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12. – 미정이

열 손가락 가득
색색의 메니큐어를 바르고
칠판 앞에 서서
교장에게 이르지 말라던
여선생이 있었다

추천도서 목록을 파란종이에 적어
내 주머니에 넣어주고
작은 피크닉 옷장 하나 있는
자취방 구경도 시켜주던
입이 크던 서울대 출신 여선생

어느 날 나를 불러 바들바들 떨면서
자퇴를 해버린 내 짝이던 미정이
얘기를 했다
글쎄 걔가 동자승이 씌인 무당이었댄다
지금은 점집에 가 있대
나는 미정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는 나보다
열 세살은 많은 그 여선생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고 다니던 십자가 하나 주고 싶었지만
연락오면 전해드리겠다 대답만 하고
쪽문 달린 자취방을 나왔다

미정이네 집은 비어 있었고
아무도 미정이를 찾지 않았다
어른들은 미정이를 무서워했고
아이들은 미정이를 천박하다 했다

미정이는 가난한 집
돌봐줄 이 없는 가난한 내 짝
밥차려 주는 사람 하나 없어 소주만 마시던
눈이 길고 가늘던 내 짝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삶의 과거가 모두 보인다던 미정이는
열 다섯 나에게 뭐라 뭐라 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전 학교의 교무실을 털다 쫒겨나 전학온
나보다 한 살 많던 미정이는
이제 마흔 한 살이 되었을텐데
요즘도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과거가 보일런지
만날 수 있다면 술 한 잔 따라주고
이제 내 미래도 말해주면 안될런지

2014. 8. 31.

빈 집

빈 집

 

 

아이들이 물 마시러 들락거리는

이 집은 어쩌면 우물

 

두레박 깊이 내려 시원한 물 한 모금

아니면 이 집은 펌프가 달린 수돗가

마중물 부어대면 쏴아하고 내려오는

녹맛이 나던 지하수

 

벌컥 벌컥 마셔도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잘만 가던

시원한 여름날

 

꼴락꼴락 늙은 개가 물 마시는 소리

와르르르 내 입에 쏟아지는 물 소리

손끝까지 가득한 출렁이는 물소리

물소리 그리고 눈물소리

 

자판을 두들기는 손끝마다 물방울

바닷가 바위위에 맞잡은 손이 떠올라

깍지낀 두 손바닥 손금마다 땀방울

 

턱 아래로 흐르는 진떡한 물줄기

바닷가 바위위의 깻잎쌈이 떠올라

오늘은 어디서 파도의 물방울을 맞고 앉았나

 

쏴아 쏟아질 거대한 파도소리

모든 게 휩쓸려 세상조차 사라지길

뇌수에 가득한 파도소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도소리

쏴아하고 부서질 하얀 포말에

세상 모두 휩쓸려 태초로 가길

 

2014. 8. 24.

바다바람

입추가 지나면 바닷물이 찹다는데
주문진 아들바위 다리뻗은 두 연인
회 한접시에 소주 한 병
깻잎에 싸먹는 달큰한 생물의 삶
살아 펄떡이던 삶을 작살내고
오독오독 씹으며 오가는 웃음
맞잡은 두 손가득 이유있는 진땀들

바다멀리 옹졸한 하늘 아래
배롱나무 꽃 진다고
애업고 우는 미친 여편네
차디찬 바닷물이 나는 싫어라
아무 것도 보기 싫다며 얼굴을 파묻는데

어디서 날아오는 비릿한 바닷냄새
생살을 토막내는 거대한 해무
눈 뜬 날 것이 칼날을 세우고 달겨들면
배롱나무 아래 무수히 피어난
하루짜리 버섯보고
멍청하게 웃는 미친여편네

거품물고 하악대기 전에
약 두 알 털어놓고
차디찬 바닷물이 나는 싫어라
찝찔한 바닷바람 나는 싫어라
배롱나무 꽃 진다고
애업고 우는 미친 여편네

2014.8.23.

일요일밤 어떤 가족

유흥가 편의점 앞에 금발머리의 서양 여자아이가 늙은 남자와 공놀이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인가 싶었다. 편의점 앞 붉은 의자, 지저분한 탁자 앞에 아이와 머리색이 똑같은 금발의 여자가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탁자의 한 쪽 끝, 여자와 가장 먼 곳에 가장 싼 생수병이 놓여 있었다. 

