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택시의 기억

늘 다니던 길이었다.
택시가 빙 돌아 먼 길로 우회하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니는 길이고 이미 한 달 반이 되어가던 길이다.

나는 흰색 면 블라우스를 입고 멜방이 달린 길다란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머리는 적당히 길었고 콘택트렌즈도 끼고 있었다.

나에겐 500원도, 1000원도 매우 귀중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택시를 탔느냐 하면, 지하철 역에서 그 곳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혐오시설. 분명 서울시내에 있었으나 그 곳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그 곳의 주변까지 가는 버스는 있었으나 나에게는 500원만큼 시간도 중요했다. 시급 1000원짜리 아르바이트에 늦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구치소앞에서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붉어진 얼굴에 질질 짜고 나온 눈물 때문에 이 자가 나를 우습게 본 게 틀림없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길을 돌아오셨다고.
원래 여기까지 2800원이면 충분하다고. 지금 4000원이 넘게 나왔다고.

기사는 룸미러로 나를 슬쩍 보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내는 요금대로만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
택시 정차장에 닿은 기사가 속도를 올렸다.
“내가 못 내려주겠다면?”

택시는 서지 않고 속도를 내어 다시 어디론가 달려갈 기세였다. 지하철역 근처 승강장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돌아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목소리로 긴 한숨과 함께

알겠어요. 다 드릴테니 그냥 세워주세요. 라고 말했다.

기사는 반대편 승강장에 차를 세웠다. 나는 천원짜리 네 장을 던지듯 내었다. 그 새 요금이 100원 올라 있었다. 나는 동전 몇 개를 더 꺼내 기사에게 쥐어주고 차 문을 세게 닫았다.

택시를 탈 때마다는 아니다. 가끔 아무 일도 없을 때 이 생각이 난다. 그 날 내가 택시에서 내리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열일곱살이었다.

2014. 8. 13.

주스, 피자, 거울

1999년

냉장고에 병으로 된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사다놓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집의 냉장고는 검은색이었고 같이 살던 여자의 것이었다. 나는 6천원쯤 하는 커다란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냉장고에 넣으며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병 주스를 사 먹을 수 있다니. 고생은 이제 끝났어. 다음은 파스퇴르 우유다.’

 

2006년

몇 년이 지나 도미노피자를 시켜먹던 날을 맞이했다. 이 비싼 피자를 먹을 수 있다니. 그 날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의 노동이 없이도 신용카드가 내 손에 주어져 있었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시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갖고 싶은 책을 계속 사도 모자람이 없었다.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도 중단되지 않았다.

‘이건 뭐지?’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사다 놓던 날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먹을 것은 넘쳐났다.

훨씬 더 힘들게, 치열하게,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자면서 일을 하던 날은 도미노피자를 시켜먹는 그 날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도미노 피자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정당하지 않는 세상이라 여겼다. 매일 매일이 꿈결이었다. 사람이 미치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 눈앞에 버젓이 펼쳐질 때였다. 왜 일하지 않는데 돈이 있는 걸까. 벌어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아는 데까지, 벌어 오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은 현실에서 과거의 나처럼 살고 있고 나는 계속해서 꿈속에 살고 있었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2014년

나 자신의 가장 비열한 치부를 마주하는 일은 구역질 나는 일이다. 차라리 평생 아무도 비난한 적 없이 살았다면 욕지기는 덜 할 것이다.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오만가지의 군상들은 작은 구더기처럼 꿈틀대다가 필요한 것들을 끄집어 내어 내 얼굴에 발라대는 것은 구역질 나는 내 치부의 어떤 조종자다. 오만가지 악과 오만가지 선이 한 사람의 영혼에 모두 깃들어 있다는 걸 알고 지냈더라면, 혹은 모르는 척 평생을 살면 조금 나았을까.

나 자신도 모르는 어떤 불편함이 계속 체증처럼 가슴을 짓누르다가 어느 날 그 불편함이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을 하고 어두운 밤 골목에 떡하니 나타나 씨익 – 하고 소름끼치게 웃는 순간이 털썩털썩 눈앞에 떨어질 때.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이놈의 거울은 청동으로 만들었나 아무리 닦아도 잘 보이지 않아.’

2014. 8. 16.

생존자

1. 아이들이 바다에 갇혀 사그라지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
그리고 19분 전 화요일이 되어서 참사 후 112일째다.

