능도 중요하고
가계부에 어디 빵꾸가 나지 않았나 챙기는 게 중요하고
중요한 내용이 들은 내 하얀색 USB를 어따 처박았는지 찾는 게 중요하고
내일 오전에 있을 강좌 진행이 중요하다.

나는 내일보다 오늘이 중요하고 오늘 몇 시에 자서 내일 몇 시에 안 피곤하게 일어날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데. 그건 나에게 오늘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남편이 그런 말을 했었다.
젊은 아이들이 비전이 뭐냐고 묻는다고.
그러면 그는 “오늘은 버티는 게 내 비전이다” 라고 한다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전쟁처럼 치뤄야 할 일들이 많은 경우, 내일을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밀려닥치는 전화, 처리해야 할 일, 여기저기서 손내미는 요청, 챙겨야 할 일상들. 그런 것들이 복잡다단하고 회오리가 몰아치는데 언제 내일을 생각하나.

나이를 먹을 수록 걱정이 많아진다고 한다.
오늘 동네 어떤 언니는 애는 학원가서 저녁이나 되야 오는데 심심해 죽겠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심심해 죽겠는 일상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그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나이를 먹을 수록 걱정이 많아진다는 건 오늘이 한가해진다는 얘기일게다.
오늘이 한가하니 내일을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제도 떠오르고 그러는거겠지.

괜시리 쓸쓸해진다.
오늘이 한가해서 내일의 불확실한 전쟁을 걱정하는,
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나는 전쟁위기보다 더 가까이 와닿는다.

2013. 4. 10.

예술인에게 복지란 무엇인가

페이스북에서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쓰는 글.

내가 읽었던 글은 이거.

http://www.kawf.kr/notice/sub01View.do?selIdx=388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조금 더 얘기를 간단히 하자면 내 생각은 그렇다.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에 대해서 원론적인 생각은 피하고 싶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펼치는 예술의 장르가 바로 그의 언어다.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이 그의 언어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말한다.

물론, 그 중에 보편적 언어, 즉 지금 내가 쓰는 글과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익숙한 사람이 있지만, 보편적 언어 대신 다른 수단의 언어를 선택한 사람들이 주로 예술을 하게 된다. 그건 그의 언어가 보편적 인간의 언어의 범주를 넘어서거나, 보편적 언어가 그들에게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글쟁이는 글은 참 잘 쓰는데 눌변도 그런 눌변이 없는, 말씨는 엉망인데 글씨는 참 수려한, 그런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글도 대단히 훌륭하고 말도 대단히 훌륭한, 보편적 언어를 극대화 시켜서 언어의 예술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언어 – 라는 용어를 이 글에서 만들어 사용하기로 한다.

보편적 언어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편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를 먹는다. 어떤 이들은 기획이나 서류를 작성하는데에도 매우 젬병이기도 하고 일종의 공포증을 가질 수도 있다. 대화가 반복해서 어긋나다보면 누구나 그렇기 마련이다.

예술인복지법이라는 게 제정되고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선 행정적인 절차가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누가 예술인인지 구별한다는 거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인이라는 걸 과연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는 데뷔라는 것을 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이루어낸 어떤 성과물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전시회 경력, 공연 경력,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발표 매체가 어디인지 등등의 경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아니고 학교를 졸업해서 당장 뭔가 시작하려고 하는 아직 성과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혜택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부분을 보면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 지자체에서도 일자리창출 사업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 해 내고 있는데 이미 기존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듯 이것은 새로운 “비정규직 창출”에 지나지 않는다.

명확히 할 것은 예술가, 즉 작가와 기획자는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 작가이면서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 개인의 창작의 범주는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생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부분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펼칠 무대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빵도 먹어야 하지만 빵만큼 중요한 것이 개인의 작업이다. 개인의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려면 장소가 필요하고 그 장소를 사용할 비용이 필요하고 작업을 할 재료가 필요하고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린다. 만약 한 작가가 작가가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비용과 시간이 할애되기 마련이다. 작가에겐 비예술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법이다.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 복지재단과 같은, 예술인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자 하는 시도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에 놀고 있는 장소를 그들에게 사용하게 해주고 더 많은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해주고 그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금 갖추어 놓은 시설과 인력을 충분히 분배하기만 해도 큰 예산과 대단한 법제정이 필요없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대관료를 내야 하는 상업갤러리, 갤러리와 작가는 5:5, 운반비는 개인부담, 초대전인 경우 작품이 안 팔리면 작품 하나 기증하셔야 돼요. 뭐 이런 시스템. 공연장도 대관해야 하고 리플렛도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개인레슨이라도 하든가, 학원 강사를 뛰든가 생활고와 작품 생산 비용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홀대받고 천대받아도 내 작품을 세울 장소만 있다면 한 번쯤 손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젊은 작가들, 그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건, 많은 서류와 재능기부 정도가 아닌가.

행정적 절차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창작에 필요한 시간을 할애해서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으라고 할 게 아니고, 그들이 더 많이 작업을 할 수 있고, 그들이 더 많이 발표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인의 복지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하고,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작업실을 허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멀리 나아가리라고 생각한다.

자꾸 새로운 뭔가를 배워서 새로운 직군으로 진출하라고 하지 말고, 예술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것을 조금 버리고 사회로 나오라고 제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말고,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하지 말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가계부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걸쳐서 발휘되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아무리 창조경제를 한다고 해도 있는 거 홀대하고 새롭게 만들어 봤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다.

 

2013. 4. 10.

다 쓰고 나니 북받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