유흥가는 일요일 밤이라 텐프로라고 쓰인 곳의 간판불은 꺼져 있었지만, 치킨집과 호프집엔 야외 탁자 가득 사람들이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물과 담배를 사서 나왔을 때도 아이는 계속 해서 그 늙은 남자와 공을 차고 있었다. 남자는 연신 웃고 있었다. 색깔이 들어간 어두운 안경을 쓰고 있었고 군복무늬의 반바지를 입고 초라한 쓰레빠를 신었다. 그에 비해 아이가 너무 반짝였다. 

아이가 소리높여 외쳤다. 
Daddy! Sixty two! mommy! Look!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였다.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던 여자를 다시 멀리서 바라봤다. 쉰살이라도 해도 괜찮을 얼굴이었다. 
아이가 안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늙은 개와 산책을 하며 다시 그 가족을 떠올렸다. 비록 남루한 차림의 늙은 아비더라도 그 어떤 젊은 아비보다 진심으로 즐겁게 아이와 놀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인상을 쓰고 있던 금발의 아이엄마는 단지 내가 본 그 순간에 잠시 인상을 지푸렸을 뿐인지도 모른다. 내내 기쁜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을 지도 모른다. 아이는 더 없이행복해 보였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을 보는 눈은 내 눈이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본 것일게다. 
좀 더 젊은 부모, 좀 더 세련된 부모, 좀 더 부유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안스럽다고 생각한 나의 시선에 내 욕구가, 내 불만이 가득 차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행복한 가족이 한가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왜 그것을 굳이 오해하고자 했는가. 

동두천

고등학교 때 학교는 서울이었지만 집은 경기도 양주에 있었다.

서양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는 동두천에 맛있는 피자집이 있다는 걸 알아냈고 우리는 새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두천에 가서 피자를 먹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매우 얇은 도우에 페페로니만 얹은 피자였는데 그 때 당시엔 그런 피자가 많지 않은데다가 제대로 된 모짜렐라 치즈를 사용해 그 맛이 엄청났다. 식구들이 모두 앉아 한 판을 먹고 냉동실에 넣어둘 요량으로 두 판을 더 사오곤 했다. 엄마는 가끔 새아버지와 단 둘이 동두천에 가서 피자를 사오기도 했다.
그 피자집은 철길 근처 허름한 단층건물이었다.
동두천은 그 때 무척 음침한 곳이었고 낮에는 문 닫는 술집들, 손님 없는 밥집들이 버려진 푸대자루처럼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그 길이 활기에 넘치는 시간은 통금이 풀린 미군 사병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었겠으나 고등학생인 내가 그 시간에 거길 방문할 일은 없었다.
피자를 먹고 나오면 피자집 앞 골목에는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놀고 있었다. 얼굴이 까맣고 고수머리인 아이와 노란 머리, 하얀 피부의 아이들이 낡아빠진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사방치기를 하기도 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한 아이. 까만 얼굴에 곱실곱실한 머리를 양쪽으로 높이 올려 묶은 이마가 훤하던 아이가 기억에 또렷하다. 나는 저 아이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알까 궁금했다.

훗날 남에게 그 때의 이야기를 했더니 너는 어디 6.25때 피난민촌에서 살다 온 거냐고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건 무려 1992년쯤이었다. 버려진 혼혈 아이들이 모여서 살던 아주 작은 보육원. 햇빛이 아주 쨍하던 날이었는데, 역사와 삶을 모조리 뒤흔들며 사람의 삶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언제나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50년전의 순간으로 100년전의 어느 날로 회귀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2014. 8. 12.

어떤 택시의 기억

늘 다니던 길이었다.
택시가 빙 돌아 먼 길로 우회하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니는 길이고 이미 한 달 반이 되어가던 길이다.

나는 흰색 면 블라우스를 입고 멜방이 달린 길다란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머리는 적당히 길었고 콘택트렌즈도 끼고 있었다.

나에겐 500원도, 1000원도 매우 귀중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택시를 탔느냐 하면, 지하철 역에서 그 곳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혐오시설. 분명 서울시내에 있었으나 그 곳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그 곳의 주변까지 가는 버스는 있었으나 나에게는 500원만큼 시간도 중요했다. 시급 1000원짜리 아르바이트에 늦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구치소앞에서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붉어진 얼굴에 질질 짜고 나온 눈물 때문에 이 자가 나를 우습게 본 게 틀림없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길을 돌아오셨다고.
원래 여기까지 2800원이면 충분하다고. 지금 4000원이 넘게 나왔다고.