2. 아이들이 아이들을 괴롭혔다. 죽도록 때리고 죽고 싶을 만큼 놀렸다.
성인이 된 한 아이는, 총을 들고 세상을 향해 울었고 가해자가 되었다.
또 다른 아이는, 맞아서. 죽었다.

또 어떤 아이가. 불타 알아볼 수 없게 된 채. 죽었다.

3. 눈이 녹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겨울에도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4. 파도가 갑자기 몰아쳐서 그랬다 했다. 심신을 단련하러 간 아이들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5.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마지막으로 살아나온 사람은 청년이었다.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계산을 받고 점포를 지키다가 탈출 지시를 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물 아래 깔려 죽었다.

6. 부실공사 때문이라고 했다. 등교길에 암시롱도 않게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버스와, 다리 상판과 함께 강물속에 처박혔다.

7.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문을 잠궜다 했다. 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아니 아기들이. 불타 죽었다.

8.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죽고 죽이고 죽음으로 내몰린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가자의 아이들도, 이 곳의 아이들도 또 다른 곳의 아이들도.

9. 아디다스 월드컵 축구공을 사달라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 그 공을 누가 만드는 지 아느냐고 말해주지 않았다.
태극무늬가 들어간 축구공을 산 아이는 코를 골며 자고, 스무살의 반짝이는 아이들은 친구의 방에 모여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신다.

10. 지금 이 집에 있는 누구 하나. 생존자 아닌 이가 없다.
생존하라.
그저 산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다. 살아남으라. 살아남아, 살아남아, 욕이라도 하라.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은 시간까지, 웃고 떠드는 찰라 사이 사이에 뼈가 저리다.

지옥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남아 뚜벅뚜벅 걷는 처절한 인생들.

한 사람이야기 11. 낮아줌마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제도 두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을 샜다. 하룻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 자리다.
아줌마는 작은 의자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소란스런 영화의 배경음이 홀을 울리고 있었다. 엎어 놓은 맥주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줌마는 담배를 다 피우고 저 물기를 마포자루로 한 번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냉동고를 열어 고기를 꺼내놓는다. 꺼내놓은 고기는 점심시간까지 자연상태에서 해동을 시킨다. 9시쯤 되어 미숙이가 출근을 한다. 그 때부터 하룻동안 팔아야 하는 야채들을 다듬는다. 양파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은 어딜 가나 하는 일이다. 눈물이 나는 것에 익숙해 진 지 오래되었다. 상추를 하나씩 씻어 체에 받친다. 식재료상이 와서 토마토를 한 박스 놓고 갔다. 오늘은 찰진 것이 물건이 아주 좋다. 지하 주방에서 식재료들을 모두 씻으면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위로 올린다. 철제 계단이 늘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무념히 지나친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요소들은 도처에 숨어 있다. 얼마 전엔 지하창고에서 불꽃이 일어 차단기를 내렸다. 신속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지 불안을 감지해봤자 피곤한 건 육신 뿐이다.

파란색 빨간색 체에 받친 토마토와 상추를 조리주방에 올려다 준다. 이 가게에 주방은 지하 2층에 하나, 홀이 있는 지하 1층에 하나, 그리고 아줌마가 설거지하는 지하 1층 뒷편에 하나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공간을 주방이라 명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지 못해 모두들 설거지 주방이라고 부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재료를 모두 다듬어 올려다 주면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 둘 들어오는 사람들은 때로 혼자, 때로 여러 명. 아줌마는 가끔 설거지 주방을 벗어나 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저들은 무슨 팔자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제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며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나. 설거지를 하는 나와 저들의 삶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멀리 있나. 머릿속을 휘감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 버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에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하며 산다. 하루 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고무장갑을 꼈다가 벗었다가 맥주컵을 씻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대낮부터 뭔 술들을 그렇게 처마시는지 욕을 하다가도 부러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아줌마는 주방밖에 서서 대낮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쳐다본다. 아줌마는 파란슬리퍼에 앞치마를 맨 채로 홀을 가로질러 바로 간다. 나 맥주 하나만 줘봐. 아줌마는 3500원을 앞치마에서 꺼내 미숙이에게 건넨다. 미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준다. 맥주 병을 건네는 미숙이가 눈을 흘긴다.
아줌마 눈 빨개요.
그렇겠지 뭐.
아줌마는 맥주컵에 맥주를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또 못 주무셨어요?
언제는 잤니?
아줌마가 미숙이에게 눈을 흘긴다. 이내 웃는다.
휘청거리는 듯 하지만 휘청거리지 않는 결연한 걸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뒷모습, 그리나 흔들리는 늙은 종아리. 아줌마가 맥주병을 들고 설거지 주방으로 들어간다. 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아줌마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후 3시, 맥주잔을 씻는 일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쌓아놓은 맥주잔은 오후에 남자아이들이 나와 운반할터였다. 설거지 주방에 조그만 의자를 펴놓은 아줌마는 세제 옆에 놓인 소주병을 여 열어 맥주잔에 부었다. 한 잔을 다 마시니 졸음이 몰려온다. 밤에는 두 세 병을 마셔도 잠도 안 오더니, 꼭 이 시간엔 반 병만 마셔도 졸립다. 아줌마는 벽에 등을 기대로 긴 숨을 몰아쉬었다.