기사는 룸미러로 나를 슬쩍 보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내는 요금대로만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
택시 정차장에 닿은 기사가 속도를 올렸다.
“내가 못 내려주겠다면?”

택시는 서지 않고 속도를 내어 다시 어디론가 달려갈 기세였다. 지하철역 근처 승강장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돌아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목소리로 긴 한숨과 함께

알겠어요. 다 드릴테니 그냥 세워주세요. 라고 말했다.

기사는 반대편 승강장에 차를 세웠다. 나는 천원짜리 네 장을 던지듯 내었다. 그 새 요금이 100원 올라 있었다. 나는 동전 몇 개를 더 꺼내 기사에게 쥐어주고 차 문을 세게 닫았다.

택시를 탈 때마다는 아니다. 가끔 아무 일도 없을 때 이 생각이 난다. 그 날 내가 택시에서 내리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열일곱살이었다.

2014. 8. 13.

주스, 피자, 거울

1999년

냉장고에 병으로 된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사다놓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집의 냉장고는 검은색이었고 같이 살던 여자의 것이었다. 나는 6천원쯤 하는 커다란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냉장고에 넣으며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병 주스를 사 먹을 수 있다니. 고생은 이제 끝났어. 다음은 파스퇴르 우유다.’

 

2006년

몇 년이 지나 도미노피자를 시켜먹던 날을 맞이했다. 이 비싼 피자를 먹을 수 있다니. 그 날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의 노동이 없이도 신용카드가 내 손에 주어져 있었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시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갖고 싶은 책을 계속 사도 모자람이 없었다.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도 중단되지 않았다.

‘이건 뭐지?’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사다 놓던 날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먹을 것은 넘쳐났다.

훨씬 더 힘들게, 치열하게,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자면서 일을 하던 날은 도미노피자를 시켜먹는 그 날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도미노 피자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정당하지 않는 세상이라 여겼다. 매일 매일이 꿈결이었다. 사람이 미치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 눈앞에 버젓이 펼쳐질 때였다. 왜 일하지 않는데 돈이 있는 걸까. 벌어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아는 데까지, 벌어 오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은 현실에서 과거의 나처럼 살고 있고 나는 계속해서 꿈속에 살고 있었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2014년

나 자신의 가장 비열한 치부를 마주하는 일은 구역질 나는 일이다. 차라리 평생 아무도 비난한 적 없이 살았다면 욕지기는 덜 할 것이다.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오만가지의 군상들은 작은 구더기처럼 꿈틀대다가 필요한 것들을 끄집어 내어 내 얼굴에 발라대는 것은 구역질 나는 내 치부의 어떤 조종자다. 오만가지 악과 오만가지 선이 한 사람의 영혼에 모두 깃들어 있다는 걸 알고 지냈더라면, 혹은 모르는 척 평생을 살면 조금 나았을까.

나 자신도 모르는 어떤 불편함이 계속 체증처럼 가슴을 짓누르다가 어느 날 그 불편함이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을 하고 어두운 밤 골목에 떡하니 나타나 씨익 – 하고 소름끼치게 웃는 순간이 털썩털썩 눈앞에 떨어질 때.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이놈의 거울은 청동으로 만들었나 아무리 닦아도 잘 보이지 않아.’

2014. 8. 16.

생존자

1. 아이들이 바다에 갇혀 사그라지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
그리고 19분 전 화요일이 되어서 참사 후 112일째다.

2. 아이들이 아이들을 괴롭혔다. 죽도록 때리고 죽고 싶을 만큼 놀렸다.
성인이 된 한 아이는, 총을 들고 세상을 향해 울었고 가해자가 되었다.
또 다른 아이는, 맞아서. 죽었다.

또 어떤 아이가. 불타 알아볼 수 없게 된 채. 죽었다.

3. 눈이 녹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겨울에도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4. 파도가 갑자기 몰아쳐서 그랬다 했다. 심신을 단련하러 간 아이들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5.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마지막으로 살아나온 사람은 청년이었다.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계산을 받고 점포를 지키다가 탈출 지시를 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물 아래 깔려 죽었다.

6. 부실공사 때문이라고 했다. 등교길에 암시롱도 않게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버스와, 다리 상판과 함께 강물속에 처박혔다.

7.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문을 잠궜다 했다. 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아니 아기들이. 불타 죽었다.

8.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죽고 죽이고 죽음으로 내몰린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가자의 아이들도, 이 곳의 아이들도 또 다른 곳의 아이들도.

9. 아디다스 월드컵 축구공을 사달라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 그 공을 누가 만드는 지 아느냐고 말해주지 않았다.
태극무늬가 들어간 축구공을 산 아이는 코를 골며 자고, 스무살의 반짝이는 아이들은 친구의 방에 모여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신다.

10. 지금 이 집에 있는 누구 하나. 생존자 아닌 이가 없다.
생존하라.
그저 산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다. 살아남으라. 살아남아, 살아남아, 욕이라도 하라.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은 시간까지, 웃고 떠드는 찰라 사이 사이에 뼈가 저리다.

지옥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남아 뚜벅뚜벅 걷는 처절한 인생들.

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부엌칼을 든 사람들

지금 그 곳은 비에 씻겨내려가 완전히 사라진 마을위에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아무 흔적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 길의 가게에서 성경책과 성화를 팔았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에벤에셀, 우리 집을 돕는 돌. 엄마의 가게는 하나데코, 그림의 집, 에벤에셀, 임마누엘 따위로 바뀌어왔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성경의 단어가 들먹여졌으나 축복 따위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다란 작업대가 있고 엄마는 그 작업대에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중간엔 난로가 있었는데 사시사철 파라핀을 녹여 양초를 만들었다. 베니어판이 벽면에 기대어 서 있었다. 포르말린과 파라핀을 넘어 작은 쪽문을 열면 나와 엄마, 동생과 새아빠가 사는 두 칸짜리 방이 나왔다. 화장실은 이 가게를 만들 때 새아빠가 변기를 사다가 붙여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겐 꽤 넓은 곳이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밝지 않았다. 엄마는 매듭과 양초 액자를 만들어 팔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와 성경책과 성화를 사가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카라얀의 사진이었다.

작은 방은 벽지를 사지 못해 가게에 남아 도는 포장지로 벽을 바르고 늘 준비되어 있는 베니어판으로 방을 나누어 두 칸을 만들었다. 새아빠는 비디오라는 기계를 가져와 무협드라마를 빌려다 봤다. 어떤 것은 28편까지 이어져 있어 한참을 봐야 했는데 나도 옆에 앉아 오랫동안 그 드라마를 신나게 봤다. 가게를 나서면 차 두 대도 지나갈 수 있는 너른 길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길은 꽤 넓어서 골목이라 하기 어려우나 그 길을 중심으로 몇 집들이 이웃하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치면 엄연히 골목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우리 집과 마주보는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었고, 여인숙이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엔 하늘색 대문이 있는 집이 있었다. 하늘색 대문집의 안은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한국아줌마와 미국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미국아저씨는 군인인지 군에 소속된 직업인인지 알 수 없다. 군복을 입었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나이는 엄마보다 많았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엄마와 그 집 여자였다. 아저씨는 내가 소풍을 가기 전 날 프링글러스를 사다주기도 했고 간혹 초콜릿이나 레이션 같은 것도 가져다줬다. 키가 커다란 미국아저씨가 하늘색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같이 살던 여자도 환하게 웃던 모습이 남았다.

 

하늘색 대문 옆 집이 우리집과 마주보던 집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여인숙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던 그 곳은 마당이 넓고 미음자로 방이 이어진 곳이었다. 여인숙의 주인은 혼자 사는 여자였는데 얼굴이 작고 검었으며 말수가 적었다. 여인숙의 문은 앞 문은 늘 열려 있고 뒷문도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그 여인숙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 골목에서 나는 아이들과 주로 딱지치기, 구슬치기 뿐 아니라 담방구나 잡기 놀이도 하고 부자집 딸래미 상미가 타지 않는 자전거를 내 맘대로 끌어다가 보조바퀴가 박살이 날 때까지 타기도 했다.