2014. 7. 24.

부엌칼을 든 사람들

지금 그 곳은 비에 씻겨내려가 완전히 사라진 마을위에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아무 흔적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 길의 가게에서 성경책과 성화를 팔았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에벤에셀, 우리 집을 돕는 돌. 엄마의 가게는 하나데코, 그림의 집, 에벤에셀, 임마누엘 따위로 바뀌어왔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성경의 단어가 들먹여졌으나 축복 따위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다란 작업대가 있고 엄마는 그 작업대에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중간엔 난로가 있었는데 사시사철 파라핀을 녹여 양초를 만들었다. 베니어판이 벽면에 기대어 서 있었다. 포르말린과 파라핀을 넘어 작은 쪽문을 열면 나와 엄마, 동생과 새아빠가 사는 두 칸짜리 방이 나왔다. 화장실은 이 가게를 만들 때 새아빠가 변기를 사다가 붙여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겐 꽤 넓은 곳이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밝지 않았다. 엄마는 매듭과 양초 액자를 만들어 팔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와 성경책과 성화를 사가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카라얀의 사진이었다.

작은 방은 벽지를 사지 못해 가게에 남아 도는 포장지로 벽을 바르고 늘 준비되어 있는 베니어판으로 방을 나누어 두 칸을 만들었다. 새아빠는 비디오라는 기계를 가져와 무협드라마를 빌려다 봤다. 어떤 것은 28편까지 이어져 있어 한참을 봐야 했는데 나도 옆에 앉아 오랫동안 그 드라마를 신나게 봤다. 가게를 나서면 차 두 대도 지나갈 수 있는 너른 길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길은 꽤 넓어서 골목이라 하기 어려우나 그 길을 중심으로 몇 집들이 이웃하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치면 엄연히 골목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우리 집과 마주보는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었고, 여인숙이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엔 하늘색 대문이 있는 집이 있었다. 하늘색 대문집의 안은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한국아줌마와 미국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미국아저씨는 군인인지 군에 소속된 직업인인지 알 수 없다. 군복을 입었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나이는 엄마보다 많았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엄마와 그 집 여자였다. 아저씨는 내가 소풍을 가기 전 날 프링글러스를 사다주기도 했고 간혹 초콜릿이나 레이션 같은 것도 가져다줬다. 키가 커다란 미국아저씨가 하늘색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같이 살던 여자도 환하게 웃던 모습이 남았다.

 

하늘색 대문 옆 집이 우리집과 마주보던 집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여인숙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던 그 곳은 마당이 넓고 미음자로 방이 이어진 곳이었다. 여인숙의 주인은 혼자 사는 여자였는데 얼굴이 작고 검었으며 말수가 적었다. 여인숙의 문은 앞 문은 늘 열려 있고 뒷문도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그 여인숙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 골목에서 나는 아이들과 주로 딱지치기, 구슬치기 뿐 아니라 담방구나 잡기 놀이도 하고 부자집 딸래미 상미가 타지 않는 자전거를 내 맘대로 끌어다가 보조바퀴가 박살이 날 때까지 타기도 했다.

어느 어스름에 아이들과 마구 뛰어다니며 놀다가 얼떨결에 그 여인숙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줌마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아줌마의 옆에 얼굴이 검고 긴 남자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인숙의 주인여자에게 아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내가 그 곳을 들락거리든 말든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지청구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바보 같다고 여긴 것도 아니다. 주인여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공기가 그 여자의 얼굴에 가득했다. 늘 손에 부엌칼을 들고 있을 것만 같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영매같기도 했다. 검고 작은 얼굴과 눈에 띄지 않는 이목구비, 지독하게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원래는 무당이었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럴만도 했고 그래 보였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 그 골목을 누비던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입이 찢어진 홍콩할매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여인숙의 문턱을 넘은 건 절대 아니다.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몸을 숨길 곳을 찾다가 늘 문이 열려 있는 여인숙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것뿐이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여자는 커다란 칼을 들고 뭔가를 다듬고 있었다. 그게 조막만한 마늘인지, 커다란 생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아주 생생하게 들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내가 무척 가까이에 접근했음에도 그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하게 남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날, 초등학교 3학년이고 학교가 파하면 매일 매일 엄마에게 다른 이유로 밥 먹는 것과 별 다를 일 없는 매타작을 하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와 내내 뛰어다니고 놀던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또렷했던 이야기는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고스란히 들은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시무룩해 진 채 아이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놀이의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시원스럽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봤더라면 기분이 어땠을까.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는 늙은 남자는 아가씨값을 깍아달라 하고 식칼을 들고 먹거리를 다듬던 여자는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을 면치 못해 자기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의 집 일을 다녔다. 동네 다른 집 일을 봐주느라 자기 아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챙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는 여자가 일 봐주는 집 아이가 울어 업고 달래느라 집 밖으로 나왔는데 자기 아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 아이가 아장아장 노는 모습을 보며 울어 제끼는 남의 집 아이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멀리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여자의 아이를 치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뇌가 터져 죽었다. 그게 그 여인숙집 주인여자다.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독한 년, 얼마나 독할까. 그래서 엄마는 모든 일을 포기하고 가게를 하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도 포기하고 학위도 포기하고, 나는 박사도 교수도 화가도 될 수 있었는데 오로지 너희 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지를 먹으며 액자를 짜고 있따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감사했다.

 

이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살던 동네는 미아리텍사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길음동 현대아파트였다.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학교를 가면 텍사스는 마지막 손님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빠져나온 손님들은 길음역 전철역 앞에서 자신의 토사물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하루 장사가 끝난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유달리 다리에 상처가 많았다. 멍들었거나 모기에 물렸거나 마른 다리 곳곳이 성한 곳이 없이 텍사스에서 빠져나와 나와 같은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뎅을 사먹었고 나는 트윅스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이어폰을 절대 빼지 않았지만 때로 소리를 죽여 놓고 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으려 했다. 아이들은 그저 편의점에서 이루어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텍사스를 가로질러 왔다. 사실 텍사스의 입구를 지나지 않으면 집으로 갈 다른 길은 너무나 멀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 끝에 여러 사람이 모여 낄낄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쥐를 한 마리 잡아 꼬리를 자르네 머리를 자르네 하며 히히덕대고 있었다. 얼굴이 검고 마른 남자가 담배를 물고 식칼을 들고 있었다. 역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길을 지나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자주 만났다.

호프집에서 일하다가 단란주점으로 옮겨간 어떤 녀석이 자기 주방장이 어떤 사람이냐를 이야기하며 주방에 들어온 쥐를 토막 내어 음식에 넣는 것을 봤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텍사스에서 식칼을 들고 있던 남자와 일면식도 없는 주방장이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왜 그들은 한 팀이었다. 왜 그들은 공통적으로 쥐를 토막내고 싶어하는지 무서우면서도 궁금해졌다. 쥐를 토막내어 거대한 냄비에 넣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돗가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여인숙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도 떠올랐다. 여인숙 여자도 생쥐를 발견하면 꼬리를 잘라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곤 했을까.

 

며칠 전 천호동 사창가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라디오 프로그램 앵커가 물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뜨거운 여름 번쩍 하고 빛나던 텍사스 골목의 식칼과 그들이 모여서 히히덕대던 웃음소리와 활기찬 아침의 굿모닝팝스 오성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한데 엉겨 나에게로 쏟아졌다.

 

2014. 7. 22.

이 글을 쓰게 한 기사

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sval=&anum=56267&vnum=4417&bgrp=6&page=&bcd=007C059C&pgm=1378&mcd=BOARD1

아이들은 죄가 없다.

1.