어느 어스름에 아이들과 마구 뛰어다니며 놀다가 얼떨결에 그 여인숙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줌마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아줌마의 옆에 얼굴이 검고 긴 남자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인숙의 주인여자에게 아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내가 그 곳을 들락거리든 말든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지청구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바보 같다고 여긴 것도 아니다. 주인여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공기가 그 여자의 얼굴에 가득했다. 늘 손에 부엌칼을 들고 있을 것만 같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영매같기도 했다. 검고 작은 얼굴과 눈에 띄지 않는 이목구비, 지독하게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원래는 무당이었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럴만도 했고 그래 보였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 그 골목을 누비던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입이 찢어진 홍콩할매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여인숙의 문턱을 넘은 건 절대 아니다.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몸을 숨길 곳을 찾다가 늘 문이 열려 있는 여인숙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것뿐이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여자는 커다란 칼을 들고 뭔가를 다듬고 있었다. 그게 조막만한 마늘인지, 커다란 생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아주 생생하게 들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내가 무척 가까이에 접근했음에도 그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하게 남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날, 초등학교 3학년이고 학교가 파하면 매일 매일 엄마에게 다른 이유로 밥 먹는 것과 별 다를 일 없는 매타작을 하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와 내내 뛰어다니고 놀던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또렷했던 이야기는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고스란히 들은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시무룩해 진 채 아이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놀이의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시원스럽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봤더라면 기분이 어땠을까.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는 늙은 남자는 아가씨값을 깍아달라 하고 식칼을 들고 먹거리를 다듬던 여자는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을 면치 못해 자기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의 집 일을 다녔다. 동네 다른 집 일을 봐주느라 자기 아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챙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는 여자가 일 봐주는 집 아이가 울어 업고 달래느라 집 밖으로 나왔는데 자기 아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 아이가 아장아장 노는 모습을 보며 울어 제끼는 남의 집 아이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멀리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여자의 아이를 치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뇌가 터져 죽었다. 그게 그 여인숙집 주인여자다.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독한 년, 얼마나 독할까. 그래서 엄마는 모든 일을 포기하고 가게를 하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도 포기하고 학위도 포기하고, 나는 박사도 교수도 화가도 될 수 있었는데 오로지 너희 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지를 먹으며 액자를 짜고 있따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감사했다.

 

이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살던 동네는 미아리텍사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길음동 현대아파트였다.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학교를 가면 텍사스는 마지막 손님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빠져나온 손님들은 길음역 전철역 앞에서 자신의 토사물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하루 장사가 끝난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유달리 다리에 상처가 많았다. 멍들었거나 모기에 물렸거나 마른 다리 곳곳이 성한 곳이 없이 텍사스에서 빠져나와 나와 같은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뎅을 사먹었고 나는 트윅스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이어폰을 절대 빼지 않았지만 때로 소리를 죽여 놓고 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으려 했다. 아이들은 그저 편의점에서 이루어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텍사스를 가로질러 왔다. 사실 텍사스의 입구를 지나지 않으면 집으로 갈 다른 길은 너무나 멀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 끝에 여러 사람이 모여 낄낄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쥐를 한 마리 잡아 꼬리를 자르네 머리를 자르네 하며 히히덕대고 있었다. 얼굴이 검고 마른 남자가 담배를 물고 식칼을 들고 있었다. 역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길을 지나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자주 만났다.

호프집에서 일하다가 단란주점으로 옮겨간 어떤 녀석이 자기 주방장이 어떤 사람이냐를 이야기하며 주방에 들어온 쥐를 토막 내어 음식에 넣는 것을 봤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텍사스에서 식칼을 들고 있던 남자와 일면식도 없는 주방장이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왜 그들은 한 팀이었다. 왜 그들은 공통적으로 쥐를 토막내고 싶어하는지 무서우면서도 궁금해졌다. 쥐를 토막내어 거대한 냄비에 넣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돗가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여인숙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도 떠올랐다. 여인숙 여자도 생쥐를 발견하면 꼬리를 잘라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곤 했을까.

 

며칠 전 천호동 사창가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라디오 프로그램 앵커가 물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뜨거운 여름 번쩍 하고 빛나던 텍사스 골목의 식칼과 그들이 모여서 히히덕대던 웃음소리와 활기찬 아침의 굿모닝팝스 오성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한데 엉겨 나에게로 쏟아졌다.

 

201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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