남편이 틀어놓은 뉴스와이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자막속보 위로 신나는 여름방학이라는 뉴스가 흐른다.
초등학교 1학년들의 첫 방학을 소개하는데 교복을 입은 사립초등학교에.. 방학동안 기대되는 일을 발표하는 아이가 8월에 싸이판 가는데 바다에서 고기 잡을 일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낯설다.
아이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2.

동생학원에 1학년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등록과정부터 부모가 결제는 나중에 할테니 아이 먼저 보내겠다고 하여 동생이 당황했다.
아이가 학원에 와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남자친구가 몇 명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단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왔는데 눈물자국이 있는 상태로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도 엄마가 눈물도 닦아주지 않고 데려다주고 갔단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엄마 아빠는 매일 “야근” 하느라 늦게 오고 언니가 둘 있는데 언니들은 심부름만 시키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저는 혼자예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3.

자율적으로 혼자 알아서 하게 하는 범위가 어디냐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다 부러진 연필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보거나 알림장 한 번 들춰보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거나 아이 혼자 바닥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 그렇다.

4.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 모두 다른 가정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 어느 아이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내 새끼도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새끼 챙기는 것도 우습지만 내 새끼만 챙기겠다고 사는 짓은 더 우스운 일이니.

5.
사무실 건물에 같이 입주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가끔 물품을 전달한다. 지난 달에는 정기후원도 약속했다. 작아진 신발이나 우리 아이의 우산을 사다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더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어릴 때 저런 센터가 있었으면 내 삶의 트라우마도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매일 매일이 번뇌다.

누구와 일할 것인가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듭니다. 악의적으로 만든 제도도 있었지만 현대사회는 대부분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들이 많습니다.
그 제도가 현장으로 갔을 때 많은 것들이 변질됩니다. 제도의 의의를 고민하고 늘 생각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습니다.

제도는 현장에서 누가 실행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사업이 되기도 하고 운동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지속성의 승패가 갈립니다.

단발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밀려나는 게 순리입니다. 새로운 사업들은 사회의 요구에 발맞춰 순식간에 등장하고 사그라집니다.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모든 경쟁에서 이기는 완벽한 제도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 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엊그제 모 단체의 25주년사 편집회의를 마치고 난 다음의 소회. 페이스북친구분의 고민을 듣고 답글을 적다가 좀 길게 정리해 봄.

검은 숲

 
 
 
탱크 빨리 빨리!
아이가 소리를 치며 달렸다. 성문은 험하게 부서져 있었다. 아이의 손엔 제 몸집의 절반만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숨을 고르며 규칙적으로 뛰었다. 전속력으로 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숨이 거칠지 않았다. 오랫동안 훈련한 것이 한 눈에 드러났다. 아이의 옆에는 다리가 짧은 개 한 마리가 혀를 쭉 빼고 달리고 있었다. 도끼를 쥔 아이의 손에 개의 목줄도 같이 엮여 있었다. 손목에 목줄의 손잡이를 잡고 쇠줄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다리가 짧은 개도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정확하게 한 팀이었다.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을. 시커멓게 색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문이었으나 워낙 튼튼한 나무로 두껍게 몇 겹으로 짜여 어지간한 세월엔 주저앉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거대한 성문을 망가뜨렸다.
 성을 둘러싼 해자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의 뒤쪽에서 우루루루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무엇이 덮치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성 안에서 불타는 용암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견고하고 오래된 성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열 두 가지도 넘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이 해자를 흐르는 용암이었다. 용암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거울을 가지고 있는 그 성주만이 알고 있다고들 했다. 성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사람들은 성주를 그렇게 길게 불렀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단 한 글자도 틀려선 안됬다. 불경스러운 자들은 모조리 끌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때 하나씩 마을로 돌아갔다. 성주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지 못한 자들은 마을로 돌아올 때 엉덩이에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났다. 가까운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아이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문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드디어, 이윽고, 어째서, 왜, 그리하여, 하물며, 드물게, 불구하고, 난데없이, 도대체. 그렇다 했다. 도대체, 라는 말도 있다 했다. 사람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한 가지의 단어들을 엉덩이에 새기고 나타난다 했다. 성주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고 거대한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엉덩이만 벗겨놓고 문신을 새긴다 했다. 그 방을 지키는 자는 턱이 날카롭고 키가 큰 자인데 얼굴은 가렸으나 곱슬거리는 머리칼은 금색으로 반짝인다 했다. 사람들은 해자를 휘감는 용암을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금빛 곱슬머리 남자가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이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용암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성의 꼭대기에 금빛 곱슬머리가 반짝거렸다. 하늘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 머리칼만 빛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등 뒤에 달린 화살통에서 촉을 꺼내 남자를 향해 겨냥했다. 혀를 빼고 서 있던 개는 아이의 발 옆에 적당하게 붙어 있었다. 금빛 곱슬머리를 향해 화살이 날았다. 용암의 부글거리는 소리에 바람을 가르는 활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지만. 팔을 내린 순간 곱슬머리는 사라졌다. 아이는 뒤로 물러나 불타오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성 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아이는 소녀가 매달려 있던 창을 찾았다. 낮에는 창문에 매달려 하루 종일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남은 소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성 안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아이는 등을 돌렸다. 멀리 검은 숲으로 향했다. 성만 아니면 된다. 성만 벗어나면 가시덩굴도 상관없었다. 검은 숲의 앞에 커다란 남자가 웃통을 벗고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남자의 옆엔 수레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수레 위엔 약간의 장작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의 수레 안에서 갑자기 작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다가 수레 안의 여자아이에게 눈을 크게 떴다. 여자아이는 다시 수레 안으로 숨었다. 까만머리. 아이는 창문에 매달리는 소녀가 생각났다. 불타는 강이 잠잠해지고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부수고 나왔는데 성문은 대체 언제 다시 생긴걸까.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깨고 무엇과 싸우고 이 자리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성을 바라보던 아이는 개의 목줄을 굳게 잡았다. 혀를 빼고 앉아 있던 다리가 짧은 개는 아이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장작을 패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 안엔 무엇이 있죠?”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며 대답했다.
“그저 숲일 뿐이야.”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없다고 대답해주지.”
“무엇이 없습니까?”
아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1년동안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알 수 없을 남자였다.
“햇빛이 없다. 그래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 그리고, 저 멀리.” 남자의 도끼가 성을 가리켰다.
“뱀으로 된 백 가닥의 머리카락과 일곱 개의 머리,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저 성의 성주가 없다.”
“그럼 무엇이 있습니까?”
남자는 도끼의 날을 바닥을 보게 하여 자루를 짚고 삐딱하게 섰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도끼를 다시 들어 장작을 팰 준비를 했다.
“이 장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는 흐엇! 소리를 내며 장작을 팼다. 수레 속의 숨은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며 아이를 보았다.
손에 든 도끼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나는 이 도끼가 필요없습니다.”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도끼를 내려놓고 개의 목줄을 굳세게 잡았다.
“가자 탱크.”
검은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햇빛도, 그림자도 정녕 없었다. 아이가 가는 숲길에 쉬고 있던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2014. 7. 16.
이하나 

절반의 부모 절반의 아이

부모님의 생애사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강좌신청을 했다. 8주간의 강좌는 생애사쓰기에 대해 소논문을 작성하신 수리장애인복지관 이형진관장님이 특강으로 마무리했다. 엄마를 이야기하며 눈물짓는 선한 사람과, 아버지의 처절했던 삶의 투쟁에 대해 울먹이는 사람이 있다. 나에겐 둘 다 생경스러운 풍경이다. 몇 년전이었다면 배알이 뒤틀리거나 기분이 착찹했을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태초부터 없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몇 개월전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은 그 날 급하게 직원회식을 해야 했고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작은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큰 아이도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수원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 해가 지고 있었다. 비참했다. 가슴에 불이 오르는데 태풍같은 파도가 넘실거렸다. 한 방에 쓸려나갈 듯, 운전대를 쥐고 있는 날이면 어디든 들이받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 저녁 노을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1학년, 자퇴서를 쓰고 돌아오던 날 마을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화창했다. 내 세상은 무너지는데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아이를 낳고 학교에 가고 돈을 벌고 밥을 먹었다. 그 날 나는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태초부터 그 딴 것은 없었다고 말할 것이었으면 바라지도 말아야 옳지 않은가. 세상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듯 내 마음도 부조리했다.

더 유치할 때는 차라리 고아인 채로 보육원에서 자랐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 있다. 더 많은 동정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정은 때로 돈도 되고 후원도 되고 사람이 되어 나를 밀어줬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큰아버지의 손을 잡을 때 세상의 모든 고아들에게 죄스러웠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니다 라는 명제를 머릿속에 깊이 박았다.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서야 세상의 모든 부모가 “부모다워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그저 나는 그런 삶을 받았을 뿐이다. 엄마가 만든 성에 갇혀 아무 것도 저항하지 않으며 산다해도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성문을 깨부수고 나온 것은 나였다. 성문을 모두 망가뜨려놓고 왜 저 성이 저 따위로 생겨먹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염병을 던지는 꼴이었다. 아버지는 성밖 숲으로 도망쳤다. 화가 나서 도망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꼴뵈기 싫어 그림자가 없는 어둠으로 숨었다. 나중엔 해가 중천에 떠서 그림자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짧아지는 매일 매일 화창한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계속 그림자를 보고 살았다. 성 안에서 쪼그려앉아 그림만 그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살았다.

성에서 나왔으니 됐어.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의 생애사를 쓰겠다는 사람들과 앉아 밀면을 먹었다. 부산과 대구의 음식이야기를 하다가 이북음식 이야기로 옮겨갔다. 엄마가 담궜던 동태가 들은 김장김치와 손바닥만한 왕만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엄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하루 종일 마음에 남는다.

 

오후엔 어린아이를 같이 돌보고 키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엄마이고 그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가 있었다. 아이교육에 대해 열을 내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적당히 적응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길 바랐다. 어미가 일일이 개입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내가 원하는 교육과 아이가 원하는 교육이 동일할거라고 자만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기보다 훨씬 강인하고 어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다. 아이들이 겪는 모든 고통을 어른들에게 던져준다면 그 어떤 어른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진 생명력을 모조리 살아가는데 집중하여 쓴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지나치게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않아 어른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닌다.

남들의 교육관을 듣는 동안 내 아이는 집에서 좋게 말해 자유롭게 나쁘게 말해 방치된 채 동네 형들과 게임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 것은 몇 시간전부터이다. 전화가 연속해서 오지 않는 것은 뭔가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뜻이며, 전화를 계속 걸어대는 것은 아무 자극이 없는 정적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는 스스로 저녁까지 해결했고 나가서 뛰어놀았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 바람은 선선하여 기분이 좋았고 우리 앞 동에서는 누군가 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첼로 소리를 들은 지 보름이 넘었는데 매일 비슷한 시간에 첼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순간에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이 도보행진을 하며 안양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으나 내 눈앞에 알짱대는 내 아이를 더 먼저 돌봐야 했다.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죽은 친구의 부모들을 만나러 도시를 가로질러 행군을 한다.

 

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하룻 밤 땀에 삭아질 수 있을까. 평생을 지배할 아이들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어서 두려움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만난다 한 들 내가 안아 줄 수나 있을까. 내가 가진 용기는 먼발치에서 보고 눈물 흘리다 돌아오는 게 전부일거다. 아이들이 걷는 모습을 인터넷 생중계로 본다.

어쩌다 세상은 이렇게 부모와 아이들로만 이루어졌나.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 하는 부모들과 어쩔 수 없었다고 깔깔대며 웃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도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매우 특별한 사람이 나를 낳은 것 뿐이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2014. 7. 16.

고양이 털끝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이따 회의에 오시죠? 라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느릿한 억양으로 말하는 이 남자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이었다. 매우 지적으로 보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지적이라기 보다 의뭉스럽다는 말이 걸맞은 사람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길게 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굳이 길게 보지 않아도 당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소집해 달라고 한 회의였고 그들은 그 책임을 다 했지만 책임이 분산되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이 누락되는 법이다. 누군가 연락을 했겠지. 그 사람이 연락을 했겠지, 저 사람이 통화했겠지.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나. 통화했다면서 무슨 말을 한거야. 사람들의 책임은 핑퐁처럼 오고 간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아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차장에 놓인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선생님은 옆에 탔다. 교실에서 나를 가르치지 않아도 나에게 스승이면 그걸로 선생이 된다.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속도계 앞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내 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어느 날부터 글자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다. 잘 안된다는 것이다. 찍고자 하는 자음의 좌측 상단 30도 방향에서 입력을 해야 하는데 맨 왼쪽에 쏠려 있는 자음은 좌측 상단이 없다. 그게 네비게이션의 끝이니까. 휴대폰을 속도계에 올려놓으면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내가 하루를 사는 일의 절반이다.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읽고 쓴다. 저열하고 가볍고 속된 글이나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즐거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관계의 단절, 내가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앉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을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니 관계의 허기는 마치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옥의 병에 걸린 듯 하다. 무엇을 내어주지 않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단절되고 분절되는가. 삶은 뚝뚝 끊긴 채 길에 떨어졌다.

 

한 마리, 두 마리, 어쩌면 반마리, 또 다시 한 마리, 이번에도 반 마리.

목적지까지 왕복으로 70km, 오고가며 길바닥에 죽어서 터져 있던 짐승들이 일곱 마리가 넘는다. 가는 길에 너댓마리를 봤고 오는 글에 두 세 마리를 봤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반마리처럼 보였다. 붉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체를 보고도 나는 달려야 했다. 그 길을 지나치던 최초의 충돌자도 살아 있는 짐승과 눈을 마주쳐도 달려야 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과연 변명이 되는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고. 눈을 번쩍이는 작은 짐승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내 뒤에 오는 사람의 위험을 감수할 의무가 나에겐 없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이며 제한 속도는 시간당 70km 이거나 110km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속도위반 단속구간이 아닌 곳에서 많은 차들이 120km를 넘게 가속페달을 밟곤 한다.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따위는 고려할 바가 아니다. 차들은 빨리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침없고 싶어서 달린다. 앞 서 가는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운전을 할 수 없다. 앞서 가는 차와 내 곁을 치고 들어오는 차는 그저 기계다. 사람이 운전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외면하고자 하면 눈 감으면 그만이다. 길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어디 짐승뿐인가. 사람도 바다에 산 채로 수장시키는 마당에, 고양이따위에게 줄 동정심이나 남아있긴 한걸까.

펄덕이며 숨쉬던 생명이 무력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고자 한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낯선 풀도 독을 뿜어내듯 움직이는 동물도 모두 독을 품고 산다. 하악. 하고 이빨을 드러내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하악, 하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짐승만의 일은 아니다.

나와 감정적으로 엮일 일이 없는데 한 남자가 그 오후에 이를 드러냈다.

뭐하는 짓인가.

나는 가만히 서서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그 남자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 있었으나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의 몸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죽여버릴까.

내가 감히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있나. 할 수 없어도 문장을 뱉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내가 설령 누군가에게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과연 그는 가만히 있기나 했나. 폭력. 죽여버릴까에서 비롯되는 폭력, 나에게 이를 드러내는 자의 이를 몽창 뽑아버리고 싶다는 건 분노의 감정을 나에게 전이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불쾌하다는 이유로. 너의 분노가 나의 감정에, 나의 삶에 개입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이 번잡함.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매우 복잡한 구조.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분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를 존중해 달라고 하는 욕구는 대체 왜 일어나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해주길 바랐다. 존중이라는 것은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말을 하며 때로 두 손을 모으기도 하고 내가 털끝만큼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히 여길 줄 알길 바랐다. 왜 그는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나. 나의 삶의 일정부분을 그에게 소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길 바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소비되는 나의 감정과 시간은 원래 내 것이므로. 내 것을 너에게 딱 고양이 털끝만큼 내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워하라. 당신은 나의 수명을 딱, 고양이 털끝만큼 가져갔으므로.

 

내가 내어준 고양이 털끝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가져가고 그는 나에게 이를 드러내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분노를 전이시켰다. 분노를 고스란히 떠안고 삭히고 원인을 찾는 시간을 그가 강요하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나의 수명의 일부를 그가 가져갔다. 아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었나. 그가 나에게 강요한 분노의 용량이 고양이 털끝을 넘어 개똥만한 것이었는데 그 개똥만한 크기의 예측불가로 인해 나는 소똥만한 수명을 단축시켰다.

 

죽어버린 짐승의 사체를 고스란히 목도하며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타인의 분노를 떠안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길에 깔려 죽은 고양이만큼 당신은 숭고하게 살았는가 묻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내내 분노를 전가했다는 이유로 씩씩대고 내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던 나는, 사람들을 피해 냇가로 도망치는 작은 짐승만큼 충실하게 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삶을 보존하는 방법에 집중하기에 우리는 너무 헐렁하게 지낸다. 눈 감고 외면하면, 그만인 것들이 많다는 건 내 눈이 그만큼 헛 것이라는 얘기일까.

 

2014. 7. 15.